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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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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8, 2016 19:00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천막에 유이, 프로듀서, 안즈만 남았다. 잠시 정적. 이번에도 프로듀서가 정적을 깼다.
“유이, 무슨 짓을 한 거야.”
프로듀서가 유이에게 물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강압적이진 않았다.

“안즈 쨩을 응원하러 온 건데?”
“시치미 떼지 마.”
안즈가 끼어들었다. 프로듀서와 안즈 모두 미심쩍은 눈초리로 유이를 바라보았다. 유이는 여전히 마이페이스로, 어깨를 으쓱였다.

“여럿이서 노래하면 즐겁잖아? 그래서인데? 유이가 와서 오늘 게릴라 콘서트는 대성황! 대성공! 자자 박수~”
“유이, 지금 안즈는 신인이야. 한창 인지도를 쌓아갈 시점이야. 네가 아이돌 활동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모를 리가 없어. 신인 괴롭히는 게 그렇게 재밌어? 너 왜 그래?”
“프로듀서 쨩, 릴렉스~ 릴렉스~ 이렇게 열이 오른 프로듀서 쨩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유이는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We're the friends!의 리듬이 테이블의 진동을 통해 연주되었다.
프로듀서는 테이블을 꾹 눌러 테이블의 진동을 막았다.

“물어볼 게 있어. 우리 사무소에...”
“어, 유이야.”
프로듀서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

프로듀서가 물어보려 한 건 헤드헌팅과 트레이드 건. 프로듀서는 굳이 더 확인하지 않았다. 유이가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당당하게 프로듀서를 마주하고 있기에.

“대체 무슨 속셈이야?”
“네 네! 이번엔 유이가 질문하겠습니다! 프로듀서 쨩이야말로 무슨 속셈이야?”
“뭐?”
“모두 다 그만두려고 한 거 아니었어? 다 체념하지 않았어?”
프로듀서는 유이에게서 시선을 급히 돌렸다. 유이는 여전히 당당하게 프로듀서를 마주했지만 프로듀서는 유이에게서 시선을 틀었다.

“나 때문이야.”
움츠러든 프로듀서 대신 안즈가 나섰다.

“프로듀서가 마음을 고쳐먹은 건 안즈 때문이야! 안즈의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어서, 안즈랑 같이 일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어.”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작은 신장 탓에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안즈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안즈 쨩 때문에? 그렇구나!”
유이는 손뼉을 치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신장 차이 때문에 안즈가 움찔거리며 뒤로 조금 물러났다. 유이는 다짜고짜 안즈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유이는 그렇게 안즈의 손을 잡고 크게 흔들었다. 강제 악수.
“안즈 쨩 덕분에 프로듀서 쨩이 복귀했구나! 정말 고마워! 이제 프로듀서 쨩이 다시 유이의 프로듀서로 돌아올 수 있어!”
“안즈의 프로듀서야!”
안즈는 유이의 손을 뿌리쳤다.

“생각보다 힘이 있구나.”
유이는 얼얼한 손목을 어루만지며 킥킥거렸다. 안즈를 내려다보면서.
“아무튼, 이런 짓은 이제 그만해.”
마침 마음을 다잡은 프로듀서가 유이에게 말했다.

“글쎄? 어떻게 할까나? 캔디 주면 생각해볼게.”
유이가 능청스럽게 말한다. 프로듀서는 주머니에서 골든캔디를 꺼냈다. 오늘 안즈에게 주려고 준비한 사탕이다.
“이거면 되지?”
“그거야! 그거! 그게 먹고 싶었어!”
프로듀서는 유이에게 사탕을 건네주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걸 안즈가 중간에 가로챘다.

“어? 그 캔디 유이 건데?”
“안즈 거야!”
“유이 거!”
“안즈 거!”
유이가 다시 뺏으려 했지만 안즈는 유이보다 먼저 사탕을 껍질째 입에 넣었다. 안즈 입안에서 포장지가 부스럭거렸다. 안즈는 혀를 움직여 입안에서 사탕 포장지를 풀었고, 포장지를 손바닥에 뱉었다.

-꿈 저편의 새로운 세상

침 범벅이 된 거창한 글귀.

“사탕은……. 안즈의 자존심이야!”
“뭐, 괜찮아. 기회는 아직 많으니까.”
유이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럼 바이바이~”
유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손만 흔들고선 천막을 떠났다.

“이거 큰일이구만…….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프로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골칫거리가 생겼다. 유이가 이런 식으로 계속 안즈를 방해하면…….
“프로듀서.”
“응?”
“휴지 좀…….”
“어……. 이거 써.”
프로듀서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안즈에게 건넸다. 안즈는 손과 포장지를 대충 닦았다.

“저기, 미안해. 프로듀서. 욱해서 그만…….”
“괜찮아. 사탕을 준다고 해서 유이가 내 말을 들어줄 거란 보장은 없었고. 여긴 무대도 아니니까. 아깐 잘 참았어.”
안즈는 자리에 앉아 테이블에 머리를 올렸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산 넘어 산이구나. 유이가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할 줄이야. 지금 당장 어쩔 도리는 없겠군. 우선 유이 소속사 상황이 지금 어떤지 알아봐야겠어.”
“저기, 프로듀서. 있잖아.”
“왜?”
안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사탕을 혀로 한 번 굴리고 말을 이었다.

“안즈 대신 유이를 프로듀스 할 수 있으면……. 할 거야?”
프로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안즈처럼 테이블에 머리를 기댔다. 안즈와 눈을 똑바로 맞추고, 안즈의 이마를 검지로 툭 건드린 다음에야 대답했다.
“난 너 때문에 프로듀서를 그만두지 않았어. 아까 너도 말했잖아? 내가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그건 지금도 변함없어. 다른 누구도 아닌 너니까. 난 지금 여기에 있어.”
“응…….”
안즈는 프로듀서가 건드린 이마를 문질렀다.

6월 12일

점심시간. 안즈는 오늘따라 빵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점심을 사내 카페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안즈처럼 빵이 당기는 사람이 많았는지 카페는 평소보다 더 붐볐다. 안즈가 운 좋게 한 자리 차지하자 한동안 줄이 줄어들지 않았을 정도로.

안즈가 주문한 메뉴는 베이컨 에그 샌드위치와 바나나 스무디. 안즈는 테이블에 쟁반을 올려놓곤 음식엔 손도 대지 않은 채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트위터를 켜서 타임라인을 조금 살핀 다음에, 인터넷을 켜서 웹서핑. 애니메이션 성우 관련 블로그를 돌아본 다음, 뉴스 사이트를 켰다. 그대로 연예 페이지로 이동.
안즈는 스크롤을 내려 어제 올라온 기사를 살폈다.

-오오츠키 유이의 깜짝 게릴라 콘서트. 후배를 독려하려 찾아온 선배의 감동적인 사연. 6월 27일 방영 예정.

오오츠키 유이의 깜짝 게릴라 콘서트라…….

내용을 보니 안즈에 관한 언급은 달랑 한 줄. 주역이 완전히 바뀌어서 서술되었다. 당연하다. 유이와 안즈의 네임벨류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유이는 인지도 있는 인기 아이돌. 안즈는 이제 막 인지도가 있으려 하는 신인 아이돌. 둘이 같은 무대에 서면 이렇게 되는 게 뻔하다.

안즈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알고는 있다.
다만, 안즈가 원해서 유이가 무대에 선 게 아니기에.
그래서 그때 그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기 싫었다.

무대에 오르기 귀찮고 부담스러웠지만, 그 무대는 프로듀서가 준비한 안즈의 무대였다.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안즈를 위한, 안즈의 무대였다.

안즈는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리고 빨대를 물어 바나나 스무디를 마셨다.

“손님, 죄송하지만 다른 분과 합석하셔도 될까요?”
점원이 와서 물었다.
“아, 예.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안즈는 쟁반을 자기 쪽으로 조금 밀어 테이블 공간을 넓혔다.
안즈가 비운 자리에 햄버그 샌드위치와 멜론 소다를 담은 쟁반이 올라왔다.

“어라, 안즈 쨩이잖아. 냥.”
“어, 안녕.”
안즈의 맞은편에 미쿠가 앉았다. 미쿠도 오늘 점심을 해결하러 온 모양이다.
인사를 끝으로 둘은 샌드위치를 다 먹어치울 때까지 말을 섞지 않았다. 남은 음료를 홀짝일 때가 되어서야 둘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쿠가 먼저 말문을 틀었다.

“게릴라 콘서트 이야기 들었어. 냐.”
“콘서트는 성공했어.”
“실패했잖아. 냥. 유이 쨩 때문에.”
안즈는 빨대에 숨을 불었다. 스무디 표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전에도 유이 쨩이랑 방송했었지? 냥. 혹시 그전에도 무슨 일 있었어?”
“글쎄. 아무 일도 없었어.”
안즈는 스무디 표면만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러나 미쿠가 추궁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으므로 안즈는 미쿠의 시선과 마주했다.

“그때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문제는 그다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어? 냐.”
“오오츠키 유이가 자꾸 프로듀서를 스카우트하려고 해.”
“뭐?”
미쿠는 놀랐는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미쿠는 손톱을 물고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어쩌자는 거야…….”
“이야기는 이제 됐지?”
“잠깐만, 안즈 쨩! 냐. P쨩은 뭐라 그래? 냥.”
“오오츠키 유이의 사무소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부터 알아본다고 그랬어.”
“그래……. 알았어. 냐.”
미쿠는 컵 뚜껑을 열어 멜론 소다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곤 탄산이 섞인 거친 숨을 뱉었다.

“P쨩한테 같이 갈래. 오늘은 이야기할 정도의 시간은 있으니까.”
미쿠는 쟁반을 재빨리 정리했다.
“저기, 미쿠 쨩. 이 일은…….”
“이 일은 미쿠도 자세히 알아야 해. 냐. 왜냐면……. 유이 쨩하고 관련이 있으니까. 예전 유닛 문제하고 직접 얽힌 문제니까. 냐. 그러니까 참견할 거야.”
미쿠는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안즈는 미쿠의 결의를 보고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지 미쿠를 따라 쟁반을 정리했다.

둘은 카페를 나와 제3 사무실로 향했다.

프로듀서는 안즈와 미쿠보다 더 빨리 식사를 마쳤는지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조작하고 있었다. 미쿠가 들어오자 놀란 눈치였지만 프로듀서는 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으로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P쨩. 유이 쨩에 대해서 들었어. 냐. p쨩을 빼가려고 그런다면서? 어떻게 된 거야? 냐.”
“지금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는 중이었어.”
프로듀서는 조금 전까지 조작했던 핸드폰 화면을 미쿠와 안즈에게 보여줬다.

라인 화면 창. 프로듀서는 업계인과 대화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유이와 유이가 소속된 프로덕션에 관한 내용이었다. 유이는 소속 사무소의 톱 아이돌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분이지만 그다음부터 미쿠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유이가 소속사의 주식을 매수하여 대주주가 된 것. 유이가 보유한 지분은 소속사에서 무시하기 힘든 규모. 보유 주식과 소속사 내 최고의 인기로 인해 프로덕션에서 유이를 통제할 만한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

“유이 혼자 만든 작품은 아닌 것 같아. 유이랑 같은 사무소 아이돌 중에 아이카와 치나츠라는 아이가 있는데 발상은 그 아이 머리에서 나온 것 같아. 유이랑 친하다고 그러더군.”
프로듀서는 사진을 띄웠다. 아이카와 치나츠의 프로필 사진. 지적인 외모가 돋보이는 아이돌이었는데, 미쿠는 처음 보는 아이돌이었다.

“아이돌로서 지명도는 그렇게 크진 않지만. 외모처럼 머리는 기막히게 돌아가는 것 같아.”
“이 아이가 유이 쨩한테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은 걸까? 냐…….”
“모르겠어. 유이가 왜 이러는지.”
프로듀서와 미쿠는 심각한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안즈가 끼어들기 힘들다. 안즈는 터덜터덜 걸어가 전용 소파에 몸을 던졌다.
제법 요란한 소리가 났는데도 프로듀서와 미쿠의 신경은 핸드폰에만 쏠렸다. 안즈는 소파에 올려있던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과거라…….

프로듀서와 미쿠는 지금 극복하지 못한 과거와 마주했다. 안즈가 경험하지 못한 그들만의 과거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가 안즈에게 손아귀를 뻗었다. 안즈가 만든 상황이 아닌데도 안즈를 괴롭힌다. 부당하다. 안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한테 뺨을 맞은 것 같다.

“혼란스럽다……. 대체 유이한테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 녀석은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 때 용돈으로 사는 거라서 비싼 건 못 준다는 소릴 하던 녀석이라고……. 그런 녀석이 사무소 주식을 매입? 대체 뭐야 이게…….”
“우선……. 유이 쨩한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야겠어. 냥.”
안즈가 모르는 이야기만 흘러나온다. 안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노크 세 번은 노크한 사람이 이 장소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뜻.

프로듀서는 숨을 죽였다.

“데자뷔가 느껴지네…….”
안즈는 고개를 들어 프로듀서를 바라봤다. 안즈의 눈에는 프로듀서가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미시로 상무가 들어왔던 때를 떠올린 걸까? 프로듀서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프로듀서가 허가를 내리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예이 예이~ 안녕!”
유이가 요란하게도 폴짝거리면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동시에 프로듀서, 미쿠, 안즈는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들어왔다. 안즈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여기 창고 아니었어? 언제 이렇게 바뀌었담? 초~ 깜놀~!”
유이는 능청스럽게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프로듀서가 간신히 당황을 거두고 유이에게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어라, 옛 직장에 오면 안 돼? 아하하, 우린 옛 동료잖아. 프로듀서 쨩, 차갑다. 진짜~”
“그래, 옛 동료가 옛 직장에 온 상황이지. 어떻게 들어온 거야?”
“너무 진지하다~ 그래도 유이는 친절하니까 알려줄게. 업무로 왔어.”
“뭐?”
유이는 춤추듯이 걷다가 소파에 앉았다. 안즈는 유이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지금 유이의 매니저랑 미시로 상무가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유이는 먼저 다 먹었으니까 여기로 곧바로 왔고!”
유이는 안즈가 놓고 간 토끼 인형을 손가락으로 푹푹 찔렀다. 토끼인형의 얼굴이 점점 찡그려졌다. 안즈는 유이에게서 인형을 뺏을지 말지 갈등했지만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미쿠가 말을 꺼내고 나서야 유이는 인형에서 손을 떼었다.

“유이 쨩, 물어볼 게 있어. 냐.”
“아, 미쿠 쨩 오랜만이야! 우리 서로 연락 안 한 지 꽤 됐지?”
“물어볼 게 있어.”
미쿠는 사뭇 진지한 어투로 반복했다.
유이는 여전히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며 미쿠와 시선을 맞췄다.

“뭔데?”
“대체 무슨 속셈이야?”
“프로듀서 쨩을 데려갈 속셈.”
“왜 이제 와서 그러는 거야? 냐. 우리는 이미 끝났어. 우리 차례는 끝났어.”
“미쿠 쨩은 포기했어?”
미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래. 포기했어. 끝났으니까. 냐.”
씁쓸함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말이지, 유이는 말이지. 포기하기 싫은걸. 가능성이 있으면 포기하기 싫어.”
유이는 소파에서 일어나 부츠 굽을 또각거리면서 미쿠에게 다가갔다.
“아이카와 치나츠라는 아이가 부추긴 거야?”
“치낫땅? 유이가 사무소에서 편하게 지내는 방법을 치낫땅이 알려주긴 했지만 부추긴 건 아니야.”
한 걸음, 또 한 걸음. 유이와 미쿠가 가까워진다.

“이번에도 방법을 알려줬어. 이번에는 유이가 부탁한 거지만 말이야. 유이가 왜 프로듀서 쨩을 데려가려 하느냐고? 그야 물론…….”
유이는 미쿠 옆을 그대로 지나쳤다.
“프로듀서 쨩이 아이돌 업계를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유이는 프로듀서의 정면에 마주 섰다.

“프로듀서 쨩이 아이돌 업계를 그만뒀으면 유이도 포기하려고 했어. 근데 그만두지 않았지. 정말 놀랐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다 끝났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었어.”
유이는 안즈를 흘끔 곁눈질했다.
“안즈 쨩한텐 정말 고마움을 느껴. 안즈 쨩 덕분에 프로듀서 쨩이 다시 유이에게 돌아올 테니까.”
유이는 안즈가 보낸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그걸 곧 무시했다.

“유이 넌……. 나한테 복수하려고 이러는 거야?”
조금 전까지 입을 굳게 다물던 프로듀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희를 버린 날 원망해서 이렇게…….”
이번엔 유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이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큭…….”
유이는 신음을 흘리곤 배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몸 전체를 크게 떨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유이가 요란하게 숨을 내뱉었다. 유이는 크게 웃었다. 배를 잡고 깔깔거리면서 정신없이 웃었다. 정말 웃긴 농담을 들은 것처럼.

“아하하하하하하! 넘 웃긴다! 프로듀서 쨩? 노린 거야? 잘 먹혔어!”
유이는 간신히 진정하고 숨을 골랐다.
“만약 농담이 아니면 실망했을 거야. 유이가 프로듀서 쨩을 원망할 리가 없잖아?”
유이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웃을 때 맺혔으리라.

“그날 우리가 패배한 건 유이 책임. 유이가 부족했기 때문이야. 그날 이겼으면 우리 유닛은 해산하지 않았을 거고, 유이 곁엔 프로듀서 쨩이 계속 붙어있었을 거야. 다른 누구를 원망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 만약 유이가 사무소를 옮기지 않았으면 치낫땅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별개로 치고.”
유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굳혔다. 유이가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유이는 사무소를 옮기고 나서 더욱 노력했어. 힘이 필요했으니까. 그전까지 하던 대로 노력하는 거로는 부족하단 걸 알았으니까. 우선 사무소의 톱을 노리기로 했어. 정말 힘들었어. 치낫땅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포기했을지도 몰라. 유이는 이제 사무소의 톱이 됐어. 다른 누가 불만을 제기하기 힘들 정도의 위치에 올라섰어. 이제 그때 같은 일은 전제부터 일어나지 않아. 이젠 다시는 그때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아도 돼.”
유이는 다시 원래 페이스를 찾았다.

“그러니까 프로듀서 쨩, 유이 곁으로 돌아와.”
프로듀서는 다소 머뭇거렸지만 이내 결심했는지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말을 꺼냈다.

“그렇게는 못 해.”
프로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호하고 딱딱하게. 더는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이는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게나 안즈 쨩을 매니지먼트 하고 싶어?”
“난 안즈 때문에 그만두지 않기로 정했어. 안즈가 날 필요로 하는 이상, 난 안즈 옆에 있을 거야.”
유이는 뒷짐을 지고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정확히 안즈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정지.

“유이는 조금 전까지 안즈 쨩까지 한꺼번에 스카우트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마음이 바뀌었어. 프로듀서 쨩만 돌려받을 거야.”
유이는 안즈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도발이다. 안즈는 불쾌감을 느껴 이를 세게 물었다.

“유이! 그만해! 난 널 프로듀스 할 수 없어! 우린 이미 끝…….”
“일방적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끊은 건 프로듀서 쨩이잖아?”
유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프로듀서에게 대꾸했다.

싱글벙글한 표정은 여전하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희미하게 날이 서 있었다. 레슨으로 음감을 단련한 미쿠와 안즈, 그리고 업계에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음감이 올라간 프로듀서까지 모두 다 그 희미한 음색을 감지했다.

“카린 쨩하고 유이가 사무소를 옮긴 후에, 프로듀서 쨩은 번호를 바꿨잖아? 업무용이든 사생활용이든. 메일도 그렇고. 미쿠 쨩은 어때? 같은 사무소에 있으면서 프로듀서 쨩하고 연락하고 지내?”
유이는 동의를 구하듯이 미쿠에게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미쿠는 대답을 회피했다. 묵언.

“그야 그렇겠지. 그렇죠~ 네에~ 하지만 미쿠 쨩도 미쿠 쨩이지. 설마 미쿠 쨩마저 우리하고 연락을 끊을 줄은 몰랐어. 유이는 지금도 섭섭해.”
“그, 그건…….”
미쿠는 이번에는 뭐라 반론하려 했지만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했다.
“유이는 지금도 카린 쨩하고는 연락해. 카린 쨩도 옮긴 사무소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 카린 쨩도 아마 우리하고 같은 마음이었겠지. 자아, 그럼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유이는 잠깐 미쿠에게 향했던 시선을 다시 안즈에게 고정했다.

“프로듀서 쨩은 안즈 쨩을 보고 프로듀서 일을 계속하기로 정했어. 그건 대단한 거야. 유이나 카린 쨩, 그리고 미쿠 쨩을 보고도 다시 일어설 결심을 하지 못했던 프로듀서 쨩이 안즈 쨩을 보고 결심했다는 거니까. 즉, 프로듀서 쨩은 안즈 쨩에게서 C.M.Y.K. 멤버 이상의 가능성을 본 거야. 그런데 이게……. 묘하게…….”
유이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분한 거 있지?”
유이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기분 탓일까? 안즈는 유이와 시선을 맞대서 그런지 눈이 시렸다.

“지금의 유이는 예전보다 춤도 더 잘 추고 노래도 더 잘 불러. 모델 일도 자신 있게 하고 있고 방송 MC도 막힘없이 진행하고 있어. 그날 무대에 섰던 게 지금의 유이였으면 그렇게 눈이 퉁퉁 불 정도로 울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런데도 프로듀서 쨩은 지금의 유이보다 저 아이를 매니지먼트 하고 싶은 거잖아. 아무리 유이라도 자존심에 금이 가.”
유이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갑자기 뒤를 돌아 프로듀서에게 모자를 씌우고 모자의 챙을 푹 내렸다.

“아하하! 프로듀서 쨩 웃긴다!”
“유이……!”
프로듀서는 모자의 챙을 올렸다. 프로듀서가 챙을 올렸을 때는 이미 유이가 안즈한테 가볍게 뛰어간 후였다. 유이는 안즈 앞에 딱 멈춰 서서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안즈에게 건넸다. 금빛 자수가 고급스럽게 놓인 봉투였다.

안즈는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봉투의 내용은 티켓이었다. 정확히는 초대장.

-오다이바 플래티넘 아이돌 페스티벌 초대장

“타이틀 그대로, 오다이바 페스의 초대장이야.”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유이는 신인 시절에 그 페스에 정말 나가고 싶었어. 오다이바 페스에 출전하는 게 곧 인기와 실력의 지표였거든. 아이돌 얼티밋이나 아이돌 아카데미와는 다른 의미로, 아이돌의 꿈이지. 거기 나가는 게 바로 메이저 아이돌로 인정받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지금의 안즈 쨩은 문턱조차 밟기 힘든 페스야.”
“그래서 이걸 왜?”
“거기서 프로듀서 쨩을 걸고 결투하자.”
“뭐?”
안즈가 당황하는 걸 즐기는지 유이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능력이나 그걸 발휘하는 사람은 말이야……. 그걸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에게 가는 게 맞겠지? 유이는 프로듀서 쨩이 정말 필요해. 안즈 쨩은 어때?”
“아, 안즈한테도 필요해! 안즈가 하고 싶을 걸 찾기 위해선……. 안즈에게 의욕을 불어넣을 프로듀서가 필요해!”
“그런 것치곤 묘하게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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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3월 25일 저녁 5시~8시 사이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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