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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 히로미 - 별과 같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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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5, 2015 04:05에 작성됨.

346프로덕션

여름도 벌써 다 가고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낮에도 이전과는 그렇게 덥지만도 않은 날씨가 지속되어가고 있었다. 뜨거웠던 지난 신의 무대에서 취한 열기도 이젠 슬슬 식어가는것 같았다. 히로미의 기숙사에는 지금 한창 이사가 진행중이다.

 

"언니 그동안 고마웠어요"

"무슨 이사 가는것도 아니고 방 옮기는거가지고"

 

사에가 자신의 짐을 꾸린 캐리어를 들고 기숙사 방 문을 열고 나섰다. 다른 유닛 활동 때문에 슈코와 사에가 한 방을 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히로미의 방에는 이제 그녀 혼자 남게 되었다. 둘이 있을때에는 몰랐는데 혼자 있으니 생각보다 방이 넓어보이기도 하고 휑하기도 해서 히로미는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만 좋은점은 이제 침대를 그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야 침대는 이전에도 쓸 수 있었지만 사에에게 양보하는게 그녀로써도 좀 더 마음 편했고 쇼파가 편하기도 했기에 그녀는 사에가 있는동안은 침대를 쓰지 않았던것이다. 물론 침대를 쓸 수 있다고는 해도 이미 몸이 쇼파에 적응해버린탓에 침대를 쓸지 안쓸지는 밤이 되서야 생각하기로 했다. 히로미는 거실 바닥에 누워본다. 햇빛이 자신의 팔 한쪽만 내리쬐어주고 있다. 따뜻하기도 했지만 이내 곧 더워져 히로미는 결국 에어컨 버튼을 누른다. 아무리 덥다한들 그때 신의 무대만큼 뜨거울까? 그 무대는 정말 날씨도 열기도 화끈하기로는 히로미가 봐온 모든것보다 끝내주었다. 그런 무대를 다시 느껴본다면 참 좋을텐데 그리고 그럴려면 먼저 데뷔를 해야할텐데 하고 그녀는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그게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너 이번에 앨범 낼 프로젝트가 내려왔다고 유닛으로"

 

영문도 모른채 프로듀서 앞으로 불려간 히로미가 너무 믿기지 않아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온 소식인데 막상 두 귀로 들으니 실감이 나지 않아서이다.

 

"진짜요?"

"그럼"

 

프로듀서는 책상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녀의 표정 행복해보이는 미소가 번져갔다. 저 미소를 보기위해 그 얼마나 노력했고 저 미소를 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프로듀서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히로미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물론 아직 프로젝트야 정해진건 아무것도 없어 컨셉도 없고 노래도 아직 없어 엄밀히 말하면 만들고는 있지만...듣고있니?"

"네? 네?"

 

평소에도 꽤 어른스러워보이던 그녀가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행동하는걸 얼마만에 보는가 싶었다.

 

"그러면 멤버는 누구에요? 한 명? 두 명?"

"두 명일거야 아마"

"누구요?"

"너는 누구면 좋을것 같아?"

"음...미유키? 걔도 오랫동안 연습생이었는데 같이 데뷔하면 좋잖아요"

"미유키라...나쁘지 않지...뭐 내가 봐서 적당히 골라올테니까 너는 연습이나 잘 하고 있어"

"네"

 

사무소 밖을 걸어나오면서 히로미는 냅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바래왔던 데뷔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머릿속이 혼란했지만 그걸 정리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악 컨셉은 어떤게 좋을까 팀 이름은 뭐가 좋을까에서 시작해 사에의 무대와 신의 무대가 스쳐지나가기까지 히로미는 히나코마냥 온갖 망상에 빠져서 자신이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코너에서 나오던 시즈쿠와 부딪힌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히로미"

"어 언니"

 

평소답지않게 헤실대는 표정과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는 입꼬리가 그녀의 지금 기분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언니 놀라지 마 나 이제 데뷔한대!"

"진짜?"

 

평소에도 히로미의 데뷔를 바래주었던 시즈쿠였기에 둘은 서로를 와락 껴안고 냅다 복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데뷔 소식을 듣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데뷔가 덜컥 다가오자 왠지 레슨도 더 잘되는 기분이었고 모든 일에 생동감이 살아 숨쉬는듯 했다. 사에가 떠난 방도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더 정답게 느껴졌다. 그냥 세상 모든게 달라보였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갈까 하던 생각도 이젠 그만둔지 오래였고 점점 지쳐가던 몸도 정신도 완전히 다시 체력을 회복한듯 했다. 오늘은 프로듀서가 히로미의 유닛 멤버를 알려주겠다고 같은 사무실의 멤버가 될 테니 다른 멤버들도 모아서 조촐하게 파티라도 하자고 했다. 늦여름이라 그런지 해가 점점 빨리 져가고 노을색과 검푸른색이 하늘에 공존할때쯤 히로미는 자기들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야 cd데뷔"

 

올라가자마자 쇼파에 삐딱하게 기대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있던 슈코가 그녀쪽을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히로미는 여전히 헤실대면서 다른 쇼파에 걸터앉는다. 해가 결국 다 넘어가서야 다른 멤버들이 모이고 슬슬 파티의 분위기가 갖추어졌다.

 

"자 우선은 우리 히로미의 데뷔를 축하하며 건배!"

"예이!"

 

프로듀서도 사무원도 다른 멤버들도 모두 우선은 잔에 담긴 쥬스를 높이 들고 한 잔씩 마셨다. 누군가가 데뷔 할 때마다 이렇게 축하하는건 사에때 부터 시작한 관례이긴 하지만 자신이 대상이 될 날이 올줄은 히로미는 알지 못했다. 물론 오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오니 이 일이 정말 실감나지 않았다.

 

"자 그리고 드디어 우리 사무실에 새 멤버가 들어왔다"

 

보통 한 사무실은 열 명 남짓 혹은 조금 더 많은 인원들이 배속되는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사무실은 5명이라는 적은 인원이었고 몇 년이 지나도 사람이 더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프로듀서의 그리고 회사의 자잘한 사정까지는 다른 아이돌이 알 턱이 없었으니 그녀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저들끼리 진하게 지내는데에 열중했다.

 

"빰빠라빰 빰빰"

 

입으로 어설프게 빵빠레를 흉내내는 프로듀서 때문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건 그녀와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의 한 여자아이였다. 단정한 말투와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낸 가르마는 그녀의 성격을 짐작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안녕하세요 마츠오 치즈루, 15살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파란 원색의 각잡힌 교복과 단정한 말투 그리고 도도해보이는 표정의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자연스럽게 히로미의 옆자리에 앉는다. 히로미는 그녀를 바라보며 옆으로 자리를 살짝 비켜준다.

 

"안녕하세요"

"아 아 말 편하게 해 괜히 부담갖지 말고 이제 같은 유닛일텐데"

 

첫 인상과는 다르게 그래도 좀 선한 성격인듯 했다. 첫 인상하면 그리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는 않은 히로미이기에 아마 치즈루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가벼운 인사와 자기소개가 끝나고 사무실에 모인 8명은 우선 앞에 놓인 음식들이 식기전에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둘은 노래 컨셉 어떤게 좋아?"

"네?"

 

특유의 거만한 자세로 초밥을 집어먹던 슈코가 마주앉은 치즈루와 히로미에게 물어보았다. 첫 앨범인 만큼 둘을 잘 보여주는 컨셉이 좋지 않겠냐고 옆에서 시즈쿠가 거들었다.

 

"음...딱히 장르라던가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그러면 요즘 나온 곡 중에서라도 생각해봐"

"나는...음..."

 

히로미는 꽤나 고민을 해보았지만 막상 자신의 노래가 어떤 노래였으면 좋을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단박에 팟 하고 떠오를만큼 쉬운 주제는 아니었다.

 

"굳이 고르자면 사에언니 노래?"

"꽃비녀?"

"발랄하고 귀엽고 좋잖아"

 

꽃비녀를 처음 들었을때 히로미는 자기 노래가 아닌데도 사에보다 훨씬 열심히 연습도 해보고 그녀의 백멤버로도 서보고 할 만큼 마음에 쏙 들어했었고 그녀의 지금 핸드폰 착신음 역시 꽃비녀였다. 프로듀서는 히로미의 말을 메모장에다 받아적고 있었다.

 

"치즈루씨는?"

"에? 저요?"

 

치즈루는 금세 또 심각해진 표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곰곰히 생각하는듯 했다. 첫 인상과는 다른 면모가 군데군데 박혀 있는듯 했다. 치즈루가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숙여지는게 보였다.

 

"저는 you're stars shine on me 같은 노래요 역시 차분한게 좀 맞는거 같아서"

"둘이 취향이 묘하게 갈리네"

 

확실히 둘이 뽑은 노래가 같은 취향의 노래같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히로미 오늘부터 치즈루가 너 방에서 같이 지낼건데 문제 없지?"

"네 뭐 저번에 들은 적도 있었고"

 

새 투숙객이 온다는 말에 히로미는 오기 전에 유독 방을 깨끗이 정리해두었다. 사에가 쓰던 방도 유독 청소를 열심히 해두어서 손님 맞이 하는데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있을것 같지는 않았다. 히로미는 어찌되었건 지금은 새로운 멤버가 된 그녀를 천천히 관찰해본다. 꽤나 도도하고 차분한 성격인것 같으면서도 어째 헛점이 많이 보이는 재미있는 여성 같았다. 물론 섣부른 판단은 금지라는걸 그녀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같지는 않아보여서 내심 안심했다.

 

 

파티를 끝내고 치즈루는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끈 채 히로미를 따라 자신이 묵게 될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물론 그녀 역시 전에는 다른 멤버들과 기숙사 방을 썼으니 딱히 신기할건 없었다.

 

"여기에요"

 

히로미가 프론트에서 받은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신발장에서부터 무거운 짐 캐리어를 드느라 치즈루는 진땀을 뺐다. 히로미가 대충 방과 화장실 그리고 욕실에 대해 알려주자 치즈루는 방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짐을 풀기 시작한다.

 

"침대는 언니 써"

"에이 그래도 방 주인이 써야지"

"나는 쇼파가 편해 사에언니 있을때도 그랬고"

 

치즈루는 한 번 거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침대가 편했기에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서랍장에 옷 들을 챙겨넣고는 잠옷을 입고 거실로 나섰다. 히로미 역시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언니 드실래요?"

 

히로미는 쇼파 옆에 놓여있는 감자칩 한 봉지를 들어올려 보여준다. 치즈루는 말 없이 고개만 젓고는 욕실 안으로 들어간다. 곧이어 그녀가 양치하는 소리가 들린다. 히로미는 쇼파에 누워서 티비를 켜고는 감자칩을 뜯어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미시로 엔터테이먼트는 티비 방송에 라디오 방송까지 하는 대형 그룹인건 티비를 보며 느낄 수 있다. 어느 채널에든 미시로 엔터테이먼트 소속인 아이돌이나 배우 혹은 제작하는 드라마나 영화등이 방송되고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야메 언니 잘나가네"

 

컨셉트건 진심이건 닌자라는 요소가 어필하기 쉬운 탓인지 아야메는 예능 방송 출현이 잦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꽤나 활약하는지 요즘은 다른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히로미는 스스로 예능이라던가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했다. 꼭 사람들 앞에만 서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몸도 확 얼어붙는것만 같았기 떄문이다.

 

"예능이네? 아야메씨 아냐?"

"아야메 언니 맞아"

"난 예능은 영 안맞는거같더라"

"나도 그래"

"양치하고 자라"

"알았어"

 

치즈루가 방으로 들어가면서 한 마디 했다. 히로미는 프로그램이 끝나는 틈을 타서 양치를 하러 화장실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걸어두었던 수건도 반듯하게 펴져서 걸려있었고 칫솔과 치약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장난 아니네 치즈루 언니"

 

치즈루의 꼼꼼한 모습을 엿보며 히로미는 자신의 칫솔을 꺼내 들었다.

 

 

쥬나오 프로듀서의 사무실은 정적인듯 하면서도 꽤 바쁘다. 아이돌들이 죄다 밖에 나가는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사무실에서 일을 안 보는것도 아닐 뿐 더러 아직 데뷔하지 못한 다른 멤버의 사정도 봐줘야 하고 다른 멤버들의 스케쥴도 관리해야하는탓에 그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미유키 뭐 봐?"

"어? 아냐 아무것도"

 

사무실의 쇼파가 창 쪽을 향해서 사무소는 언제나 햇빛이 잘 들이친다. 그리고 쇼파에는 미유키가 앉아서 부쩍 하늘을 바라다보는 일이 늘었다. 사춘기가 찾아오는건지 어쩐건지 부쩍 성장한듯한 미유키의 머릿속은 프로듀서가 알래야 알 수가 없다. 그냥 하늘을 보는건지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도

 

"프로듀서 바빠?"

"왜"

"히로미 데뷔한데"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며 미유키가 프로듀서에게 말을 건넨다. 아무리 봐도 평소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위기감인지 좌절감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대충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았다 하지만 미유키는 자신이 연습생으로 있던 몇 년 간 프로듀서에게 괜히 무리한 부탁을 한다던가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런 태도가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라고 믿는건 바보짓이었지만

 

"레슨 갔다올게"

"그래"

 

문 밖으로 나가는 미유키의 모습이 부쩍 성장한것만 같았다. 키도 좀 큰 것 같고 이젠 프로덕션에서 길을 잃는법도 없다. 처음 그녀를 스카웃하고 사무소로 데려왔을때의 곰돌이를 껴안고 다른 유명 연예인들을 보며 눈을 반짝반짝하던 미유키는 이제 없다. 프로듀서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좋아해야하는건지 말아야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나 왔어 프로듀서"

"아 레나"

"미유키 뭔 일 있어? 분위기도 어째 좀 다른거같고"

"히로미 데뷔 한다고 한 마디 하고 나갔다 나한테"

"하긴 나도 저 나이때는 별별생각 다 한거 같은데"

 

레나가 자신의 가방을 쇼파에 던져놓고는 자신도 그 앞에 가 앉아 티비를 튼다. 역시나 같은 사무실의 멤버인 미즈노 미도리가 티비에 나오고 있다.

 

"쟤는 예능 나가서 진기명기를 하고 앉아있네"

 

궁도부 에이스이니 활 쏘는것 하나만은 자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아이돌이 그런걸 쓸 일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하지만 다년간 일을 해보면서 프로듀서가 뼈저리게 느낀것은 어떤 능력이라도 활동하면서 한 번 쯤은 쓸 일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레나가 티비를 보는 동안에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레나는 쇼파 뒤로 고개를 젖혀 그리고 프로듀서는 컴퓨터 너머로 누가 들어온지 확인한다.

 

"오랜만일세 레나 양"

"어 부장님"

"부장님 왠일이세요"

 

늘 그렇듯 사람좋은 웃음을 하고 이마니시 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프로듀서쪽으로 향한다. 그때처럼 꽤나 두꺼운 종이뭉치를 들고 있다.

 

"뭐 별 일이 있어야 오나"

"있어야 오잖아요"

 

레나는 나이가 27살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어른들만 보면 맹랑하게 구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이마니시 부장이 성격 좋은 남자이니 넘어가는걸 알면서 하는 짓이다.

 

"뭐 좋은게 좋은거라고 이거 좀 보게나"

"이건 또 무슨 프로젝트에요?"

"보면 모르나 데뷔 프로젝트지"

 

보면서 모를리가 없었다. 프로듀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마니시에게 물어봤고 흥미가 생긴 레나도 테이블로 다가가서 종이 뭉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키 히로미, 마츠오 치즈루, 야나세 미유키라"

"컨셉은 뭐 귀여운 쪽인거같네요...근데 히로미나 치즈루랑 미유키가 비슷한 느낌인가?"

"비슷한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뭐 어때"

"원래는 치즈루 양이랑 히로미 양이랑 2인 유닛으로 기획했는데 역시 처음 만난 둘 보다는 히로미랑 친한 그 아이가 있는 편이 더 나을거 같아서 말일세"

"이거 또 상무 때문에 취소되거나 그런건 아니겠죠"

 

프로듀서는 담배를 한 대 꺼내 피며 창문을 열어젖힌다.

 

"프로덕션 내에서는 금연일세"

"엿이나 먹으라 그래요 그년"

"허허 이 사람 참..."

 

금연이라고 다그치긴 하지만 이마니시 부장 역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힌다. 회색 담배연기가 창 밖으로 빨려나간다.

 

"아 참 아이돌 앞에서 무슨 담배야"

"너도 어차피 그런데 많이 있었잖아"

"내가 있던데는 그런 곳 아니거든? 호텔 카지노가 무슨 하우스인줄 알아"

 

이미 한 번 모든 프로젝트를 백지화로 돌리던 사건 탓에 미유키의 데뷔가 제대로 무산된적이 있었다. 그때 미유키는 자신 앞에서도 울었지만 기숙사에 돌아가서 엄청나게 울었다고 야스하에게 전해들은 프로듀서의 마음은 한동안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4년이 다 되가는 시간동안 연습생 생활만 하다가 그런 충격을 받았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 일 때문인지 미유키는 내색은 안해도 프로듀서의 윗선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다 거부감을 갖고 생활하게 되었고 프로듀서 역시 미시로 상무가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물론 프로덕션 내의 프로듀서 중에 그녀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다른 프로젝트의 누군가는 거의 상무랑 사무실의 존망을 놓고 맞대결을 벌이기도 하는 지경이니 말 다했다. 물론 이쪽도 마음같아선 그냥 맞대결이나 확 치고 싶었지만 그의 사무실 소속의 아이돌들이 그렇게까지 유명한 아이돌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기 생계를 내걸만큼 그가 무모한 사람도 아니었다.

 

"이번엔 잘 되길 비네"

"그런데 원래 2인 유닛으로 계획된 곳에 껴도 될까요"

"그렇다고 안 할것도 아니지않은가?"

"그러네요"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미유키의 데뷔를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차에 이런 기회가 굴러들어왔는데 그걸 굳이 걷어 찰 이유는 없었다.

 

"이따 인사라도 드리러 가야겠네"

"그럼 나도 이만 가보겠네"

"네 수고하십쇼"

 

이마니시 부장이 나가고 나서야 프로듀서는 제대로 기획안을 넘겨본다. 물론 아직 초안이라 그런지 별 다른 계획은 없는듯 했지만 컨셉은 귀여움과 메이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꽤나 매니악한 컨셉트에 프로듀서는 혀를 내둘렀다.

 

"야 미유키가 메이드래"

"진짜 안어울린다"

 

둘은 장난삼아 웃어본다. 프로듀서의 머릿속에서 메이드 복을 입고 단아한 포즈나 티비에서 나올법한 메이드의 일을 하는 미유키의 모습이 정말 우스꽝스러울것 같은것도 한 몫 했다. 레나는 서류를 챙겨서 미유키가 있는 연습실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섰다. 프로듀서도 히로미의 프로듀서를 만나기 위해 미유키의 서류를 챙겨서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같은 회사 내의 프로듀서니 둘이 만난적이 없던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렇게 친한 관계 역시 아니었다. 단지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었다.

 

"계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문고리는 이미 잡고 문을 열어버렸다.

 

"에 누구세요?"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쥬나오 프로듀서는 이젠 자기 입으로 자기 일을 설명하는것보다 그냥 자기 명함을 주는 편이 더 낫다는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의 지갑이나 가방 한 쪽에는 꼭 그의 명함이 몇 장씩 쌓여있었다. 물론 프로듀서는 상대방이 누군지 모를리가 없었다. 화사한 교토 소녀 코바야카와 사에는 이미 346 프로덕션 소속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었다. 타카가키 카에데나 시마무라 우즈키같은 1티어 아이돌은 아니어도 2티어쯤은 되는 유명 아이돌이었으니까 말이다. 자기보다 나이는 한 살 많을 뿐이지만 사에의 프로듀서인 타테하는 굉장한 능력을 갖고 있는 프로듀서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당장에 코바야카와 사에만 해도 2티어는 될만한 유명 아이돌인데다 꽤나 두터운 팬층을 소유하고 있는건 시즈쿠 역시 마찬가지였고 데뷔 이전부터 어줍잖은 아이돌들은 씹어먹을 팬 층을 소유하고 있던 슈코는 데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신데렐라 걸을 먹는 기염을 토해냈고 아이돌로써도 상당한 속도의 성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중에선 가장 덜하지만 하마구치 아야메 역시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아이돌 중 하나였다. 맨 처음 쥬나오 프로듀서는 이런 사람에게 미유키를 맡기는게 확실히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이 사무실까지 걸어오면서 무언가 섭섭한 기분이 드는것 역시 사실이었다. 야스하, 미도리, 레나, 사야 등 그가 프로듀스한 아이돌들이 실패했다 할 만큼 유명하지 않은 아이돌이었던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인기몰이를 하는 아이돌이 아닌데 반해 그의 아이돌들은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아야메를 제외하면 전부 2티어 급은 되는 아이돌들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에게 미유키의 유닛을 맡긴다면 성공은 거의 보장되었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래도 미유키만큼은 그의 손으로 데뷔 시키고 싶다는 미련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았다. 하지만 자신의 미련 때문에 미유키의 데뷔를 더 늦출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타테하 프로듀서는...?"

"아 지금 나가셨어요...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그 이번에 미유키가 히로미랑 유닛을 짠다고 해서 인사차"

 

쇼파에 앉아있는 동안 사에는 어디서 끓여왔는지 차 한잔을 담아서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단아한 외모에 심성 역시 고운듯 했다. 아이돌이 타주는 차 맛은 특별할리가 없었지만 특별한 맛이 나는것만 같았다.

 

"미유키가 신세 많이 질거 같아서"

 

찻 잔을 내려놓으며 프로듀서가 먼저 한 마디 했다.

 

"아니에요 히로미가 미유키랑 유독 잘 노는거 보면"

"그래도 애가 워낙 철이 없어서"

"히로미가 낯선 사람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한테도 꽤 예민하게 행동하는데 미유키랑 있으면 웃으면서 잘 놀더라고요 많이 친한가봐요"

 

히로미가 미유키랑 친한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우선 같은 나이대의 소녀들만이 공감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게 한 몫 했고 둘 다 오랜 연습생 생활을 거치면서 서로의 공감대와 유대감은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 미유키 기본적인 정보랑 두고 갈테니까 프로듀서한테 전해주세요"

"네 수고하셔요"

 

금방 돌아오지 않을걸 알아챈 프로듀서는 곧장 사무실 안을 나선다. 원래 상대 프로듀서가 없을때 다른 프로듀서의 아이돌과 오랫동안 같이 있는건 예의가 아니다. 프로듀서는 올때와는 다른 착잡한 기분으로 방을 나선다. 역시 미련이 남아있긴 남아있는듯 했다.

 

 

 

"왠일이야 다 같이 있네?"

"아 레나언니!"

 

미유키는 언제나 그렇듯 해맑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한다. 같은 연습실에 있던 히로미와 치즈루 역시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뭐 셋 있으니 한번에 말해도 상관 없겠지...히로미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너네 유닛은 3인 유닛이다"

"예 그건 알고 있었는데요"

"그리고 남은 멤버 하나가 바로!"

"레나씨입니까?"

"그럴리가 없잖아...에흠...바로 우리 미유키란 말씀!"

 

셋은 얼빠진 표정으로 레나를 쳐다본다. 의외의 반응에 레나는 꽤 당황한듯 했다.

 

"진짜야?"

"어?"

"그거 진짜냐고"

 

미유키는 표정을 가다듬고 레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그럼 진짜지"

"이번엔 취소나 백지화나 그런거 없는거지?"

 

레나는 확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마니시 부장이 프로듀서에게 직접 전해줬으니 아마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물론이지"

 

미유키의 표정이 미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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