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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을 신지 않는 여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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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9, 2016 18:03에 작성됨.

 

          “전달된 상품이 없다면 없다고 보아도 되겠죠.”

          그녀의 무책임한 대답에 놀라는 스텝.

          “예?”

          다만 대답은 제대로 된 문장으로 구성되어있지 않았다.

          “우선 다나카 케이스케는 오지 않습니다. 뭔가 일이 있나 보더군요.”

          뒤에 프로듀서도 연예부 부장도 붙이지 않은 것은 그녀 나름의 분노의 뜻.

          “저도 다른 일정이 있다가 아이… 다카모리 아이코양의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일단 다나카 프로듀서의 대리라는 역할로 오게 되었습니다만 저로써도 오전까지 라이브에 대해서는 어떠한 아무런 연락을 받은 바 없습니다. 사무소나 다나카 프로듀서 에게 서도요.”

          “예?”

          “여기서 잠시 확인하겠습니다만, ‘AN 라이브’라는 명칭의 금일 행사의 주체는 573 프로덕션이 맞습니까?”

          “예.”

          똑같은 대답이지만 그 의미는 같지 않다.

          “그리고 현장 책임자는… 죄송합니다, 성함이…”

          “하야미 고이치 입니다. 이거,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깊게 고개를 숙인 남성에 잠시 당황하면서 곧 명함을 교환한다.

          “하야미씨는 이번 행사의 총책임자가 다나카 케이스케 프로듀서로 알고 계시는 거죠?”

          “573 프로덕션을 통해서 폐사로 행사 준비와 진행 전반에 대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부분을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자신이 ‘다나카의 대리’로써 이곳에 있는 것이 ‘총책임자의 대리’로써 이곳에 있는 것이 되는 것인가에 대하여.

          “그럼 총책임자는?”

          “저도 잘… 지금 물어보겠습니다.”

          “아뇨 아뇨, 잠시 기다려주세요.”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하야미를 제지한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입니다만, 현장에서 일정을 기획한다고 말한 저희 쪽 사람이 다나카 케이스케 프로듀서, 맞죠?”

          “예, 그렇게 기억합니다.”

          타카모리의 전화를 받고 급히 다나카에게 전화를 하여 AN 라이브 현장 상황에 대해 전해 들었던 오전. 그녀는 다나카 프로듀서로부터 “내 대리로 가서 현장을 통제해. 나는 일 때문에 교토에 있으니까.” 라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연예부 부장인 그가 573프로가 관여하는 대부분의 행사에 총책임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그의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면 현장의 통제를 넘겨받았다고 보아도 괜찮다고 자신을 안심시킨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약해지면 안 된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생리적 혐오감은 자신이 ‘어떤 남자’의 대리로써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 이다.

          만약 행사가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아마 오후 쯤에 취소통보를 할 생각이었겠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어째서 그가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그것도 573 프로덕션 소속의 인물은 데뷔 반년차의 신인 타카모리 아이코 단 한 사람뿐이며 다른 출연진들이 모두 타 소속사등에서 모은 인물들인지, 어째서 본인은 나타나지 않았는지, 어째서 가와시마의 전화를 받고 한숨을 쉬었는지. 그녀는 알지 못하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인간이라면.’ 이라며 납득하는 자신이 있었다.

          어쩌면 이 행사 자체가 ‘실패’라는 과정을 필수로 하여 어떠한 ‘결과’를 내려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그녀의 이성을 불안케 한다. 그리고 그 결과의 책임은 어쩌면 자신이 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이성을 자극하던 ‘불안’은 자신의 책무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런 책임을 지는 것이 불안하지 않다. 만약 가와시마 미즈키라는 여자가 이번 일로 책임을 지게 된다면 그것은 분노가 될 것 이다. 이미 분노는 지금도 충분하다만 현장을 통제하기 위해 그것을 이성의 아래로 우선순위를 내려두고 있다.

          ‘익숙해.’

          그렇게 자신을 타이른다.

          ‘뒷처리하는 거 오래 했잖아.’

          뒤를 돌아본다.

          ‘더 떨어질 곳도 없고.’

          오사카에서의 기억.

          ‘더 도망칠 곳도 없고.’

          도쿄에서의 기억.

          ‘그럴 힘도 없고.’

          대학에서의 기억.

          ‘그럴 의지도 없고.’

          집에서의 기억.

          ‘돌아와 버렸어.’

          마음 깊은 곳의 기억.

          “그럼 오늘의 일정부터 조율해도 괜찮을까요?”

          “예, 부탁 드리겠습니다.”

          가와시마와 하야미는 자리를 옮긴다. 불꺼진 스테이지 위에 남겨진 타카모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곧 무대의 뒤로 내려간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트레이닝 복 상태의 가나하 히비키와 시죠 타카네는 수분 섭취를 자제하고 있다. 날이 더워도 물을 계속 마시다간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될 태고 일정에 차질이 생기리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으며 실제로도 두 사람의 판단은 적절했다. 다만 태평양의 습한 더위를 에어컨도 없는 야외 간이 건물에서 단 몇 대의 선풍기로 이겨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싸움인 것 도 사실이다.

          갑작스레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모습을 보인 타카모리의 얼굴색은 밝았다. 비록 표정은 아까와 비슷하였으나 생기있는 그녀의 얼굴은 일에 진전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어서오세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난 두 사람의 태도에 타카모리는 당황한다. 생각해보면 지금 자신은 두 사람의 ‘선배’로써의 역할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동갑내기와 연상의 아가씨에게 너무나도 좋지 못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에는 그녀를 괴롭혔다.

          “아, 괜찮아요.”

          무엇이 괜찮다는 것 인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아마 자리에 앉아도 된다는 뜻일까.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그녀는 선배대접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 이었다. 다만 첫 만남부터 이상한 조언을 해버린 터라 다시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가 된 것도 사실, 지금에야 말로 선배로써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기!”

          “네!”

          “네!”

          세 사람 모두 서로의 큰 목소리에 당황한다. 두 사람은 살짝 물러서지만 물러서지 않는 한 사람, 타카모리 아이코가 입을 연다.

          “…해주셔도 되요…”

          “……”

          “……네?”

          시죠의 대답.

          “그, 그러니까… 너무… 선배취급이랄까… 안 해주셔도 되요. 저도 데뷔 반 년 차밖에 안됐는걸요? 그리고 나이도 다 비슷하죠?”

          시죠라면 조금 연상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죠를 의식해서 경어를 계속하자고 하면 어디까지고 이 불편한 관계가 계속 될 거란 그런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하기에 결단을 내린 것 이다.

          “그러니까… 서로 편하게… 이름으로…”

          “이름으로…”

          “…”

          “이름으로 얘기해요! 히비키도 타카네도!”

          의외로 한번 말해보니 쉽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응어리가 풀리며, 자신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가나하라면 서로 경어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마저 들지만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호응이 없다면 안 된다.

          “아이코씨…”

          시죠의 대답은 그녀답다면 그녀답다.

          “아이코!”

          “히비키.”

          다행히 두 사람이 응해주었다. 그 안도감에 지어진 미소는 역시 딱딱하게 굳어있던 두 사람을 녹이며 더 이상 서로를 향한 얼음장을 한 겹 벗겨낸다.

          “히비키는 나하고 동갑…? 아, 난 고1인데...”

          “아, 나랑 같아! 그럼 편하게 말해도 될 거 같아.”

          태양과 같은 미소가 쏟아진다. 타카모리의 미소와는 다른 의미의 따듯함이 있지만, 찰나의 순간을, 시죠 타카네는 못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을 조금은 원망한다. 그녀는.

          “타카네… 씨는…”

          시죠 에게 까지는 평범하게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녀의 오라에 역시 압도당한 것 일까? 그 인자한 분위기는 분명 자신을 품어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존칭과 경어가 필요하리라는 그러한 인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느 샌가 자리잡고 있다.

          “저는 올해로 열여덟이 됨니다.”

          그녀의 표정은 미소짓지 않았지만 그 옅은 미소를 두 사람은 볼 수 있었다.

          “아, 그럼 역시 편하게 말을 놓기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자신은 사무소의 다른 연습생이나 동기들과도, 동갑내기 친구들과도 경어를 쓸 때가 많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뒤늦게 상기한다. 이것 또한 두 사람에게 선배취급이 부담스러워 행한 다소 무리한 결과라는 생각에 살짝 쓴웃음을 지어보기도 한다.

          “경어를 쓰더라도 친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맞아. 타카네는 나한테 경어를 쓰지만 나는 쓰지 않아.”

          “전 이러한 언행이 오랜 시간 계속 되었기에. 쉽사리 변치 못하니 아이코씨가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아, 네 그럼요! 타카네씨.”

          “생각해보면 사무소에서도 타카네한테 경어를 쓰는 애들이… 아니, 오히려 나처럼 편하게 얘기하는 애들도 있네… 라고 말하는 편이 빠를려나…”

          가나하는 그녀 나름대로 타카모리를 배려하고자 한다. 비록 그 의도가 두 사람의 선배에 대한 취급이 부담스러워 시작되었다는 것 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지만, 친구로써의 관계를 시작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에 가나하역시 돕고 싶었다. 단지 그녀만을 위한 것 이 아닌 자신과 시죠역시. 그렇기에 시죠 타카네에 게만 이어지는 경어에 대해 그녀가 크게 부담 가지지 않게 해주려는 그녀 나름의 배려. 돌이켜보면 어쩌다 자신이 이 연상의 처녀에게 평어를 쓰게 된 것인지를 잠시 고찰해본다. 가나하를 포함하여 몇 사람이 말을 놓고 있는대……

          “그러고 보면, 스텝 분들이 함께 오시지 않은 것은 어떠한 연유가 있는 건가요?”

          “아, 미즈키씨가 오셨어요.”

         

 

          “저희를 지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레 고개를 숙이고 웃기 시작한 가와시마의 반응에 프로듀서는 자신이 한 말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 졌는지를 깨 닳고 당황했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님니다! 이,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고민하다가…….”

          “아, 아뇨 괜…”

          다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다. 어느정도 진정된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에게 인사한다.

          “아… 저야말로 감사하죠. 갑작스런 일정에 응해주셔서.”

          “아하, 아직 인지도도 없는 제니스를 미드나잇 드림 방송에 이어서 바로 이렇게 행사까지… 이거 어떻게 감사 드려야 할지…”

          하며 그는 뒤통수를 만지며 미소 짓고 있다. 오랜 경험에서 가와시마는 그의 미소가 진심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계속 서있기도 그렇네요. 이쪽으로……”

          능숙하게 그와의 대화를 이어가며 가와시마는 제니스의 프로듀서를 테이블이 있는 임시 천막 하나로 이끌어간다. 그녀는 이 곳에서 스케쥴을 조율 할 생각이다.

          “히비키쨩과 타카네쨩의 곡은 각각 한곡씩 인가요?”

          “아, 예. 음원은 여기 있습니다.”

          하며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는 그를 잠시 말린다.

          “그 외에 부를 수 있는 곡은 없을까요? 되도록 두 사람 이서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으로요.”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이라…”

          그의 머리 속에선 몇 가지 곡이 떠오른다. 다만 라이브에서 갑작스레 해볼만한 수준으로 연습된 곡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젓는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그렇게 대답을 하는 그녀가 과연 자신의 사과를 들은 것 인가 하는 걱정이 다소 생긴다.

          “두 사람 토크 괜찮을까요?”

          “토크요?”

          “길게는 아니에요. 노래를 시작하기 전, 후해서 짧게 이삼분 정도면 괜찮은데.”

          “죄송합니다, 제니스가 따로 토크를 연습한 적이 없어서 하게 된다면 두 사람의 재량에 맡길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녀의 표정은 긍정일까? 프로듀서는 유심히 관찰하려 하였음에도 여성의 얼굴을 계속 쳐다볼 수는 없다.

          “미즈키누님!”

          갑작스레 들린 남성의 목소리에 갑자기 얼굴이 밝아진다. 가와시마는 목소리의 주인을 보기도 전에 알아차리며 그를 맞이한다.

          “쇼이치! 오랜만이야.”

          “누님도 여기 나오십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시선은 프로듀서를 향하고 있었다. 그를 소개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를 그녀도 인식하며 적당히 대답한다. 가와시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성은 머리를 정리하고 팔뚝 까지 걷어올린 셔츠가 인상적이다.

          “아니, 총리대리 랄까?”

          살짝의 농담으로 자신의 위치를 전하고 그녀는 곧 두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만든다.

          “이쪽은 아마 아실거라 생각하지만, 발라드 가수 시라하라 쇼우이치, 제 동생이에요.”

          “생물학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아무 관계도 없는 동생 시라하라 쇼우이치 입니다. 잘 부탁드림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며 프로듀서도 그를 받는다. 이런 연예계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서도 소위 말하는 ‘예능감’ 이라는 것이 보이는 것에 대해 프로듀서는 내심 감탄하며, 가슴 안 주머니에서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꺼내 그에게 건낸다.

          “이쪽은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 듀오 제니스의 프로듀서 이신…”

          “실례합니다, 가와시마씨.”

          “예?”

          갑작스런 스텝의 부름에 그녀는 급히 문쪽으로 향한다. ‘어? 이거 이렇게도 읽지 참…… 이런 한자를 이름에도 쓰네……’

          “잘 부탁 드림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 드림니다.”

          “미안, 실례했습니다. 인사는 끝난 모양이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가와시마는 이쯤에서 맞선자리를 진행시키기를 바랬다. 다만 선 자리와는 다르게 그녀가 여기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차이가 있지만.

          “미즈키 누님, 일정은 아직 안 나온 겁니까?”

          “지금 작업 중이야.”

          “그걸 왜 누님이 하십니까?”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자기 자리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그걸 누님이 맡으시나요?”

          “뭐, 어쩌다 보니. 경력도 있고.”

          “그렇지만… 죄송합니다만 누님, 그러면 일정 좀 알 수 있을까요? 전 이후에도 좀 일이 있어서…”

          단순히 일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된 계약을 통해 이번 행사에 참가한 것 이 아닌 구두계약으로, 그것도 그 계약 주체가 자신과 ‘다나카 케이스케’라는 점에서 그는 지금 책임자가 가와시마 미즈키가 아니었다면 바로 상을 뒤엎고 나갔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녀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해도 시라하라로써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미안, 아직 확실치는 않아. 그래도 한 시나 두 시쯤에 리허설 시작하고, 다섯 시? 즈음 해서는 시작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잠깐, 그런것도 정해지지 않습니까?”

          “응, 미안.”

          “아뇨 누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되죠.”

          당황한 미소를 보이는 그녀에게 더욱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음에도 시라하라는 결국 말 할 수 밖에는 없다. 언제까지고 끌 수는 없으니까.

          “미즈키 누님, 정말 죄송합니다. 시간이 그렇게 되면 이번 라이브는 참가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니?”

          “뭐라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와서 ‘10분쯤 한 곡이나 두 곡 부르고 가면 된다’는 말에 오긴 했습니다만……”

          물론 그 말은 강제이다. 발라드 가수 시라하라 쇼우이치와 다나카 케이스케 프로듀서 라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 강제성.

          “정오쯤에 오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좀처럼 시작 될 것 같아 보이지가 않는다 했더니… 다나카 프로듀서는……”

          급히 뒤에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이대로는 자신의 푸념이 마치 이 여성에게 향하는 것처럼 들릴 것 만 같았기에.

          “쇼쨩에게 면목없네.”

          “아님니다 누님! 제가 할 말입니다.”

          “그럼 오늘 섭외… 불려온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왔다고 봐도 되는거지?”

          “그럴 겁니다. 앗키나 사야도…… 아마 처음 보는 여자애 둘 빼면 다들……”

          처음 보는 여자애 둘은 아마도 제니스, 앗키와 사야는 가와시마와도 친분이 있는 가수들로 술친구에 가까운 이들이다. 두 사람까지 오지 않은 것은 역시 지금 현장 책임자가 가와시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 일 것이라고 그녀는 나름대로 납득한다. 얼굴은 보고 싶지만 이런 상황에서 얘기가 길어질까 싶어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

          “잠깐, 오늘 출연진들 다 본적 있는 사람들이야?”

          “물론이죠. 그냥 본적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노베도 있었고… 니시데라씨도 오셨더라고요.”

          “니시데라씨? 혼자서?”

          “다른 맴버분들은 오지 않으셔서 물었더니 다나카 프로듀서에게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가면 된다는 얘기를 들으셨다고……”

          똑같아. 시라하라를 포함하여 자신이 접촉한 제니스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출연진들은 다나카 케이스케 프로듀서를 통해서 섭외된 인물들이다. 전부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애당초 AN 라이브라는 첩보작전과도 같은 이 비밀스런 행사는 다나카 프로듀서의 독단으로 기획된 것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순히 라이브가 아닌 어딘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심마저 드는 가와시마는 웃음마저 나올 정도였다. ‘그 인간 이렇게 신용이 없구나.’

          “하야미씨.”

          옆에서 전화를 받으며 지휘에 몰두하던 하야미를 부른다.

          “오늘 행사는 티켓확인요원이 있습니까?”

          “들은바 없습니다.”

          티켓도 어떠한 수익활동도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 점을 확인한 것 만으로 충분했다. 이번 행사는 다나카 프로듀서가 재무부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권한과 사내 위치를 이용하여 강행한 것이라는 그런 확신과 함께. 비록 다나카 케이스케 프로듀서가 연예부 부장이라는 형식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한들 연예프로덕션 업체인 573 프로에서는 그의 권위는 오랜 경력 덕에 이사에 준하며 발언력은 상당하다. ‘왜 일본은 능력이나 인성보다 경력일까?’ 가와시마는 여러 차례 그런 불만을 내비친 적 이 있다.

          “그렇군요. 일단 출연진들을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네요.”

          “누님한테도 아무것도 안 알려줬나요 그 인간?”

          “난 오전까지 오늘 행사도 몰랐어.”

          “그런 누님에게 인수인계도 제대로…”

          “그나마도 아이코가 나한테 연락을 해줘서 다나카 한테 전화를 하고, 거기서 그 인간 대리로 내가 라이브를 총괄하라는 소리를 들은 거야.”

          “세상에……”

          타카모리 아이코를 아이코로, 다나카 프로듀서또는 부장을 다나카로 칭해진 것은 그녀의 분노와 배려가 섞인 것 이다.

          “쇼우쨩, 대기실까지 같이 가줘.”

          “예이.”

          뒤이어 하야미에게 동행을 부탁하고, 홀로 남겨질 프로듀서도 자신의 동행을 묻는다.

          “같이 와주시면 감사하죠.”

          “같이 가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연예계인사들, 특히 ‘다나카 케이스케 프로듀서’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연예계 인사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신인 제니스와 업계신인인 프로듀서에게 좋은 기회였다. 곧바로 제니스의 두 사람을 부르려 하였으나 그것 까지는 관두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아이돌들을 소개시키며 가뜩이나 좋지 않은 분위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명함을 돌려도 될지에 대해 고민한다. ‘오늘은 얼굴도장만 찍는 걸로 충분할까.’

 

 

4  

무대의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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