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톱 아이돌의 사랑 [3]

댓글: 4 / 조회: 2811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0-24, 2012 19:38에 작성됨.

어느 생방송 음악방송 리허설 중 리카는 프로듀서랑 같이 무대를 체크하고 있었다.


“어때 리카?”
“조명이 너무 밝아. 이래서는 관객들의 눈이 부셔서 날 제대로 보지 못해. 그리고 음향도 좀 더 뒤 쪽으로 설치할 수 없어요? 앞쪽 관객들에게는 너무 커서 제대로 듣지 못할 거예요. 아, 거기 카메라도. 그 각도라면 시청자들에게 중요 안무를 출 때 제 모습이 잘려서 나갈 거예요.”


리카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주위 스텝들에게 요구상황을 전달했다. 단순히 자신의 공연 상황만이 아닌 관객들과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것까지 계산해서 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니다. 보통 아이돌들은 무대 위의 상황만 체크하는 것도 벅차다. 근데 리카는 무대 위와 무대 바깥 쪽, 하다못해 보이지 않는 팬들까지 모두 체크하고 있다.  
P는 리카와 같이 일하게 되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왜 리카에게 프로듀서가 필요 없었는지를. 리카는 말 그대로 혼자서도 잘했다.
미키의 재능을 지니고, 치하야에 뒤쳐지지 않는 가창력도 가졌다. 거기다 하루카의 긍정적 마인드, 그리고 자만하지 않는 심성과 엄청난 노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꼭 자신이 겪었던 아이돌들의 장점만을 모아 놓은 듯한, 정말 톱 아이돌이 되는 것이 당연한 아이였다. 아니 어쩌면 톱 아이돌의 자리란 것은 리카에게 맞춰줘 만들어진 자리일지도 몰랐다.
그 증거로 오늘의 생방송은 리카가 주인공이었다. 다른 유명아이돌들이 나오지만, 화제와 시선은 모두 미국에서 성공하고 돌아온 리카의 첫 공연에 맞춰줘 있었다.
한차례 리허설을 맞추고 땀을 닦으며 리카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어땠어?”
“불필요한 질문이네. 충분히 팬들을 만족시키고 남을 거야.”
“P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이 리카의 전속 프로듀서니깐.”


장난스럽게 말하고 리카는 혀를 한 번 쏙 보이고서 P의 팔짱을 꼈다. 이 행동에 익숙해졌지만 더불어 한숨이 나왔다.


“스캔들 조심해야 한다니깐.”
“은퇴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거기다 이제 와서 이런 스캔들을 ‘기회다’하고 가져갈 기자와 잡지사는 없어. 터져봐야 그 잡지사나 신문사만 욕먹지.”
“엄청난 자신감이네.”
“그 만큼 내가 당신을 기다리며 다져놓은 길이 엄청나다는 거야. 다른 말로는 당신이 날 엄~청 기다리게 했다는 거지.”
“리카, 눈이 안 웃고 있어. 하아, 정말. 기다리게 한 건 미안해.”


P가 한 쪽 팔이 리카에게 잡혀 다른 한손만을 들어 사과하자 리카는 살짝 주먹진 손을 입으로 가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괜찮아. 그 기간이상으로 당신이 날 책임지게 할 거니깐.”
“하아, 정말. 은퇴할 때까지 부려먹으려고?”

P가 웃으며 농담을 받아주자 리카는 무언가 숨기는 장난꾸러기의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은퇴 후에도 쭉 부려먹을 거랍니다. 미래의 서.방.님.’

리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더욱 P의 팔에 매달리다가 앞에서 오는 사람을 보더니 급히 팔에서 떨어졌다. 상대를 보고 P쪽에서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어, 치하야!”
“프로듀서?”

지금은 실력파 가수로 인기가 한창이 치하야였다. P는 자신의 옛담당 아이돌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치하야도 오랜만에 프로듀서를 보자 반가워 웃었다.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다시 보니 기뻐요. 일본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듣고서 언제 만날지 기대하고 있었어요.”
“정말 오랜만이야. 햐, 정말 놀랬어. 일본에 돌아와 보니 치하야의 노래가 거리를 걸을 때마다 들려와서 말이지. 덕분에 765아이돌 중에 날 제일 먼저 반겨준 건 치하야란 생각이 들었어.” 
“그런가요. 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니, 실제로 내가 제일 먼저 만난 것도 치하야 네가 처음이야. 리카의 일로 프로덕션을 찾아가지 못했거든.”
“그, 그런가요. 제가 처음. 후후”

처음이란 단어에 치하야는 왠지 다른 아이돌들에게 이겼단 생각에 뺨을 물들이며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런 치하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리카가 P의 앞에 서서 시선을 가리며 치하야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키사라기 치하야 씨.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이 사람에게서 당신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노래를 엄청 잘한다고 말이죠. 정말 당신 때문에 고생 했다니깐요. 노래를 좀만 잘못 부르면 당신 이야기를 하면서 후배에게 초월당할 거라면서 어찌나 그러던지 참.”
리카가 옆에 있는 프러듀서를 팔꿈치로 툭툭 찌르며 말하자 치하야가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근데 프로듀서가 제 이야기를…….”

어딘가 기뻐 보이는 치하야의 반응에 리카가 슬쩍 프로듀서를 노려보았다. 리카의 반응에 P가 당황하며 물었다.

“왜, 왜?”
“흥. 아무것도 아니야. 바람둥이.”
“어째서…….”

리카는 영문몰라하는 P를 놔두고 치하야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해요. 미국에서 돌아와서 제일 처음 듣는게 당신 노래인데, 제 프로듀서의 말이 납득이 되더라고요. 정말 훌륭한 노래에요, 치하야씨.”
“감사합니다, 리카씨.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칭찬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리카의 솔직한 칭찬에 치하야는 악수를 하면서 멋쩍어 시선을 돌렸다. 리카는 일본만이 아닌 미국까지 가서 성공한 말 그대로 일본 내에서는 비교대상이 없는 살아있는 전설 같은 아이돌이었다. 미국 최고는 못 되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텄으면서 또한 부정적이던 미국 진출에 대한 인식을 바꾼 사람이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은 부끄럽고 반응하기 힘든 일이었다. 솔직히는 기쁘지만 말이다.

“그, 미국에서의 일 축하드려요. 프로듀서씨도 대단해요. 리카씨의 프로듀서로 같이 미국에 가시다니…….”

치하야가 프로듀서를 보며 칭찬했다. 어딘가 슬픈 기색도 섞였지만 리카와 P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P는 뭔가 멋쩍어 하며 말했다.

“하하, 아니야. 순전히 리카의 능력이었는걸. 난 한 것도 없어. 아마 리카 혼자서 가도 성공했을 거야.” 

그 겸손한 말에 리카가 발끈해 말했다.

“무슨 말이야! 내 미국에서의 성공은 당신이 같이 가서 가능했던 거야.”   
“아니, 그렇지는…….”
“치하야씨 들어봐요, 제 프로듀서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람 정말 대단해요. 사실 이 사람은 저랑 계약하자마자 바로 미국에 가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도 못했을 텐데, 거기서 일을 능숙하게 해대더라고요. 꼭 미리 준비해왔던 것처럼.”

그 순간 치하야는 멍해지고 말았다. ‘미리 준비해왔던 것처럼.’ 이 말이 치하야의 귀에 맴돌았다.

“영어도 어색하지만 현지인과 직접 대화를 할 정도였고, 하다못해 미국의 방송용어까지 미리 공부해두었더라고요. 미국팬들이 즐겨듣는 음악과 선호하는 스타일, 하다못해 일본인의 무엇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지까지 알아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농담이 아니라 P가 아니었다면 미국에서 그만큼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꼭 저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아서 운명을 느꼈을 정도라니깐요.”

마지막 부분에서 리카가 왠지 부끄러워하며 말하자 P도 같이 부끄러워했다.

“그, 너무 과장 했어 리카. 그 정도는 아니야.”
“그 반대지. 당신이 너무 겸손한거야. 나랑 만나고 바로 미국에 간 건데 그 정도로 해내다니. 보통 일이 아니라고. 정말 당신은 내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준비된 운명의 사람 같았다니깐.”
“……큿.”

오랜만에 듣는 특유의 혀 차는 소리에 프로듀서가 쳐다보자 머리를 숙인 치하야가 둘을 지나쳤다.  

“그, 죄송합니다. 리허설을 준비해야 돼서…….”
“아, 죄송해요. 너무 붙잡고 있었군요. 좋은 공연 보여주세요!”
“그래, 힘내 치하야! 나도 기대할게!”

둘의 응원에도 대답하지 않고 치하야는 리허설 현장으로 향했다.

“왜 그럴까?”

리카가 아리송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신경을 끄며 다시 P의 팔에 매달렸다.

“뭐, 긴장해서 그렇겠지. 그럼 우리도 가서 쉬자.”
“정말, 사람이 안 본다고 바로……. 그래 얼른 가서 쉬자.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그 날의 방송은 성공이었고, 그 날의 시청률은 자체신기록을 경신했다한다. 그리고 특히나 리카가 나온 시간대는 타방송사의 시청률보다도 높아 다시 한 번 일본 내 리카의 인기를 확인시켜 주었다.



“허니! 오랜만인거야!”

P가 두 번 째로 만난 765프로덕션의 아이돌은 미키였다. 음악방송 다음 날 음악프로그램의 MC와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 MC가 미키였다. 미키는 자신의 대기실에 찾아온 P에게 변함없이 예전처럼 매달리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 미키 정말 오랜만이네. 어제는 치하야를 만났었는데.“
“치하야에게 미리 들은 거야. 너무해 허니! 바로 날 만나러 오지도 않고.” 
“하하, 미안미안. 나도 바빠서 말이야. 리카의 스케줄이 빽빽하거든.”
“무, 무슨 짓이에요!”

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미키의 대기실에 리카가 들어오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P와 미키를 떼어놓았다. 그리고 미키를 보고 사과를 했다.

“그, 죄송합니다. 제 프로듀서가 실례를.”

순간 프로듀서와 강제로 떨어져 멍했던 미키가 상대의 사과에 급히 손을 저었다.

“그, 괜찮아요인거야! 내가 프로듀서에게 매달린 거니깐.”
“맞아 리카. 미키도 765프로덕션의 아이돌로, 내가 예전에 담당했던 아이돌이야. 반가워서 오랜 만에 인사하는 중이었어.” 
“아, 그럼 이 애가 그 아이구나.”

리카의 미키가 눈을 빛냈다.

“허니가 저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데요?”
“후후, 저보다 더 뛰어난 아이돌이 될지도 모를 재능이 있다고 해줬어요. 생각해보니, 당신 나와 있을 때 순 765아이돌 칭찬만 하지 않았어?”

리카가 뺨을 부풀리며 불평을 하자 P는 그냥 웃고 말았다.

“헤헤, 허니 미국에 가서도 내 생각을 해줬구나. 좋아인거야!”

미키가 기뻐하며 다시 P에게 매달리려 할 때 미키가 그 행동을 제지했다. 그리고 웃으며 미키를 보며 말했다.

“저, 미키씨?”
“네, 네!”

왠지 모를 위압에 미키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사이가 좋았다는 건 알지만 호칭과 태도 좀 이제 고쳐주지 않으시겠어요? 저에게도 영향이 있다고요. 왜냐하면 이 사람, 제 프로듀서인걸요.”

그러면서 슬쩍 프로듀서의 팔을 잡아당겨 살짝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미키는 뭔가 충격을 받은 듯 쳐다봤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인거야.”
“네, 좀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이런 말 해서 죄송해요. 그럼 저흰 이만.”

리카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프로듀서도 같이 미키에게 인사하며 같이 나갔다. 

“그럼 미키 나도 이만 가볼게. 있다 우리 리카 좀 잘 부탁할게.”
“응, 맡겨둬!”

미키는 P에게는 힘차게 대답했다.
대기실에서 나온 후 P가 나가면서 리카에게 말했다. 리카는 어딘가 화난 듯 앞에서 걷고 있었다.

“저, 리카 너무 심했던 거 아니야?”
“응? 뭐가.”
“아니, 미키 말이야. 아직 중학생인 애인데.”
“나에게 스캔들 조심하라한 건 당신 아니었어? 그럼 당신도 조심해야지. 프로듀서의 이미지도 아이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거, 당신도 잘 알텐데.”

미키가 앞에서 걸으면서 차갑게 말했다. 맞는 소리였기에 P는 수긍하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말이 맞아. 미안해.”

그 사과를 듣자 리카는 빙글 몸을 돌려 P를 보았다. 나풀거리며 긴 갈색머리가 흐트러지듯 공중에서 펼쳐졌다가 내려앉았다.
웃고 있었다. 장난스런 표정으로 혀까지 빼꼼 내미는 리카의 모습은 귀여운 소악마를 연상케 했다. 

“잠깐 질투했었나봐. 지금은 내 프로듀서인데 다른 아이돌과 친한 모습에 애처럼 굴고 말았어. 나도 미안해.”

그리고 총총 뛰듯이 P에게 가 팔에 매달렸다. 그런 리카를 반쯤 포기하면서 P는 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니야, 네 말이 맞아. 오랜만이라고 나도 공과 사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어.”
“그럼 둘 다 잘못한거니 비긴 걸로 하지 뭐.”
“하하, 그럴까?”

리카의 말에 P는 웃으며 둘은 같이 걸어갔다.



“아, 정말이다. 정말 여기 라면 맛있네.”
“그렇지? 내 단골집이야. 아직까지 있어서 안심했어.”

P와 리카는 주말에 한 라면집에 왔다. P가 단골로 오던 곳이었다. 라면집 주인은 둘의 대화에 웃었다.

“내 가게가 1년 만에 망할 정도로 부실할 줄 알았나?” 
“하하, 그럴 리가요. 단지 겨우 1년뿐이지만 그 사이에 이것저것 많이 변해서 말이죠.”

P의 변명에 주인은 사람 좋게 웃다가 생각났다는 말했다. 

“그나저나 자네는 이번에도 그렇고 매번 미인만 이곳에 데려오는 군.”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리카가 움찔 했다. 미소를 띄우며 주인에게 물었다.

“헤에, 그건 또 무슨 이야기죠? 자세히 좀 해주시겠어요.”
“저, 리카 눈이 안 웃고 있는데요?”

P를 한 번 째려보고 다시 웃으며 주인을 보자 주인은 무신경하게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미국에 가기 전에 여자랑 단둘이서 이 시간에 자주 먹으러 왔거든. 하얀 은발의 미인이었는데……. 아, 생각해보니 한 명뿐이었구나.”
“맞아요, 한명이었어요! 너도 아는 사람이야. 그 타카네라고…….”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결국 여자랑 단 둘이서 이 야심한 시간에 왔다는 거잖아? 헤, 궁금하네. 라면을 먹은 후에 어디로 갔을지.”
“그, 그냥 바로 집으로 갔어.”
“누구 집? 당신 집? 아니면 그 타카네씨의 집? 어느 집이 든 둘이 같이 들어갔나?”
“리, 리카? 저기 그거 오해거든. 각자 집으로 돌아갔을 뿐이야.”
“헤~ P는 내 생각이상으로 능력이 좋았구나~ 늘 여자가 곁에 있었다니.”
“그건 아이돌프로듀서로서 어쩔 수 없이……. 근데 리카 좀 웃어주겠어? 왠지 무서워!”
“왜 그래요 프로듀서? 전 웃고 있다고요.”
“눈이 안 웃고 있어.”

P가 낙담하며 떨고 있자니 여신이 구원의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저희 사이에는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일도 없었죠.”

익숙한 신비로운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타카네가 웃으며 어느 사이엔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 타카네!”
“오랜만이네요 프로듀서씨.”

타카네는 싱긋 웃고 리카 쪽을 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예전 당신의 프로듀서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시죠 타카네라고 합니다.”
“아, 반가워요. 전 리카라해요. 지금의 프로듀서의 전속 아이돌이죠. 직접 보니 정말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리카씨정도나 되는 분에게 그런 칭찬을 들으니 정말 기쁘군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둘은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박력 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낀 프로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타카네에게 인사했다.

“그, 오랜만이야.”
“네 오랜만이군요. 미국에 갔다오셨다고요?”
“네. 저랑 단둘이요.”

대답한 것은 리카였다. 그 바람에 둘의 시선은 다시 서로를 향해 공중에서 부딪혔다. 뭔가 스파크가 튀기는 듯한 착시를 P는 경험했다.

“하, 하하. 1년 사이에 엄청 유명해졌던데. 정말 대단해 타카네.”
“그럼 리카씨 다음에는 절 프로듀서 해주시겠습니까? 그 때는 저랑 달까지 가주셨음 좋겠군요.”
“그럼 나랑은 태양계 끝까지.”

리카가 유치하게 말하자 타카네는 훗하고 웃었다.

“그렇게 멀리까지 필요한가요?”
“그럼 달은요?”
“거기에는 관객이 있습니다.”
“헤, 몰랐던 사실이네요.” 

알 수 없는 심리전에 P만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둘은 그 사이에도 말을 하면서 라면을 먹는데, 중간에 불이 붙어 라면을 누가 더 많이 먹나를 내기해 가게의 매상을 올려주었다. 

“훗, 당신하고는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하, 저도요.”

그리고 라면으로 이어진 묘한 우정이 둘 사이에 싹 텄다. 그 사이에 낀 P의 마음고생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코토리는 오랜만에 P의 연락을 받고 어느 술집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코토리씨!”

P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부르자 코토리는 그 자리로 향했다. 거기에는 P와 리카가 술과 안주를 시켜놓고 코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P씨. 그리고 정말 반가워요 리카씨! 당신의 이야기는 텔레비전으로 많이 들었어요. 현 국내의 유일무이한 아이돌!”
“하하, 반가워요 코토리씨.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둘은 악수를 나누면서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는 어른들만의 시간. 셋은 주거니받거니 술을 마시며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서운해요 프로듀서~ 저에게 말도 없이 미국에 가다니.”
“하하, 미안해요. 저도 갑작스럽게 리카에게 끌려간 거라서 연락할 시간이 없었어요.”
“뭐야, 꼭 나 때문인 것 같잖아. 그러니깐 누가 약속을 그렇게 늦게 지키래?”
“약속이라니요?”
“아, 사실 P와는 그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어요. 아직 무명일 땐데, P는 절 처음으로 알봐준 첫 번째 팬이었죠. 그 때 나중에 서로 성공하면 제 프로듀서가 되어주기로 약속했었어요.”
“와, 운명적 만남이었네요. 약속한 두 사람. 그리고 이별 후의 재회!”
“후후 그렇죠.”
“저기, 그럼”

코토리는 묘한 눈빛을 하며 리카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미국에서는 설마……?”

그 질문에 리카의 얼굴에는 낙담한 미소가 걸렸다. 그 표정만으로 코토리는 어땠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후후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집요한 파파라치가 봤으면 실망했을 정도로 정말 완벽하게 아무 일도 없었죠. 정말 완벽하게. 후후, 후후”

그런 리카의 반응에 P는 이해를 못하고 갸웃 거렸다.

“당연하잖아. 거기서 무슨 일이 있겠어.”
“그렇죠. 어떤 일도 있을 수 없었겠죠. 둘이서 한 방을 쓰고 1년 내내 붙어있어도 말이죠. 후후 여자로서 전 어떤건지…….”
“리카씨…….”

코토리가 이해한다는 듯 리카를 위로했다. 그 후 셋은 더 술을 마시다가 이내 리카와 코토리는 P의 둔감함에 화를 내며 서로 P의 악담을 하는가 하면 P의 좋은 점에 대해 칭찬을 하기도 하면서 친목을 다졌다. 그 사이에 낀 P는 자신이 불렀는데도 오히려 끼지 못하고 코토리와 리카가 친해지는 장면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술자리는 밤늦게서야 끝나고 각자 돌아갔다. 집이 가까운 코토리를 리카와 같이 바래다 주고서 P는 리카와 단 둘이 밤길을 걸었다. 술기운에 발그레한 리카는 거의 P에게 기대어 의지하며 걸어갔다. 같은 양을 마셨는데도 P는 보기보다 멀쩡했다.
사람이 적은 늦은 밤. 거기다 이 동네 자체는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편이었다. 그랬기에 안심하고 둘은 걸어갔다.
말없이 걸어가다가 리카가 뭔가 생각 난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내가 은퇴하면 어떻게 할 거야?”

리카의 집까지는 멀지 않았다. P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역시 다시 한 번 765프로덕션에 지원해볼까 생각 중이야. 아까 코토리씨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프로듀서 한 명을 들일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하니깐.”
“그러고 보니 코토리씨가 꼭 와달라고 했었지.”

리카가 생각났다는 듯 쿡쿡 웃다가 뭔가 슬픈어조를 띄었다. 

“그럼 나 이후에도 아이돌프로듀서를 하겠네.”
“그리 되겠지.”

리카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에 따라 P의 발걸음도 멈췄다.

“저기, P.”
“응?”

P가 보자 순간 리카가 기대었던 자세에서 무너지며 P에게 안겼다.

“리카!?”

P가 놀라며 급히 리카의 몸을 받쳤다. 둘의 자세는 리카가 P의 품에 안긴 모습이었다.

“……내가 마지막이면 안 될까?”
“리카?”
“처음은 다른 아이들에게 양보했으니, 마지막만은 내가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내가 당신의 마지막 아이돌이고 싶어. 서로 벌어 놓은 것도 많으니깐 새로운 사업도 가능할 테고, 힘을 모으면 아이돌프로덕션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내 명성도 이용한다면 성공할 확률도 높을 테고.”

그리고 리카가 P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가는 축축해져 있었다.

“……안 될까? 내가 마지막이면.” 
“리카…….”


어둑한 밤. 희미한 가로등이 거리를 비추는 시간. 더러운 도시의 공기 속에서도 별만은 밝게 반짝이는 날이었다. 가로등 불빛으로 길게 늘어진 두 개의 그림자의 얼굴은 그날 겹쳐졌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