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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 죄책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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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1, 2016 01:54에 작성됨.

 

  "어디 아파? 이렇게 땀이 나는데…."
  하루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미를 올려다보았다. 아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허공을 향했다. 하루카가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미의 땀을 닦아내려 하자,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 사무소를 뛰쳐나갔다.
  "모, 몰라!!"
  아미는 그대로 사무소에서 뛰쳐나갔다. 쿵쾅거리는 계단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카는 알 리 없는 아미의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코토리 씨, 아미한테 무슨 일 있나요?"
  "있지, 아미가…."
  미키는 대답하려는 코토리의 팔을 세게 붙잡아 눈치를 줬다.
  "아미가 바쁜 일이 있었는데 까먹었다고 했어."
  대신 미키가 대답했다. 그녀는 상대를 자신만이 품길 원했다.
  "그렇지! 좀 전에 아미 쨩이 집에 일이 생겼다고 했었지, 참."
  쇼파에서 일어난 코토리는 자신의 사무 의자에 옮겨 앉았다.
  "일이요?"
  "손님이 왔다나 뭐라나…?"
  코토리는 팔이 아픈 듯 어루만졌다.
  "그런가요."
  하루카는 손에 쥐고 있는 손수건을 다시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손에 들고온 작은 종이상자는 쇼파 앞 탁상에 놔두고, 코트는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쇼파에 쿠션을 두고 엎드려 누운 미키는 하루카가 둔 종이상자를 들어 유심히 살폈다. 자그마한 투명비닐 사이로 케이크의 형태가 살짝 보였다. 미키는 하루카에게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하려 하던 차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루…."
  "혹시 코토리 씨가 청소하셨나요?"
  하루카는 오전과 달리 깨끗해진 창문을 유심히 살폈다. 물기를 제대로 없애지 않아 더듬더듬 남아있는 자국을 손가락으로 스윽 닦았다.
  "응? 어디?"
  코토리는 잔업을 살피다 말고 고개를 들어 하루카를 쳐다보았다.
  "창문하고."
  사무실을 두리번거리는 하루카는 먼지가 수북한 쓰레기통 한켠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발견했다.
  "바닥이요."
  "거긴 내가 안 했는데?"
  "아까 아미가 했어."
  미키는 넌지시 그녀에게 사실을 알려줬다. 굳이 이런 것조차 숨기진 않았다
  "또 신세를 져버렸다."
  "또?"
  "예전에 아미가 내가 졸고 있는 사이에 쿠키 포장을 다 해줬거든."
  그 날이다. 아미에게 문자를 보낸 날. 자신보다 한 발짝 더 빨리 그녀에게 다가간 날. 눈치를 채지 못해 선수를 빼앗겨버린 날.
  "어제 미키한테 준 것도 아미가 포장한 거다?"
  "왠지 하루카같지 않게 엉성했어."
  "그래도 아미가 처음이지만서도 꽤 잘했어. 굳이 마지막에 리본 안 묶어도 되는데 꼬박꼬박 잘 묶고, 봉투도 많이 안 구겨졌고, 쿠키도 잘 쌓…."
  "하루카."
  자신을 앞에 두고도 아미에 대해서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였는…, 응? 왜?"
  "미키도 놀러 가도 돼?"
  미키는 하루카에게 부탁했다.
  "언제든지 와줘~. 아, 너무 일찍은 오지 마."
  하루카는 당부했다.
  "왜 일찍 가면 안 돼?"
  미키는 궁금증을 표했다.
  "만약 나보다 빨리 오면, 내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니까…?"
  "상관없어. 기다리는 게 오히려 나은 거야."
  "응?"
  "미키는 하루카가 오기만 하면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는 걸?"
  만일 오지 않는다 해도, 차라리 자신이 기다리는 것이 낫다.
  "절대 늦으면 안 되겠다. 아, 마미도 온다고 했고……. 다음 일정을 조절해야 하려나."
  "마미도? 언제?"
  "아직 몰라. 어제 약속했으니, 아마 다음 주쯤에 오지 않을까?"
  분명히 아미도 같이 가게 될 텐데, 그리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럼 미키는 그 전에 갈게."
  "미키 쨩. 이번 달엔 일이 꽉 차있답니다."
  코토리의 말은 미키의 기분을 확 깨버렸다.
  "으으,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은 거야…."
  미키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

 

 


  "그 놀기 좋아하는 아미 쨩이 아무 군소리 없이 청소라니, 왠지 기특하네~."
  잔업을 하다 스리슬쩍 펜을 놓은 코토리는 아미를 칭찬했다.
  "노는 것만 좋아하는 시기가 벌써 지난 걸까요."
  "질풍노도의 시기! 가 아닐까?"
  "코토리 씨도 아미가 사춘기란 게 느껴지시나요?"
  하루카는 물었다.
  "그럼그럼! 하루카 쨩도 사춘기 땐 정말 귀여웠는데 말이지~."
  "엣."
  "사장님한테 '팅'하고 캐스팅이 된 무시무시한 연습생 씨의 첫날. 그 자신감 풀풀 풍기는 연습생 씨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앗…."
  하루카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확연히 올라왔다.
  "분명 이렇게 말했어. '저…."
  "그만, 그만해주세요~!"
  하루카는 코토리의 발언을 막았다.
  "에에~ 미키는 좀 더 듣고 싶은 거야."
  "아, 미키 쨩은 이 이후에 들어왔으니 모르겠구나. 예전의 하루카 쨩은 사춘기스럽게 좀 더 수줍은 느낌이었단다?"
  "지금 하고 별다를 거 없…, 우와앗?!"
  하루카는 뒷걸음질 도중에 그만 발이 뒤엉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미키는 서둘러 쇼파에서 일어나 하루카에게 다가갔다
  "하긴 저건 지금 하고 별다를 거 없긴 하네."
  "아야야…."
  미키는 넘어진 하루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다.
  "하루카 쨩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말해줄게. 난 잠깐 밖에 좀…."
  휴대폰에 시선이 팔린 코토리는 금방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미키는 하루카의 치마를 툭툭 털어주었다.
  "전화 받으러 가신 거야."
  "무슨 전화?"
  "프로듀서 씨 말로는 아마 연말 약속이라고 했어."
  "약속 전에 못다한 일이나 끝내야 해."
  미키는 코토리의 책상에 쌓인 서류들을 쳐다봤다. 두 개로 나뉘어 쌓인 서류가 눈에 띄었다. 한쪽에 쌓인 서류는 미키도 해본 일. 그녀가 할 수 있는 일.
  "또 코토리가 하루카한테 일 시키는 거 아니지?"
  미키는 따져 물었다.
  "코토리 씨도 나름 중요한 일이실테고, 내가 한다고 먼저 말한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마 미키.
  하루카는 미키를 나무랐다.
  "혹시, 어제 미키가 코토리한테 한 말 들었어?"
  "뭐가?"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근데 유키호는 어디 갔어?"
  미키는 하루카의 건너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사무실의 문을 살폈다.
  "카페에서 얘기하다 먼저 갔어."
  "무슨 일 있었어?"
  "별일 아냐. 아니 있었긴 한데 그다지 큰일은…."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태도에 미키가 지적했다.
  "하루카, 아까 유키호한테 한소리 들은 거 다 까먹은 거야?"
  "음?
  "미키도 말 안 해주면 모른다구-."
  미키는 볼을 빵빵하게 채웠다.
  "아아아, 마코토가 왔었어."
  "마코토군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마미가 불렀어. 그리고…."
  "혼났지?"
  하루카는 잔뜩 풀이 죽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랄까, 솔직해지는 방법을 배웠어."
  "확실히 하루카는 더 솔직…."
  "아, 전화가 왔네. 잠깐만."
  코트에서 울리는 벨 소리에 하루카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안 주머니에서 이끌려 나온 손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손수건을 눈치채지 못한 하루카는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허리를 숙여 손수건을 슬쩍 주운 미키는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 후 하루카의 휴대폰으로 귀를 가까이했다.

 


  "야요이? 무슨 일이야?"
  순간의 정적.
  "미워요! 하루카 씨는 정말 미워요!"
  야요이의 외침에 살짝 놀란 하루카는 귀에서 휴대폰을 조금 땠다.
  "엣?"
  "마미가 알려줬어요. 하루카 씨가 저희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거짓말이 모두 들켜버렸다. 무척이나 난처해지게 된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 응."
  "다음부턴 절대로 그러시면 안 돼요!"
  "응. 걱정 끼쳐서 미안해."
  "미안해하시지도 마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더 미안해서…."
  이어 들려온 훌쩍이는 소리.
  "우와앗, 미안, 아니 다음부턴 절대 숨기지 않을게. 힘든 일이 있으면 야요이한테 상담할 테니까, 뚝!"
  "…정말이요?"
  "약속할게."
  사무소 안의 분위기가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키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쇼파에 앉았다. 이내 전화를 끊은 하루카는 볼을 긁적였다.
  "야요이한테도 미움받아버렸네."
  "그러게…."
  코트에 휴대폰을 넣은 하루카는 말을 이었다.
  "미키한태도 미안해. 거짓말을 하게 해서."
  "하루카."
  "그치만……."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처지가 아니다. 도리어 모두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이토록 가만히 있기만 한 이 형편이 한심스러웠다.
  "그럼, 이거 먹어도 돼?"
  미키는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이상자를 가리켰다.
  "뭔데? 아, 맞다."
  하루카는 미키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종이상자를 집어서 미키의 앞에 내밀었다.
  "이거, 미키한테 주는 선물이야."
  "정말 먹어도 돼?"
  "마음대로 하세요~."
  하루카의 허락에 그제야 상자의 포장을 풀었다. 예상대로 조각 케이크, 케이크의 형태를 한 딸기 바바로아가 있었다.
  "딸기 바바로아? 미키가 먹고 싶었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흐음… 직감?"
  "역시 하루카인 거야!"

 

 

  "미키, 난 이만 가볼게."
  하루카는 옷걸이에 걸린 코트를 꺼내입었다.
  "벌써? 좀 더 있으면 안 돼?"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해."
  가방을 어깨에 메려던 하루카는 쇼파 구석에 있는 도시락통을 발견했다. 조금 전 미키가 모두 먹어버린 그녀의 도시락.
  "어라, 이 도시락이 왜…."
  "왜 하루카?"
  살짝 찔린 미키가 먼저 물었다.
  "혹시 이거…."
  하루카는 도시락통을 가져와 열어보았다.
  "역시 하루카가 만든 거라 맛있었어. 매번 만들어 준거랑은 특이하게…."
  미키는 태연히 대답했다. 능청스럽게 하루카를 올려다보려는 움직임은 그녀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멈췄다. 평소엔 전혀 볼 수 없는 얼굴로 텅 빈 도시락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과 다른, 이전과는 다른 반응에 미키는 적잖아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미, 미안 하루카…. 다음부턴 허락받고 먹… 아니… 다신 안 먹을게……."
  오래전 억지를 부려서는, 눈치없이, 자기밖에 몰랐었을 때 본 그 표정이 다시금 보였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미키의 눈동자가 위를 쳐다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와 함께 한동안 잊고 있던 악몽이 되살아나 미키를 둘러싸고 말았다.
  "앗, 아무렇지도 않아요? 괜찮으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마."
  미키의 반응에 하루카는 팔을 절레절레 저었다.

 

  해선 안 됐다고, 먹어선 안 됐다고, 누구 것인지 빨리 알아채 주지 못한, 늦게나마라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은 아미에게 이상하게 화가 났다. 다만 미키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은 안다. 그저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대상을 누구라도 빨리 찾고 싶었다.
  "미키, 다음 일없으면 같이 갈래?"
  매번 자신이 먼저 한 말을 그녀가 먼저 했다.
  "있어."
  별 일 없다. 코토리에게 아미가 물어보려 한 질문 이외엔 없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우선순위에 없는 일임에도 미키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렇구나….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
  "조심해서 들어가. 하루카."
  이대론 그녀의 손을 잡지 못할 것이다. 잡아도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미키는 나가는 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속이 불편해졌다. 너무나도 쓰려왔다. 눈을 꾹 감은 미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계단소리가 났는데 누구 왔니?"
  어느새 코토리가 미키의 뒤에 다가와 있었다.
  "갔어."
  미키는 짧게 대답했다.
  "누구? 아, 하루카 쨩이 갔구나."
  코토리는 옷걸이에 하루카의 코트가 없다는 걸 눈치챘다.
  "미키 쨩이 안 따라가다니, 오늘따라 신기하네."
  "코토리한테 물어볼 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나한테? 아까 그거 말하는 거니?"
  "응. 이거, 코토리 먹어."
  미키는 눈을 잠시 탁자 위에 뒀다가 금세 치웠다.
  "응? 고마워 미키 쨩…… 어라? 이거 미키 쨩이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니?"
  "별로…."
  코토리는 종이상자를 들고 탕비실 안에 들어갔다. 냉장고의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있으면 저녁 먹으니 나중에 먹어야겠네."
  미키는 힘없이 쇼파에서 일어나 창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하루카의 뒷모습이 살짝 보였다. 다시금 저리는 손가락에 주머니의 손수건을 꾹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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