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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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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8, 2016 15:36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안즈는 옥상 벤치에 앉아 프로듀서를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봉투에서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햄버그 도시락이었다. 식어도 먹을 수 있게 처리된 햄버그와 야채 볶음, 그리고 미니 주먹밥으로 구성된 도시락이다.

안즈는 미쿠가 따로 가져온 걸로 보이는 나무젓가락과 도시락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포크를 도시락 뚜껑이 걸쳐놓았다.
봉투의 내용물은 이게 끝.

프로듀서가 생수병 두 개를 들고 벤치로 왔다. 옥상 자판기에서 뽑아온 것이다.
프로듀서는 안즈와 도시락을 사이를 두고 벤치에 앉았다.

"그 녀석 말이야, 대개 이런 거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슬슬 제대로 챙겨 먹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돈도 벌 대로 벌고 있으니 도시락을 먹더라도 건강을 생각한 걸 먹었으면 하는데……."
"미쿠 쨩 이야기야? 아까도 그런 말을 했지?"
"응, 그 녀석 기숙사에서 살거든."
346 프로덕션은 대형 기획사답게 자체 기숙사를 운영한다. 집이 멀어 346 프로덕션에 출퇴근하기 불편한 연예인은 그곳에서 살고 있다. 안즈는 출퇴근에 불편한 게 없어서 맨션에서 살고 있지만.

"기숙사 식당에서 못 먹을 때는 밥만 집에서 짓고 반찬을 슈퍼에서 파는 거로 처리했지. 그것도 세일 상품으로. 그런 곳에서 파는 건 몸에안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있단 말이야. 조금만 더 찾아보면 몸에 좋은 거로 만드는 전문 반찬 가게가 있을 텐데……."
안즈는 가만히 경청했다.
조금 찔린다.

"그러고 보니 안즈도 전에 요리하는 쪽이 아니라 먹는 쪽이랬지? 밥은 어디서 사먹……."
"아, 아아, 그럼 미쿠 쨩은 평소에 슈퍼에서 사 먹는다고?"
"응, 그래서 한때는 내가 도시락을 싸줬어. 근데 미쿠한테만 만들어주는 건 치사하다면서 다른 유닛 멤버가 자기 것도 만들어달라고 졸랐고……. 나머지 멤버 것만 빼먹는 것도 미안해서 결국 4인분을 만들었어."
프로듀서의 눈이 추억에 잠겼다. 가까운 곳에 있는 햄버그를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걸 바라보는 것처럼 본다.
지금 안즈 옆에 앉은 프로듀서는 안즈가 알고 있는 프로듀서지만……. 그 눈빛만큼은 안즈가 모르는 빛을 담고 있었다.

"공유하지 않은 추억만큼 공감할 수 없는 건 없다……."
안즈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괜히 추억에 잠겨서 안즈를 내버려뒀구나."
"아니, 그냥 중얼거린 거야. 신경 쓰지 마."
"사이버 슬루스에서 나오는 대사지? 설녀 에피소드."
"진행했어?"
"응, 조금씩 하고 있는데 조금씩이라서……. 실은 얼마 전에 마친 퀘스트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뭐야, 아직도 초반이네……."
"나중에 날 잡아서 달려야지."
어느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공유하는 추억은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추억에 잠겨있을 수만은 없지.

"자아,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할까. 이런 이야기를 밥 먹으면서 하는 것도 그렇지만,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착착 처리하는 게 좋겠지."
프로듀서는 젓가락으로 햄버그 조각을 집었다. 안즈는 주먹밥을 포크로 눌렀다.

"내가 346 프로덕션에 입사했을 때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전에도 말했듯이 당시 346 프로덕션은 가수, 예능계에선 큰손이었지만 아이돌 부문은 생초짜였어. 세간에선 346가 아이돌 붐에 맞춰서 뒤늦게 뛰어들었다고 보고 있었지. 실제로도 그랬고.“
프로듀서는 햄버그를 으적으적 씹어 삼켰다.

"뱃속에 뭐가 들어가니까 정신이 확 드네. 음, 당시 346 프로덕션은 예능 업계의 큰손답게 아이돌 업계도 주름잡고 싶어 했지. 그래서 아이돌 부문을 밀어주기 시작했어. 그리고 나는 그 움직임에 편승했고. 아이돌 아이들을 몇 명 담당했지. 346 프로덕션의 푸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그 아이들을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아이돌로 만들었고, 인지도를 얻은 아이돌 아이들은 각자 담당 프로듀서를 새로 배정받았어."
미쿠를 담당하기 전 이야기인가. 이것도 당연한가. 여태까지 미쿠만 담당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런 업무를 몇 번 반복하다가 실적을 인정받아서 좀 더 큰 프로젝트에 참가했지. 그 프로젝트는 당시 아이돌 부서의 선봉을 맡은 중요한 프로젝트였어. 프로젝트는 346 프로덕션이 엄선한 3명의 아이돌 아이들을 유닛으로 구성해서 이루어졌지. 그게 바로 마에카와 미쿠, 오오츠키 유이, 도묘지 카린으로 구성된 C.M.Y.K.야. M은 미쿠, Y는 유이, K는 카린. 그리고 C는 각자 색이 뚜렷한 아이돌이란 뜻으로 컬러에서 따왔지. 결과적으로 유닛 명이 CMYK가 된 것도 그런 의미에서 온 거야."
"인쇄 색상 용어였지? 시안, 마젠타, 옐로, 블랙이었던가?"
"잘 아네."
"상식이니까. 그리고 아는 사람 중에 동인지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서 원고를 넘길 때 RGB 말고 꼭 CMYK로 넘겨야 한다 어쩐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정답을 맞힌 안즈에게 상으로 햄버그를 주마!"
프로듀서는 햄버그 조각 하나를 안즈 쪽으로 밀었다.

"이미 먹고 있거든?"
이미 조각 하나가 안즈 입에서 한창 분쇄되는 중이다.
프로듀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생수를 벌컥벌컥 삼켰다.

"아무튼, 그 시절의 난 직접 입에 담긴 부끄럽지만…….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어. 그 아이들을 최고로 만들고 싶었지.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했어. 당시 흐름을 등에 지고 기세 좋게 일을 진행했어. C.M.Y.K.는 메이저 아이돌로 올라가서 이름을 날렸고, 아이돌 부서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어. 그렇게 아이돌 부서가 다른 부서가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졌지. 그런데 그게 문제였어."
프로듀서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도시락엔 손을 대지 않는다.

"다른 부서에서 나와 아이돌 부서를 눈엣가시로 보게 된 거야. 뭐, 예산 문제지. 아이돌 부서로 예산이 몰리면서 다른 부서로 가는 예산이 줄어들었거든. 물론 투자 금액 자체는 전보다 늘어났지만, 그걸로도 모자라 다른 부서의 투자금이 아이돌 부서로 몰리는 상황이 됐거든. C.M.Y.K.를 비롯한 아이돌 부서가 너무 잘 나갔어. 급성장했지. 그래서 다른 부서의 눈 밖에 난 건 당연했지. 계기는 그거였어."
이야기가 조금씩 무거워진다.
안즈도 포크 질을 멈췄다.

"난 그런 시선을 무시했어. 대놓고 적을 만든 거야. 그 시절에 난 적의를 받으면 적의로 돌려주는 식으로 맞섰어. 멍청했지. 오만했어. 그걸 보고 젊은이의 패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마 속뜻은 젊은이의 과오였을 거야. 난 흐름에 제동을 걸지 않았어. 실제로 실적은 나오고 있었으니까. 난 다른 부서가 입을 다물도록 실적을 내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실적을 냈지. 그래서 다른 부서가 입을 다물었느냐 하면……. 어땠을 것 같아?"
연예계는 실적의 세계. 연예계뿐 아니라 사회란 돈만 있으면…….

"지금 이야기 흐름으로 봐선 잘 안 끝났지?"
안즈는 상식을 잠시 치우고 프로듀서의 이야기에 대해서만 대답했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실적과 돈은 중요하지만 사회란 그것만으로 돌아가는 개념이 아니기에.

"반발만 더 심해졌어. 이야, 그땐 정말 대단했지. 재수 없는 부서라고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들었던 것 같아. 그 욕의 집중포화는 나한테 향했지만. 뭐, 내가 직접 다른 부서의 불만을 키운 셈이었으니까. 그때 가수랑 예능 부서가 합심해서 아이돌 부서에 태클을 걸었어. 나 참 무슨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도 아닌데 말이야……. 가수랑 예능 부서는 아이돌 부서로 346의 힘이 쏠려 다른 부서가 부실해졌단 식으로 자기들 실적이 악화한 걸 거의 아이돌 부서 문제로 떠넘겼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회사는 집단이다.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가 커지면 높으신 분들은 불만을 잠재우려고 상황에 대해 재고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프로듀서는 젓가락질하려다 말았다.

코로만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잠시 위로 향하다가,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이야기를 이었다.

"가수 부서와 예능 부서는 우리를 필사적으로 물어뜯었어. 아주 철저하게 밟았지. 우리의 활동을 낱낱이 훑어서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하면 꼭 문제를 제기했고. 그런 식으로 아이돌 부서의 실적을 거품이라고 평가절하했어. 아이돌 부서가 커졌다 한들, 여전히 실세는 가수랑 예능이 쥐고 있었으니까.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높으신 분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아이돌 부서가 내던 실적을 고려해 어떻게든 비난을 막아줬어. 당시 일본 본사에 있던 미시로 상무님도 말이야."
"그 사람이?!"
의외의 이름이 나왔다.

"그 사람은 실적주의자라서 실적만 나오면 상관없단 식이었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서웠지만 난 그 점을 이용하려고 했지. 분수도 모르고."
이번엔 이야기 자체가 의외다.

"회사 분위기는 최악으로 달려갔고 그 분위기에 휘둘려서 회사 자체가 주춤거렸어. 연예인은 감정에 영향을 잘 받으니까 일에도 영향이 간 거지. 희로애락을 살리는 예능인의 연기에서 로애가 짙어졌고 즐겁게 노래하던 가수의 목소리에 스트레스가 실렸으며, 아이돌 아이들도 그와 비슷하게 컨디션을 망쳤지. 심지어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도 적잖게 있었어. 346 프로덕션은 단순히 공장에서 제조한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야. 엄연히 사람의 재능을 공연하는 프로덕션이야. 아무리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이더라도 한계가 있어."
안즈도 아이돌이니까 컨디션에 관한 건 몸으로 직접 겪고 있다. 그래서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쉽게 이해했다.

연예계는 사람이 직접 관여하는 부분이 큰 업계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아이돌 부서를 향한 푸쉬가 지나쳐서 그렇다는 식으로 흘러갔지. 아무리 미시로 상무님이라도 질타가 끊임없이 이어지자 꽤 진이 빠진 모양이었어. 그 사람도 아이돌 부서를 감싸주기 힘든 처지에 처했지. 그래서 난……."
프로듀서는 생수병을 세게 쥐었다. 얇은 페트병이 우그러지며 안에 있던 물이 넘칠락 말락 출렁거렸다.
"내 인생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물이 조금 흘러넘쳤다. 프로듀서가 손에서 힘을 빼자, 페트병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난 여전히 실적에 매달렸어.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려고만 했지.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난 건방지게도 346 내부에서 346 프로덕션에 도전장을 냈어. 아이돌 얼티밋……. 아이돌의 정점을 가리는 그 무대에 C.M.Y.K.를 출전시켜서 우승시키겠다고. 정점에 서면 더는 뭐라 항의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어."
미쿠와 C.M.Y.K. 멤버가 우는 사진이 떠올랐다. 안즈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때를 노린 다른 부서에서 조건을 내걸었어. 실패했을시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 부서 자체의 실패로 간주하고 아이돌 부서의 지원을 대폭 감소. 그때 아이돌 부서에서 진행하던 다른 프로젝트도 상당히 많아서 지원이 갑작스레 감소하면 사실상 아이돌 부서의 폐지까지도 갈 상황이었어.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 난 그 조건을 받아들였어. 미시로 상무님은 난색을 보이셨지만, 난 일을 추진했어. 그렇게 되니까 아무리 미시로 상무님이라도 막을 수 없게 되더라고. 결국 스스로 목을 죄인 셈이지."
프로듀서는 목을 축였다. 어느새 혀와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

"난 자신 있었어. 우리 아이들이라면 아이돌 얼티밋 우승도 할 수 있다고. 솔로 부문이라면 아이돌의 여왕이라 불리는 카미이즈미 레온 같은 쟁쟁한 아이돌이 버티고 있어서 고전하겠지만 유닛 부문이라면 우리 아이들보다 뛰어난 유닛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당시 아이돌 시장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었어. 대규모, 중규모 프로덕션에 대한 정보는 긁어모을 대로 긁어모았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어. 아니, 승리는 확정이라고 생각했다. 일정은 급했고 아직 그 아이들의 재능은 완전히 개화하지 않았지만 그 상태로도 최강이라고 확신했어. 그래서 아이돌 얼티밋에 출전했는데……."
프로듀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카운터를 맞았어."
아이돌 얼티밋 우승은 765 프로덕션의 프로젝트 페어리.

"765 프로덕션……. 소규모 프로덕션에서 갑자기 치고 올라왔어. 그때까지 이름도 없는 무명 프로덕션이었어. 그쪽 아이돌 아이들도 무명이었어. 근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무섭도록 성장해서 미친 듯이 치고 올라왔어. 설마 했던 솔로 부문의 카미이즈미 레온도 765 프로덕션의 키사라기 치하야한테 패배했고, C.M.Y.K.는 프로젝트 페어리라는 유닛에게 패배했어. C.M.Y.K.는 열심히 했어. 그 아이들은 열심히 했어. 단지, 상대가 안 좋았을 뿐이야."
프로듀서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프로듀서의 코가 약간 빨개져 있었다.

"준우승도 대단한 성과야. 하지만 조건은 조건이었지."
이제야 그 사진 속에서 미쿠와 C.M.Y.K. 멤버들이 왜 울었는지 알겠다. 그녀들은 지면 안 되는 무대에서 패배했다. 반드시 우승했어야 했던 무대. 그러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 다 엉망진창이 됐다. 전부 다 깨져버렸다. 아까 미쿠는 그렇게 말했다.
 
"다들 울었어. 346 프로덕션에 소속된 아이돌 아이들이 모두 울었어. 내 손을 타지 않은 아이돌 아이들도 울었어. 그래도 다행……히도 미시로 상무님이 준우승 실적을 보고 손을 쓰셔서 아이돌 부서는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거로 피해가 그쳤지. 그 일로 인해 아이돌 부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시로 상무님에게 은혜를 입었지만, 동시에 미시로 상무님이 하지 말란 짓을 하다 실패했으니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걸 꺼리게 되었지. 전적으로 내 탓인데 왠지 모르게 연좌제가 적용됐나 봐. 많은 아이돌 아이들이 일을 그만뒀어. 실패에 관해 추궁당한 C.M.Y.K.도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지. 프로젝트는 해산되었고 멤버 셋의 입지가 위험할 정도로 줄어들었어. 그래서 난 내가 보유한 연줄로 유이와 카린을 각각 다른 프로덕션에 이적시켰고, 미쿠를 믿을 만한 유능한 선배에게 맡겼지."
안즈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속이 쓰라렸다. 뱃속에 뭘 넣을 기분이 아니었다. 뱃속에 뚫린 구멍으로 내장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이 안즈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떠난 아이들은 날 원망했겠지. 그 후로 난 모든 의욕을 잃었어. 내게 적의를 불태우던 사람들도 그런 내 태도를 보고 비웃으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 아무래도 시체까지 건드리고 싶진 않았나 봐."

시체, 살아있는 시체…….
문득 안즈의 부모님이 안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재능을 썩히기만 할 거면 나가라! 나가서 살아있는 시체나 되어라!

시체가 된 안즈와, 시체가 된 프로듀서.

뭐야, 시체끼리 만난 건가…….

"난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러다 너를 만났어. 모든 의욕을 잃었지만 널 보니 신기하게도 새로운 감정이 솟아오르더라. 새로운 연료를 주입받은 기분이었어."
프로듀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에 물을 마셨을 텐데 프로듀서의 입술이 바싹 말라 보였다.

"안즈를 만나기 전에 태웠던 열정은 어떻게 됐어? 그……. 야망 같은 거."
"그건 완전히 꺾였어. 두 번 다시 불타지 않을 거야. 불을 붙일 촛대가 완전히 부러졌어."
프로듀서는 젓가락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안즈도 포크를 내려놓았다.

"자,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 내 실패담이자 유쾌하지 않은 치부. 어때? 환멸을 느꼈어?"
"괜히 들었어. 마음이 무거워. 신경 쓰여.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아."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프로듀서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아까 프로듀서가 난간에 부딪친 부분이었다.

"여기, 아프지 않았어?"
"응, 아팠어."
"지금도 아파?"
"응, 아파. 아마 앞으로도 가끔 꿈에 나오겠지."
안즈는 프로듀서의 이마에 손을 댄 채로 말했다.

"안즈는 안즈야. C.M.Y.K.를 대신할 수 없어."
"알고 있어. 너는 너야. 난 네가 그 아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해. 되도록 자기 페이스에 맞춰 성장하는 걸 보고 싶어."
"안즈는 아직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몰라. 목표도 없어. 그래서 프로듀서가 아픈 걸 해결할 수 없어. 나 자신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니까."
"난 너에게 그런 걸 바라지 않아."
"위로 몇 마디로 프로듀서의 상처가 아물 거란 생각이 안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안즈는 프로듀서의 이마에서 손을 떼었다. 손이 안즈의 허벅지에 닿았다. 손은 이미 주먹을 쥐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안즈랑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어. 안즈를 꺼내준 건 프로듀서니까."
프로듀서는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속으로 곱씹더니
"그걸로 충분해.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젓가락을 다시 집었다.

"자아, 남기면 아까우니까 먹어치우자!"
프로듀서는 게걸스럽게 입에 햄버그를 가득 집어넣었다.

목이 메어서 삼키는 게 괴로울 텐데도. 햄버그를 우적우적 씹어서 악착스럽게 삼켰다.
안즈도 질세라 야채 볶음을 입에 쑤셔 넣었다.

둘은 동시에 목이 막혔는지 같은 타이밍에 생수병을 급하게 입에 꽂았다.

5월 31일

일요일. 주말 휴일이지만 특별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겐 휴일이 아닌 날.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아이돌 안즈에게도 휴일로 지정된 날이다. 안즈는 주말 휴일에 취해 늦게까지 단잠을 자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오전 10시. 어제 취침시간은 12시였으므로 10시간째 자고 있다.

평범하게 보면 충분히 오래 잔 편이지만 안즈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까지든 잘 수 있으므로 안즈에게 있어 딱히 긴 편은 아니었다. 하루를 통째로 수면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니까.

오늘은 수면을 방해할 만한 일이나 그걸 가져올 인물이 없으니 안즈의 두뇌는 그동안 받았던 열을 식히며 달콤한 꿈만을 안즈의 의식 속에 영사했다. 현실의 안즈는 베개에 침을 질질 묻히며 자고, 꿈속의 안즈는 넓고 한산한 워터파크에서 돌고래 튜브에 몸을 싣고 천천히 유영한다.

평온하다. 꿈속의 안즈는 일로 지친 심신을 느긋하게 풀었다.

꿈속에선 주스와, 사탕, 감자 칩과 초콜릿, 타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 콜라와 사이다를 같이 먹어도 맛이 섞이지 않고, 이것들을 먹으면서 인터넷 순례와 PS 비타 플레이, PS4 플레이를 동시에 하는 기예를 벌여도 지치지 않는다.

천국이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천국…….

그러나 나태한 천국을 심판하려는 나팔 소리가 안즈의 의식에 침투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안즈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평소라면 이런 소리쯤은 무시하고 잘 테지만…….

이번엔 사정이 좀 달랐다.

"후-타-바-안-즈-쨩! 계신가요-!"
심상치 않을 정도로 우렁찬 성량의 목소리가 나팔, 아니 초인종 소리와 함께 쩌렁쩌렁 울렸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안즈는 금방 눈을 떴다. 오랫동안 자서 그런지 눈알에 드는 묘한 압박감을 느끼며 안즈는 흐느적거리면서 겨우 일어났다.

"으으……. 시끄러워……."
안즈는 잠이 덜 깨 잠긴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현관으로 향했다.
"계-시-나-요-! 안-즈-쨩!"
"아아, 네네, 있습니다. 있어요."
안즈는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세요? 택배인가요?"
"아뇨, 택배는 아닙니다!"
"저희는 도를 안 믿어요. 교회에 나갈 생각도 없고요."
끊으려는 찰나
"아카네입니다! 같은 반! 히노 아카네!"
이런 말이 들려서 끊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귀에 익은 목소리구나.
안즈는 문을 열어 아카네를 맞이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우왓, 옷에 걸려 넘어질 뻔했어요!"
"조심해서 들어와."
안즈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아카네는 거실에 널려있는 옷가지와 과자 봉투, 컵라면 그릇을 이리저리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그렇게 거실 탁자에 앉았다.

"원래 평소에는 청소부를 부르는데 저번 주엔 일이 많아서 부르지 못했어."
"안즈 쨩은 혼자 사나요?"
"뭐, 그렇지."
"대단해요! 그 나이에 혼자 살다니! 대견해요!"
"아니, 우린 동갑이야. 같은 반이잖아."
"아차, 그랬었죠!"
안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은 어느새 완전히 달아났다.

"무슨 일이야?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어?"
"프린트를 나눠주러 왔어요! 집 주소는 담임 선생님께서 알려주셨고요!"
아카네는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 안즈에게 건네주었다. 파일에는 수업 프린트가 두둑하기 끼어있었는데 안즈는 프린트만 빼고 파일을 아카네에게 돌려줬다. 프린트를 쓱 훑어보고 그대로 탁자에 올렸다.

"이런 걸 일부러 가져다줄 필요는 없을 텐데……. 그것도 주말에. 메일로 보내도 되고."
"선생님께서 직접 가져다주라고 부탁하셔서요!"
안즈는 그 말 한마디로 상황을 이해했다. 안즈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려고 아카네를 보낸 건가…….
이거야 원 학급에 녹아들지 않는 문제아 취급이다.
실제로 반쯤 맞는 말이지만.

"손님을 그냥 대접하는 것도 좀 그렇고……. 감자 칩 먹을래?"
"저야 좋죠! 감사히 먹겠습니다!"
"선반에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꺼내 먹어."
안즈는 손가락으로 척, 하고 선반을 가리켰다. 아카네는 안즈가 가리킨 곳을 정확히 짚어 감자 칩을 꺼냈다. 아카네는 봉투를 뜯고 가운데를 갈라 탁상에 넓게 폈다. 안즈는 아카네가 뜯은 감자 칩에 손을 뻗었다.

아카네는 감자 칩보단 안즈의 집에 관심이 있었는지 주변을 티가 날 정도로 두리번거렸다. 안즈는 감자 칩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집안이 그렇게 신기해?"
"집이 참 좋아서요!"
"그래? 집안 꼴이 이 모양이라서 실망하지 않았어? 아이돌의 집인데. 기대했던 게 있을 거 아니야."
"아니요? 전 친구 집에 놀러 와서 재밌는데……."
친구 취급인가. 쉬는 시간마다 말을 걸고, 프린트까지 가져다주러 집에 오고…….
하긴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 친구로 봐도 되겠다. 안즈는 옆구리가 간지러웠지만 아카네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혹시 찾아온 게 실례였나요?"
"아니, 딱히……. 주변에 조금 시끄러웠던 것 정도만 빼면."
"이런! 죄송합니다! 전 그런 식으로 갑자기 달아오를 때가 있어서요!"
"어어, 지금도 그래 보여."
처음 만났을 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 뜨거운 녀석이다. 저전력 인간인 안즈와는 다른 고출력 인간. 쓸데없이 열기가 넘치고 활력이 넘친다.

그리고 아마 열정도.

"열정이라……."
"열정과 정열은 좋은 것이죠! 활력소예요!"
안즈가 중얼거리는 걸 듣고 아카네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런 말에도 힘이 담겼다.

뜨겁다.
데일 것 같을 정도로.

열정, 열정이라……. 안즈는 요즘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그 감정을 얼핏 느꼈다. 어디까지나 아직 편린 수준이므로 본격적으로 느낀 건 아니지만. 게임과 마찬가지로 재미있지만, 게임을 할 때 소비하며 불태우는 것과는 조금 다른, 활동하며 내는 감정.

문득 25일에 프로듀서가 털어놓았던 프로듀서의 과거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프로듀서도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저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네! 기꺼이 대답해드릴게요!"
"열정이 완전히 식으면 어떻게 돼? 두 번 다시 타오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꺾이면……."
프로듀서의 열정은 완전히 꺾였다고 한다. 불을 붙일 촛대가 완전히 부러졌다고 한다.

아카네는 잠시 시선을 천장에 박은 채로 생각하다가…….
"사람마다 달라서 어떻게 된다고 똑 부러지게 말을 하긴 힘들지만……. 아마……."
고개를 다시 내리곤
"무지하게 괴롭지 않을까요?"
그렇게 대답했다.

"열정이 완전히 식을 정도면 엄청나게 괴로운 사건을 겪었을 거예요.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는 거니까요."
안즈는 프로듀서가 어떤 얼굴로 그 이야기를 했는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프로듀서의 이마에 벌겋게 떠오른 자국도.
그 자국을 만졌던 감촉도.

"두 번 다시 타오르지 않을 정도라고 정의했지만, 혹시 완전히 식어도 다시 타오르는 경우가 있겠지?"
"있을 겁니다. 모두 다 그렇진 않겠지만요."
아카네는 이번엔 담담하게 대답했다. 즉답이었다.
아카네는 이렇게 말했지만 프로듀서는 과연 어떨까…….

"고마워, 참고됐어."
"그밖에 질문은 더 없나요?"
듣고 싶은 건 다 들었지만 아카네의 눈이 왠지 모르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므로 안즈는 질문을 하나 더 쥐어짰다.

"아이돌에 관심이 있다고 그랬지? 혹시 아이돌을 해볼 생각은 없어?"
"제가요?"
"응, 개성 넘치고, 에너지도 넘치니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실은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럭비부 매니저를 하고 있어서 조금 고민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네. 럭비부 매니저는 할 만해?"
"정말 보람차요! 직접 럭비부에 들어가고 싶지만, 우리 학교는커녕 이 근처에 여자 럭비부가 있는 학교는 없으니까요."
아카네는 조금 아쉬운 투로 얼굴을 긁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잠잠해졌다. 아카네는 그때야 감자 칩을 입에 물었다. 안즈와 아카네 둘 다 감자 칩을 아삭아삭 씹었다. 감자 칩이 반 정도 줄어들자 아카네가 말했다.

"아직 고민하고 있지만……. 아이돌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날은 1시까지 아카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밖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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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점에 별거 아닌 뒷이야기가 조금 더 있습니다만, 그건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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