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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걸즈 단편집 004. 미무라 카나코 "FIND YOUR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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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2, 2015 02:12에 작성됨.

“간만에 오니까 아주 좋구만.”

“하, 하아….”

“공기도 좋고 경치도 탁 트인 게 최고야.”

“저, 저기…. 저기….”

“정상에 올라가면 소리라도 한 번 질러볼까? 스트레스가 확 풀릴 것 같군.”

“저기! 프로… 프로듀서 씨!”

 

아주 절박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녀석을 바라보니 아주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제자리잖아.”

“저기, 프로듀서 씨….”

 

산 중턱, 나를 바라보는 그 녀석, 미무라 카나코의 눈초리는 그걸 보는 누구라도 마음이 약해질 만큼 간절했다, 아니, 처절하기까지 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단 한 사람, 나에겐 전혀 소용없다는 걸까.

 

“무슨 말을 할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안 돼. 이대로 정상까지 갈 거다.”

“아아…….”

 

마치 더는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노노의 그것처럼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카나코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를 데리고 등산을 하게 된 이유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나는 왜 카나코와 둘이서 등산을 하고 있는가. 일단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사무소에는 ‘스위트 아이돌’을 표방하는 녀석들이 몇몇 있지만, 그 중에도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 바로 미무라 카나코다. 그런 카나코에게 버라이어티 방송의 섭외가 들어왔기에, 나는 카나코의 의중을 물었고 그녀는 당연히 시원스럽게 승낙했다.

그 버라이어티 방송의 컨셉은 바로 한 달에 한 번꼴로 다른 아이돌들이 출연해 서로의 취미생활을 바꿔서 해보고 노래 역시 바꿔 부르는 방식으로, 승패를 가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잘 수행하는 아이돌에게 청중의 시선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다들 상대보다 더 잘하려고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방송의 첫 번째 녹화 분, 바로 상대를 결정하는 시간이었다.

 

“자, 그럼 미무라 양이 가장 먼저 자신의 상대를 추첨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위해 함구하려다 그냥 말해버리자면, 그 추첨할 권리를 얻는 방식은 바로 엉덩이 씨름이었다.

…카나코가 1위를 할 만 하다.  

 

“자, 뽑았어요!”

 

번호가 적힌 공이 들어있는 상자에 손을 집어넣고 한참을 뒤적이던 카나코는 곧 5라는 숫자가 적힌 파란색 공을 꺼내들었다.

 

“5번! 참가번호 5번이 어떤 분이셨죠?”

 

하지만 아이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회를 보던 꽤 유명한 개그맨 씨는 잠시 스태프의 사인을 확인한 뒤 고개를 갸웃했다.

 

“5번! 5번 안 계십니까!”

“아, 저예요~!”

 

느긋한 목소리에 이어 모여 있는 아이돌 중엔 꽤 장신이라고 할 수 있는 롱 헤어 트윈테일이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뒤, 그녀의 프로필에 적혀있던 취미를 생각해내려 애썼다. 그리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카나코 역시 자신의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고 카메라 앞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질린 표정이 되어버렸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뒤를 이을 가희 후보 중 한 명이자 765프로 시어터의 기대주, 키타카미 레이카였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 정상이 눈앞이다.”

“그 말, 여기 올라오면서, 다섯 번은 들은 것 같아요….”

“이번엔 진짜야, 약속할게.”

 

진짜다.

어쨌든 다시 산으로 돌아와서, 그 키타카미 레이카의 취미가 바로 등산이다. 그뿐만 아니라 스위트 아이돌답게 스위트한 노래만 불러왔던 카나코의 앞에 아이돌 중에도 손꼽히는 파워보컬 중 한 명인 키타카미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곡, ‘FIND YOUR WIND!’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카나코의 보컬이 나쁘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무소에 있는 수많은 아이돌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뚫리는 것 같은 키타카미의 엄청난 성량에는 미치지 못할 뿐더러 애초에 두 사람은 노래하는 법 자체가 다르다. 등산도 그렇지만 노래 역시, 지금껏 한 길만 고수해왔던 카나코에겐 크나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 자, 손잡고 일어나. 정말 얼마 안 남았으니 정상에서 쉬자. 여기 제법 높으니까 정상에 올라가서 보는 경치는 정말 각별할 거야.”

“하, 하지만… 이제 정말 한계….”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정하는 것. 네 스스로 선을 그어버리면 그 위로 다시는 올라갈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런 아이돌이 되고 싶어?”

“그건 아니지만….”

“그럼 가자.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나는 주저앉아있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한참동안이나 내 손을 바라보고 있던 카나코는 곧 등산용 스틱을 잡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손을 잡고 일어났다.

 

“조금 천천히 걸을까. 정상까지는 산을 오른다는 걸 신경 쓰지 말고 조금 시야를 넓혀보도록 해.”

“네.”

 

그대로 카나코의 손을 잡고 그녀가 최대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천천히 걸었다. 아까만 해도 턱밑까지 차오르던 카나코의 호흡이 조금은 잦아든 것 같았다.

 

“어때? 앞만 보고 오르다가 양옆까지 보게 된 소감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단풍이 정말 예쁘다는 건 알겠어요.”

“뭐, 가을이니까.”

 

카나코와 나란히 서서 산을 오르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요즘 레슨의 성과라든지 새로 나온 스위트, 동료와의 근황, 서로가 없었을 때 사무실에서 일어난 화젯거리 등등 딱히 주제를 정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했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는 카나코는 금세 나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때 아카네가… 오우.”

“음?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긴. 다 왔다, 여기가 정상이야.”

“네?”

 

카나코는 그제야 시선을 앞으로 돌려 정상에 있는 큰 바위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더 올라갈 데는 없다. 확실히 그렇게 느껴지지?”

“네, 그러네요.”

“수고했어, 카나코. 네가 해낸 거야.”

 

입을 자그맣게 벌리고 멍하니 서있는 카나코는 지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처음으로 등산했던 날을 떠올려보지만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쁨이라든지 성취감, 여러 가지 감정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는 기억은 어렴풋이 존재한다. 카나코 역시 지금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멍하니 서있지만 말고 저길 보라고. 어때, 굉장하지? 이래보여도 꽤 높은 산이라서 말야, 꽤 멀리까지 보인다고.”

“…….”

“그리고 바람 좀 봐. 올라오느라 더웠던 게 한 방에 날아간다. 너도 이제 모자 벗고 바람 좀 쐬라.” 

 

아직도 망부석처럼 서있는 카나코의 등산모를 벗기자 머리에서 후끈 열기가 느껴졌다. 아이돌 레슨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종류의 운동을 했으니 힘든 건 당연하겠지만, 지금 카나코는 그 노력의 과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프로듀서 씨….”

“응?”

“저, 프로듀서 씨의 말을 듣고 힘내서 올라오길 잘했어요.”

 

카나코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당연하지, 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바움쿠헨이 나온다고.”

“푸훗, 말도 안 돼요.”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쉬었다 내려가자. 싸왔던 것도 먹고.”

“네, 프로듀서 씨.”

 

카나코가 직접 만든 쿠키, 쿄코가 카나코를 응원한답시고 만들어준 주먹밥에 치히로 씨가 보온병에 담아준 차도 있다. 이 정도면 산 위에서 먹는 진수성찬이다.

 

“뭔가… 대단하네요.”

“응?”

“높은 곳에서 경치를 본 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 산 정상에 올라와서 본 적은 처음이에요.”

“장관이지?”

“네, 레이카 씨가 왜 등산을 취미로 하는지 알 것 같아요.”

“키타카미에게는 나중에 따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덕분에 카나코 네가 무언가를 배운 것 같으니 말이다. 뭐, 키타카미도 너 때문에 과자 만드는 법을 배울 테니 피장파장인가.”

 

키타카미는 지금 한창 카나코의 취미인 과자 만들기를 열심히 배우고 있겠지. 그쪽이야 카나코 급의 장인인 아마미 하루카가 있으니 걱정 없으려나.

그나저나 역시 쿄코로군. 주먹밥 기가 막히네.

 

“저, 프로듀서 씨?”

“응, 마애봐.”

“…다 드시면 얘기할게요.”

“음, 미안. 자, 말해봐.”

“프로듀서 씨는… 제 노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위트 아이돌 말이지? 지금의 너에게 있어서는 가장 어울리는 길이라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계속 하고 있는 거 아냐?”

“그건 그래요. 하지만 이번에 레이카 씨의 노래를 연습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는 언제까지 스위트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을까, 하고. 아, 딱히 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건 아니지만요. 언젠가는,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니까요.”

 

‘1초 후의 일 같은 건 모른다고 했었는데’ 인가.

우리 사무소의 제 1 방침은 바로 ‘될 수 있으면 아이돌 자신이 원하는 노선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이다. 그렇기에 코우메나 하루나, 스즈호 같은 기상천외한 방면의 아이돌을 배출해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의 하나 카나코가 지금 당장 노선을 바꾸겠다고 해도 충분한 준비기간만 있다면 나도, 사장님도 그녀의 의향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

“아뇨,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지금이 가장 좋으니까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지금의 노선이 좋다고 해서 너의 캐릭터를 그거 하나만으로 고정시킬 이유는 없을뿐더러 그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이번 일처럼 네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해도 우린 얼마든지 환영이야.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지.”

 

‘정해진 길 같은 건 하늘에는 없으니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건 결국 자신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길을 정해줄 수는 없다. 그것이 설령 프로듀서와 아이돌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사무소의 생각은 그렇다. 

 

“네, 고마워요, 프로듀서 씨.”

“아이돌로서 활동하고 도전하는 건 다름 아닌 너야. 나한테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어.”

“네, 그렇지요. 저 같이 평범한 아이라도 귀엽게 보일 수 있고, 모두에게 미소를 선물해줄 수도 있고, 그라비아나 이번 일처럼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제가 아이돌이라서 가능한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아이돌이 될 수 있게 해주신 건 바로 프로듀서 씨니까요. 제가 프로듀서 씨에게 스카우트 됐을 때 기억하시죠?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던 저에게 아이돌로서의 가능성이 넘칠 만큼 있다고 하셨잖아요. 전 바로 그 말을 믿고 아이돌이 된 거니까요.”

 

…이건 조금 찡하구만.

 

“네 말을 듣고 생각한 건데 역시 프로듀서가 되길 잘한 것 같다.”

“저도 아이돌이 되길 잘한 것 같아요.”

 

나와 카나코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내 말을 듣고 믿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너의 가능성을 한 번 믿어봐.”

“네! 스위트 아이돌로서도, 설령 다른 모습이라고 해도 저는 제 자신! 이죠?”

“물론, 그리고 믿는 김에 키타카미의 과자 만드는 실력이 파멸적일 거라고도 믿어보자고.”

 

내 말에 카나코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만든 쿠키를 행복하게 맛보기 시작했다. 내가 한 눈에 빠져 스카우트를 시도했던 그때의 그 미소였다.

 

 

 

“그럼 먼저 미무라 카나코 양의 ‘FIND YOUR WIND!’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카나코가 고생 끝에 산 정상에서 만세를 부르는 촬영분과 키타카미가 아마미 하루카에게 과자 만들기를 배우며 특유의 천연으로 하루카를 고생시키는 영상이 끝나고, 이제 두 사람이 서로의 노래로 대결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FIND YOUR WIND!’는 분명 카나코가 지금까지 불러왔던 종류의 노래와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이번 무대로 인해 카나코의 새로운 모습이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나코는 내가 지시한대로 노래 가사의 한 구절처럼 카나코 자신이 ‘느낀 그대로 멜로디를 노래할 것’이다. 

 

 

골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스타트라인은 여기야 Find your wind

 

 

카나코는 그 여느 때보다 자신 있는 표정으로, 스위트 아이돌로서의 달콤한 표정이 아닌 당당하고 힘찬 모습으로 자신만의 ‘FIND YOUR WIND!’를 불러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것으로 카나코도 느낄 것이다. 길이라는 녀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는 곳이 바로 길이라는 걸.

그렇게 달리기 시작했을 때 느끼는 바람을 ‘자유’라고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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