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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키마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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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8, 2015 16:38에 작성됨.

후루사토 마을은 정말로 산골짜기 마을이었다. 무대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텅 빈 학교의 앞에 작은 발판 같은 걸 무대로 꾸미고 있다. 대기실도 텅 빈 학교의 교실 하나를 빌려줬을 뿐이다

 

"이 정도일 거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 했는데......"

 

기재들도 낡고 옛날 것들이라서 MR을 틀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심지어 아직 여름축제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젊은 남자들도 몇 안 되어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돌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도 동참해서 축제 준비를 도우고 있다

 

'학원제를 준비할 때에도 이 정도로 수고를 하지는 않았었는데......'

 

왜 치바도 아닌 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조금 자조 섞인 웃음까지 흘리며 의자를 옮겼다

 

*

 

"어이...마미, 아미. 내 앞으로 집합"

 

""넵!""

 

아키즈키 씨의 표정을 보아 또 엄청난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다. 두 사람은 하필이면, 이런 목가적인 마을에서 쓸 라이브 의상으로 무슨 SM컨셉의 헤비메탈 밴드에서나 입을 의상을 가져와버린 것이다

 

송곳같은 징이 박히 검은색 가죽재킷에 붉은색 목줄......애초에 이런 아이들이 이런 의상을 소화해 낼 수는 있는 건가?

 

"결국 단체복을 맞출 수 없으니, 전원,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라이브 무대에 올라서야 겠네"

 

프로듀서의 말에 아이돌들의 표정이 침울해진다. 특히 쌍둥이 자매의 경우에는 무릎 꿇고 고개까지 숙이고 있다. 당황하는 프로듀서.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라 당황하고 있다. 여기서는, 나도 좀 도와야겠지

 

"미니라이브라고는 해도, 여기는 엄연히 마을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야. 즉, 축제의 주인공들은 너희들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 그 사람들과 섞여서 노래 부르며 즐거워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열리는 미니라이브에 초대받은 의미가 없어"

 

초대가수라는 건 결국 축제의 흥을 띄우기 위함이다. 765 프로의 아이돌들을 보기 위한 돔이나 라이브장 같은 곳이 아닌 마을 축제인 이상,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 두고 있어야 한다

 

"키사라기.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데 중요한 건 뭐지? 의상인가? 무대의 크기인가?"

 

"...아뇨, 노래와 배경음악 그리고 들어주는 관객들입니다"

 

키사라기가 납득하자 다른 아이돌들도 천천히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키사라기가 가장 먼저 깨달아줘서 감사한다

 

"기왕 하는 거 다들 마을 축제를 즐기면서 해. 나중에 정말로 톱 아이돌 같은게 되어버리면, 지금처럼 관객들과 일일히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는 것도 힘들게 될테니까...팬들의 대하는 예행연습 정도라고 인식해두면 그나마 편할거야"

 

다행스럽게도 그저 어린애들이기만 한 것은 아닌지 납득하고 다시 스스로들 활기차게 일어난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생들이 이렇게나 잘 따라주고 납득해 준다면 정말로 가르칠 맛이 나겠지. 애 한두 명 데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30명 씩이나 되는데 얼마나 피곤할까

 

선생도 공무원이라는 걸 제외하면 3D 직업일지도 모른다

 

"고마워, 히키가야 군. 신세를 졌네"

 

"아뇨. 아이돌인만큼 대부분 저와 비슷하거나 얼마 차이가 안 나는 나이대이니까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어른의 말보다는, 마주보고 대화하는 십대의 말이 조금이나마 더 설득력이 있을 거에요"

 

"그렇구나...새겨들을게"

 

사람은 누구나 나이나 권위에 배경을 둔 명령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똑바로 마주보고, 자신을 존중하며, 부탁을 하거나 합리적으로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는 말을 더 선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프로듀서라는 사람도 참 좋은 사람이다. 자기보다 어린 십대 고교생의 말을 새겨 듣고, 스스로 아이돌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야말로 참된 어른의 상이라고 할까. 내가 어렸을 적 만났던,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다 프로듀서 같은 사람이었으면, 나도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그건 단지 IF일 뿐이야'

 

그래. 그건 IF다. 그저 그뿐인 것이다.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 없다. 과거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마주보거나, 거기서부터는 개인이 선택을 해야할 영역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겠지

 

*

 

다행스럽게도 기재는 낡기는 했어도 잘 돌아간다. 마이크도, 앰프 소리도 다 잘 들린다.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 거겠지

 

"리허설 준비는 잘 되어가, 키사라기?"

 

"아, 네. 모두 준비 완료에요...다만, 하기와라 씨가..."

 

시선을 돌려보니, 좌석에 앉아있는 일부 남자들을 보고 벌벌 떨고 있다. 그 사람들은 단지 무대를 즐겁게 감상하려고 잠깐 모인 사람들인데도......하아, 정말 피곤하게 만드는구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도 다 이런 심정인걸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버지, 어머니. 나까지 포함해 코마치까지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으시겠지. 나중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의 일부를 용돈으로라도 드릴까. 자식이 아직 한창 일 할 나이고 잘 하고 있는 부모에게 용돈을 건네면 조금 무례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서도...

 

하기와라를 따로 무대 뒤로 불러내고 물었다

 

"여전히 긴장되는 거냐?"

 

"응......역시, 나 무리인걸까?"

 

"......"

 

"아이돌인만큼, 남성 팬들도 많아질텐데...이렇게나 남자를 무서워하고...쉽게 긴장해서, 주저앉아 버려...모두와 함께, 다 같이 즐거운 라이브를 하고 싶은데..."

 

또 울먹인다. 또 울먹여. 가끔 길을 지나가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달래지 않고 혼부터 내는 부모들의 심정마저 이해될 것 같은 느낌. 꾹 참고 뭐 어떻게 위로나 용기를 북돋아 줄 말 같은 걸 생각해보자......무리다. 그게 가능하면 나는 아싸가 아니라 리얼충이었겠지

 

"어이...하기와라. 내가 아는 어떤 친구 H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

 

"에? 히키가야 군, 친구 없다 하지...아, 미안"

 

아니, 사과하지 말아줘. 더더욱 마음이 아파오니까

 

"크흠, 어쨌든...옛날에 H라는 소년이 있었어. 그 녀석은 언제나 친구를 사귀거나 여친이 있었으면 했지만 항상 실패만 거듭하는 녀석이었지. 결국에는 외톨이까지 되어서, 완전히 겁쟁이가 되어버렸어. 먼저 다가갈 줄은 모른채, 그저 우연이나, 운명 같은 것에 기대 하루하루 멍하니, 죽지 못 해 살아가는 녀석이었지"

 

삶의 이유도, 목적도 모르는 채, 그저 살아있으니까 살아간다. 썩은 눈과 함께 정신도 썩어버린, 그야말로 좀비같은 삶이다

 

"그러다가 말이야, 어쩌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그저 빙빙 주변만을 맴돌던 그 외톨이는, 다시 어떤 그룹의 안에 들어가게 되었어. 그 그룹은 상당히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워서, 도저히 그 외톨이 H군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지. H군도 처음에는 단지 약속을 한 것이 있어서, 증명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들어왔기에 적당히 사무적인 관계만 유지할 생각이었어"

 

사람 사이의 정(情)이라는 건 쌓으려고 해서 쌓아지는게 아니다. 함께 어울리던 사이, 어느새인가, 정이 싹을 트고, 모여있던 것이다. 그걸 765 프로에 와서 다시 깨닫게 된 바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들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애정이 생긴 것인지...여기가 싫지 않아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꽤 좋아한다고 생각해. 학교와 집 그리고 학원을 오가기만 할 뿐인 회색빛 인생이 컬러풀하게 물들어 갔다고?"

 

십인십색을 넘어서, 아이돌들과 프로듀서, 아키즈키 씨, 오토나시 씨, 그리고 사장님까지 전부. 15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이미 도중하차 하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다

 

"변할 수 있을지도 몰라. 겁쟁이 히키가야 하치만은...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어...너도, 변하고 싶다 하지 않았어?"

 

어느새인가 내 이야기라고 까발려버렸지만, 알게 뭐야. 그냥 진행해

 

"내가 처음 돕고자 했던 건 키사라기였어. 그렇지만, 나와 같이, 변하고 싶지만 겁쟁이라서 그러지 못 하는 널 보고...확실히 여기에 뿌리를 내려보자고 생각한 걸지도 몰라...어이, 하기와라. 실패한 경험만이 자랑거리인 내가 말하는 건데, 여기서 도망쳐버리면...다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어. 그래서, 너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

 

하기와라는 끌어모은 다리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숙였다. 곧, 몸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훌쩍이는 소리까지 들린다

 

"...미안, 너무 주제 넘은 말이었나 보..."

 

옷깃을 잡혔다. 한쪽 팔을 치웠기 때문인지, 얼굴의 반쪽이 드러난다.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하기와라의 왼쪽 눈이 보인다

 

"후, 회...할 거야...하지만, 후회...하고 싶지 않아! 무서워! 그치만 도망가고 싶지 않아! 숨고 싶어! 하지만 숨을 수 없어! 집에 가고 싶어! 그렇지만 모두에게 폐를 끼쳐버려! 이런 내가 싫어! 죽고 싶어! 그러면...부모님이, 그리고 모두가 슬퍼할 거야...!"

 

이도저도 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자기자신. 답답하고 불쾌하고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당당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 아이돌이 되라고"

 

"...으응?"

 

지금 이 대화를 듣고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오냐는 눈초리다

 

"아이돌의 뜻은 '우상'. 많은 소년소녀들이 TV에 나오는 화려하고 밝은 아이돌들이 되기를 꿈꾸지. 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극소수 뿐이야. 그래도, 그 꿈에 매달리는 바보들은 많아. 아이돌이라는 우상을, 희망을, 동경의 대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로부터 용기를 받아서, 더 살아갈 힘을 손에 넣어"

 

오리모토에게 차이고, 학교 전체의 놀림감이 되어, 한때 진심으로 죽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칼로 손목을 그으려다가 실패했다. 목줄을 묶고 걸려다가 실패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굶어 죽으려고 해보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배고프니까 먹고 싶고, 피곤하니까 자고 싶고, 죽기 무서우니까 살고 싶어졌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TV를 봤다. 아이돌들이 나오고 있었다. 다만 3D가 아닌 애니 속 2D의 아이돌들이었지만......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그 아이돌 소녀들을 보았다

 

그 순간부터 다시 평범하게 애니나 라이트노벨을 좋아하는 오타쿠로서의 삶을 계속 살게 되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죽고 싶으면서 죽을 용기가 없었던 바보의 시간은 곧바로 흑역사가 되었다

 

"이 세상에도 분명 너나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런 사람들의 희망이, 우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너는 이 자리에서 걷어차버릴 거야?"

 

하기와라 유키호는 정말 답답할 정도로 나약하고 소심한 소녀이지만, 그만큼 상냥하고 매사에 어떻게든 열심히 해보려고 도전하는 용기있는 소녀다. 정말로 소심한 사람이었다면, 아이돌이 되 볼 생각조차 못한 채 하루하루 무의미한 삶을, 자기혐오와 비판 속에서, 인형이나 시체처럼 살아갔겠지

 

"도전해...봐도, 되는 걸까?"

 

나를 돌아보면서, 하기와라는 물었다

 

"꼴사납게 실패해도...괜찮은 걸까?"

 

"누구누구 가라사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더라. 걱정마. 어차피 이런 작은 마을에서 진행하는 축제에서 실패한다고 한들, 아무도 몰라. 오늘 아침에 여기 오면서 마을 꼬맹이들이 말하는 것 봤잖아. 우리가 765 프로라는 것도, 아이돌이란 것도 모르던 녀석들이라고"

 

"예시가 틀려먹었잖아......"

 

입가를 삐죽거리면서, 곧 헤헤, 하고 웃음을 띄우는 하기와라. 스스로의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히키가야 군...나, 정말로 소심하고 약해빠진 아이지만...계속 이 상태로 살고 싶지는 않아...나는, 변하고 싶어"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결연한 의지라는게 서린 눈동자로 응시해온다

 

"또 약한 소리를 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겠지만...그때도,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지 않을래? 히키가야 군이 있어준다면, 나...뭐든 해낼, 아얏?!"

 

자리에서 일어나 콕, 하고 검지손가락과 중지손가락을 겹쳐 하기와라의 이마를 찔렀다. 어째서냐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하기와라

 

"바보냐, 너는? 아이돌이라면, 스스로 빛나야지. 나 같은 남자에게 기대는게 알려지면, 네 팬들에게 난 맞아 죽어......그래도 네 팬으로서, 너를 계속 응원하겠어"

 

하기와라는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곧 살포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응...! 팬으로서, 끝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어줘!"

 

저 멀리서 하기와라의 차례가 얼마 안 남았다고 프로듀서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쓱 훔치고 길을 비켜주었다

 

"다녀와. 무대 뒤편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테니까"

 

"......기왕이면, 저 앞에서 보고 있어주지 않을래?"

 

"마을 주민들 사이에 끼어 있으라는 거냐? 야, 그런 거 엄청 가시방......알았어. 가 있을게"

 

뭐 때문인지는 잘 몰라도, 그녀가, 진심으로 부탁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끝까지 믿고 지켜보겠다고 말해버린 입장이니, 스스로 말한 것을 지켜야겠지

 

 

 

 

......분명 시작은 치하야를 도우려던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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