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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Y] 웃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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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8, 2016 23:34에 작성됨.

 

 

 어릴 적 나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격은 차분하고 그 모습이 우아하고 품위 있고 얌전한 그런 고양이 말이다. 지금도 그렇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

 

 

 벌써 세 번째라며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무엇이 세 번째냐고 하면 프로듀서를 갈아치운 것이다. 

 

 굳이 그런 수평적인 관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이돌과 프로듀서 중에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냐고 하면 역시 아이돌 쪽이 갑일 것이다. 처음부터 어떤 프로듀서가 발굴해내서 유명세를 얻게 된 아이돌이면 프로듀서의 입지가 더 커질 수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회사의 계약관계라면 그랬다. 요컨대 희소성의 문제다. 프로듀서는 다른 프로듀서를 구해도 될 일이지만 다른 아이돌을 구하는 건 힘들다는 이유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변명을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도 어려운 이유가, 벌써 세 번째였다. 내 담당이 바뀌어도 프로듀서가 해고를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괜찮다고 하기엔 빈도가 너무 잦다. 아니, 그래서 더더욱 프로듀서를 바꿔달라는 말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정말로 아주 만약에, 프로듀서를 세 번 갈아치운 아이돌은 해고라던가, 내가 프로듀서를 갈아치우면 그 프로듀서가 해고라던가 그런 조건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러는 편이 나도 훨씬 더 인내심을 가지고 프로듀서들을 대했을 것이고 프로듀서들 또한 좀 더 나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까.

 

 그랬다. 존중의 문제다.

 

 첫 번째 프로듀서는 나를 계속 '아리스'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싫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를 타치바나라는 성으로 부르는 건 아니었다. 이름을 직접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의 경우였고 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에만 허락했다. 몇 번이나 아리스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했는데도 고칠 생각이 없으니 나를 존중할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듀서와는 함께 못 해먹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프로듀서는 내가 싫어하는 일거리만을 계속 들고 왔다. 물론 아이돌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만, 나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들만 들고 오는 프로듀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견해의 차이라고 해도 좋다. 나의 장래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드는, 프로듀서의 개인적인 취향만 들어간 일들은 사양이었다. 그래서 그때도 못 해먹겠다고 말을 했다.

 

 세 번째는 너무나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두 번이나 프로듀서를 바꾼 나는 임시로 다른 프로듀서가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나도 어떤 불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능한 프로듀서였지만 그만큼이나 바쁜 사람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아이돌을 몇 명이나 맡고 있다고 했다. 얼굴을 보기도 힘들 정도였고 활동에 대한 상의는커녕 일방적인 통보를 받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좀 덜 유능해도 다른 프로듀서가 좋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부끄럽게도 어린애의 고집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높으신 분들한테도, 다른 프로듀서들에게도 나는 까다롭고 괴팍한 꼬마애 정도로 소문이 났을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늦은 일이지만 회사 안에서 나의 평판이 안 좋아지면 나에게도 전혀 좋지 않을텐데도 너무 쉽게 생각해버렸나 하고.

 

 덕분에 나는 일도 없이 레슨이나 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영업을 할 프로듀서가 없었으니까. 아직 회사 쪽에서는 나를 버릴 생각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그렇다고 내 변덕에 하인처럼 재깍 재깍 다른 프로듀서를 붙여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휴게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평소 독서는 좋아하는 편이었고, 하루종일 레슨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남는 시간에는 독서를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어디를 봐도 기묘한 남자를 만난 그 날까지는 말이다.

 

 

 

 "오, 상당히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네."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는데 방해를 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려고 말이다. 

 

 "뭐야, 꼬마 아가씨잖아?"

 

 눈이 마주쳤다. 기묘한 사람이었다. 나는 하려던 말을 잊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뜯어본다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머리는 제멋대로 삐쳐 있었고 눈은 졸린 듯 풀어져 있었다. 옷은 그럴 거면 입지를 말지 싶을 정도로 흐트러진 양복 차림이었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선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누, 누구신가요?"

 "응? 당연히 이 회사 사람이지."

 

 남자는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회사 사람이 아니면 이런 곳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수도 없었지만, 그의 괴짜 같은 모습을 보면 예능 사무소의 일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특이한 남자 아이돌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우리 사무소에 남자 아이돌은 없었다.

 

 "추리 소설이라.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걸 읽는구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는 할 수 있나?"

 "다, 당연하죠! 그렇게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어떤 유명한 작가의 추리 소설이었다. 평소에 미스터리 계의 소설을 읽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작가의 이름이 특이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마치 나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라는 듯 작가의 이름은 아리스였고, 등장인물의 이름조차 아리스였다. 아리스라는 내 이름을 싫어했지만 손이 안 갈 수가 없다.

 

 "결말, 알려줄까?"

 "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대체."

 

 스포일러, 그것도 추리 소설의 스포일러를 하는 건 지독하게 무례한 짓이었다. 남자도 정말 그럴 생각은 없는지 기괴한 웃음소리로 웃어넘겼다.

 

 "꼬마 아가씨는 이 사무소의 아이돌인가?"

 "꼬마라고 하지 말아주시죠. 저한테도 제대로 된 이름이 있으니까요."

 

 내가 발끈하며 말했지만 남자는 한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내가 얼굴과 이름을 모른다는 건 아이돌은 아닌 모양이네."

 "타치바나 아리스입니다. 저도 이 사무소의 아이돌이라구요. 타치바나라고 불러 주세요."

 

 내 말에 남자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나머지 한 손마저 꺼내 박수를 쳤다.

 

 "아, 그 모가지 아가씨였구만."

 "모가지... 아가씨...?"

 

 그 말도 안 되는 호칭이 생긴 이유가 대충은 짐작이 갔지만, 너무나도 무례한 호칭이 황당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한 번 슥 보더니 이번엔 아예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핫, 아리스라니 가관이구만!"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저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테니 내가 자리를 뜨기로 한 것이다.

 

 "아, 잠깐잠깐. 내가 꼬마 아가씨한테 너무 무례를 저질렀구나."

 "타치바나입니다!"

 

 뒤를 돌아서 나가려는 나에게 남자가 다시 말을 걸자 무심코 화를 내며 소리쳐버렸다.

 

 "자자, 그러지 말고."

 

 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건네왔다. 나는 한참이나 그가 내민 손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남자가 다시 말을 꺼냈다.

 

 "내가 오늘부터 너의 새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다. 잘 부탁한다구."

 "...뭐라구요?"

 

 그게 그 남자를 만난 첫날이었다.

 

 

 그 남자, 나의 네 번째 프로듀서는 첫인상과 다르게 제법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 기묘한 복장이나 말투, 웃음소리 같은 건 변함이 없었지만 사람 자체는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다. 게다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단번에 알아맞힌 것도 그렇고 교양도 상당히 갖춘 사람이었다. 단지 말 뿐인 무뢰한은 아니었다는 거다.

 

 프로듀서와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나는 썩 그 남자가 마음에 들게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놀리는 건 불쾌했지만, 항상 광대 같은 웃음을 짓고 다니는 그의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그 말이 맞다. 그 남자는 광대 같았다. 지워지지 않는 분장을 하고서 엉성한 표정으로 웃는 피에로 말이다. 

 

 프로듀서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특유의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도 그 입이 귀에 걸린 듯한 웃음을 보면 호감이 느껴질 만했다. 도대체 그 꼴로 어떻게 영업을 하고 다른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능하다고 할 정도로 일거리를 잘 따오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돌 활동도 순조로웠다. 겉으로는 대충대충 일하는 것처럼 보여도 프로듀서가 가져오는 일거리들은 모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비록 그중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많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모두 나의 성장을 위한 일들이었다. 요리 프로에도 나가고, 음악 프로에도 나가고,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도 했다.

 

 한 번은 일의 방향성에 대해서 프로듀서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프로듀서는 제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내 물음에 프로듀서는 또 실없이 웃었다. 무슨 질문을 그렇게 하냐는 듯 낄낄 웃어댔다.

 

 "뭐, 뭐가 그렇게 웃긴 건가요."

 "아리스가 어떤 식으로 노력하는지에 달렸지."

 

 실없는 대답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그러지 말구요. 프로듀서가 봤을 때 이런 쪽이 괜찮아 보인다 싶은 게 있잖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아리스는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어?"

 

 웃는 모습과는 다르게 제법 진지한 질문이어서 나도 곰곰이 생각한 후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네요. 그냥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그럼 아무거나 하면 되겠네."

 

 프로듀서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언제나처럼 느긋한 동작이었다.

 

 "아이돌 활동을 하려면 뭔가 방향성을 정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아이돌 활동을 계속 해. 그럼 뭔가 되겠지."

 

 프로듀서는 씨익 웃었다. 무책임했지만 나는 그 대화를 잘 알고있었다. 

 

 그제야 나는 실감했다. 이 프로듀서야말로 고양이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늘어지고 귀찮아하는 모습도, 그 속에 숨겨진 심지도 고양이를 닮아있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얼마 가지 않아 내 곁을 떠났다. 몸이 좋지 않아 일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못내 아쉬웠다. 불만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어떤 프로듀서보다 유능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광대 같은 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미련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

 

 

 어느새 시간은 흘러 나에게도 17살의 겨울이 왔다. 마음속 어딘가에선 음악 쪽의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아이돌 일이었기에 오래 가지 않아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벌써 5년째가 되었다. 오히려 주변의 동료들은 배우가 되거나 가수가 되거나 은퇴해서 예능계와는 상관없는 일반인으로 돌아가거나 했지만 나는 그대로 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단지 나이가 어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프로듀서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새로운 사람이, 다섯 번째 프로듀서가 붙었다. 좋게 말하면 너그럽고 착한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심약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프로듀서는 나의 관리나 스케쥴 조정에만 힘을 쓰고 대부분의 의사 결정은 내가 하고는 했다. 어떻게 보면 서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오늘의 일도 그랬다. 늦은 시간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간단한 토크를 하고 노래를 한 곡 부르는 정도였다. 어렸을 적의 아집과는 다르게 지금은 착실히 음악 쪽의 일을 늘려가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동료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언제까지고 아이돌을 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가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작사가라던가, 음악 방송의 관계자라던가 어떤 식으로든 좋으니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오랜 바람이었다.

 

 "어라, 아... 타치바나 양?"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평소처럼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얼굴을 보니 얼마 전까지 사무소의 다른 부서에서 사무원을 하던 분이었다. 얼마 전이라고는 했지만 언제 직업을 바꾼 건지도 몰랐던 게 사실이다.

 

 "아, 안녕하세요. 그냥 아리스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

 

 나도 그동안 성장을 해서인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역시 프로듀서, 그러니까 예전의 그 프로듀서 덕분이겠지. 나는 어릴 적 바랐던 것처럼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얌전하고 품위 있고 우아하게 행동하도록 노력했다. 좀 지나치게 애교 없는 고양이가 아닐까 했지만 스스로도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요? 그럼, 아리스!"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는 굉장히 즐거운 모습이었다. 

 

 "예전부터 정말 아리스라고 불러보고 싶었거든요. 그때는 역시 좀 그랬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예전에 그녀의 부서에 있던 누가 유명한 배우가 되어서 연락도 하기 힘들다던가, 그 때 라이브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엄청나게 놀랐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그리고 나는 무심코 생각이 난 것을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저, 프로듀서 씨는 지금 어떠신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 

 

 그녀는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떤 프로듀서요?"

 

 하긴, 대형 사무소에 프로듀서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제 프로듀서를 맡고 계셨던 분이요. 건강 때문에 휴직한다고 하셨던 분."

 "네? 그분은 그때 돌..."

 

 그녀는 약간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어나가다가 급히 입을 막았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혹시 아리스는 아직 모르는 건가요?"

 

 

-

 

 

 오늘따라 바람이 차가웠다. 간간히 심어져 있는 나무는 그 잎이 다 떨어져 오히려 황량한 분위기를 더할 뿐이었다. 울타리도 나무도 잔뜩 늘어서 있는 회색의 돌들과 같은 어두운색이라 흑백의 세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부는 바람마저 날카로워 나는 두르고 있던 머플러에 고개를 묻었다.

 

 5년 만에 만난 프로듀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을 걸어도 그저 그의 이름과 5년 전의 어느 날을 가리키는 날짜로 대답할 뿐이었다.

 

 앓고 있던 지병 때문에 일을 쉰다고만 들어서 그 후로 다른 회사로 이직이라도 했나 싶었지만 이제 와서 알고 보니 그 병은 아주 심각한 중병이었다고 한다. 나 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단다. 그렇게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나는 그의 쓸데없는 배려 때문에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지도 못했다. 나에게만 그 일을 숨긴 모두를 원망해도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흘렸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눈물이 떨어졌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5년이나 지나서 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눈은 멋대로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그렇게 빛바랜 세상에서 울었다. 

 

 "그렇게 어린애 취급만 하더니... 당신이 죽는다고 무슨 문제라도 있을 줄 알았어요?"

 

 눈앞에 프로듀서가 있었으면 정강이라도 한 대 차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어서 애꿎은 땅만 연신 차댔다.

 

 "봐요. 당신이 있든 없든 나는 혼자서도... 잘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버렸다. 눈물이 계속 흘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내 울었다. 듣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기에 마음껏 울었다. 

 

 왠지 프로듀서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앞에 그 특이한 웃는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양이가 한 마리 다가왔다. 검은 고양이었다. 마치 이야기 속의 그 고양이처럼 싱긋 웃고 있었다. 마치 나를 보며 안심이라는 듯 밝은 웃음이었다. 나는 그 고양이를 보며 웃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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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쓰고 나니 이게 어딜 봐서 고양이냐 라고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체셔 고양이에요.

 

고양이라고 하면 미쿠라던가, 네코미미라던가 그런 것들만 생각이 나기에 항상 그랬듯이 한번 비틀어 봤습니다.

 

조금 급하게 쓴 감이 있어서 아쉽네요. 아리스의 매력을 더 살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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