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핫치마스 8

댓글: 3 / 조회: 1242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2-17, 2015 21:57에 작성됨.

"안녕하세요"
 
"아, 어서와요 히키가야 군"
 
직원용 후문으로 출근해, 안쪽방에서 꾸민 다음 밖으로 나온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손님들이 평소보다 많다. 물론 대부분 아이돌들이지만. 실제 업무를 보는 회사원들은 점심시간 되기 전까진 계속 일해야 하니까
 
아니, 점심을 건너뛰고서라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니까 일하지 않는 미래를 꿈꿨던 건데
 
"여어~ 힛키! 우리 왔어!"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고 오늘도 갸루 3인방이 들어왔다. 정기적으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딱히 올 필요가 없는데도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지만, 일부러 시간 내줘서 보러 와준다는 건 솔직히 기쁜 일이다
 
"주문은?"
 
"롤케이크랑 1분 동안 데운 우유!"
 
"아이스크림!"
 
"나는 설탕 4개 들어간 커피로 부탁할게"
 
아이돌이니까 몸매 관리에 신경 써 칼로리가 높은 건 잘 안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달달하고 칼로리 높은 걸 많이 시키는 갸루 3인방. 뭐, 레슨을 받을 때 격렬하게 움직이고 땀을 흘릴테니 살 찔 일이 없으려나?
 
격렬하게 움직임...땀...셋 다 몸매 좋음...크흠, 큼, 아...이거야 원 주변에 보이는게 아이돌들 뿐이니 자꾸 이런 망상을 하게 되는 구만. 나도 혈기왕성한 남자고교생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하는 건 죄가 아니잖아?
 
"힛키. 최근에 힛키의 사진이 LINE에 떠돌아 다니는 거 알아?"
 
"동생이 보여줬다"
 
바닥청소를 하면서 대답한다
 
"헤에, 힛키. 동생도 있구나? 귀여워? 역시 힛키 닮았으려나?"
 
"닮은 건 바보털 뿐이라고 할까. 내 동생이니까 귀여운게 당연하잖아.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깜찍한 여동생이다"
 
미리 준비해 온 물걸레로 테이블 위를 닦으며 대답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깜찍한 여동생이라...똑같이 여동생 데리고 있는 입장에서 넘어가기 힘든 발언인데, 히키가야"
 
"호오~? 나도 치바의 시스콘으로서, 여동생 귀여움 대전에서 질 생각 따위는 없다만, 죠가사키?"
 
"내 동생 사진 보고나 말해봐"
 
죠가사카가 핸드폰으로 여동생 사진을 보여준다. 나는 물걸레를 나나 씨에게 건네주면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얘 나이가 몇이야?"
 
"올해로 중학교 1학년생. 귀여운 JC(여중생)이라고?"
 
"내 여동생은 올해로 중학교 3학년생이다만, 1학년짜리 애가 벌써부터 갸루 화장이냐? 어린시절부터 화장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피부가 훨씬 더 빨리 상한다고 하던데"
 
"우리 회사에 불한증막이랑 피부관리실 있는 거, 넌 모르지? 충분히 관리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구?"
 
"그런거냐"
 
나나 씨가 건네준 쟁반을 받아들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갸루 3인방이 주문했던 음료들과 롤케이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 내려놓은 뒤, 리나가 갑자기 일어나서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고개를 돌려 자기 눈과 똑바로 마주보게 했다
 
"힛키"
 
"뭐, 뭐야...?"
 
키스하려는 줄 알고 당황했다. 아니, 키스하려는 줄이라니...나 너무 망상 속에서 빠져 사는 거 아닌가? 주변에 아이돌밭이라 칭할 정도로 예쁜 아이돌들이 많다고 해도, 이거 슬슬 심각한데...
 
"힛키가 알바하느라 바쁜 건 알겠는데, 대화를 할 때는 나를 똑바로 보고 해야하는 거 아니야? 건성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섭섭하다구"
 
"......미안하다"
 
거짓이 없는, 진심이 담긴 직설적인 말. 솔직해서 좋긴 하지만 부끄러움도 함께 밀려온다. 손님들 다 보고 있는데 이게 뭐하는 거니, 또......
 
"응! 그럼 됬어!"
 
다시 방긋 웃으며 자리에 앉는 리나. 그녀의 행동력과 직설적인 말은 몇 번이고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툭 까놓고 말해서 심장에 해로워. 반해버릴 것 같다는 의미로. 위험해. 위험해. 아이돌과의 스캔들이라니. 신상털이 정도로는 안 끝난다. 사생팬에게 찔려 죽을 거라고
 
"그러고보니, 너희들, 키무라 나츠키라고 알고 있냐?"
 
"아, 나츠키치 말이지?! 당연히 잘 알고 있지! 평소에도 저기 사내의 공원쪽에 있는 벤치에서 기타를 치고 있던걸? 그 자리가 진짜 명당인게, 빛도 잘 들고, 바람도 잘 불어서 나츠키치 왈, 여유롭게 기타 치기엔 딱 좋은 자리, 라고 했어!"
 
과연 유이. 사교성이 좋고 활발하다는 점에서 친구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키무라와도 잘 아는 사이였나
 
"그보다 너, 왈(曰)이라는 한자어도 아는구나?"
 
"우우~! 내가 갸루라고 해서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야?!"
 
"아니, 딱히 갸루라서 무시하는 건 아니거든? 그보다 너, 지난번에도 핸드폰으로 메일 하고 있을 때 한자어를 못 찾아서 상당히 헤매었잖아. 결국 그 한자어도 내가 찾아줬고"
 
"그, 그건...평소에 잘 안 쓰는 한자어이기에..."
 
변명을 할 때 표정과 행동에서 잘 드러나는 타입은 거짓말이나 변명을 잘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호감이 간다. 유이의 경우에는 귀엽게 보이기도 하고. 거짓말이나 변명을 잘 못하니까 속마음을 제대로 숨기지도 못 하고, 결국 진심만을 이야기하니까 믿음직하다는 거다
 
바보같고, 시끄럽고, 촐랑거리기는 하지만 그런 점이 오오츠키 유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말야...네가 내 대신 싸인 받아와 줄 수는 없겠냐?"
 
"에에? 힛키가 하면 될 걸 왜 나에게 떠넘기는 거야?"
 
"아니, 그게, 뭐라고 할까...키무라하고는 별로 대화해 본 적도 없고, 크게 친하지도 않고, 그런데 갑자기 막 싸인해 달라고 말하면...매너 위반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거 있잖아"
 
키무라 나츠키의 팬들은 싸인회나 라이브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한 그녀를 자주 보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싸인을 받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사내의 카페에서 알바생으로 근무하고 있고, 그만큼 우연히 마주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그녀의 팬들보다 많다
 
그 입장을 이용해서 싸인을 받아내는 건...매우 무례하고 비매너스러운 행동이 아닐까 싶은데
 
"힛키"
 
유이가, 아까 전의 리나처럼 진지한 음성으로 나를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나츠키치는 비겁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아무리 내 부탁이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거야. 정말로 힛키가 나츠키치의 싸인을 바란다면 직접 가서 당당하게 말해"
 
"아니, 그러면 키무라의 팬들에겐 불공평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힛키는 겁쟁이야. 싸인해달라고 요청하는게 부끄러워서, 겁나서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대며 뒤로 미루고 있는 것 뿐이야. 그리고, 힛키 자신이 받고 싶은 싸인도 아닌거지? 힛키가 정말로 나츠키치의 싸인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힛키가 방금 전 말한 것처럼 자기 입장을 이용해서라도 싸인을 받아냈을 거야. 힛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뭐야? 힛키가 정말로 바라는 건 뭐야?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어"
 
"......"
 
나는 '가짜'를, '거짓'을 싫어한다. '진짜'를, '진실'을, '솔직함'을, '진솔함'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나는...거짓말쟁이였다
 
"하아...한 방 제대로 얻어맞았구만...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의 싸인을 필요로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여동생이야. 그리고, 네 말대로 나는 겁쟁이야. 다른 핑계를 대면서 은근슬쩍 뒤로 미루고 있어. 여태까지 해 본 적 없는 일이니까, 거절당하는게 익숙하니까, 그런 것 때문에 또 상처받는게 무서워서 뒤로 미루고 있었어"
 
"그러면, 이따가 일 끝나면 나츠키치에게 찾아가야해? 내가 미리 연락해 놓을게"
 
유이가 싱긋 웃으며 키무라에게 메일을 보낸다. 이상하리만큼, 나는 이 소녀들에게 휘둘린다. 나와 정반대인 그녀들.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다. 상성적으로 내가 너무 불리하다고 여겨질 정도
 
다만, 그녀들이 겁쟁이인 내 등을 떠밀어 주기에, 내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일이겠지
 
하지만, 아직은 부끄럽다. 그러니까, 내가 계속 그녀들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조금씩 변하면서, 언젠가 스스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그 날엔, 꼭 고맙다고 말하자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