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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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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5, 2016 18:34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안즈는 속이 뜨끔했다. 정곡을 찔렸기에.

안즈와 프로듀서는 지금 미묘하게 거리가 벌어졌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안즈 앞에 있는 유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인 중 하나. 뻗어 나온 가지. 원인의 근원은 아니다.

프로듀서의 과거에서 깨져 나온 파편이 안즈와 프로듀서 사이에 박혔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섣불리 다가가면 파편을 밟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로듀서와 안즈는 서로 거리를 벌렸다.

파편이 아주 날카롭고 뾰족해서 잘못 밟으면……. 고통스러울 테니까.

둘은 결국 암묵적으로 파편이 박힌 부분을 건드리지 않기로 정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파편이 저절로 녹아 없어지길 바라는, 그런 막연한 기대만 하고.

“지금 프로듀서 쨩 옆에 있는 건 안즈 쨩인데, 프로듀서 쨩이 필요하다면서 왜 사이가 어색할까?”
“옆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필요는 없잖아.”
안즈는 간신히 대답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유이는 뭐든지 좀 더 알고 싶은걸? 유이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고. 극복하지 못한 과거가 있으면 같이 극복하고 싶어. 그러니까 유이는 프로듀서 쨩을 옆에 두고 싶어. 이해해?”
안즈는 이번엔 대답하지 못했다.
안즈의 손에 미약하게나마 힘이 들어가 초대장이 조금 구겨졌다.

“조건을 걸자. 유이가 이기면 프로듀서 쨩은 유이의 사무소로 이적하고 유이의 프로듀스를 맡을 것. 안즈 쨩이 이기면 유이가 포기할게. 그리고 이 페스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조건이야. 인지도를 쌓을 좋은 기회니까.”
프로듀서와 미쿠는 안즈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금 유이의 정신은 완전히 안즈에게 쏠렸다. 프로듀서나 미쿠가 나서봤자 이야기만 겉돌 게 뻔하니까.

안즈는 초대장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고급 자수가 점자처럼 안즈의 손가락을 압박했다. 안즈가 언제 다시 느낄지 모를 감촉. 지금 안즈가 손에 넣을 수 없는, 넘볼 수 없는 높은 무대로 향하는 길이 이 초대장에 있다.

하지만,
그런 거 알게 뭐야!

안즈는 초대장을 유이에게 내밀었다.

“필요 없어. 바보도 아니고 질 게 뻔한 싸움을 왜 해?”
안즈는 총명하니까.

상대의 전력과 안즈 자신의 전력을 가늠하고 승산을 계산하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아니, 안즈 정도로 머리가 똑똑하지 않아도, 안즈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아이가 보아도 뻔한 승부다.

메이저 아이돌 유이 vs 신인 아이돌 안즈.
누가 봐도 유이의 승리다.

큰 해일이 몰려오는데 거기에 뛰어드는 멍청이는 없다. 있더라도 그 멍청이가 안즈는 아니다.
유이는 안즈에게서 초대장을 돌려받았다.

“이 페스는 수많은 신인 아이돌이 나가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 유이도 예전엔 그랬어.”
“이미 들었어.”
“이 티켓 하나를 따내려고, 지금도 죽을 만큼 노력하는 아이돌이 많아. 유이도 그중 하나였고. 신인이라고 무시당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도, 유닛 멤버들과 프로듀서 쨩과 함께 피와 땀을 흘리면서, 노력해서 결실을 얻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유이는 망설이지 않고 초대장을 찢었다.

초대장이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유이는 그걸 겹치고는 초대장을 찢고 또 찢었다.
초대장이 16개의 균일한 종잇조각이 됐다.

“뭐하는 거야!”
안즈가 아연실색하여 유이에게 소리쳤지만 유이는 태연하게
“프로듀서 쨩, 쓰레기통 어디 있어?”
정말 태연하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라는 듯 정말 태평하게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프로듀서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옆에 있는 미쿠마저 경악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유이는 혼자서 사무실을 두리번거리다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유이는 쓰레기통에 초대장 조각을 동그랗게 뭉쳐서 버렸다.

“지금 누군가의 꿈이 의미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어떻게 생각해? 안즈 쨩.”
“너, 네가 버린 거잖아!”
“안즈 쨩에게 있어 아이돌 활동은 뭐야?”
“안즈가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한 활동이야.”
“유이는 예전엔 아이돌 활동이 즐거우니까 그걸로 됐다고 여기면서 활동했어. 근데 그게 아니었어. 아이돌 활동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어. 즐겁기만 한 게 아니야. 싫은 것도 웃으면서 해낼 수 있어야 해. 예를 들어 안즈 쨩은 깨진 유리병 위를 맨발로 걸으면서 웃을 수 있어?”
유이는 손을 털었다. 그리곤 벽에 기댔다. 유이는 그렇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한 자세로 안즈를 응시했다.

“그, 그런 건…….”
“못하겠지. 물론 현실에서는 저런 극단적인 상황은 오지 않아. 그럴 거야. 하지만 안즈 쨩은 게릴라 콘서트 때 첫 곡부터 페이스를 무너트렸지? 그건 간절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어떻게 해서든 라이브에 성공하겠다는 각오. 한때는 유이도 그렇게 딱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
안즈는 6월 10일 게릴라 콘서트 때, 유이의 등장에 동요해서 개성을 잃었다.

“이제 좀 간절해졌어?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는 안 돼. 목적이 있어야 비소로 곁에 있는 의미가 있어. 유이는 지금 그렇게 생각해. 유이는 그날 이후 그걸 깨달았어. 좌절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어.”
유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성큼성큼 안즈에게 다가갔다.
“치낫땅의 말을 인용하자면 비장의 카드는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야 의미를 갖춘대.”
유이는 안즈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허리를 숙여 안즈와 눈높이를 맞췄다.

“안즈 쨩한텐 저 초대장처럼 프로듀서 쨩이 옆에 있어 봤자 의미 없어.”
“아니야…….”
안즈는 유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의미는 있어!”
유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즈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있어! 안즈가 뭘 하고 싶은지 찾는 거에 의미가 없어? 아니야! 있어! 안즈가 프로듀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즈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것만으로도 프로듀서가 다시 일할 수 있으니까! 게으름뱅이 안즈를, 프로듀서가 움직이게 했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해! 우리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야!”
“흐응, 그런가아?”
유이는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를 으쓱였다.

“못 믿겠으면 증명하겠어! 언젠가 다른 무대에서 안즈가 빛나는 걸 똑똑히 지켜봐!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성실한 발언은 못 해먹겠는데 이번엔 안 되겠어. 안즈는 이렇게 뜨거운 성격이 아니지만 넌 날 이렇게 뜨겁게 만들었어! 좋아, 그렇게 원하면 상대해주겠어! 안즈가 진심으로 상대해줄게!”
“와, 반가운 소리네. 좋아, 그럼 오다이바 페스에 나오는 거로 알고 있을게.”
유이는 꺄르르 웃고는 박수를 쳤다.

“초대장은 조금 전에…….”
“우리 사무소로 온 초대장은 총 7장. 유이가 1장. 그리고 5장은 지금 유이의 매니저가 미시로 상무에게 전했을 거야.”
나머지 1장의 행방은 이 사무실 쓰레기통.

안즈는 그때야 유이가 찢은 초대장의 용도를 눈치챘다. 도발용. 유이는 안즈를 도발하려고 초대장을 찢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안즈 쨩이 의욕을 보여서 기쁘다! 아하하, 재밌다. 재밌어. 역시 치낫땅은 대단하네. 치낫땅이 알려준 대로 하니까 정말로 넘어왔어. 대단하다~ 대단해~”
유이에게 책략을 짜 준 건 아이카와 치나츠인가.

얼굴도 맞댄 적 없는 상대에게 당했다.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안즈는 유이를 노려봤다. 안즈는 자기가 유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걸 알면서도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유이를 보란 듯이 이기고 싶다. 그런 마음이 안즈의 가슴 속에서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346에 넘긴 초대장은 5장. 안즈 쨩에 4명까지 더해서 유닛이라도 짜서 덤벼봐. 유이는 혼자서 상대해줄게. 핸디캡이야. 그래, 미쿠 쨩이 들어가면 상대할 만하겠네.”
유이는 미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쿠는 여전히 얼굴에서 경악한 빛깔을 채 거두지 못했지만, 유이의 시선이 닿자 경계의 시선으로 맞섰다.

“나……. 미쿠까지 해서 이길 자신 있어?”
“물론이야. 진짜 진심으로. 정말.”
“얕보지 마……. 냐. 싸움을 걸 거면 안즈 쨩 말고 미쿠 한 명한테 걸어!”
“아아, 무섭다. 무서워. 어디까지나 정당한 승부야. 사무소끼리 협의했으니까.”
유이는 물 흐르듯이 문으로 향했다.

“그럼, 오다이바 페스. 기대할게.”
유이가 문고리를 손에 잡자 프로듀서가 유이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유이……. 뭐가 널 그렇게 변하게 했어?”
“그야…….”
유이는 프로듀서에게서 순식간에 모자를 벗겨 자기 머리에 썼다.

“좌절이지.”
유이는 그 말만 남기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프로듀서는 두통을 느꼈다. 사태가 악화했다. 유이가 안즈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젠 결투까지 걸어오다니……. 암담하다. 프로듀서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안즈에게 물었다.

“안즈, 오다이바 페스에 나갈 거야?”
“나갈 거야.”
즉답. 안즈는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반대야.”
“안즈는 나가고 싶어. 나가서 확실하게 결판내고 싶어.”
“너도 알잖아. 질 게 뻔한 싸움이라고. 아까 네 입으로 말했잖아.”
“프로듀서는 안즈를 못 믿어?”
안즈는 프로듀서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그리곤 프로듀서의 셔츠 소매를 잡았다.

“프로듀서가 안즈를 스카우트했잖아.”
안즈가 프로듀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보챈다. 프로듀서는 그런 안즈의 손을 잡아서 멈췄다. 프로듀서는 그대로 두 손으로 안즈의 손을 감쌌다.

“네 재능을 믿어.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지금의 너는 유이를 이길 수 없어. 실력 차이가 너무 나. 인지도 차이도 너무 나.”
“승산 있어. 346에 전달된 초대장은 5장이야. 5명 유닛으로 가면 돼.”
“안 돼. 그래도 위험부담이 커.”
프로듀서는 안즈의 손을 조금 강하게 쥐었다. 프로듀서의 체온이 안즈의 손을 데운다. 따뜻했지만, 안즈는 프로듀서의 온기를 뿌리쳤다.

“왜 반대해? 프로듀서는, 안즈가 하고 싶은 걸 지원해주는 게 일이잖아.”
“이번엔 안 돼. 지금의 유이는 위험해. 그 녀석은 기를 쓰고 널 누르려고 할 거야. 그걸 뻔히 알면서 페스에 보낼 수 없어.”
“P쨩.”
미쿠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미쿠, 너도 안즈 좀 말려줘.”
미쿠는 안즈 옆에 나란히 섰다. 프로듀서와 대치하듯이.

“나도 이번에 나갈래. 안즈 쨩이랑 같이 유닛에 넣어줘. 냐.”
“너까지 왜 그래……. 지금 유이는……!”
“미쿠가 나서야 해. 안즈 쨩한테만 맡길 순 없어. 유이 쨩은 미쿠의 예전 동료니까.”
“잘 생각해봐. 안즈가 그날의 전철을 밟게 된다고. 그래도 좋아?”
“이번엔 이기면 돼. 냥. 미쿠도 C.M.Y.K.의 전 멤버야. 지금은 예전보단 인기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미쿠의 실력이 유이 쨩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냐.”
미쿠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프로듀서는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안즈, 난 네가 충분히 여유로운 상황에서 선택했으면 좋겠어. 난 그날 같은 경험을 또 겪고 싶지 않아. 네가 우리 전철을 밟을 필요는 없어. 말했잖아. 너는 너라고. 우리 과거에 관여할 필요는 없어.”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안즈는 프로듀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안즈는 안즈야. 오히려 그래서야. 오오츠키 유이는 안즈에게 결투를 걸어왔어. 오히려…….”
안즈는 말하려다가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결심했는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안즈를 통해 자기 과거를 보는 건 프로듀서 아니야?”
안즈가 괜히 머뭇거린 게 아니었는지 그 말은 프로듀서의 의식을 크게 흔들었다. 질량 없는 말이 프로듀서의 의식을 통해 질량을 얻어 프로듀서의 머리를 후려쳤다.

“또 실패를 경험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안즈라고. 안즈는 프로듀서가 안즈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안즈가 하고 싶은 걸 응원해주는……. 그런 사람이라고…….”
“아니야. 안즈……. 난…….”
“그럼 허락해줘!”
안즈는 프로듀서를 몰아붙였다. 유이 때문에 달아오른 열이 아직 안즈의 몸에 그대로 남아 안즈를 부추겼다. 남이 심은 화. 남이 심은 열정. 남이 걸은 시동. 그래서 태생적으로 남은 불쾌감. 불쾌감이 안즈의 마음을 주무른다. 안즈는 이런 불쾌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유이와 결판을 내야 한다.

“나도……. 고집이 있어.”
프로듀서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숨은 조금 흐트러졌지만 또박또박 발음해서 안즈에게 말했다.
“난 반대야. 네가 굳이 나가겠다면……. 난 프로듀서를 그만두겠어.”
프로듀서는 사무실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지났다. 그럼 상무도 회사로 돌아왔을 테다. 상무에게 이 일을 직접 물어보자. 프로듀서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근처 층을 지나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정차했다.

문이 열리고, 프로듀서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미시로 상무와 눈이 마주쳤다. 프로듀서는 움찔거렸지만 뒷걸음치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엘리베이터 안에 상무와 프로듀서 둘만이 있다.
어색한 공기를 뚫고 프로듀서가 말을 꺼냈다.

“지금 돌아오시는 겁니까.”
“그래, 미팅 겸 식사가 있어서 말이지.”
“이야기는 이미 들었습니다. 오다이바 페스 초대장…….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만?”
상무는 서류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있다. 초대장은 그 안에 있으리라.

“지금 안즈는 유이에게 상대가 안 됩니다. 무모해요! 게다가……. 저를 걸고 하는 승부는 또 뭡니까! 말도 안 되잖아요! 정말로 받아들이실 겁니까?”
“오다이바 페스는 후타바 안즈의 인지도를 높이기 좋은 절호의 기회다. 후타바 안즈뿐만이 아니야. 초대장은 5장. 떨어질 대로 떨어진 346 아이돌 부서의 체면을 다시 세우기 좋은 기회다.”
역시 미시로 상무는 이 이야기를 물었나…….
예상은 했지만 속이 쓰리다.

“불만스러운가 보군? 자네도 잘 알 텐데. 난 실적주의자다. 실적이 나오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자르는 주의지. 물론 그건 자네에게도 적용된다.”
미시로 상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프로듀서를 쏘아붙였다.

“옛날의 자네는 커다란 성을 지키는 용맹한 기사나 마찬가지였어. 맞서오는 적을 물리치고, 때로는 적진에 쳐들어가 승리를 따냈지. 그 시절의 자네는 대단했어. 내가 본 인재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지. 하지만 자네는 패배를 겪고 변했다.”
변했다.
유이가 좌절을 겪고 변한 것처럼, 프로듀서도 좌절을 겪고 변했다.

“지금의 자네에겐 옛날의 패기가 없어. 의욕을 잃은 자네가 그동안 346에 붙어있을 수 있던 건 자네가 옛날에 이룬 성과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 잘렸을 테지. 아니, 이젠 내가 나서서 자네를 자를지도 모르겠군. 자네가 계속 그런 상태라면 말이야.”
“저는 상관없어요. 하지만 안즈는…….”
“후타바 안즈도 마찬가지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끝이야.”
미시로 상무는 딱 잘라 말했다. 상무 성격상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프로듀서는 그걸 잘 알고 있다.

“페스 출전 인원은 5명. 우리 346 프로덕션은 5명으로 구성된 기간 한정 유닛으로 오다이바 페스에 참가한다. 그 유닛의 프로듀스는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저녁에 정식으로 전하겠다.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도록.”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아직 상무가 내릴 층에 도착하진 않았다. 중간층에서 다른 이가 누른 거다. 프로듀서는 들어오는 사람을 지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프로듀서가 내리자 엘리베이터가 위층으로 떠났다. 프로듀서는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벽에 기댔다. 그리고 벽에 기댄 채로 쭈욱 미끄러졌다.

프로듀서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프로듀서는 한동안 그곳에 그렇게 앉아있었다.
-

소년의 명치에 주먹이 들어왔다.
소년의 또래가 내지른 조그마한 주먹이었다. 성인이 맞으면 조금 아픈 정도로 끝날 위력. 하지만 동년배 또래를 향한 주먹이기에 맞는 입장에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소년은 주먹을 맞고 뒤로 자빠졌다. 흙바닥이 소년의 몸을 차갑게 받아줬다. 건물의 그늘에 가려 빛을 쬐지 못한 흙바닥이 거북할 정도로 축축하게 느껴졌다.

소년은 크게 기침했다. 명치에서 압박감이 느껴진다. 소년은 부들거리면서 간신히 일어섰다. 바닥을 짚었던 손, 팔, 그리고 간신히 일어선 다리 곳곳에 시퍼런 멍 자국과 까진 상처 자국이 자리했다. 소년은 터진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지만 눈빛은 죽지 않았다. 소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상대방을 살벌하게 노려봤다.

상대는 3명. 소년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 3명이 킬킬거리며 소년의 몰골을 구경하고 품평했다. 머저리 같은 자식,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자식……. 그들은 제각기 멸시와 조롱으로 소년을 깎아내렸다.

싸움이다. 그것도 3명이 1명을 때리는 비겁한 싸움. 만약 도덕심 있는 어른이 이 광경을 본다면 당장에라도 말릴 테지만 이곳에 그런 어른은 없다. 교사, 학교 수위, 부모……. 그런 어른은 여기에 없다.

애초에 저 패거리가 소년을 이런 인적 드문 장소로 끌고 온 것이다. 여기서 소년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싸움의 계기는 별거 아니었다. 상대측 패거리가 게임을 너무 오래 차지해서 소년이 한마디 한 것뿐. 부모를 모욕하거나 돈을 훔쳤다는 식의 거창한 이유는 없다. 이 나잇대 아이들은 사소한 계기로 이런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년이 패거리 중 가운데에 있는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소년의 주먹은 상대방에게 닿지 않았다. 옆에 있던 다른 패거리가 소년의 옆구리에 무릎을 꽂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쓰러진 소년에게 상대 패거리가 린치를 가한다.

주먹을 쓰지 않고 오직 발로만 소년을 밟고 걷어차고 짓이긴다. 낡아빠진 운동화 무리가 소년을 마구잡이로 구타한다.

약 3분 후.
패거리들이 지쳤는지 씩씩거리면서 발을 거두었다. 얻어맞은 소년은 부들거리면서 바닥에서 신음했다. 패거리 가운데에 있던 소년이 바닥에 쓰러진 소년을 비웃었다.

“꼴좋다! 네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줄 알았나 보지? 너나 우리나 다 똑같은 쓰레기야! 너만 뭐가 다른 것 같아?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 인생이라고!”
가운데 소년은 말하는 도중에 화가 치밀었는지 화풀이로 쓰러진 소년의 배를 걷어찼다. 걷어차인 소년은 배를 부여잡고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들어온 숨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둔화한다. 소년은 정말 조금의 효과에 매달려 숨을 내쉬는 것도 잊고 숨을 계속 들이쉬었다.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소년을 보고 상대방 패거리가 폭소를 터트렸다. 그들은 드디어 기분이 풀렸는지 제각기 소년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자리를 떴다.

소년이 진정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소년은 간신히 숨을 골랐다. 서늘한 바람이 소년의 상처를 찔렀다. 소년은 쓰라림을 이겨내곤 간신히 일어섰다. 옆에 있는 건물의 벽을 짚어 간신히 걸었다.

아까 그 패거리들이 간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소년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한 절망과 굴욕이 소년의 가슴을 죄었다. 하지만 소년은 걷는 걸 멈추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지금도 혼자지만, 아무도 소년을 찾지 못할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지금 소년이 걷는 곳은 어느 시설의 부지 내. 소년이 걸어봤자 갈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고 걷고 또 걸었다. 상처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어도 소년은 꾸준히 걸었다.

소년은 그러다 결국 넘어졌다. 발이 삐었다. 발목이 심하게 욱신거렸지만 소년은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았다. 고통은 오히려 소년에게 울지 말라고 채찍질한다. 울어봤자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울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소년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체감상 상당히 오래 걸은 것 같은데 거리로 치면 얼마 안 되는 장소에 와 있다.

소년이 걸어봤자 결국 이 정도. 소년은 더욱 깊은 절망을 느꼈다. 소년은 무릎을 끌어안고 머리를 무릎에 묻었다. 하지만 소년은 울지 않았다. 울어봤자……. 소년을 위로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꿈처럼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누가 소년을 불렀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소년은 이내 머리 바로 위에 있는 창문을 주목했다.

저 창문은 원장실의 창문일 텐데…….

소년은 창문을 빼꼼 들여다보았다. 원장이 안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 아이돌 라이브 같은 것이 나온다. 화면 속에서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춤추고 노래한다. 소년은 무심결에 화면을 계속 바라봤다. 소녀의 노래 한마디, 춤동작 하나하나가 소년을 끌어들였다.

-이제부터 좋은 일이 잔뜩 생길 거야.

소년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6월 13일

-시, 싫어! 난 일하지 않을 거야! 일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 전한다! 이건 놀이도 라이브도 아니야! 우리의 정의를 위해!

프로듀서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프로듀서는 알람을 끄고 몽롱한 정신으로 꿈을 더듬었다. 처음 꾸는 내용이 아니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기에 프로듀서는 내용을 되짚었다.

“아……. 이번에도 결국 제대로 듣지를 못했네.”
중간에 깼으니까. 프로듀서는 알람을 원망하려고 했지만 알람 소리가 안즈의 노래였다는 걸 떠올리곤 바로 원망을 거두었다. 프로듀서는 1분 정도 이불 속에서 얼굴을 문질렀다. 정신이 점점 또렷해져 어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346 프로덕션을 찾은 유이, 유이의 도발에 넘어간 안즈, 여기에 끼어든 미쿠, 그리고 일련의 사태를 말릴 생각이 전혀 없는 미시로 상무…….

346 프로덕션은 유이가 물어온 제안을 덥석 물었다. 프로듀서를 걸고 하는 승부. 당사자인 프로듀서는 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미시로 상무는 프로듀서에게 유닛 5명을 모아 오다이바 페스티벌에 참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끝까지 반대했다. 상무가 보내온 서류도 조금 훑어보고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퇴근했다.

잘려도 할 말 없고 사회인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었지만 프로듀서는 그 지시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아무리 도망쳐도 시간은 흐른다. 어제 팽개친 일은 오늘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심지어 때때로 더 큰 일로 불어서 덮쳐오기도 한다. 사회란 바로 그런 곳이다.

하지만 이 일은 정말 하기 싫다. 안즈를 프로듀서 손으로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꼴이니까. 예전에 C.M.Y.K. 멤버들을 절벽으로 밀어버린 것처럼.

그때의 경험이 되살아난다.
트라우마가 프로듀서를 옥죈다.

프로듀서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우선은 출근해야 하니까. 이불에 처박혀 있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불에 처박혀 있는 거나 책상에서 턱을 괴는 거나 마찬가지라면 후자를 고르겠다. 적어도 후자는 바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프로듀서는 출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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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체육은 자유 시간. 많은 무리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축구를 하고 있고, 그보다 적은 무리는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소수는……. 소수에 속한 안즈는 적당히 그늘진 곳을 찾아 축 늘어졌다.

안즈는 벤치에 드러누워 운동장을 보았다. 분주히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분출하는 학생들. 안즈는 그와 대비되게 에너지를 축적한다. 안즈는 허공에 대고 게임 컨트롤러를 쥐는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였다.

안즈가 점찍은 학생이 상대방한테서 공을 빼앗아 그대로 골대를 향해 달렸다. 수비수 몇 명이 막아선다. 안즈는 재빨리 방향키를 틀었다. 학생이 수비수 사이를 요리조리 재빠르게 빠져나간다.

기회가 왔다! 안즈는 슛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학생은 옆에 있던 다른 학생에게 패스했고 공을 받은 학생은 공을 차기도 전에 다른 학생에게 공을 빼앗겼다.

“아아, 비타 가져올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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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대결 구도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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