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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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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2, 2016 22:06에 작성됨.

내가 아직 젊었을 시부야의 거리를 동경하며 친구들과 용기를 내어 시부야의 거리를 처음으로 걸었던 그때. 어느 한 남성이 내게 와 명함을 내밀었다.

“아이돌에....흥미 없습니까?”

옆에서 꺄꺄 소리지르며 응원하는 친구들에 떠밀려 나도 모르게 내뱉은 “재미있을거 같내요”

사실 아이돌 같은 것에 흥미는 없지만 어쩌다보니 떠밀려 시작하게 된 아이돌 생활

.......본래부터 그다지 튼튼하지 못한 나였기에 매일같이 이어지는 맹연습에 지쳐 기숙사에 들어오면 지처 쓰러지기를 매일같이 반복했다. 프로듀서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때 내 등을 떠민 친구들을 원망하기도 하며, 가볍게 하겠다고 말한 날 원망하며, 매일매일을 지내다보니 어느새 프로듀서와 정이 들 때 쯤 나의 첫 라이브가 결정되었다. 라이브..라고 해봐야 선배 아이돌의 앞에서 선배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는 정도의 일. 이곳에서 내가 어색하게 불러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고 그 뒤 선배가 멋진 노래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하자면 어릿광대. 하지만 그런 일이라도 나는 좋았다. 좋았을....터였다.

 

그날은 비가 왔다. 스탭의 실수였을까. 선배가 라이브를 준비하는 동안 내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무대에 서서 어색한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선배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발이 미끄러졌다. 바로 일어나 죄송하다고 하고 이어서 불러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바닥을 집은 손이 바닥을 밀어내질 못했다.

손을 들어 보니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인 나의 오른팔. 무심코 아래를 보니 역시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인 나의 다리. 관객석에서는 비명이 들리고 스탭분들이 뛰어나와 나를 무대의 뒤편으로 대려갔다.

 

의사가 말했다. 평범하게 사는 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격한 운동이나 춤은 출 수 없어요.

그렇게 아이돌 은퇴가 결정되고 나의 아이돌 인생은 이렇게 끝이 났다. 집에 돌아가 요양중에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하고, 나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갈 줄만 알았다.

 

아름다운 공주님이에요~ 라며 간호사가 축하의 한마디를 던졌다. 불길한 마음이 든다.

아이를 출산한 후 몸조리를 할 시간조차 없이 병원을 나서야만 했다.

 

"이 개같은 집구석!!"

집에 들어오자마자 술상을 차리라는 남편의 명령에 있는찬 없는찬 다 모아 차린 술상을 보고 남편이 내뱉은 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남편이 일하고 돌아오셧는데 반찬이 이게 뭐야 시X놈의 여편내가 라며 시작된 남편의 폭력...

퍽퍽퍽.......안주가 마음에 들지 않은 남편은 날 쓰러트리고 무자비하게 밟아댔다.

응애~ 응애~ 하고 남편의 고함에 놀란 아이가 잠에서 깨어 울기 시작했고 남편의 분노는 아이를 향했고, 난 몸을 던져 아이를 지켜야 했다.

"아이만은 안되요 재발 아이만은 안되요!"

"놔 이 여편내가 누굴막아!! 시X놈의 여편내가!! 어쭈 안놔? 좋아 오늘 한번 죽어보자!!!!" 그 후로 아이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남편의 고함과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남편이 집을 나설 때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를 보육원에 맡길만한 돈도 없어 아이를 데리고 일터에 가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내신세가 처량하여 눈물이 난다. 그래도 이 아이만은...이 아이만은 지켜 내야해...라는 사명감..이것이 모성애 인걸까.. 어째서 나는 이 아이의 곁을 떠날 수 없는 것일까....

 

"바부우~" 아이가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이름조차 받지 못한 내 아이... 어재 밖에서 돌아온 남편의 한마디가 마음에 걸린다. “저년이 크면 저년을 팔아서.........”

 

처음부터 그가 이렇게 망가진 건 아니다. 처음의 그는 다정하고 상냥한 남자. 이 주변에서는 알아주는 집안의 삼남으로 상냥하고 영리한 그는 주변에서 사랑받는 남자였다.

 

"집안을 이을 남자아이가 필요하다."

"남자아이를 낳는 녀석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겠다."

아버님의 말씀.

 

몸이 좋지 못했던 나... 임신사실을 알고 병원에 가 진찰을 받고 부푼 마음을 안고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던 나날 그는 혹여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날 안고 싸며 보호 했다. 어느 날 산부인과 원장이 내뱉은 한마디. " 안타깝지만 부인은 이 아이를 낳은 후에는 다시는 임신을 하실 수 없습니다. " 몸이 약한 나는 자궁이 망가져 있어 이번 출산 후 다음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거라며 의사가 한 발언 남편은 한명이라도 사랑으로 키우면 된다고 날 달래줬지만 내 눈에선 속절없이 눈물만 흘러나왔다.

 

남자아이를 낳지 못해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남편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다. 처음엔 열심히 일해서 우리끼리 자수성가 하자고 했던 남편의 얼굴이 점점 초췌해지고 그에 비례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약간의 재산을 불리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매일매일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기를 3년간 매일매일 아이를 업고 나가 일을 하고 집안을 꾸려나가고 남편의 술과 담배살 돈을 충당하는 것 그건 나의 일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하루라도 빨리 저놈의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점점 커 가는데 왜 나만 왜 나만.........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왠일로 남편이 술에 취하지 않은채로 돌아온 날이 있었다.

남편은 자고 있던 아이의 방에서 아이 옆에 가만히 서서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어다보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자고 있는 아이의 옆에 가만히 서서아이를 바라보고 있기를 수시간. 예전에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라 불안한 마음에 옆을 떠나지도 못하고 남편과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창문 밖에서 햇빛이 세어 들어왔다. 저녁쯤에 들어온 남편은 아침 해가 뜰 때 까지 가만히 서서 아이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남편이 움직였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좀 더 가까이서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 너한태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구나...........그래....너의 이름은 ...........다”

 

남편이 내가 와서 한 말은 아이가 태어난 후 남편에게 처음으로 들은 상냥한 말 이었던 것 같다. “당신을 닮아 귀여운 아이가 왜 이렇게 더러운 거야. 당신의 얼굴도 너무 꼬질꼬질 하잖아! 돈 줄 태니까 이 돈으로 아이랑 목욕탕에라도 다녀와!”

 

이 돈이면 몇일을 더 먹을 수 있을 탠대... 망설이는 나를 남편은 밀어내며 어서 목욕탕에 다녀오라고 했다. 몇 달 만에 한 목욕다운 목욕.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는 소리를 냈고, 집에 들어와 보니 남편은 어디선가 사온 옷을 주며 “이거! 이 녀석 한태 어울릴 거 같아서 샀어. ”잘 때 추워 보이더라 잘 때라도 입혀서 재워“ 분홍색 토끼모양의 인형옷 처럼 생긴 파자마. ”이건 당신거야. 당신도 이거 입고 자라고“ 아이와 똑같은 분홍색 토끼의 파자마.

 

남편이 준 선물을 손에 들고 있자니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나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까지는 어째서... 이재부터 모든 게 다 잘될거야 잘될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 이었다. 행복했던 1주일이 지나자 모든 건 변해버렸다. 남편은 일어나질 못했다. 숨을 쉬지 않았다. 마치 얼음덩이처럼 차가웠다. 간암과 폐암. 사인은 암이었다. 매일매일 달고 살던 술과 담배가 남편의 사인이었다. 묘를 만들지도 못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나라다. 화장도 불가능 결국 야산에 땅을 파고 남편을 묻어주었다. 아마 이게 걸리면 난 감옥에 가겠지...? 아이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외국으로 튀었다고 하면 되려나.......

 

아이가 5살이 되자 유치원에 보내야 했다. 하지만 유치원에 보낼 돈이 없었다. 내 몸은 점점 병들어 갔고 아이는 먹여야 했다. 일은 점점 줄었다. 몸을 팔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병이 들어가자 내 몸을 사주는 남자조차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다.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댔고 난 힘들었다. 남편이 폭력을 휘두루던 그때가 차라리 나았다. 그때는 아직 할 일이라도 있었고 적은 돈으로 라도 먹고 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힘들다. 일은 없고 돈도 없다. 죽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보면 유치원 에도 가지 못해 하루 종일 집을 지킨 아이가 잠들어 있다. 이 아이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는 건지 알기나 하는 걸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나의 두 손은 잠든 아이의 가느다란 목을 잡는다. 잠시 동안 아이의 목을 잡고 있다가 손을 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자니 아이가 일어나 “그렇게 쳐울지 마는 거에요. 엄마는 웃을때가 가장 쳐이쁜거에요”

어쩜 이렇게 지 아빠 말투랑 똑같은지..,.....아니..이건 내 말투다. 아이는 날 보고 배웠던 거다.

 

아이가 6살이 되었다. 남편이 사준 잠옷은 이미 작아졌고 여기저기 해져있었다. 난 내 잠옷을 수선해서 아이에게 맞춰줬고 아이는 자기보다 좀 더 큰 잠옷을 받고 기분 듯 웃었다.

이 정도 크기면 10살까지는 입겠지.

 

아이가 자란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 병에 걸렸다. 비위생적인 환경 탓 이었을 까? 아님 재대로 먹지 못해서였을까? 불덩이 같은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 아이를 치료하고 보니 통장에 남은 돈이 없다. 4년 동안 뼈가 빠지게 모았던 돈이 겨우 한 번에 다 나가 버렸다.

 

아이가 8살이 되던 해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의 응급실.

영양실조, 그리고 암. 남편의 목숨을 앗아갔던 암. 이번엔 나 인가보다. 의사는 치료를 권했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나는 암 치료를 포기하고 고통을 참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9살이 되던 해 언재나 처럼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자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을 시간. 내 아이는 하루 종일 혼자 놀다 지처 잠이 들어 세상모르고 잠을 잔다. 아이의 옆에 앉아 아이를 처다 보기를 수시간.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차라리 죽자. 이 아이를 죽이고 나도 죽자. 어차피 난 얼마 안 있어 죽을 탠대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나. 그냥 죽자

 

아이의 목에 두 손을 가져가 가느다란 목을 움켜쥔 채로 힘을 주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강에라도 빠져볼까.

 

자는 아이를 깨워 밖에 나왔다. 오랜만에 엄마와 하는 산책이라며 아이는 기쁘게 웃었다. 아이를 대리고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해매며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커다란 전광판의 문구가 보인다. “당신의 꿈을 실현 하세요 우린 당신을 기다립니다. 346 프로덕션”

346프로덕션 이라면....분명 내가 아이돌 후보생 이었을 때 신세졌던 그곳. 오랜만에 그리워 져서 346건물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있었다. 내가 있을 때와 같은 커다란 건물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옛날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대로 서 있는 건물을 보고 있자니 가방성에 들어있던 카드가 생각났다.

분명 여기에 있을 탠대.......설령 아이돌을 그만 두더라도 당신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라며 건네준 출입카드. 열릴까?

 

“환영합니다.”

라는 한마디. 열렸다. 열렸어. 진짜로 열렸어......이미 잠든 아이를 등에 업고 건물 내로 들어가 아이돌 후보생 때 신세를 졌던 방에 가 보았다. 이곳은 지금도 아이돌을 키우는 곳이구나라는 생활감이 가득한 방을 둘러보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무으..........엄마아.....”

아이의 잠꼬대.

난 아이를 등에 업고 잠시 생각했다.

자고있는 아이를 소파에 눕히자 아이가 일어났다.

난 아이에게 “넌 이곳에서 아이돌이 되는 거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말고! 지지말고! 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알았지?”

“엄마가 무슨 말을 쳐하고 자빠진 건지 모르겠지만 알아쳐들은 거에요”

그리고 다시 아이를 재우고 건물을 빠져나와 그저 걸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무시하고 그저 걸었다. 어디로 도착하든 상관없이 그저 걸었다.

 

 

다음날 아침 346 프로덕션의 한 방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애야 넌 누구니?? 왜 여기 있는 거니?”

“전 이치하라 니나 엄마가 여기서 아이돌을 하라고 한 거에요”

“...........아이돌.....하고싶니?”

 

 

아이를 버리고 반년 정도가 흘렀다. TV에서 올해의 기대되는 신인 아이돌이라며 아이를 소개시켜주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흘렀다. 건강했구나. 저렇게 아름답게 웃다니. 내가 꾀매준 그 인형옷을 지금까지도 소중해 간직해 주었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오유의 이치하라 니나 아동학대설 이라는 글을보고 생각나서 작성한 글입니다.

생각나는대로 휘갈긴 글이라 내용이 부실할 지도 모릅니다..랄가 부실합니다. 핫하 하! 하지만 난 철면피라 신경쓰지 않지!! 핫핫하!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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