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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치마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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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4, 2015 21:48에 작성됨.

"다녀왔다, 코마치"
 
"아, 어서와 오빠! 오늘은 좀 많이 늦었네? 알바가 그렇게나 길었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쓰러지듯이 드러누웠다. 도망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집으로 가는 길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버스에 탑승해 버렸다. 그 덕분에 다시 한 번 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아니아니...그냥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
 
"흐응~ 그래?"
 
코마치의 표정이 음흉하게 변하더니, 손가락으로 내 가슴팍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진실을 말해봐, 오빠. 여자랑 관련된 일이지? 그것도 아이돌"
 
내 동생은 가끔씩 눈치가 너무 빨라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이 좋아진 아이돌이라도 있어? 과연 우리 오빠! 작정하고 밀어붙이면 누구든 함락! 이라는 거지?"
 
"그런 거 아니거든. 네 생각 속의 나는 얼마나 카사노바인 거냐. 그냥...그냥...리얼충인 여자에게 도망친 거야. 타보지도 않았던 버스에 탑승해서, 빙 돌고...그랬어"
 
"이런 한심한 오레기 같으니...그냥 둘러대며 도망치는 것도 모자라서 버스까지 잘못 탔어?"
 
알고 있다. 내가 한심한 것 정도는. 도망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는 개뿔이. 쪽팔린 일이다. 다음날 얼굴 어떻게 보지......
 
"오빠. 한 번 다 말 해봐. 코마치가 듣고 난 뒤 어떻게 해야 할 지 조언이라도 해줄게"
 
"......됐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는 신경 끄고 있어"
 
"오빠!"
 
등 뒤에서 코마치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
 
다음날 새벽 6시. 후드가 달려있는 체육복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오늘 아침부터 운동을 하기로 했다. 운동을 하기로 한 계기를 말하자면...시선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코마치의 시선이, 346 내의 아이돌들의 시선이, 그런게 은근히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코마치가 보고 있는 남성 아이돌들을 보면 말랐다기 보다는 은근히 잔근육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외견적으로 보기 더 좋다는 것이겠지.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자─라는 생각도 있다
 
공터를 달린다. 천천히 달리면서 시간의 흐름을 지켜본다. 어두웠던 새벽이 남색, 보라색, 주황색 등으로 변해가는 하늘. 천천히 일출의 광경을 보니, 딱히 새해에 보러 가지 않아도, 여기서 달리며 보는 하늘도 크게 나쁘지는 않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때, 다다다닷, 하고 누군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 말고도 달리는 사람은 당연히 있겠지. 이른 새벽에 달리는 어른들이나 노인 혹은 나랑 비슷한 입장의 학생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상하리만큼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기백과 위압감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붙잡히면 안 된다, 라는 느낌과 함께 달리는 속도를 조금 더 높이게 된다
 
뭐지? 뭐야? 나, 왜 이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 거야?! 뒤에서 달려오는 이 기백의 주인공은 또 누구?!
 
등을 돌리지도 못한 채, 달리는 그 시각, 갑자기 엄청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봄버어어어어어──!!!!"
 
"...히익?!"
 
쌩~! 하고 지나치며 달려가는 누군가. 뒷모습만 보면, 찰랑이는 포니테일이 돋보인다. 여자...인가? 그보다 엄청 시끄럽네.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팍 사라진다"
 
그냥 집에 돌아갈까
 
*
 
집에 돌아와서 씻고 적당히 아침식사를 한 뒤, 바로 출근을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단순히 알바하러 가는 건데도, 그 카페가 346이라는 대기업 안에 있기에 출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더니 기분이 영 묘하다
 
일하지 않는 미래를 꿈꾸는 내가 정말로 취업을 해버린 듯한 느낌. 다만, 요즘 같은 취업난의 시대. 고등학교 졸업하고, 국립대 졸업하고, 취업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오, 일찍 나왔군. 어서오게, 히키가야 군"
 
"어서오세요! 히키가야 씨!"
 
카페에는 이미 점장님과 아베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와있는 걸까, 이 사람들은?
 
"오늘도 일하기 전에 외모부터 가꾸고 시작해야지? 눈이 호강하면 입맛도 좋아지는 법이니까"
 
"싫은 논리네요, 그건......"
 
아이돌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외모. 그만큼 이 카페에서 예쁜 아이돌들을 자주 봐왔다고는 해도, 그런 말은 뭔가 외모지상주의를 연상하게 만들어 살짝 불쾌하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아베 씨의 도움을 받아 또 머리를 뒤로 넘긴 뒤, 도수 없는 안경을 낀 뒤, 소매를 걷어 올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런 모습으로 들어갔다면, 나도 리얼충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지. 아니지. 내가 스스로 박차고 나왔겠지'
 
나는 인간관계에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 겉모습만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딱히 놀고 싶지 않은데도 놀러 가야 하는 귀찮음을, 다른 사람들과의 분위기에 맞춰야 한다는 현실을 납득하지 못 해 지금처럼 아싸가 되었을 것이다
 
알바 시작한지 2시간 후, '그녀'가 찾아왔다
 
"......"
 
후지모토 리나. 가장 보기 껄끄러운 사람. 그녀는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 힛키! 좋은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좀 그런가?"
 
현재 시각 오전 10시 35분.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점심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대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에이~ 우리 사이에 너무 딱딱하게 그러지 말자~"
 
우리 사이라니...나는 딱히 너와 친해진 기억은 없다만
 
주변에서 시선이 잠깐 모였지만, 다시 흩어졌다. 여기는 아이돌이라는 상품을 파는 회사. 회사 내에서 남자랑 시시덕 거린다고 해도, 스캔들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지. 그들만큼 아이돌을 자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또 없으니까
 
특히 후지모토의 경우에는 사교성이 좋기에, 사내의 남성들 중에서도 그녀와 친한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에스프레소 하나면 됩니까?"
 
"에엑? 손님의 주문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거? 힛키, 의외로 막나가는 성향도 있구나?"
 
대체 얘는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단순히 내 겉모습만 보고서 친해지자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오늘부터 후지모토 리나의 안티가 될 생각이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왜 자꾸 나에게 친근하게 굴어? 이쪽에선 널 밀어내려 하는 거 안 보여?"
 
"친해지고 싶은데, 딱히 이유가 필요해?"
 
"......"
 
친구가 되고 싶은데 이유가 필요한가? 라고 묻는다면, 이유가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놈은 나쁜 놈이 되겠지. 그냥 친해지고 싶으니까,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져서, 친구가 된다─라는 공식이니까
 
"...나 같은 놈이, 친구라도 좋은 거냐...?"
 
흔들려버린다. 솔직하고 우직하게 친구가 되자고 찾아오는 눈 앞의 소녀에게. 굳게 쌓아올린 벽이 흔들린다. 만나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야기 나눈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가 쌓아올린 벽은 의외로 엄청나게 약한 벽이었던 모양이다
 
"힛키 같은 놈이라니? 힛키의 뭐가 부족한데? 외모? 재산? 아니면 친구의 숫자?"
 
"나는 너처럼 사교성이 좋은 녀석이 아니라고? 성격도 비뚤어졌고, 근성도 썩은 놈이야"
 
"그렇게 따지면 난 갸루잖아? 시부야 거리에 굴러다니는 갸루. 소위 '노는 애'. 힛키보다 더 평가가 나쁘지 않을까?"
 
눈높이를 맞춰온다. 의자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눌러 몸을 조금 숙이게 함으로서, 눈높이를 맞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아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도 아닌, 수평적이고, 평등하며 대등한 관계
 
"나랑 친구가 되자, 힛키. 싫다고 해도, 계속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친구가 되어달라고 떼를 쓸 거라구?"
 
"......"
 
17년의 삶. 그리 길지는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친구가 되고자 올곧게 마주봐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나는 아마 두 번 다시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교제할 기회를 놓치겠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리고 그 유혹 앞에서, 공든 탑이 무너지듯, 내가 여태까지 쌓아올린 벽이 무너져 내렸다
 
 
 
 
힛키를 공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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