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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 죄책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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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1, 2016 23:53에 작성됨.

 크롬은 짤림현상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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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간 눈동자. 뻗은 팔. 손가락 끝에 닿은 그녀의 매끄러운 머리카락. 그리고 큰 소음.

 

 "하루카!?"
 가녀린 몸이 쓰러졌다. 주변에서 급히 그녀를 불렀다. 응답은 없다. 발걸음은 규칙이 깨지고, 음악은 멈췄다. 싸이렌 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미키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는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어……."
 미키는 프로듀서의 일이 떠올랐다. 혹시 하루카도, 하루카마저 갈림길에 서 버릴까 봐 너무나도 무서웠다. 프로듀서는 온전히 돌아와서 예전과 같아졌지만, 지금 미키의 마음 깊은 곳엔 그날의 상처가 덧나버렸다.

 

 늦은 오후, 앰뷸런스 차 한 대가 병원에 들어선다. 텅 빈 응급실에서 성급히 떠드는 침대의 바퀴 소리에 미키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프로듀서는 응급실로 같이 들어가려는 아이들을 팔을 뻗어 막았다.

 "저기에 잠깐 앉아있어."

 하고 접수실의 의자에 손가락을 가리키곤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아미는 멍하니 서 있던 둘을 이끌어 의자에 앉혔다.

 

 전등이 한쪽만 켜져 있어 어둑한 접수실에서, 모두의 시선은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 특유의 차가운 소독약 냄새가 미키를 움츠리게 하였다. 여름철인데도 왠지 모르게 오들오들 떨리는 손을 굳게 쥐었다. 아미의 "별일 아닐 거야!"라는 말에 조금은 풀어지는 긴장.
 "하루룽은 강하니까…."
 그렇지만 아미도 초조한 마음은 마찬가지인지, 간호사가 눈치를 줄 때까지 주변을 뺑뺑 돌아다녔다. 미키의 옆 의자에 앉아서도 안절부절못한 듯 일어났다가 다시 앉는 일을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듀서가 접수실에 모습을 보였다. 아미는 프로듀서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치하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하, 하루룽 어때?"
 아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루카의 상태를 물었다. 프로듀서가 아미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자, 꾹 쥐고 있던 아미의 손이 풀어졌다.
 "괜찮은 거구나? 그치?"
 "응. 다행히 단순한 독감이래. 고열 때문에 쓰러진 거라고 하는데 지금은 꽤 내려갔어."
 "휴…."
 아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쓰러질 때 무게가 왼팔 쪽으로 쏠려서 팔뼈가 조금 금 갔다고 해. 그래도 그 외엔 다른 곳은 멀쩡해. 며칠 입원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야."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루룽도 참."
 "정말, 정말 다행이야. 정말로…."
 벽에 기대있던 치하야는 긴장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프로듀서는 분명 별일이 아니라고 했다. 하루카의 상태도 나아졌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미키의 가슴은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숨을 여러 번 내쉬어도, 떨리는 손을 쥐어보아도, 일어나 보려고 해도 발은 걸음을 때려 하지 않는다. 병원의 어둑한 그림자에 짓눌린 미키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괜찮아."
 누군가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이상하게도 흔들림이 멈췄다.
 "오히려 하루룽이 걱정하겠다구."
 아미는 미키의 옆에 앉았다. 미키는 손의 흥건한 땀이 모두 말라버릴 때까지 아미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몰아닥친 불안을 가까스레 버텨내고서야 천장의 눈 부신 빛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음…."
 프로듀서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도 늦었으니 이제 가볼까?"
 그가 넌지시 건넨 말에도 셋은 아무런 미동을 보이지 않았다.
 "안 가게?"
 "하루룽이 일어나면 갈래."
 아미는 팔짱을 끼고 자세를 똑바로 고쳐앉았다.
 "응?"
 "저도 하루카가 일어날 때까진 여기 있을게요. 내일 스케줄은 오후에만 있으니까 문제 없어요."
 "설마 미키도?"
 프로듀서는 미키를 쳐다보았다. 미키는 살짝 머리를 숙였다.
 "그럼 나도. 이렇게 다들 기다리는데 나만 갈 순 없지."
 프로듀서는 정장을 벗고는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등엔 땀이 차 와이셔츠가 찰싹 붙어있었다.
 "아, 잠깐 마실 것이랑 모포 좀 가져올게. 여기서 얌전히 있어."
 재차 부탁한 프로듀서는 급히 병원 밖으로 나갔다.

 

 아미는 가방에서 게임기를, 치하야는 음악 플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치하야는 조용히 이어폰의 한쪽을 미키에게 꽂아주었다. 미키는 잔뜩 긴장해 굳어있던 몸을 치하야의 어깨에 기댔다.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잔잔한 멜로디에, 미키의 눈은 스르륵 감겼다. 잠시 동안의 편안한 잠을 청했다.

 

 

#

 



 "미키."
 하루카의 목소리다. 미키는 눈을 뜨고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하루카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미키의 흘러가는 시선이 하루카를 발견했다. 미키는 맨발로 달려가 뒤에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상하게 손에선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고, 하루카도 미키를 쳐다보기만 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미키는 하루카를 억지로 끌어당겼다. 붙잡고 있던 하루카의 손이 마치 마른 낙엽처럼 바스라져, 미키의 손가락 사이로 사르르 떨어졌다.

 

 짙게 드리워진 악몽에서 미키는 깼다. 순식간에 차오른 공포심에 미키는 몸을 움츠렸다. 식은땀이 흘러 그녀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꿈에서조차 반복되는 순간의 감촉에 손끝은 저리기 시작했다.
 "미키, 괜찮아?"
 치하야는 바닥에 떨어진 모포를 주워 미키에게 둘러주었다. 옆에 나란히 앉아 미키의 어깨를 손으로 포근히 감쌌다.
 "아, 치하야 씨."
 "안 좋은 꿈이라도 꿨나 보네."
 "응…."
 미키는 눈을 비볐다. 나오려는 감정을 간신히 숨겼다.
 "너무 걱정하지 마."
 치하야는 미키를 토닥여주었다. 달래주는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에 경직된 몸이 조금은 풀어졌다.
 "치하야, 아미 어디 갔는지 알아?
 수납실 저편에서 나타난 프로듀서는 치하야에게 물었다.
 "아뇨. 저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요."
 치하야는 손을 저었다.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아직도 안오네."
 "화장실은 제가 방금 다녀왔는데 저 빼곤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 흠, 혹시… 아니겠지."
 "저기 왔네요."
 아미의 신발이 살짝 보였다. 치하야는 손가락으로 신발을 가리켰다. 그 말에 프로듀서는 뒤를 돌아 아미를 불렀다.
 "앗 들켜버렸다!"
 장난스러운 말과 달리 아미는 주춤거리며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빠. 하루룽 일…, 모두한테 말했어?"
 "너 오면 하려고 했다."
 "저기… 그거…."
 아미는 무언가 말하길 머뭇거렸다.
 "음?"
 "모두한텐 쓰러진 건 이야기 안 하면 안 돼?"
 아미는 프로듀서에게 부탁했다.
 "그건 갑자기 왜?"
 "하, 하루룽이… 쓸데없이 걱정 끼친다고 해서……."
 하루카의 소식에 미키는 치하야가 살짝 놀랄 정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루카 깼어?"
 가라앉은 목소리가 갑자기 트였다.
 "응. 근데 지금은 다시 쿨쿨 자고 있어."
 아미는 손을 모아 자는 척을 했다.
 "어땠어? 괜찮은 거야?"
 "흠, 뭐랄까, 웃기도 했으니 좋은 것 같아."
 그토록 원한 대답에 안도한 미키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뱉었다.
 "병문안 가지 말라고 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랬던가?"
 아미는 하루카 특유의 표정을 따라 했다.
 "그랬어."
 "미안미안~."
 "하아."
 프로듀서는 머리가 아픈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안…."
 "아무튼 지금은 하루카, 아니 네 말대로 할게. 다만, 사장님하고 코토리 씨, 리츠코한텐 말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
 프로듀서가 부탁을 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아미는 뭔가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다.
 "이것도 말하면 안 돼?"
 아미의 반응에 프로듀서가 물었다.
 "아니아니. 그 정도야 하루룽도 괜찮다고 할 거야."
 "그럼 전화 좀 하고 올게. 여기서 얌전히 있어. 아미."
 "라져~!"
 프로듀서가 자리를 비워 다시금 조용해진 접수실의 한켠. 미키의 자리에 햇볕이 비춰,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아침의 따스한 열기를 느끼는 미키의 얼굴엔 옅게 미소가 생겼다.

 

 

#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프로듀서는 기지개를 활짝 켰다.
 "아흐음…."
 직후 하품을 크게 했다.
 "뭐, 어찌 됐던 하루카가 잘 있다는 건 확인했으니, 슬슬 가자."
 "네."
 치하야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미키는 모포를 들고 치하야를 따라 병원에서 나왔다.
 "아침엔 살짝 서늘해졌네요."
 "벌써 여름도 다 지나갔구나.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걸까."
 프로듀서는 손에 들고 있던 정장을 바르게 입었다.
 "아, 택시는 아까 불러놨으니 곧 올 거야"
 "오빠"
 "왜."
 "하루룽 보러 가길 잘했지?"
 아미는 스리슬쩍 프로듀서에게 팔짱을 꼈다.
 "반성해."
 프로듀서는 아미의 이마에 딱밤을 콩하고 쳤다.
 "에이~. 오빠도 엄청 궁금했었으면서~."
 "감기라도 옮았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이 아미님이 얼마나 튼튼한데, 감기쯤이야 문제 없다궁?"
 아미는 이마를 문질렀다.

 

 "애들아, 이거 하나 당부할게."
 "뭔가요?"
 "일이 많아서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면 나한테 바로 상담해줘. 당장에 줄여주진 못하겠지만, 후기 시즌부턴 조절해줄 테니까. 괜히 무리하지 말고."
 "그건 갑자기 왜?"
 아미가 물었다.
 "조금 전에 하루카네 부모님께 전해 들은 말인데, 최근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해. 아마 수면부족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 듯 하다."
 "하루룽이? 난 왜 못 느꼈지?"
 미키는 아미의 의문에 동의했다. 어제 만났을 즈음에도 하루카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아픈 내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힘이 넘쳐 따라오는 팬들을 따돌리는데 힘들지 않았다. 그런 하루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을 즈음엔, 이미 눈앞에서 쓰러진 직후였으리라.
 "하루카의 상태를 프로듀서가 먼저 알아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도 잘 몰랐긴 한데 그래도 프로듀서는……"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간 상태로 프로듀서에게 따지던 치하야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미안. 다신 이런 일 없도록 좀 더 신경 쓸게."
 프로듀서는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

 

 치하야의 화가 풀어질 즈음, 택시 한 대가 병원 앞에 들어섰다. 프로듀서는 돌아가는 길이 비슷한 치하야와 아미를 먼저 택시에 태웠다.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쉬어. 난 정리 좀 하다 가야겠다."
 문 옆에 잠시 놔둔 모포와 페트병을 가리킨 프로듀서는 택시의 문을 닫아주었다. 택시 안에서 창문이 열렸다.
 "내일 봐 오빠~."
 "나중에 봬요."
 둘을 태운 택시는 이내 떠났다. 손을 흔드는 아미를 뒤로하고 프로듀서는 바닥의 페트병을 집어 옆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넣었다. 모포는 가지런히 접어 팔에 둘렀다.
 "이거 원래 자리에 두고 올게. 택시 오면 먼저 타고 가."
 "응."
 곰곰이 생각했다. 왜 하루카가 자신에게 아픈 걸 숨겼는지. 이해되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미키는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만 쳐다보았다.
 "따로 연습이라도 했나. 내 눈에 하루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가온 프로듀서가 중얼거렸다.
 "따로 연습…, 아."
 얼핏 떠오른 생각. 설마 그 때문인가.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아니."
 미키는 부정했다. 부정하고 싶었다.
 "하루카한테 무리를 줄 만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그건…."
 잘 알고 있음에도 미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 미안, 이런 거나 물어보고. 난 아직도 많이 부족한 프로듀서네."
 치하야처럼 프로듀서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차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할 건 그가 아니었다.
 "저기 왔다."
 미키를 태울 다음 택시가 도착했다.
 "미키, 너도 쉬어. 오늘 레슨은 빼줄게."
 택시의 문이 열렸음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프로듀서도 택시에 타지 않았다.
 "…허니는 안 타?"
 "일단 사무소에 가서 일정 정리 좀 하려고. 그럼 잘 들어가 봐."
 오히려 다행인 걸까. 같이 있었더라면 이윽고 감정을 들켜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미안한 이가 너무 많아 버리게 될 뻔했다.

 

 이제 프로듀서도 없는 병원 앞. 신호에 걸려 떠나지 않는 택시 안에서 미키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허니 탓이 아냐."
 미키는 문이 닫힌 응급실을 힐끗 바라보았다. 다시금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다 나 때문에…."
 언제나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던 하루카였기에, 그 자리의 무게감은 너무나도 가벼워 보였다. 미키는 눈치 없이 기대버렸다. 그녀에게 억지를 부려서 무리를 하게 만들었다.

 

 그날 오후 인터넷 신문기사엔 하루카가 무대 사고로 팔의 뼈에 살짝 금이 갔다는 소식만 있었다. 병원에 온 김에 정기검진을 받는다는 사유로 단기 입원을 했다는 것도 더불어서. 사무소에선 퇴원 후엔 당분간 휴가를 준다고, 큰 걱정 안 해도 된다는 프로듀서에게, 그저 하루카가 얼마나 다친 거냐고 물어보는 아이들과 모른 체하는 아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하루카의 바람대로, 아미의 거짓말대로 다른 아이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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