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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X 아이돌 마스터] 두 송이의 꽃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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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8, 2015 01:16에 작성됨.

원작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혼고 아키요시
아이돌 마스터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오다이바 제프 도쿄는 아오미역 북쪽 출구에 있는 스탠딩 공연장이다. 대형 공연장은 아니지만 미니 라이브나 팬 미팅 등 작은 이벤트 용도로는 규모가 큰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오늘 열리는 하기와라 유키호의 미니 라이브는 소수의 팬을 위한 자리다. 표는 유키호의 팬 전체로 따지면 정말 소수의 비율만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양이 풀렸다.

아이돌 업계 문외한이 볼 때 이렇게 티켓을 적게 뿌려서 이익이 날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 라이브 기획의 이면을 알게 되면 곧바로 아연실색해 티켓 하나에 들어가는 금액을 보고 그 금액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예를 들어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몇 번 할 수 있는가, 아니면 티켓 몇 장이 모이면 중형차를 마련할 수 있는가, 이런 쪽으로 의식의 가지를 뻗을 것이다.

오늘 열리는 미니 라이브 티켓을 손에 넣으려면 아이돌 업계의 생리를 잘 꿰뚫어 보고 백전구십팔승 수준의 전략을 치밀하게 짤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돈만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티켓을 얻기 위해선 상당수의 운도 필요하다.

특정 굿즈를 모아 응모권을 얻고 응모권이 당첨되어 10가지 상품 중 하나인 티켓이 손에 들어오길 빌고 또 빌어야 한다.

이래서 이익이 안 들어올 수가 없다. 사실 유키호와 프로듀서는 이렇게 팬들의 지갑을 쥐어짜는 방식은 달가워하지 않으나, 765 프로덕션을 지원하는 스폰서들은 이런 방식을 선호하기에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지금 공연장도 처음 기획보단 규모가 커져 티켓 입수 난이도가 내려간 것이다. 스폰서들은 처음엔 반발했지만 원래 대관 예정이던 공연장과 계약 문제니 전자 결제가 어쩌니 장비가 일제히 맛이 갔다니 어쩌니 하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잇달아 생겨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섰다.

유키호는 대기실에서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대기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보였던 불안에 떠는 작은 동물 같은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 유키호의 눈빛에선 프로 아이돌로서 느끼는 사명감이 흘러넘친다.

리허설은 이미 무사히 마쳤다. 유키호가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에서 갈고닦아온 재능이 빛을 낼 시간만을 고요히 기다린다.

하지만 모든 불안감이 사라진 건 아니다. 평소 같았으면 이 단계에서 마음을 완벽히 다잡았겠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다.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 일말의 불안이 유키호의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누른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키호 옆에서 유키호를 호위하듯 딱 붙어있는 전뇌탐정 아이바 아미. 그리고 경찰인력까지 더해진 경비 스태프. 유키호의 프로듀서도 스태프와 함께 건물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아미는 유키호의 불안을 감지했는지 심심한 농담을 꺼냈다.

"765(나무코) 프로덕션엔 나무코 씨는 안 계셔?"
"응? 어……. 그런 사람은 없어……. 아, 혹시 농담이었니? 치하야 쨩이 좋아할 것 같은 개그네."
농담은 안 먹힌 것 같지만 유키호의 긴장은 해소된 모양이다. 유키호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런 거지? 고마워. 오늘 라이브는 꼭 성공적으로 열고 싶어서 그랬어.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이 오거든."
아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키호는 스마트폰의 블로그 화면을 열어 아미에게 코멘트란을 보여줬다.

라이브 소식 포스트에 달린 코멘트였다. 난생처음 유키호의 라이브를 보러 가게 되어 기쁘다는 내용이 정중한 어투로 쓰여 있었다. 닉네임은 낭만@핑크. 전에 유키호가 알려준 열성팬이다.

"여태까지 사정이 있어서 라이브에 오신 적이 없대. 그런데 이번엔 우연히 올 수 있게 되었다고 몇 번이나 코멘트를 남겨주셨어."
유키호가 오늘 라이브를 강행한 이유.

"오늘의 무대를 그분께서 꼭 즐겨주셨으면 해."
유키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냈다. 아미는 유키호의 투지를 이해했다. 동시에 유키호의 투지에 감화되었는지 라이브를 성공리에 열게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미는 그 마음을 굳게 굳혀 다짐으로 삼았다.

촬영 스태프들이 대기실을 분주하게 오간다. 준비를 위한 발걸음치고는 다급하고 긴장이 실렸다. 스태프들이 몇 번 오간 후 대기실로 형사 한 명이 들어와 아미와 유키호에게 보고했다.
파파라치가 검거된 모양이었다.

건물 내부를 대놓고 어슬렁거리다 현장에서 잡혔다고 한다.
싱거운 결말이다. 아미는 그렇게 생각하곤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현장에는 765 프로덕션과 행사 측에서 고용한 경비와 쿄코 인맥으로 배치한 경찰 인력이 촘촘한 수사망을 펼쳐 행사장과 행사장 근처를 오가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쿄코가 원래 부르려 했던 전뇌범죄 수사과의 마타요시 고로 경부는 아쉽게도 먼저 조사하는 사건이 있어 오지 못했지만 마타요시 고로 경부가 엄선한 인원(다테 마키코 경부보는 마타요시 경부와 같은 사건을 맡고 있어 오지 못했다. 이점은 오히려 다행이지만.)이 경비에 합류했다.

그러므로 당연한 결말이다. 유능한 인원들이 배치되었으니 아마추어 해커 파파라치 나부랭이가 어찌할 도리가 없을 테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인물이라면 오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텐데…….
이쪽의 경비가 삼엄해지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을 텐데…….

왜 모습을 드러낸 걸까?
그런 의문이 아미의 머릿속에 무심코 떠올랐다.

형사 말로는 범인을 지금 바로 서로 연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얼굴이라도 확인해둘까 싶어서 아미는 대기실에서 나왔다. 유키호가 범인과 직접 대면하는 건 위험하므로 유키호는 대기실에 남기로 했다.

아미가 대기실에서 나오자 건장하고 우렁찬 비명이 들렸다. 회장은 아직 준비 중이므로 스태프 외엔 사람이 없을 테다. 관객들의 소리는 아니다.

아미가 들었던 소리는 여러 비명이 겹쳐 울린 소리였다. 적어도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의 비명이었다. 소리가 또 들렸다. 무대 쪽이다! 아미는 소리를 더듬어 뛰어갔다. 기재의 선을 밟지 않게 조심하며 최대한 빠르게 뛰어 현장으로 향했다.

아미는 복도에서 나오자마자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경관 5명이 릴리몬에게 총을 겨눈 광경을 목격했다.
릴리몬?!
경관들 뒤에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져 겁에 질린 파파라치의 얼굴도 보였다. 파파라치는 양손을 수갑으로 구속당한 채로 애벌레처럼 바닥에서 빌빌거리고 있었다.

경관들이 총을 발포했다. 화약이 터지는 난폭한 소리가 울리고 쓰고 독한 냄새가 회장에 퍼졌다. 총알은 냄새가 퍼지기도 전에 이미 릴리몬의 몸을 두들겼다. 하지만 뜨거운 열과 맹렬한 회전력을 담은 단단한 총알은 릴리몬의 깨끗하고 보드라운 피부를 관통은커녕 상처 하나 입히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릴리몬은 피부에 묻은 그을음을 가볍게 털어내곤 조용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경관들이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경찰론 역부족이다. 디지몬에겐 디지몬! 아미는 경찰들 앞을 가로막고 그대로 릴리몬과 대치했다.

“또 너야?”
릴리몬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릴리몬의 정면에 서자 아미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챘다. 릴리몬의 등 뒤로 현실세계에서 돌아다닐 리가 없는 디지털 데이터가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데이터는 어떤 물결 같은 것을 타고 흐르고 있었는데, 보나 마나 디지털 웨이브의 일종이다. 디지털 웨이브란, EDEN 운용을 위한 전자적인 데이터를 운송하려는 목적으로 카미시로 엔터프라이즈가 이곳저곳에 설치한 EDEN 스팟에서 흘러나오는 흐름이다.

그런 디지털 웨이브가 여러 개 겹치면 물리법칙을 가볍게 비트는 힘을 발휘한다.
물질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힘든 디지몬이 회선을 타고 튀어나오는 것 정도는 간단히 이루어진다. 이 장소는 디지털 웨이브가 모여드는 장소다.

이곳이 원래 그런 곳이든 릴리몬이 어떤 조작을 해서 이 장소에 디지털 웨이브를 집중했든 지금 릴리몬의 존재는 디지털 웨이브에 올라탐으로 인해 물리력을 얻었다.

파파라치가 한심한 비명을 내질렀다. 릴리몬의 압도적인 힘을 현실에서 목격했기에 공포에 질린 것이다. 하지만 아미는 파파라치처럼 패닉에 빠지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 당장에라도 릴리몬에게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릴리몬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아미의 디지몬도 이곳에 존재할 수 있다.
간단한 답이다.

아미는 이런 현상을 이미 몇 번 겪었다. 아미가 겁에 질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아미가 디지바이스를 조작하려는 순간,
“성가시니까 잠깐 다른 곳으로 꺼져버려!”
릴리몬이 먼저 손을 썼다. 릴리몬이 과격하게 팔을 휘두르자 디지털 웨이브의 흐름이 거세지며 건물 전체를 감쌌다. 디지몬을 꺼내려던 아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그대로 디지털 웨이브의 급류에 휘말렸다.

아미는 중력의 손아귀에서 강제로 해방된 듯한 기분 나쁜 부유감을 잠시 느꼈다. 부유감이 아미의 오감을 순식간에 박탈한다. 부유감이 가시고 중력의 손아귀가 다시 아미의 몸뚱이를 쥐었다. 줄곧 서 있었건만 공중에 떠 있다가 바닥에 착지하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들며, 온몸의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

아미는 얼굴을 긁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근처에 있던 무대가 보이지 않는다.
아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과 같으면서 다른 장소다.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 웨이브의 영향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난 결과, 아미가 있던 장소가 공간적으로 이리저리 휘어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거지만.

전자적인 흐름이 현실 공간을 침투해 현실에선 볼 수 없는 현상을 싹 틔웠다. 네트워크를 유영하던 데이터들은 현실의 물리법칙을 부여받았고, 반대로 현실의 물리력은 전뇌세계의 법칙에 묶였다. 서로 다른 두 법칙이 이 공간에서 공존한다.

회장과 건물 곳곳에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길이 생겼고, 있던 길은 사라지고 중간중간 기묘한 오브제가 솟아 통행을 방해하거나 아니면 아예 어디로 연결됐는지 모를 구멍이 뚫린 식으로…….

회장과 건물이 미로가 되었다.

커피에 우유를 부어 라떼아트가 탄생하듯 현실에 전뇌세계가 섞여 이런 기묘한 공간을 형성했다.
카미시로 엔터프라이즈의 연구자인 스에도 아케미는 이 현상을 ‘디지털 시프트 현상’이라고 명명했고, 쿄코는 토호쿠와 간토 지방에서 전해지는 민간설화인 ‘마요이가 전설’에서 따와 ‘마요이가 현상’이라고 부른다.

마요이가 전설은 현실의 경계를 넘은 이계에 존재하는 기묘한 저택의 이야기다.
지금 이곳은 그야말로 현실의 경계를 넘은 이계다.

아미는 이 현상도 몇 번 경험했다. 그래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디지바이스를 조작해 라일라몬을 불렀다. 라일라몬이 앞장서 아미가 걸을 길을 탐색한다. 그렇게 미로를 헤매던 중 통신이 왔다.

『조수 군, 통신이 연결됐나?』
쿄코의 통신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미의 목소리를 들은 쿄코가 말을 이었다. 마요이가의 영향인지 영상과 음성에 노이즈가 섞였다.

『통신 장애가 생긴 걸 보면 어떤 일이 터진 모양이군. 뭐, 연결은 됐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나. 피트가 재밌는 걸 찾아내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피트가 네트워크에서 유키호에 관해 조사하러 갔었지.
『하기와라 유키호의 블로그에서 피트가 어떤 흔적을 찾아냈다. 그 흔적은 디지몬의 흔적이다. 게다가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고 그러더군. 꽃 디지몬의 냄새가 말이야.』
“꽃 디지몬이요?”
『블로그에 방문하는 어떤 아이피와 코멘트에서 꽃 디지몬의 냄새가 난다고 한다. 닉네임은 낭만@핑크』
유키호에게 직접 들었던 닉네임이다. 유키호의 블로그 포스트 코멘트란의 1등을 놓치지 않는 열성적인 유키호 팬이자 어떤 이유에선지 유키호의 라이브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니라……. 디지몬.

“쿄코 씨……. 저, 사건의 진상을 알 것 같아요.”
『호오, 그런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인지 확인을 하고 싶다만……. 아무래도 그럴 시간은 없는 모양이군.』
표정에 다급함이 드러났어. 조수 군.

쿄코는 그렇게 말하며 묘한 웃음을 짓곤 통신을 끊었다.
아미는 통신을 끊어지기가 무섭게 땅을 박차고 뛰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장섰던 라일라몬은 그런 아미의 주변을 살피며 아무 말 없이 아미의 뒤를 바싹 쫓았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이 앞서 뛰긴 했지만 미로 같은 마요이가를 헤쳐나가긴 힘들다. 아무리 마요이가를 헤쳐나간 경험이 있다 한들. 아미가 겪은 마요이가와 지금 이 장소의 마요이가는 길이 다르다. 다른 미로다.
그래도 아미는 될 수 있으면 빠르게, 최대한 경험을 살려 활로를 찾았다.

아미의 반전뇌체 몸이 마요이가의 불온한 공기를 피부로 짚으며 본능적으로 활로를 찾는다. 아미는 그렇게 뛰고 또 뛰다가 어떤 노랫소리를 귀로 잡아냈다. 들어본 적 있는 음색이다.

마치 아미를 부르는 듯한 차분하고 편안한 목소리. 아미는 목소리를 길잡이 삼아 겉만 번지르르한 신기루 길과 실제로 걸을 수 있는 길을 구분하여 뛰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나고 나서 아미는 유키호가 있는 라이브 회장에 도달했다.

차분했던 목소리와 달리 반쯤 울먹이는 얼굴을 한 유키호가 아미를 발견하곤 무대에서 뛰어 내려왔다.

“아미 쨩!”
“고마워,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어.”
“다행이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누군가가 찾으러 올 거로 생각했거든……. 대기실에서 여기까진 나왔지만 길을 찾을 수 없어서……. 계속 여기에 있었어…….”
이변을 감지한 유키호는 다른 사람을 찾으려 대기실에서 나와 라이브 무대까지 겨우 도착했다는 모양이었다.
유키호는 여전히 불안한지 어깨를 웅크린 채로 좀처럼 시선을 아미와 맞추지를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가상공간인 EDEN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 이런 사건을 겪은 것이다.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아미는 침착하게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유키호에게 설명했다. 마요이가라는 명칭 때문에 외려 유키호가 더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침착하게 설명하는 아미에게 감화라도 되었는지 유키호는 아까보단 진정한 모양새로 아미와 똑바로 눈을 맞췄다.

“여, 여기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어?”
“원인이 되는 걸 퇴치하면. 원래대로 돌아가.”
여태까지 그랬다.
아미가 겪은 바로는.

이 경우에는 릴리몬을 쓰러트리면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라이브가 걱정되는지 유키호의 얼굴에 침울한 빛이 감돌았다.

오늘은 유키호에게 있어 중요한 팬이 난생처음 유키호의 라이브를 보러 오는 날이다.
그리고 아미는 그 중요한 팬에 대한 이야기를 유키호에게 해야 한다.
팬을 위해 위험한 일정까지 마다치 않고, 최고의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불안한 상황에서 정열을 태우고 있던 유키호에게 그 중요한 팬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말해야 한다.

아미는 잠시 망설였다. 이걸 그대로 유키호에게 전한다면…….
하지만 전하지 않을 수도 없다. 릴리몬이 아미의 예상대로……. 유키호의 스토커라면 유키호가 위험하다.

그리고, 아미가 유키호를 제대로 본 게 맞았다면 유키호는 충격을 받을지언정 그것 때문에 주저앉을 아이가 아니니까.

아미는 유키호에게 릴리몬 이야기를 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때, 아미의 말을 가로막듯, 그 말만은 해선 안 된다는 듯 정말, 아주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문에서 누군가가 밖으로 나왔다.

나타난 인물은 아미의 입을 막기 위해 문을 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황에 절묘한 인물이었다.
수갑을 찬 채로 숨을 헐떡이는 파파라치.

혹시 파파라치도 유키호의 노래를 듣고 찾아왔나?
파파라치는 문을 열자마자 기겁을 하면서 놀라 자빠졌다.
아미 곁에 있는 라일라몬을 보고 놀란 것이리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라일라몬이 파파라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라일라몬은 마치 총을 겨누듯이 파파라치를 위협했다.

“으윽, 하필 이 녀석들이 있을 줄은…….”
“자아, 단념하시지!”
아미가 으름장을 놓자
“자, 잠깐! 난 오늘 하기와라 유키호가 불러서 온 거라고!”
“엇?! 모, 몰라요!”
파파라치가 자신을 필사적으로 변호했지만 유키호의 반응은 생소한 반응이었다.

“무슨 소리야! 오늘 여기로 오라고 했던 건 너였잖아?! 당신이 보낸 메일을 받고 오늘 여기로 온 거라고……! 크윽, 함정이었냐!”
유키호는 아미와 파파라치를 번갈아보다 핸드폰을 꺼내 메일 계정에 접속했다. 그리고 보낸 편지함을 뒤적였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메일은 없었다. 휴지통까지 뒤져봤지만 그런 메일은 보이지 않는다.

유키호의 반응을 본 파파라치가 질색하는 표정을 짓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난폭하게 버튼을 몇 번 눌렀다.
그러자 유키호의 핸드폰에서 메일 착신음이 울렸다.

유키호가 열어둔 메일창에서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수신 주소는 유키호가 전혀 모르는 주소다.

“몰라요……. 전……. 난 저 사람한테 메일을 보낸 적이…….”
파파라치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아미는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갑자기 대두한 인기척이 아미와 라일라몬을 노렸다. 바람인지, 아니면 디지털 웨이브인지 뭔지 모를 것에 휘말린 아미와 라일라몬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불시의 기습.

아미와 라일라몬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무렵, 기습의 주인공이 파파라치에게 매섭게 일갈했다.

“유키호 쨩한테서 떨어져! 쓰레기 자식!”
목소리의 주인공은 릴리몬이었다. 릴리몬이 경멸과 분노를 담아 파파라치를 쏘아붙였다.
파파라치는 비명을 지르곤 그대로 기어가듯이, 그러나 기어가는 거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부리나케 달아났다.

릴리몬은 그런 파파라치를 쫓으려 하다가 유키호를 바라봤다. 그러곤 곧바로 유키호를 한 손으로 안아 들었다.

“무슨 짓을…….”
정신을 차린 아미가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릴리몬은 다른 손을 등 뒤의 벽으로 뻗었다. 손에선 이미 한 송이 꽃이 꽃망울을 틔웠다. 꽃이 순식간에 피어오르며 꽃망울에서 빛이 터져나갔다. 빛은 순식간에 벽을 뭉개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릴리몬과 유키호가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크기였다.

릴리몬은 유키호를 안은 채 구멍을 통과했다.
그리곤 지나가면서 주변에 무차별 사격을 벌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근처에 있던 건조물들이 무너지며 구멍을 메운다. 파편이 아미를 덮쳤지만 마침 라일라몬이 아미의 앞을 막아서 방패가 되어주었다.

“괜찮아?”
“응.”
파편은 더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아까보다 더 성가신 벽이 생겼다.
“나 참……. 스토커가 누구보고 쓰레기라는 건지…….”
아미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지를 뒤집어써서 온몸이 더러워졌다. 아미는 먼지를 털면서 파파라치가 도망간 문과 유키호가 납치당한 벽을 번갈아 봤다.

파파라치를 놓친 건 아쉽지만 지금 최우선적으로 쫓을 상대가 누군지는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벽 부술까?”
라일라몬이 그렇게 물었지만 아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미의 시선이 잔해 속에서 나뒹구는 카메라 기재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유키호와 아미의 뒤에 있던 CCTV다. 아마 릴리몬도 이걸 이용해서 아미 일행의 뒤를 잡은 것이겠지.
카메라의 회선이 볼품없이 드러났지만 끊어지진 않은 모양이다.

“이게 더 빠르니까!”
아미의 뜻을 알아들은 라일라몬은 아미의 디지바이스로 돌아갔다. 아미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고, 아미의 몸이 카메라로 빨려 들어가 회선을 타고 이동했다.

릴리몬은 어느 정도 자리를 벗어났다 판단했는지 품에서 유키호를 내려놓았다. 유키호는 지금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다. 벌벌 떨며 서 있는 게 고작이다. 이를 다닥다닥 부딪치는 유키호를 릴리몬이 빤히 본다. 인간이 아닌 눈이, 동물도 아닌 눈이 유키호를 빤히 본다.

“아, 아아……!”
유키호의 머리에 현기증이 돌았다. 유키호의 정신이 가라앉으려던 그 순간,
“미안해! 유키호 쨩!”
난데없이 릴리몬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

“많이 놀랐지? 미안해. 나 때문에 이렇게……. 내가 좀 더 빨리 처리했어야 했는데…….”
릴리몬이 유키호의 손을 꼬옥 잡는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잡은 통에 유키호는 놀라지 않고 그저 얼떨떨한 얼굴로 릴리몬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정신은 어느새 멀쩡해졌다.
“그 쓰레기 자식은 내가 면대면으로 확실히 말해줄게! 걱정하지 마!”
“쓰레기라니 말이 심한 거 아니야?”
릴리몬의 바로 뒤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미의 목소리였다.

아미는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바닥에 착지했다. 아미는 꿇었던 무릎을 천천히 펴고 오버 니 삭스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리곤 자세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전뇌탐정 지금 바로 등장!”
“너?!”
“아미 쨩?!”
릴리몬은 경악하고, 유키호는 깜짝 놀라 두 손을 모아 입가를 가렸다.

“여긴 어떻게 온 거냐!”
릴리몬의 경악이 곧 분노로 바뀌었다. 릴리몬의 물음에 아미는 손가락으로 아미 머리 위에 있는 CCTV를 가리켰다.
“CCTV 회선을 타고 왔어.”
“인간한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미안, 말 안 했던가? 나 전뇌탐정이라고. 아니, 조금 전에 말했지?”
아미는 디지바이스를 조작했다. 라일라몬이 데이터 패킷을 흩뿌리며 아미 옆에 섰다.

“자아, 그럼 유키호를 놔주실까? 스토커!”
“누가 스토커야!”
“다 알고 있어! 네가 스토커란 걸! 유키호의 홈페이지를 항상 체크하던 낭만@핑크가 바로 너지?”
“큭, 어떻게…….”
“우리 쪽에 냄새를 잘 맡는 동료가 있거든.”
릴리몬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새파랗게 물들었다.

“저기, 네가 낭만@핑크 씨야?”
“그, 그건…….”
릴리몬은 차마 유키호 쪽으로 얼굴을 돌릴 수 없었는지 바닥을 향해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 릴리몬이 바로 낭만@핑크이자, 유키호 쨩의 아바타를 빼앗았던 스토커야!”
아미의 말을 듣자 유키호는 뒷걸음질을 쳤다.

“스, 스토커 아니야……. 스토커라고 하지 마!”
릴리몬은 고개를 들어 아미에게 신경질적으로 떼를 쓰듯이 내뱉었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아예 다른 종류의 꽃이 된 것처럼.

“우리 아미한테 쓰레기라고 했으니까, 그 정도는 참는 게 어떨까나?”
지켜보던 라일라몬이 릴리몬을 도발했다.
“난 그쪽한테 쓰레기라고 한 적 없어. 내가 쓰레기라고 한 건 그 파파라치야!”
파파라치? 착각했나.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래도 제대로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방해를 안 하려나?”
릴리몬이 주먹을 쥐어 라일라몬을 노려본다.
“따끔한 맛? 네가? 나한테?
라일라몬은 그것을 비웃는다.

“저번엔 경황이 없었지만 이번엔 제대로 붙어보자!”
릴리몬이 유키호에게서 떨어져 앞으로 나왔다. 릴리몬과 유키호가 적정 거리까지 떨어졌다. 릴리몬은 라일라몬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잡아 라일라몬을 노려봤다. 릴리몬은 지금 온 신경을 라일라몬을 향해 쏟아 부었다.

지금이다!

유키호의 작은 비명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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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늘어나서 2화로 나눴습니다. 다음 화에서 끝납니다.
이전 화들의 화수 표기도 수정했습니다.
원래 7월쯤에 올리려고 했는데 이걸 쓰던 중에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지금은 퇴원한 지 오래됐습니다.) 이 글에 대한 집필 의욕이 꺾여서(....) 이제야 올리게 됐네요.
기다리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화는 내일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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