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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치마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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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0, 2015 17:41에 작성됨.

"안경의 이야기를 듣고서, 카미조 하루나, 등장!!"

두ㅡ둥! 하고 등 뒤에서 이상한 배경음이 튀어나오는 듯한 환상을 언뜻 본 것 같았다. 요즘 내가 잠을 설치고 있나...?
 
"오오, 진짜 안경! 안경......잠깐, 이거 도수 없는 안경 아닌가요?"
 
갑자기 얼굴을 확 내밀어 오기에 당황해 물러났는데, 갑자기 스스로를 카미조 하루나라고 자칭한 소녀가 얼굴을 찌푸리며 내게 삿대질을 했다
 
"도수없는 안경은 사도(邪道)! 렌즈없는 안경도 사도(邪道)! 콘텍트 렌즈는 악마(惡魔)의 발명품! 꼭 눈이 나쁘지 않아도 안경은 쓸 수 있는 거라구요!"
 
"어, 아, 그래"
 
"그런 당신을 위한 추천 안경!"
 
카미조는 테이블 위에 서류가방을 올렸다. 가방을 열자, 찰칵찰칵, 하고 분리되더니 4단의 층을 가진 형태로 변했다...뭐지, 변신가방? 그보다 그 안에 있는 건 전부 다양한 형태에, 다양한 색을 가진 안경들로 가득했다
 
"자, 안경 써보세요!"
 
카미조가 내민 안경. 약간 불그스르함 색이 섞여있는 검은색의 안경이었다
 
"저기...보통 이런 건 시력검사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후후훗, 사실 저는 척 보기만 해도 상대방의 시력이 몇 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거짓말, 이라고 말할 뻔했다. 다만, 이렇게나 당당하면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생기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당신은......시력이 좋네요?"
 
"딱히 눈을 피로하게 만들 일이 없으니까"
 
친구들하고 놀겠다며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지도 않고, TV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보지도 않는다. 게다가 아버지가 먹는 오메가3 알약도 나 또한 일일히 챙겨먹는 편이고. 지금 쓰고 있는 안경도 나나 씨가 쥐어준 패션용 안경 같은 것이다
 
"뭐, 시력이 좋다고 해서 안경 안 쓸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패션용 안경도 있습니다!"
 
"아니, 시력이 좋은 상태에서 안경을 쓰면, 실제 시력과 안경의 시력이 따로 놀지 않을까?"
 
"그건 안경이 필요할 때 쓰고 필요없으면 벗는 식으로 썼다 벗었다, 할 때의 이야기랍니다. 어디서 굴러먹은 건지 모를 개뼉다귀가 안경을 쓰면 시력이 나빠진다는 속설을 책에 써서 출판할 정도로 밀고 있지만, 안경을 쓴 시력에 익숙해지면 내 눈이 이렇게 나빴었나 싶을 정도로 원래 시력에 적응을 못하는 것일 뿐, 익숙해지고 보면 그렇게 나빠진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어요"
 
곁에서 같이 듣고 있던 나나 씨가 말했다
 
"약을 먹거나 눈을 트레이닝하면 되지 않나요?"
 
"NO, NO, NO. 약이란 건 정말로 아플 때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거랍니다. 수면제를 복용하면 할수록 효과가 떨어져 가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그 이전에 눈알의 수정체를 제어하는 근육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이것들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근육이 아니랍니다. 체내의 소장과 대장의 근육도 단련시켜볼 생각인가요?"
 
전문적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눈이 나쁘지 않더라도 안경을 쓰는게 좋을 수도 있답니다. 어디 안경점이나 안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주기적으로 시력 교정을 할 리가 없잖아요? 시력 교정을 하지 않은 채 장기간 방치할 경우 시신경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약시, 저시력 등을 유발해요. 약시나 저시력이 되면 안경을 써도 정상시력이 나오지 않아요! 아무리 도수를 때려박아도 교정시력이 0.1도 안 나온다구요?!"
 
"그, 그래...?"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도수 없는 안경이 아니라 진짜로 내 시력에 딱 맞는 안경을 맞춰야 하는 걸까?
 
"잠깐...근데 이거, 안경 팔아먹으려는 상술은 아니겠지?"
 
"NO, NO, NO. 이래보여도 저 또한 아이돌이랍니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서 안경을 추천하는게 아니에요. 그저 다른 사람들도 안경의 매력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솔선수범해서 나서는 거죠. 안경은 미모 봉인구가 아니에요. 오히려 외모를 상향시켜주는 유용한 도구죠!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고 말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외모에 대해서는 카미조도 항복인 모양이다. 하긴,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지. 홈쇼핑 광고를 볼 때 모델들이 입고 있으면 멋져보이는데 정작 본인이 입으니 '이게 뭐야아아...'와 같은 이치다
 
"그래서, 하나 맞춰보는 건 어떠...우와아악?!"
 
"네~ 네~ 안경 권유는 좋지만 그게 강요가 되면 안 되지 말입니다~ 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하루나?"
 
"아앗?! 사리나 언니?!"
 
긴 갈색머리에 크고 아름다운 흉부장갑을 자랑하는 듯한 누님이 찾아와 카미조를 잡아 끌었다
 
사리나, 라고 불린 여성은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미안, 우리 동생이 폐를 끼쳤지? 평상시에는 상식적이고 상냥한 아이인데, 안경에 대해서는 성격이 180도 변해서...좀 병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집착하고는 해"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구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카미조가 말했다
 
"친구도 없고, 성격이 어두웠던 여자아이는 안경을 계기로 활발한 여자애로 다시 태어났습니다...실화에요!?"
 
아아, 짤막한 이야기지만, 내막이 이해가 간다
 
어렸을때 시력이 안 좋아서 성격이 어두웠던 모양인데 안경을 통해 시야와 자신감을 얻어가면서 안경을 사람의 매력을 높여주는 구원의 마법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정반대 방향으로 절찬 대폭주하는 모양이지만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추천하는 그 마음가짐 자체만큼은 욕 먹을 게 아니지. 오히려,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야"
 
"진짜인가요!? 절 이해해 주시는 거죠?!"
 
"다만, 취향존중이라는 단어를 기억해줬으면 하네. 정말로 안경을 불편해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다르게 보면 강요와 같아. 그 점, 유의해 두길 바라지"
 
덕후의 적은 덕후라는 말이 있다. 그건 취향존중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작품에 서로가 좋아하는 히로인이 다를 경우, 특히나 진히로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히로인들의 팬일수록 더 큰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인 것이다
 
키배는 기본이요, 인신모독에 심하면 현피까지 뜨는 사례도 없잖아 있기는 하다. 사람 사이의 분쟁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자신과 다르다고,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거부하는 순간, 싸움이 일어난다
 
나는 그러한 것들이 싫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 하는 무개성적인 사회도 싫어했었다. 주류가 아닌 나를 외톨이로 몰아넣어,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강요하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혐오스러웠다
 
지금 내 주변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들이 여럿 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싸움을 벌이곤 한다
 
"오, 오오 뭔가 어른스러운 말!"
 
"히키가야 군, 짧은 시간만에 어른이 되었네요!"
 
"보기보다 건실한 청년인 것 같은데? 다음에 한 잔 걸치러 가지 않겠어? 어때, 나나 씨도 함께?"
 
"양주도 함...자, 잠깐! 사리나 씨도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나나는 17세의 파릇파릇한 여고생이라고요?!"
 
나나 씨는 또 자폭을 했다. 이 사람, 진짜로 천연 속성인가?
 
"아니, 저는 미성년자라 무리일 것 같은데요..."
 
"엑?"
 
"엑?"
 
"엑?"
 
사리나 씨, 카미조 그리고 나 순으로 엑? 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만큼 어른스러워 보이는 걸까...?
 
결국 카미조와 협상해서 안경 하나 새로 맞췄다. 그것도 공짜로
 
기분 끝내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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