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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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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9, 2016 02:12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안즈는 이 프로그램과 상성이 안 좋다.
제1코너 정권 지르기 100회. 아이돌 아이들이 나란히 서 열심히 주먹을 뻗는다. 먼저 100회를 완료한 쪽이 승리.

"정권 지르기는 격투기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가라테 수련법 중에선 정권 지르기로 촛불을 끄는 수련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기술이죠! 자아, 깨끗한 자세로 먼저 100번을 마칠 아이돌은 과연 누구일까요?!"
MC가 눈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힘차게 사회를 본다. 아이돌 아이들은 MC와 정반대로 헥헥거리며 겨우겨우 정권을 지르고 있다.

안즈도 마찬가지.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숨을 마구잡이로 뱉어내며 비틀거린다.

"무, 무리야~"
안즈가 털썩 쓰러졌다.
"아앗, 여기서 첫 번째 탈락자가!"
안즈는 혀를 쭉 뺀 채로 헉헉거렸다.
"이런, 탈락했군."
"예상한 바입니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100회를 채운 아이돌이 나왔다. 제1게임은 종료. 아이돌 아이들은 무대 정리를 위해 뒤로 물러섰지만…….

"저기, 후타바 안즈 씨? 슬슬 뒤로 물러나 주세요."
"안즈……. 힘을 다 써버렸어. 안즈는 니트니까..."
"니트?"
"저기, 미안한데……. 안즈를 뒤로 굴려줄래?"
"예? 하지만……."
"부탁이야. 그러면 뒤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아."
"아, 알겠습니다. 으랏챠!"
MC가 있는 힘껏 안즈를 굴렸다. 안즈는 데굴데굴 구르다 세트 벽에 철퍼덕 찹쌀떡처럼 달라붙었다.

"괘,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힘을 너무……."
"안즈……. 이대로 매미가 되고 싶어. 힘들다……."
"괘, 괜찮나 보군요……."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간다.
카메라가 이 광경을 남김없이 찍는다.

프로듀서는 카메라가 찍는 것까지 전부, 지켜보고 있다.

"아아, 그런 거였나. 혹시 일부러 저렇게 시킨 건가?"
디렉터는 프로듀서의 의도를 짐작했는지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아뇨, 원래 저런 아이입니다. 이렇게 녹초가 되는 방송이라면 저럴 거로 생각했죠."

제2게임
팔굽혀 펴기 200회!

"으윽, 힘들어."
"후타바 안즈 씨! 벌써 리타이어입니까?!"
"이대로 아스팔트에 들러붙은 껌이 되고 싶어……."

제3게임
윗몸 일으키기 200회!

"무리."
"후타바 안즈 씨! 최속 탈락!"
"안즈……. 이대로 매트가 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안즈는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최소 1포인트를 얻은 아이돌 아이들도 있었지만 안즈는 유일한 0포인트 보유자가 되었다.

"이런, 꼴찌가 됐나? 하지만 그만큼 눈에 띄었군."
"제가 보기엔 재밌는 장면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 정도라면, 편집은 안 되겠군."
"감사합니다."
"있는 그대로 평가한 것뿐일세. 자아, 그럼 나도 슬슬 자리로 돌아갈까나."
어필 타임의 촬영 전. 디렉터는 자리로 돌아가고, 0포인트를 기록한 안즈는 녹초 상태로 프로듀서에게 돌아왔다.

"프로듀서, 지쳤어."
"정말 수고했어."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사탕을 건넸다.

"또 골든 캔디가 아니네?"
"그건 중요할 때만."
"치이……. 쩨쩨하게……."
안즈는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다 그대로 씹어먹었다. 까득까득 잘도 씹어먹을 기력이 남아있다 싶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면서.

"잘했어. 안즈."
"너무 힘내서 이제 두 번 다시 일할 수 없는 몸이 될지도 몰라."
"괜찮아. 다음 스케줄까지는 휴일로 잡아둘게."
"저, 정말?! 얏호!"
안즈는 폴짝거리면서 좋아했다.

"대신에 학교는 꼭 가라."
안즈는 풀이 죽어 그대로 주저앉았다.

5월 22일

프로듀서는 서류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로지 모니터에만 시선을 박아둔 채로 키보드를 쉴 새 없이 두드렸다. 키보드와 손가락이 들러붙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프로듀서는 쉴 새 없이 손가락을 놀렸다.

프로듀서는 주변 그 어느 것에도 관심 하나 주지 않으며 집중해서 서류를 작성했다. 사무실엔 프로듀서 혼자. 지금 사무실엔 굳이 관심을 둘 만한 것도 없으니 업무엔 최적의 환경이다. 웬만해선 지금의 프로듀서를 멈추긴 힘들 테지.

그러던 중에 책상에 올려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라인에서 메시지가 왔다. 일을 멈추고 잠시 들여다보니 안즈가 보낸 메시지였다.

-프로듀서, 아직도 근육통이 남은 것 같아.

"이미 1주일이나 지났는데 말이야."
프로듀서는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힘들면 어쩔 수 없지……. 이번엔 조금 특별한 사탕을 준비했는데 네가 힘들다면…….
-뭐? 어떤 사탕인데?

바로 답장이 왔다.
프로듀서는 모니터에서 서류 창을 치우고 인터넷 창을 켜 외국의 간식 전문 사이트에 접속하였다. 프로듀서는 스크롤을 내리다 괜찮은 걸 발견했는지 상품 하나를 클릭했다.

-진짜 눈알처럼 생긴 사탕인데 깨물면 체리 시럽이 배어 나온대.
-우와 기분 나빠…….
-필요 없어?
-아니, 재밌을 것 같으니까 도전해볼래.

프로듀서는 답장을 확인한 다음 사이트에 주문을 넣었다.

아이돌 필살 전력 어필 대전을 촬영한 후로 1주일하고도 2일. 3일 쉬고 레슨 하루에 버라이어티 게스트로 3일에 CD 판촉 행사 하루, 그리고 오늘 휴일. 안즈는 스케줄에 잘 따라오고 있다. 레슨 날엔 늦잠을 자서 프로듀서가 전화로 깨우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프로듀서는 서류 창을 확인하고 저장과 인쇄를 눌렀다. 프린터기가 잡아먹은 종이에 글자를 새겨 배출한다. 그동안 프로듀서는 서류를 사내 인트라넷에 업로드했다.

카테고리는 정기 회의에 관한 카테고리였다. 오늘은 정기 회의가 있는 날. 프로듀서는 회의에 관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회의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비었다. 프로듀서는 비는 시간 동안 인터넷 검색에 빠졌다. 단순히 노는 게 아니다. 안즈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트위터. 안즈가 아이돌 필살 전력 이하생략에서 벌인 기행이 이상하게 합성되어 돌고 있다. 예를 들면 안즈가 화산이 막 분화하는 남쪽 섬에서 지쳐 쓰러진 식으로.

페이스북. 안즈가 스톰프를 한 영상이 트위터에서 수입되어 돌아다닌다. 업로드 자체는 유튜브에 되어 있었는데 유튜브로 넘어가 보니 호의적인 리플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번엔 2채널…….
이쪽은 되도록 스크롤을 빨리 내렸다.
이쪽은 호의적인 반응은 그냥저냥 그랬다. 원래 그런 사이트니까.

니코니코 동화까지 돌아볼까 생각하던 차에 슬슬 시간이 되었다. 프로듀서는 서류를 화일에 넣고 사무실을 나섰다.

회의 시작 5분 전, 프로듀서는 딱 그 시간에 회의실에 들어갔다. 프로듀서보다 먼저 회의실에 자리한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 프로듀서보다 어리고 경력이 낮은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그들이 챙겨온 자료를 다시 한 번 체크하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회의 2분 전. 슬슬 회의실 대부분이 채워진 시점. 경력과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 시점에 입실한다.
프로듀서를 찌르듯이 보는 시선 몇 개가 지나갔다. 회의실은 만석이 되었고 다들 가만히 회의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회의 개시.

회의는 주로 프레젠테이션 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최근 346 프로덕션 예능, 가수, 아이돌 부문의 종합 성과와 라이벌 프로덕션의 성과를 비교하는 자료가 프로젝터 화면에 떴다. 그에 맞춰 발표자가 분석 내용을 발표한다.

프로듀서는 발표 내용을 귀담아들었다.

이어 예능, 가수, 아이돌 부서별 대표자가 각 부서의 세세한 성과와 앞으로의 스케줄 등을 발표한다. 이후 다시 예능, 가수, 아이돌 순서별로 특이사항이 있는 담당자가 나서서 발표하는 식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예능, 가수 쪽은 저번 회의 때와 같은 내용.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내용만이 이어졌다. 안정적인 부서니 당연하다.

이제 아이돌 부서 차례. 아이돌 부서는 예능과 가수 쪽과 비교하면 실적이 불안한 편이니 발표자가 많다. 몇 명이 발표하고 나서 이제 프로듀서 차례. 프로듀서는 앞으로 나서서 리모컨을 조작해 자료를 띄웠다.

안즈의 프로필과 안즈가 여태까지 한 활동, 음반 초동 판매량, 인터넷의 반응 등 객관적인 자료가 프로젝터를 통해 드러났다.

프로듀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안즈에게 일렀던 것처럼 당분간은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가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성공한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누군가가 빈정거리는 투로 발표에 끼어들었다. 프로듀서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응시했다.

"확실한 비전이 있겠지요?"
중년 남성이 이죽거리며 프로듀서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가수를 담당하는 부서의 사람이었다. 꽤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니까 또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이겁니다."
중년 남성은 프로듀서를 대놓고 비웃었다. 실패. C.M.Y.K.를 프로듀스했던 시절의 이야기일 테지.
프로듀서는 미간을 찡그린 채로 대꾸했다.

"안즈를 향한 여론은 지금 호의적입니다. 지금의 화제성을 잘 살리면 결과는 반드시 나올 겁니다."
프로듀서는 형식적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실패 경력이 있는 사람의 말은 그대로 믿긴 힘들죠. 트위터 반응? 페이스북? 그런 건 지표가 되지 않습니다."
"초동 음반 판매량은 좋습니다."
"그걸 유지할 수 있단 근거는? 반짝인기 아닙니까?"
프로듀서는 잠시 눈을 감고 미간을 손가락으로 마사지했다. 뭉쳤던 근육이 술술 풀어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말했다.

"당신이 담당하고 있는 가수는……. 분명 작년에 3집 발매 하루 만에 순위권 밖으로 떨어졌던 거로 기억합니다. 가수의 실력은 문제없었고, 남은 건 뭐……. 프로듀스 문제겠네요. 그 앨범은 뜰 만한 앨범은 아니었죠."
"이봐요, 그건 작년 일이잖아요!"
"올해 이야기를 원하십니까? 좋아요, 분명 그쪽 부서에서 누가 유튜브에 숏 버전 PV를 업로드하다 실수로 음원 통째로 올렸던 적이 있었죠?
뭐 자주 있는 실수지만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우리는 말입니다. 연예계 종사자예요. 그리고 연예계는 항상 불안정합니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곳도 어딘가에선 흔들리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그걸 항상 감지해야 합니다. 순간적인 안정에 안주하다간 뒤처지게 되어있어요. 대중은 생각보다 일찍 질린답니다. 저보다 경력이 많은 당신이라면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그러니까 괜한 트집 잡지 마. 프로듀서는 이 말만은 꾹 삼킨 채로 형식적으로 웃었다.

중년 남성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언쟁은 이걸로 끝. 겉으로 보기엔 프로듀서가 한 방 먹인 식으로 끝났지만, 석연치가 않다. 회의 내용은 비디오로 촬영되어 전 사원이 열람할 수 있게 사내 인트라넷에 업로드될 예정이고, 서기 역할을 맡은 사람이 텍스트로 회의 내용을 간략해 같이 업로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태클을 받는 것 자체가 좋지 않다. 안 좋은 식으로 주목받으니까.
프로듀서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발표를 마쳤다.

그리고, 회의가 끝났다.
입안을 헹구고 싶었다. 입안에 남은 찝찝함을 빨리 털어버리고 싶다.

프로듀서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차에 과장된 헛기침 소리가 프로듀서를 불렀다.
프로듀서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드러내며 헛기침의 주인을 맞이했다. 회의에서 프로듀서에게 괜한 트집을 잡던 중년 남성이었다.

"요즘 살맛 나시나 봅니다? 좋은 일이죠. 축하합니다."
그는 그런 말을 쿡쿡 찌르는 투로 내뱉었다.
"격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는 커피를 창틀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말이죠, 그런 살맛이 어디까지 갈까요."
"글쎄요, 저도 모르죠. 그런 건."
"이런, 본인이 모르면 어떡합니까?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연예계는 불안한 법입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 프로그램에서 잘릴지 모를 정도로요."
"예예, 그런 일도 있지요.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압력을 받는 식으로요. 참 무섭네요."
프로듀서는 남성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창가의 커피를 보면서 말했다.

"사람에겐 분수라는 게 있으니까요. 각자 어울리는 무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원래 세상이 그래요. 못이 튀어나오면 툭 쳐서 집어넣는 거로 끝나면 안 됩니다. 휘어진 못은 제거하고 제대로 된 못을 다시 박아야죠. 이곳 346 프로덕션은 큰 성이에요. 아름다운 성엔 고귀한 사람만이 들어와야 합니다. 거지가 들어오다니, 분수를 알아야죠. 거기다 거지가 들어온 거로 멈추지 않고 광대 노릇을 하며 귀족 자리를 넘보니……. 기가 찰 노릇이죠. 거지는 거지답게, 자기 출신과 출생을 잘 알고 행동해야 하는 법입니다. 출신이 천하면 분수라도 알아야죠."
프로듀서는 시선을 돌려 중년 남성을 노려봤다.
이를 으득거리면서.

남성의 말이 프로듀서의 역린을 건드렸다. 이제 한계다. 참아야 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 프로듀서는 가까스로 입을 연 순간에 표정을 다듬었다.

"네에, 확실히 성에는 성에 걸맞은 사람이 거주해야 합니다. 창고를 갉아먹는 쥐새끼 말고요."
"그게 무슨……."
"4월 29일 TTS, 4월 30일 RS국, 5월 3일 매일TV, 5월 12일 도토리TV."
"그게 뭐죠? 그 날짜와 방송국들은?"
"세븐은행 594-8741-44125."
프로듀서가 담담히 읊자 중년 남성의 이죽거리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입니다. 다행히도 전 이 계좌가 누구의 소유인지, 무엇에 쓰였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앞으로도 알 바 아니겠죠."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글쎄요, 전 이게 뭔지 몰라요. 그래서 이게 어떤 용도로 카운터가 될지……. 지금부터 곰곰이 생각해봐 알 것 같습니다만……."
"그런 계좌 한둘 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말했잖아요?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크윽……."
"전 일이 이 이상 귀찮아지는 건 사양입니다. 그러니까……. 질 나쁜 장난은 그만 걸었으면 좋겠네요. 당사자가 들을 리는 없겠지만요."
프로듀서는 창가에 놓았던 커피잔을 들곤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중년 남성은 자리에서 한참 동안 이를 갈다가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계좌 몇 개를 파기한 모양이었다.

프로듀서는 사무실로 가는 길에 화장실 세면대에 커피를 버렸다.
부정 탈라.

입가심은 다른 자판기에서 뽑은 칼피스로 해결했다.

프로듀서에게 후회감이 엄습한다. 이렇게 끝낼 일이 아닌데……. 욱한 감정에 휘둘려 이성을 잃었다.

머리를 식히자.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일단 이 건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당분간 안즈의 매니지먼트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언제까지 잠잠할지는 모르나 프로듀서는 그저 이 틈을 최대한 활용할 뿐이다.

그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오늘 사내 인트라넷에 업로드된 영상과 회의록을 해외 IP가 읽었다. 뉴욕발 IP로 346 프로덕션 미국 지사의 IP였다. 이 하나의 IP가, IP를 타고 영상과 회의록을 읽은 어떤 인물이 프로듀서를 주목했다.

프로듀서는 그걸 바라지 않았다. 그 사태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인물은 프로듀서가 원하는 바를 짓밟듯이 가볍게 중얼거리며, 행보를 정했다.

"잠시, 돌아갈까. 일본으로."
그리고 우연히도 운명처럼 같은 시간, 일본. 346 프로덕션과 연결되지 않은 어느 사무소에서,
"아아, 모처럼 시간이 잠깐 비었는데 어디 재밌는 거 안 하나?"
어느 소녀가 실내인데도 모자를 푹 눌러쓰곤 TV 채널을 막무가내로 돌리고 있었다.

"노래방 가고 싶다!"
그러다 어느 채널에서 리모컨을 멈췄다. 아이돌 필살 전력 어필 대전의 재방송이었다.

-안즈……. 힘을 다 써버렸어. 안즈는 니트니까…….
-니트?
-저기, 미안한데……. 안즈를 뒤로 굴려줄래?
-예? 하지만…….
-부탁이야. 그러면 뒤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아.
-아, 알겠습니다. 으랏챠!

"아하하하하! 진짜로 굴렸어! 굴러간다! 넘 재밌다! 넘 재밌어!"

-괘,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힘을 너무…….
-안즈……. 이대로 매미가 되고 싶어. 힘들다…….

"마무리까지 완벽하잖아? 진짜 넘 넘 재밌다! 쟤랑 같이 일하고 싶어졌어!"
C.M.Y.K.의 전 멤버인 오오츠키 유이는 깔깔거리며 핸드폰으로 TV 화면을 찍었다.
이렇게 안즈와 프로듀서가 모르는 곳에서 파란의 조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5월 25일

오늘 안즈의 스케줄은 레슨. 기초체력 레슨은 아직도 병행하고 있지만 그 외 가창력과 댄스 레슨 같은 기술 레슨은 좀 더 고급 단계로 넘어갔다. 안즈도 이제 초보자 티는 얼추 벗은 폼으로 발성하고 춤춘다.

안즈는 원래부터 머리가 좋았기에 가사는 처음부터 금방 외웠고 음감도 정확히 짚어냈다. 그래서 그 두 레슨은 다른 레슨보다 진도가 더 나간 편이다.

오늘은 가사에 감정을 싣는 레슨을 했다. 처음엔 엄했던 트레이너도 안즈의 성취를 보고 요즘엔 많이 누그러진 편이다.

"후바타! 그쪽은 좀 더 애절하게!"
"에에, 이거 안즈가 부르는 노래도 아닌데……."
"레슨용으로 부르는 다른 사람 노래라도 이건 레슨이다! 똑바로 해야지!"
많이……. 누그러졌나?
아무튼 오늘 레슨도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아, 힘들어."
"목 관리는 철저히 하고. 오늘은 이만 목을 편히 쉬도록."
레슨 시간 끝. 이제 자율 레슨만 남았다. 트레이너가 레슨실에서 나가자 안즈는 레슨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아, 귀찮아……."
잠시 쉬려는데 누가 들어왔다. 안즈와 그 인물의 눈이 마주치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레슨실로 들어온 인물은 미쿠였다.

"어라? 데자뷔가……."
"이번에도 일으켜 줄까냐?"
"어, 응. 고마워."
원래 그대로 쉬려고 했지만 아닌 척하고 호의를 받아들였다.

"저기, 그, 고마워."
"겨우 일으켜 준 거로 뭘. 냥."
"아니 라이브 때……."
"당연한 일인걸냐. 그 라이브는 미쿠의 라이브이기도 했으니까 냥.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어냐."
미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미쿠 쨩은 대단하네. 그렇게 큰 곳에서 공연하는 거, 지금의 안즈는 상상도 못 하겠어."
"그날도 말했잖아? 미쿠보다 더 대단한 아이돌은 흘러넘친다고. 냥."
미쿠는 그렇게 대화를 칼같이 끊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마치 화제에서 도망치듯이. 목소리에선 단호함이 물씬 풍겼다.

안즈는 레슨실 벽에 기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이돌 얼티밋 준우승.
분을 못 이겨 눈물을 흘리던 미쿠의 유닛. 통곡하는 미쿠의 사진.
프로듀서가 미쿠와 미쿠의 유닛인 C.M.Y.K.를 담당했던 시절.

과연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프로듀서가 곤란해 할 것 같아서 지금껏 파헤치질 않았지만…….
안즈는 머리를 굴렸다. 프로듀서가 곤란해 하는 건……. 프로듀서의 과거를 파헤치는 거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C.M.Y.K.에 대한 것만 물어보면?
마침 미쿠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저기, 전에 유닛 활동했었지?"
미쿠가 조금 놀랐는지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군다.

"그랬었어. 냥."
"힘들진 않았어?"
"으음, 딱히? 오히려 재밌었어. 미쿠는 리더도 아니었고. 그냥 다 같이 뭘 하는 게 재밌었지. 냐."
미쿠는 경계를 풀었는지 조금 전까지와 다르게 제법 편한 투로 이야기했다.
미쿠가 일부러 꾸민 태연한 분위기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이야기를 이끌기엔 좋은 분위기다. 이제 다음엔…….

"물어볼 건 그게 끝이야?"
"아, 응."
뭘 물어봐야 하지?

미쿠가 준비운동을 시작했고 겨우 형성된 분위기는 미쿠가 몸을 움직이는 열기에 밀려 금방 증발했다.

래도 어색한 분위기로 회귀하진 않아서, 미쿠가 안즈의 동작을 봐주거나 안즈가 미쿠의 동작을 따라 하는 식으로 자율 레슨이 진행되었다.

"하아, 힘들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직 자율레슨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 끝났어? 이 다음에 일 있어냐?"
"아, 아니, 오늘은 프로듀서랑 함께 좀……."
땡땡이를 치려고…….

미쿠는 안즈의 목적을 눈치 못 챘는지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안즈의 레슨은 끝났다. 안즈는 샤워를 간단히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에 사무실로 향했다. 레슨의 열기와 뜨뜻한 물에 데워진 몸을 식히며 유유자적하게 복도를 걷자니
"저기, 이야기 들었어?"
"그래,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오실 줄은……."
"그 부서도 이제 끝인가……."
"에이, 설마……. 결정을 번복하실 리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복도에 감돌았다.

안즈가 지나치는 사람마다 수상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답시고 목소리를 낮추거나 동료의 귓가에 대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중간중간 말이 새어 나온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안즈는 조금씩 새어 나온 정보를 맞췄다. 모두 같은 화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통에 유추하기 쉬웠다. 안즈가 이해한 바로는 이랬다.

오늘 누군가가 346 프로덕션에 방문했다.
요약하면 그랬다.

기습 감사라도 있는 날인가?
이야기를 듣기만 한 안즈가 괜히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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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3월 7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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