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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치마스(R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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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3, 2016 22:34에 작성됨.

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간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면 점심시간 즈음에 도착할 수 있겠지
 
이치노세는 따라오지 않았다. 방금 전의 걸로 만족했으니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겠다는 걸까
 
'저 녀석에게 휘둘리는 것도 지친다고, 정말이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을 보고 흠칫 놀라버렸다. 체격이 크고 험상궂게 생긴 얼굴. 그에 비해 멀끔한 정장. 어찌되었든 저녁 7시 30분, 가로등 아래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음? 당신은 누구십니까...?"
 
"에...그러니까...지나가던 고교생입니다"
 
아니, 무슨 소개를 하고 있는거람. 지나가던 가면라이더인가? 잠시간의 침묵. 엘리베이터가 닫히려고 하기에 일단 바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1층으로 내려가십니까?"
 
"네...그쪽도 마찬가지인가요?"
 
"일단...함께 내려가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타인. 이후에 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지나가다 어깨가 스친 정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그보다, 방금 전 그 15층에는 LiPPS 여러분 밖에 없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이 346 프로덕션에 당신 같은 남자고교생은 존재하지 않고 말입니다"
 
"......"
 
"──당신, 누구입니까?"
 
무거운 분위기. 좁고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의 공간. 묵직한 목소리. 긴장감으로 몸이 떨린다
 
띵─하고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 내리면서, 스쳐지나가듯, 그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치노세에게 끌려온 불쌍한 남고생. 그 정도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만"
 
"...또 그 사람입니까"
 
남자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올려 자기 목덜미를 매만진다. 저 사람도 이치노세 때문에 많이 피곤한가 보네. 그보다, 이걸로 확신했다. 이 회사 내에 더 오래 머물러 있어봐야 좋을 것은 없다
 
그 후, 뒤도 안 돌아보고 자연스럽게 걸어서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
 
"에엑?! 죠가사키 미카와 만났다고?! 그거 진짜야, 힛키?!"
 
점심시간. 봉사부 부실에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추궁당해서 결국 그곳에서 있던 일들을 전부 말해야 했다
 
"죠가사키 미카...그게 누구니?"
 
"유키농은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미카, 원래 잡지의 독자모델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구?! 갸루 컨셉이라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야. 그도 그럴게, 화려하고 멋있잖아? 저기, 힛키! 미카짱의 본래 모습, 어땠어? 우리가 흔히 아는 모습과 같아?"
 
사람들은 아이돌을 볼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TV 속에서 보이는 저 모습이 과연 진짜일까─하고. 자기가 일방적으로 애정을 보내고 믿고 있는 대상인만큼, 당연히 그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를 때, 팬은 안티로 돌아서버리고, 악플이라는 이름의 비수를 그 목에 겨눈다
 
유이가하마...어떨까. 적어도, 이 녀석만큼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의외로 순진한 면도 있는 것 같던데? 그냥...그 나이대의 고교생 같다. 만난 시간이 그리 긴 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에에...그래? 시키냥에게 물어보면 대답해주려나..."
 
유이가하마 본인이 말하고도 역시 믿기지 않는지 회의적인 표정을 짓는다
 
"하야미 카나데, 인가"
 
유키노시타는 하야미의 이름을 곱씹는다. 겉모습 때문에 오해받아 친구를 잃어버린 소녀.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기라도 한 것일까. 불쾌한지 인상을 찡그린다
 
"사람이 살아가는 건 다 비슷한 모양이로구나. 특히 나처럼 주목을 받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뭐, 결국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이니까 말이지"
 
그건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서 멋대로 착각하고,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배신당해버려서, 또 멋대로 갈라져버릴 뻔한 적이 있으니까
 
이치노세 또한 마찬가지다. 그 바보를 다루는 방법은 알았지만, 그 바보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진 못 했다. 굳이 알아야 하나 싶지만, 알고 싶지 않아도 자꾸 눈에 밟힌다
 
'그런 의미로 따진다면...참 아이돌스럽네'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없어도 사람의 주목을 받아버리는 이. 그것이 바로 아이돌. 이치노세는 정말로 아이돌이었다
 
 
*
 
"다녀왔다"
 
"어서와, 오빠"
 
집으로 돌아오자, 코마치는 마중 나와서 인사하는 일 없이 소파에 드러누워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오빠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걸까? 그런 거라면 정말로 드러누워 빽빽거리며 울 자신이 있었다. 추한 몰골이라, 경멸받을 것 같지만
 
문득, 코마치가 들고 있는 잡지의 표지모델에 시선이 향한다. 핫핑크 머리의 갸루 소녀. 바로 오늘 만났던 이들 중 한 사람인 죠가사키 미카였다
 
표지에서 보이는 그녀는 정말로 강렬하고 호쾌해 보이는 이미지였다. 적어도 내가 직접 눈으로 본 소녀와는 많이 달랐다. 사진만으로도 보이고 느껴지는 분위기라든가, 눈매라든가, 표정이라든가 그런 것들 전부 다
 
'저게, 프로로서의 모습이라는 걸까'
 
코마치에게 죠가사키와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야기 하기도 피곤하고, 왠지 모르게 귀찮았기 때문이다. 방으로 올라가,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침대 위로 쓰러진다
 
"후우우......"
 
프로로서의 모습과 그렇지 않을 때의 모습의 차이. 진짜 모습은 역시 후자 쪽인걸까. 아니면, 양쪽 모두 죠가사키 미카인걸까. 왜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지만, 어쩐지 그게 계속 마음 속에 남는다
 
이치노세는 어떨까.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그 모양 그 꼴이지만, 그 두꺼운 마음의 벽 속에 숨어있을 진심은 어떨까. 지루하고 평범한 세상에 환멸을 느껴, 정신나간 여자처럼 미쳐 날뛰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진짜 내가 생각해도, 최근 들어서 오지랖이 늘어난 것 같은데..."
 
봉사부 활동의 영향인 걸까.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안 하던 짓 하면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동안의 생활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그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게 되어버린다
 
그 시절의 외톨이로 돌아가기에는 안면을 트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앞으로,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여전히 넘어서야 할 장벽이 많다. 가장 큰 장벽은 나 자신의 거부감이지만
 
어쩌면 죠가사키에 대해서도, 이치노세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건 지금의 내 위치와 입장 때문일지도 모른다
 
봉사부에 들어오기 이전과 이후. 그 사이에 끼어있는 나. '진짜 나'는 둘 중 어느 쪽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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