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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아이돌의 사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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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8, 2012 00:38에 작성됨.

*달달합니다. 블랙커피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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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아침 햇살이 눈가를 간질이며 거기에 반응해 얇고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팔로 눈가를 가리다가 그래도 안 되자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흐릿했던 시야가 서서히 잡히자 눈에 띈 것은 쳐진 두 커튼사이의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었다. 멍하니 누워 있다가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집었다. 아침 9:32. 프로듀서가 아직 깨우지 않은 걸 보면 오늘 스케줄은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에, 그러니깐 P가 언제 온다고 했더라.”

어제 일을 하나씩 회상해본다. 

“에, 그러니깐 저녁방송까지 끝났다가 P가 오늘 스케줄은 저녁밖에 없으니 오랜 만에 직장동료를 만나고 싶다 해서 같이 가서 코토리씨랑 한잔하고 그 후에는 코토리씨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프로듀서의 집 쪽으로 가다가…….”

어둑한 길목. 희미한 가로등에 기대어 안겼던 그의 품. 그리고 가까워진 그의 입술과 자신의 입술.

“내, 내가 무슨 짓을!”

리카는 그대로 침대에 베게로 얼굴을 가리고 발을 바둥거렸다.

“아, 아니야! 아니, 아닌게 아니라! 기분은 좋지만 그런 술에 취해 한 고백으로 그렇게……. 아악!” 

스스로 얼굴에 베게를 눌러 소리를 막으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베게를 내려 눈만 보였다. 보이는 귀는 끝까지 빨개져 있었다.

“우- 이대로 P씨의 얼굴은 못 봐.”

하지만 오늘은 스케줄이 있다. 봐야 한다. 그를 보기에는 부끄럽지만, 정말 죽도록 부끄럽지만 그래도 톱 아이돌로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스케줄을 펑크낼 수는 없었다.

“그냥 이대로 쉬어버릴까. 그럼 얼렁뚱땅 넘어가면서 P도 이번 일을 잊으……면 안 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스스로 부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겨우 탄 분위기다. 은퇴식 날의 프로포즈 전에 서로 마음을 확고히 다지는 것이 좋았다. 이것을 계기로 가까워지는 것이 좋았다. 

“그래, 이미 분위기는 탔어. P도 거절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나에게 마음이 있어. 이대로 분위기에 편승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 

자신이 누구인가? 톱 아이돌인 리카다. P가 오기 전부터 스스로의 능력으로 국내 톱 아이돌의 자리에 오르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운명의 상대인 P를 자신에게 오게 한 톱 아이돌 리카다. 

이번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P와의 관계를 진전시킬 것이다.

“아니야. 더 이상은 나 혼자의 힘일 필요는 없어. 지금은 같이 해주는 프로듀서가 있으니깐.”

자리에서 몸만 일으켜 앉고서 주먹을 꾹 쥐었다.

“내 사랑과 P의 사랑으로 운명을 확고히 굳히겠어!”

그렇게 기합을 넣다가 이내 펑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스스로 말하고도 몹시 부끄러웠다.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장으로 향했다. 머리가 숙취로 어질어질했지만 부끄러움에 비하면 견딜만 한 일이었다.




 


“안녕 리카?”

“…….”

평소와 같은 상쾌한 미소로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자신의 프로듀서를 보고 리카는 넣었던 기합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 P가 올 시간이 되어가자 평소와 다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고생했는데, 저 남자는 저리 태평하게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당, 당신.”

“응?”

리카가 부르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P가 반응했다. 그 모습에 리카는 한 마디 더 하려다 포기하고 프로덕션에서 지원해준 중형차에 올라탔다. 차는 앞까지 모든 유리창이 썬팅이 되어 있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았다.

뒷 자석에 리카가 타자 P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저녁에 있는 토크쇼와 밤 10시에 있는 뉴스인터뷰만 하면 끝나.”

“그렇구나.”

리카는 퉁명스럽게 짧게 답했다. 그 반응에 P는 거울로 뒤에 앉은 리카를 살폈다. 평소와 같은 긴 갈색머리. 살짝 찌푸리고 있지만 큰 갈색 눈. 작은 입술은 무언가 숨기 듯 꼭 닫혀 있었고 흰 피부는 평소와 다르게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리카, 혹시 아직 숙취가 안 풀린 거야?”

“아니야.”

그 질문에 더욱 흉흉한 기색을 보이며 리카가 부정하자 P는 쓴 웃음을 지었다.

차는 그대로 부드럽게 방송국을 향해 출발했다. 차안은 어딘가 답답한 공기가 흘렀다. 

신호에 걸렸을 때 P는 웃으며 뒤를 보고 물었다.

“배고프지 않아? 아직 시간 있으니 가다가 간단히 저녁을 먹어도 좋은데.”

“마음대로.”

불성실한 대답. 평소와 다른 그 반응에 P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고민해야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다가 어느 식당 앞에서 차를 멈췄다. 손님이 적은 가게였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호평인 맛집이었다.

차가 멈추자 리카는 창밖의 가게간판을 보았다. 방송이 있어서인지 비교적 깔끔한 초밥집을 선택한 것 같았다.

“리카.”

“응?”

그냥 내리려는 리카에게 P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또 무슨 일일까. 보나마나 이 사람은 어제 일은 술기운에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취해서 분위기를 타 저지른 일 정도로 생각할 거다. 

아마 그 일을 꺼낸 다 해도 사과를 하는 것이 목적이겠지. 

이런 생각이 들자 더욱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P는 부르고서 말이 없었다. 리카는 기다리다가 짜증이나 투명스럽게 말했다. 

“할 말 있음 빨리 말해. 널널해도 저녁먹을 시간은 허비하고 싶지 않아.”

“어제 일 기억해?”

P는 운전석에서 앞만 보고 있었다. P가 어제 일을 거론하자 일순 흠칫했지만 짐짓 신경 안 쓴다는 투로 물었다.

“어떤 일?”

“……키스.”

뭘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던 P는 겨우 그 두 글자의 단어만을 말했다.짧은 말이지만 그것만으로 무슨 이야기인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리카는 그 단어를 듣고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리카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차안에는 정적이 일었다. 두 사람 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랐다. 

시간의 숫자가 10분에 3이 더해졌을 때 리카 쪽에서 겨우 입을 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다시 침묵. 두 사람 다 서로가 말을 꺼낼 때 신중해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려 할 때 비교적 빨리 P가 입을 떼었다.

“솔직히 모르겠어. 난 내가 유능하고 똑똑하다고는 생각 안 해. 여자들 곁에서 일을 해왔지만, 여자의 마음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 밖에 못해.”

P는 운전석에서 몸을 빼 뒤를 보았다.

“어떤 것 같은데?”

“혹시 술기운에 그런 거 아니지?”

최악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리카는 짜증스럽게 조소를 흘렸다.

“하하, 맞아. 술기운에 저지른 일이야. 술기운에 당신을 놀려주려고 키스했어.”

그리고 만족스럽냐는 듯 P를 노려보았다. P는 말없이 자신을 봤다. 짜증이 났다.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혼자 노력했고, 그를 되려오기 위해 투자했는데. 그리고 미국에서 둘이서만 있을 수 있도록 조정까지 했는데.

그런데 이런 자신의 마음을 단 1%도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화가 나서 순간 P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버렸다. P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상관치 않고 그대로 그 입에 키스를 하였다. 

가벼운 키스였다. 오래 할 것도 없이 입술은 곧 바로 떼어내었다. 부끄러움도 뭐도 없는 그냥 홧김에 한 행동이었다.

얼굴이 빨개진 그에게 다시 물었다.

“어제는 술김. 그럼 지금은 어떻게 보여?”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사람이란 건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이런 성격이라 자신 말고 같이 일했던 다른 아이돌들에게 손을 데지 않았음을 알고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성격이 너무나 자신을 아프게 했다. 이렇게까지 몰라 줄 수 있나? 왠지 자신의 노력이 허무했던 것 같아 힘이 빠지기도 했다.

그가 돌아올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혼자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를 돕고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프로듀서들을 설득해 765에 보내기도 했다.

그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1년 동안의 미국프로젝트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 방을 쓸 수 있도록 조정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 그는 자신에게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 

은퇴식은 자신이 꿈꾸는 일의 최종이자 가장 기쁠 환희의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태도를 보자면 그것도 망가질 것 같았다.

리카는 다시 표독스럽게 보며 물었다.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떨려왔다.

“대답해봐. 지금은 어떤 것 같냐고?”

P는 리카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떼었다.

“……미안.” 

그 한 마디에 기분이 착 갈아앉았다. 

거절당했다. 그렇게 느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을 여자로서가 아니라 팬으로서,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단순히 노력했던 것 뿐이다. 그런 확신이 든 순간이었다. 

하지만

“미안해. 언제나 너만 먼저 나서게 해서.”

“뭐?”

그 이어진 말에 이해를 못하고 반문 했을 때 그가 운전석에서 몸을 빼 자신에게로 몸을 내밀었다. 자신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자신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쳐왔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아직 술이 들 깬 건가.

입술이 따듯했다. 그의 숨결이 입과 입을 통해, 그리고 얼굴의 피부를 통해. 그의 손에 잡힌 어깨가 뜨거웠다. 몸만 들이밀어 가깝지 않아 안을 수 없는 그의 허리가 안타까워졌다.

숨결과 숨결이 거치러지려 할 때 그의 입술이 떼어졌다. 가까운 거리의 둘의 얼굴이 있었고, 시선이 마주치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만 닿아 부족함이 둘 사이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음을 알고 멈췄다.

“……미안해가 그 미안해였던거야?”

“응.”

P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수긍했다. 리카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사람 헷갈리게 하지마.”

“응. 미안해.”

“미국에 1년 동안 한 방을 쓰면서 나에게 손도 대지 않은 사람이.”

“처음에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 리카의 프로듀서로서 처음 맡은 일이니깐. 리카에게 피해가 안가도록 거기에만 집중하고 싶었어. 그리고 여유가 생겼을 때는 날 믿어준 리카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서 최대한 참았어.”

“……날 여자로 안 보나 했어.”

“그 반대라 오히려 노력했어. 정말 괴로웠다고.”

프로듀서가 웃자 리카도 슬며시 웃었다. 차키가 아직 꼽히지 않은 차는 언제든 출발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둘 사이에 가야할 곳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둘 사이에 아쉬움을 흐르는 시간을 자각할수록 진하게 할 뿐이었다. 공기가 답답했다. 멀어질 것 같은 상대가 안타까웠다.

“……할 말 없어?”

리카가 빨개진 얼굴을 프로듀서에게서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프로듀서는 리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고정해 자신을 보게 했다.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소리를 내었다.

“……사랑해.”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번에는 억울해서도, 슬퍼서도 화나서도 아니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참았던 모든 것이 터지는 그런 제대로 말 못할 감정이었다. 리카는 조심스럽게 부드러운 손을 뻗어 P의 안경을 벗겨 손잡이에 파인 홈에 꽂아놓았다. 

“나도.”

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이번에는 서로 더 이상 멈추는 것 없이. 서로의 사정과 눈치를 보는 것 없이 격렬하게, 그리고 참았던 것을 불태우는 듯 정열적으로 서로에게 가까이 갔다. 

P의 몸이 여전히 앞좌석에 있어 활동에 제약이 생겨 몸은 가까워지지 못했다. 대신 리카는 프로듀서의 목을 끌어안았고, P는 리카의 가녀린 몸과 목을 끌어안았다. 

서로 무언가를 참기 위해 닫았던 입술은 이제 마음껏 벌어져 상대에게 닿고, 상대의 것을 받아들였다.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여름이라 그렇다. 여름이라 더운 것이다. 

서로 땀에 젖어가면서 어지러운 것 같은 머릿속을 마지막 이성으로 부여잡으며 그리 생각했다. 점점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잠시만 방심하면 이대로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 숙취 때문이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지금 제정신을 못 차리는 거다.

그렇게 둘은 말은 안했지만 똑같이 생각하며 더더욱 숨겼던 감정들을 만족할 때까지 풀어냈다.




 


식탁에서 둘은 초밥을 집어 먹고 있었다. 둘 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고 초밥만 내려다보며 젓가락질을 했다. 둘의 얼굴을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차안이라 다행이야.”

P는 웃으며 말했지만, 오히려 둘의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고 말았다. 갈색 머리를 내려 표정을 숨기던 리카가 젓가락을 입술로 가져가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차안이 아니었다면?”

P는 말없이 초밥에 따라나온 장국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리카를 바로보지 못하고 초밥을 집었다.

“……나도 모르겠어.”

둘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어땠을 지 상상을 할 수 있었다.

어딘가 어색한 듯 하면서도 끈끈한 무언가가 둘 사이에 흘렀다. 

리카는 초밥을 먹다가 툭 하고 물었다.

“스케줄, 모두 꽉 찬거야?”

“일요일과 월요일은 비어있어.”

그 말에 리카는 초밥을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요일과 월요일?”

“일요일과 월요일.”

“그, 그렇구나.”

부끄러워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한 마디라도 더 대화를 나눴다가는 너무 부끄러워 그대로 가게를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식사를 맞추고 둘은 차 밖에서 서로 머뭇거렸다.

“그, 먼저 타 리카.”

“당신이야 말로.”

서로 미루다가 서로를 보았다. 그러다가 차안에서의 일이 생각나 다시 고개를 숙였다. 둘은 다시 귀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어, 어떻게. 똑바로 볼 수가 없어. 이제야 연인이 되었는데 오히려 부끄러워.’

리카는 속으로 이런 상황에 답답해하면서도 차마 얼굴을 들어 P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이 못내 답답하고 한심했지만, 동시에 무언가 행복한 기분이 무럭무럭 피어나 웃음이 나왔다.

“헤, 헤헤.”

P의 마음도 자신과 같았다. 자신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 너무나 기쁘고 좋아 오늘의 스케줄은 힘내서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을 너머 차라리 오늘 스케줄을 모두 캔슬하고 그대로 P와 단둘이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둘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스케줄 시간이 있어 겨우 차를 탔다. P는 에어컨이 아닌 차문을 활짝 열었다. 평소라면 밖에서 팬들이 볼 우려가 있어 창문을 꼭 닫아놓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오히려 안 쪽에서 위험했다.

리카는 그 행동에 말없이 자신도 뒤의 창문을 열며 동조했다. 찬바람이 시원하게 둘의 얼굴을 식혀주었다. 그러자 차안에 남아있던 후끈했던 열기가 조금은 사라진 기분이었다.

리카는 겨우 평소처럼 장난스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앞에서 운전하는 P에게 다시 물었다.

“일요일과 월요일?”

그것만으로 P의 귓가가 다시 빨개졌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제 그만 물어봐줘 리카.”

P가 더듬으며 그리 부탁하자 리카는 어린 아이처럼 혀를 살짝 내밀어보다가 창가에 얼굴을 기댔다. 여름이지만 달리는 차안에서 느껴지는 창가의 바람은 시원했다. 뜨거웠던 자신의 얼굴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리카는 스쳐지나가는 차들을 보다가 P에게 말했다.  

“저기 P”

“왜?”

P가 앞만 보면서 물어보았다. 방송국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리카는 뒷좌석의 창문을 닫고 몸을 앞좌석 쪽으로 내밀었다. 두 좌석 사이에 리카의 몸이 튀어나온 형태로 있었다. P의 옆에는 여전히 창문이 열려있었다. 창 밖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리카는 개의치 않았다.

“아까 차안에서 했던 말 다시 해줘.”

“일요일과 월요일.”

무엇을 뜻하는 지 알았지만 P는 모르는 척 다른 걸 말했다. 리카는 그 뜻을 알고 다시 재촉했다.

“그거 말고.”

“배고프지 않아?”

“다른 거.”

“미안해.”

“다른 거.”

그 부분에서 P는 말을 멈췄다. 옆에서 리카가 계속 눈을 빛내며 자신을 보자 한숨을 쉬고서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사랑해.” 

“나도.”

반복 된 말과 대답이 끝난 후 P의 볼에는 부드럽고 따듯한 무언가가 닿았다. 순간 P는 정신을 놓을 뻔 했지만 마침 차는 신호에 걸려 멈춰 섰다. 리카는 뒤에서부터 앞의 조수석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리카, 누가 보면 어떻게 하려고!”

P는 놀라 리카를 보았다. 리카는 장난스런 소녀의 표정으로, 그러나 발개진 얼굴로 부끄러움을 표하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수줍게 부탁했다.

“저기, 창문 닫아줘.”

신호는 사거리에서 걸려있었다. 이곳의 횡단보도 신호는 동시에 켜지는데, 그 시간이 상당히 길어 운전자들은 신호에 걸리면 느긋하게 기다리는 곳이었다. 

P는 순간 침을 삼키고서 창문을 닫았다. 서서히 창문이 닫혀갈 때, 그만큼 리카의 얼굴도 P의 얼굴에 가까워져갔고, P도 그 만큼 리카의 얼굴에 다가갔다. 리카는 그전에 손을 뻗어 다시 P의 안경을 벗겨냈다.

창문이 완전히 닫혔을 때 두 사람의 눈도 살며시 감기고, 이번에는 제대로 서로의 몸을 껴안았다.

횡단보도의 신호는 길었고, 그 만큼 두 사람이 붙어있던 시간도 길었다.




 


그 날의 방송은 평소보다도 즐겁게, 그렇고 더욱 힘내서 완수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 오랜만이에요.”

방송국에서 이번에는 아즈사와 만날 수 있었다. P는 반갑게 아즈사와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에요 아즈사씨. 가수겸 배우로 확실히 성공하셨더라고요.”

P가 말하자 아즈사는 기쁜 듯 고개를 기울이고 손에 뺨을 기댔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잘 되었나봐요. 프로듀서도 같이 했음 좋았을 텐데 말이죠.”

“P!” 

방송을 끝내고 온 리카가 피의 곁에 왔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P의 옆에 얌전히 섰다. 예전 같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좀 더 P의 옆에 가까이 서거나 둘 사이를 가로막듯이 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P가 아즈사를 소개해주자 리카는 진심으로 반갑게 아즈사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765의 아이돌분이시군요. 이 사람, 그 쪽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아라아라,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길치라고 하지 않던가요?”

리카는 순순히 있는 그대로 들었던 걸 말했다.

“그 이야기도 했지만, 제일 많이 한 말은”

리카는 거기서 말을 끊고 밝게 웃었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말이었어요.”

리카의 말에 아즈사는 기쁜 듯 웃었다. 세 사람은 그 후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즈사가 스케줄 사정으로 먼저 떠났고, 둘은 다음 스케줄을 향해 이동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네.”

이번에도 조수석에 앉은 리카는 P에게 말했다. 아까의 일 이후로 두 사람은 여전히 부끄러웠지만 서로를 대하는데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리카도 아름다워.”

“‘도’라니? ‘도’가 아니라 ‘가’라고 해줘야 여자들은 더욱 기뻐한다고.”

“하하, 주의할게.”

리카는 슬며시 P의 어깨에 기댔다. 생각보다 넓은 어깨였다.

“뭐, 이제는 괜찮지만.”

“이제는?”

“응.”

리카는 편안하게 웃었다.

“이제 당신이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할 대상이 한 명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깐.”

그 말에 P도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차는 부드럽게 아무런 장애도 없이 순조롭게 스케줄이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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