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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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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7, 2016 14:58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했다. 안즈는 슬며시 문을 열어 문틈으로 안을 엿봤다. 프로듀서가 문서 작업을 한다. 안즈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상태로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레 문을 닫고, 미쿠……가 아니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개인 소파를 향해 걸었다.

안즈는 무사히 소파 앞에 도달했다. 미션 컴플릿! 아직 프로듀서는 안즈가 들어온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안즈는 소파에 다이빙했다.

"안즈 왔니?"
"어떻게 알았어?"
"소파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으니까."
프로듀서는 의자를 빙글 돌려 뒤로 돌아서곤 히죽거렸다.

"근데 너 아직 레슨 시간 아니었니?"
"자율 레슨이야."
"땡땡이쳤구나? 그래도 괜찮아?"
"안즈가 스스로 괜찮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왔으니까 괜찮아."
"흐음, 그럼 됐어. 트레이너 씨가 널 그냥 보냈을 리는 없겠고. 어때? 레슨은 순조로워?"
"스테미너는 많이 늘어났어. 스킬 레벨도 높아졌고."
"전직은?"
"아직 어떤 직업으로 할지 정하지 못했어."
"그래, 유감이군. 슬슬 레이드를 뛸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안즈에겐 무리야. 좀 더 레벨을 올려야지……. 고렙 플레이어의 도움이 필요해."
"그런 안즈에게 사탕! 자, 전에 말했던 눈깔사탕이야."
프로듀서는 앉은 자리에서 안즈에게 사탕을 던졌다.

안즈는 그걸 가볍게 캐치. 안즈는 잡은 사탕을 들여다봤다. 사탕과 눈이 마주쳤다. 진짜 눈알처럼 생긴 사탕이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핏줄까지 재현해 밤에 본다면 소스라칠 정도로 리얼하게 생겼다.

"너무 리얼하게 생겨서 식욕이 뚝 떨어지네."
"먹기 싫어?"
"아니, 먹을래."
안즈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오, 맛있다."
그로테스크한 외형도 입에 넣으면 그냥 사탕에 불과하다.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거 중독이 될 것 같아."
"더 먹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면 돼."
"으윽, 부당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슬프게도 이건 변하지 않는 진리니까."
"안즈는 니트니까 그런 건 안 통해."
"니트지만 아이돌이잖아?"
프로듀서는 얄밉게 웃었다.
안즈는 미간을 찡그리며 입안의 사탕을 더 열심히 굴렸다.

"뭐, 마침 잘됐어. 땡땡이친 김에 다음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다음엔 뭐였더라?"
"이번에 새로 오픈하는 BEAMS 오프라인 매장이 있거든? 그쪽의 개점 축하 공연을 갈 거야. 잘만 하면 나중에 콜라보도 따올 수 있을지도 몰라."
"그다음은?"
"동물 킹덤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갈 거야. 니트 아이돌과 나무늘보의 게으름 대결! 사실 제목만 거창하고 아마 실제 수록 분량은 3분 정도라는 것 같아. 나무늘보랑 같이 촬영하는 건 아니고 각각 따로 촬영하는 것 같고."
"편한 일이네. 좋다. 프로듀서, 그런 일을 더 잔뜩 가져와 줘. 침대 광고도 좋겠다. 요즘 과학의 진수를 잔뜩 맛보고 싶어."
"그런 일거리가 들어오면 소개해줄게. 네가 의욕을 보여서 기뻐."
"안즈도 할 때는 한다고."
안즈는 콧대를 세우고 거드름을 피웠다.

"그런 기세로 앞으로 잘 부탁해."
"맡겨만 둬."
프로듀서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점심 안 먹었어?"
"응, 정리할 게 있어서. 지금 거의 다 끝냈지만."
"뭐라도 먹고 하는 게 어때?"
"안즈는?"
"딱히 배고프진 않아."
"그럼 간단히 컵라면이라도 먹을까……."
프로듀서가 문서를 저장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밖에서 누가 문을 노크했다.

노크 소리가 세 번.
이 방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신호.

"들어오세요."
프로듀서가 입실을 허가하자 문이 열렸다.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무대를 가리던 커튼처럼 뜸을 들이며.

"여긴 전에는 창고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정리했나 보군."
날카롭고 똑 부러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문이 완전히 열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목소리처럼 똑 부러지고 깐깐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여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무실을 훑어보았다.

물론 안즈도 그녀의 시야에 있었다. 안즈는 시선을 받자마자 긴장감을 느꼈다.
불안해진 안즈는 프로듀서에게 의지하려고, 프로듀서와 눈을 맞추려고 프로듀서의 시선을 찾았으나…….

프로듀서의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로 굳어있었다.

프로듀서는 그 여성을 인식하고 바로 얼어붙었다. 아니, 정확히는 떨고 있었다.

숨은 조금 벌어진 입 사이로 겨우겨우 내쉬고 있었으며 안색은 아예 새하얗게 새어버렸다.
안즈는 이런 광경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뱀 앞에서 굳은 쥐. 포식자에게 먹히기 직전인 먹잇감.

안즈는 사탕을 굴리던 것도 잊고 멍하니 굳어버린 프로듀서를 눈에 새겼다.
믿기지 않는다.

저기 서 있는 프로듀서는 안즈가 알고 있는 프로듀서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왜 그렇게 놀라나?"
"아, 그, 저, 그게, 그러니까, 아, 저……. 미, 미시로 사, 상무님? 대체 어떻게 오셨... 아니 이렇게 갑자기……."
프로듀서는 혀짧은 소리를 내다 겨우겨우 말을 쥐어짰다.
미시로? 346 프로덕션의 346와 같은 발음이다. 게다가 상무?

안즈는 프로듀서 앞에 선 사람이 346 프로덕션 내에서 굉장히 높은 사람이라는 걸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프로듀서가 이렇게 굳은 이유가 설명되진 않는다.

"그냥 변덕이다. 이쪽으로 완전히 온 건 아니야."
미시로 상무가 구두를 또각거리며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다가왔다. 프로듀서는 굳은 채로 눈알만 굴려 상무가 다가오는 걸 바라만 보았다. 뒷걸음질 치고 싶었는지 미시로 상무가 걸음을 뗄 때마다 프로듀서의 다리가 움찔거렸다.

"왜 그렇게 긴장하나?"
"그, 그건……."
"뭐 됐어. 지금 자네의 눈빛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군. 회의록을 보고 진짜 자네가 돌아왔다고 기대했다만."
회의록. 프로듀서의 머릿속에 5월 22일에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간다.
미시로 상무는 안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아이가 바로, 자네를 일터에 복귀시킨 아이인가."
안즈는 자기도 모르게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즈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자료를 봤다. 사람에게 주목받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더군."
미시로 상무가 안즈에게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안즈가 미시로 상무를 올려다보고, 미시로 상무가 안즈를 내려다본다.

둘의 시선이 겹쳤다.

아니, 조금 어긋났다. 안즈의 시선은 한편으로 프로듀서를 보고 있었으니까. 프로듀서는 여전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안즈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너는 아름다운 성에 어울리는 공주님이 될 자신이 있나?"
미시로 상무의 눈빛이 안즈를 옭아맨다. 마치 뱀이 전신을 조이는 것처럼, 안즈를 쥐어짠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곧 가상의 중량을 얻어 안즈를 짓누른다.

찌부러질 것 같다. 살, 근육, 뼈 모두 의미 없이 점토처럼 녹아내릴 것 같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즈는 가까스로 버티며 섰다.

안즈의 시선 구석에 프로듀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는 정말 한심하게 여전히 굳은 채로 지금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처럼 존재감이 희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안즈를 약하게 만든 주제에 안즈를 서게 한 동기가 되었다.

당신이, 거기서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안즈는 이를 악물었다.

나한테 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거야!
뱃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원망? 아니다. 실망? 아니다. 슬픔? 아니다.

그건 감정이라 정의할 수 없는 단순한 기력이었다. 안즈가 짧은 아이돌 생활을 통해, 레슨을 통해, 무대를 통해, 방송을 통해 몸에 축적한 에너지였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프로듀서 덕분에 축적한 에너지였다.
그러니까 거기서 그런 한심한 표정 짓지 마!
안즈는 입을 열었다.

"안즈, 아니 저는 있고 싶은 곳에 있을 뿐이에요. 그곳이 성이든, 초라한 움막이든 어디든.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그저 그러고 싶어……요."
그렇게 가까스로 내뱉었다.

미시로 상무는
"자유롭군. 하지만 사회란 그런 자유가 통하는 곳이 아니야."
안즈에게서 차갑게 등을 돌렸다.
미시로 상무는 프로듀서와 마주 섰다.

"자네가 재기불능에서 벗어났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왔다만, 자네에겐 실망했어."
"큭……."
프로듀서는 그저 신음만 흘리며 미시로 상무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자네의 아이돌은 볼 만한 구석이 있어. 일본엔 좀 더 체류하겠다."
대화가 끝났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미시로 상무는 곧바로 미련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연극의 종막을 알리듯이 무겁고 요란하게 울렸다. 문소리가 다른 소리마저 강제로 이끌고 퇴장했는지 사무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안즈는 프로듀서를 보고, 프로듀서는 닫힌 문을 본다.
5분 정도 둘은 그렇게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안즈가 침묵을 깼다.

"어떻게 된 거야……."
주어는 없지만 프로듀서에게 한 말이리라.
하지만 프로듀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같았어. 내가 아는 프로듀서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프로듀서인 척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
프로듀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무서운 사람이었어. 정말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웠어. 그래서 프로듀서가 안즈 곁에 있었으면 했어."
프로듀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뭐라고 말 좀 해봐!"
프로듀서는…….
"미안,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사무실 문을 열었다.

"프로듀서! 당신은……!"
"난 입만 산 인간이야.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야."
문이 닫힌다. 사무실에 안즈 혼자만이 남겨졌다. 안즈는 입에 남은 사탕을 난폭하게 씹어먹으며 주먹을 꾹 쥐었다. 안즈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해할 수 없다. 이 상황에 대해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안즈는 문을 열고 프로듀서의 뒤를 쫓았다.

안즈는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프로듀서의 모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는지 프로듀서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문에 딱 가려지는 순간이었다. 프로듀서는 안즈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안즈는 프로듀서가 탄 엘리베이터의 표시등을 주시했다. 층이 점점 높아졌다. 엘리베이터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다이렉트로 옥상을 향했다.

행선지를 알았으니 이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안즈는 옆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지금 따라가도 될까?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런 막연한 의문이 뒤늦게 안즈를 멈춰 세웠다.

아니, 이건 의문이 아니라 핑계다.

프로듀서한테 직접 따지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는 게 무섭다. 프로듀서의 약한 모습을 보고 받은 충격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 충격이 안즈의 손을 붙잡았다. 버튼을 누르기 직전. 직전이지만 안즈의 손가락은 전진하지 않는다.

"왜 안 누르고 있어 냥?"
안즈 대신 미쿠가 버튼을 눌렀다.
"어?"
"왜?"
미쿠가 의아한 표정으로 안즈를 쳐다본다.

"언제 왔어?"
"지금 왔는데?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아, 아니야……."
미쿠는 평상복 차림에 비닐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레슨을 끝내고 샤워를 막 마쳤는지 머리카락에서 샴푸 냄새를 풍겼다. 봉투 안에는 일회용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도시락과 나무젓가락이 들어있었다.

슈퍼에서 파는 상품이다. 안즈가 봉투를 보는 걸 깨달았는지 미쿠는 보란 듯이 봉투를 흔들며 말했다.

"늦은 점심이야. 냥. 옥상에서 먹으려고."
지금 옥상엔 프로듀서가 있다.

"저기, 오늘은 다른 곳에서 먹으면 안 될까?"
"왜?"
"지금 옥상엔……."
"공사라도 한대? 냥?"
"그건 아니지만……."
안즈는 머리를 굴려 필사적으로 핑곗거리를 찾았다. 조금만 궁리하면 미쿠가 이해하고 자리를 뜰 만한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조금의 시간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게 더 빨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안즈가 당황해하며 허둥대는 사이에, 미쿠가 안즈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안즈가 뭐라 하기도 전에 미쿠는 최상층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탈 거 아니었어냐?"
"고민하고 있었단 말이야……."
"엘리베이터에 타는 게 그렇게 고민할 일인가? 냥. 아니면 무슨 말 못할 일이라도 있어?"
"그래……. 있어……."
지쳤다. 조금 전 섭취했던 사탕의 열량이 금세 증발했다. 저전력 인간인 안즈는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 벽에 붙었다. 엘리베이터는 좋겠다.
전력을 계속 공급받으니까.

그런 감상을 품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로 갈 수 있는 최상층은 옥상 바로 아래층이다.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배치된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미쿠가 앞장서 두 계단을 올라갔을 때쯤 안즈는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꺼냈다.

"다른 데서 먹으면 안 돼?"
"그러니까 왜 안 되는데? 냥."
"지금 옥상에 프로듀서가 있어."
안즈는 반쯤 자포자기했다. 미쿠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미쿠는 잠시 손가락을 꾸물거리면서 봉투를 만지다가
"미쿠랑은 상관없는걸."
계단을 올랐다. 안즈는 혀를 차며 미쿠의 뒤를 쫓았다.

"프로듀서는 지금 상태가 안 좋아."
"어디 아파?"
"그건 아니고 아까부터 상태가 이상해."
계단을 다 오르고 이제 문만 남았다. 철제문을 사이에 두고 미쿠와 안즈, 그리고 프로듀서가 격리되어 있다. 미쿠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문틈으로 옥상을 살폈다.

안즈도 미쿠 아래에 끼어 같이 옥상을 살폈다. 프로듀서는 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옥상 난간에 매달리듯이 기대어 있는데, 두 팔을 난간에 걸치고 체중까지 실은 불안정한 자세였다.

뒤통수만 보였으므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뒷모습만 봐도 프로듀서의 기운이 없다는 건 충분히 전해졌다. 어깨는 축 늘어져 있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P쨩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냐?"
미쿠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오늘 미시로 상무라는 사람이 왔어."
"뭐, 뭐?! 핫!"
미쿠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낼 뻔했다.

다행히 프로듀서가 미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다. 프로듀서는 여전히 밀랍인형인 양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그 사람이 왜……. 뉴욕에 있었을 텐데……."
"안즈도 몰라. 그 사람하고 만난 다음부터 계속 저래. 아니, 더 심했어. 말도 더듬고……."
"어쩔 수 없어. 냥. 그 사람은 프로듀서의 트라우마나 마찬가지니까. 냥. 미쿠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마 지금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 부서 사람 중에 그 사람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프로듀서뿐 아니라 미쿠도 만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럼……. 프로듀서와 미쿠가 실패했던 일에 관련된 사람인가?

축 늘어져 있던 프로듀서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프로듀서는 하늘의 구름이라도 세는지 잠시 그러다가, 있는 힘껏 난간에 머리를 박았다. 텅, 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난간이 조금 흔들렸다.

"아무리 봐도 트라우마 스위치 절찬리 발동 중…….이라는 느낌인데……."
안즈는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나가서 프로듀서가 지금 한 행동을 질책하고 싶었지만……. 그러고 싶지만…….
미쿠는 문을 살며시 닫았다.

"옥상에서 밥을 먹을 분위기가 아니네냥."
미쿠는 옥상행을 포기한 모양이다.
"안즈는 어떻게 할 거야? P쨩이랑 이야기할 거야?"
"미쿠 쨩은?"
"미쿠는 P쨩이랑 이야기할 자격이 없어. 냐."
미쿠는 흐려진 시야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아이돌 얼티밋 때문이야?"
아이돌 얼티밋 준우승. 통곡하던 미쿠.

"그래."
"그래서 자격이 없다는 거야?"
"응."
"이상해……. 그런 거로 이야기할 자격을 정하니 뭐니 하는 건 이상해... 우승을 못 한 게 뭐라고……. 미쿠 쨩은 어엿한 아이돌이잖아. 안즈가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잖아."
안즈의 말에 미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 미쿠 쨩은 예전부터 프로듀서랑 알고 지냈던 사이잖아. 프로듀서가 저래도 괜찮아? 응? 미쿠 쨩은 프로듀서를 어떻게든 해줄 수 있지? 부탁이야. 프로듀서를……."
안즈는 평소라면 입에 담는 데에 심사숙고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어떻게 된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상한 기분에 홀려있었다.

왜냐면……. 주저하는 미쿠를 보니 곧 안즈 자신을 보는 것 같았고, 그런 미쿠를 설득하는 게 곧 안즈 자신을 설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평소 영리한 안즈라면 하지 않을 말. 평소의 안즈라면 지금 느끼는 기분의 오류를 간파했을 것이다.

"나도……."
미쿠가 들고 있던 비닐 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미쿠의 두 손이 안즈의 어깨를 붙잡았다. 고양이라기보단 매처럼, 낚아채듯이 손톱을 세워서.

"미쿠도 알고 있어! 이상해! 하지만 거기선 반드시 우승했어야 했어! 근데 못했어! 그래서 모두 다 엉망진창이 됐어! 전부 다 깨져버렸어! 이제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 못해! 안즈 쨩은, P쨩이랑 같이 있는 사람은 안즈 쨩이면서 왜 미쿠한테 그러는 거야? 나도 예전처럼 다시 P쨩이랑, 다른 아이들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
미쿠에게서 격한 것이 터져 나왔다. 미쿠가 속에 품고 있던 게 한꺼번에 안즈에게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 말엔 안즈를 향한 분노나 증오 같은 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기에 안즈는 어깨에 느껴지는 저릿한 아픔조차 잊고 그저 멍하니 미쿠의 붉어진 눈가를 주시했다.

미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미쿠는 안즈가 아니다.
안즈도 미쿠가 아니다.
미쿠는 미쿠고, 안즈는 안즈다.

안즈는 뒤늦게 그 오류를 깨달았다.

미쿠는 숨을 거칠게 헐떡이다 안즈의 어깨를 세게 쥔 걸 그때야 인식하곤 손을 풀었다.

"미, 미안해. 어떻게 됐었나봐……. 냐……. 어깨 괜찮아?"
"어, 응. 괜찮아. 자국은 안 생긴 것 같아."
문이 열렸다.
안즈와 미쿠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지금 옥상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
프로듀서다.

"너희 여기서, 뭐, 뭐하니?"
프로듀서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프로듀서의 이마가 한눈에 들어왔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말이야."
조금 전 미쿠의 목소리를 듣고 온 건가.
"아무래도 흉한 꼴을 보였나 보네. 미안해. 얘들아."
여전히 어색한 웃음. 프로듀서는 억지로 웃고 있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이람."
일부러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며 억지로 웃는다.

거북하다. 몹시 거북하다. 억지로 웃는 장본인인 프로듀서는 물론이요, 눈시울이 붉어진 미쿠도 그러하고,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안즈도 마찬가지다. 셋 다 이 불편한 분위기가 청산되길 기다렸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결국엔 청산되긴 하였다.
프로듀서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서.

"아차, 나 밥 먹으려고 했지."
프로듀서가 배를 쓰다듬자 미쿠는 프로듀서에게 비닐 봉투를 내밀었다.
"뭐야?"
"도시락이야. P쨩 먹어. 미쿠는 먹기 싫어졌어."
"너 먹으려고 했던 거 아니야?"
"잔말 말고 받아라냥."
프로듀서는 얼떨결에 봉투를 받았다.

"미쿠는 가방에 칼로리 바란스가 있으니까."
미쿠는 급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안즈에게 속삭이고.
"P쨩 곁에 있어 줘."
미쿠는 눈 깜빡할 사이에 순식간에 계단을 내려가 모습을 감췄다.

안즈와 프로듀서만 남았다.

"칼로리 바란스라……."
프로듀서는 봉투 속 내용물을 확인했다.
"또 슈퍼 도시락이네. 제대로 챙겨 먹었으면 하는데……."
이제야 겨우 평소의 프로듀서 같은 분위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도 괜찮을까?

"프로듀서."
안즈는 분위기를 다시 뒤집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엔 제대로 결심한 채로.

"프로듀서가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난 계속 기다리려고 했으니까. 프로듀서가 직접 말할 때까지. 하지만 오늘 느낀 답답함을 다시 느끼는 건 싫어. 일할 때마다 생각날 것 같아."
프로듀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전에 이야기했던 실패담의, 유쾌하지 않은 부분이야. 듣다 보면 너까지 기분이 안 좋아질지도 몰라."
"상관없어. 듣고 싶어."
프로듀서는 마른 혀로 입맛을 다시더니 짧은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그럼……."
프로듀서는 봉투를 보란 듯이 들고 턱짓으로 옥상을 가리켰다.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틀림없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너도 배고파졌지?"
안즈가 알고 있던 프로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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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후기로 쓸 말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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