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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카 「아이돌 잡지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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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3, 2016 19:03에 작성됨.

환하게 빛나는 스테이지

 

돔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환호성

 

기대에 부흥하듯 리듬에 맞춰 노래하며 춤을 추는 아이돌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대형 전광판을 가득 채운 아이돌의 모습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느껴졌다.

 

자동문이 열리고 따뜻한 공기가 만원 전철처럼 밀려나온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카운터로 걸어갔다. 앞머리가 길어 약간 음침해 보이는 분위기는 고개를 숙여 더 음침하게만 느껴졌다. 앞을 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카운터에 도착하자 카운터를 맡던 숙부가 반갑게 인사했다.

 

“후미카, 왔구나.”

 

“네…. 안녕하세요….”

 

여전히 대하기 힘들다. 숙부가 운영하는 서점을 도와주게 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사람과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어하는 후미카에게 다른 누군가와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건 꿈에서조차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겉모습만 비슷할 뿐이지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머릿속은 알고 있지만 숙부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더 움츠러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부의 일을 돕기로 한 것은 순전히 후미카의 결정이었다.

 

도서관 사서의 불평을 들어줄 정도로 도서관을 매일같이 다니던 후미카는 한마디로 책벌레, 독서광이다. 말주변이 없고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든,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해 도서관에 가서 줄곧 책을 읽었다. 그런 후미카가 최근 들어 도서관보다 서점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계산을 마치고 마지막 손님까지 나가자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뱉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없는 서점을 확인하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을 때는 새로 출판된 책들을 읽을 수 있다. 굳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신간을 도서관에 앉아서 끙끙 거리며 기다리는 것보다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신간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후미카가 소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숙부의 일을 도와주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이 멈춘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곤 한다. 아름다운 문장은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다는 말처럼 멈춰있는 세상을 천천히 읽어가는 동안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속이 따뜻해진다. 굳이 바깥에 나가서 경험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책에 담겨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책만 읽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점은 도서관처럼 방해받지 않고 책만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기……요?”

 

“……죄송해요. 책에 몰두해버려서…”

 

자동문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집중한 나머지 손님이 온 것조차 모르던 후미카가 낯선 목소리에 정지된 세상 속에 튕겨져 나가듯 현실로 돌아왔다. 잠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에 올라온 책이 없는 걸로 봐서 책을 찾아달라는 손님인 경우가 많았다.

 

“혹시, 찾고 계시는 책이라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신데렐라를 찾고 있는데요.”

 

“신데렐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땅을 보며 말했다. 익숙한 서점 바닥이 눈에 밟혔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하늘이 멀고 땅이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당연한 생각을 하는 동안 다른 책들에 가려진 신데렐라를 찾는다.

 

신데렐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중에 하나로, 계모와 언니들에게 시달리던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드레스와 유리 구두를 신고 마차로 변한 호박을 타 왕궁 무도회에 참여하게 된다. 왕자의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은 신데렐라는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게 되고, 서둘러 왕성을 빠져나가는 중에 그만 유리 구두를 떨어뜨려 다시 왕자와의 재회 끝에 결혼하는 이야기.

 

어렸을 적 신데렐라를 동경했던 적이 있는데 멋진 왕자님과의 행복한 결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환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무도회장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신데렐라의 모습이 요정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떠나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데렐라에게 마법을 걸어주는 요정은 책속에서 나올 수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즘 12시가 지나듯 신데렐라를 잊게 됐다.

 

혹시 먼지가 쌓여있진 않을까 하고 손바닥으로 겉표지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찾고 계시는 책이… 이게… 맞으신가요?”

책을 건네고 카운터로 돌아가려는 후미카를 손님이 막아섰다. 손님이 길을 막아서는 일이 처음인 후미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또 찾고 싶은 책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건넨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아이돌―”

 

하지만 손님의 목소리는 무언가 불만이 담긴 것 같지는 않았다. 후미카는 낮은 톤으로 말하는 손님의 말을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소리에 집중했다.

 

“…네? …아이돌을… 찾고 계십니까? …여기는… 아이돌 잡지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아이돌 잡지뿐만 아니라 다른 잡지들도 이곳 서점에서 취급사항이 아니었다. 왠지 모르지만 숙부께서 잡지를 취급하지 않으셔서 카운터에서 손님들의 불평을 담은 항의를 한 달 동안 네 번씩이나 들어야만 했다. 이번에도 그런 손님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앞머리에 가려 눈을 마주칠 리가 없는데도 어떻게든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게 아니라, 아이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이돌이…… 된다? 누군가가 아이돌을 시킨다고 해서 아무나 아이돌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자신이 아이돌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춤도 못추고, 노래도 뛰어나게 잘하는 편이 아니다. 무엇하나 아이돌에 가깝지 않은 후미카는 손님이 내게 이상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저…그게,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조심스럽게 손님의 얼굴을 살핀 후미카는(그래봤자 1초도 채 되지 않아 시선을 내렸지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랐다. 자신이 조금만 더 나이가 어렸더라면 아마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도망만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른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자’고 신년 목표를 세운 일이 떠올라버렸다.

 

손님이 양복 속주머니 손을 가져갈 무렵 흉기나 총은 아닐까 하고 벌벌 떠는 후미카와의 생각과는 달리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샐러리맨의 무기와 같다는 명함 한 장을 꺼내 정중히 건넸다.

 

‘346 프로덕션 엔터테인먼트과 프로듀서’ 요약하자면 이렇다.

 

“신데렐라처럼 아름다운 성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혹여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딱히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는 것도, 그렇다고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서로가 즐겁게 대화하고 웃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그것을 넘어선 아이돌은 도대체 얼마나 빛나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지만…….

 

“지금당장 결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이 정해지신다면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주신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겠습니다.”

 

저기… 라고 작게 나온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서점을 나가는 손님을 서점이 붙잡기라도 하듯 삑- 삑- 삑- 하고 경고음이 울렸다.

 

“…신데렐라… 아직…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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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커뮤 첫글입니다.

후미카의 첫번째 카드의 대사들을 보고 떠오른 것을 적어봤습니다.

또 글을 올린다면 아마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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