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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죄송하지만 사직하겠습니다.」 미시로 「......」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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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3, 2015 16:16에 작성됨.

카렌 「......」

 

카렌이 실려있는 이동식 침대가 수술실을 나와 중환자실에 들어간지 한 시간 뒤.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한 카렌이 들어간 중환자실을 멍하니 린과 나오가 바라보고 있었다.

복도 바깥의 창문은 구름한점 없이 맑은 가을 날씨임에도 그들의 얼굴엔 장마같은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린 「......」 꼬옥

 

린은 자신의 두 손을 꼭잡고선 그저 가만히 기도할 수 밖에 없음을 한탄했다.

 

한편, 진료실에선 담당의와 치히로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치히로 「호죠 양의 상태는 어떤가요?」

의사 「잠시만요... 차트를 좀 펼쳐보면서 얘기하죠.」

 

담당의가 책상 위에 올려진 차트를 넘기는 시간이 그녀에겐 억만금의 시간이 지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 상황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의사 「혹시 제가 보고 있는 차트가 뭔지 아십니까?」

치히로 「네? 저, 저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데요...?」

 

담당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차트를 덮고, 으레 영화에서나보던 장면처럼 두 손을 깍지낀 채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의사 「자, 제가 직접 수술한 환자인데 차트를 다시 뒤져봐야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치히로 「......」

의사 「호죠 카렌... 양이었나요? 그녀는 일전에 백혈병을 앓았다는 병원기록이 국가전산시스템에 남아있더군요.」

치히로 「네?」

의사 「역시 모르셨군요. 어쨌든 알아두셔야 할건, 지금은 백혈병으로 쓰러진건 아니라는겁니다.」

치히로 「그러면?」

의사 「흠... 일단 설명부터 들으시죠. 그녀의 백혈병은 완치상태에 있었습니다만, 이로 인해 평생 약한 신체로 살아야될 상황이었죠. 그게 이번에 터진 것 같군요. 혹시 최근에 심장에 크게 무리가 갈만한 일을 장기간에 걸쳐서 한 적이 있지 않나요?」

 

치히로는 순간적으로 어깨가 흠칫하며 흔들렸다. 최근에 심장에 무리가 갈만한 일이라면 며칠동안 이루어진 혹독한 라이브 대비 레슨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의사 「있나보군요. 그녀는 지금 급성 심부종입니다.」

치히로 「건강한거죠? 그쵸?!」

의사 「진정하세요. 일단 관상동맥 우회술을 실시해서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회복기간은 길겠지만, 회복하고 나면 일상생활도 무리는 없을겁니다. 다만...」

치히로 「다... 다만?」

의사 「그녀... 아이돌이라고 했었죠?」

치히로 「네, 네에.」

의사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격렬한 운동을 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치히로 「넷?!」

의사 「아까 말씀 드렸지요? 관상동맥 우회술을 실시했다고요. 평생을 심장과 관상동맥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로 살아야합니다.」

치히로 「서, 선생님께서 방금 전에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면서요?!」

의사 「말 그대로 최소한의 일상생활입니다. 보호자 분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병원에는 걷지도 못하여 평생을 여기서 보내거나, 아예 죽음만을 기다리는 환자 분들이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확실히 좋은 경과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환자 분은 평생을 조심하며 사셔야 합니다.」

 

순간적으로 눈 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낀 치히로는 잠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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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로 「......」 꿀꺽

 

저물어가는 석양이 등 뒤로 비치는 고층건물의 집무실에 앉아있는 미시로는 조용히 스카치 위스키가 담겨진 유리잔을 입에 갖다대었다.

방금 전, 호죠 카렌의 상태를 보고받고 그에따라 회사에 미칠 여러 여파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마시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A 프로듀서를 불러다가 고함을 치며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지금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쾅!]

 

린 「하아하아......」

나오 「하아하아... 그게, 그게 사실이야?!」

미시로 「......」

 

그 때, 문을 박차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아이돌 두 명이 미시로 전무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시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 두 명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따라 여성 경호원들이 들어왔다.

 

미시로 「.....우리 프로덕션의 경호가 이따위였나?」

경호원 「죄, 죄송합니다!」

미시로 「......끌고나가.」

린 「자, 잠깐!!」

 

여성 경호원들이 린과 나오의 양 팔을 잡고 끌어내려고 하자, 갑자기 린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린 「치히로 씨한테 들었어!!」 버둥버둥

경호원 「시부야 양!」

나오 「그, 그래! 어째서 A가 타 부서로 승진해서 가는건데!!」

 

미시로는 그때까지 아무런 미동도 않던 얼굴의 미간을 찌뿌렸다.

그렇다.

카렌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A 프로듀서는 오히려 오늘 부로 346 프로덕션의 배우담당 부장으로 승진하여, 조직도 상에서 그녀의 손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시로 전무 본인도 그걸 알게 된 것은 카렌이 쓰러졌다고 하는 보고를 받기 직전의 일이었다.

 

나오 「미시로 전무, 당신이 일부러 그런거 아냐?!」 버둥버둥

 

나오의 입에서 나온 얘기를 듣고 미시로 전무는 순간적으로 책상을 탕! 하고 치고 일어섰다.

그 행동은 너무나도 박력이 넘쳐났고, 표정 또한 카리스마라는 단어의 표현 이전에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강한 분노의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린과 나오 뿐만이 아니라 경호원들도 그 자리에서 깜짝 놀라 멈춰서버렸다.

 

미시로 「같잖은 꼬맹이들이 사내 정치따위를 알고 떠드는거냐!」 버럭

 

그동안 미시로의 냉정하고 차가운 표정만을 봐온 사람들은 그야말로 어깨가 흠칫할 정도로 소름이 돋는 일갈이었다.

 

미시로 「내가 창업주의 자녀라는 이유로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중상모략을 당해왔는지 아나! 그와중에 내 손으로 직접 이 자리까지 기어올라왔거늘!!」

나오 「그게 카렌이 쓰러진거랑 무슨 상관인데!!」

 

모두가 그저 미시로의 그런 행동에 얼어붙었을 때, 나오가 침묵을 깨고 대들기 시작했다.

린은 이전까지 나오를 그저 나이만 많을 뿐인 동생 같은 취급을 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20대라고 해도 믿을 든든한 언니처럼 보였다.

 

미시로 「내가 기획한 유닛이 바로 너희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인데 내 손으로 부수겠나! 그것도 실버위크에 기획된 단독라이브 직전에!!」

나오 「그럼 누가 일부러 저렇게 만들었단 말이야!! ...... 잠깐. 설마... A 프로듀서...?」

미시로 「후, 그래도 머리는 굴러가는군. 프로덕션 내에서 나의 영향력을 아예 없애려는 반대파 세력들의 음모다. 애시당초 A가 이렇게 빨리 내 손을 벗어난 타 부서로 가는걸 보면 이상하지 않나?」

나오 「그래도 같은 프로덕션 안에 있잖아! 그냥 책임을 물라고!!」

미시로 「후우... 그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고 싶어도 그건 이사회가 결정할 사안이다. 아마도 A를 비호하는 반대파의 이사들이 있겠지. 게다가 카렌이 담당 프로듀서 때문에 쓰러졌다고 언론에도 흘릴거다. 그렇게 되면? 아이돌 부서의 총책임자인 나에게 책임이 돌아갈거다. 애시당초 346 프로덕션 내의 아이돌 부문은 순전히 나에 의해서 생겨난 부문이고, 아직까지 기초가 불완전한 상황. 게다가 영화나 배우 관련 등의 타 부서들의 시선도 원래부터 곱지 않다. 언론에 공표된 순간부터 곧바로는 아니더라도 천천히 아이돌 부문은 해체수순을 밟을거다. 그게 프로덕션 내의 내 영향력을 거의 없앨 방법이기도 하지.」

나오 「그럼... 어쩌자는거야?」

미시로 「카렌은 그저 지병으로 쓰러진 것. 그 뿐이다.」

나오 「!!!」

미시로 「A를 처벌하자고 프로덕션 내의 다른 아이돌들을 담보로 할 순 없다. 그렇겠지, 린?」

 

미시로는 차가운 눈동자를 린에게 향했다.

린은 입술을 꽉 깨물며 그저 묵묵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미시로 「카렌에게는 보상금을 주고, 언론엔 지병으로 쓰러졌다고 말하는 방법 외엔 다른 아이돌들을 지킬 방법이 없다. 정치란 냉정한 법이지.」

나오 「......」

미시로 「나도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사과는 일단 이 일이 마무리된 후에 받아주지 않겠나.」

나오 「사과는... 카렌한테 하란말야......」 울먹

 

미시로 전무의 등 뒤로 붉게 물들던 태양은 어느새 그 자취를 감추고, 지상엔 새까만 어둠만이 내려앉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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