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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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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5, 2015 18:25에 작성됨.

지금 이 순간들은 기억의 한 켠에 두다가 가끔 노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 조심스레 꺼내보는, 그 정도의 이야기가 되겠지. 도저히 예전과는 같다고 느껴지지 않는 다양한 색채의 감정이 차오름을 느끼는 나날 사이의 생각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한 듯한 세트지만 어떤 감정도 없는 카메라 건너에서 바라보고 있을 어떤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를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다 생각하면 불편할 뿐이었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슬슬 시간이 되었다. 시작사인이 나오고 친절한 투로 사회자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옆에서는 다른 팀원 둘이 즐겁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처럼 밝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노력하여 대답했다. 그리고 방송은 어느새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앞으로 활동방침은……일단 열심히..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마무라 우즈키는 갈색의 머리카락을 약간 흩날리며 환한 미소로 약간 과할 정도로 말했다. 열심히 도 좋지만 조금 과하다고 느껴진다. 이번이 벌써 몇 번의 열심히 인가.  어떤 질문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로 끝날 것 같다는 농담이 들려오던 게 실은 사실이 아닐까 의심이 가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우즈키는’

속으로 읊조리기 시작하자 켜져서는 안 될 사고회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닥으로 끌어내려진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듯하게, 흐릿하게 보이고, 들리는 건 그저 귀를 무의미하게 울리고, 예전처럼, 사실 내가 이래도 결국, 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제 때 제정신을 찾았다는 약간의 안도감과 훨씬 거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차가워 보일지도 모르는 태도로 답변을 마쳤다.

 

 

 

해가 저물어 있었다. 도로에는 차들이 달리고, 우리는 그 옆 인도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낙엽이 발치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져간다.  미오와 우즈키는 오늘 방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샌가 회사 옆 빵집의 빵이 그렇게 맛있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가 길어지자 내가 약간 심했다 싶을 정도의 단답만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둘은 계속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다지 필요 없게 느껴지는 사사로운 잡담을 들으며 불안감마저 스러지게 할 나른함을 느꼈다.

“가을, 이라고 써 붙여 놔도 될 것 같은 데? 지금이라면 조금 감상적이 될지도”

“에이, 설마요.”

“……시마무의 미소가 아픈데.”

이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데, 옆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표정의 둘에게 차마 발걸음을 재촉하자고 하지는 못할 듯 했다. 어느새 갈라져야 할 모퉁이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쉽게 헤어지진 못했다. 셋이서 전화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근처 카페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둘에게는 내가 대화에 건성이었다는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닭이 맛있나 멜론이 맛있나 같은 시시껄렁한 대화보다 수면을 귀히 여기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자기숙사에 유령을 보는 사람이 산다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티가 나는 괴담을 조마조마하며 듣는 우즈키는 얼마나 순진한 건가. 어느새 둘만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여기 왜 있을까. 오늘은 어떤 자세로 잘까. 여러 생각으로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나의 어깨에 능글거리는 미소를 띤 미오가 손을 올렸다.

“시부린은 좀 더 긴장을 풀어줘도 된다구? 아님 무슨 일 있었던가?”

 미오가 장난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눈길은 정말 진지했다.

“맞아요. 혹시 무슨 일이 있었다면”

우즈키는 약간 시선을 피한 채로 조심조심 물어봤다. 잠깐 말을 멈췄다. 손으로 컵을 계속 매만지다 멈추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꼭 말해주세요!”

둘이 동시에 쳐다봤다. 미오는 웃음기를 지우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걱정된다는 눈길. 얼버무리거나 농담으로 넘겨버리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티 날 정도로 이상했어?”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은 서로 잠시 쳐다보다 우즈키가 천천히 대답했다.

“이상하진 않았어요. 그냥 평소랑은 좀 달라서.”

그 정도면 다행이다. 하지만 둘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다행이네. 몸이 좀 무거워서 걱정했는데.”

가벼운 투로 말했다. 우즈키가 고개를 갸웃한다. 미오가 고개를 약간 들며 말했다.

“아픈 거랑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고?”

이런 식으로 이어져서는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의심에 찬 둘에게 말했다.

“문제를 숨기지는 않아. 오히려 과하게 대응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모두 한 순간에 납득해 버렸다. 약간 상처받을 정도로. 그래도 둘이 자신의 시야로만 봐서는 안 된다부터 시작해 다시 소소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좀 더 오래 듣고 있어도 좋을 듯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길을 나서 완전히 어둠에 싸여진 거리를 걸었다. 한 명씩 헤어져 갈 때 무언가 목에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거리엔 아무도 없다. 어느새 뜬 달이 약하게 거리를 비추고 그 탓에 듬성듬성 보이는 그림자가 일렁인다. 사람의 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들과 커튼처진 집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과 소음. 어둠에 녹아 들었던 괴한이 갑자기 나기에 좋을 정도의 풍경. 설령 나온다 할지라도 그나 나나 달라지는 것 따윈 없겠지.  

다시 숨이 메어온다. 가슴팍이 짓눌리는 것 같다. 무엇이든 게워내고 싶은 데. 들려오던 소음도 흐려지고. 휘청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담장에 기댄다. 쓰러지듯 앉아 숨을 고른다.  고개를 들어 쳐다본 앞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지금 멈춰버리면 정말로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풀려버린 다리에 힘을 주며 가까스로 집으로 걸어 간다.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건 좋아한다. 날씨도 싸늘해서 몇배로 행복해져 가고 있다.

“다음 사연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불행했”

계속 소리가 들린다. 침대에 늘어져서 나와는 관계없을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비우고 싶다. 최대한 상관없는 무언가를 하다 잠들어야

“그 동료를 만난 후에 바뀌었습니다. 사고도 나지 않”

 전부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예전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수 많은 사람을 접하고, 다른 사람들의 꿈을 알게 된 지금은 어떤가. 아이돌은 즐겁다. 무대도 동료들과의 대화도 그리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겪어 보지 못한 것들뿐이어서 여러 트러블들과 고생도 상관없을 정도로 즐겁다. 분명 그만둔 이후에는 추억으로 남으리라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흘러간 대화에서 들어버렸다.

“정말로 꿈이었으니까요. 분명, 나중에 기억하기만 해도 행복할 거에요.”

그 다음에 그러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였나. 피식 웃어버린 이후 허무감만이 입안을 맴돌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무언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 자신이 싫어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한 조각조차 없는 순수한 미소. 너무나도 눈부셨던 그 꿈에 나는 압도당했다. 나는 어떤가. 내게 아이돌이란 즐거운 일 이상이 될 수 있을까. 이 기억도 결국 빛 바래가고 결국 나는 그저 예전처럼 아무런 의미도 목표도 없이 허무하게 하루하루를 단순히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새 다시 공허함이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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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설탕을 토할 만큼 달달한 우즈린을 쓰려고 했는 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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