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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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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6, 2016 18:05에 작성됨.

늦은 밤, 방 한켠에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며 한 남자가 공책에 무언가를 기록한다. 공책이라고 말하지만 그 페이지의 양은 일반 서적에 준하는 분량이다. 끄적거리는 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한참 지나 남자가 펜을 내려놓는다.

"후우...오늘은 여기까지."

너무 해맑아서 오해려 인위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목소리. 기록을 끝낸 남자는 스탠드를 끈 후 공책을 책장에 꽂아 넣는다.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나즈막히 혼잣말을 하며 남자가 침실로 들어가고 방은 완전한 침묵에 빠진다.

 

...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20대의 남성과 10대 소녀가 스태프에게 인사를 한 후 복도를 걸어간다. 남성은 전형적인 양복 입은 회사원의 모습, 소녀는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프로듀서! 아까 그 기타 정말 멋졌죠! 복장도 마음에 들었고."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소녀가 눈을 빛내며 남성에게 말을 건다.

"타다 양이 기타 연주가 능숙해지신다면 이런 일 정도는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습니다."

"윽! 그, 연습하고 있으니까요!"

프로듀서의 능청스러운 장난에 아이돌 타다 리이나가 어딘가 찔린 듯 당황해하며 변명을 한다.

"하하! 물론 타다 양의 노력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연습하면 그 노력은 보답받을 겁니다."

"그렇죠? 곧 이빨기타를 보여드릴테니까..."

"오오...상당히 고통스러울 겁니다만? 뭐,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프로듀서. 또 철학적인 얘기로 빠진다구요?"

"아, 이거 실례."

정신없이 잡답을 하다 보니 어느새 둘은 건물 출입구까지 도착했다. 건물을 나서는 순간 프로듀서와 한 소녀가 스쳐 지나간다. 소녀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소녀의 눈이 향하는 곳은 프로듀서의 뒷모습.

"...찾았다."

 

"오늘 받은 일도 다 끝났으니 집으로 바로 대려다 드릴까요?"

"으음...잠깐 사무소에 들렀다가 가는 게 좋을 것 같은...우와악!!!"

"엣?! 잠깐, 무슨 일입니까?"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리이나가 몸을 떨며 프로듀서의 뒤를 가리킨다. 뒤를 돌아보는 프로듀서를 맞이하는 건 리본으로 손목을 장식한 소녀.

"왓! 언제부터 뒤에 계신 건가요?"

"후훗. 아까 전부터였는데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아, 기척이 없어서...그나저나 저희에게 무슨 일이신지?"

"글쎄요, 우후후후."

생글생글 웃으며 소녀가 웃는다. 다만, 그 눈은 어딘가 풀려 있는 느낌이 든다.

"프로듀서...이 사람 좀 이상한데요..."

"실례이니 그런 말은...흠! 저는 ○○ 프로덕션 아이돌 프로듀서입니다."

"타다 리이나. 록한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어!"

"사쿠마 마유에요. 독자 모델을 하고 있어요."

어색한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세 명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맴돈다.

"ㅈ, 자! 그럼 사쿠마 씨가 저희에게 오신 이유는..."

"마유도 아이돌이 될 수 있나요?"

"에?!"

"마유, 프로듀서 씨한테서 운명을 느꼈어요. 마유와 프로듀서 씨는 붉은 실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하하, 저희가 만난 게 운명이라면 이 이상 엮이는 건 비추천...타다 양?"

"프로듀서...처음 만난 사람한테 그런 얘기는 좀 그런데..."

프로듀서의 말이 길어질 듯한 느낌에 리이나는 프로듀서의 옆구리를 찔러 말을 끊는다. 그 광경을 보는 마유의 얼굴에 웃음이 싹 가신다.

"에, 사쿠마 양이 저희 아이돌이 되는 건 좋지만서도..."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프로듀서 님."

프로듀서의 말에 아까 전까지 정색을 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마유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와 반대로 리이나와 프로듀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

 

"그런 연유로 앞으로 사쿠마 양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소속사는 적당적당한 중소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은 오프나 개인사정으로 사무소에 출근하지 않은 아이돌을 포함해 열 명 남짓했다. 사무소 규모나 인원이 소규모인 것으로 보아 아이돌 부문보다는 배우, 예능인 부문에 중점을 두는 듯 했다.

"마유 언니는 여기 오기 전에 뭘 했어?"

마유에게 처음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카기 미리아. 어린아이 특유의 밝고 순수한 성격 탓인지 처음 만나는 마유에게도 스스럼 없이 다가선다.

"로리타 잡지 독자 모델을 했어요. 그 쪽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히노 아카네입니다! 달리는 건 좋아하십니까?!"

"히노 양. 의욕적인 건 좋지만 목소리가 크다구요?"

아카네의 큰 목소리에 프로듀서가 조정을 부탁한다.

"괜찮아요. 달리는 건...그닥 좋아하진 않네요."

"아쉽군요! 그래도 사이좋게 지냅시다!"

"사이좋게라...노력할게요."

"마유 언니! 나 궁금한 게 또 있는데..."

아카네와 미리아의 질문 공세에도 마유는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웃으며 상대해 준다.

"프로듀서. 정말 괜찮겠어?"

쇼파에 늘어진 상태로 안즈가 의문을 제시한다. 흐트러진 복장에 늘어진 자세로 사탕을 먹는 모습이 영 못미덥지만 맡은 일은 확실히 성공해내는 사무소의 에이스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무리 본인이 원해서라고는 해도 이렇게 덥석덥석 데려오는 건 안즈 생각에는 좋지 않은 것 같아."

"게다가 우리들, 아이돌이라구요? 마유는 모델 일만 해서 노래나 춤 같은 건 조금 서툴지 않을까요?"

리이나와 안즈의 걱정은 데뷔 후 산전수전을 겪으며 간신히 수면 바깥으로 올라온 본인들의 경험, 그리고 소속사 내에서 받는 소규모 부문이라는 시선이 합쳐진 것이였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그런 걱정을 듣고도 속 편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 건 그녀의 마음가짐에 달렸으니까요."

"하아...일단 지켜보기로 할까."

 

...

 

"젠장!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온갖 폭언을 내뱉고 성질을 부리며 사무소로 들어오는 타쿠미. 따라 들어오는 시노부 역시 표정은 좋지 않다.

"무슨 일입니까, 무카이 양? 쿠도 양도 벌레 씹은 표정이라구요?"

"어이, 프로듀서! 솔직하게 대답해! 정말 우리들 때문에 우리 부서가 지원을 못 받는 거냐?"

"네?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다른 부서에서 우리 흉을 봤어. 인기가 없으니까 만년 소규모 신세라고..."

사정을 얘기하는 시노부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목소리였다.

"알고 있어...난 재능도 없고 인지도도 떨어져...그래도 꾹 참고 계속 노력해왔어. 그런데..."

"쿠도 양.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죠?"

"...응. 열심히 할게."

"그리고 전 언제까지나 여러분 편입니다. 그것 하나만큼은 기억해 주세요."

"알았어. 다시 한 번 해 볼게."

"너 답다면 너다운 말이구만. 그나저나 우리 신입 있잖아? 그...미유랬나?"

"사쿠마 마유 양입니다."

"아, 그래.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하여튼 그 녀석, 모델 부서 것들이랑은 만나게 하지 마. 싸움 나니까."

"싸움이요?"

"여기 오기 전에 독자 모델 했다며? 그거 가지고 화장실에서 더럽게 씹고 있어. 개같은 년들..."

폭주족 특유의 자기 무리에 대한 의리 때문인지 아이돌 부서 인원들에게는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타쿠미였다. 그 방향이 약간 난폭한 게 문제이지만.

"무카이 양. 좋은 말~"

"...알았어! 여튼 미우한테도 잘 전하라고."

"사쿠마 '마유' 양입니다."

생긋 웃으며 대답하는 프로듀서. 하지만 사무소를 나서는 그의 미소는 묘한 기운을 품기 시작하고 곧바로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어쩔 수 없죠. 운명이니까."

 

...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이번 단체 라이브 계획이 무산되었습니다."

간만에 아이돌 부서 전원이 모인 날. 프로듀서가 그녀들에게 전해줄 것은 비보뿐이였다.

"아아~결국 쫑난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키류 츠카사가 내뱉는다.

"뭐, 대충 그럴 줄 알았지. 전채적인 계획부터 조잡하달까 구멍도 뻥뻥 나고 허접했으니까."

"나는 귀찮은 일 없어졌으니 노 프라블럼~"

"모리쿠보도 딱히 상관은 없는데요..."

"어째서...잘 할 수 있는데 어째서..."

안즈, 노노와 시노부의 극단적인 반응을 제외하고도 대부분이 불만을 토로했다.

"어쩌자는 거야! 이것들이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에~? 라이브 취소됐어? 왜?"

"어쩔 수 없나..."

"자자! 여러분 모두 진정하시고..."

순간 쾅 하는 소리에 사무소 전원이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의 진원지는 마유가 들고 있던 요리책. 요리책으로 책상을 내리친 마유는 생긋 웃는다.

"여러분? 프로듀서 님이 곤란해 하시잖아요?"

"고, 고맙습니다. 사쿠마 양..."

"어이, 미...마유! 넌 화도 안 나냐?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고!"

"마유는 그런 것 관심 없어요. 마유는 프로듀서 님이 웃으신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에? 저요?"

느닷없는 마유의 말에 타쿠미와 프로듀서의 얼굴에 의문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윽고 프로듀서가 그 나름대로의 결론을 짓는다.

"뭐, 그 방법이 사쿠마 양 나름의 운명을 이겨내는 방법이란 건 이해했습니다."

"운명...이요?"

"아, 이건 안되겠는데."

운명이란 단어가 나오자 안즈가 귀찮아지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 전 운명이란 깨부수고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믿고 있거든요."

"또 시작인가..."

"신입이 들어오면 하는 연래행사잖아. 너무 그러지 마."

"하늘이 만들어낸 운명은 시련입니다. 저희 사무소가 소규모라며 무시받는 것도, 몇몇 분들이 노력에 비해 성과가 잘 안 나오는 것도, 지금처럼 대규모 무대가 취소되는 것도 운명이에요. 부당한 취급도, 억울한 누명도, 상대방의 악의도 전부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에겐 그 운명을 깨부수고 나아갈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도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웃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장황하고 여기저기 허점이 보이는 논리였다. 하지만 프로듀서 자신은 그것을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기 없는 눈과 부자연스러운 웃음이 그것을 말해 주는 듯 했다.

"...프로듀서 님은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시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다들 열심히 합시다."

"그, 그래! 일단 이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 하자구."

무감정한 표정의 마유와는 달리 빙긋빙긋 웃는 프로듀서. 이상한 긴장감에 리이나가 간신히 둘을 중재한다.

 

"그래도 프로듀서가 다른 일들을 구해다 준다니 다행이지?"

"다음에는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사무소 쇼파에서 잡답을 하는 리이나와 유카리. 그 옆에서 마유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프로듀서 님...정말 이상한 말을 하시네요..."

"아, 그거? 프로듀서 나름의 인생철학인가봐. 인생철학이라...나는 '인생은 록!하게 살자'라고나 할까?"

"그래도 프로듀서 씨의 그 마음 덕분에 저희들도 힘낼 수 있는 거죠. 보고 있으면 오뚝이같아요. 넘어져도 웃으면서 다시 일어나는 게 닮았죠?"

"하지만...하지만 그건 이상해요! 운명이 시련이라니...마유는 프로듀서 님과 붉은 실로 이어져 있는데...이어질 운명인데! 마치 마유와 프로듀서 님이 이어지면 안된다는 것처럼...!"

눈빛은 이미 썩어들어간 지 오래였다. 건드리면 터져버릴 듯한 마유의 분위기에 리이나는 동요했다. 항상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유카리도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이였다.

"마, 마유? 일단 진정하고..."

"...그래. 그러면 되겠어."

"에? 뭐가 말이야?"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먼저 돌아갈게요. 우후후후..."

힘 없이 터덜터덜 사무소를 나서는 마유. 웃고 있지만 전혀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

 

보름달이 뜬 밤, 마유가 서성이는 곳은 프로듀서의 집. 아이돌이 있을 만한 시간대도, 장소도 전혀 아니였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단 하나 뿐이였으니까.

"프로듀서 님의 모든 것을 알아낸다면 프로듀서 님도 알아주시겠지? 마유와 프로듀서 님은 이어질 운명이라고. 그리고 마유는 프로듀서 님을 해치지 않으니 운명은 시련 따위가 아니란 것도."

이윽고 마유가 도착한 곳은 서재였다. 거대한 책장이 여럿 있었고 책장 하나마다 똑같이 생긴 공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이건..."

공책의 겉표지는 제목도 그림도 없는 진홍색 표지였다. 공책의 내용은 단순했다. 하루를 돌아보고 자신의 달라진 점, 바뀌어야 할 점을 적어 놓은 것이였다. 다만, 어딘가 불안감과 편집증적인 모습이 보였다. 내용을 보니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써 왔던 것이였다.

"이런 걸 이렇게 많이..."

마유 역시 아이돌이 되고 나서부터 프로듀서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분량은 마유의 눈에도 비정상적이였다.

"아니, 오히려 잘 됐어. 덕분에 프로듀서 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으니까."

공책을 읽으며 마유는 프로듀서에 대한 것을 알아갔다. 사고로 일찍 부모님을 여읜 것, 학창시절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 대학교 시절 강도로 몰려 경찰서에 갇힌 적이 있었다는 것 등. 프로듀서의 말처럼 운명을 시련이라고 믿지 않으면 비뚤어질 만한 과거였다. 가끔씩 몇 페이지에 걸쳐 '실패했다' 거칠게 휘갈겨 쓴 부분도 있었다.

"프로듀서 님...완전히 망가져 있어. 마유가 고치지 않으면..."

"누가 누굴 고친다는 겁니까?"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마유. 그 앞에는 프로듀서가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사쿠마 양. 이건 좀 실망입니다. 아, 문단속을 소홀히 한 제 잘못도 있네요."

"프로듀서 님...프로듀서 님은 잘못되었어요!"

"잘못...되요?"

프로듀서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입꼬리도 묘하게 일그러진다.

"운명은 시련 같은 게 아니에요! 프로듀서 님은 불행했던 과거로부터 도피하려는 것 뿐이라구요! 그러니까 마유가..."

"닥쳐!!!"

도를 넘은 맹신은 광신으로 변한다. 광신자에겐 논리나 상식 따윈 필요없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것이 선이자 진리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악이거나 적일 뿐이다. 그리고 광신자에게 사실을 알려준들 광신자의 분노와 공격성만 유발할 뿐이다.

프로듀서는 마유의 목을 조른 채로 책장으로 밀어붙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유를 광기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프로듀서는 분노를 쏟아부었다.

"도피를 해?! 내가?! 그럼 내 인생이 전부 나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거야?! 아니!!! 난 잘못한 거 없어! 전부 운명 탓이야! 운명이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

프로듀서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숨이 막히는 괴로움 속에서도 마유는 웃고 있었다. 마치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의 손으로 자신을 끝내 달라는 듯이.

"악!!"

하지만 끝은 나지 않았다. 책장에서 공책 하나가 프로듀서의 머리로 떨어진 것이다. 프로듀서의 머리에 피가 흘렀다. 꽤나 두꺼운 공책인데다 떨어진 높이 역시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콜록...프로듀서 님..."

"아으윽..."

정신을 차린 마유의 시선이 프로듀서를 향했다. 프로듀서는 여전히 머리를 감싸않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마유는 일어나 프로듀서를 향해 걸어갔다.

"이젠...괜찮아요."

그리고 마유는 프로듀서를 끌어안았다. 프로듀서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옷이 엉망이 되어 갔지만 마유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괴로웠죠? 옆에 아무도 없어서 괴로웠던 거죠?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마유가 옆에서 계속 있어줄 테니까."

프로듀서는 말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마유의 품에 안겨 있을 뿐이였다.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였다. 마유는 프로듀서의 머리를 강타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공책을 들어올렸다.

"...후훗. 역시 마유는 프로듀서 님과 이어질 운명인가 봐요."

공책에는 프로듀서와 마유가 처음 만난 날부터의 기록이 적혀 있었다. 급작스러운 만남에 난감하면서도 열심히 해 주는 마유에 대한 프로듀서의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써 왔던 기록들을 보며 프로듀서는 슬픔에 잠겼다.

"나는...나는 고작 내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해서 너를...이렇게 착한 아이를..."

"프로듀서 님은 망가졌었어요. 마음에 병이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마유가 프로듀서 님의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만난 거에요. 이게 운명이랍니다."

"그런가...마유가 옳을지도 몰라. 난 줄곧 괴로운 상황을 피하기만 했으니까. 겉으로는 시련을 이겨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이젠 마유가 지켜 줄게요."

"고마워...마유..."

 

 

 

...

 

 

광신은 두렵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들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광신이 가장 두려운 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광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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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데레와 광신도는 공통적인 모습이 있죠. 자신의 믿음(사랑)만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점.

사실 망가진 사람이 어떻게 망가진 사람을 고치겠습니까? 아마 얼마 못 가 비극으로 끝날 겁니다.

네. 뭐, 그렇다구요. 일반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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