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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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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6, 2015 02:45에 작성됨.

 집으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오는데, 눈에 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허리까지 내려온 긴 생머리의 낯익은 소녀가 무슨 연유인지 한숨까지 쉬며 정문 앞에 서있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반소매 셔츠의 여름용 교복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조용한 걸음으로 그녀의 옆으로 접근하지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일까, 의문을 가졌을 때쯤 그녀가 인기척을 느낀 건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놀란 건지 늘 조용하던 그녀의 표정이 흔들린다. 하지만, 곧 다시금 그녀의 얼굴은 잔잔함을 되찾았다.
 “……프로듀서.”
 “아직 안 돌아가셨습니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저 밖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거센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장마철로 접어들자 잦아지기 시작한 우천이다.
 “우산이 없어서 말이야.”
 “그건, 곤란하시겠군요.”
 그걸 끝으로 잠시 오고가는 대화가 멈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런 고요가 찾아올 때가 이따금 있다.
 시원한 빗소리를 들고 있기를 얼마나 했을까, 문득 손에 들린 우산에 신경이 쏠렸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생각에 당혹하고 말았다.
 “응? 왜 그래, 프로듀서?”
 내면의 동요가 얼굴에 표출이 됐는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 숙이며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 얼버무리면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어렵사리 가진 생각을 꺼내놓았다.
 “우산, 같이 쓰지 않으시겠습니까?”
 “……뭐?”
 웬만해서 감정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 그녀가 놀란 목소리를 내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당황한 것 같았다.
 이야기를 꺼낸 스스로도 조금 부끄러워서 말로 다시 꺼내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우산을 그녀가 보게끔 들어올렸다.
 눈을 마주치기가 껄끄러워 곁눈질로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살짝 고개를 틀어 딴청을 부리듯 다른 곳을 쳐다보는 그녀의 옆얼굴에는 곤란함과 망설임이 고스란히 들어나고 있었다.
 “나 때문에 귀갓길 방해 받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안 그래도 그 근처에 가봐야 할 곳이 있거든요.”
 이윽고, 그녀가 체념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부탁 좀 할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띠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우산을 쓰고 돌아가는 길 내내 오고가는 대화는 없었다. 서로의 무뚝뚝한 성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확신컨데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상황이 낯 뜨거워 입 열기가 뭐해서 그러는데, 그녀는 과연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가 모르게 힐끔 그녀를 몇 번 바라보았는데, 평상시와 같은 차분한 얼굴이라서 이제는 혼자서 착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그녀와 있을 때면 오고가는 대화가 없는 편일 때도 종종 있지만, 왠지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담화가 없자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어떤 주제로 말을 꺼내야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 주제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프로듀서.”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럴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아서 깜짝 놀라 무심결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그녀의 안색을 보니, 그다지 좋은 표정은 아닌 것 같았다.
 “뭐, 뭐야? 왜 그렇게 바라보는 건데?”
 “먼저 말을 거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한 거야?”
 그런 표정을 지었는가 싶어서 살짝 고개를 돌린 채 뺨을 만져보았다.
 “죄송합니다.”
 “왜 사과를 하는 거야?”
 “제 행동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아니야. 살짝 투덜거릴 정도이긴 하지만, 사과를 받을 정도로 기분이 상하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옆에서 함께 걷던 그녀가 멈춰 선다. 한 걸음 정도 늦게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서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프로듀서는 즐거워?”
 “예?”
 “처음 만났을 때, 프로듀서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 지금 나는 즐거운지 말이야.”
 문뜩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아직 그녀의 이름도 모르고 있을 당시 그녀에게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있지. 실은, 프로듀서한테 그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뜨끔했어. 정곡을 찔렸다는 느낌이었거든.”
 “그랬습니까?”
 “조금 지루했어. 즐겁지 않다는 뜻은 아니야. 잘 말해보자면 뭔가 흥이 돋는 게 없다고 할까?”
 그녀가 멈췄던 던 걸음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뒤처지지 않게 얼른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조금 벌려졌던 거리가 줄어들고 다시 나란히 서서 걸어가게 되자 그녀가 끊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했던 프로듀서의 질문이 그런 내 마음을 지적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해버렸어.”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물음에 약속한 것처럼 함께 걸음이 멈춘다. 고개를 돌리자 막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와 눈이 맞닿았다.
 “지금, 당신은 즐거우신가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녀가 언급했던 물음을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던져보았다.
 그때처럼 당혹한 감정이 잠깐 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하지만, 곧 그랬던 감정은 사라지고 대신 잔잔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그려졌다.
 “즐거워. 나, 아이돌이 되길 잘했어.”
 “다행입니다.”
 왠지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것만 같다.

 

 저 멀리에서 익숙한 꽃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곳이 함께 우산을 쓰고 있는, 옆에 있는 그녀의 자택이었다.
 “거의 다 왔네. 바래다줘서 고마워, 프로듀서.”
 “아닙니다.”
 처음보다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까지의 길을 걸어갔다.
 “아, 그러고 보니, 듣지를 않았어.”
 “무엇을 말입니까?”
 “아까 내가 프로듀서한테 물어본 질문, 기억 나?”
 그 말을 듣자 함께 우산을 쓰고 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그녀가 물었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즐거워? 그녀의 물음이 머릿속에서 작게 울려 퍼졌다.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즐거운지 물어보셨죠?”
 “응, 맞아. 프로듀서는 어때? 지금, 즐거워?”
 “네, 즐겁습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갑자기 쿡쿡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옆에서 고개를 돌린 채 입을 가린 채 남 모르게 웃고 있었다.
 웃는 이유가 궁금해 그녀를 바라보는데, 마침 다시 이쪽으로 돌아본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변했네, 프로듀서.”
 “변했습니까, 제가?
 “많이는 아니지만,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많이 변했어.”
 스스로도 몰랐던 사실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자, 그걸 바로 받아드리는 것보다는 먼저 정말로 변했는지 알아보려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어느새 그녀의 자택에 도착했다. 생각한다고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앞에 만개한 꽃들이 가득하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옆에 있었던 그녀는 어느새 자리를 가게 안으로 옮긴 상태였다.
 “바래다줘서 고마워, 프로듀서.”
 조용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웬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풍부한 감수성은 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내민 꽃이 예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도라지라는 꽃이야. 예쁘지?”
 “네, 예쁘네요. 주시는 겁니까?”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고, 조심스레 꽃을 건네받았다.
 “도라지가 가진 여러 꽃말 중에 같이 힘내자는 꽃말이 있어.”
 “예?”

 

 

 

 

 

 “프로듀서, 이제부터 이어질 2nd season에도 잘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신데마스의 아이돌로 글을 써본 것은 처음이네요.

 P.S: 도라지에 꽃말은 저것 말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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