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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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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9, 2016 15:55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6월 2일

오늘 일은 버라이어티 토크쇼 출연. 아직 안즈가 나가기 힘든 메이저 방송이었지만 방송국 측에서 직접 안즈를 지목해서 나올 수 있었다.

안즈는 혼자서 아직 촬영 전인 스튜디오를 돌며 방송의 프로듀서와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둘 다 시큰둥한 태도로 안즈의 인사를 설렁설렁 받았다.

지정한 건 저쪽일 텐데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었다. 하지만 안즈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안즈는 지금 신인. 이런 거로 불만을 품을 시기가 아니다.

"아아, 지쳤다."
안즈는 터덜거리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인사를 하는 것뿐인데 지쳐버렸다. 귀찮은 일을 해서 그런가?

오늘 안즈는 혼자서 현장에 왔다. 프로듀서는 지금 일이 있어서 동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프로듀서가 짰던 스케줄엔 오늘 일이 없었다. 오늘은 비어있던 예정에 방송국 측에서 안즈를 꼭 출연시키고 싶다고 해서 나온 것. 그래서 일정이 틀어졌다.

안즈는 휴일이었지만 프로듀서는 오늘 다른 방송국과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쪽을 파기할 순 없어서 안즈 혼자 현장으로 보냈다. 안즈는 대기실 의자에 늘어지듯이 앉아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은 프로듀서가 미팅에 들어가기 전.
안즈가 전화를 건 지 얼마 안 되어 프로듀서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착했어."
-잘 도착했어?"
"시킨 대로 인사까지 마쳤는데 어째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어."
-그래? 별일이네. 야근이라도 해서 지쳤나?
"그런 것처럼은 안 보였어."
-흠, 그렇군. 오늘 난 녹화 때 그쪽으로 가긴 힘들 거야. 아마 녹화 끝나고 나서야 그쪽에 도착할 것 같아.
"오긴 오는 거지? 갈 때 또 혼자서 지하철 갈아타기 귀찮단 말이야."
-그래그래, 차 끌고 갈 테니까 기다려. 슬슬 시간이다. 끊을게. 이따 보자.
"응."
통화 종료.

프로듀서의 과거를 안 다음부터 이런 느낌으로. 사실 전과 비교해 딱히 변한 건 없다. 아마 프로듀서가 과거를 털어놓은 것 자체로 무언가 변한 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안즈가 프로듀서의 과거를 알게 된 것뿐. 그냥 그뿐이다.

안즈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어느새 바로 옆자리에서 안즈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인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아 깜짝이야?!"
"안녕!"
수수께끼의 인물이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넸다.

안즈는 놀란 가슴을 겨우 쓸어내고 상대방을 살펴봤다. 살펴보니 상대방의 정체를 알았다. 수수께끼의 인물은 아니다.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상대방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기에.

오오츠키 유이. C.M.Y.K.의 전 멤버.
프로듀서와 한때 같이 활동했던 아이돌.

유이가 안즈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오오츠키 유이예요~ 만나서 반가워! 이미 알고 있으려나? 나도 안즈에 대해 알고 있어! 전에 방송 봤는데 너 진짜 재밌더라!"
유이는 흔들던 손을 안즈에게 뻗었다.

유이도 안즈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한가? 오늘 녹화하는 토크쇼는 유이의 이름을 단 방송이다. '오오츠키 유이의 새콤달콤 이모저모.'.

여러 가지 화제에 관해 메인 MC 유이를 중심으로 게스트 출연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이다. 그러므로 유이가 게스트에 관한 정보를 이미 숙지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안즈는 유이의 손을 잡았다.

"만나고 싶었어! 그래서 방송 프로듀서랑 디렉터 씨한테 졸랐거든. 바로 다음 게스트로 부탁한다고!"
안즈의 손이 유이에게 이끌려 흔들린다. 안즈가 흔드는 게 아니고 유이가 흔든다. 안즈의 손은 유이의 손에 잡혀 멋대로 휘둘렸다.
프로그램 디렉터와 방송 프로듀서가 안즈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게 이해됐다.
그들이 요청한 게 아니었으니까.

"나도 전에 346 프로덕션에 있었어! 잘 부탁해!"
"어, 어어, 잘 부탁해……."
이미 알고 있다. 왜 다른 프로덕션에 이적했는지까지.
그래서 조금 거북하다.

"으음, 뭔가 조금 다른데……."
유이는 악수를 거둔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뭐, 방송 때는 다르겠지. 그땐 잘 부탁해!"
"응. 이쪽이야말로……."
안즈가 은연중에 불편한 티를 냈나 보다. 안즈는 거북함을 가까스로 털어냈다.

안즈는 게스트 패널 석에 앉았다. 스튜디오 좌석은 두 군데로 나뉘어 있는데, 메인 MC 유이가 자리하는 왼편 한 자리와 안즈 같은 게스트 패널이 자리하는 세 좌석 한 라인이다.

안즈는 유이와 가장 가까운 맨 왼쪽 좌석에 앉았다.

안즈는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스태프들. 스태프들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조정하고 있었다. 지금 자리에 앉은 건 안즈 혼자. 안즈 혼자 스튜디오에 앉아 있다. 스튜디오에서 보이는 전경이 쓸데없이 넓어 보인다. 안즈는 자기도 모르게 프로듀서의 모습을 찾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안즈 혼자. 하지만 이 정도 일은 혼자서 해낼 수 있다. 이런 일로 기죽을 순 없다. 왠지 모르게 데뷔 무대가 떠오른다. 하지만 데뷔 무대만큼의 압박감이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즈도 아이돌 일을 하면서 심신이 단련됐으니까. 이 정도 긴장감은 별거 아니다.

슬슬 스튜디오에 다른 게스트 아이돌들이 앉는다. 안즈 바로 옆자리에 남성 아이돌 한 명, 그리고 그 옆에 또 남성 아이돌이 앉았다.

"아마가세 토우마다."
"미타라이 쇼타야. 잘 부탁해."
"후타바 안즈. 적당히 잘 부탁해."
간단하게 통성명.

셋은 그 후 각자 스크립트를 훑어봤다. 기본은 프리 토크지만 각 코너의 기본 흐름은 제작 측에서 미리 정해놓는다. 안즈는 속독으로 빠르게 스크립트를 훑었다. 순식간에 5장 분량의 스크립트를 읽은 후 이번엔 보통 속도로 다시 읽었다. 기억 완료.

옆자리, 토우마와 쇼타는 아직 3장째 분량을 읽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안즈와는 다르게 천천히 여유 있게 읽었다.
토우마와 쇼타의 여유를 보니 안즈는 괜히 불안해졌다. 혹시 안즈 혼자 힘이 너무 들어갔나?
힘을 좀 뺄까…….

안즈는 그대로 책상에 고꾸라졌다. 안즈의 턱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어? 깜짝이야. 너 뭐하냐? 일하는 중이라고."
"안즈는 지쳤어. 니트니까."
"아, 그래. 컨셉이냐……."
"하하, 토우마 군, 뭘 그렇게 놀라?"
"시끄러워."
토우마와 쇼타는 아는 사이인지 제법 친근하게 투닥거린다. 안즈는 그들의 목소리를 의식 옆으로 잠시 치워두고 피로를 약간 회복했다. 안즈는 그렇게 제법 페이스를 되찾았다. 여유가 조금 생겼다. 여유가 생기고 나니 옆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제법 재미있게 들렸다.

"내 스크립트 내놔!"
"어라? 토우마 군, 여기에 그림 그렸어? 뭘 그린 거야? 찍어서 트위터에 올려야지!"
"야 임마 하지 마!"
안즈는 엎어진 채로 피식 웃었다. 그러다 시야 끄트머리에 유이가 잡힌 걸 보고 웃는 걸 멈췄다. 안즈의 상반신이 다시 스르륵 올라갔다. 긴장 상태로 인해 수축한 것처럼. 안즈의 몸놀림을 보고 토우마와 쇼타가 놀랐는지 둘은 투닥거리는 걸 멈췄다.

유이는 자리에 앉아 안즈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기들한테 손을 흔든 거로 착각한 토우마와 쇼타가 각자 제스처로 답했고, 안즈는 그대로 굳어 아무런 답을 보내지 못했다.

오오츠키 유이. 프로듀서와 함께 활동했던 아이돌.
프로듀서와 함께 좌절한 아이돌.

왠지 모를 거북함이 올라왔다.

동시에 스탠바이 사인이 올라오고, 별다른 트러블 없이 촬영 개시를 알리는 큐 사인이 울렸다.

"안녕~ 안녕~ 잘 지냈어? 오늘도 오오츠키 유이의 새콤달콤 이모저모 타임이 왔어! 다들 잘 부탁해!"
유이가 카메라를 향해 키스를 날린다. 카메라 세 대가 그런 유이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담는다.
이윽고 카메라 한 대가 게스트 석을 훑는다. 그다음 자연스럽게 다시 유이에게 향한다.

"오늘도 이런저런 게스트 분들께서 오셨습니다! 자아, 자기소개!"
유이가 손짓으로 게스트 라인을 가리켰다. 카메라가 게스트 석으로 집중됐다.
"후타바 안즈입니다. 적당히 잘 부탁해요."
안즈는 팔을 대충대충 적당히 흔들면서
"주피터의 아마가세 토우마다! 오늘은 한껏 빛나주겠어!"
"주피터의 미타라이 쇼타입니다. 잘 부탁해요!"
토우마와 쇼타는 각자 가벼운 제스처를 취하며 자기소개를 마쳤다.

"오늘 주피터 중 한 분 이쥬인 호쿠토 씨는 스케줄 문제로 출연 못 하셨습니다. 유감이에요!"
시작은 이런 식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자자, 이제 6월! 슬슬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초여름! 꺄아~ 세 분은 여름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나요?"
스크립트에 의하면, 게스트는 안즈부터 순서대로 가벼운 추억담을 나누기로 되어있다.

안즈는 입을 열려다, 유이와 시선이 맞아 머뭇거렸다.
"어라? 추억 없어요? 저기, 바다에서 비치발리볼을 하거나 아니면 서핑을 하면서 놀았다거나, 헌팅을 받았다거나? 유이는 이런 경험 많은데!"
유이는 밝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아양을 떨었다.
밝다, 정말 밝다. 그 사진 속의 우는 얼굴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밝다.

"그쪽은 니트라면서? 역시 어디 놀러나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리나?"
토우마가 불쑥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아, 아아 안즈는 여름이든 가을이든 집에서 뒹구는 게 더 좋아서 딱히 바다에 관한 추억은 없다고나 할까~"
안즈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혀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발음이 어눌하게 새었다.

"그래도 집에서만 있지 말고 가끔은 햇볕을 쬐는 것도 좋을 거로 생각하는데? 집에만 있으면 체력이 깎인다고."
"그, 그래도 괜히 바깥에 나갔다가 햇볕에 타는 것도 귀찮은걸~ 안즈는 게임 속의 바다에서 모험하는 게 더 좋아."
"곧이곧대로 이해하기 힘들구만. 가끔이라면 모를까 집에만 틀어박히는 건 난 사양이야."
안즈는 어눌한 말투로, 토우마는 유창한 말투로.

토크의 주도권을 어느새 토우마가 잡았다. 안즈는 토우마에게 이끌려 다녔다. 대화 내용만 보면 토우마가 안즈한테 무례하게 툭툭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안즈는 토우마 덕분에 말문을 틀 수 있었다. 토우마에게 이끌려 다닌 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것이다.

"어라? 그럼 토우마 씨는 여름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
유이의 질문이 완전히 토우마에게 향했다.
"당연히 있지! 전에는 오키나와에 가서 재미난 걸 봤는데 사람을 따르는 상어를 봤어!"
"에이 토우마 군 거짓말이지? 아무리 추억이 없다고 한들 그런 걸……."
"아니, 진짜라니까! 거기에 그 상어가 따르는 사람이 바로 765 프로덕션의……."
"토우마 군, 그거 모 생생한 일요 방송에 나온 그거지?"
"그러니까 그걸 직접 봤다니까!"
왁자지껄 하하호호 어쩌고저쩌고.
스튜디오가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찼다.

유이, 토우마, 쇼타는 서로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안즈는 가끔가다 겨우 맞장구를 치는 식으로 첫 번째 코너가 끝났다.

잠시 쉬는 시간.
유이는 스태프들과 스크립트를 체크하며 의논하고 있었고, 안즈를 포함한 게스트 라인은 가만히 앉아 그 광경을 보며 쉬고 있었다.

"긴장했냐?"
토우마가 안즈에게 물었다.
"그거랑은 조금, 다른데……. 아깐 고마웠어."
"뭐, 무리도 아니지. 보아하니 신인인 것 같은데 이런 방송에 나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테니까."
이미 말했듯이 조금 다른데……. 하지만 안즈는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해명하지 않았다.

"괜찮아?"
스태프들과 의논을 끝낸 유이가 게스트 라인으로 찾아왔다.
"으, 응."
안즈는 유이와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으음, 역시 뭔가 다른데 말이지……."
"다르다고?"
"전에 방송에서 봤던 넌 정말 재미있었거든. 긴장이라도 했니?"
조금 달라. 하지만 안즈는 해명하지 않았다.
가슴이 괜히 답답해진다.

"으음~ 그래도 남은 코너는 잘 부탁해.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알았지?"
유이는 윙크를 남기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부담을 가지게 한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부담을 덜고 싶어도 덜 수 없다.
"역시 진행 쪽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나……. 너, 똑바로 하는 게 좋을걸? 그러다 통편집 당할 거야."
토우마가 한소리 한다.
그런 사실은 이미 안즈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원래 오늘은 우리 주피터 3명 특집 방송이었어."
토우마는 안즈가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우리도 다 알고 있어. 진행 쪽에서 갑자기 말을 바꿔서 주피터 한 명을 빼고 널 넣었다는 걸 말이야."
유이의 요청이다. 유이가 안즈에게 직접 알려줘서 이미 알고 있다.

안즈에게 온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 요청. 계획에 없는 이런 방송 출연은 보통 다른 사람의 스케줄이 펑크가 난 경우거나……. 아니면 갑작스럽게 잘리거나 둘 중 하나로 인해 발생한다.

유이가 주피터 멤버 한 명을 자르고 그 자리에 안즈를 데려온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한텐 이런 방송 자리 하나 펑크가 나도 별 타격 없어. 그래도 한번 결정한 건 끝까지 해내고 싶은 게 우리 주피터의 마음가짐이라고. 호쿠토 녀석 기대하고 있었거든. 근데 나오지 못하게 됐지."
"호쿠토 군은 방송보단 메인 MC에 더 관심이 있던 것 같지만."
"쓸데없는 첨언은 됐어! 쇼타! 아무튼! 오늘 네가 있는 자리는 우리 멤버가 들어오고 싶어 했던 자리다. 그걸 명심해. 방송은 장난이 아니야.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진 하라고."
돌아가고 싶다.

유이와 토우마는 배려한답시고 말한 거겠지만……. 안즈는 오히려 압박감을 느낀다.
처음엔 단순했던 거북함이 부담으로 변질하더니 이제는 압박감으로까지 번졌다.

프로듀서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안즈의 속이 풀릴 때까지 실컷 투덜거릴 텐데…….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엔 프로듀서가 없다.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안즈의 바람과는 달리 무정히도 다음 코너의 시작을 알리는 큐 사인이 울렸다.

이번 코너는 인터넷에서 떠들썩한 유행어에 관해 이야기하는 코너. 안즈는 지난 코너의 실수를 반성 삼아 적극적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했다.

"그 대사는 원작을 봐서 알고 있어. 근데 결국 끝에 가서 주인공이……."
"잠깐잠깐, 빠삭한 건 좋은데 그 이상은 스포일러라고. 그 부분은 아직 방영 안 했으니까 말이야. 쇼타는 들어본 적 있어?"
"으음, 글쎄 이 대사는……."
실패.

"이거 그 방송에서 따온 거 아니야? 안즈도 재밌게 봤는데……."
"아아, 그 방송 말이지? 뭐 유명하지. 그건 그렇고 쇼타는 저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떨 것 같냐?"
"역시 화나겠지?"
토우마가 자기 스크립트를 안즈에게 슬쩍 밀고 직접 적은 문장을 태연하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쪽 방송국은 여기 방송 프로듀서가 엄청나게 싫어하기로 유명해. 통편집 안 당하게 조심해.

또 실패.

결국 안즈는 또 기가 죽어 이번에도 맞장구만 치는 식으로 코너가 끝났다.
안즈는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수분이 쭈욱 짜인 무말랭이가 된 기분으로. 눈에서도 수분이 메말라 눈빛이 상당히 탁해졌다.

"집에 가고 싶어……."
"토우마 군이 잘못했어. 압박감을 줬잖아."
"윽……! 내 탓이냐……."
"아니야. 안즈 탓이니까."
안즈는 엎어진 채로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머리가 쇼트할 것 같다. 지금 바로 식히고 싶다. 과열된 머리를 당분으로 식히고 싶다.
토우마는 그런 안즈를 보고 난처했는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왜 긴장하는지 원인은 알아?"
"알아. 말은 못 하지만."
"그렇다면, 아예 그 원인을 잊는 게 어때?"
"원인을?"
안즈는 엎어진 채로 고개만 돌려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바로 이 방송의 메인 MC다.

"아직 방송의 1/3 분량이야. 갈 길이 멀어."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뭐하게?"
"그냥 게임이나 이것저것……."
"어떤 게임을 하는데?"
"어……. 요즘엔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어라, 우연이네? 나도 그거 하는데. 어디까지 했는데?"
"챕터 17."
"난 이미 다 클리어하고 파티를 본격적으로 육성하고 있어. 로얄나이츠도 다 만들었지."
"안즈는 아직 조건을 클리어 못 해서 못 만들었어."
공통으로 즐기는 화제가 떠오르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런,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까 이쯤 하지. 아무튼 난 이 일이 끝나면 다시 사이버 슬루스를 잡을 거야. 일을 제대로 끝내고. 일이 끝나고 난 다음이 기대된다고. 너도 끝난 다음에 할 거를 기대해 봐. 그럼 저절로 힘이 솟을걸? 일을 즐기지 못할 때는 이렇게 하면 대체로 괜찮아져."
일 다음에 기대되는 것.

그리고 지금 안즈가 원하는 것……. 당분. 사탕!
프로듀서가 주는 사탕!
안즈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엔 아이돌 방송답지 않은 우리 방송에서 가장 아이돌 방송다운 코너! 어라? 이 대사 NG야? 미안해요! 디렉터 씨!"
유이가 카메라를 향해 혀를 빼꼼 내밀었다. 스크립트에 나온 지시는 깜찍해 보이는 자승자박. 조금 전 쉬는 시간에 유이가 스태프들이랑 의논한 부분이다. 유이는 의논대로 완벽하게 해냈다.

"이번 코너는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들의 안무를 보고 이야기하며, 따라 해보는 코너입니다."
"이거 소속사랑 다 이야기된 거야?"
토우마가 가볍게 태클 걸고,
"그런 뒷이야기는 NG!"
쇼타가 그걸 또 가볍게 태클.
영상 편집 단계에서 이 부분에 웃음소리를 삽입할 예정이다.

"요즘 인기 아이돌하면 바로 이 분! 프로젝트 페어리의 호시이 미키 씨! 그리고 오늘 주제는 바로 호시이 미키 씨의 마리오네트의 마음!"
영상 편집 단계에서 이 부분에 자료 영상이 흘러나올 예정이다. 유이가 과장되게 뻗은 손바닥을 타고.
스튜디오 밖 모니터에서 방송에 쓰일 예정인 자료화면이 재생된다. 패널 모두 그 영상을 감상했다.

프로젝트 페어리. 아이돌 얼티밋에서 유이를 패퇴하게 한 유닛. 그러나 영상을 감상하는 유이에게서 그 어떤 원망도, 분함도, 슬픔도, 네거티브한 감정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영상이 끝나자 유이는 호시이 미키를 즐겁게 소개했다.
안즈가 봤던 사진 속의 얼굴이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당차고 즐겁게.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즈는 이런 유이의 프로정신을 보고 감탄하거나, 거북함을 느꼈겠지만…….

지금의 안즈는 눈을 빛내며,
"와, 귀찮을 것 같은 안무네. 딱 봐도 힘들 것 같아. 안즈는 패스 패스~"
평소 페이스를 다시 찾았다.

지금 안즈의 안중에는 유이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유이는 들어오지만 유이와 얽힌 거북함은 안즈의 안중에 없다. 마치 필터에 가로막힌 것처럼 거북함이 안즈의 내면에 깊숙이 가라앉았다.
안즈가 마음에 낀 필터는 기대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이 안무는 나하곤 안 어울리네."
사탕!

"토우마 군, 자신 없어?"
사탕! 달콤한 사탕!

"흥, 자신 없단 소린 안 했어."
몸과 마음이 녹아버릴 정도로 다디단 사탕!

"그 기세로 안즈 몫까지 해주면 안 돼?"
"본인이 말하지 마라!"
토우마의 가벼운 태클.
스크립트에선 자유 토크라고 되어있는 부분.

안즈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공이다! 안즈의 머릿속에서 팡파레가 울렸다. 박이 터지며 반짝이는 종잇조각과 화려한 현수막, 그리고 수많은 사탕이 쏟아져 내렸다.

"당신과 떨어지면 더는 춤출 수 없어~ 부분부터 마음이 고장 날 것 같아~까지. 그럼 1번 타자는 유이가 하겠습니다! 게스트 분들은 안즈 씨부터 차례대로 할까요?"
지금의 안즈는 파죽지세다. 하지만 안즈는 거절했다.

"안즈는 제일 마지막으로."
"그럼 나부터 하고 다음에 쇼타로."
"좋아."
유이가 먼저 시범을 보인다. 유이는 손을 뻗고 스텝을 밟았다. 유이는 영상에 나온 호시이 미키의 동작과 거의 동일할 정도로 완벽하게 해냈다.

"왠지 모르게 허들이 높아졌어."
토우마 차례. 토우마는 혀를 차며 춤췄다. 하지만 혀를 찬 것과는 별개로 토우마도 완벽하게 해냈다. 토우마에 이은 쇼타도 마찬가지.
둘은 능숙하게 몸을 흔들고 완벽하게 리듬을 탔다.

이번엔 안즈 차례. 안즈는 손을 휘저으며 스텝으로 바닥을 척척 두드렸다. 배경음악은 편집 과정에 삽입할 예정이므로 스튜디오에 흐르지 않았지만 안즈의 머릿속에선 생생하고 실감 나게 흐른다.

자료화면을 봤을 때 최대한 집중해서 외웠다. 박자, 음정, 음계. 모두 안즈의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안무도 마찬가지. 자료화면의 카메라 각도상 안즈 같은 햇병아리 아이돌이 파악하기 힘든 동작도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참고자료가 있었으니까. 안즈는 유이와 토우마, 쇼타가 추는 걸 보고 안무를 완벽하게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안즈가 안무를 마쳤다. 안즈가 생각해도 최선을 다해서. 안즈 스스로 고양감마저 느낄 정도로.
작은 박수 소리 하나가 들리더니 이어 두 개가 더 합쳐졌다. 유이가 시작하여 토우마, 쇼타의 소리가 더해진 박수갈채였다.
"너 겉보기완 다르게 제법이네?"
"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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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16일 저녁 6시~8시 사이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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