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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호시이 자매의 더블데이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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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5, 2012 23:04에 작성됨.

   “허니, 아직 안 가고 뭐하는 거야?”

   아무도 없어야할 차의 뒷좌석에서 미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로듀서는 황급히 옆을 돌아봤다. 눈썹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미키의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미키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틈으로 몸을 내민 채 고개를 배꼼 움직여 프로듀서를 살폈다. 당황한 눈, 땀이 맺힌 얼굴, 손에 꾹 쥔 핸드폰까지.

   “핸드폰?”

   미키는 은근슬쩍 핸드폰 액정에 담긴 내용을 확인하려했다.

   프로듀서는 재빨리 버튼을 눌러 액정을 껐다. 그럼에도 프로듀서는 불안해서 핸드폰을 손으로 뒤집어 아예 액정을 가렸다. 액정 버튼을 누르면 바로 쓰던 메일의 내용이 떠오를 테니, 미키가 강압적으로 나선다면 들킬 위험이 있었다.

   미키는 프로듀서의 부자연스러운 행동 모두를 쭉 지켜보곤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허니 왠지 이상한 거야. 쭉 뒤에서 기다렸는데 차 출발도 안하고.”

   “자, 잠깐 빨리 보낼 메일이 있어서……. 그런데, 미키는 왜 여기 있어? 다른 아이돌들하고 집에 같이 간 거 아냐?”

   미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프로듀서는 황급히 대화를 돌렸다. 미키는 쭉 프로듀서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며 씨익 해맑게 웃었다.

   “당연히 허니가 집까지 바래다주는 게 좋아서 그런 거야. 미키는 혼자 돌아가는 거 쓸쓸해서 싫은 걸!”

   “다른 아이돌들도 함께 돌아가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거야. 허니랑 모두는 하늘과 땅 차인 거야.”

   “하늘과 땅이라니, 다른 아이들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응? 그치만 허니인 걸. 허니는 세상에서 딱 한 명뿐이니, 미키한테 하늘인 거야!”

   미키는 별이 반짝이듯 환하게 웃었다. 프로듀서는 그 웃음에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순수한 호의와 애정도 이정도로 지나치면 좀 무섭기 마련이다.

   프로듀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지, 미키는 몸을 더욱 프로듀서에게 밀착하며 조르기 시작했다.

   “허니, 미키 집까지 바래다줘. 응? 안 되는 거야?”

   보석 같은 눈동자와 매끈한 콧날, 거기에 은근히 존재를 뽐내는 미키의 가슴이 프로듀서를 압박해왔다. 프로듀서는 미키의 맑고 큰 눈망울을 직시하기 부담스러웠다. 뻔히 속셈이 보이는 부탁이지만, 미키가 그 부탁을 하니 거절하기 힘들었다.

   결국 프로듀서는 백기를 흔들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집까지 바래다줄게.”

   “와아! 역시 허니가 최고인 거야!”

   미키는 좁은 차 안에서 폴짝 뛰며 프로듀서에게 덥썩 안겨왔다.

   “윽, 미키 알겠으니까 조수석에 안전벨트하고 제대로 앉아. 시간 늦었으니 어서 출발해야지.”

   “응!”

   미키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휙 조수석으로 몸을 날렸다. 과연 아이돌답게 좁은 차 안임에도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미키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바로 안전벨트를 차려 손을 뻗었다.

   그 와중에 프로듀서는 재빨리 핸드폰을 켜 메일을 이어 쓰려했다. 

  「아사쿠라 씨, 정말 죄송합니다! 메일을 그만 이제 확인했네요ㅠㅠ그리고, 아니 제가 오늘 저녁 일이 너무 바빠」

   “허니, 안 가는 거야?”

   프로듀서의 손이 멈췄다. 어느새 준비를 마친 미키가 멀뚱한 시선으로 프로듀서 쪽을 보고 있었다. 다 쓰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프로듀서는 재빨리 핸드폰의 액정을 다시 끄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프로듀서가 엑셀을 밟자 차가 앞으로 쭉 나갔다.

   “부릉부릉인 거야~!”

   미키는 신이 났는지 흥얼흥얼거리며 몸을 들썩였다. 프로듀서와 미키 단 둘이 탄 차는 많이 붐비지 않는 저녁 도로를 타고 쉼 없이 나아갔다.

   ‘메일 빨리 보내야 되는데…….’

   차라도 막힌다면 그 틈을 타 메일을 쓰겠는데, 뻥 뚫린 도로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애가 탔다.

   미키한테 메일 보내느라 잠깐 멈춰도 되냐고 하면 분명 미키가 이상한 눈빛으로 무슨 메일이냐며 캐물어 올 테니 그것도 불가능했다. 어떻게 프로듀서가 잘 얼버무리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프로듀서는 미키 몰래 여자와 메일을 주고받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묘하게 찔렸기에 얼버무리다 말이 꼬일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차는 한참을 나아가다 건널목 바로 앞에서 갑자기 빨간불이 되는 바람에 멈춰 섰다.

   ‘지금이다!’

   프로듀서는 오른손으로 냉큼 핸드폰을 꺼내들어 액정을 키고 메일을 썼다. 미키한텐 들키지 않게 핸들을 잡은 왼손으로 가리며, 오른손의 엄지가 불이 나게 움직였다.

  「아사쿠라 씨, 정말 죄송합니다! 메일을 그만 이제 확인했네요ㅠㅠ그리고, 아니 제가 오늘 저녁 일이 너무 바빴어요…. 뭘 말해도」

   “허니, 초록불인데?”

   “아.”

   미키의 말에 앞을 보니 신호는 어느새 초록불로 바뀌어있었다. 옆 차선의 차는 이미 움직였고.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바로 액셀을 밟았다.

   “흐으음, 방금 허니 뭔가 이상한 거야. 신호 바뀌는 것도 제대로 못보고.”

   “미, 미안…조금 딴 생각했어.”

   “이상한 허니. 미키 피곤하니까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

   미키의 애교 섞인 핀잔에 프로듀서는 진땀을 흘렸다. 자칫했다간 미키한테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메일을 기다리고 있을 상대방에 대한 죄책감이 동시에 프로듀서를 괴롭혔다.

   막힘없이 편히 나아가던 차는 미키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슬슬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시간은 벌써 프로듀서가 메일을 쓰기 시작한 뒤로부터 삼심분이나 지났다.

   교차로에서 도로가 막혀 차가 멈추자, 프로듀서는 지금이야말로 메일을 다 쓸 찬스라고 생각해 다시 손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다 써서 보낸다!’

  「아사쿠라 씨, 정말 죄송합니다! 메일을 그만 이제 확인했네요ㅠㅠ그리고, 아니 제가 오늘 저녁 일이 너무 바빴어요…. 뭘 말해도 변명이겠지만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허니!”

   벼락같은 미키의 말소리. 프로듀서는 몸을 움찔하곤 바로 주머니에 핸드폰을 구겨 넣었다.

   “앞에 차 움직이고 있는 거야. 빨리 안 가면 뒷사람들한테 민폐인 거야.”

   프로듀서는 알겠다며 바로 차를 움직였다.

   ‘큭, 이번엔 정말 끝이 보였는데!’

   벌써 이번이 세 번째인데다 타이밍도 절묘해서, 미키가 알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앞을 보고 그러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혹시나 하고 프로듀서가 미키를 흘긋 보니 미키는 뭐가 좋은 건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흥흥~♪ 집에 가면 주먹밥이 있는 거야~♪ 주먹밥~주먹밥~♪”

   미키는 작사작곡 미키로 보이는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메일을 몰래 보내는 걸 들켰다면 바로 날뛰었을 미키기에, 프로듀서는 안심했다.

   “아, 허니도 같이 불러 볼래? 이 노래 부르면 허니도 힘이 팍팍 날 거야!”

   “엑, 나도 부르라고?”

   “응! 얼마나 쉬운데. 자, 따라 해봐. 주먹밥~주먹밥~♪”

   방금 전엔 다른 가사가 있었는데, 이젠 그냥 주먹밥 돌림노래가 되어있었다. 프로듀서는 주저하다가 입을 우물 움직였다.

   “주, 주먹밥~.”

   “더 크게, 신나게 부르는 거야! 주먹밥~주먹밥~♪”

   “주, 주먹밥~주먹밥~”

   프로듀서는 부끄러움을 참아가며 부들부들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십대 후반인 그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떤 의미론 괴상망측했다. 미키야 귀엽고 깜찍하지만.

   “아핫, 허니 노래 잘 부르는 거야! 나중에 이 노래 듀엣으로 불러보자, 허니!”

   “기회가 된다면야, 하하하….”

   프로듀서는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ㅍ나중에 미키가 정말로 같이 부르자고 졸라대면 그때 무척 곤란하겠지만, 지금은 미키가 신이 나 보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들키지 않았다는 소리니.

   두 사람이 의미모를 노래를 같이 부르는 동안에 어느새 차는 미키의 집 앞에 도착했다. 물론 그동안 프로듀서는 미키와 어울리느라 메일을 완성하지 못했다.

   프로듀서는 차를 미키의 집 앞 한편에 주차했다. 미키의 집은 사람이 있는지 불이 켜있다. 프로듀서는 시동을 끄지 않고 미키에게 말했다.

   “그럼 집까지 조심해서 들어가, 미키.”

   “에, 현관까지 안 바래다주는 거야?”

   “바로 코앞인데 뭘.”

   프로듀서는 한시라도 빨리 미키를 보내고 메일을 다 쓰고 싶었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미키는 허니랑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거야! 허니가 현관까지 안 바래다준다면 미키 여기서 안 움직일 거야!” 

   미키는 볼에 바람을 빵빵히 불어넣더니, 부우, 하고 토라진 얼굴을 했다. 안전벨트는 풀 생각도 하지 않는다.

   프로듀서는 어린애 같은 떼를 쓰는 미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까운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결국 프로듀서는 미키의 안전벨트를 직접 풀러주며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바래다줄 테니까 어서 일어나.”

   “헤헤, 응!”

   언제 토라졌다는 듯 미키는 헤실 웃으며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 프로듀서가 나갈 차례였다.

   차를 나간 미키가 프로듀서 쪽 문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재빨리 열었다. 프로듀서의 양 엄지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아사쿠라 씨, 정말 죄송합니다! 메일을 그만 이제 확인했네요ㅠㅠ그리고, 아니 제가 오늘 저녁 일이 너무 바빴어요…. 뭘 말해도 변명이겠지만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정말이에요!」

   그리고 송신. 프로듀서는 액정에 뜬 ‘메일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정말 깊게 내쉬었다. 한 차례 거사를 치룬 성취감마저 들었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차 밖의 미키가 아직 차안에 있는 프로듀서를 보고 있었다.

   “허니, 뭐해?”

   “응, 나갈게.”

   가뿐히 대답하며 프로듀서는 시동을 끄고 문을 열고 나갔다. 큰 근심을 덜어낸 프로듀서의 얼굴은 무척이나 개운해보였다.

   미키는 그런 프로듀서의 기색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프로듀서의 한 팔에 매달리며 웃었다. 프로듀서도 그런 미키의 웃음을 기분 좋게 바라봐줬다.

   닫힌 집 현관에 도착하자, 프로듀서가 물었다.

   “집 열쇠는?”

   “아, 깜빡한 거야. 그래도 아마 나오 언니가 있을 테니까 괜찮은 거야.”

   미키는 현관 옆의 초인종을 꾹 눌렀다. 띵동, 띵동 소리가 집 안에서 들려왔다.

   “나오 언니, 미키인거야!”

   초인종 위에 달린 인터폰을 향해 미키는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탁탁, 안에서 발소리와 인기척이 들리자 프로듀서는 긴장했다. 밤의 찬바람이 불어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 곧 나올 미키의 언니, 나오는 프로듀서를 무척이나 싫어하니 흠 잡힐 구석은 안 보여주는 게 좋았다.

   잠시 후, 잠겨있던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미키 왔구나!”

   높은 톤의 목소리, 입에는 함박웃음. 집에서 나온 나오는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나오는 미키의 손을 꽉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격한 환영 인사에 미키도 덩달아 표정이 밝아졌다.

   “오늘도 수고했어! 아, 프로듀서 씨도 안녕하세요!”

   너무도 밝은 나오의 모습에 뻘쭘히 서있던 프로듀서에게도 나오는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방금 전까지 나오와 만나는 게 두려웠던 프로듀서의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동생인 미키의 눈에도 나오가 이렇게 밝은 건 신기해보였다. 

   “나오 언니 좋은 일 있었던 거야?”

   “좋은 일? 뭐,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겠네. 후후, 어서 들어와서 쉬어.”

   “응!”

   씩씩히 대답하며 나오 곁으로 움직이는 미키를 보며 프로듀서는 슬슬 떠나려했다.

   “그럼 푹 잘 쉬어. 난 이만 가볼게.”

   “아, 그 전에 허니!”

   “왜?”

   미키의 부름에 떠나려던 프로듀서가 발을 멈추자, 그 곁으로 미키가 쪼르르 달려와 발꿈치를 들었다.

   쪽, 미키의 부드러운 입술이 프로듀서의 볼에 닿았다.

   “에헤헤, 작별의 츄—인거야! 입술이 아닌 건 아쉽지만~”

   미키의 기습에 프로듀서의 볼이 벌게졌다. 혀를 쏙 내밀고 귀엽게 웃는 미키와 그 옆에 우뚝이 선 나오를 본 프로듀서는 두려움과 당황함에 휩싸였다.

   “미, 미키! 호시이 씨도 보고 있는 데 그런 짓을 하면 어떡해!”

   프로듀서는 높은 언성으로 이 상황을 얼버무리려다가 나오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 이건 그냥 미키가 한 걸로 절대 그, 그런 건 아닙니다! 전 결코 미키한테 손을 대지….”

   “후후, 알고 있어요.”

   “…네?”

   산뜻하며 인자한 나오의 웃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되레 놀란 프로듀서가 되물었다.

   “미키야 늘 그러는 걸요. 미키, 그런 건 밖에서 함부로 하면 안 돼. 남들한테 오해사면 어떡하려고.”

   “아핫, 미키는 허니라면 오해사도 좋은 걸.”

   “미키도 참. 아무튼 어서 들어가서 쉬어. 프로듀서 씨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네, 호, 호시이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엉거주춤 프로듀서가 인사하자 나오는 꾸벅 공손히 인사하며 배웅해줬다. 현관문이 닫히는 걸 멍청히 바라보는 프로듀서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다.

   ‘오늘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평소라면 미키한테 또 이상한 짓 했냐며 이 변태! 라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을 나오였는데, 오늘은 너무 고분고분하고 기분 좋아보였다. 미키와는 다른 성인 여성의 매력마저 느껴질 정도로.

   ‘뭐, 안 혼났으면 나야 편하지.’

   그렇게 프로듀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주차해둔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일도 무사히 보냈고 미키도 별 사건 없이 잘 바래다준 프로듀서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 * * * * * * * *









   집에 들어와 우선 씻기 위해 목욕탕을 향해 걸어가던 미키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거실 소파에 아주 편한 모습으로 드러누운 나오. 헐렁한 츄리닝에 핫팬츠 차림의 나오는 새하얗고 긴 다리를 까닥이며 손에 쥔 뭔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오 언니, 뭐하는 거야?”

   “~♪♬”

   이를 이상히 여긴 미키가 물어봐도, 되돌아오는 건 나오의 흥겨운 콧노래 뿐. 미키가 고개를 내밀어 나오가 뭘 보고 있는 지 확인해보니, 나오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핸드폰?”

   미키는 핸드폰을 저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오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증이 일었다. 미키는 눈을 깜빡이며 나오를 쳐다봤다.

   그것도 잠시 뿐. 미키는 금방 귀찮아져 몸을 돌렸다.

   ‘나중에 물어보면 되는 거야. 지금은 씻고 싶은 걸.’

   미키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한편 나오는 미키가 자신을 보든, 콧노래를 부르며 떠나가든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오는 액정에 뜬 문자들을 바라봤다.

  「아사쿠라 씨, 정말 죄송합니다! 메일을 그만 이제 확인했네요ㅠㅠ그리고, 아니 제가 오늘 저녁 일이 너무 바빴어요…. 뭘 말해도 변명이겠지만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정말이에요!」

   액정에 뜬 내용은 프로듀서가 미키의 의심과 방해를 이겨내고 겨우겨우 보낸 바로 그 메일이었다.

   ‘흥, 거의 아홉 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해놓구선. 이런 메일 하나로 쉽게 용서해줄 거 같아?’

   나오는 프로듀서가 괘씸해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나오는 프로듀서가 간신히 보낸 메일이 뜬 액정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하다못해 전화라도 해주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야속한 소개팅 상대를 향한 불만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아홉 시간 정도를 기다리게 했으면, 매너 있는 남자라면 딱 전화라도 걸어서 직접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고해야하지 않나. 메일로 때울 게 아니라.

   ‘일단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하긴 하는데, 어떻게 보내지.’

   나오는 답장을 보내는 화면을 띠웠다. 그대로 입력하지 않고 있자 액정 속에서 입력창이 깜빡거렸다. 나오는 머리를 굴리는 겸, 소파 위에서 몸을 빙글 굴렀다.

   ‘아예 똑같이 아홉 시간 뒤에 답장을 보내는 건? 음, 그건 역시 좀 상대가 불쌍하고. 어쩐다……아, 그럼 화 잔뜩 난 걸 팍팍 어필하는 내용으로 보내보자.’

   멈춰있던 나오의 손가락이 핸드폰 위에서 움직였다. 치는 내용은 아주 짤막했다.

  「그래요?」

   물음표까지 합쳐서 딱 네 글자. ‘아~그러셨구나~’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담긴 듯한 네 글자에 나오는 흡족해 씩 웃었다. 나오는 바로 송신 버튼을 눌렀다.

   메일을 보냈다는 알림이 뜨고, 불과 몇 분도 안돼서 프로듀서의 답장이 바로 도착했다.

  「정말죄송합니다!ㅠㅠ혹시 이번주 일요일에 시간되시나요? 시간 되신다면 사죄할겸 제가 정말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얼마나 빨리 쳤는지 군데군데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보이는 메일이었다. 나오는 나름 빠릿빠릿한 상대방의 대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후후, 잘못한 건 아나보네.’

   상대방의 만족스러운 반응에 나오는 미소 지으며 또 하나 답장을 작성해나갔다.

  「이번 주 일요일이요? 음……글쎄요………….」

   나오는 일부러 말줄임표를 네 개나 붙여가며 썩 내키지 않는다는 어투로 답장을 써 보냈다. 이번엔 얼마나 빨리 올지,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하며 나오는 프로듀서의 답장을 기다렸다.

   지잉, 핸드폰은 금방 가볍게 진동했다.

  「제게 꼭 기회를 주세요ㅠㅠ아사쿠라 씨가 좋아하시는 걸로 대접할게요!」

   프로듀서의 메일은 완벽히 저자세였다. 그런 프로듀서의 메일을 볼수록 나오의 꽁기꽁기 쌓아두었던 화도 많이 누그러졌다.

  「음, 그럼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시나요?」

   이번엔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으로. 상대방이 나오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 리가 없다. 메일을 받고 당황해할 상대방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오는 키득키득 소리죽여 웃었다.

  「그건 모르지만, 아사쿠라 씨의 마음에 쏙 들게 준비하겠습니다! 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오.”

   프로듀서의 메일에 나오는 가볍게 탄성을 터트렸다. 프로듀서는 나름 훌륭히 나오의 짓궂은 질문을 회피했다. 거기에 듬직한 모습까지 보여줘서, 나오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화도 스르륵 녹였다.

   나오는 살짝 들뜬 표정으로 답장을 작성했다.

  「그렇게 말하시니 알겠어요. 대신, 다음에도 제 메일을 말없이 무시하면 그땐 이렇게는 안 넘어갈 거예요.」

   메일에선 아직 화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그걸 쓰는 나오한테선 화난 기색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요일에 약속을 잡았다는 기대감이 얼굴을 들뜨게 만들었다.

  「네, 다음부터는 바로 답장 보내겠습니다!」

   자세가 딱 잡힌 프로듀서의 답장에 나오는 빙그레 웃었다.

   그 뒤로 둘은 한동안 메일을 주고받다가, 서로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 잘 자라는 안부를 나누고 메일 교환을 끝냈다. 메일을 주고받는 동안 나오의 메일 속에서도 화난 기색은 완전히 사라져버렸지만, 나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오는 소파에 드러누워 프로듀서가 마지막으로 보낸  「아사쿠라 씨도 좋은 꿈꾸세요.」라는 내용의 메일을 지켜봤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늦은 밤중이었지만 나오의 눈빛엔 생기가 가득했다.

   “일요일이라.”

   결국 일요일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아버렸다. 원래는 만나지도 말고 상대방을 뻥 차버리는 게 나오의 목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직접 만나게 되었다.

   점점 상황이 원래 목적과 멀어져갔지만 나오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프로듀서의 메일을 보며 두근두근거리는 나오의 심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와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낸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다.

   만약 상대방이 싫었다면 메일을 오랫동안 무시한 걸 빌미로 바로 차버렸겠지만, 나오는 상대방―프로듀서가 싫지 않았다. 일 때문에 바빠 보이긴 하지만 잘못한 건 바로 사과해주고, 보내는 메일 속에선 자신을 진지하게 대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이대로 잘 된다면……아니아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슬그머니 떠오른 핑크빛 상상에 나오는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그러다 나오를 ‘아사쿠라 씨’라고 부르는 프로듀서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내가 먼저 말해야 되나. 사실 난 아키코가 아니라고.’

   프로듀서는 나오를 나오의 친구인 ‘아사쿠라 아키코’로 알고 있다. 프로듀서와 메일을 기분 좋게 주고받을수록 그 점이 계속 눈에 밟혔다.

   ‘그런데, 아니란 걸 밝혔다가 날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나오는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마음에 가장 걸렸다. 밝힌 다음 상대방은 나오를 어떻게 생각해줄까. 나오가 큰맘을 먹고 사실을 밝혔을 때 상대방이 왜 속였냐고 화를 내면서 이 관계가 깨어진다면……최악의 상상에 나오는 한숨을 쉬었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과 함께,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나오는 그 날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시압입니다.

   이걸로 비축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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