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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 죄책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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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7, 2016 23:08에 작성됨.


 하루카와 미키의 변명 같은 사정설명이 계속될수록 유키호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졌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엔 또다시 짙은 그림자가 미키를 덮었다. 하루카는 말없이 미키의 손을 잡아주었다. 떨림은 이윽고 멈췄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 이렇게 멀쩡해."
 지금껏 숨겨온 이야기를 모두 마친 그녀는 말 끝맺음으로 유키호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마코토나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줘? 괜히 신경 쓸 것도 아니니까."
 "싫어."
 유키호는 단호히 거절했다.
 "왜, 왜 이런 걸 숨긴 거야? 예전에도, 지금도 왜 혼자만, 혼자만 아프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걱정해줄 만큼 큰 일이 아닌걸."
 "사소해도, 하루카 쨩은 사소해도! 모르고 있던 나는 그렇지 않아…."
 울먹이는 유키호를 바라본 하루카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 아미 쨩도, 치하야 씨도, 프로듀서도…."
 그 말에 미키는 시선을 피했다.
 "다들 너무해. 정말 너무해……."
 유키호는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활짝 열린 문 바로 앞에 멈춰 서있는 아미를 보곤 서로 놀랬다.
 "우왓!?"
 "읏…!"
 눈물이 뚝, 하고 눈망울에서 떨어져 오른 볼 위를 흐른다. 아미는 휘둥그레진 눈을 껌뻑거리기만 했다.
 "미워."
 "으엣?"
 입을 꾹 다물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유키호를 하루카는 급히 뒤쫓아나갔다.
 "유, 유키호! 잠깐만!"
 "하루룽도?"
 아미는 두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미키미키, 유키뿅한테 무슨 일 있었어??"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미는 미키에게 물었다.
 "들켰네, 거짓말."
 미키는 담담히 대답했다.
 "거짓말? 무슨 거짓말?"
 "아미가 제일 먼저 알려준 거."
 미키는 집게손가락으로 아미를 가리켰다.
 "응? 나? 내가 뭔 말을 했더라?"
 아미는 고심하듯 머리를 쥐어짰다.
 "잘 생각해보면 금방 나오는 거야."
 "으음…, 흐으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유키뿅한테 꼭 사과해야겠다는 건 알겠어."
 아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빠르게 써나갔다. 울면서 나간 유키호가 신경쓰인 미키는 아미에게 무엇을 썼는지 물었다.
 "뭐라고 썼어?"
 "여기."
 아미는 미키에게 휴대폰을 보여줬다. 모은 손과 삽, 물음표 등 여러 가지 그림문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미키로서는 아직 숙달치 않은 아미만의 특별한 문자.
 "…뭐라고 읽으면 되는 거야?"
 "응? 아, 참. '미안해 유키뿅.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해! 다음엔 안 그럴 테니 그만 화 풀어줘~.'라고 썼어."
 "장난스럽게 보내면 더 싫어하지 않을까?"
 "그런가? 그럼 풀어서 보내볼게."
 아미는 문자를 고친뒤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시끌벅적한 바깥의 풍경과는 정 반대로, 냉장고 팬이 돌아가는 소리 외엔 적막의 순간. 나간 이를 기다리는 둘은 조용히 휴대폰의 알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계의 분침이 한 번 완전히 이동했을 무렵, 아미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 화면을 보곤 먼저 입을 열었다.
 "안 오네."
 "그러네."
 "역시 이걸로 화를 풀기엔 역부족인가?"
 "전화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맞다!"
 아미는 전화를 건 핸드폰을 귀에 댔다. 그러나 곧바로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전화기가 꺼져있다고…."
 "유키호, 많이 화났나 보네."
 "우와아앗?! 어쩌지?! 혹시 몰라서 마미한테 보낸 문자도 감감무소식이라구…! 아, 찾아가 볼까?"
 아미는 발걸음을 문 쪽으로 돌렸다.
 "마미랑 같이 있는 게 아니면 어떡하게."
 "앗."
 사무실을 나가는 발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루룽 휴대폰은 여기 있으니까 딱히 연락할 방법은…, 왜 안 받는 거야 마미…!"
 아미는 사장실 문을 톡톡 건드리면서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아으아으~ 모르겠다-!"
 아미는 열린 사무소 문을 힘없이 닫았다. 할 게 없어졌는지 응접실 가림막에 기대어 있는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구석구석을 쓸기 시작했다.

 

 미키는 쇼파에 올려져 있는 가방을 뒤적였다. 안에서 다홍빛의 도시락통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원래는 하루카와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싸온 것이지만, 현 상황을 보면 그녀가 일찍 오기엔 글렀다. 그 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흘러나온 유키호의 눈물을 닦아주기엔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에, 미키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다. 쇼파에 편하게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고 주먹밥 하나를 손에 쥐었다. 손에 김 가루가 뭍어 나와 사무실 바닥에 떨어졌다.
 "청소는 내가 하고 있다구-."
 아미는 빗자루로 김 가루와 먼지를 쓸었다.
 "조심할게~."
 상당히 고픈 배를 위해 미키는 한 입 크게 주먹밥을 먹었다. 아침에 싸온 주먹밥과는 뭔가 달랐지만, 별 신경 쓰지는 않았다.

 


#

 


 몇 개 남지 않은 주먹밥을 먹는 도중 어딘가에서부터 찬 바람이 슬슬 들어와 미키는 쇼파에 있는 하루카의 겉옷을 둘렀다. 포만감이 조금 차오른 미키는 아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미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뭐가?"
 아미는 행주로 프로듀서의 책상을 닦으면서 대답했다.
 "아미가 조언해준 대로 해봤는데, 하루카는 똑같은 거야."
 미키는 쇼파에 드러누워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대하든 간에, 그녀는 같은 행동과 표정으로 미키를 반겨준다. 아직도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키도, 나이도 예전과 달라졌지만, 그녀의 눈엔 여전한가 싶다.
 "흐으음, 이전에 잡지에서 본 건데. 그 뭐시다냐, 세간의 말로는 그, 음 그게… 어쨌든! 무슨 연애의 비법이 있다고 하는데…."
 "흐응."
 "그렇지! 아마도 피요쨩한테 물어보면 뭔지 알려주지 않을까? 이젠 세줄인데 웬만한 건 다 클리어했겠지-."
 "세 줄…."
 응접실에서 코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는 화들짝 놀라 응접실 안을 살폈다.
 "힉?! 피, 피요쨩, 거기 언제부터 있었어?!"
 "세 줄, 세 줄인데 아직도 이 신세……. 으히히히…."
 절망에 빠진 코토리는 음침하게 중얼거리며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아미는 코토리를 뒤쫓아가다 옥상 문이 열린 소리와 함께 고개를 미키에게로 돌렸다.
 "미키미키! 피요쨩이 이상해졌어-!"
 "아후~, 내버려두면 되는 거야."
 "그, 근데 말야. 그 도시락 누구 거야?"
 아미는 미키가 들고 있는 주먹밥을 보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해 행주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거? 미키 껀데? 왜?"
 미키는 한 입쯤 남은 주먹밥을 마저 입안에 넣었다. 손에 뭍은 기름을 휴지로 닦아냈다.
 "다 먹었네…."
 "응."
 아무렇지 않게 다홍색의 빈 도시락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미키를 아미는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으음…."
 아미는 행주를 올려두고, 옆의 쓰레기통을 정리하다가 한 번 더 미키를 힐끗 쳐다보았다.
 "난 모르겠다."
 "뭐가 몰라?"
 아미의 혼잣말을 얼핏 들은 미키가 물었다.
 "저기 있는 거, 저게 미키미키것 아냐?"
 아미는 구석에 있는 미키의 가방을 가리켰다. 미키는 번갈아 쇼파의 가방과 구석의 가방을 보다가 뭔가 깨달았다.
 "어라?"


 미키는 구석의 가방을 들추었다. 휴대폰과 작은 선물상자 등 자신의 소지품이 있었다. 안을 더 살펴보니 테이블 위에 올려둔 도시락과 비슷한 색의 도시락 하나가 있었다.
 "어라??"
 "아무리 그래도 내용물까지 착각하면 어떡해 미키미키!"
 "너무 배고파서 마구 먹었더니…. 똑같아서 착각했네. 아핫."
 "으응?"
 "이거 먹어봐."
 미키는 자신의 도시락을 열어 아미에게 들이밀었다. 아미는 서슴없이 안에서 제일 작은 주먹밥 하나를 꺼내 먹었다. 아미는 맛을 음미하는가 싶더니 하나 더 꺼내 먹었다.
 "설마 하루룽이 만들어 줬어?"
 "아니. 미키가 아침에 만들어 온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주먹밥은 하루카처럼 만들 수 있어."
 미키도 하나 더 먹었다. 도시락엔 주먹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호라."
 "그러니까 괜찮아."
 "왜?"
 "하루카는 미키껄 대신 먹으면 문제없어~."
 "그럼 좋을텐데…."
 "분명 괜찮을 거야~."
 미키는 텅 빈 도시락통은 식탁 위에 그대로 두고, 빈 자리가 하나 있는 도시락을 하루카의 가방 옆에 두었다. 평소와 같다면 하루카는 주의만 주고 넘어가줄 것이다.
 "크흠."
 도시락에 집중하고 있는 둘의 시선을 돌리듯 코토리는 헛기침을 했다.
 "앗, 피요쨩이 돌아왔다!"
 "쓸데없는 일이 있었던 듯하지만, 다 잊고 시작해보자고~!."
 "좋은 자세야 피요쨩."
 아미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

 


 "그래서 미키 쨩이 무려 연애경력 20년 차의 이 코토리씨에게 무슨 궁금증이? 아까 얼핏 들어보니까 연애에 관련된 문제…."
 "하루카."
 "하루카 쨩? 하루카 쨩한테도 드디어 연애설이?!"
 "미키는 하루카를 좋아하는 거야."
 미키의 거침없는 대답에 코토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아, 음, 그, 그래. 요새 방송하는 드라마 남성 주연인 하루카 씨말이지? 확실히 미키가 빠질 만큼 핸섬하긴 하지~. 물론 나도…."
 "아마미."
 미키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코토리의 말을 끊었다.
 "아, 아마미…, 아마미 씨……, 그 하루카 쨩이랑 동명이인이라 기억에 생생한, 잘생기고 젊은 카메라맨 씨 말하는 거구나~.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니 괜찮네."
 미키는 더욱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코토리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코토리는 그 눈빛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듯 더는 대응하지 못했다.
 "왜, 왜?"
 "다 알면서 말 돌리지 않는 거야."
 미키의 차가운 목소리에 코토리는 크게 기침을 했다. 코토리는 책상을 쾅 치곤 벌떡 쇼파에서 일어났다.
 "크흠! 그래, 취향 존중! 이 관대한 코토리씨가 미키 쨩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
 "오옷! 피요쨩 출동!"
 자신있게 허리춤에 손을 얹은 코토리는 힘차게 숨을 내뱉었다.


 "이 소재가 현실이…."
 코토리는 속마음을 중얼거렸다.
 "피요쨩?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아?"
 "핫…?! 이건 역시 안 돼 코토리잇~!"
 코토리는 사무소를 뛰쳐나가려 했지만, 아미가 그녀의 팔을 붙잡아 쇼파에 앉혔다.
 "어딜 가 피요쨩."
 "아앗, 여기에 끼어들지 말아줘~."
 "고민은 해결하고 가라구~."
 "그렇고 보니 아미 쨩도 하루카 쨩을 좋아하지 않니?"
 코토리의 말에 미키는 아미를 째려보았다. 아미는 미키의 시선을 바로 눈치채서는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니. 하루룽은 하루룽일 뿐이야."
 "아미 쨩이 하루카 쨩을 대하는 걸 보면 딱 견적이 잡히는데 말이지~."
 "똑같…."
 "어떻게 하는데?"
 아미가 의심스러워진 미키가 끼어들었다. 혹시라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선 안 된다. 아픔을 겪어야 하는 이가 또 생겨버린다.
 "하루카 쨩한테는 그 좋아하는 장난도 안 치고 말야~."
 "팔 나은지 얼마 안 됐으니까 조심스러운 거라구."
 "흐응~. 좋아한다는 마음을 그렇게까지 숨기지 않아도 된답니다~?"
 "누굴 좋아해?"
 급작스레 하루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곧바로 셋은 모두 굳었다. 어디서부터 들은 걸까. 언제 왔을까. 드디어 알아채준걸까.
 "왜 그렇게 서있어?"
 하루카의 물음에 방금 전 코토리의 말을 제외하곤 하나도 듣지 못했다고 미키는 눈치챘다. 그러나 아미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미동 없이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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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몇 크고작은 사건(?) 때문에 영 후속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네요.

혹시나마 기다리고 계셨던 독자분들껜 죄송함을 표하고,

다음 후속글을 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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