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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코, 씨를 위해 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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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2, 2016 22:42에 작성됨.

아키즈키 리츠코는 갑자기 나타난 수상한 사람에게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제 막 담당 아이돌과 합류하려는 참에 갑자기 나타난 이 소녀는 딱딱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몇 번 지나치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끈질겼다. 리츠코는 경찰을 부를까 했지만, 그러면 왠지 모르게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당신, 누구야."

 

"알 필요 없어."

 

리츠코와 시선을 마주치길 피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갈색 단발머리의 여자애. 벙찐 리츠코가 뭐라 더 입을 움직이기 전에 그녀는 뻔뻔하게 자기의 요구사항을 들이미었다.

 

"당장 그 애한테서 떨어져."

 

"그 애, 라니.....누굴 말하는 걸까."

 

"네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

 

"헤에.....조사 좀 단단히 하셨나봐?"

 

왜, 누구 마음대로. 보기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한 두어살 정도는 어려보이는데 이렇게나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걸까. 정말이지 요즘 애들은......리츠코는 한숨을 푹 쉬면서 이유를 물었다. 저렇게까지 담당 아이돌과 같이 있는 것을 반대할 정도면 분명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다.

 

"그 애랑 같이 다니면 안돼."

 

"웃기는 소리 그만둬. 내가 왜 당신 말에 따라야하는데."

 

"하여튼, 떨어지라면 떨어지는 거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억지를 밀어붙이는 소녀. 자기 자신의 합리성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막무가내의 주장. 듣는 것만으로도 리츠코의 머리가 아파온다. 그런데 이 아픔, 꽤나 익숙하다. 거기다, 그 애 아니고서는 입에 담지 않는 특징적인 말투가 들린 것 같았다. 이제보니 목소리도 아주 유사하다.

 

"잠깐......너."

 

그 뿐만이 아니다. 얼굴도 꽤나 비슷하다. 살짝 치켜올라간 녹색 눈도, 오똑한 코에 반짝이는 도톰한 입술. 잡티 하나 없는 깔끔한 피부. 체격이나 몸매도 꽤나 닮았다. 머리색깔과 형태만 제외하면 완전히 그 애, 손이 참 많이 가는 자기의 담당 아이돌. 호시이 미키다.

 

"읏......"

 

리츠코의 눈에 당혹감이 서린 걸 확인한 여자애는 잠깐 뒤로 물러나더니, 곧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 누구야."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여자애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는 리츠코. 마음 한 구석으로는 눈 앞의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지만, 그렇다고 지금 일어난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시이 미키는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곁에 있지는 않지만.

 

미키는 쌍둥이가 아니다. 위로 언니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대학생이다. 우연히 닮은 사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여자애의 태도도 이상하다. 이것 봐, 갑자기에 내 손을 부여잡질 않나......에, 잠깐!? 생각에 잠겨 멍하니 서 있던 리츠코. 정신을 차려보니 여자애가 그녀의 두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순간 떼어놓으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리츠코, 는......최악이야."

 

여자애의 두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톱 아이돌이야, 뭐가 미키를 빛나게 해주겠다는 거야. 웃기지 말라 그래."

 

여자애가 발한 폭언에 리츠코의 머리가 띵해졌다.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그녀는 계속해서 으르렁거렸다.

 

"저기, 있잖아......미키는 너랑 만나서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 "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는 주제에 꼰대처럼 이래라 저래라 짜증나. 잔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해. 속사포처럼 터져나오는 리츠코에 대한 험담.

 

"......"

 

점점 그녀를 비난하는 수위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여자애의 손아귀 힘이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리츠코는 화내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에게 쏟아지는 삐죽삐죽한 말의 화살을 받아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미키와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가, 미키와 똑같은 목소리로 자기를 욕한다. 이걸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겠는가.

 

"미키를 위해서라도, 넌 빠져. 그게 좋아."

 

그런데도 리츠코는 가만히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지금 그녀가 발하는 수많은 험담들은......거짓말이니까.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니까.

 

"너 같은 프로듀서는, 필요 없.....윽......흐윽....."

 

그녀는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리츠코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로 저었다.

 

"미안, 그렇게는 못하겠어."

 

"왜, 왜에......"

 

"나야말로 묻고 싶어. 네가 정말 누구인지,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와버린 건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나와 그 애를 떨어트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건지. 마지막 문구는 그녀가 리츠코의 작은 신체를 꼭 붙들어버린 탓에 입 밖에 내질 못했다.

 

".....미키는 제멋대로야."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녀가 슬프게 중얼거렸다. 이번에 나오는 말 또한 험담이었지만, 대상이 달랐다.

 

"그렇네. 그래서 뭐."

 

"잠꾸러기에, 땡땡이도 잘 쳐."

 

"잘 알아."

 

전략을 바꿔도 리츠코는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도 그럴게 교류한 시간이 그리 짧지는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다툼과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성실함과 불성실함, 합리적과 비합리적. 완전 정반대의 두 사람이었던만큼 피할 수 없었던 일.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미키는 버릇없는 아이야."

 

"뭐, 그렇지. 그래도 요즘은 기특한 구석도 있더라고."

 

리츠코는 미키에게 익숙해졌고, 미키도 리츠코에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익숙함을 넘어서, 톱 아이돌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동지로 변해있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해봤자 통하지 않는 건 당연지사.

 

"......흐아앙......."

 

그녀는 더 이상 험담이 통하질 않는다는 걸 깨닫고, 울었다. 울면서 더 이상 놓치지 않겠다는 듯 리츠코를 꼭 껴안았다. 그녀는 곤란해하면서도 허리에 팔을 둘러주었다.

 

"하아.....저기 있지, 너도......미키지?"

 

"응, 으응.....맞아, 미키야."

 

그 애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고 있긴 해도, 이렇게 직접 본인의 입으로 확답을 받고나니 참 오묘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서 미키가 한 번에 두 명이나 존재할 수 있는 걸까. 평행이론? 도플갱어? 클론? 각종 SF적 지식이 그녀의 머릿 속을 떠돌았다. 잠깐, 이럴 게 아니다.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다. 리츠코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왜 그러는 거야. 왜 그 애랑 나를 떨어트리려 하는 거니?"

 

한참을 머뭇거리던 '미키' 는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리츠코, 씨 때문이야."

 

그 말만을 남긴 체 '미키' 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러니."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여서야 질문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게 뻔했고, 알아듣기도 무척이나 어려울 테지. 리츠코는 빨리 이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하기를 기다리기로 하며 몇 번 등을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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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세계의 각성미키가 리츠코를 찾아왔다! 같은 느낌으로 뻐얼글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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