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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에 눈이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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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4, 2016 17:48에 작성됨.

"허억....."

 

무대 뒤에서 그녀의 공연을 본 리츠코는 순간 숨을 삼켰다. 미키는 그야말로 빛나고 있었다. 무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에 지지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자신의 성씨를 지켜보는 모두에게 확실하게 어필하듯이.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츠코의 시야는 온통 흐리게 보였다. 단 하나,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는 담당 아이돌만이 무척이나 선명하게 보였다.

 

-내 것이 되지 않아도 좋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냉정하게 생각하면, 미키의 실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관객들 앞에서 떨지 않고 과감하게 몸을 움직이며 리듬을 타는 건 좋았지만, 너무 흥에 겨워 의도하고자 했던 동작과는 다른 구석이 많았다. 그녀가 큰 목소리로 열창하는 노래. 음색 자체가 듣기 좋은 편이라서 쉽게쉽게 들리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잘 불렀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다.

 

기세는 좋다. 지나치게 수준 미달인 것도 아니다. 호의적인 눈길이 갈 정도는 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느낌. 다른 신인 아이돌들과 비교하자면 살짝 이목이 가긴 하겠지만 루키를 벗어나지 못한다. 슈퍼, 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도 아니다. 지금의 상태는 그랬다. 하지만, 리츠코는.

 

"저 애라면....."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했다. 저 애라면, 지금보다 훨씬 잘 할 수 있어. 좀 더 좀 더,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어. 어쩌면, 모든 아이돌들의 정점, 톱 아이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하....."

 

그녀는 뒤늦게 자기가 생각하고도 지나친 설레발이 아닌가하며 픽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봐왔던 데이터와, 실제 눈으로 본 경험에 의하면 신인 시절 이 정도 실력을 보인 아이돌도 많다. 어린 아이가 또래에 비해 말을 좀 빨리 한다고 해서 무조건 천재가 아니듯, 미키도 시간이 지날 수록 시원찮은 결과를 낼지도 모른다.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은 그럴 지도 모른다, 라는 불확실한 기대.

 

거기다, 그것대로 미키가 움직여준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리츠코의 마음은 뜨겁고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제어할 수 없다. 호시이 미키라는 존재가 발하는 강렬한 빛에 아키즈키 리츠코의 시야는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르는 미래를 그렸다.

 

"......"

 

지금보다 더욱 더 넓은 회장. 사방에 울리는 어마어마한 수의 함성, 환호. 물결치는 형광빛 사이리움의 파도. 무대 한 가운데 의연하게 서 있는 부슬부슬한 금발 머리 소녀의 뒷모습. 그녀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에 관객들도 웃는다. 하지만 그녀가 노래를 시작한 순간 분위기는 일변한다. 무대 전체를 장악하듯 울려퍼지는, 강함과 애절함을 동시에 겸비한 노랫소리. 그에 맞추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완벽한 댄스. 자기의 화려한 비쥬얼을 살린 압도적인 퍼포먼스.

 

그렇게,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그녀에게 쏟아지는 찬사, 갈채. 지금으로선 뒷모습으로밖에 상상되지 않는 그녀는 과연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 걸까.

 

- 와아아아아!!!!

 

"......아."

 

조금 멀리서, 그렇지만 상상의 물건보다는 선명하게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제서야 리츠코는 정신을 차렸다.

 

"나도 참, 쓸데없는 망상을.....아무래도 그 사람에게 옮은 게 아닐까."

 

"후아.....리, 리츠코오....."

 

어느 사무원을 가지고 투덜거리고 있자니, 비틀비틀 무대에서 뒷편으로 위태롭게 걸음을 내딛는 미키의 모습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잠깐이나마 소녀와 미키의 모습이 한데 겹쳐보임과 동시에 빨리 그녀를 받아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수고했어."

 

폭, 하고 모든 힘이 빠진 듯 미키가 자기에게 달려온 리츠코에게 온전히 몸을 맡겼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샛노란 머리카락. 향수와 화장품, 땀 이 세 가지가 뒤섞인 묘한 향취가 아이돌보다도 작은 프로듀서에게 훅, 하고 끼쳤다. 아랑곳하지 않고 작게 오르락 내리락하는 등에 손을 뻗어 쓰다듬자, 미키의 팔이 꼬옥하고 리츠코의 정장 상의를 구겼다.

 

"저기 있지, 미키.....어땠어?"

 

".....빛났어."

 

리츠코는 순순히 솔직한 감상을 입에 올렸다.

 

"정말?"

 

"응."

 

"정말로?"

 

"거짓말 아니야."

 

".....그럼 미키, 앞으로도 더욱 빛날 수 있는 걸까?"

 

미키는 리츠코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고작 첫 데뷔였을 뿐이다. 방심하면 안된다.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앞으로 갈 길은 멀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아이에게는 꽤 엄격한 말. 하지만 리츠코는 숨김없이, 남김없이 전부 말해주려고 했다. 그것이 이 업계에 있어서 진실이었으니까.

 

"그래."

 

원래라면, 그러려고 했다. 정작 입으로 나온 건 대책없는 긍정의 말이었다. 거기다 여기서 멈추지 못하고 사족까지 붙이고 말았다.

 

"그럴 수 있도록 해주겠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헤에, 꽤 자신만만하네."

 

킥킥 웃던 미키는 마지막에 작게 속삭였다.

 

"그렇기에 안심이 되는 걸지도."

 

"......"

 

리츠코는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금으로서는 뭘 말해도 다 현실과는 어긋난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으니까. 이게 다 자기 품 안의 존재가 지나치게 밝았기 때문이다. 밝아서, 너무나 빛이 나서. 반짝거려서, 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비판적인 사고를 억제하고, 헛된 바람을 불어넣었다. 지금 당장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리츠코는 묘한 고양감으로 벌벌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천천히 미키를 밀어냈다.

 

"리츠코.....?"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잖니. 주변 스탭 분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지도 모르니까."

 

"봐도 상관없지 않아? 아니, 오히려 봐줬으면 하는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돌아가기나 하자. 그리고 누누히 말하는데, 제발 너는 연상에 대한 태도를......"

 

"그만, 그만하는 거야. 기껏 열심히 했는데 설교라니 심하잖아."

 

"애초에 네가 계속 그런 태도를 취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니."

 

어휴, 한숨을 내쉬던 리츠코는 정 어쩔 수 없다는 듯 툴툴거렸다.

 

"하아......지금만큼은 너그럽게 봐줄테니까, 이리 오기나 해."

 

"네에~"

 

미키는 한없이 풀어진 태도로 터덜터덜 리츠코보다 조금 앞장 서서 걸었다. 좀 전의 무대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별 조각 하나조차 보이지 않는 불성실하고, 의욕없고, 나른한 모습. 리츠코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 애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걸까?"

 

지금 자기의 시야에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은 상상 속의 뒷 모습과 닮은 듯 안 닮은 듯. 리츠코는 슬며시 가슴팍에 오른손을 갖다대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담당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절로 열기를 띄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호시이 미키. 그녀는 오늘 가능성을 보였다. 반짝였다. 그만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그러나 리츠코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든 건 미키가 가진 반짝임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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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리츠코, 미키한테 반했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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