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희망의 블루』

댓글: 7 / 조회: 1323 / 추천: 8


관련링크


본문 - 07-13, 2015 19:29에 작성됨.

* 『절망의 블루』 와 이어집니다.

 

화면에 보이는 첫 단어를 본 순간 하루카는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휴대폰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려왔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유심히 화면을 살펴본다. 발신자의 번호는 너무나도 익숙했고, 그 위에 적힌 이름은 그리운 사람의 것이었다.

 

치하야쨩.

 

하루카는 서둘러 확인 버튼을 꾹 눌렀다. 화면에 검은 글자가 몇 줄 펼쳐졌다.

 

갑자기 몰래 이사한 것도, 전화를 받지 않은 것도, 그 동안 메일에 답장해주지 못한 것도 전부 전부 미안해. 괜찮다면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번 x일, $시, ##에서. 혹시 스케쥴 때문에 안된다면 다른 날을 알려줘. 아무 때나 괜찮으니까.

 

하루카는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를 손으로 가렸다. 그렇지만 눈가에 흐르는 눈물은 막지 못했다. 눈물 줄기가 뺨을 타고 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기다리던 답장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얼굴을 볼 기회까지 얻은 셈이었다.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던 하루카는 곧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눈물 방울이 떨어진 액정에는 곧 다음과 같은 문자들이 나타났다.

 

정말로 고마워 치하야쨩.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곳으로 갈 테니까, 기다려줘!

 

송신 버튼을 꾹 누르고, 메일이 정상적으로 간 것까지 꼼꼼히 확인한 하루카는 주먹을 꼬옥 쥐었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야......정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입가는 붉게 달아오른 눈과는 대조적이었다.

 

....

 

x일이 되었다. 하루카는 약속했던 장소에, 시간은 훨씬 일찍 도착하고 말았다.

 

원래 있던 스케쥴도 전부 취소하고 집에서 일어나고 준비하자 곧장 이 곳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있는 곳, ##는 손님도 별로 없는 아주 조용한 카페였다. 종업원에게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있는 하루카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과연 약속했던 대로 그녀가 오는 걸까,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불러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불안감과 기대감이 하루카의 머리 속에서 마구 뒤엉키고 있었다. 창가와 휴대폰, 시계를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안절부절하고 있는 하루카한테, 종업원이 홍차와 간단한 다과를 건냈다.

 

"여기 주문하신 홍차 나왔습니다."

 

"아, 네....."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그 때문에 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하루카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약속한 시간까지 20분은 남았다. 지금도 미친듯이 떨리는데 어떻게 20분을 더 기다릴까, 이 쪽으로 잘 오고 있는지 메일이라도 보내서 확인해볼까 생각하던 하루카는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

 

순간 하루카의 숨이 멎었다. 그녀의 눈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헤메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지만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치, 하야쨩......!"

 

전에 생각해두었던 인삿말은 다 잊어버린 체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루카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키사라기 치하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루카가 있는 곳으로 돌아보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치하야는 전보다 조금 더 말랐다. 그리고 피곤해보였다. 하지만 그 때처럼 마음의 구멍이 뻥 뚫린, 위태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하루카는 순간 치하야가 예전처럼 같이 활동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 루카....."

 

그렇지만 그것은 낮게 그르륵거리는 탁한 목소리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다. 역시.....하루카는 쓸데없는 착각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치하야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오랜만이야......"

 

하루카가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치하야는 순순히 그 지시에 따라 하루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시간 괜찮아?"

 

치하야는 자리에 앉으면서 이렇게 말을 건냈다.

 

"괜찮아! 오늘은 오프니까. 시간이야 아주 충분해."

 

하루카는 거짓말을 했다.

 

종업원이 조용히 자리로 다가왔다. 치하야는 말 없이 메뉴판에 적힌 여러 음료 중 카페라떼라고 적힌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었다. 손가락 끝마다 굳은 살이 박혀있었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떠나고나서야 치하야는 겨우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루카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이 가득이었는데, 정작 하나도 꺼낼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자리는 조용했다. 하루카는 이렇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빨리 뭐라도 말해야하는데.

 

"저, 저기....."

 

조급한 마음으로 겨우 하루카가 입을 뗐다. 치하야는 그런 하루카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일단 말을 시작했지만 대체 뭘 더 말할까 고민하던 하루카는 겨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어, 어떻게 지냈어.....?"

 

혹시 말을 잘못 꺼내지 않았나 불안해하는 하루카에게 치하야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은 후속 치료를 하느라 힘들었어. 혹시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더라."

 

"그, 그랬구나......"

 

하루카가 조심스럽게 치하야의 표정을 살폈다.

 

"그래도 다행히 조금은 나아진 것 같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치하야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혹시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았나 하루카는 전전긍긍했다.

 

"치, 치하....."

 

"하루카"

 

재빨리 다른 화제로 돌리기 위해 치하야의 이름을 부르려던 그녀였지만, 정작 본인의 이름에 의해 막혀버렸다.

 

"하루카도 이미 알겠지만.....나, 역시 아이돌로 복귀할 수 없어."

 

그랬다. 이런 목소리로는 노래 부를 수 없고, 노래 부를 수 없는 아이돌은.....없으니까. 하루카는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를 부른 거구나. 가슴이 괴로워져 당장이라도 울고 싶어졌지만 이를 악물었다. 본인은 더 괴로울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담담한 태도를 하고 있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응.....알았어. 모두에게 전해주도록 할게."

 

가장 친한 친구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이 걸어갈 수 없다. 그 사실이 하루카를 괴롭게 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치하야가 살아있다. 살아서 답장을 주고, 이렇게 얼굴을 보인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텐데,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런 소리를 들어버리니 안타까움과 아쉬움만 남는다.

 

"아니, 괜찮아."

 

"응?"

 

예상외의 대답에 하루카는 움찔했다. 치하야는 뭔가 더 말하려다 목을 한 두번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게끔 살며시 두고 떠난, 차갑게 식어가는 카페라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대신에 들고 온 가방에서 작은 생수병을 꺼냈다.

 

그 때 그 문제의 것과 지나치게 닮아있었다.

 

하루카는 순간 치하야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치하야는 자연스럽게 페트병의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물을 들이킨 것이다. 아니, 자연스럽게는 아니었다. 그녀의 손은 작게 떨려있었다.

 

"괘, 괜찮아....?"

 

"응. 계속 연습해왔는 걸"

 

그것은 계속 그 때의 기억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목을 축인 치하야는 쓰게 웃으며 하려던 말을 꺼냈다.

 

"저기 있지, 처음에 난 괴로웠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고,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는 게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어. 그렇게 말하며 슬픈 얼굴을 하는 치하야. 하루카는 우선 묵묵히 들어주기로 했다.

 

"노래가 내 전부였으니까, 그 전부를 잃어버렸으니까 이제 나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 그래서.....이사를 하고 모든 연락을 끊어버린거야."

 

치하야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치하야쨩. 그렇지 않아!"

 

하루카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한 체 외쳤다. 치하야는 그런 하루카를 바라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았어."

 

"치하야쨩......"

 

"이제서야 깨달은거야. 노래는 무척이나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내 모든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하다 목에 무리가 갔는 지 잠깐 콜록이던 치하야는, 잠깐 숨을 가라앉힌 뒤 이렇게 말했다.

 

"노래가 없어도 나는 사라진 게 아니고-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겨우 알게 되었어."

 

네가, 모두가 계속해서 메일을 보내줘서, 나를 계속 생각해준 덕분이야, 라고 말하며 치하야는 싱긋 웃었다. 하루카는 그런 치하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응! 모두가 치하야쨩을 기다리고 있어!"

 

"고마워."

 

치하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손을 스륵, 부드럽게 빼냈다. 그러고는 가방 속에서 종이를 몇 장 꺼내 하루카에게 보였다. 종이에는 손으로 그린 듯한 5개의 줄과, 여러 음표들이 적혀있었다.

 

"이건.....?"

 

"그리고 말이지, 또 하나 깨달은 게 있어. 내게 노래가 사라진 건 아니었던 거야."

 

하루카의 눈이 악보 맨 위에 있는 글자를 포착했다.

 

"희망의.....블루.....?"

 

"응. 내가 처음으로 '만든' 노래야."

 

치하야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하루카는 악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실제 들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 동안 자신이 불러왔던 노래들만큼,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엄청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돌은 더 이상 할 수 없어. 그렇지만 그렇다고 모두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어. 노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치하야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루카는 물기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잘 생각했어......잘 했어 치하야쨩......정말로......"

 

하루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치하야에게 향했다. 그러고는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따듯한 온기에 치하야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

 

야요이는 일찍 사무소로 향했다. 간만에 청소를 해두자,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문을 열고, 주변을 살핀다.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고, 이리저리 꽂혀있는 서류철들이 무너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를 빨아 창가와 책상을 닦는다. 깨끗한 사무실을 보면 기분이 좋다, 라는 이유로 스스로 자처해서 하고 있는 일.

 

평소 집안일에 익숙하기도 하고 또 이 곳 청소도 지속적으로 해왔던 만큼 청소는 빠르게 끝났다. 깔끔해진 사무소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잠깐 쉬고 있던 야요이. 그런 그녀의 귓가에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누굴까, 혹시 코토리씨인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야요이.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문 틈새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 바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언젠가 꾼 꿈이 떠올랐다. 그 때와 똑같은 상황. 야요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웃었다. 이것도 그 때와 똑같았다. 아아, 꿈인가.

 

"타카츠키씨."

 

이번만큼은 꿈과 똑같지 않았다.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목소리 대신, 그르릉거리는 갈라진 소리. 그렇지만 야요이는 기뻤다. 지금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야요이는 환하게 웃었다.

 

"어서오세요!"

 

치하야는 완전히 문을 열고 사무소 안으로 발을 옮겼다. 야요이는 그런 그녀에게 종종 달려가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등허리에 팔을 감았다. 치하야는 조용히 손을 들어 야요이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주었다.

 

두 사람은 결코 울지 않았다.

 

------------------

우울한 블루, 그러나 희망의 블루

 

구상을 여기까지 했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조금은 꼼지락거린다는 느낌으로.......

는 오글오글했다고 합니다 내려주세요

8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