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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타카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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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3, 2016 20:25에 작성됨.

   "기타를 배워볼까 해요."

   "어머나."

   치하야는 취미 섹션 앞에서 걸음을 딱 멈췄다. 이름난 대형서점답게 높다란 책꽂이 하나가 악기 서적만으로도 가득했다. 치하야는 가지각색의 기타 교본들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몇 권을 집어들었다. 처음에는 한두 권 곰곰히 생각하며 꺼내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손가는대로 골라내더니 어느새 책들이 한 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 구입하실 의향이신지요. 실로 호기로우십니다."

   타카네는 어림잡아 열 권은 되어 보이는 책들을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봤다.

   "아뇨. 우선 조금 읽어보려고요. 애초에 아직 기타도 없으니까요."

   치하야는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한 권씩 펼치기 시작했다. 타카네는 그 옆에 서서 빽빽한 책들을 즐거운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뿌듯하군요."

   "맞아요. 서점은 그래서 좋죠."

   타카네는 '연주자를 위한 즉흥연주 메소드'라는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죠 씨는 악기를 다룰 줄 아시나요?"

   "특별히 내세울만한 건 없습니다."

   "연주법 책을 보시길래."

   "심오해보이는 제목이라 흥미가 생겼을 뿐입니다."

   두 사람은 웃음을 주고받았다. 치하야는 어린이를 위한 교본부터 전문가용 교본까지 구분 없이 펼쳐놓고 한 권씩 목차를 뜯어봤다. 심각한 얼굴로 페이지를 넘기던 치하야는 마음에 드는 구성인 책이 있을 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 제목을 머리속에 새겼다. 서점의 잔잔한 소음이 치하야의 집중력을 돋우고 있었다. 타카네는 연주법 책을 꽂아놓고 치하야가 쌓아둔 교본을 하나 집어들었다.

   "옛날의 어느 음악가는 기타를 작은 악단에 비유했다고 하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타카네는 치하야 옆에 가만히 앉았다.

   "베토벤이었던가요."

   작게 말하는 치하야는 타카네를 돌아보지 않았다. 책에서 눈을 돌릴 겨를도 없는 듯했다. 치하야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코드표를 보고 있었다.

   "배우면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음악 자체에 대한 이해도 넓어질테고, 현장을 파악하는 능력도 넓어질 것 같아요."

   "과연 그렇군요. 저도 한때 전기 기타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일렉트릭 기타요? 의외네요."

   "역시나 그런 '이미지'로군요."

   타카네는 작게 소리내며 웃었다.

   "밴드 공연에 함께할 때마자 전기 기타의 힘있는 소리에 매료된답니다. 헌데, 그건 그렇고..."

   타카네는 교본을 들여다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어려운 말이 너무나 많군요."

   타카네가 보던 일렉트릭 기타 교본에는 온갖 외래어가 가득했다.

   "이래서야 기타 공부인지, 외국어 공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타카네는 어쩔 줄 몰라했다.

   "음악 용어, 어렵죠."

   치하야는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타카네는 웃으며 한숨을 쉬곤 페이지를 자꾸만 넘겨댔다. 그 모습에서는 자기가 이해할만한 부분이 있는지 찾아내려는 오기 같은 게 느껴졌다.

   "배우실 거면 같이 해요.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게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치하야."

   타카네는 책을 가볍게 덮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타카네는 치하야에게 사지 않을 책들을 받아 책꽂이에 하나씩 꽂았다. 치하야는 인상을 쓰며 놓고 갈 책을 고르고 골랐다. 하지만 어느 틈에 치하야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 책 한 권을 제자리에 꽂아놓은 타카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치하야를 돌아봤다.

   "이것으로 끝이군요. 아무것도 안 사셔도 괜찮으신지요."

   치하야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책은 엔지니어 선생님께 여쭤보고 사려고 했어요.. 예전엔 세션 기타리스트셨다고 들었거든요."

   "그렇군요."

   타카네는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열심히 보시기에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실 줄로만 알았습니다."

   "죄송해요. 즐거운 나머지 그만. 오래 걸렸죠?"

   "아뇨. 덕분에 저도 흥미로운 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한 권 사갈 생각입니다."

   타카네는 아무런 장식 없는 두툼한 책을 들어올렸다. 한 눈에도 지루하고 딱딱해 보이는 책의 제목은 '서양음악사'였다. 치하야는 타카네다운 선택에 납득하며 괜히 한 마디를 장난스럽게 던져보고 싶어졌다.

   "외국인 이름이 많이 나올텐데요.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저라도 인명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타카네는 치하야의 말에 조금 민망했는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가라앉은 눈썹과 눈꼬리가 타카네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농담이에요. 괜찮으시면 나중에 저도 읽게 해주세요. 조금 읽다가 갈까요?"

   치하야의 웃는 얼굴에 타카네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치하야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곧장 집에 돌아가기에도, 어디로 자리를 옮기기에도 조금 애매한 시각이었다.

   "저기 카페에서 좀 읽다 가요"

   치하야가 먼저 발길을 옮겼다. 타카네는 군말 없이 그러자며 치하야의 뒤를 따랐다.

   "서점 안에 카페가 있나요?"

   "대형서점이니까요."

   치하야는 손을 들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카페를 가리켰다.

   "실로 놀랍군요."

   "우선 계산부터 하고 가요."

   치하야는 카페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계산대로 걸음을 돌렸다. 타카네는 치하야가 인솔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 뒤를 따라만 갔다. 두 사람을 금방 알아본 계산대의 점원이 탄성을 지르며 사인을 받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두 사람이 연예인인지 확신이 서지 않던 손님들도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댔다. 타카네와 치하야는 익숙하다는 듯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웃음지었다. 둘은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계산대 주변의 작은 소란을 서둘러 정리하고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이제 조용히 독서를 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군요."

   "어떻게 하실래요?"

   "모처럼의 외출이니 이 또한 즐길만 한 것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이 책에 대한 치하야의 음악적 견해를 들어보고 싶답니다."

   종이봉투를 들어올려보이는 타카네에게 치하야는 대답 없이 웃었다.

   "시죠 씨랑 오길 잘 한 것 같네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지겨운 음악 얘기 받아줄만한 분은 시죠 씨 정도라서요."

   "지겹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타카네는 뒤에서 들리는 셔터소리에 소탈하게 웃었다. 치하야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설탕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타카네는 블랙커피를 마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은 타카네는 곧장 책을 꺼내 기대에 가득찬 표정으로 책장을 펼쳤다. 목차에는 연대별로 나뉘어진 챕터들의 페이지가 적혀 있었다.

   "치하야는 어느 시대의 음악가를 좋아하시나요?"

   "낭만주의의 브람스요. 악보도 자주 보는 편이고요"

   타카네는 치하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 전 치하야가 한 말을 떠올렸다. 타카네는 자신이 치하야가 음악을 논할 유일한 사람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치하야가 그만큼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마침 카페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카네는 치하야에게 그 음악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이야기 할 거리가 넘쳐났다. 타카네는 즐거웠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뛰는 치하야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역시 음악은 좋은 것이구나.

며칠이 지났다.

   "완독하였습니다."

   타카네는 두꺼운 책을 치하야에게 건넸다.

   "벌써요?"

   "통달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구입한지 사흘 된 책 모서리는 여전히 빳빳하긴 했지만 분명히 손을 탄 태가 났다. 애초에 이런 걸로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니지, 하고 치하야는 속으로 감탄했다.

   "그럼 퀴즈를 내봐도 될까요?"

   타카네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깜짝 놀랐다.

   "시험해 보시겠다는 건가요. 좋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치하야는 문제를 내는 시늉도 하지 않고 책을 곧바로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사실 저도 음악사는 잘 몰라요."

   "그러셨군요. 연달아 틀리는 창피한 모습을 보일까봐 긴장했습니다."

   그 말처럼 타카네는 어깨와 등을 빳빳하게 당기고 앉아 있었다. 타카네는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이내 다시 편안하게 긴장을 풀었다.

   "어떠셨나요?"

   치하야는 손바닥으로 책 표지를 쓸며 말했다. 타카네는 눈을 빛냈다.

   "음악과 역사. 좋아하는 두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어느 부분 하나 빼놓을 곳 없이 흥미로웠지만, 역시 전쟁 무렵의 격동의 시기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음악가라고 피할 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시기에 음악 역시 크게 변한 것을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드뷔시'의 음악에는 큰 흥미를 느끼는 바입니다."

   "아, 저 드뷔시라면 몇 장 있어요."

   치하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벽에 놓인 CD진열장 앞에 섰다. 가지런하게 꽂힌 플라스틱 케이스들이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빛에 반짝였다. 타카네는 그 음반들이 치하야가 정한 모종의 규칙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마침 시죠 씨가 좋아하실만한 곡이 있어요."

   치하야는 음반 한 장을 꺼냈다. 케이스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치하야의 방에 조용하게 울렸다.

   "무엇인가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요."

   "아. 책에서 본 것 같습니다."

   "음반은 첫 트랙부터 듣는 게 좋지만, 이번에는 제 3곡부터 틀어보도록 할게요."

   치하야는 CD진열장 옆에 있는 플레이어로 몸을 돌렸다. 금속과 유리로 장식된 플레이어의 세련된 모습은 고성능의 장치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했다. 키가 큰 몇 개의 스피커가 그 주변에 서서  삭막할 정도로 깔끔한 치하야의 방을 꾸미는 장식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치하야는 버튼을 누르고 CD를 넣었다. 디스크 돌아가는 소리가 부드럽게 울리더니 광택 없는 은빛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노래를 들었다.

  "신비롭군요."

  "마음에 드시나요?"

   치하야는 기대하는 눈치였다. 타카네는 대답 없이 눈만 감고 있었다.

    "어떠세요?"

   타카네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치하야는 조금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안 드시나? 신비롭다는 말이 혹시 알기 어렵다는 뜻일까? 하지만 타카네가 무척이나 집중해서 멜로디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 같아 치하야는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쿠키만 하나 소리 없이 입에 물었다.

   "따뜻하군요.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트랙이 끝나고 돌아가던 디스크가 멎고서야 타카네는 눈을 뜨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치하야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자신이 숨을 쉬기나 했는지 모를 정도로 타카네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속으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제목은 '달빛'이에요."

   "과연 그러하군요. 제목을 들으니 마음에 남은 선율의 의미가 더욱 뚜렷해집니다."

   "좋은 곡이죠."

   "그러합니다. 저도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둘은 차를 한 모금씩 마셨다.

   "좋은 노래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뇨, 저도 기뻐요."

   치하야는 CD를 꺼내 도로 진열장에 가져다 놓았다. 헐렁해졌던 CD의 줄이 다시 반듯하게 정렬되었다.

   "아참, 시죠 씨. 보여드릴 게 있어요."

   치하야는 갑자기 안쪽 방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무엇인가요?"

    타카네는 자신의 옆을 지나쳐가는 치하야를 돌아봤다. 어느 틈에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 치하야의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맹맹하게 들려왔다.

   "기타를 샀거든요."

   "어머나."

   치하야는 한 손에 나무 빛깔이 은은한 통기타를 들고 나왔다. 타카네는 그 모습을 보고 아이처럼 감탄했다.

   "참으로 예쁘기도 하지요."

   "고맙습니다."

   치하야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타카네 옆에 앉은 치하야는 바로 튜너를 끼우고 조율을 했다. 느슨하게 풀려있던 줄은 틱틱거리는 탁한 소리를 내다 줄감개가 조여질수록 점차 맑은 음색으로 울렸다. 타카네는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상당히 고가의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런가요?"

   "얕은 식견으로도 한 눈에 알 수 있답니다."

   "엔지니어 선생님이 쓰시는 것과 같은 걸 샀어요."

   "과연."

   타카네는 기타 머리에 써진 금박 씌워진 글자를 감탄스러운 눈으로 봤다. 치하야의 손이 위아래로 오가는 몸통은 반짝이는 자개로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목에 붙은 둥근 눈 같은 점 역시 마찬가지로 자개가 박혀 있었다.

   "장식적인 부분도 충실하군요. 놀라울 따름입니다."

   "튜닝이 끝났어요."

   치하야는 여섯 줄을 한 번에 죽 그었다. 풍성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조용한 방에 확 퍼졌다.

   "연습은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요."

   치하야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코드를 잡았다.

   "이게 A코드."

   손톱으로 여섯 줄을 긋자 조금 전과는 다른 틀이 잡힌 화음이 터져 나왔다.

   "놀랍군요."

   "이게 제일 쉬운 거래요."

   치하야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다음에 이제, C...... 그리고 이게 D......"

   "빠른 시간 안에 능숙해지실 것 같습니다."

   버벅이는 치하야를 바라보며 타카네가 말했다. 치하야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열심히 옮겨 코드 몇 개를 집었다. 치하야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기타 연주에 한참을 몰두했다.

   "어렵네요."

   "손이 많이 아프신가요?"

   타카네는 치하야가 저려오는 왼손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치하야는 기타 울림통을 잡고 타카네에게 내밀었다.

   "한 번 직접 체험해 보세요."

   "그래도 되나요?"

   "어차피 악기는 연주하라고 있는 거니까요."

   "그럼 감사히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타카네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기타를 넘겨받고 치하야가 하던 모양을 따라해 기타를 품에 안았다. 조금 따뜻하게 덥혀진 나무 몸통의 온기가 느껴졌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요?"

   "네. 맞아요."

   "줄이 보기보다 팽팽하여 손을 파고듭니다."

   타카네는 신기하다는 듯 기타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가볍군요."

   "속이 텅 비어 있으니까요."

   타카네는 기타를 들었다놨다하며 신나했다. 기타 줄을 퉁기고 누르던 타카네는 불현듯 뭔가 떠올랐는지 작게 외쳤다.

   "'디.'"

   그리고 타카네는 정확하게 D코드를 짚고 현을 울렸다. 치하야는 깜짝 놀랐다.

  "배우신 적 있나요?"

   "아뇨, 치하야가 하는 것을 따라한 것뿐입니다."

   "대단하세요."

   "어쩌다 눈에 익었을 뿐입니다. 기억나는 건 이것 하나뿐이랍니다."

   그러곤 타카네는 기타에 묶인 어깨끈을 몸에 걸더니 뜬금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뭐 하세요?"

   어리둥절해 하는 치하야를 가만히 놔두던 타카네는 D코드를 강하게 그었다.

   "이것이 '디'."

   치하야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고 타카네는 기타를 잡고 별안간 고개를 위로 치켜들더니 스타일리시한 포즈를 취했다.

   "'록'."

   타카네가 그었던 기타의 여음이 조용하게 잦아드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타카네는 그 자리에서 굳은 듯 가만히 서 있었고 치하야는 앉은 자리에서 타카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록인가요?"

   "'록'입니다."

   타카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록'이랍니다."

   "그렇군요. 악기사 모델 제의도 들어오면 좋겠네요."

   "그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 될 것 같군요."

   타카네는 기타를 벗어 치하야에게 건네면서 웃는 얼굴로 앉았다. 치하야는 기타를 도로 안방에 가져다 놓고 왔다.

   "그나저나 재능 있으신 거 아닌가요? 바로 코드를 짚으시다니."

   "우연일 뿐이랍니다."

   타카네는 접시 위에 놓인 마지막 쿠키를 집어 우물거렸다. 치하야는 기타를 잡느라 얼얼해진 손가락 끝을 비벼대다가 문득 떠오른 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에요."

   "무슨 뜻이신지요."

   타카네는 차를 마셨다.

   "음악사 책 읽으실 때, 연주자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가요?"

   그 말에 타카네는 반짝 깨달은 것이 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연, 작곡가들의 이야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왜 가수나 연주자들은 나오지 않았을까요?"

   타카네는 주먹을 가볍게 쥔 주먹을 턱 아래에 대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녹음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죠?"

   "그렇다면 저희는 분명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축복이겠군요. 노래는 물론이고 영상마저도 담아내는 기술이 있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치하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하야는 찻잔에 남은 마지막 찻물을 단숨에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저도 작곡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치하야라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꼭 해보이겠어요."

   치하야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꼭 쥐었다.

   "전에 잠깐 목을 쓰지 못하게 됐을 때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노래를 할 수 없더라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뒀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그런 생각을 하셨군요."

   이야기를 듣는 타카네의 표정도 사뭇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너무너무 답답했어요. 악보를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고요. 무엇보다 부르면서 듣는 것과 머릿속으로 그리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타카네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 마음 알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기타를 배워보려고 한 거고요."

   "분명 치하야에게 큰 보탬이 될 거랍니다."

   타카네는 가방을 열어 작은 종이봉투를 꺼냈다. 봉투는 봉해져 있지도 않았고, 겉에 아무 것도 써져 있지 않았다. 타카네는 그걸 탁자 위에 올려 가만히 치하야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

   치하야는 그걸 받아다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일전, '베토벤'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그의 일생을 알아보다가 멋진 구절이 있어 한 자 적어 보았습니다."

   "제게 주시는 건가요?"

   "받아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치하야는 기쁜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곱게 접힌 종이를 펼쳤다. 한 자 한 자 정갈하게 적힌 붓글씨가 너무나 타카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그 무엇이 음악으로 영혼을 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멋진 말이네요."

   치하야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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