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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아이돌의 사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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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4, 2012 00:04에 작성됨.

아침부터 리카는 뚱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P는 모르는 척 앞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뒤통수가 굉장히 따가웠다. 왜 그러는 걸까 싶지만 왠지 물어보면 화를 낼 것 같아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다리를 꼬고 턱을 괴고서 계속 P의 뒷통수만 보던 리카가 입술을 열었다.


“빤-”

의성어를 소리 내어 자신이 쳐다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행동에 피는 식은 땀을 흘렀다. 에어컨이 약한가하고 생각할 때 다시 한번 다른 의성어를 내었다.

“지그시-”

계속 무시해도 될까? 

“물끄럼-”

어쩐지 계속 무시하다가는 나중에 큰 보복을 당할 것 같다. 차가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 웃는 얼굴로 뒤를 보았다.

“리카 오늘 날씨가 좋지?”

겨우 웃는 얼굴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리카가 허리를 펴며 긴 갈색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며 웃었다.

“그러네. 날씨가 좋네.”

싱긋 웃는 그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에 잘 넘긴걸까하고 기대했을 때 이어지는 말들이 있었다.

“정말 기분 좋을 정도로 날씨가 좋아. 그말이 맞아. 응.” 

생글거리며 웃는 그말이 왠지 언짢은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졌다.

“저, 리카?”

“누구는 기껏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확인했어도 이 좋은 날 데이트한번 못하고 일하러 가는 데 말이야.”

“저기…….”

“누구는 그래도 서로 고백한 다음날이니깐 혹시 다정한 목소리로 깨워주면서 키스라도 해주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다가 깨졌지만.”


프로듀서는 식은땀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혹시 화나-?”

“누구가 왜 화나겠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데 말이야. 그래, 일은 중요하지. 일을 잘해야 훌륭한 어른인거잖아. 맞지 P?"


리카가 웃으며 묻자 P는 곤혹스러웠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선택지다! 여기서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의 고생이 정해진다!

 <SYSTEM>
 1. 그러게. 일을 잘해야 좋은 어른이지. 그러니 리카는 대단해!         ←
 2. 무슨. 힘들 때는 하루 정도 일을 빼도 괜찮아. 나도 그러고 싶었어!
 3. 사랑해 리카!

 몇 번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3번은 뜨끔 없다 생각하지 않아?”

“그렇지? 나도 그렇게……. 어떻게 내 머릿 속을 읽은 거야!”

P가 놀래 묻자 리카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P의 생각이라면 대충 알 수 있어. 자세히는 몰라도 말이야. 정말.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잔 내가 바보 같다니깐.”

P와 그런 식으로 키스까지 하고 스케줄을 끝낸 후 집으로 돌아온 리카는 그날밤은 기쁨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리고 오늘에 대해 묘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고백한 날의 다음 날이었다. 당연히 어제와는 무언가 틀릴 줄 알았다.
그랬었는데, 이 둔탱이 남성은 아침에 보자마자 하는 말이 “리카 잘 잤어? 오늘 스케줄은…….” 이런 판에 박힌 일 이야기였다.
아니, 사랑한다거나 하는 그런 말은 하지 못하는 거야? 로맨틱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래도 서로 고백한 다음 날인데 좀 다른 말을 해줘도 좋잖아. 그런데 이 남자는 정말 평소와 너무나 똑같았다.
잠 못이룬 내가 바보가 되었을 정도로 너무나 똑같았다.

“역시 어젯밤에 내 집에서 재웠어야하나?”

“그건 봐줘 리카. 솔직히 넌 어제 너무 폭주했었어.”


P는 어젯밤 일을 회상하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서로 마음을 확인한 날, 리카는 헤어지기 싫다면 생떼를 부리는 듯 하더니 그대로 자신의 집에 P를 초대하려했다. 초대정도야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그 시간이었다. 스케줄을 모두 끝마치고 리카의 집으로 온 시간은 밤 12시가 훌쩍 넘었다. 들어가게 되면 틀림없이 거기서 잠을 자야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잠을 자야 다음 날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는데…….


“연인이잖아! 연인 사이에 그, 그 정도 선을 넘는 건 해도 되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늘 스케줄이 있으니깐…….”

“뭐야, 결국 나보다 스케줄이 더 중요하다고? 아, 그러시겠죠. 이 리카님이 은퇴하면 바로 모셔가려는 프로덕션이 줄을 선 최고의 프로듀서님께는 일이 더 중요하겠죠. 네네, 톱 아이돌이라도 올해한정판인 이런 유통기한이 금방 끝나는 아이돌에게는 이제 용무가 끝나신 거겠죠.”

P는 리카의 짜증에 곤란함을 느끼며 묵묵히 운전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리카 말이 너무 심한데.”

그런 P의 말을 무시하면서 리카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자, 그래서 이거 다음은 어디로 가? 또 스케줄이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점심때는 라디오 녹화 하나랑 저녁때는 ‘넘버원’이라는 생방송이 잡혀있어.”

“그렇구나. 점심조차 여유롭게 같이 못하는 거네.” 

“그 아마.”


리카는 입을 다물더니 창가를 보았다. 검게 코팅이 된 창문으로는 제대로 된 풍경감상이 힘들었다. P는 그런 리카의 분위기에 안절부절 못했다.
사실 자신이 생각해도 좀 너무한 감이 있었다. 연인이 된 바로 다음 날이라면 평소와 다른 말 한 마디 정도는 해도 좋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행동하는 건 자신에겐 무리였다.

“나도 알고 있어. 프로로서 일을 소홀히 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걸 말이야.”

리카가 무심한 척 턱을 괴며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P는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해줘도 좋았잖아. 많은 건 바라지도 않았어. 상상은 했어도 결국 힘들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애가 아니라 알았어.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었잖아?”

백미러를 통해 보니 리카의 눈가가 빨개지며 축축해져 갔다. 차분한 척 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말 할수록 감정이 복받치는 듯 하다.

“나도 지금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한지 알고 있어. 애처럼 투정이나 부리고.” 

리카는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시선은 여전히 창가에 가 있었다.

“연인이 되고 첫날부터 당신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정말 최악이야 나. 첫 날부터 이런데 앞으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불안해져.” 

“리카.”

P가 조심히 불러보았다. 리카는 그것을 못 들은 척 계속 이야기했다.

“첫 날 정도는 프로듀서와 담당아이돌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연인인 리카로서 대해주면 안 돼?”

애원하듯 묻는 그 말에 P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리카도 기대하지 않은 것인지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차는 한 동안 달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어느 공원 쪽으로 들어가더니 공원주차장에서 차를 세웠다.
리카는 갑작스런 방향 전환에 놀래 P쪽을 보았는데, P는 의자의 레버를 당겨 등받이를 뒤로 넘겼다. 그러더니 뒷좌석에 있는 리카 쪽으로 몸을 가져가 그대로 놀라고 있는 리카를 안으며 그 입에 입을 맞추었다. 
입맞춤은 짧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던 리카는 곧 얼굴을 붉히고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런 리카를 P가 다정하게 불렀다.

“리카.”

“왜, 왜?”

리카는 당황하며 답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점심까지라면 스케줄을 비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
“문제없어.”

P는 웃으며 듬직하게 말했다. 리카는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 호의를 거절했다.

“됐어. 내가 어린애였어. 그래서 괜찮을 리가 없잖아.”

빠져도 되는 스케줄 같은 것을 P가 잡았을 리가 없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아닌 P가 많은 욕을 먹을 것이다. 

“난 괜찮아.”

P가 그리 말했지만 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안 괜찮아. 나야 은퇴하면 끝이지만 P는 아니잖아. 당신의 신용이 깎이는 일이야. 그렇게 하면서 내 고집을 피우고 싶지 않아. 대신에, 아침 스케줄까지 얼마나 여유가 있어?” 

P는 그 질문에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고서 리카에게 답했다.

“가는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을 빼면 10분밖에 없어.” 

10분. 너무나 짧았다. 아침을 같이 먹기에도, 산책을 하기에도 모잘란 시간이었다. 하지만 리카는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거면 충분해. 그럼 그 10분 동안은 날 위해 써줘.”
“이런 말하기 미안한데, 어떻게?”

P가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리카는 웃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면 알려줄게.”

리카가 웃으며 요구하자 P는 얼굴을 붉히다가 천천히 말했다.

“사랑해, 리카. 그리고 무심해서 미안해.”
“괜찮아.”

리카가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서 서로 웃었다. 그리고 P가 입을 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카는 P를 끌어안고서 그대로 입을 맞추어다. 가벼운 키스가 아니었다. 짧은 시간동안 풀 수 있는 건 모두 풀어보겠다는 듯 거칠게 상대에게 침범하고, 그리고 빨아오는 그런 키스였다. 
혀와 혀가 얽히다가 풀어지기를 몇 번. 잠시 서로 얼굴을 떼어내며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았다. 서로의 입에서는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가 풀어졌다. 향수냄새와 땀냄새가 섞여 서로의 코를 자극했다.
살짝 풀어진 P의 얼굴을 보며 리카는 그 안경을 벗겨냈다. 그리고 요염하게 웃었다.

“이렇게.”


그리고 다시 키스를 하였다. 시동 걸린 차안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방송도 있어 키스정도에 만족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지금 당장은 부족한 어느 정도를 풀 수 있었다.   



 

달리는 차안은 처음보다 에어컨의 바람을 더욱 세게 조정해놓았다. 서로 어딘가 부족해 보였지만, 리카는 그래도 만족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리카는 뒤에서 소악마처럼 웃으며 P에게 말을 걸었다.

“이정도로 괜찮겠어?”

“하하, 괜찮아.”

“아까 보니 아래는 전혀 괜찮지가 않던데?”

리카의 말에 P는 헛기침을 하였다. 리카는 뒤에서 슬그머니 P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사이에 등받이가 껴서 팔만 넘겨 목을 끌어안은 모양새였다.

“이 등받이 방해돼. 이거 언젠가 치워버리자.”

“그러다가 여러 가지로 내가 불편해.”

리카는 쿡쿡하고 웃다가 몸을 틀어 얼굴을 P의 얼굴 옆으로 가져갔다.

“오늘 밤도 그냥 집에 갈 거야?”

“그래야지.”

P가 담담한 척 말했지만 리카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내밀며 말했다.

“이번 주 내내 바빠?”

“내일 모레는 점심때부터 있어.”

“그럼 내일 자고가.”

“왜?”

“당신도 부족하잖아.”

P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리카는 그런 P의 볼에 키스를 하고서 뒷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내일 밤으로 알고 있을게.”

“하아, 멋대로?”

“싫으면 말고. 대신 이것마저 거절당하면 나 제대로 삐질 거야. 당신은 모르겠지만 난 미국에서부터 거절당해왔거든?”

P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알았어. 잠만 자고 갈게.”

“정말 잠만?”

리카가 음흉하게 웃으며 묻자 P는 당연하다는 앞만 보며 말했다.

“응. 잠만.”

“그렇게는 안 될걸.”

리카는 확신하며 그리 말했고 P는 따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얼굴을 빨개져 있었고, 리카도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귓가가 빨개져 있었다.



 

아침과 점심 스케줄을 끝내고 둘은 방송국의 대기실에 있었다.  

“뭐야, 원래는 하루 1회 프로그램인데 왜 이번에는 2회로 바뀐 거야?” 

리카가 ‘넘버원’이란 프로그램의 설명을 듣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P는 그 질문에 프로그램에 대해 적힌 종이를 보다가 리카를 보았다.

“너가 참가하니깐. 원래 이 프로그램 자체가 참가한 아이돌을 전문가와 방청객, 그리고 시청자들이 현장에서와 인터넷으로 점수를 매기는 형식인데 그게 나름 인지도가 있어서 여기서 1위를 하면 크게 인정받고 있어. 그래서 보통은 신인이나 애매한 위치의 아이돌들이 참가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에 네가 참가해서 지원하는 아이돌들의 랭크가 확 올라가 버렸나봐. B랭크에서 A랭크까지 신청하니깐 그 자체로만 해도 시청률도 확보되고, 거기다 프로그램 수준도 높아져서 차라리 특집으로 2회로 편성했다고 해.” 

그 설명을 듣고서 리카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다면 그건…….”

“맞아. 겉으로는 서로 경쟁해 넘버원을 가리자는 거지만, 그 실상은 ‘미국에서도 성공한 일본 최고의 톱 아이돌 리카에게 도전!’이란 분위기야.”

그 말을 듣고 리카는 머리를 감쌌다.

“그, 그게 뭐야. 그렇다면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손해란 말이잖아? 왜 이런 프로를 받아들인 거야?”

리카가 원망스럽게 노려보며 묻자 P는 여유롭게 말했다.

“좋은 기회니깐. 미국에서의 성공이 운이라고 말하면서 니 실력을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거든. 하지만 그런 의심도 일본 톱 아이돌들과 경쟁해 이기면 사라져 버릴 거야. 그리고” 

P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이것으로 넌 명실상부 일본 최고의 아이돌로 군림할 수 있게 돼.” 

“뭐야, 이미 그런 평가 아니었어 나?”

리카가 태연한 표정으로 묻자 P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여전히 비교 받는 부분은 있어. 아이돌로서는 최고라도 가창력은 전문 가수에 밀린다거나, 댄스실력은 사실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거나. 미국무대의 성공 때문에 본래 실력 이상으로 거품이 꼈다거나. 그렇게 하면서 비교하는 아이돌 대상들이 있는데, 그 아이돌 중 몇 명이 이번 넘버원에 참가해.”

“하아, 그 아이돌들은 당신이 참가하도록 유도한거겠지?”

“당연하지.”


P가 당연하다는 듯 한 대답에 리카는 한숨을 쉬었다.

“당신, 그러다 내가 1위를 못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럴 리가 없어. 리카의 실력은 내가 보증해. 누가 뭐래도 나의 아이돌이니깐.” 

프로듀서의 그 자신감 어린 말에 리카 쪽에서 얼굴을 붉혔다. 

“그 당당하게 말하네.”

“당연하지. 지난 1년간 미국에서 너의 실력을 봐온 나야.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넌 명실상부 일본 최고의 아이돌이야. 이번 프로그램은 그걸 확고히 하면서 일본전역에 알려주는 발판일 뿐이고.”

아무래도 이 사람에게는 자신의 패배가 상정되어 있지 않구나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괜찮겠어? 765프로의 아이돌도 참가할 것 같은데.”

“아, 괜찮아. 일부러 불렀으니깐.”

“그래? 누구를?”

“호시이 미키. 재능만큼은 퍼펙트라 해도 좋을 아이야.”

리카는 흐음 거리며 팔짱을 꼈다.

“그런 아이를 부른다고?”

“응. 지금은 톱 아이돌이지만. 톱 아이돌 이전에도 미키는 제대로 해서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어.” 

“……그런 아이하고 경쟁하라고?”

“걱정마. 미키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지금의 너에게는 안 돼.”

“어째서?”

“져본 적이 없으니깐.”

프로듀서는 그리 말하며 뭔가 씁쓸하게 웃었다.

“미키는 뭐랄까, 향상심라고 할까. 하여간 그런 게 부족해.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 때문에 본인이 크게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일 수 있는 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어.”

“오호라, 그러니깐 나와 대결 시켜서 패배를 계기로 그 향상심이라는 걸 생기게 하겠다? 너무하네. 담당 아이돌을 상대 아이돌을 위해 이용하다니.”

“담당아이돌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라 부탁할 수 있는 거야. 리.카.”

그 말에 리카의 귀가 빨개졌다.

“다, 당신 이런 곳에서 그런 말 해도 되는 거야! 스캔들은?”

“괜찮아. 이곳에 오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으니깐.”

“호, 혹시 만에 하나!”

“왜, 다시 말해줄까? 사랑하는 리-”


그러면서 둘의 얼굴은 가까워져 갔다.

“프로듀서씨 있나요!”

P가 웃으며 다시 말하려 할 때 대기실 문에 노크를 하면서 누군가 활기차게 말했다.
둘은 하던 행동이 있어 놀라 서로 거리를 벌렸다. P는 헛기침을 한 후 노크에 답했다.

“네, 있습니다만.”

그러자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면서 귀여운 소녀가 웃으며 들어왔다. 양쪽에 두 개의 리본을 맨 활기찬 웃음이 어울리는 소녀. P가 예전에 담당했던 아마미 하루카였다.

“하루카!”

“와, 역시 계셨군요! 리카씨의 이름을 보고 혹시나 해서 와봤어요!”

P가 반갑게 맞이하자 하루카도 반가워하며 가까이갔다. 그러더니 리카에게 허리를 숙여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765프로덕션의 아마미 하루카라 합니다! 이번 넘버원의 MC를 맡게 되었어요.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리카씨!”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하루카씨. P씨에게서 당신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리카가 반갑게 인사하자 하루카가 고개를 들며 놀라워했다.

“흐에, 프로듀서가요? 뭐라고 하던가요!”

눈을 빛내며 묻는 하루카에게 리카는 장난기가 발동해 P를 한 번 보고서 웃었다.

“그게, 또 어디서 넘어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더라. 늘 덤벙거리고 넘어져 걱정이라고…….”

“너무해요 프로듀서! 그, 미국에 가서 저에 대해 할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보다 프로듀서씨가 기억하는 제 이미지는 그것 뿐!?”

어딘가 충격이라는 듯 화를 내는 하루카 앞에서 리카가 쿡쿡 웃었다.

“아니, 그 이야기도 했지만 다른 이야기도 했어.”

“맞아. 넘어지면서 보인 속의 색깔이라거나……”

“그, 그런! 프로듀서 저질이에요!”

그리고 그대로 얼굴을 붉히며 대기실에서 나가려는 하루카를 당황한 P와 장난친 리카가 잡았다.

“하하, 농담이에요 하루카씨. 그런 이야기까지는 안했어요. 넘어진단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우-”

하루카가 원망스럽게 프로듀서를 노려보았다.

“굉장히 반짝이는 별 같은 아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남을 잘 챙기고, 리더로서 어울리는 귀여운 아이라고. 거기다 남을 즐겁게 해주는 아이돌로서는 최고라는 이야기도 했어요.”

“프로듀서가 그런 이야기를…….”

하루카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P를 흘끔 보자 P는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모두 사실이야. 실제로 1년 동안 어느 정도 성장할 지 제일 궁금했던 사람이 하루카였어. 그리고 역시나네. 이 프로그램 상당한 지명도가 아니면 MC를 맡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그걸 하루카가 하고 있다니. 대단해!”

P의 칭찬에 하루카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렇게 칭찬하면 내 점수에 유리한가?”

리카가 웃으며 묻자 하루카도 같이 웃었다.

“그게, MC에게는 아쉽게도 점수에 권한이 없어서요. 대신 응원은 해드릴게요!”

“미키는 어쩌고?”

P가 묻자 하루카는 밝은 웃음으로 이를 보이며 P를 보았다.

“미키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누가 뭐래도 765프로의 최고 아이돌인 걸요!”



 

하루카의 장담은 사실이었다. 첫날 1회 째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미키는 최고득점을 획득했다.
전문가 20점, 방청객 15점. 시청자 15점으로 총 50점 만점에서 미키는 47점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 점수는 다음 날 2회 째에서 리카가 나오기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미키의 우승으로 거의 확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설사 리카가 나온다해도 쉽게 깨어지지 않을 것 같았고, 해도 팽팽한 대결이 될 것 같았다.

“과연 대단한걸, 미키.”

“정말 당신이 칭찬할만 한데. 이거, 잘하면 망신당하겠어.”

리카는 곤란하다는 듯 웃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노래는 정했어?”

P가 묻자 리카는 웃으며 한 CD를 보여주었다. 그 CD에 적힌 노래를 보더니 P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 노래는……”

“당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지. 왜, 안 돼?”

리카가 묻자 P는 곤란해 하며 머리를 긁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상관없어. 이제 그 아이에게는 전해줄 수도 없는 노래니깐. 하지만 그걸 로는 힘들 텐데…….  전문가가 아니라 잘 만든 노래가 아니거든.”

리카는 검지를 입가로 가져가며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왜 최고인지 잊었어?”

그러고는 마지막 자신의 차례가 되자 무대로 가며 말했다.

“그 어떤 노래로도 최고의 무대를 만들 수 있어서야!”

그리고 그 날 마지막 공연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점수는 50점 만점에 49점. 전문가들에게는 노래선곡에서 약간의 마이너스를 받았지만 그래도 방청객과 시청자들에게 만점을 받아 1위를 하였다.
그런 리카의 재량에 1년간 같이 했던 프로듀서조차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알아챘다. 미키가 자리에 없음을.

“미키…….”

지금 미키가 어떤 심정으로 떠났을지 상상을 하다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졌어…….”

미키는 그 결과를 보고서 생방송임에도 자리를 못 지키고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불 꺼진 대기실에 있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미키 열심히 했는데…….”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몸을 둥글게 말며 자신의 양팔을 스스로 껴안았다.

“허니…….”

소리 없이 눈물이 눈가에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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