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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당신과 바라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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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4, 2016 22:59에 작성됨.

P [아침에 일어나 그대 얼굴을 마주하면]

 

 

 

호죠 카렌 [나,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같은 노을을 보고 있기는 한 것일까. 그 눈빛은 저 붉은 석양보다 훨씬 더 먼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P [너...]

 

물들인 머리칼도, 화려한 장신구도 그저 그녀를 이 지상에 잠시라도 묶어놓기 위한 구속구일 뿐. 잠깐이라도 풀어 놓으면 노을빛 바닷바람에 덧없이 흩어질 것만 같았다.

 

P [사망 플래그 놀이는 그만하고 얼른 내려와.]

 

카렌 [에, 벌써?]

 

P [감기 걸린다고.]

 

카렌 [핏...]

 

 

미니버스에 가까울 정도로 큰 차에 딱 둘이서 타건만, 굳이 카렌은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석에서 좌석을 힘껏 앞으로 당겨 운전하는 모습을 미지근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좌석에 몸을 뉘였다.

 

P [좀 자.]

 

카렌 [괜찮아.]

 

어느샌가 조스석이 카렌의 지정석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카에데나 치히로도 조수석에는 앉지 않는다.

 

드르륵- 찰칵

 

작은 기계음에 이어 오르골로만 연주한 듯한 맑은 음악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카렌 [이런거 들으면서 운전하면 안 졸려?]

 

P [시끄러. 그냥 잠이나 자.]

 

'안 졸리다니까'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웃으며 좌석을 뒤로 뉘였다. 그리고 몇분 지나지도 않아 눈을 감고 잠들어버렸다.

 

 

카렌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카렌이 졸린 눈을 비비고 사무소에 돌아왔을 때 본 것은, 이미 완전히 풀어헤쳐진 맥 봉지.

 

물론 종이 봉지안에 들어있던, 함부르크 풍으로 다진고기를 구운 스테이크를 채소와 빵으로 감싼 샌드위치는 누군가의 위장 속으로 다 사라지고 없었다.

 

타카모리 아이코 [어, 저기... 그게...]

 

류 해나 [미안, 카렌. 못 말렸어.]

 

그리고 범인

 

카에데 [아, 와버렸네요.]

 

카렌 [카에데씨...]

 

카에데 [잘 먹었어요.]

 

후후, 하고 쓸데없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P [적당히 해, 애들거 뺏어먹지 말고.]

 

정수리에 꽤 세게 한발 넣었다.

 

카에데 [아얏!]

 

P [저기 가서 손 들고 있어.]

 

카에데 [어, 언니...?]

 

P [얼른.]

 

카에데 [네...]

 

일단 원흉은 처리했다. 그리고 방향을 180도 돌렸다.

 

P [카렌도, 이런거 먹지 마. 좀... 몇번을 말해야...]

 

카렌 [하지만...]

 

아이코 [저기, P씨...]

 

해나 [가끔씩이니까...]

 

P [아니, 너희도 말려야지...]

 

생각 없이 뒷머리를 긁었더니 대충 묶었던 포니테일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버렸다.

 

카렌 [죄송합니다...]

 

P [카렌...]

 

생각보다 훨씬 풀이 죽어 있는 걸 보니 금새 마음이 약해졌다.

 

P [잔소리인건 나도 알지만... 응?]

 

뭐라고 말을 꺼낼지 모르겠다. 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어떤 말을 듣고 싶었었는지, 듣고 싶지 않았는지.

 

그러는 사이...

 

카에데 [그럼...]

 

어느새 뒤쪽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긴 손가락으로 슥슥 정리하고는 능숙하게 다시 묶는게 느껴졌다.

 

카에데 [언니가 해주면 어때요?]

 

카렌 [에?]

 

P [야, 너...]

 

처음부터 그 말을 꺼낼 생각으로 카렌의 햄버거 훔쳐 먹은거였냐.

 

P [누가 손 내리랬어?]

 

카에데 [끼잉...]

 

 

카렌 [나 P씨 집에 오는 건 처음인데...]

 

프로덕션에서는 카에데 다음, 즉 두 번째로 고참인 카렌이지만 집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는 카에데나 치히로뿐.

 

공사 구분이 확실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사생활 면에서는 밝혀진 면이 거의 없었다.

 

카렌 [보통이네...]

 

상상 이상으로 보통이었다. 꽤 잘 나가는 독신 직업 여성의 방이라면 보통 두 가지 극단을 떠올린다.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어지럽혀져 있거나, 무기질적일 정도로 정리되어 있거나.

 

하지만 이 집의 경우에는 그 정 가운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생활의 냄새가 제대로 배어 있었다.

 

P [좀만 기다려봐.]

 

어느새 치이익- 하고 고기 굽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P [젠장...]

 

발판이 삐걱거린다. 넘어질까 무서웠지만 그냥 두면 조리대가 높아서 요리를 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얼른 새거로 바꾸던지 해야지.

 

그래도 불편함과 다르게 완성품은 나쁘지 않은 게 나왔다.

 

다진 소고기만으로 조금 단단하게 구운 햄버그에, 수제 소스와 각종 채소를 올린 뒤 그릴에 구운 빵으로 감싼다.

 

사먹으려면 전문점으로 찾아가야만 할 것 같은 큼지막한 수제 햄버거의 완성이었다.

 

 

카렌 [...]

 

P [좀 크니까 들고 먹지 말고 칼로 잘라 먹어.]

 

카렌 [...]

 

P [카렌?]

 

카렌 [햄버거는...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거였구나...]

 

햄버거=패스트 푸드점 음식 이라는 공식이 카렌의 안에서 붕괴를 일으켰다.

 

P [패스트 푸드점같은 안 좋은 재료를 써서 좋지 않은 환경에서 만들지만 않으면 중요 영양소가 갖춰진 음식이니까.]

 

카렌 [자, 잘먹겠습니다...]

 

나이프로 한 귀퉁이를 잘라서, 포크로 크게 찍어 올렸다. 조금 큰 덩어리지만 한 입에 전부 밀어 넣는데 성공했다.

 

카렌 [~~~~]

 

씹는 순간 패스트 푸드에 들어있는 햄버거 패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육즙이 입 안에 가득 찼다.

 

신선한 채소의 아삭아삭함과 두꺼운 햄버그의 식감이 입 안에 가득 찬데다, 잡곡빵의 고소함이 슬쩍 사이로 끼어들어왔다.

 

카렌 [아우욱...]

 

삼킨 뒤에도 넉넉하게 넣은 양파의 단맛이 입 안에서 한참 맴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카렌 [P씨는 사실 요리 엄청 잘했구나...]

 

P [보통이야.]

 

카렌 [나, 햄버거에 대해 크게 잘못 알고 있었어...]

 

P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먹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갈색의 액체.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는 것을 한 모금 들이켰다. 청량한 향기와 함께 위장에 있던 음식물들이 쑥 내려가는게 느껴졌다.

 

카렌 [후훗...]

 

P [응...?]

 

카렌 [아니, P씨는... 잘 챙겨주는데도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져서.]

 

P [아... 그 뭐냐, 어려서는 나도 허약한 편이었으니까.]

 

카렌 [엑?!]

 

P [뭐야 그 표정은...]

 

카렌 [아니 그야... 묘하게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데서 챙겨준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에, 에엑...?!]

 

엄청나게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카렌 [이 P가... 허약?]

 

P [카렌? 여보세요?]

 

카렌 [아, 아아... 아, 아무것도 아냐.]

 

P [뭐, 그런거야. 나이 들면서 꽤 나아졌지만.]

 

그러니까 가르쳐주고 싶다. 새로운 세상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수제 햄버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멋진 것들이 아직 많으니까.

 

카렌 [응, 굉장하네.]

 

확실히 알아 들었다는 듯, 환한 웃음으로 답해왔다.

 

 

다음날.

 

P [잠깐 카렌 너...!]

 

카렌 [아니, 너무 굉장하니까 자랑하고 싶어져서...]

 

P [인터넷이 온동 수제 햄버거 투성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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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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