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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치마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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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8, 2015 22:26에 작성됨.

또다시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었을 때, 나는 기타의 선율소리를 따라 걸었다. 시야의 끝자락에는 그녀, 키무라 나츠키가 있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그 자리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부드럽게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어서와, 히키가야. 기다리고 있었어"
 
"아아, 기다려줘서 고맙다"
 
기타를 잠시 치우고, 똑바로 마주보며 키무라는 물어왔다
 
"유이에게 듣기론, 나한테 부탁할게 있다던데, 뭔지 들어보도록 할까"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 말했다
 
"내 동생이 너의 싸인을 받아와 달라고 부탁하더라. 싸인 한 장, 부탁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라이브나 싸인회에서 만나는 팬이 아니라면, 싸인을 안 해주는 주의지만..."
 
키무라는 외투의 안쪽에서 펜을 꺼내들었다
 
"앞으로도 자주 볼 얼굴 같은데, 하나 써주도록 할까? 동생의 이름은 어떻게 돼?"
 
"히키가야 코마치(比企谷 小町)라고 한다"
 
"코마치(小町)인가...류구코마치랑 비슷한 이름이네.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아가씨인가?"
 
"당연하지. 치바의 시스콘으로서 어딜 가든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을만한 아이다"
 
"당당하게 시스콘이라고 말하는 건가......너, 의외로 록한 부분이 있는걸?"
 
딱히 록을 즐겨듣는 편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당당하면 록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보다 리나, 유이, 그리고 미카하고 친구가 되었다고 했던가?"
 
"죠가사키의 경우에는 애매하지만...사실 앞의 둘과도 완전히 친구라고 자칭하기엔...내가 너무 뒤로 물러나 있어서 단언할 수도 없어"
 
친구가 되자고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내 생활의 태도나 사고방식이 그렇게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할 수 있다면 아무도 다이어트나 인간관계 등에 고생하지 않겠지
 
"그럼 좀 더 어울려서 놀아보라고? 만남이 있어야 정(情)이 쌓이는 거잖아?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아"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치만, 갑자기 주변의 인간관계가 너무 확 달라져서, 내 정신이 따라가지 못 하는 듯 하다. 이건 기뻐해야 하려나, 슬퍼해야 하려나
 
"걔들은 아이돌이고, 난 일반인 거기다 남자라고? 스캔들 터지면 곤란해지는건 그쪽만이 아니잖아"
 
"뭐, 그건 그렇기도 하지. 어쨌든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고 하니, 나와도 친구가 되보겠어? 히키가야"
 
친구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친구끼리 친구가 된다면 어떨까. 겁쟁이였던 내가, 한 발자국을 나서지 못 해서, 친구가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직접 보고, 경험해 보기 전에는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근 3일간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잘 부탁하지, 키무라"
 
"나츠키치, 라고 불러도 되는데 핫치"
 
"그건 아직 허들이 너무 높아. 그보다 넌 힛키가 아니라 핫치라고 부르는 거냐"
 
"나만이 부르는 특별한 별명이라는 거, 의외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입장에서 좋은 거겠지"
 
이러다가 별명이 2개가 아니라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뭐, 여기서 친구가 더 늘어난다면──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되는 말이지만
 
"그럼 싸인 고맙다, 키무라"
 
"아아, 다음에 또 보자고, 핫치"
 
"......그 핫치라는 거, 은근히 개 이름 같아서 좀 그렇지 않냐?"
 
"시부야의 충견 하치공과는 단어부터가 다르다구?"
 
"...그래...알겠다"
 
딱히 더 할 말도 없어 그대로 집에 돌아갔다. 코마치 녀석, 분명 기뻐하겠지
 
*
 
"와아~ 고마워, 오빠! 나도 나츠키치의 싸인 get이네!"
 
"어디의 포켓몬 마스터를 꿈꾸는 꼬맹이냐. 그보다 그렇게도 좋냐?"
 
"물론이지! 나츠키치는 멋진걸?"
 
싸인을 품에 안고 기뻐 날뛰는 코마치. 역시 사랑스러운 여동생이다...이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나는...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미츠자네 풍)
 
"그보다, 오빠가 어떻게 이런 싸인을 받아온 거야? 오빠 성격 상 죽어도 싸인 해달라는 말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실제로 못 할 뻔하기는 했다. 친...구가 등을 떠밀어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코마치"
 
"응?"
 
"이 오빠...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녀석들과...친해진 것 같아"
 
"......"
 
코마치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본 듯한 얼굴을 하며 싸인을 받은 종이가 담긴 액자를 떨어뜨렸다. 여동생이 그런 반응을 보이면, 이 오빠는 마음이 아파와......
 
"진짜?! 진짜?! 누군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오빠, 또 혼자서 착각하다가 다치는 거 아니지?"
 
기쁨, 희망, 걱정, 우려 등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과 눈빛과 어조로 코마치가 말했다
 
코마치는 중학생 시절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어 꺾여버릴 뻔했던 나를 끝까지 지켜봐 왔으니까, 이런 반응이 당연한 거겠지. 물론, 나도 아직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녀석들에게라면 배신을 당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녀석들은, 정말로 반짝반짝 빛나고, 직설적이며, 멋있는 사람들이거든"
 
"아이돌들이야?"
 
"...뭐, 그렇다고 할까..."
 
어쩌면, 이 감정은 단순히 동경일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남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체적으로 빛이 나는 듯한 소녀들을 TV 속에서가 아닌 실제로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흔들린 걸지도 모른다
 
그치만...동경이라도 좋다. 그녀들이 내 등을 떠밀어 주는 것은 사실이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내가 변해가는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즐겁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과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달라서...어떤 의미로는,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바래왔던 풍경 같아서...다행이라고 생각해"
 
다행이다. 미시로 카페에 알바생으로 들어가서
 
다행이다. 그녀들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도망치지 않을 수 있어서
 
"오빠......지금 그 표정,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야"
 
"응...?"
 
"오빠, 지금...엄청 즐겁다는 듯, 행복하다는 듯 미소짓고 있어"
 
손을 입가에 옮긴다.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미소짓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줄이야...나도 참 중증이구만
 
"오빠가 지금 정말로 즐겁고, 행복하다면, 코마치로서도 포인트 높아. 정말로 다행이네, 오빠"
 
"응...그렇게 생각해"
 
정말로...정말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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