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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X 아이돌 마스터] 두 송이의 꽃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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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9, 2015 02:10에 작성됨.

원작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혼고 아키요시
아이돌 마스터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갑자기 나타난 녹색 그림자가 질풍처럼 유키호를 낚아채 거리를 단숨에 벌렸다. 마치 토끼, 혹은 강아지 로봇처럼 생긴 디지몬이 유키호를 데려갔다.

“난 아미의 동료야! 걱정하지 마!”
딱딱하게 생긴 외형과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가 유키호를 진정시켰다. 디지몬의 말을 듣고 유키호도 진정됐는지 비명을 멈췄다. 유키호는 얌전히 로봇 디지몬, 래피드몬에게 안겨 안전한 거리까지 떨어졌다.

유키호 대신 릴리몬이 경악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유키호 쨩을 놔줘!”
릴리몬이 뒤를 돌려고 한 순간, 라일라몬의 손이 릴리몬을 겨누었다. 릴리몬은 미간을 찌푸리곤, 라일라몬부터 처리해야겠다고 판단했는지 마찬가지로 손을 라일라몬에게 겨누고 뛰어올랐다.

“네 힘은 이미 파악했어! 내가 못 이길 정도는 아니야!”
“자아, 과연 그럴까?”
라일라몬은 씨익 웃으며 옆으로 비켰다. 라일라몬의 바로 뒤, 지금 막 생성된 데이터 패킷을 흩날리며 해골 같이 생긴 강철 갑옷을 입은 안드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로이드는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처럼 생기 없는 얼굴로 릴리몬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동자 안에서 릴리몬의 모습이 똑똑히 포착되고, 조준되었다.

안드로이드의 이름은 안드로몬. 아미의 또 다른 파티원 중 하나다.
릴리몬은 당황하면서 곧바로 꽃잎 캐논을 만들었지만 안드로몬이 더 빨랐다. 안드로몬의 가슴이 열렸다. 가슴에 드러난 포구에서 메기처럼 생긴 유기체 미사일이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미사일이 뿜은 연기가 마치 실처럼 릴리몬과 안드로몬을 이었다. 실이 연결된 순간, 건물 천장을 가볍게 뚫고 불길이 치솟았다. 폭발의 열기가 아래로도 퍼졌지만 아미에게 향한 열기는 라일라몬이, 유키호에게 향한 열기는 래피드몬이 막아줬다.

후폭풍이 가시고 연기구름에서 커다란 불똥이 떨어졌다. 불똥의 정체는 릴리몬이었다. 릴리몬이 재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으윽……. 비, 비겁해……. 난 혼자인데 저쪽은 셋이라니…….”
“말했잖아? 우린 해커라고. 해커의 싸움은 기본이 3 vs 3인 거 몰라? 상식이잖아. 나 혼자서 널 상대해도 이겼겠지만.”
라일라몬이 새침하게 웃음을 날렸다. 릴리몬은 수치 때문에 새까만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지만, 얼굴에 몰린 핏기를 금방 목 아래로 흘려보냈다. 포기한 것이리라.

“자, 이제 여기를 원래대로 돌려놔.”
아미가 라일라몬 앞으로 나서며 말했지만
“그건 못 해.”
릴리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하고 싶어도 못 해. 난 디지털 웨이브가 흘러나오기 좋게 수도꼭지를 더 세게 틀어놓은 거지, 내가 여기로 모은 건 아니거든.”
릴리몬의 의외의 말을 한다. 라일라몬이 손을 겨누며 물었지만,
“지, 진짜야!”
릴리몬은 눈을 질끈 감고는 항변했다.

래피드몬을 타고 유키호가 아미 쪽으로 돌아왔다. 유키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릴리몬에게 하는 말이었다.

“저기, 왜……. 이런 일을 한 거야?”
“유키호 쨩을 위해서…….”
“나를 여기로 왜 데리고 왔었어?”
“유키호 쨩한테 사과하고 싶었어. 일을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고, 또 유키호 쨩이……. 너무 놀란 것 같아서…….”
유키호는 여전히 이해 못 한 표정이다. 릴리몬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침통한 표정.

아미는 릴리몬이 유키호의 스토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으나…….
혹시 다른 사정이 있는 건가?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는 사무소로 가서 쿄코 씨와 이야기를 맞춰보면 알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릴리몬을 사로잡는 게 우선이다.

그러던 차에 저 멀리서 사람 몇 명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아미는 릴리몬을 제압할 라일라몬을 제외하고 래피드몬과 안드로몬을 디지바이스로 보냈다. 경관 5명. 아까 아미가 봤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라일라몬과 릴리몬을 보고 경계했으나 아미가 상황이 종료됐다고 이르니 석연치 않은 태도로 경계를 풀고 다가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엔 미로에 갇혀 당황했으나 노랫소리를 따라 미로를 헤쳐 나왔다고 한다. 유키호의 노랫소리가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노랫소리가 중간에 끊겼지만 나중에 들린 폭발음을 따라 미로를 벗어났다고 한다.

경관들이 고맙단 말을 하자
“아, 아우우…….”
유키호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아미 뒤로 숨었다.

그 후 경관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투덜거렸다. 이 상황에 대한 보고를 대체 어떻게 올리면 되나……. 이런 이야기였다. 아미는 마타요시 경부가 처리할 거로 생각했기에 그 점에 관해선 별로 걱정되진 않았다.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제각기 분산되었다. 그리고 그때를 노린 듯 릴리몬이 갑작스럽게 벌떡 일어나 아미에게 달려들었다. 라일라몬이 릴리몬을 잡으려 했지만, 라일라몬은 릴리몬을 잡지 못했다. 아미를 감싼 방향으로 푸른 화염이 날아오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릴리몬이 아미를 감쌌다.  

라일라몬은 침착하게 손을 화염을 향해 조준했고 에너지탄을 발사했다. 에너지탄이 불꽃을 밀어낸다. 그러나 발사를 너무 늦게 했는지 불꽃은 이미 가까운 거리까지 왔다. 불꽃이 폭발하며 작은 폭풍이 일었다.

폭풍은 릴리몬을 덮쳤다. 라일라몬은 자기 뒤로 불길의 폭풍이 번지지 않도록 게일 스톰으로 상쇄했다. 꽃향기가 실린 바람과 불길이 실린 바람이 맞부딪친다. 그리고 불길의 바람이 뒤로 밀려나 단순한 바람이 되어갔다.

바람이 멎었다. 다행히 아미는 무사했다. 대신 릴리몬이 등을 새까맣게 태운 채로 아미에게서 미끄러져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미와 라일라몬은 재빨리 릴리몬의 상처를 살폈다.

심각한 상처였다. 등에 지고 있던 나뭇잎은 거의 다 타들어 갔으며 등에는 짓무른 상처가 크게 났다. 심지어 텍스쳐가 깨져 와이어 프레임이 드러난 부분도 있었는데 상처에서 데이터 패킷이 피처럼 흘렀다.

“대체 왜…….”
뒤에서 상황을 지켜본 유키호가 중얼거렸다.
“유키호 쨩의……. 친구니까…….”
유키호의 의문에 릴리몬은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유키호는 헉 소리를 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라일라몬은 불꽃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그곳에는 가루루몬을 끌고 온 파파라치가 경박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하! 뭐야 여기! 디지몬이 실체화하잖아? 굉장해! 이 힘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하하하하 저 자식 꼴 좀 봐! 아깐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라일라몬은 아미에게 전투 개시의 지시를 내려달라고 말하려 했으나……. 아미가 험악한 눈초리로 파파라치와 가루루몬을 노려보는 걸 보곤 말을 삼켰다.

“우, 우아! 괴물이다!”
경관들이 총을 발사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겹치며 총알 몇 발이 가루루몬을 노렸지만 총알은 가루루몬의 털에 손상조차 주지 못한 채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가루루몬이 총에 맞은 허리를 뒷발로 벅벅 긁었다. 마치 벌레에게 물렸다는 듯이.

디지몬에게 총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
아미는 릴리몬의 상처를 살피느라 꿇었던 무릎을 폈다. 일어서면서 디지몬 캡처를 기동시켰다. 아미의 등 뒤로 안드로몬, 래피드몬이 나타났다.

파파라치는 당황하지 않았다. 저쪽도 디지몬 캡처를 기동하여 디지몬 몇 마리를 더 꺼낼 셈이다.

디지몬 vs 디지몬.
해커 vs 해커.

전뇌공간 뒷세계의 싸움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려는 찰나…….

파파라치와 가루루몬의 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구멍이 뚫렸다. 구멍은 마치 배수구라도 되는 양 물컹물컹한 액체 같은 것을 배출하고 닫혔다. 액체처럼 보인 건 고체였다. 오징어나 해파리처럼 부드러운 연체 몸이기에 액체처럼 보였다.

기분 나쁜 무늬가 새겨진 생물체가 촉수를 뻗으면서 공중을 유영했다.

아미의 머릿속에 번개가 스쳐 지나갔다.

카미시로 엔터프라이즈의 핵심 기술자인 스에도 아케미는, 쿄코와 아미가 마요이가라고 부르는 현상을 디지털 시프트 현상이라고 명명했다. 디지털 시프트 현상은 특수한 디지털 웨이브가 모여 생기는 이상 현상. 그리고 그는 그 현상의 중심에 이터라는 존재가 있다고 추측했다. 디지털 시프트 현상은 이터가 나타난 영향이라고.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이터는 사람과 디지몬을 잡아먹는다.

디지몬은 통째로 삼키고, 사람은 정신을 빨아먹는다.

EDEN에서 이터에게 먹힌 사람은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혼수상태가 된다. 그게 바로 세간에 EDEN 증후군이라고 알려진 병의 정체다. 물론 이 병은 현실세계에서 이터에게 먹혀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아미는 이터에게 먹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다.
이터에게 한번 먹혀봤으니까.

그래서 생긴 부산물이 바로 아미의 반전뇌체니까!

아미는 크게 외쳤다.

“도망쳐!”
이변을 눈치챈 파파라치와 가루루몬이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이터의 촉수가 가루루몬의 등을 덮쳤고 가루루몬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분해되어 먹혔다. 가루루몬의 몸이 면발처럼 가느다랗게 썰리면서 이터에게 빨려 들어갔다.

다른 촉수는 파파라치의 머리를 그대로 덮쳤다. 파파라치는 버둥거렸으나 금세 추욱 늘어졌다. 실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파파라치의 몸이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터의 몸이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들어가는 걸 반복하다 순식간에 형태를 바꿨다. 마치 대패에 썰리듯이 이터의 덩어리가 가느다랗게 뻗었다. 가느다랗게 뻗은 이터의 살이 모여들어 이내 사람의 형태를 이루었다.

어디까지나 사람 형태를 모방한 것처럼, 사람 모양이지만 사람이 아닌……. 사람과는 전혀 다른 생물체가 좀비처럼 불안정한 걸음으로 아미를 향해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경관들이 총을 쐈지만, 이번에도 소용없다. 총알은 사람 피부를 그대로 갈라서 뒤집어 깐 것 같은, 얼핏 보기엔 연약해 보이는 이터의 피부를 뚫지 못해 구슬처럼 미끄러져 바닥에서 통통 튀었다.

경관들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어 푸르게 되었다. 디지몬에게 통하지 않은 총알이, 그 디지몬을 잡아먹은 이터에게 통할 리 없는 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총을 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경찰이고,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시끄러운 화약 소리가 몇 번 더 터지고 난 다음에 화약 소리가 완전히 물러가고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총알이 떨어졌다.

아미와, 아미의 파티가 나설 차례다!
그러나 아미가 디지몬 캡처를 조작하려 한 그 순간!

이터가 먼저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굼뜨게 움직였던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터는 마치 최대한 당긴 고무줄이 순식간에 튕겨 나가는 것처럼 갑작스럽고 빠르게 팔을 뻗었다! 아미의 파티 중에서 가장 빠른 래피드몬이 반응했다. 래피드몬이 이터의 팔을 쳐냈다. 이터의 팔은 쭉쭉 늘어나 천장을 부수고 벽을 부수고 바닥을 부쉈다. 마치 벽돌 깨기의 공처럼 튕겨 나갈 때마다 궤도를 바꾸면서.

이터가 부순 파편이 아미와 경관들 쪽으로 날아왔다. 래피드몬이 광탄으로 파편을 한둘씩 부쉈지만 무수히 많은 수의 파편이 쏟아지는 바람에 래피드몬만으론 힘에 부친다. 뒤늦게 안드로몬과 라일라몬이 가세했지만 너무 늦었다. 파편이 디지몬들 뒤로 새어나갔고 파편을 따라 이터의 팔이 다시 한 번 덮쳐왔다.

커다란 충격이 이 공간을 난자했다. 이터가 팔을 거두었다. 디지몬들은 무릎을 꿇고 있었고, 인간들은 바닥에 쓰러졌다. 아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유키호부터 살폈다. 유키호도 아미처럼 별다른 상처는 없었는지 부들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아미는 아미의 파티와 붙어 있어서 피해가 작았고, 유키호는 릴리몬이 감싸줬다. 그래서 릴리몬은 아까보다 더 녹초가 됐다.

문제는 경관들.
경관들은 거리가 있었기에 파편을 그대로 맞았다. 다들 팔, 다리, 혹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피를 흘리고 신음하고 있었다. 아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터를 살펴본다. 다시 공격할 모양인지 팔을 기묘하게 꼬아 이쪽으로 향했다.

지금 여기서 전투를 벌이면 경관들과 유키호가 휘말린다.
아미는 디지몬 캡처를 재빨리 조작해 파티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래피드몬은 방어 위주로 이터를 상대, 나머지는 경관들과 유키호, 그리고 릴리몬을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주기.

안드로몬이 경관 둘을 어깨에 메고, 라일라몬도 둘을 어깨에 올렸다. 둘은 자리를 이탈했다. 나머지 한 명은 아미가 부축했다.

“유키호 쨩! 일어설 수 있어? 안전한 곳으로 피해있어! 이리와!”
“아, 알았어……. 자……!”
유키호는 릴리몬을 부축했다.

유키호와 릴리몬이 아미와 경관 뒤로 바짝 쫓아왔을 때, 뒤에서 거센 바람이 불었다. 이터의 공격을 래피드몬이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이번에도 주변이 사정없이 부서지고 파편이 흩날린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울리는 듯한 피격음이 뒤에서 연이어 울린다. 래피드몬이 기합을 내지르며 이터의 공격을 전부 받아친다. 동시에 파편을 걷으면서 격전의 폭풍을 막아낸다. 전력을 다해서!

아미의 정면, 저 멀리서 마침 라일라몬과 안드로몬이 돌아오고 있다. 저 둘이 돌아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 라일라몬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굳었다. 그리고 아미와 유키호를 강한 바람이 세게 떠밀었다.

이터의 강력한 한 수가 래피드몬을 밀쳤고, 래피드몬이 주춤한 순간을 틈타 폭풍의 조각이 몰려온 것이다.
아미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도 큰 대미지를 입진 않았다. 그건 유키호도 마찬가지. 아미는 쓰러진 경관을 다시 부축하려 했으나, 아미 옆에 경관 대신에 릴리몬이 쓰러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유키호 쪽엔 릴리몬 대신 경관이 쓰러져 있다.

바람에 밀려 쓰러지면서 위치가 바뀐 것인가. 아미와 유키호, 둘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아미는 릴리몬을 부축하려다 유키호한테 남자 공포증이 있는 걸 떠올렸다.

유키호와 자리를 다시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럴 틈이 있을까? 뒤에서 들리는 소리로 추정하면, 래피드몬이 언제 밀릴지 모른다. 라일라몬과 안드로몬이 도착할 때까지는커녕, 아미와 유키호가 자리를 다시 바꿀 때까지 래피드몬이 버틸 수 있을까?

“우, 우으으……. 아…….”
유키호가 새파란 안색으로 덜덜 떤다.
역시……. 무리해서라도 유키호와 자리를 바꿔야…….
아미가 그렇게 결심한 순간, 유키호도 입술을 잘근 씹고 결심했다. 유키호는 눈을 꾹 감고 경관의 어깨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경관의 팔을 자기 어깨에 둘러 경관을 일으켰다.

유키호는 눈을 떴다.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숨이 가빠졌지만 그래도 앞을 똑바로 보고 다리를 움직였다.
유키호가 1m 걷고 나서야 아미도 릴리몬을 부축했다.

릴리몬이 중얼거린다.

“굉장해……. 유키호 쨩. 나는 괜한 짓을…….”
다행히도 유키호와 아미가 라일라몬 일행과 합류할 때까지 래피드몬이 버텼다. 라일라몬이 릴리몬을 어깨에 메고, 유키호를 한 팔로 안아 들었다. 안드로몬은 그대로 래피드몬에게 합류.

“아미 쨩, 괜찮겠어?”
“응, 괜찮아! 유키호 쨩이 힘낸 것처럼 우리도 힘낼게!”
아미는 유키호에게 미소 짓곤 곧바로 뒤돌아 격전지에 합류했다.

“좋아, 그럼 가자!”
아미가 합류하자, 래피드몬과 안드로몬의 공격이 더욱 격렬해졌다. 아미는 디지몬 캡처를 이용해 커맨드를 입력했고 입력된 기술을 래피드몬과 안드로몬이 그대로 구현했다. 래피드몬의 광선을 따라 안드로몬의 미사일이 날아오른다.

포격이 쏟아지고, 쏟아지고 또 한참을 쏟아졌다. 공격을 받은 이터가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다 미사일 파편에 턱을 얻어맞아 뒤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라일라몬이 파티에 합류했다.

“내 몫 남았지?”
라일라몬은 타이밍 좋게 팔을 이터에게 조준했고 그대로 꽃향기가 섞인 광탄을 쏟아냈다. 광탄은 이터를 관통하고, 관통한 자리를 향기로 채웠다. 이터가 소멸하자, 현실에 끼어든 디지털 노이즈가 사라지고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공연장 건물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결과를 말하면 유키호의 미니 라이브는 중지. 경관들은 경상으로 병원에 입원(다행히 최대 전치 몇 주로 끝났다.).
이런 피해를 남기고 사건이 종료되었다.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까. 이번 사건을 시간상으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발단과 원인은 유키호의 광팬인 릴리몬의 폭주.
유키호의 팬이었던 릴리몬은 유키호의 블로그에 거주하며 유키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그러다 유키호가 여전히 남자에게 애먹는 걸 안타깝게 여겨 모든 걸 계획했다.

릴리몬의 계획은 이러했다. 릴리몬이 EDEN에서 유키호의 아바타를 조종해 남성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릴리몬이 남성들과 달라붙은 영상을 유키호의 아바타에 저장한다.

그리고 유키호가 EDEN에 로그인할 때 영상이 유키호의 의식에 덧씌워지도록 꾸민다.
일종의 최면효과. 릴리몬은 그걸 의도했지만…….

여기서 릴리몬의 계획이 틀어지는 요소가 등장한다. 바로 파파라치. 유키호의 아바타를 알아본 파파라치가 유키호의 탈을 쓴 릴리몬이 저지른 행위를 모조리 스크린샷으로 남겼고, 그걸 바탕으로 유키소의 소속사에 돈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릴리몬의 계획이 틀어지는 요소가 하나 더 나타난다. 765 프로덕션이 쿠레미 탐정 사무소에 사건 해결을 의뢰한 것. 경찰과 카미시로 측의 수사는 운 좋게 피할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수사의 프로가 릴리몬의 계획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릴리몬의 마음이 급해졌다. 릴리몬은 유키호의 계정을 이용해 파파라치를 불러냈다. 그렇게 불러낸 파파라치를 급하게 처리하려 했지만, 아미에 의해 실패. 결국 릴리몬은 무대를 현실로 옮겨 그곳에서 파파라치를 처리하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유키호의 미니 라이브 회장.
릴리몬은 유키호의 메일 계정으로 파파라치를 꾀어냈다. 이번에는 유혹하듯이. 좀 더 노골적인 내용으로. 파파라치는 바보같이 릴리몬의 함정에 걸려들어 현장에 나타났다.

그 후 디지털 시프트가 일어나고 이후는 아미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갔다.

쿠레미 탐정 사무소에서 쿄코를 제외한 5명이 쿄코의 추리를 경청했다.
아미, 유키호, 프로듀서, 릴리몬, 피트.
아미는 쿄코 옆 소파에 앉아서, 유키호와 프로듀서는 의뢰인용 소파에 앉아서, 릴리몬과 피트는 사무소의 TV를 통해.

“우리 쪽의 우수한 수사원 덕분에,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쿄코의 말에 피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엣헴, 헛기침했다.
“정정할 필요가 없는 명추리야.”
릴리몬은 주눅이 든 채로 쿄코의 추리를 긍정했다.

아미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사건의 진상은 아미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했다. 그냥 스토커 사건인 줄 알았는데……. 아미는 헛다리를 짚은 걸 쿄코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침묵했다.

“그건 그렇고 결국 난 이번 사건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구나. 미안해. 유키호.”
“그,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프로듀서……. 어쩔 수 없었잖아요.”
프로듀서가 머리를 긁적였다.
디지털 시프트가 일어났을 때 프로듀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건물 밖에서 기다렸다.
어쩔 수 없다. 프로듀서는 일반인이니까. 게다가 프로듀서가 디지털 시프트에 들어가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쿄코는 릴리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라면 대답할게.”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미니 라이브 장소를 오다이바 제프 도쿄로 바꾼 이유는…….”
릴리몬은 먼저 입을 열어 쿄코의 말을 가로막았다.

“유키호 쨩의 라이브를 보고 싶었으니까. 그곳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됐거든. 파파라치를 거기로 유인한 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유키호의 미니 라이브 장소를 바꾼 건 릴리몬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파파라치를 유인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유로.

릴리몬은 미니 라이브가 원래 열릴 예정이었던 회장의 컴퓨터를 휘저어 계약을 꼬아버리고, 결제 시스템에 이상을 일으킨 다음 공연장 장비를 먹통으로 만들어 라이브 장소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바꿨다.

“당신이 진짜 낭만@핑크 씨…….”
유키호가 씁쓸한 투로 중얼거린다.

“미안해. 그리고 파파라치에게 큰 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겁을 줘서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하려고 했어.”
“그것도 충분히 범죄행위다. 네가 인간이었으면 상해죄로 체포되었을 것이야. 사건의 결과로 자업자득이라곤 하나 사람 한 명이 EDEN 증후군 환자가 되었고, 무고한 경찰 몇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곳에 이터가 나타났던 거로 봐선 언젠가 일어날 사고였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이번 사건이 없었다면 피해의 규모가 줄어들거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쿄코는 태연하고도 날카롭게, 릴리몬의 말을 파고들었다. 릴리몬은 반론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유키호 쨩…….”
그리고 이번 의뢰의 계기 또한 범죄행위다. 유키호의 아바타를 해킹. 메일을 해킹. 라이브 회장의 기기파손. 라이브 회장의 장소를 멋대로 변경, 그리고 무엇보다……. 유키호의 정신을 조작하려 했다.

단순한 팬심으로 변호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은 엄연한 범죄행위.
릴리몬이 인간이었으면 유치장 신세를 졌을 테고, 유키호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접근금지 처분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행위다,

“라이브가 취소되어서 팬분들이 상심하셨어.”
유키호는 조금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릴리몬은 훌쩍이면서 그걸 경청했다.
“나도 정말 무서웠고. 하지만…….”
유키호는 결심했는지 주먹을 굳게 쥐고 말을 이었다.
“고마워. 낭만@핑크 씨.”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던 릴리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아직도 낭만@핑크 씨가 블로그에 남겨준 코멘트들, 가끔 읽고 있어. 내가 힘들었을 때 당신의 성원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나를 생각하고 한 일……이지? 그리고 겨, 결정적으로 당신은 아미 쨩과 나를 지켜줬어.”
릴리몬은 가루루몬의 공격과, 이터의 공격을 막아줬다. 유키호를 위해. 유키호는 그것만으로도 릴리몬을 용서해줘도 괜찮다며 쿠레미 탐정 사무소에 릴리몬의 선처를 호소했다.

“유, 유키호 쨩 정말 천사…….”
릴리몬은 감격에 겨워 겨우겨우 참았던 눈물샘을 터트렸다.
“의뢰인 본인이 용서했으니 고용인인 내가 끼어들 여지는 없지. 나는 경찰이 아니고 탐정이니까.”
쿄코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릴리몬은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

“유키호 쨩은 정말 강하구나. 내가 쓸데없는 짓만 했어.”
“아, 아니야. 낭만@핑크 씨 덕분에 남성공포증이 조금은 나아진걸? 그때 내가 경찰분을 부축할 수 있던 건 아마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아니요, 그건 하기와라 유키호 씨가 원래 가지고 있던 용기입니다.”
쿄코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최면에 영향을 받았으면 말투나 성격에도 변화가 있었을 테니까요.”
릴리몬이 유키호에게 보여준 건 릴리몬이 유키호의 아바타를 뒤집어쓴 영상. 릴리몬의 행동이 배어있는 영상이므로 만약 유키호가 여기에 영향을 받았으면 남자공포증에만 영향을 받았을 리가 없다.

“제……. 마음이요? 저, 저 같은 글러 먹은 아이한테 용기 같은 게…….”
유키호가 주저하며 시선을 떨구었다. 쿄코가 유키호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 말은 아미가 먼저 했다.
“유키호 쨩!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건 용기가 있단 증거! 벌써 잊었어?”
아미의 말을 들은 유키호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유키호 쨩은 정말 용기 있는 아이야. 나, 나, 정했어. 속죄도 할 겸 유키호 쨩 같은 아이돌의 안전을 위해 전국의 공연장 서버를 돌아다니면서 이번 일 같은 이상 현상이 있는지 점검할 거야!”
화면 속의 릴리몬이 말했다. 유키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건 해결.

화제가 일단락되자 대화에서 소외되었던 프로듀서가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사건을 해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명성대로 대단한 사무소였어요! 훌륭합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혹시 다음에도 의뢰하실 일이 있으면 부디 저희 쿠레미 탐정 사무소에 다시 방문해주시길.”
쿄코는 익숙한 투로 너스레를 떨었다.

“의뢰……. 건은 아닙니다만 실은 처음 뵈었을 때부터 상담하고 싶었던 건이 있습니다.”
“호오, 무슨 일이죠? 프로덕션 간의 알력 다툼입니까? 아니면 방송국의 부당 압력?”
쿄코는 눈을 빛냈다.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으면서. 그 어떤 일이라도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과시하듯이.
프로듀서는 쿄코가 잡은 분위기에 어울리게 비장한 폼으로 품에서 명함을 꺼내 그걸 공손하게 두 손으로 쿄코에게 내밀었다.

“명함은 의뢰를 받을 때 이미 받았습니다만…….”
“아이돌에……. 흥미 없으십니까?”
아미가 놀라고 유키호가 놀라고 릴리몬이 놀라고 피트가 놀라고 쿄코는 놀라지 않는다.
“아이돌이라……. 확실히 재밌어 보이지만 제 체질에는 맞지 않을 것 같군요. 아쉽게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괴사건이 절 부르고 있어서요,”
“부디 명함만이라도…….”
프로듀서는 우직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뭐, 이야기만이라면 들어보도록 하죠. 마침 사건도 끝났으니 커피라도 마시면서.”
쿄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아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쿄코는 커피를 타려 일어났지만, 아미는 살기 위해서 일어났다.

“유, 유키호 쨩! 혹시 차 가지고 왔어?”
“응? 어, 응…….”
유키호는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타코야키랑 차 같이 먹자! 약속했잖아! 그렇지?”
“지금……? 앗……!”
아미는 유키호의 손목을 낚아채고 부리나케 탐정 사무소를 벗어났다.
얼마 후 쿠레미 탐정 사무소에서 한 남성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프로듀서는 그 후 가벼운 커피 알레르기가 생겼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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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났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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