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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 히로미 - 다시 별빛으로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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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7, 2015 21:30에 작성됨.

"히로미 나 왔어"

 

보통의 히로미라면 아마도 그녀를 반겨줬을테지만 방 안에선 아무런 응답도 없다.

하지만 히로미가 출근 했을리는 없다는걸 사에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히로미가 방 안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본건 그녀가 액세서리를 만들 때 쓰는 작은 탁상에 몸을 뉘이고 자고 있는 히로미였다.

 

"히로미 일어나"

"어...언니?"

"프로듀서가 사무실로 불렀어 아야메 데뷔하는거 축하라도 하려나봐"

 

히로미가 흐릿한 눈으로 쳐다 본 핸드폰에는 프로듀서의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사과 할 준비는 아직 못했더래도 히로미는 가야만했다.

겨우겨우 완성한 아야메에게 줄 선물을 들고 히로미는 사에와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저희 왔어요"

"빨리 오지 그랬어"

 

아야메는 애써 히로미와의 시선을 피하려한다.

슈코도 사에도 프로듀서도 눈치 채지 못 한듯 하지만 시즈쿠만은 둘의 사이가 아까처럼 얼어붙어있다는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히로미는 방금 전의 일은 자신이 잘못한게 확실했으니 이번에도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아야메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어? 왜?"

"이거 받아"

 

여자애의 손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로 만들어진 수리검에

검은색의 물감을 덧칠한 물건은 사무실의 조명을 받아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에이 닌자가 그게 뭔지도 몰라?"

"잘 만들었네"

"아니 그게 아니라 너가 만든거야?"

"그럼"

 

아야메는 가벼운 나무 수리검을 손에 꼭 쥐고는 앞에서 이런 저런 폼을 취해보았다.

 

"아흐...고마워 히로미"

"에헤헤...언니 더워"

 

아야메는 이 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옆에서 히로미를 꼭 끌어안고는 볼을 마구 부볐다.

히로미는 그런 아야메의 행동이 거추장스럽기는 해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방금 전 까지 밖에 나갔다 방금 들어온 두사람이라 몸이 후끈하게 달아올라있던게 문제였다.

 

"역시 우리 동생이 최고야"

"이제 아가 그거랑 쌤쌤이다?"

"물론이지"

"왜 뭐 있었어?"

"프로듀서는 얘 데뷔나 시켜주고 말해요"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

 

분위기는 그래도 화기애애한게 다시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온듯 했다.

히로미도 아야메도 만족하고는 앞에 놓여있는 음료수 잔을 하나씩 집어들었다.

 

"그러면 우리 닌자 아이돌 아야메의 데뷔를 축하하며"

"건배!"

 

다같이 음료수 잔을 높게 들어올리고는 함께 외쳤다.

 

"근데 이건 진짜 언제 만든거야?"

"시간이 남아 도는거지"

 

슈코가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면서 거들었다.

 

"역시 잘 아네"

"내가 데뷔하기 전에 오죽 할 일이 없었으면 다시 화과자나 팔러갈까 하고 생각했겠냐"

"뭐 요즘 일이 있나 뭐가 있나..."

 

물론 아야메가 데뷔 한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만들어준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것도 아니었다.

나무를 깎고 사포질을 하고 오늘 한 일은 단지 색칠하고 말리다가 잠이 든 것 뿐이었다.

 

"데뷔도 못한 생활은 기구하지..."

가장 데뷔를 늦게 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야메보다는 슈코쪽이 역시 히로미의 속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거니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늘 그렇지 뭐 일도 딱히 없고 레슨도 딱히 없고"

"심심하고 왠지 기숙사에 사람들은 다 나가있는거같고"

 

시즈쿠는 먼저 데뷔했고 아야메는 늘 오디션이다 뭐다 바빴던 탓에 슈코 역시 기숙사 방에 혼자 있는건 히로미와 매한가지였다.

히로미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여기서 이렇게 허탈한 이야기를 한다한들 내일도 같은 일상일게 분명했고 그것은 일주일 혹은 한 달을 두고봐도 다를건 없었다.

 

"너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에이 설마 프로듀서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였겠어요?"

"난 맞는데?"

 

슈코의 당당한 태도는 맨 처음 그녀를 스카우트 했을때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나이차가 12살이나 나는건 슈코에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걸림돌은 아니었다.

 

"아니 내가 데뷔를 시키기 싫어서 안하는게 아니잖냐"

"그럼 데뷔를 시켜줘 애가 맨날 어 막 어"

"뭐 말을 해 하핫"

"그래 막 어 저 집에 혼자있고 막 아이돌이 혼자 저런거나 만들고 있고 얼마나 심심하고 할일이 없으면"

"야 나도 마 너희들 어 일거리 잡아다주고 어 관리도 해야하고"
"아니 그니까 시키랑 하는 일을 얘를 줘 얘를"

"그거는 내가 마음대로 못해 너네 중에 골라줄수는 있어도"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내려오면 그에 맞는 아이돌들을 모아서 활동을 시키고 관리하는게 프로듀서의 일이었다.

이치노세 시키와 미야모토 프레데리카의 유혹 이빌에는 역시 히로미보다는 같이 친하게 지내던 편의 슈코가 훨씬 잘 어울릴게 분명했다.

 

"에휴...어쩔 수 없지"

"그래서 아야메 cd까지 바로 준비하는거야?"

"물론이지"

"너 나중에 힘들다고 뭐라 해도 난 모른다?"

"상관 없어"

 

아야메는 이미 독기까지 잔뜩 품고는 cd녹음까지 마친 상태였다.

문제는 발매일자 뿐이었다.

 

"그리고 라디오랑 잡지에서 그렇게 신인 아이돌이라도 띄워줬는데 앨범정도는 내야지"

"그래 그래야지"

 

저렇게 호기롭게 스케쥴을 막 받다가 후에 속된말로 개고생하는 아이들을 숱하게 봐온 프로듀서는 아야메가 걱정되는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아야메에게 그 정도는 감당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 얘기는 여기까지 하자고"

"그래 어차피 먹고 마시자고 모인 자리인데"

 

모여서까지 데뷔나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만큼 이 교토의 아이들이 워커홀릭인것은 아니었다.

단지 눈 앞에 놓여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에 일 같은것 보다는 훨씬 관심이 쏠렸다.

단체로 음식을 흡입하다 싶었을때 즈음에 프로듀서가 먹다 말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렇다면 이 쯤에서 발표가 있겠습니다"

"뭔데요"

"조금 기대 된다는 눈치라도 보여주면 안되냐?"

"뭔데 그래요"

 

시즈쿠는 부드러운 웃음을 띄우며 프로듀서에게 물어봐주었다.

프로듀서는 헛기침 한 번에 다시 발표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우리 이번에 라이브 투어간다"

"에? 진짜?"

"그럼 진짜지!"

 

평소에는 무슨 스케쥴이 들어와도 그러려니 하는 슈코 마저도 이번 발표에는 눈이 확 휘둥그레해졌다.

놀랄만도하지

 

"그래서 누구 누구 가는데요?"

 

프로듀서는 히로미쪽을 흘끗 본다.

히로미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는것인지 프로듀서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괜히 쥬스컵만 바라보면서 홀짝 거렸다.

 

"원래는 아야메 CD데뷔 늦출 생각이었는데 본인이 저렇게 하겠다면야...아야메까지 CD 발표 하고 바로 출발할거야 뭐 우리들만 가는것도 아니니까"

"다 가네요?"

"그런 셈이지"

 

히로미의 쇼파 옆 자리에 앉아이던 아야메가 히로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주스잔을 바라보며 흐릿하게 비춰지는 자기의 얼굴을 보고 히로미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한 번 가면 꽤 오래있을거야 그리고 스케쥴도 빡빡할거고 그래도 괜찮아?"

"물론이죠"

"그리고 내가 대놓고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뭐요"

 

반은 장난 반은 진심으로 히로미는 딱 삐진 표정이었다.

 

"한 열흘 정도는 그냥 푹 쉬어 레슨도 스케쥴도 따로 안 잡아놓을테니까"

"마음대로 하세요...근데 어디로 가는데요?"

"교토...교토 가서 그냥 라이브만 하는곳도 있고 라이브 배틀도 한데"

"누구랑요?"

"우리 프로덕션 멤버랑 하는거지 뭐"

"뭐 그래도 잘 됐으니까 열심히 하고나 오세요"

"그래 알았어"

 

히로미도 이 참에 그냥 푹 쉴 생각이었고 다른 멤버들은 라이브 투어라는 이야기에 잔뜩 들떠있었다.

한참을 떠들며 먹고 마시고 난 후에야 모든 멤버들이 기숙사로 돌아왔다.

 

"언니 잘 자요"

"그래 잘자 히로미"

 

히로미는 사에를 먼저 방에 들여보내놓고는 티비를 틀었다.

가죽 쇼파라서 누워있으면 땀 때문에 살갗이 짝짝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에어컨으로 몸을 식힐 때 까지 히로미는 잠시 앉아있기로했다.

그동안 히로미는 데뷔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티비에서 뭐가 나오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앞으로 데뷔를 할 수 있을까? 그게 과연 언제가 될까?

아야메는 언제까지 활동을 하게될까? 아야메가 활동이 끝난다면 내가 활동 할 수 있을까?

정말로?

프로덕션은 회사고 회사는 이익이 남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이돌들은 정말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한다.

연기, 노래, 버라이어티 등등 아이돌들이 활동하지 않는곳을 찾는것이 더 힘들었다.

하지만 히로미에게는 아야메처럼 목표로 잡은 이상향이 있는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금 저 티비에 나오는 17세 아이돌처럼 어떤 컨셉을 잡을 배짱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럴만한 연기력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무모하게 아이돌이 되고싶다고 상상하다가 운 좋게 스카우트되어 도쿄로 올라왔지만

히로미에겐 정말 연습 말고는 아무런 길도 없었다.

사에에게는 특유의 교토벤과 단아한 외모 그리고 수려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매력이 ㅆ었고

시즈쿠에게는 딱 보면 누구나 머릿속에 박힐만한 커다란 매력이 있었다.

슈코에게는 역시 눈에 띄는 외모와 타고난듯한 가창력과 춤 솜씨를 토대로 데뷔 전부터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아야메 역시 드디어 닌자라는 컨셉트로 연기에도 그리고 그에 맞는 앨범도 내게 되었다.

하지만 히로미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리고 트레이너들에게 쓴소리건 단소리건 듣기로는

그녀의 가창력은 그렇게 뛰어난편도 그렇다고 안무를 잘 수행하는것도 아니었다.

물론 못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아이돌들에 비하면 그렇게 뛰어난 외모를 갖고 있는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외모라고 하면 이젠 질리도록 들어왔던 미나세 이오리의 하위호환이니 하는것도 많이 들어보았다.

 

"난 왜 맨날 이모양이니"

 

히로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히로미같은 아이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말 뮤지션이 되는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타카가키 카에데, 코히나타 미호, 사쿠마 마유 그리고 시마무라 우즈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들의 성공의 비결은 데뷔하고 나서 잡은 그저 그런 컨셉같은 것이 아니었다.

뮤지션 다운 아름다운 목소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가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히로미의 능력은 그곳에 미치지는 않았다.

높게 잡아도 사에에게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어쩌다 트레이너에게 꾸중을 듣다 들은 적이 있었다.

비슷한 능력의 아이돌로는 아니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연습생에 가깝지만 카페에서 일하는 마키하라 시호나 같은 14살 친구인 야나세 미유키정도

딱 그 정도로 평범한 아이돌이었다.

시마무라 우즈키를 보고 사람들은 평범한 아이돌이라고 하지만 평범함에도 급이 있었다.

346프로덕션은 특히 가창력으로만 밀고 가려는 아이돌에게 특히 엄격했다.

그 마저도 모든 아이돌들의 잠재성을 끝까지 발휘시키려는데서 비롯한 일이었지만

역시 예능이나 연기쪽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돌들은 더욱 더 험난한 길을 걷는게 옳았다.

그렇게 이야기 할 뿐이었다.

히로미는 언제 데뷔 할 지 알 수 없었다.

여태까지 3년 그리고 앞으로 3년이 걸릴지 6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다른 뛰어난 뮤지션들을 따라가기 위해선 정말 몇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노력이 마음만큼 뛰어난 효과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앞으로 이런 생활을 몇년을 더 해야할까

 

"...콘치키칭 콘치키칭 아마이..."

"여보세요"

 

핸드폰 벨소리가 히로미의 막연한 생각을 끊어버렸다.

 

"우리 딸 뭐해..."

"엄마?"

 

늘어지는 목소리와 들쭉날쭉한 목소리 톤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으면서도 왠지 술냄새가 핸드폰 밖으로 까지 넘어오는듯 했다.

 

"엄마 술 마셨어?"

"조금 마셨어 조금...우리 딸 뭐 하고 있어"

"그냥 티비"

 

히로미는 보통 엄마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술을 마시는데 큰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는것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 딸 안힘들어?"

"뭐 힘들게 뭐가 있어"

"우리 딸도 어서 티비에도 나오고 해야할텐데..."

"이제 나 말고 아무도 안남았으니까 얼마 안 남았어"

"그래 그래...우리 딸 앞으로도 기죽지 말고 이쁘게 웃고 다녀야한다..."

"알았어 알았어 얼른 자"

"그래...우리 딸 힘내"

 

전화가 뚝 끊겨버렸다.

비단 히로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마라는 존재는 참 신기하다.

그저 조금 멀리 떨어져있고 조금 오랜만에 통화했을 뿐인데도 코 끝이 시큰거려오는게 느껴졌다.

오후 10시 반 티비는 꺼져있고 바깥에선 귀뚜라미 소리만 적막히 들리우는데

애상적인 분위기는 어수선히 잡힐 줄을 몰랐다.

어른스럽다고는 해도 히로미 역시 이제 14살인 여자아이였고 부모님과 떨어져있는 외로움

혼자 남는 고독감은 14살의 소녀가 지기에는 너무 부담되는 짐이었다.

침을 삼키고 괜한 콧김을 뿜어보고해도 물먹은 눈망울을 속이기에는 너무 역부족인듯 했다.

 

"히로미"

 

언제부터인가 방 문턱에 서있던 사에가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안 잤어요?"

"그냥 조금"

"언제부터 서 있었어요?"

"전화할때"

"그래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건지 히로미는 쇼파에 앉은 사에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는 티비를 틀었다.

전화 내용과 아까 축하 파티 하면서 있던 일들을 다 봐왔던 사에는 히로미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어주었고 한 손으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

"뭐가요"

"이런 말 밖에 못하지만 열심히 해왔잖아? 늦을수도 빠를수도 있는거여"

"얼마나 더 걸릴거같아요?"

"일 년도 안 남았을거같은데"

"그럴까요?"

"왜 아닐거같어?"

"언니였다면 그렇겠죠"

 

히로미는 3년 전에 비하면 충분히 소심한 면도 사라졌고 긍정적인 면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완전히 포지티브로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히 그렇잖아요 내가 언니나 슈코 언니처럼 이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즈쿠 언니나 아야메 언니처럼 뭐 특출난 컨셉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상관이여"

"그게 안돼서 데뷔 못하고 있는 애들이 넘치니까요"

"그래도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는데 설마 모른척 하겠어?"

"모르겠네요"

 

히로미가 영 시큰둥한 반응이자 사에는 역시 좀 부담됐는지 하품 한 번 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럼 잘자"

"언니도요"

 

사에가 해주는 그리고 시즈쿠가 아야메가 슈코가 해주는 위로는 정말 질리도록 들었다.

그들이 딱히 할 말이 없는것도 잘 안다

이젠 히로미는 데뷔라는것도 다 부질없는 짓인것만 같았다.

헛된 희망을 무지하게 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후..."

 

방 안에 있자니 갑갑해서 못 버틸 지경이었다.

늦여름 밤은 그렇게 덥지만도 않았다.

기숙사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꽤 넓고도 한적한 공원이 나왔다.

가로등 아래 벤치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는 히로미는 널브러진 자세로 호수와 맞물리는 건물들

그리고 그 위로 별빛이 내리는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

 

타향, 불확실한 데뷔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갑갑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

치고 나가는 언니들 그리고 언제까지나 제 자리일것만 같은 자신

기분전환 삼아 밖에 나왔는데도 영 우울한 생각만 가득 들어찼다.

 

"때려칠까..."

 

호숫가에 둘러친 두꺼운 나무 울타리에 기대서 멍하니 달빛만 반사되는 호수를 바라보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냥 자신을 조금 더 비참한 아이로 만들고 싶었던것 뿐일것이다.

자신의 기분은 지금 그녀 스스로도 어떻게 단정 할 수가 없었다.

 

"히로미 아냐?"

 

고개를 돌린 곳에는 달빛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밝은 빛깔인지 찬란한 금발을 평소와는 다르게

풀어헤친 여자가 서있었다.

 

"신 언니?"

"뭐해? 너 기숙사에 사는거 아니었어?"

"그냥 좀 바람 좀 쐴까 하고"

"왜"

 

신이 평소에는 주책맞은 언니로 보여도 막상 머리 풀고 밤에 진지하게 얘기하려하니

역시 12살의 나이차와 그래도 몇 년 더 산 그녀의 눈빛은 치기 어린 히로미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라보였다.

적당히 둘러대려하던 히로미도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한다.

 

"우리 팀들 이번에 다 교토로 라이브간데 나는 근데 뭐 가지도 못하고"

"우리 애들도야 그거 이번에 진짜 대규모로 할 생각인가봐"

"교토 한 군데만 가는거 아니었어?"

"너 있으니까 말만 그렇게 한거겠지 거의 일본 투어 수준이더만 무슨"

 

솔직히 그녀에게 투어의 크기는 별 상관도 없었다.

 

"근데 언니는 이 시간에 왠일이야?"

"아 안주거리가 떨어져서"

 

들고 있던 비닐봉지는 근처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주는 비닐봉지였다.

봉지의 크기를 보아하니 안주거리 말고도 이런 저런 생필품도 함께 산 듯 했다.

 

"갈 곳 없으면 우리집가자"

"기숙사 들어가야지"

"언니가 가자고 하면 가는거야"

 

신은 평소처럼 웃으면서 말을 해도 그녀의 표정에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부자연스러운 미소랄까 억지로 짓는것 같은 무언가가 끼어있는것 같았다.

 

"그래 가요"

 

나가노에서 도쿄로 막 상경한 아가씨 집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래도 신 혼자 살기에는 꽤 커다란 맨션이었다.

 

"원래는 같이 살던 친구가 있었는데 걔는 이제 나갔고 했거든 나도 좀 작은데로 이사가려고"

 

어떻게 잘 우겨넣은 자리에 있는 작은 티비를 키며 신이 말했다.

 

"그래도 언니는 좋겠어요 같은 소속인 사람들이 다 데뷔했고 언니도 곧 데뷔하겠네"

"좋긴 개뿔이...이게 뭐냐 데뷔도 못하고 나보다 12살이나 어린애랑 궁상맞게"

 

신에게도 뭔가 일이 있긴 있나보다 하고 짐작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14살이면 나나미랑 동갑이네?"

"그렇죠"

"걔는 너랑 어떻게 그렇게 다르냐...나보고 한다는 소리가 왜 나는 데뷔 안하녜"

"누가 하기 싫어서 안하나"

"내말이"

 

신이 건네주는 닭꼬치 하나를 물며 히로미가 티비에만 멍하니 시선을 꽂은채 웅얼거렸다.

 

"그냥 아이돌 때려 칠까요"

"왜"

"언제 데뷔 할 지도 모르겠고 데뷔 할 수 있을거 같지도 않고"

"뭘 때려쳐 이제 14살인애가"

"저도 애는 아니거든요"

"나 보고 말해라 26살 씩이나 되서 데뷔도 못하고 있어도 때려치고 있나...집에서는 매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냐 차라리 결혼을 해라 그러고 있고 솔직히 주책맞은것도 알아 나도"

 

신은 냉장고에서 꺼내온 콜라 한 캔을 히로미에게 건네주고 자기는 맥주 한 캔을 딴다.

 

"지금 저 티비 나오는 카에데가 나보다 어린데 나는 슈가 하트니 뭐니 그러고 있으니...근데 내가 왜 아이돌을 안 때려치는지 알아?"

"뭔데요"

"나가노에서 지역 아이돌로 막 뛰었을때...그래 그때가 좋았지 내 인생 최절정기라고 할 만큼"

"경험자다 그건가?"

"무대 위에 올라서 사람들이 막 소리지르고 하는거 한 번 보면 절대 못 그만둬...무대라봐야 다 조그마한 스테이지가 전부이긴 한데"

"근데 그러면 언니 노래도 있어요?"

"안무까지 있는데 뭐 찾아볼까?"

 

둘은 호기심이 동해서 핸드폰을 펼치고는 유튜브로 찾아 들어갔다.

사토 신 이라는 이름을 검색하자 다른 영상들 틈에서 몇 년 전에 촬영된 영상이 하나 박혀 있었다.

 

"와..."

"이야..."

 

둘은 보자마자 탄성을 내질렀다.

나가노시 내의 번화가에 있는 어떤 스테이지에서 오십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이 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녀의 취향인지 컨셉인지 엄청나게 발랄한 노래가 나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어서 그녀를 쳐다본다.

직접 만든 무대 의상에 달려있는 하트 장식들을 마구 던져대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건

낮은 화질로도 확실히 사토 신 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이때가 좋았지..."

 

신은 핸드폰 액정을 보면서 감탄인지 회상인지 모를 소리를 계속 흘렸다.

물 먹은 목소리로 보다 보다 끝내 흐느끼며

히로미는 그런 신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는데 그친다.

별 다른 말은 필요 없다는건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신은 핸드폰을 껐다.

 

"뭐 계속 이러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무대 오르겠지...아 전화왔네"

 

11시가 넘는 시간에 누가 전화를 걸지는 잘 몰랐지만 어쨌건 전화가 왔다.

 

"엄마면 끊어버리려고 했는데...여보세요?"

 

신은 히로미를 보고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티비에서는 토크쇼에 나간 카에데의 무대가 끝이 났다.

 

"네 제가 사토 신인데요..."

 

신의 표정이 처음에는 놀란듯 그리고 그 후에는 갑자기 확 하고 밝아졌다.

어쩐지 다시 무대에 오를 날이라는게 그렇게 먼 미래는 아닌것 같았다.

신은 히로미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저 말고 다른 애 한 명 더 가도 되나요?"

 

히로미는 설마 자기 얘기인가 하고 그녀 쪽을 흘끗 봤지만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몰랐고 뭘 가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물론이죠...네 그럼 다시 연락 주세요"

 

히로미는 잘 모르지만 신 만큼 살 때가 되면 언젠가 인생에 기적이나 드라마같은 순간이 한 번 쯤은 찾아오는 일인듯 했다.

아마도 그 순간이 정말 이 어두운 골방에 빛이 드는 순간이 아닐까 하고 신이 생각했다.

 

"히로미 가자 나가노로"

"뭔 소리에요"

"너 방금 본 노래랑 춤이랑 다 연습해"

"그니까 뭔 소리냐구요"

"아까 거기 우리 다시 올라가자"

 

신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히로미의 손을 꽉 끌어쥐고 방방 흔들어댔다.

 

"그러니까 그게 원래 나가노 뭐 시내인데 이번에 싹 새단장을 하는데 축하 무대 기념으로 다시 날 찾지 뭐야? 그러니까 이 기회에 이 언니가 무대에 한 번 올라가면 어떤 기분이 드나 제대로 알려주겠다 이 말씀이지"

"무대...요?"

"넌 연습만 열심히 하면 되 어차피 라이브 투어 하는동안 우리 일도 없잖아?"

 

완전히 잊혀진줄 알았던 사토 신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히로미에겐 역시 거절 할 이유 없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까짓거 해보죠 뭐"

"뭐 이 일이 잘되면 회사에서 알아보고 데뷔 시켜줄지 누가 알아 안그래?"

"물론이죠"

 

히로미와 신은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그 날 이후로 히로미는 자신의 레슨이 끝나면 바로 다른 비어있는 연습실을 찾아다니며 핸드폰에 넣어둔 노래로 몰래 몰래 연습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안다 해도 그렇게까지 큰 상관이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프로듀서가 안다면 분명 참견할게 뻔했고 다른 아이돌들이 아는것도 영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안무가 쉬워서 다행이네요?"

"내가 혼자 짰으니까 뭐 당연하지"

 

안무도 쉽고 가사는 거의 이어지지 않을정도로 막장이었지만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둘은 그냥 마냥 좋았다.

목표가 생기자 히로미도 때려친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였고 그냥 신 따라서 연습하는데만 열중했다.

 

라이브 투어가 시작되자 프로덕션 자체가 정말 한산해졌다.

사람들은 아이돌도 프로듀서들도 대부분 빠져나갔고 건물 자체가 굉장히 고요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라이브 전날 밤 신과 히로미는 신의 집에서 나가노에 가져갈 짐을 점검하고 있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돈 몇 푼과 무대 의상 그리고 개인 소지품 같은게 전부였지만

 

"내일이면 무대 오르는거죠?"

"그러게 나도 진짜 오랜만이다"

 

설렘인지 흥분인지 둘은 좀처럼 잠을 자지 못했다.

막상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자 큰 무대인지 작은 무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동영상으로 본 무대는 그렇게 큰 무대도 아니었는데도 무지하게 떨렸고 엄청나게 설레여왔다.

 

"사람 많을까요?"

"그래도 꽤 있지 않을까? 한 백명?"

"무지 많이 있네"

 

백 명의 사람들이 무대 위에 오른 자신들 앞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히로미는 금세 또 가슴이 벅차올랐다.

신의 방에서 눈곱만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 하늘은 왠일인지 별까지 박혀있었다.

 

"별도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저번에 교토 갔다 온 이후로 처음인거같아"

"원래 별이란게 마음을 비워야 보이는거야"

 

신 답지 않은 구식이지만 꽤 시적이고 진중한 이야기였다.

 

"뭔 소리에요"

"그냥 어른 흉내 좀 내보고 싶었어"

"좋네요 이러고 있으니까"

"이러고 있는게 뭔데"

"남들 라이브 투어니 뭐니 하는데 둘이 골방에 박혀서 이렇게 궁상 떨고 있는거요"

"그래서 싫으냐"

"아뇨 좋아요 오히려"

 

둘은 결국 이불을 걷어 차놓고는 한 명은 바닥에 한 명은 쇼파에 누워서 티비를 켰다.

역시 이러는게 둘에게는 조금 더 어울리는듯 했다.

이러다가 둘 중 하나가 잠들면 남은 한 사람도 곤히 잠에 빠지리라

 

"이야 우리 언니 나오네"

"나나미도 있네"

 

밤에 하는 토크쇼는 어째서인지 15세 딱지를 달고도 14살 짜리 꼬마애가 출연하는 아이러니 함을 보여주었다.

별 시덥지않은 토크쇼에 둘은 웃다가 웃다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티비를 켜둔채 잠에 빠졌다.

신의 전기세가 이번 달은 조금 더 나올 예정이었다.

잠에 든지 채 반나절이 못된 5시에 먼저 눈을 뜬 히로미가 쇼파 아래에 있는 신을 발로 툭툭 쳤다.

 

"일어나요 언니"

 

신이 미동도 없자 히로미는 그런 신을 내버려두고 먼저 씻으러 들어간다.

믿기지도 않지만 오늘 그녀는 난생 처음 그녀의 무대를 갖게 된다.

얼굴에 물을 끼얹고 나서 딱 얼굴만 비춰지는 거울에 그녀의 얼굴을 가져다대어본다.

긴장해서인지 얼굴은 평소의 사나운 눈매가 부각되서 훨씬 진지해보이는 표정이었다.

26세 큐티계 아이돌 답지 않은 괴성을 내지르며 신이 힘겹게 눈을 떴을때 히로미는 이미 다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거 먼저 일어났으면 좀 깨워주지"

"제가 몇 번을 깨웠는데요 빨리 씻기나 해요"

"네 네"

 

무대 의상도 가는 길도 전부 점검해봤지만 또 불안하고 불안해지는게 사람 심리였다.

일단 출발해서 신칸센을 타고 나가노역에 도착해서 무대까지 가는길은 신이 안다고 했으니

정말 단순한 구조임에도 히로미는 계속 긴장과 불안을 반복해서 느끼고 있었다.

긴 머리가 다 말라갈때쯤 신이 금세 씻고 나왔다.

 

"그럼 이제 출발 할까"

"머리 말리고 가요 무슨 아이돌이"

 

 

히로미는 나가노 시에도 나가노 현에도 처음 가 보는 길이었고

신칸센도 거의 타 본적이 없었기에 남들 다 먹어본다는 도시락도 먹어보고

도쿄에서 출발했는데 오히려 시골 아가씨 느낌을 팍팍 풍겼다.

 

"니 초딩이냐"

"뭐 어때요"

 

바로 옆 좌석에 앉은 신이 황당하다는듯 히로미쪽을 쳐다보았다.

 

"근데 우리 무대의상은 어디서 갈아입어요?"

"뭐 역 도착하면 화장실에서 적당히 갈아입지 뭐"

"네?"

"왜"

"그거 입고 그 스테이지까지 간다구요?"

"뭐 어때 나는 그거 입고 버스로 몇십 분을 왕복을 했는데"

 

새삼 신이 대단해보였다.

물론 그냥 무대의상이라면 어떤 컨셉 의상정도로 봐줄법 했지만 둘이 입고 가게 될 이 옷은

온갖 화려한 장식이란 장식은 다 달려있는

메르헨으로 시작해서 메르헨으로 끝나는 그런 복장이었고 이런 복장을 입고 시내를 돌아다니는건

여간 챙피한 일이 아니었다.

나가노역에 도착하고 신은 익숙하게 여자 화장실을 찾아 히로미를 끌고간다.

그래도 큰 역이라 그런지 안에는 사람들이 각 칸마다 줄을 서 늘어뜨려져 있었다.

 

"그냥 갈아입어야겠네"

"여기서요?"

"뭐 어떡해"

 

신은 곧장 옷을 한 꺼풀 벗고는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사람들은 별 신경 안쓰는듯 했지만 옷의 화려함에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히로미는 얼굴을 잔뜩 붉힌채 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거 생각보다 무지하게 쪽팔리네요"

"익숙해지면 괜찮아 어차피 다시 볼 놈들도 아닌데"

 

역 근처에는 나가노 시청, 나가노 현청이 전부 다 있었다.

양복과 각종 화려한 사복의 틈에 두 메르헨 소녀는 길 아니 차원 하나를 잘못 뛰어넘은듯

1000년전에 나타난 프레데리카 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여기야"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한 거리는 나가노에서도 젊음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었다.

각종 상점과 맛집들 그리고 수 많은 청춘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스테이지와 근처의 거리는 새단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흰 천을 쓰고는 완전 봉인된 상태였다.

물론 둘의 의상 때문에 엄청난 시선이 몰렸지만 히로미는 그들에게는 완전 처음 본 사람이었고

신은 옷과는 대비되게 얼굴은 완전 철저한 분장을 했으므로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만 할 뿐 잘 눈치채지 못한듯 했다.

둘은 이벤트 시작 전에 도착 하자마자 바로 흰 천이 올라가있는 스테이지 위로 걸어 올라갔다.

엄밀히 말하면 강제로 올려보내졌다.

 

"이제 시작이네요"

"흠..."

 

무대 바로 앞에는 축하공연이라던가 아이돌이라던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무언가가 있었고

자기 말고도 다른 프로덕션에서 온 아이돌들도 있었지만 역시 그것 만으로는 사람들을 더 붙잡기는 힘들어보였다.

 

"그냥 지금 시작하죠?"

"에이 그래도 스케쥴엔 맞춰야..."

 

신은 한 낮이라 덥기도하고 지루하기도 했는지 쪼그려앉아서 안무와 가사를 다시 점검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이내 사람들은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여기있는줄 저기 있는 애들은 꿈에도 모를거다"

 

히로미는 신이 저렇게 자신만만한건 역시 타고난 그녀의 낙천적인 성격과 포지티브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셋! 둘! 하나!"

 

사회자와 청중들 모두가 하나를 외치는 순간 천이 확 하고 내려갔고

바로 그 안에서 조금은 웃긴 포즈를 취하고 있는 히로미와 신이 확 들어났다.

 

"우와아!!!"

 

히로미는 순간 엄청나게 터져나오는 굉음에 귀가 찢어지는줄 알았지만 바로 옆에서 당연하다는듯 웃음짓고있는 신은 태도는 엄청나게 당당해보였다.

신이 나가노를 자기 친구처럼 말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니들 요즘 뭐하고 사냐!"

 

마이크를 잡은 신이 앰프가 찢어져라 소리가 질렀고 사람들은 미친듯이 슈가 하트를 외쳐댔다.

 

"내가! 2년만에! 나가노에 돌아왔다! 그것도 애 하나 데리고!"

"에에...세키 히로미입니다!"

"니들 오늘 노래 똑바로 안하면 하트는 꿈도 없을줄 알아 알았어!"

 

신이 사인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앰프에서는 핸드폰으로 작게만 들었던 노래가 온 거리를 떠나가라 소리를 뿜어댔고 히로미는 곧바로 안무에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래가 시작 되자마자 신의 목소리와 팬들의 목소리가 섞여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나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목청이 터져라 불러댔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히로미는 목소리가 묻히면 어떡하나 하면서도 당장 안무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분위기를 타자 히로미 역시 순간 그녀가 냈다고 믿을 수 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더 분위기를 타자 신이 하던것마냥 원본도 뭐도 무시하고 미친듯이 고음을 뽑아댔다.

사람 수는 훨씬 적었지만 거리가 훨씬 가까워서 그런지 사에의 무대 위에 올라갔을때보다도

소리나 열기는 훨씬 격렬해보였다.

격렬한 안무에 양면 테이프로 붙혀두었던 하트모양 장식들이 죄다 바닥에 떨어졌다.

3초 혹은 3시간 같던 3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히로미에 비해서 신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히로미 하트 어택"

 

신이 옆에서 뭐라 중얼거리던걸 히로미는 잘 듣고는 바닥에 떨어진 하트 모양 장식품들을 냅다 관객들에게 던졌다.

신에게 듣기로 물리적 하트 어택이라고 칭하는 것이었다.

 

"야! 니들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나 이제 티비 나올거니까"

"저두요!"

 

관객들이 뭐라 말하는듯 했지만 대부분 함성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럼 슈가 하트! 나중에 티비에서 보자!"

 

환호성을 뒤로 하고 둘은 무대 뒤로 넘어갔다.

다만 무대 뒤에 너무나도 황당한 사람들이 있어서 둘은 순간 얼어붙었다.

 

"히로미 너 여기 왜 있어"

"프로듀서?!"

"어 시키 왠일이냐"

"어머 신 일하러 온거야?"

"히로미 노래 잘하더라? 고음도 잘 뽑고"

 

영문을 모르는 프레데리카만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고있었고 남은 5명 모두 제 할 말만 하고 있었다.

 

"히로미 이런걸 하려면...아니 이런데까지 오려면 말이라도 했어야지 나가노까지 이렇게 오면 어떡해?"

"뭐 어때요 보호자도 있는데"

"너 만약에 자유시간 아니었으면 진짜 혼났어 알아?"

 

히로미는 입이 삐죽 나와서는 말이 없다.

기껏 엄청나게 뜨거운 무대를 즐기고 왔는데 끝나자마자 듣는게 꾸지람이니 기분이 상할만도 했다.

 

"뭐 그래도 많이 늘었네 실수도 안하고"

 

히로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프로듀서는 유혹 데빌의 무대를 준비시켰다.

슈코와 시키 그리고 프레데리카가 차례로 무대에 오르자 그에 맞는 함성이 또 터져나왔다.

 

"갈때는 내 차 타고가 나도 다시 프로덕션에 가봐야하니까"

"다른 언니들은요?"

"다 지금 각각 흩어져서 투어가는 중이야"

"교토만 도는거 거짓말이었죠?"

"어떻게 거기서 전국투어라고 말하냐"

"그러면 프로듀서씨 우리는 잠시 근처에서 밥이라도 먹을테니까 끝나고 갈때 되면 연락 주세요잉?"

"아...네"

"존댓말 안쓰셔도 되거든요"

 

신이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나지만 어째서인지 프로듀서는 순간 존댓말을 먼저 써버렸다.

 

"가자 히로미 내가 맛있는 집으로 데려가지"

"어딘데요?"

"가면 알아"

 

히로미가 신에게 끌려 간 곳은 아까의 무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3층에 피자집이었다.

점원은 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언제 했는지도 모르는 예약석으로 그녀를 데려다 주었다.

 

"기분 좋지 않냐"

"내 생에 가장 좋은거같아요 지금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언니가 왜 아이돌을 안 그만두는지 알거같아요"

"그러니까 다시는 그만둔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연습생 몇 있지도 않은 프로덕션에 너까지 나가면 내가 뭐가되냐"

 

신은 옷깃을 펄럭거리며 먼저 나온 콜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어? 너는 3년을 준비했는데 데뷔 한 번 못해보고 끝나면 너무 서글프지 않냐?"

"역시 그렇죠?"

 

신은 간만에 어른 혹은 선배답게 멋있게 웃으면서 히로미쪽을 바라봤다.

히로미는 오늘 일로써 마음을 다시 다 잡게 된듯 했다.

 

"자 그러면 오늘은 맛있게 먹고 다시 프로덕션으로 돌아 가실까?"

"그러자구요 우리"

 

이젠 메르헨 복장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둘은 창가자리에서 바로 아래 펼쳐지는 무대를 감상했다.

여름보다 뜨겁고 찬란한 햇발이 둘의 창가자리로 쏟아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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