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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 히로미 - 다시 별빛으로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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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7, 2015 21:30에 작성됨.

슈코가 신데렐라 걸이 된지 세 달이 지났고 이제는 시즈쿠가 다시 새로운 앨범을 내고 사에가 이번에는 연기로 노선을 돌렸다.

그간 많은 일이 있다면 있다고 할 수 있었고 또 없다 하면 없다 할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일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히로미와 아야메에게 들어오는 일이 적다보니

둘은 또 여지없이 한가로운 일상과 레슨을 겸하고 있었다.

이게 그 간의 일 이기는 했다.

 

"유메! 유메!"

 

히로미가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곳은 유메가 연습을 하고 있는 연습실이었다.

둘의 사이도 그 날이 이후로 부쩍 친해진듯 꼭 자매같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듣기도 했다.

히로미가 달려가서 들어간 연습실에는 연습을 하다말고 신기한 눈으로 자신의 무대의상을 쳐다보는 유메와 덩달아서 신이 난듯한 치에와 아리스가 있었다.

 

"언니!"

"유메!"

 

평소답지 않게 옷을 들고 방방 뛰는 유메와 그걸 바라보는 히로미도 덩달아 신이 나서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축하해 유메!"

"헤헤..."

 

전체적으로 푸른 톤의 원피스는 하늘하늘한 레이스와 수려한 꽃 장식이 가슴쪽에 달려 있었다.

화관을 쓴 유메의 모습은 꼭 요정을 보여주는듯 했다.

 

"근데 히로미 여기서 뭐해?"

"예? 아 유메 이번에 cd데뷔 한다길래 축하해주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너네 프로듀서가 지금 누구 부르러 가던데 너 아니였어?"

"저 한테는 그런 말 없었는데"

 

유메의 프로듀서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봤지만 히로미는 역시 들어본 일이 없기에

보나마나 바쁜 셋 중 하나 불렀으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유메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 가볼게"

"언니도 빨리 데뷔해요 그래야 같이 무대 서지"

"하하...그래야겠지"

 

유메의 데뷔 소식은 히로미에게 그렇게 충격적인 일도 아니었다.

유메는 평소에도 인기가 꽤 있던 편이었고 얼핏 듣기로는 이미 위에서도 유메의 데뷔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는 그녀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메가 데뷔를 한다는건 그녀로써는 아무런 자극도 무엇도 되지 않았다.

물론 아직 데뷔 하지 못한건 영 아쉬운 일이었지만 아쉬워 한다고 해서 딱히 바뀌는 일은 없었다.

교토 라이브 페스때 그녀가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었다.

결국 데뷔를 할 사람은 언젠가 데뷔를 하게 되어있었다.

오늘 일은 유원지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아 히로미 빨리 가자"

 

프로듀서의 표정이 어째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부자연스러운 미소인걸 보고는

히로미는 무언가 일이 있긴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프로듀서 무슨 일 있어요?"

"아 별거 아니야"

 

프로듀서는 대답을 회피한다고는 했지만 히로미의 대답을 강요하는 눈빛에 프로듀서는 못 말리겠다는듯 결국 대답을 해준다.

 

"아니 그 부모님 한테 무슨 일이 있어가지고 원래 내려가봐야 하는데"

"에이 그러면 며칠 내려가 보시지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뭐 이번 일 끝나면 잠깐 내려가서 보려고"

 

어른들은 어른 마다의 고민이 있나보구나 하고 히로미는 새삼 생각해보았다.

부모님 문제라면 어쩌면 자기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것 보다 훨씬 큰 문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까 누구 불렀다는데 누구 부르신거에요?"

"누가 그러디?"

"그...마나베 프로듀서가"

"그놈은 왜 쓸데 없는 소리를 해서...아 사에가 이번에 연기하다가 뭐 실수했나봐 그거 때문에"

 

프로듀서는 작게 중얼거린 뒤에 대답했다.

유원지라고 하길래 그다지 커다란 사이즈는 아닌줄 알았는데 막상 다가와서 보니

 

"프로듀서 어떻게 이게 유원지에요 그냥 테마파크구만"

"내가 이런데를 와 봤나"

"그래서 오늘은 뭐에요 토끼?"

"너무 그렇게 정곡을 후비면 내가 미안하지"

"미안하라고 하는 소리에요"

"너 요즘 부쩍 나 갈구는데 재미 붙힌거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거의 아빠...아니 삼촌과 조카 뻘이긴 했지만 둘이 나누는 대화는 영 범상치 않았다.

커다란 무대 앞에서 뭘 하는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그녀는 이제는 매일 디자인이 달라도 이제는 거의 익숙해진 토끼 탈과 인형 옷을 자연스레 입는다.

오늘의 토끼는 조금 사이즈가 큰 듯 했다.

토끼옷을 입은 그녀는 영락없는 토끼였다.

대기실 밖으로 나가자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그늘이 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 햇빛이 쫙 들이치자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머리는 금방 땀으로 가득 찼다.

 

"와아 토끼다 토끼"

 

무대 위에는 섹시 길티들이 무슨 경찰 홍보인지 뭔지 뭐라 떠들어대기는 했지만

히로미의 귀에는 단지 앞에서 애들이 떠드는 소리와 자신의 숨소리만 토끼탈 안에서 울렸다.

당장에라도 탈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사람 쓰면 되는 일을 굳이 데뷔 못한 연습생들한테 시키는 이유는 뭘까?

사기진작? 아니면 독기라도 품으라는 것일까?

히로미에게는 영 의문투성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무대 위에 올라가있던 섹시 길티 역시 얼굴에 땀이 거의 비오듯 흘러 젖은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고 있었지만 탈을 쓰고 있던 히로미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정말 탈수 직전까지 간듯 성급하게

물을 들이키고 있었다.

 

"아 더럽게 힘드네"

 

히로미의 옆에서 누군가 물을 마신다기보다는 거의 뿌린다는 식으로 물을 들이키는 여자가 순간 한 마디 내뱉었다.

들어본듯 만듯한 목소리에 히로미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름임에도 화려한 옷 장식과 꼭 트레이드 마크라도 되는듯한 양갈래 머리

 

"이런건 하나도 스위티하지 않은데...왜 뭐 묻었어?"

"아 아뇨"

 

어렴풋이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던 이름이 순간 스위티 라는 말을 듣고 확 떠올라버렸다.

사토 신

듣기로는 그녀보다 훨씬 언니라고는 하지만 역시 그녀도 데뷔하지 못한건 매한가지였다.

 

"야 너는 안 덥냐?"

"덥죠 지금 바깥 날씨가 어떤데"

"어려서 좋겠다 화장도 안하고"

"언니 화장했어요?"

 

신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거의 맨 얼굴이었다.

화장때문에 땀이 닦여서인지 꽤나 어두운 조명임에도 그녀가 맨 얼굴임은 제대로 식별 할 수 있었다.

 

"뭐 나이 먹으면 다 그렇지...넌 어려서 좋겠다"

"저도 이제 14살인데"

"나나미랑 동갑이네 내가 걔랑 12살 차이인데"

 

12살이라는 말에 순간 모를 연륜이 느껴졌다.

26살이면 벌써 사회생활을 하고도 남았을 나이인데도 이렇게 연습생 생활을 하는걸 보면

그녀의 조급함은 분명 히로미가 느끼는것 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당장 그녀가 말한 나나미도 데뷔를 해서 활동하고 시키 역시 유명 아이돌이 된지 꽤 됐는데

그녀가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녀는 정말 철없는 여자인게 분명했다.

 

"언니는 나가노에서 그 지역 아이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다 옛날 얘기다...그때가 좋았지"

 

신은 꼭 한참 과거를 회상하는듯한 눈빛으로 반대쪽을 쳐다보았다.

 

"그래봐야 현 내에 있는 작은 무대였는데도 그냥 올라가서 노래만 부르면 크..."

"어땠는데요?"

"그냥 남자고 여자고 슈가 하트 슈가 하트 그러는데 내가 진짜"

 

신의 감격에 찬 눈빛은 꼭 영광스러운 과거를 추억하는 운동선수 같았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뭐 지금은 요 모양 요 꼴이지만"

"저도 뭐...언니들 다 데뷔하고 아야메 언니랑만 남아 있는데요 뭐"

 

신은 그런 히로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데뷔 못한 둘 사이에서 느끼는 동질감 내지는 서로의 처지에 대한 동정심인지

히로미도 신의 그런 태도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언니 저 왔어요"

"히로미 왔어?"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히로미는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향했다.

하루 온 종일 땀을 흘렸더니 옷에도 땀이 눌어붙은 찝찝한 기분이 정말 싫었다.

 

"하..."

 

따뜻한 물과 늘어지는 피로가 참 기분 좋았다.

씻고 나오자 사에가 먼저 타월과 그녀의 잠옷을 들고 문 앞에 착착 개어주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었을때 그녀는 유독 다른 사람에게 잘해준다는걸 히로미는

몇년간 그녀와 동거하며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낮에 프로듀서에게 들은 연기에서의 실수가 꽤나 큰 일인듯 했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소리여?"

"말해 봐요 아침에 프로듀서가 촬영장에서 실수 한 것 때문에 언니 불렀다는데"

"나는 그런 적 없는데?"

"언니 부른 거 아니었어요?"

 

사에는 워낙 사람이 좋은 탓인지 거짓말을 하면 금세 얼굴에 들어나는 케이스였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봐도 평소와는 다를게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프로듀서가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인데 굳이 그녀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었을까?

히로미는 영 의문 투성이었다.

 

"뭐 내일 물어보고...그럼 불 끌게"

"언니 잘 자요"

"그래"

 

이제는 익숙해진듯 사에는 침대 쪽으로 히로미는 쇼파 쪽으로 이동한다.

히로미의 눈에는 워낙 틀에 박힌 삶을 사는 사에였기에 이제 겨우 밤 10시임에도 불을 끄고 잠을 자는게 일상이었다.

히로미에게는 그 시간에 보통 티비를 보며 소일하거나 핸드폰을 만지는게 흔한 일과였다.

 

"언니는 모니터링도 안하나 그러고보니"

 

티비에서는 늘 10시에 맞춰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사에가 출연하는 드라마인데 막상 사에는 보지 않고 자기만 시청하고 있었다.

교토 아가씨라 그런지 단아한 연기가 그녀와 참 잘 어울렸다.

히로미가 한참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 쯤 잠을 자고 있으리라 생각한 사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 히로미..."

"어 언니 안 잤어요?"

"어...그 할 말이 있어서"

 

살짝 안절부절 하는듯한 태도 그리고 왠지 애써 시선을 피하는듯한 눈

사에가 몸으로 말 하는 사람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유독 오늘은 당황한게 눈에 역력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게 프로듀서가 왠만하면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역시 거짓말 하는건 아닌거 같아서..."

 

확실히 거짓말은 사에보다는 슈코쪽이 능숙했다.

사에는 거짓말과는 정말 판이하게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뭔데요"

"실은 그 아까 프로듀서가 불렀다는 사람 아마도 아야메일거야"

"왜요?"

"그...아야메 이번에 CD데뷔 하거든...프로듀서도 괜히 너 신경 쓰여..."

"뭘 그런거로 거짓말을 하고 그래요 그냥 말하지"

 

고해성사하듯 말하는 사에에 비해서 히로미의 반응은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난 또 뭐라고...그냥 들어가서 자세요 프로듀서는 뭘 그런걸 비밀로 한담"

"어...응 그래"

 

사에는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히로미는 오늘 프로듀서가 보여주었던 부자연스러운 웃음과 태도 그리고 사에의 행동 같은게

전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뭐 저들 딴에는 나를 배려한다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막상 히로미에게 그걸 말한다 한 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고 단지 그게 현실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내일은 아야메를 찾아봐야겠다고 히로미는 생각했다.

 

"시즈쿠 언니는 어째 맨날 광고만 찍는것 같다"

 

테마파크에서 봤을때는 섹시 길티 유닛이었지만 광고에는 거의 B.B로 나가는게 대부분이었다.

이번엔 워터파크 광고였다.

시즈쿠의 가슴을 보면 늘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CF촬영이 들어오는것도 딱히 무리는 아니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들 좋아하는 사람쪽이 더 많았으니까

 

"그러고보니 수영장 간 지도 꽤 됐네"

 

연습생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다른 애들이랑 같이 수영장에 간 적도 많았지만

막상 연습생이 되고 혼자 교토에 올라오니 수영장에 안 가는건 물론이거니와 친구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막상 아이돌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미 3년이란 시간을 써버렸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기는 아깝기도 하고

자기도 언젠간 데뷔 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기도 했다.

슈코의 데뷔 이후로 아야메까지 정확히 3달

히로미는 그녀 스스로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티비를 끄고 그녀는 얇은 담요를 덮었다.

 

 

"언니 있어요?"

"어 히로미 무슨 일이야?"

 

아이돌의 기숙사라고 하면 가끔 사람들은 꽃향기가 넘치고 웃음꽃이 피어오르는 그런 장소라고 생각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기도 하고 반은 틀리기도 한 말이다.

당장 지금 히로미만 하더라도 머리 손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앞 머리는 꽁지가 내려오고 자고 일어난 머리는 정말 풍성하게 일어나있었다.

시즈쿠 역시 이미 일반인을 초월한 사이즈 때문에 가슴쪽이 잔뜩 늘어난 끈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츄리닝을 입고는 뻗친 머리에 하품을 하며 그녀를 반겨주었다.

그렇게까지 생기넘치고 파릇파릇한 공간은 아니었다.

 

"아 아야메 언니 어디있어요?"

"아야메는 왜?"

"뭐 데뷔 한다며요? 축하라도 해줘야지"

"아 들었어?"

"어 슈코 언니"

 

방 안쪽에서는 슈코가 쇼파에 앉아서 티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슈코도 첫 데뷔를 하고 이제 슬슬 활동도 줄여가니 이제는 슬슬 한가로워질때가 됐다.

데뷔 이전에는 셋이서 같이 아침마다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면서 소일하는게 대부분이었고 늘 그럴때마다 슈코는 제일 흐트러진 모습이기는 했다.

모처럼 보는 슈코의 모습이었다.

 

"언니는 어떻게 변함이 없어요?"

"쯧쯧 사람은 원래 한결같아야 하는법이야"

 

아야메의 방으로 들어온 히로미가 쇼파에 걸터앉으면서 슈코에게 말을 건넸다.

사에랑 같은 방을 쓰고 사에랑 부쩍 친해진것 같아도 역시 몇 년을 같이 지내온 슈코나 아야메쪽이 히로미랑은 더 친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근데 아야메 언니는요?"

"아침에 프로듀서가 불러서 나가던데? 원래 데뷔하기 전이랑 그 직후 한 2달정도가 제일 바쁠때야 게다가 아야메 이번에 346에서 만드는 영화에도 나갈걸 조연이긴 한데"

"닌자래 닌자"

"하이고 언니 소원성취했네 드디어"

 

시즈쿠가 둘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주고 자신은 우유를 한 잔 따라 마셨다.

음료수 슈코가 좋아하는 사이다였다.

 

"하..."

"왜 이제 혼자 데뷔 못하니까 쓸쓸하디?"

"잘 아네"

 

엄밀히 말하면 단지 조려서 하품한것 뿐이었지만 슈코의 말이 공감이 안되는건 아니었다.

 

"아침 티비는 재미있는게 안해"

"이제 저거만 보고 살아야할 사람 생각도 해주지?"

"에헤헤...그래도 곧 데뷔할거니까"

"뭐 됐어요 이제 데뷔를 하던 말던"

"에이 그러지마 정말 이제 얼마 안 남았을거라니까"

 

시즈쿠가 낙심해보이는듯한 히로미의 어깨를 감싸고 위로하려고 했지만

슈코는 영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냅둬 나도 한창때 저런 생각이었어"

"역시 슈코언니"

 

둘은 손바닥을 짝 맞춘다.

둘과는 사인이 맞지 않는 시즈쿠 혼자 내심 삐친 얼굴로 우유만 한 컵 마셨다.

한 동안 데뷔하지 못했던건 근 3년이 되었던 슈코나 히로미나 매한가지였으니

게다가 가출하고 나서 이리저리 방황하던 슈코였으니 그녀의 압박감도 아마 엄청났을것이었다.

또 다른 면에서는 천성이 좀 방정맞고 활발한 아야메보다는 상대적으로 진중하고 속으로 생각하는게 많은 슈코나 히로미가 둘이 죽이 잘 맞는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언니 언니 나 핸드폰!"

"어 뭐야 다시 왔네?"

"아야메 언니 얼굴보기 힘들다?"

 

정신없이 방 안으로 들어온 아야메는 방 안에서 여유롭게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히로미를 보고는 흠칫 놀란 눈치다.

 

"언니 데뷔 한다면서요?"

"아...들었어?"

"뭘 그런걸 숨기고 그래 우리 사이에"

 

아야메는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뭐 언니 수고해요 바빠 보이는데"

"어어 그래"

 

아야메는 들어왔던것과 똑같이 핸드폰만 챙겨서는 정신없이 뛰어나간다.

 

"뭐 프로듀서한테는 좀 승질좀 부려볼까"

"프로듀서도 고생이 많을거같다"

"다 자기가 자초한 일이야"

 

히로미는 그만 일어나서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 슬슬 씻어야 할 참에 욕실 문을 열려는 사에가 문 앞에서 보였다.

 

"아 언니 먼저 씻게요?"

"어...이따가 바로 촬영하러 가야되"

"아 그러면 먼저 씻어요"

 

히로미는 어제 사에가 해준것처럼 그녀가 입고 나갈 옷을 준비해준다.

워낙에 꼼꼼한 성격인 탓에 사에의 시간 관념이 정확한단걸 아는 그녀가 조금 더 일찍 나가기를 바라며 해주는 배려였다.

사에한테 늦었다고 잔소리를 먹는다면 아마도 돌아와서 자기가 또 잔소리 할텐데 그건 정말 기분 나쁜일 아니겠는가?

사에가 먼저 출근하고 나서야 그녀 자신도 대충 씻으며 머리 손질을 했다.

그녀의 머리는 물을 먹을수록 더 강하게 꼬이기 때문에 그녀는 머리 손질에 공을 들이며 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트위스트 티아라가 그렇게 쉽게 되는 머리스타일은 아니었다.

사에가 출근하고난 뒤에 방은 굉장히 조용하다.

그녀가 아침에 볼 만한 티비 프로그램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말 상대가 있는것도 아니기에 히로미는 사에가 출근하면 별 다른 일이 없다해도 그녀 역시 방을 나갔다.

 

"슈코 언니 있어?"

 

문 뒤편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사무소에 가더라도 프로듀서가 있을리도 없었다.

심지어 오늘 그녀에겐 마땅한 레슨도 그렇다고해서 잡스러운 스케쥴도 없었다.

일이 없으면 좋아할 만한 사람도 물론 있다.

아이돌 생활로 바쁘게 살다보면 물론 휴식도 여가도 필요하다.

하지만 히로미에게 상황은 정 반대이다.

남들이 이십 줄 넘어가고나서야 느끼는 무직의 권태를 십대 그것도 14살의 소녀가 느끼기에는

역시 영 가벼운 느낌은 아니었다.

히로미는 어디 밖에 나가고라도 싶었다.

지리한 권태를 풀만한 방법은 걷고 단지 주변을 느끼는것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문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었다. 346프로덕션은 없는게 없었으니까

에스테틱, 카페, 가본적은 없지만 스파도 있다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녀는 써본적이 없다.

그녀보다는 역시 유명하고 유능한 아이돌들이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게 옳은 표현이다.

사에는 써봤다고 하던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았다는것 같더라는걸 히로미는 얼핏 기억해냈다.

히로미에게 있어서 써본 시설이라고는 단지 카페와 그녀가 늘 머무르는 기숙사 뿐이었다.

다른 곳은 써보고 싶지도 쓸 엄두도 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아이돌들의 관계가 꼭 모두 친한것만 같아도 속은 늘 복잡한 법이다.

물론 아이돌들이 직접적으로 뭐라 하지 않지만 프로덕션에서 그리고 그게 프로듀서에게 내려가서

주의나 경고가 내려가는걸 그녀는 몇 번 보았다.

슈코가 원래 저런데 연연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아 히로미!"

"어...?"

"뭐야 벌써 잊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언니 뭐 하시는거에요?"

"뭐가?"

 

물론 신 역시 아이돌이니까 화려하고 나풀거리는 무대 의상을 입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상생활중이고 여기는 무대도 무엇도 아니다.

 

"그 옷 뭐에요?"

"왜 이쁘지 않아?"

"아니 이쁘긴 한데..."

"아이돌이니까 입는거야 아이돌이니까...뭐 됐고 카페나 가자 언니가 사줄게"

 

나이 26살 된 처자가 노란색 원피스에 하트 쿠션을 잔뜩 달고 리본과 레이스로 치장한 꼴은

솔직히 말해서 히로미에게는 같이 다니기에는 조금 창피했다.

왠지 주변에서도 보는것만 같아서 당당한 신 대신에 오히려 히로미가 움츠러드는것만 같았다.

 

"언니 여기 뭐 해?"

"잡지 인터뷰 하나봐"

 

둘에게 메뉴판을 가져다주던 시호에게 히로미가 어수선 거리는 주변 상황의 이유를 물었다.

확실히 프로덕션에서는 자주 볼 수 없던 남자들과 카메라들이 볕이 잘 드는 창가 곁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카메라의 주인공은 346프로덕션의 초기 멤버로도 유명한 시마무라 우즈키였다.

시마무라 우즈키는 참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여인이라는걸 히로미도 신도 시호도 잘 알고 있었다.

346 그룹이 처음 아이돌 업계에 진출했을때부터 346의 아이돌로 자리잡아서 지금은 어엿한 346프로덕션의 대표 아이돌로 자리잡은 그녀의 인기는 점점 쌓이고 쌓인 관록이었고 힘이었다.

하필이면 둘이 자리잡은 바로 뒷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둘은 인터뷰의 내용을 슬쩍 슬쩍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저에겐 꿈같은 일이었죠 늘 아이돌을 동경하던 내가 아이돌이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막상 아이돌이 되려고 양성소에도 다니고 춤이랑 노래도 배웠지만 헤헤..."

 

저런 아이돌이 일 순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건 그녀도 신도 잘 알고 있었다.

우즈키의 미소는 둘 모두 티비에서 잡지에서 그리고 실제로도 몇 번 본적 있었다.

그렇게 해맑고 깨끗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더 있을까?

꿈을 이룬 사람의 표정이 무엇인지 참 잘 보여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신데렐라라고 생각해요 모두 마음만 먹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공주님이 될 수 있을테니까"

"신데렐라라..."

"아이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보잘것 없던 내가 지금은 많은 팬들도 있고 노래도 부르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게...정말..."

 

이제는 우즈키의 이야기를 듣느라 히로미는 커피가 쓴 맛인지 단 맛인지 제대로 느끼지도 않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잡지 인터뷰를 위한 포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를 미디어가 아닌 현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그녀는 아마도 인터뷰의 내용이 진심이리라고 어렴풋이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라고 생각할 수록 히로미에게는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이 자리잡았다.

신데렐라, 아이돌, 우즈키

히로미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걸까

그녀는 어쩌면 신데렐라가 아닐 수도 있다.

아이돌은 아니다.

우즈키같은 여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데뷔도 못하고 이렇게 궁상맞게 있는것이겠지

 

"너 또 뭔 생각하냐?"

"에?"

"거 어차피 다 포장인데 뭘 그렇게 섬세하게 신경써?"

 

신 역시 인터뷰의 내용을 다 듣고있는듯 했다.

하지만 히로미는 그녀와는 다르게 자꾸 인터뷰의 요점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음속에서 갑갑한 기분이 커져가는것 같았다.

카페에 괜히 온 듯 했다.

남은 커피만 다 마시고 가려던 차에 카페 안으로 들어오던 사람이 있었다.

 

"어 언니"

"아 히로미"

 

주변에 있던 남자 스태프들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압도적인 몸매에 잠시 시선을 뺏겼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아이스 카페라떼 주세요"

 

시즈쿠의 카페라떼는 우유가 듬뿍 들어간다.

원래는 이 카페에 와서 우유를 달라고 했다가 우유는 안된다는 말에 커피에 우유를 잔뜩 넣어 마시는 것이었다.

더운 날씨에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셔츠를 팔락거리며 좀 식혀볼 요량인듯 했다.

다만 시즈쿠의 행동에 시즈쿠와 신 보다는 히로미가 가장 부끄러워 했다.

주변 사람들 눈치도 보이는데다 하필 주변이 전부 남자 투성이인 상태에서 그런 행동은

역시 조금 부끄럽지 않은가

 

"근데 언니 벌써 퇴근했어요?"

"오늘은 뭐 라디오 하나만 나갔다 온거니까...근데 뭐 하는거야?"

"잡지 인터뷰인가봐요"

"잡지라...데뷔 처음 할때는 꽤 많이 했는데...아야메도 지금 잡지 인터뷰 하고 있을걸?"

"아야메 언니 바쁘게 사네요"

"데뷔 초기니까...나도 그랬어"

 

신은 어느새 자리를 비워준다.

그녀에게도 데뷔니 신데렐라니 하는 이야기가 그렇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가노의 유명하진 않아도 지역아이돌로써 입지를 굳히던 인물이 어느 순간 346의 연습생이 되어서 데뷔도 제대로 못한채 이렇게 잡스러운 일만 하면 그 기분은 또 어떻겠는가

 

"데뷔라...좋겠네요"

"음...우리 그냥 지금 프로듀서한테 가볼까?"

"왜요?"

"데뷔시켜달라그래 뭐 데뷔 시켜달라고 해달라는 아이돌 많은데 너도 한 번 쯤은 말해봐도 상관 없지않아?"

"그런가?"

 

시즈쿠의 매력은 역시 저 천연한 목소리와 푸근한 성격에서 나오는듯 했다.

반드시 가슴 때문에 시즈쿠를 본다는건 착각이었다.

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건네듯 하는 말은 히로미에게도 왠지 한 번쯤 해 볼만한 호기심을 이끌었다.

 

"그러면 한번 가 보죠"

 

어차피 별 다른 일도 없겠다 싶은 히로미는 시즈쿠와 함께 그들의 사무실로 걸어갔다.

히로미는 사무실로 가면 갈 수록 점점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만약에 프로듀서가 정말로 그녀를 데뷔시켜 준다면

방금처럼 잡지에 인터뷰도 하고 라디오에도 나오고 광고도 찍고 버라이어티 예능에도 나가고

그녀가 우선 해보고 싶은 일은

역시 몇 있지는 않아도 그 동안 기다려준 팬 분들에게 인사하는 일이었다.

물론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맞았지만 그녀의 존재를 아는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히로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프로듀서의 방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누구는 카페에서 파업까지 했다는데 한 번 쯤 말한다고해서 못 할것은 없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엥 둘 씩이나 무슨 일이야?"

"프로듀서 왜 말 안했어요?"

"아...들었어?"

"그게 뭐라고 말을 안해요"

 

시즈쿠와 히로미는 테이블 앞에 의자에다 자리를 앉았다.

 

"그래도 좀 미안하기도 하고..."

"에휴...미안하면 차라리 데뷔를 시켜줘요 저도"

"그 얘기 하러 왔냐"

"프로듀서 얼굴 보기 힘들어요 거 참"

"그 얘기 할거면 좀 나중에하자"

"뭘 나중에에요 오늘 아니면 보기도 힘든데"

"내가 데뷔를 시키기 싫어서 안시키니?"

"왜 말이 그렇게 나와요? 그리고 내가 언제 데뷔 시켜달라고 말을 한적이 있어요 뭘 했어요?"

 

프로듀서의 눈에도 슬슬 반 짜증이 섞여들어가는듯 했고

히로미의 날카로운 눈매에도 서슬퍼런 독기가 서려있었다.

시즈쿠는 그냥 둘이 적당히 얘기나 하는걸 상상하고 왔는데 일이 제대로 꼬여가는걸 보자 슬슬 불안해하는듯 했다.

 

"자자 둘이 거기까지"

"시즈쿠 너도 동생이 이렇게 하려고 하면 너가 잘 타일러줘야지 오히려 대뜸 이렇게 데려오면 어떡해?"

"왜 언니한테 성질을 내요?"

"자자...히로미 우리도 나중에 오자"

 

분위기가 더 차가워지기전에 시즈쿠가 잘 마무리해서 히로미를 끌고 나왔다.

들어가기전에는 온갖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던 히로미였지만 그것도 전부 허상이란걸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아버렸다.

 

"하이 씨..."

"프로듀서가 많이 예민한 상태여서 그래"

"내가 뭐 언제 그랬다고 성질이에요?"

"에이 너가 잘 이해해줘 남자들이 다 그렇지"

 

히로미는 여전히 심통이 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시즈쿠가 잘 타이르는덕에 좀 진정 할 수 있었다.

방금 전보다도 히로미가 부쩍 혼란스러워하는걸 시즈쿠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괜히 데뷔 얘기를 꺼낸 자신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미안해 히로미"

"언니가 왜 미안해해요 프로듀서가 문제지"

 

히로미도 슬슬 진정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되리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는게 마음 편하고 좋았을텐데...하고 혼자 생각했다.

꿈이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까

힘이 빠진 모양으로 둘은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346프로덕션의 수 많은 층이지만 히로미가 눌러본건 연습실이 있는층과 사무실이 있는 층 그리고 1층 뿐이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것 없이 1층 버튼을 누르고 내려간다.

 

"1층 아니야 히로미"

"어 어"

 

순간 1층에 내려온줄 알고 나가려던 히로미의 어깨를 시즈쿠가 가볍게 붙잡는다.

5층에서 멈춘 엘레베이터에 탄 사람은 다름아닌 아야메였다.

 

"엥 둘이 뭐해?"

"그냥 사무실 갔다가...언니는?"

"방금 라디오 녹음 끝내고 오는데?...근데 너네 프로듀서 만나고 왔냐?"

"말도 마"

"프로듀서 열 좀 받았을텐데 괜찮디?"

"왜?"

"아니 아까 나 cd녹음 미루네 마네 해서 좀 싸웠거든"

 

어쩐지 평소치고는 프로듀서가 너무 빨리 성질을 낸다 싶었다.

 

"근데 데뷔를 왜 미뤄?"

"이번에 영화 찍고 하는거 때문에 cd는 좀 미루는게 낫지 않냐고 하는데 내가 상관없대도 자꾸 뭐라 그러니까"

 

프로듀서의 말도 어느정도 일리는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분명 어차피 아야메는 영화로 데뷔가 확정되었으니 cd는 조금 미루고 천천히 그녀를 육성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이미 3년을 목을 맨 아야메가 그런게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그래도 프로듀서 말 처럼 좀 쉬었다 내는게 낫지 않아요?"

"뭐하러 그렇게 해 후딱 후딱 끝내야지"

"언니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거고"

 

히로미는 뭐라 할 말은 더 남아있었지만 방금 프로듀서랑 싸운것도 있고 날씨도 덥고 해서

그냥 말 할 힘 자체를 잃어버렸다.

 

"근데 언니 꼭 지금 데뷔해야해요?"

"왜?"

"뭐 좀 힘들기도 할테고 프로듀서도 언니 걱정해서 그러는걸텐데"

 

말 할 힘을 잃었다해도 히로미는 이 말 만큼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너도 알잖아 우리 데뷔하고 싶어했던거"

"그러니까요"

 

말 한마디가 입에서 맴돌기만 하고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그녀 스스로도 염치없다고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이 말이 몰고올 파장이 어느정도가 될지 스스로 가늠하고 있는것인지 말을 해야한다 말아야한다만 두고 스스로 갈등하는 와중에

소모적인 대화로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데뷔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라는건지 나 참..."

"그러면 나는"

"뭐?"

 

평소답게 방글방글 웃어보이던 아야메의 얼굴에 순간 정적이 드리워졌다.

히로미는 스스로도 뭐 그런걸 말을 안하냐고 했지만

막상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보이는 그녀의 태도와 마음의 변화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말 뺀질거리는 여중생과 다를게 없었다.

 

"나는?"

"내가 데뷔 시키냐..."

"그래도 조금 기다려 줄 수는 있잖아..."

 

아야메는 히로미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한채 벽면의 거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도 나도 이제 데뷔하고 노래도 부르고 스테이지에도, 내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나는 아니야?"

"너가 데뷔 못하는걸 왜 나한테 한탄하는데?"

"그래도...조금만 기다려 줄 수는 있잖아...언니 약속했잖아 계속 같이 있자고 같이 데뷔하자고"

"몰라 나도 이제 앨범 내고 제대로 아이돌로 살거니까"

 

1층에 도착 하자마자 아야메는 무거운 분위기에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시즈쿠 역시 히로미를 데리고 엘레베이터 밖으로 나섰다.

히로미는 스스로도 정말 어이없고 말도 안되는 부탁이란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했다는데

스스로의 한심함과 죄책감을 갖고 엘레베이터 밖으로 걸어나섰다.

모든 잘못이 자기의 탓이란걸 알면서도 그녀는 인정하기 싫었다.

 

 

"히로미 너무 상심하지 말고"

"알았어요"

 

기숙사로 들어와서 각자의 방으로 가기전에 시즈쿠가 히로미의 어깨를 짚으며 한 마디 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속은 괜찮지 않았다.

시샘? 질투? 혹은 서러움이나 억울함

별의 별 감정이 뒤섞여져 있었다.

꽤 오래 돌아다닌것 같은데도 아직 밖은 쨍쨍했다.

여름이라고는 해도 오후 2시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할 일이 없다.

홀로 남겨진 방 안에서 그녀는 어제 만들다 만 액세서리를 만들기 위해 상을 하나 가져다놓는다.

꿰다 만 비즈들과 각종 화려한 장식들

꽃도 별도 나비도 모두 있다.

 

"이걸 만들어야하나..."

 

물론 만들고자 하면 못 만들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걸 만든다고 한 들 과연 다시 아야메에게 건네 줄 수 있을까?

히로미는 괜히 쓸데없는 투정 부려서 싸늘해진 둘의 관계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부탁을 한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평소답지 않게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하는건 아야메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생각에 있어서 그간 봐온 히로미는 절대 이런 일에 투정 부리거나 할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데뷔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그녀가 가장 격하게 축하해주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었다.

하지만 역시 혼자 남겨진다는건 꽤 큰 부담이고 상처였던것일까?

히로미의 반응은 그녀가 절대 예상도 못해본 그런 부류에 해당했다.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은 지울래도 지울 수는 없었다.

미안해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도 거짓말일것이다.

마지막까지 데뷔가 밀리고 밀린 그 둘이었다.

내색하지 않았더라도 얼마나 데뷔하고 싶었는지는 그녀가 히로미가 아니더래도 잘 알 수 있었다.

 

"뭔 생각해?"

"어? 어 아니 별 거 아냐"

 

슈코의 눈빛은 바라만 보다보면 꼭 빨려들어가는것만 같다.

물론 슈코는 아야메의 속에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할테지만 아야메는 순간 그녀 앞에서 모든걸 들킨 것 같은 착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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