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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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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4, 2012 16:57에 작성됨.

아침 7시 30분. 나와 치하야는 기차역 앞에 서있었다. 치하야가 같이 있는 이유는 어차피 목적지도 같고 가는 시간도 같으니까. 폐를 끼칠 수 없다며 혼자 가겠다는 녀석을 반강제로 태워서 기차역으로 출발했던 거다. 차 안에서 뭔가 대화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치하야는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듯 역으로 가는 내내 이어폰을 귀에 꼽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 23년 생애의 단 한순간도 아이돌들과 함께 바다에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거 참.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지만, 나 정도면 행운아 부류에 속하는 건가.

“다들 어디서 기다리는 거야?”

“글쎄요… 아. 저기.”

치하야가 가리킨 곳에 역시나 다들 모여 있었다. 내가 여-하고 소리치자, 그녀들도 우리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치하야쨩-!”

“우옷! 선수오빠. 뭐야 그 차림은?”

“선글라스에.”

“알로하셔츠.”

“아저씨 같아.”

“아저씨라니! 내게 아저씨라고 말하는 녀석은 지구상에 딱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버럭 소리치자, 히비키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다가와서는, 

“저번에 본 소설의 등장인물이 떠오른다구. 그 차림.”

“그래? 누군데?”

“한 번 ‘기운이 넘치는구나.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라고 해봐.”

“기운이 넘치는구나.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자. 됐냐? 이게 뭔 소리야?”

영문을 모르고 서있는 나를 내버려두고, 히비키는 혼자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불쾌한데. 

“아. 오셨군요. 야구선수 씨. 치하야도.”

미우라 씨와 함께 리츠코가 오는 것이 보였다. 다른 녀석들의 증언에 의하면 미우라 씨는 엄청난 길치라는데(내가 미우라 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는 길을 잃었었지. 그것도 자기 집 근처에서.),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또 길을 잃고 있던 미우라 씨를 리츠코가 데려온 모양이다. 

“이거 진짜 내가 가도 되는지 모르겠네.”

“이미 오셨으면서 그런 말은 설득력이 없다구요.”

“…그건 그렇지만.”

“저희 쪽도 남자가 한 명 정도 있는 편이 더 좋지요. 여자들만 갔다간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건 마코토가 있으니 해결될 거라고 보는데.”

“들으면 화낼걸요. 그리고 뭔가 듬직하기도 하고, 무거운 짐도…”

내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리츠코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내 픽 웃음을 흘렸다.

“농담이에요.”
 
“농담 같지 않아. 무엇보다 명색이 아이돌인데 쟤네들이 무거운 물건을 드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다. 결국 내가 짐꾼이 되어야한다는 점에서 농담이 아니라고.”

라고 말하는 동안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무거울 것 같은 아이스박스 두 개가 놓여있는 게 보였다.

“저건 대체 누가 들고 온 거야?”

“다 같이 고생 좀 했죠.”

“이제 저건 내 것이 되겠군. 기차 시간은?”

내 말에 리츠코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더니 5분이라고 대답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데, 기차 안에 들어가 봐야 실감이 나려나.

“실감요?” 

“사실은 말이지. 바다에 가는 거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 처음이야. 10년이 넘었지.”

“그런가요? 그 동안 뭘 하셨길래…”

“당연한 거 아냐? 야구했지.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야구부 합숙하면 바닷가에서 타이어 끌고 뛰어다니는 거 생각하지? 그거 다 뻥이야. 뻥. 중고등학교 합숙 내내 바다는커녕 소금물도 못 봤다. 등산한답시고 산에 간 적은 종종 있었지만.”

“환상을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리시네요.”

“현실은 냉혹해. 알고 있잖아.”

“제, 제가 어째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뭐. 리츠코 넌 이미 세상의 쓴맛 단맛 다 봤을 것 같으니까.”

“너무하시네요! 이래보여도 아직 미성년이거든요.”

“놀리는 거 아냐. 그만큼 성숙미가 있다는 거지.”

“…지금 막 생각하신 거죠. 그거.”

“뜨끔.”

“뜨끔이라고 입으로 직접 말하실 것까진 없잖아요!”
리츠코와 말장난을 하는 동안, 우리를 바다로 보내줄 기차가 도착했다. 나는 등에 내 배낭을 맨 채로 아까 봤던 두 개의 아이스박스를 양 어깨에 맨 채로 기차에 탔다. 
다들 적당한 자리를 잡고, 내 자리는 리츠코와 미우라 씨를 마주보는 자리였다. 내심 내 옆에도 누가 앉길 바랐지만, 이오리가 혼자 앉아버리는 바람에 좌석을 혼자 쓰게 되었다. 

“바다라… 좋구만. 초등학교 2학년 그 때의 바다와는 어떻게 다를까.”

“바다야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낭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구나. 너는.”

“나, 낭만이라니…”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아미랑 마미한테 ‘만나지 못한 꿈을 쫒는 사람.’보고 ‘그런 걸 백수라고 하는 거야.’라고 했다며?”

“네. 그런데요.”

“그러니까 낭만이 없다는 거야. 낭만. 얼마나 멋진 단어냐. 낭만. 로망. 남자의 꿈. 그것은 바로 가…”

“가?”

“가…수는 역시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

“어째서 이야기가 그리로 가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의 꿈이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내 시선은 미우라 씨의 가슴 쪽을 향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또 토호쿠 대지진급 말실수를 할 뻔하다가 간신히 얼버무린 거다. 리츠코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고 미우라 씨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노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치하야. 노래 잘한다며?”

“네. 노래 실력 하나만큼은 저희 프로 소속 아이돌 중에 최상위권이죠. 아. 아즈사 씨도 노래는 정말 잘하세요.”

“어머. 저는 그냥…”

얼굴을 살짝 붉히고 손사래를 치는 미우라 씨는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나올 만큼 귀여웠다. 새삼 생각하는 거지만, 같이 간다고 하길 잘했어.

“아. 그러고 보니. 리츠코나 미우라 씨. 주변에 빈 집 없으려나.”

“빈 집?”

“입주자 받는 곳.”

“그건 왜요? 이사라도 하시나요?”

“아니.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누나가 우리 동네로 온다길래.”

차마 우리 집으로 온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원래 지난주에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뭔가 또 준비를 한다나? 그래서 한 달 뒤로 미뤄졌단다. 어쨌든 확실한 건 마땅한 곳을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묵겠다는 거다. 다른 건 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서 그거 하나만은 완강해서 날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야구선수 씨에게 그런 분이 있었군요.”

“응. 뭔가 지금까지 알고 지내왔는데도 알 수 없는 누나야. 요즘은 또 너희들이랑 일이 많아져서 통화로 아이돌 얘길 할라치면 말이 없어지더라고. 분명히 뭔가 있긴 한데…”

“그 누나 되시는 분도 아이돌을 꿈꾼다던가?”

누나가 아이돌이라…
생각해봤다. 10초만에 답이 나왔다.

“설마.”

물론 내가 봐도 누나가 예쁘다는 건 인정한다. 목소리도 좋고. 하지만 아이돌은 조금… 인터뷰 같은 거라도 했다간 질문 두 개도 하기 전에 대화가 끊길 거다.
아니. 생각해보면, 바로 여기 치하야와 타카네라는 산 증인이 있는데, 말수가 적어도 아이돌.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다, 다음에 한 번 물어봐야겠어. 어쨌든, 주변에 없는 거야?”

“네. 제가 아는 곳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미우라 씨도요?”

“네. 유감스럽게도…”

괜찮아. 아직 한 달이니까. 충분히 찾을 수 있겠지. 어떻게든 내 집에 쳐들어오는 건 막아야 한다. 

“후훗. 야구선수 씨는 그 누나라는 분을 굉장히 생각하시나 보네요.”

미우라 씨의 웃음에 레벨 F의 그것이 살짝 떨리는 것이 내 눈에 포착됐다. 크, 크흠. 어제까진 의식하지 않아서 가까이 앉아도 몰랐는데, 미키 덕분에 의식하게 된 지금 이렇게 가까이 앉게 되니 그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게 되었다. 반팔 티를 입고도 저런데 이따 비키니라도 입는다면…

“야구선수 씨?”

“예? 아. 아아. 네. 누나는 고마운 사람이니까요. 허허허.”

참고로 말하자면 누나 역시 80이상이다. 내가 가장 먼저 발굴… 아니. 알고 지낸 보물인 셈이다. 어쨌든, 당분간 가슴 생각은 하지 말자. 이러다간 언젠가 한 번 박살이 날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다라니 기대되네.”

“저도요. 모두 함께 여행이라니. 즐겁네요.”

방긋방긋 웃는 미우라 씨는 그야말로 치유의 여신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느슨해지는 걸 참느라 고생 좀 했다. 조금 마음을 다스릴 겸, 한숨을 쉬며 좌석에 몸을 파묻자 이번엔 또 피곤이 몸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흐아암.”

“피곤하세요?”

“당연하지. 어제 경기도 있었다고.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차까지 몰았으니.”

“어머. 저런.”

“그럼 도착할 때까지 아직 시간도 있는데 한 숨 자는 게 어때요?”

“그럴까.”



“꺄아아아악---!!!”

헉.

“뭐, 뭐야!”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니, 옆 라인에 앉았던 마코토와 유키호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와들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의 앞좌석에선 이오리가 ‘니히힛’하고 웃고 있었다.

“조용히!”

그녀들을 나무라는 리츠코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리츠코가 한숨을 쉬며,

“이오리가 마코토와 유키호에게 괴담을 들려준 모양이에요.”

“오호. 괴담. 괴담이라면 또 내가 일가견이…”

리츠코의 찌릿. 하는 시선에 나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인 것 같았다. 음. 하긴. 이런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떠들면 곤란하지. 
창밖을 보니 슬슬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내가 오래 자긴 했나보다. 다들 들떠서 창문을 열고 바다를 구경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다들 바다가 그리웠나보다. 에어컨도 안 나와서 찜통 같은 사무소에 비하면 역시 바다가 열 배 정도 낫겠지. 물론 나도 더워빠진 구장에서 연습하는 것 보단 바다에 오는 편이 훨씬 낫다.

도착해서 바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민소매 티에 트렁크 수영복으로 대충 갖춰 입고 나와 기다렸더니, 드디어 수영복을 입은 아이돌들이 하나 둘 튀어나와 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야. 다들 대단하구나. 역시 아이돌이라고 할까.”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연두색의 비키니를 입은 미키가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며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그쪽 안 봤거든.”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저, 정말로.”

미키가 선수를 치지 않았더라면 봤겠지. 애써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니, 미키가 살짝 감탄사를 터뜨리며,

“아저씨. 의외로 몸이 괜찮은 거야.”

“…이래보여도 2년 전까지 현역 운동선수였거든.”

“하지만, 야구선수들 중엔 뚱뚱한 사람도 많은 걸.”

“몇몇 투수들이나 작정하고 파워만 집중하는 타자들이 그렇지. 나는 호타준족이란 말이다. 5툴 플레이어라고, 5툴.”

“5툴?”

“그래. 야수가 갖춰야 할 5가지. 타격의 정확도, 파워, 수비능력, 송구, 주루센스. 이 다섯 가지를 전부 갖춘 야수지.”

“헤에…”

“아니지. 나 정도면 솔직히 5툴이 아니라 6툴이야. 외모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알았어. 그냥 5툴이라고 할 테니까 그런 표정은 그만 둬.”

농담을 못하겠구만. 무서워라. 

“미키는 이제 물에 들어갈래. 아저씨는?”

“난 일단 짐정리부터 하고.”

“빨리 와!”

“될 수 있으면.”

리츠코와 함께 파라솔을 펴고 자리를 깔아 그 위에 짐을 정리했다. 이미 다들 뛰쳐나간 후, 남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치하야와 미우라 씨뿐이었다. 미우라 씨는 선크림을 바르고 있었는데, ‘등은 제가!’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우후훗. 다들 신났네요. 보는 저까지 기분이 좋아져요.”

미우라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저, 저게… 저게…”

F구나. F. 정말 살아있길 잘했어.

“저게?”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정말 멋진 가…두리 양식! 저기 어딘가에 가두리 양식을 하는 양식장이 있을 것 같아!”

“어머.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미우라 씨는 순진하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해수욕장의 어디에 양식장이 있단 말인가. 야요이도 웃을 정도의 농담…아니. 야요이는 정말 믿을지도 모른다. 

“두 분이 무슨 이야길 하시나요?”

리츠코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아.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

“에?”

“어머? 야구선수 씨는 분명 저기에 가두리…”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난 바다가 정말 좋아-----!!!!!!!”

고함을 질렀다. 미우라 씨의 말이 리츠코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리츠코라면 분명 내 가두리 양식 발언에 의구심을 가질 것 같았으므로.

“…어린애도 아니고. 뭐에요.”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래.”

“그래도 그렇죠.”

“음. 흠. 사람은 다들 동심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야구선수 씨에겐 안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요? 후훗.”

미우라 씨의 말에 나는 일부러 숨을 몰아쉬며 미우라 씨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미우라 씨. 미우라 씨가 동심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는 언제였죠?”

“에에?”

“전. 바로 지금입니다.” 

아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미우라 씨는 물론이고 리츠코까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쉽군. 다음에 다른 녀석에게 써먹어봐야지.

“선수오빠!”

내 회심의 일격이 통하지 않는 것에 약간 당황해있는데, 아미와 마미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뭐야?”

“여기야, 여기!”

“빨리 와봐!”

못이기는 척 녀석들에게 끌려갔더니, 사람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얕은 구덩이가 파져있었다. 모래찜질이라도 시켜줄 모양인데, 녀석들치곤 기특하잖아.

“여기 누워주세요, 손님.”

어째 둘의 표정이 꼭 뭔가를 꾸미고 있는 표정인데. 뭘 하려는 걸까.
나를 구덩이에 눕힌 둘은 엄청난 속도로 모래를 내 위에 덮기 시작했다. 이제 적당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나를 무덤 옆에 머리만 내놓은 꼴로 만들었다.

“어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내 말은 거기서 끊겼다. 두 녀석이 마치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 위로 뭔가 괴상망측한 물체를 들이댔기 때문에.

“뭐야. 뭐야그거. 야. 뭐냐고!”

“응~후~후.”

“해삼 마사지 한 번 받아봐. 선수오빠.”

“해, 해, 해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이것들아그거치워당장진짜농담아니라고!”

하지만 녀석들은 내 말 따위 들으려하지 않았다. 해삼은 점점 가까워져가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나는 얼굴을 이리저리 흔들며 조금이라도 피해보려 애를 썼다.

“아아. 도망치면 안 돼. 오빠.”

아미가 내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는 바람에 이제 얼굴조차 돌리기 힘들어졌다. 이젠 거의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극한까지 몰릴 때 자신도 모르는 괴력이 발휘된다.

“크아아아아! 이것들이!!!”

있는 힘을 다해 두 팔을 밖으로 빼내자, 잔혹한 웃음을 짓던 두 악동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아미는 훗날 이 때를 회상하며, ‘선수오빠 그때 터미네이터 같았어.’라고 말했다.). 나는 곧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진 팔로 내 몸에 쌓은 모래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타자의 힘을 간과했다!

“아, 아, 아미?”

“이, 일단 도망가자!”

“거기 서!!! 니들은 거기 서있어도 죽고 도망가도 죽고 잡혀도 죽고 하여튼 죽어!”

모래무덤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모래를 터는 것도 있고 두 녀석을 체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아미와 마미는 나이에 비해 늘씬한 체형답게 잘도 뛰어갔지만, 그래도 도루만 23개를 기록한 나에 비하면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였다.
나는 거의 50미터 정도를 달린 끝에 마미보다 약간 뒤에 쳐져있던 아미의 팔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잡았다, 요놈!”

“아앗--!!”

“안 돼, 아미잇-!”

아미의 팔을 잡은 것과 동시에 그녀를 멈춰 세운 후, 다른 쪽 팔로 그녀의 양 다리를 둘러 공주님안기 식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아미는 뺨을 약간 붉히고 내게서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지만, 그 정도로 내 팔이 풀릴 리 없었다.

“서, 선수오빠앙. 나 언젠가 왕자님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안겨보는 게 소원이었엉.”

“그러냐.”

“으응. 그 사람이 선수오빠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랬구나. 아미.”

“응. 오빠.”

나는 수줍은 웃음을 짓는 아미에게 빙긋 웃어주며,

“브로큰 드림!!!!”

그대로 아미를 바다에 내던져버렸다.

“우, 우아아아아아아아…”

아미는 비명인지 고함인지 환호성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소리를 내지르며 공중을 날아…

첨벙!

보는 사람마저 시원해질 정도로 통쾌하게 입수했다. 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의미로.

아미가 물 밖으로 불쑥 나와 기침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옆에서 넋을 놓고 보고 있던 마미가 말했다.

“마, 마, 마미는 아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정말이야!”

“그랬어?”

“응!”

내 반응에 뭔가 희망을 보았는지, 마미는 표정을 밝게 하며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럼 마미는 잘못이 없구나.”

“맞아! 마미는 잘못 없…”

“그런 건 우리에겐 있을 수가 없어.”

마미 역시 아미와 똑같이 내게 팔목을 잡혔다. 그리고 공주님 안기 식으로 안겼다.

“안 돼!! 선수오빠!! 자비를!!”

“무자비함!!!”

마미는 아미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소리 지르는 게 똑같은 걸 보면, 역시 쌍둥이는 쌍둥이인가보다.
허우적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멀리 던져봤자 물이 아미와 마미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위치다.) 마미를 보며 웃고 있는데, 누가 내 등을 찔렀다.

“뭐야.”

“야구선수. 그거 재미있어 보이는데 나도 던져달라구.”

히비키였다. 나 참. 이걸 또 재미있다고 해달라는 녀석은 처음 보네. 조금 고민했다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히비키는 확실히 아미, 마미와는 달라서 공주님안기로 안자, 피부의 탄력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왔다. 조금 엄하게 표현하면 탱글탱글이라고 할까.

“윽…”

“왜 그래?”

“무거워서.”

“그럴 리가!”

히비키에겐 실례되는 말이지만, 이렇게라도 둘러대야 했다.

“자, 그럼 던진다?”

“응! 얼마든지 오라구!”

최대한 멀리 던지기 위해 그녀를 안은 팔을 뒤로 뺐다가 있는 힘을 다해 휘둘렀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보았다. 
히비키의 입가에 아까 내게 해삼마사지를 하려던 아미, 마미 자매의 그것과 비슷한 미소가 걸려있음을. 그리고 그 미소의 의미는 1초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밝혀졌다.
내가 그녀를 던졌음에도 그녀의 팔은 내 목을 감은 채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내 몸 역시 앞으로 고꾸라졌고, 결국은 프로레슬링의 불독과 같은 효과를 내고 말았다. 쉽게 말하면, 머리부터 물에 처박혔다는 거다.

“우, 우와그르르르르르르…”

코와 입으로 염분을 과다 섭취한 다음, 거의 물귀신 꼬락서니가 돼서 비틀비틀 일어났더니 앞에서 히비키가 씨익 웃고 있었다.

“어때. 시원해?”

잠시 후, 주변에 있던 피서객들은 건장한 남자 한 명이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강미 넘치는 소녀를 미친 듯이 쫒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물론, 누가 봐도 범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만한 광경이었다.

그 날 체포되지 않았던 건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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