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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치마스(R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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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0, 2016 22:30에 작성됨.

"그보다, 너 학교에 다니기는 하는 거냐?"
 
"응? 적당히 출석 체크만 하고 오지. 어차피 고등학교 같은 건 미국에서 월반으로 넘겼거든"
 
"......"
 
이 아이, 그 정도로 엘리트였던거야?!
 
하교 후. 집으로 가는 길. 옆에서 이치노세가 함께 걷고 있다. 그보다 이 녀석 아이돌이라고 하면서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애와 함께 걸어도 되는 건가? 그러자 이치노세는 내 속마음 따윈 가볍게 꿰뚫어 본다는 듯이 대답한다
 
"아직 정식으로 데뷔는 하지 않았으니까 문제 없다구♪ 연습생 신분이라 회사 관계자 아니면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아직까지는 괜찮다─그 말이야"
 
"그런가...아니, 잠깐. 그보다 너, 어디까지 따라올 생각이야?"
 
워낙에 신출귀몰한 녀석이다 보니, 집으로 갈 때도 어느 길로 가는지 나는 모른다. 추적을 막으려는 건지, 집으로 가는 길을 쫓아가려 하면 일단 스프레이부터 들고 봐서 멈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응? 그야 힛키냥의 집으로 가는데, 왜 그래?"
 
"......"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리 집에 오는 거냐니깐. 이치노세의 눈매가 가늘어지고, 샐쭉하게 웃는다
 
"어라라~ 힛키냥은 내가 집에 찾아가는게 싫은걸까나? 나, 이래보여도 아이돌을 할 정도니까 남자들에게 인기도 많다고 자부하는데? 혹시 힛키냥...이상한 상상했어? 응? 페로몬 냄새가 날 것 같아?"
 
물론 나도 남자고교생으로서 미인과 함께 있으면 그런 망상 한두 번 정도는 하긴 한다. 하지만, 착각하는 것과 상상하는 건 전혀 다른 것이다
 
"아얏?!"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소리 하고 다니지 마. 인기없는 남자는 여자애가 그런 말을 하며 조금이라도 다가오면 바로 착각해서 넘어가 버린다고"
 
이치노세의 이마에 딱밤을 놓고 걸어간다. 아우우우~ 하고 소리를 내면서 이치노세는 계속 따라온다
 
"힛키냥은 뭐라고 할까, 정말로 로망이 없네. 여자애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조금은 응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호의를 가장한 놀림에는 익숙해. 주로 어떤 대학생 누나 때문에 말이지"
 
유키노시타 하루노 씨. 그 사람과 만나면 항상 휘둘린다. 물론 반항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무의미한 반항이고, 후환이 무섭기도 하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키노시타의 언니다. 평범한 방식으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 사람이 먼저 질려서 떠나기를 바랄 뿐
 
"...그 사람, 미인?"
 
"유키노시타의 언니이니까. 당연히 미인이지"
 
덤으로 가슴도 크다. 유이가하마 수준으로...이치노세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흐응~ 있지있지, 힛키냥.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힛키냥의 주변에 미인들이 많은 이유 말이야. 혹시 힛키냥에게는 미인을 끌어당기는 특유의 페로몬이나 향취가 있는 걸까? 정말로 그렇다면 흥미로운 실험재료네"
 
"어디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냐. 해부하려고 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다"
 
"해부가 아니야. 내 전문분야는 화학이라니까? 그 중에서도 향기를 비롯해 후각과 관계된 쪽을 전문으로 연구한다고 할까. 후각과 냄새에 관한 학문은 여전히 파헤칠게 많이 남아있거든. 정말로 질리지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아, 그 말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크로스 로드라는 만화였던가? 남주인공 이름이 퍼거스인지 뭐시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거 알아, 힛키냥? 타인의 냄새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고 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독일의 아헨 대학병원 연구진은 남성들에게 권투를 하거나 일반 운동기구를 써서 땀을 흘리게 했어. 그 다음엔 이들이 흘린 땀을 모아 다른 사람들에게 냄새를 맡도록 했지. 그 중에서도 권투를 한 사람의 땀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불안감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해. 냄새를 통해서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메탄티올, 황화수소, 이황화메틸 등 온갖 전문용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문과생인 나에게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네가 사람들의 냄새를 맡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인가? 상대방이 어떤 감정인지 알기 위해서?"
 
"뭐, 일종의 실험 같은 거라고 할까. 주로 당혹감이나 불쾌함이 많지만"
 
"아니, 그건 당연한 거잖아"
 
아무리 다가오는 사람이 미소녀라고 해도 갑자기 자신의 냄새를 맡기 시작하면 당황하거나 불쾌해한다. 현실은 상업지랑 다르니까. 자기 냄새를 맡고 '역겨워'라는 말이 그 소녀의 입에서 나온다면 좌절하거나, 분노하겠지. 실제로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당사자들은 소녀가 속으로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음식도 아니고 사람의 냄새를 맡는다고 하면 보통 땀냄새를 비롯해 안 좋은 냄새가 많이 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러면...힛키냥은 내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나? 응? 나, 궁금한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눈초리. 귀엽다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동작. 역시, 이 녀석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이쪽도 당하고만 있기는 뭐해서 한 번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키니나리마스. 존나게 키니나리마스』라고 말해봐"
 
"어? 신경 쓰여요! 존나게 신경 쓰여요!"
 
진짜로 할 줄은 몰랐다. 이거, 대답 안 해주면 또 스프레이 뿌리겠지? 파블로프의 개는 아니지만 이제 학습했다. 주로 몸을 사용해서. 자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싫어하지는 않아"
 
시선을 조금 돌리며 말했다.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녀를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나는 그녀에 대해 모르는게 많고, 그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다. 그 이전에 이미 이치노세는 사정 상 고백은 받아들여줄 수 없다고 먼저 선언해두기도 했고, 그녀는 이제 아이돌이다
 
괜히 남자와 사귀다가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피 보는 건 그녀만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들도 포함되니까. 물론 그녀와 내가 사귈 가능성은 0%지만
 
그러자, 고양이 같은 입꼬리를 지으며 스쳐지나가듯 앞서가더니,
 
"패기 없네.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젊은이의 패기는, 어디?"
 
"......"
 
그러니까, 이 녀석, 눈치가 너무 빨라서 무섭다고. 독심술인가? 기어스? 성우네타?
 
"젊은이의 패기라 쓰고, 객기라 읽는 그거 말이지?"
 
애써 반문하자, 그녀는 활짝 웃었다. 석양을 배경 겸 후광으로 삼아, 정말로 밝게 웃으며
 
"힛키냥은 정말로 겁쟁이구나? 한심하네"
 
그 말을 끝으로 또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말한 사람은 어디의 누구일까. 지금, 그 말을 처음으로 꺼낸 사람 얼굴에 침을 뱉고 싶어지는 심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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