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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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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5, 2015 16:13에 작성됨.

언제나 지하철은 질색이었다. 지하철이 그래도 이동하는 데에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기는 했지만 사람이 많아서 항상 곤란했다. 이리저리 치이는 것도 싫었고 한참 동안이나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앉거나 서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곤욕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시대가 발전해서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발명된 덕으로 시간을 때울 수는 있었으만 넘쳐나는 사람들이 뒤에서 내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남들이 보면 곤란한 걸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보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잇살이나 먹고 아이돌 팬을 하고 있다고 하면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삼촌팬이니 하는 말까지 생겼고 남자로써 화사한 꽃같은 여자 아이돌들을 좋아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왠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건 꺼려지곤 했다.

다행히 오늘은 그런 상황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하철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터덜터덜 역에서 나오자 바깥 공기가 온몸에 들어오는 게 기분이 좋았다. 사람은 역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살아야 한다니까.

"오셨네요!"

역의 출구를 나오자 한 여자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여저는 여섯 명 정도 되는 모임의 리더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호시 씨."

여자의 이름은 호시노 나나미였다.

"그렇네요. 야마다 씨랑은 매번 엇갈리고 말이죠."
"뭐, 날이 날이니만큼 오늘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네요."

나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동의의 웃음소리를 냈다.

나까지 포함해서 여자 셋에 남자 넷이 되는 이 그룹은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의 팬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의 팬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 계속 인연이 이어져 그룹을 이루게 되었는데 자세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765 프로덕션의 팬이라면 차고 넘쳤고 서로 같은 아이돌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어느새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자주 뭉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그룹 안에서는 현실의 자신을 당당히 밝히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신상을 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다른 건 다 밝혔지만 이름만은 아니었다. 야마다라는 건 본명이 아니었다. 호시 씨 같은 경우에는 '스텔라'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성이 호시노라는게 밝혀져버려서 그 이후로 그냥 본명을 알려주었다. 호시노의 '호시'때문에 '스텔라'라는 걸 들켜서 본인은 제법 부끄러워했지만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호시 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럼 갈까요?"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일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뭉쳐서 길을 걸으니 제법 무게감이 있었다.

오늘은 765 프로덕션의 10주년 라이브가 열리는 날이었다. 보통의 가수들도 10주년이면 대단한 일인데 아이돌 업계에서 10주년이라는 건 상상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이를 먹어도 아이돌 활동을 하는 데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10년은 강산도 변하게 한다고 했던가. 하루, 한 달, 일 년을 매일같이 볼 때는 모르겠지만 몇 년 단위로 생각해보면 아디돌들의 모습도 부쩍 성장해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아미와 마미조차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었다.

그 사이 달라진 점도 많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건 346 프로덕션일 것이다. 이미 대형 프로덕션이었던 346 프로덕션은 몇 년 전부터 아이돌 업계에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765 프로덕션과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복잡한 관계였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자매 같은 관계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도 예전처럼 아이돌로서 활발히 활동하기보다는 개인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새로 나타난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은 기존의 팬들의 마음을 가져가기에는 충분했다. 그것도 아예 다른 쪽의 아이도도 아니었고 자매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으니 마음을 돌리는 데에 죄책감도 덜했다. 어디까지나 765 프로의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346 프로의 아이돌들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346 프로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전히 765 프로 일직선인 사람도 있었다. 다들 개인의 취향이 있었고 관대하다면 관대하지만 민감하다면 민감한 모습인 채로 계속되었다.

나는 병행 파라고 할 수 있었다.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을 좋아할 때도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이 치하야에서 미키로, 미키에서 타카네로 변했던 나는 지금은 타카가키 카에데와 사기사와 후미카를 밀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호시 씨는 미키 일직선이다. 이름부터 운명이라나 뭐라나.

"다들 어떻게 지내셨어요?"
"항상 그저 그렇죠. 일에 치여 살고."

나의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한 건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우리는 그를 타카 씨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 점에서는 다 똑같죠. 그런 거 말고요."
"최근에 사치코의 사인회에 가서 특별한 선물을 받은 정도일까요?"

특별한 선물이라는 말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사치코가 사용하던 리본!"

타카 씨의 손에는 어느새 정말로 리본이 들려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인회 날과 타카 씨의 생일 날이 겹쳤는데 사치코에게 그 말을 하니 선물로 줬다고 한다. 처음에는 곤란한 표정이었다는데 '정말 귀여운 사치코의 선물을 받고 싶어!'라고 했더니 '어쩔 수 없네요!'라면서 줬다고 한다. 알기 쉬운 이야기다. 어지간한 사람이었으면 경호원의 제지를 받고 끌려 나갔을 수도 있었지만 매일같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눈도장을 찍어 놓은 타카씨니까 가능했겠지.

"그러고 보니 요전번의 치하야 씨의 콘서트, 대단했었죠."

하제를 돌린 건 아야네라는 여학생이었다. 우리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멤버였다. 예전부터 계속되어 온 모음에 어린 학생이 끼기에는 어렵기도 하고 부담스러웠기도 했겠지만 아야네는 우리 족에서 먼저 다가간 케이스였다. 인터넷에 치하야의 곡을 커버해서 올려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우연히 발견하고 우리 쪽에서 먼저 말을 건넸다

"아야네도 갔었어?"
"당연하죠."
"역시 그렇겠지? 치하야는 나이를 먹어도 변함이 없다니까."

키사라기 치하야는 솔로 활동을 계속해서 아이돌보다는 가수라는 칭호가 더 어울리게 되었다. 가끔 토크쇼같은 방송에는 출현하곤 했지만 그 외에는 음악방송을 제외하고는 보기 힘들었고 방송에 나와도 아이돌스러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765 프로덕션이 모두 모이는 날만큼은 반드시 참여했고 예전처럼 춤을 추고 노래했다.

그 후로도 다들 삼삼오오 모여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 옆에는 미야비라는 여자가 나란히 걸었다. 이 모임에서도 나와 가장 마음이 맞는 사람이었다. 미야비도 쿨한 아이돌을 좋아했고 시부야 린을 가장 좋아했다.

"역시 린은 후미카한테 안된다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슬쩍 장난스럽게 도발을 걸자 역시나 걸려들었다. 항상 같은 패턴인데도 변함이 없다.

"생각을 해 봐. 린보다 후미카가 더 쿨하지, 키도 더 크지, 몸매도 쓰리사이즈 전부 더 좋지, 노래도 더 잘하지, 학력도 더 좋지. 모든 면에서 후미카는 린보다 낫다니까."
"또 헛소리 하네. 시부린이 어디가 어때서!"

사실 린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다만 후미카를 밀고 있는 나에게 린은 너무 큰 벽으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약간의 질투에서 오는 장난이었다.

"후미카가 조금만 더 인지도를 쌓으면 린을 넘어서는 건 금방이라니까."
"그 말만 얼마나 더 할 건데? 총선 순위가 증명해주잖아?"

미야비가 이렇게 나오면 항살 할 말이 없어진다. 하지만 괜찮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리고 나한텐 카에데 씨가 있으니까.

-

공연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국민 아이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 765 프로덕션의 10주년 라이브라고 하니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돔의 수용 인원이 5만 명이 넘는데도 경쟁률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 모두가 765 프로덕션의 팬이었기 때문에 공연이 시작하기 한참 전인 지금도 어림잡아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들은 인파 사이를 헤치고 움직였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마음은 하나같았다.

"일단은 사이리움이지?"

다들 이미 가방을 하나씩 메고 있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사이리움들이 들어있었지만 10주년 기념 굿즈는 또 다르다. 만반의 준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들 라이브 이벤트에 한 두 번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철저했다. 사이리움부터 수건, 물같은 것까지 빠지는 것이 없었다.

"역시 후드도 사야겠죠?"

날은 아직 무더웠지만 의류 굿즈라면 점퍼 아니면 후드로 정해져 있었다. 가장 무난하고 폭넓게 입을 수 있어서였다. 그런 면에서는 티셔츠도 있었지만 훼손되기도 쉽고 후드 쪽이 조금 더 무게감이 있어서 인기가 더 많았다.

평소의 굿즈들 말고도 10주년 기념 굿즈가 잔뜩 있었다. 척박한 삶에 있어서 유일한 취미생활이었기에 돈을 쓰는 건 아깝지 않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걸 전부 다 사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분류작업을 하고 있는데 왠지 당당한 표정의 사람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역시 켄지 씨는 급이 다르네요."

켄지 씨는 사업가였다. 사업가 치고도 돈이 굉장히 많았다. 이미 몇 개의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취미 반 일 반으로 아이돌 카페 따위를 만들 정도였다. 한 번 가봤던 적이 있는데 사방에 여러 아이돌의 굿즈가 전시되어 있었고 점원들도 무척이나 예쁜 사람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있을 때 사지 않으면 후회하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일이기도 하구요."

예의 카페 이야기였다. 복잡미묘한 기분이었지만 역시 부러웠다.

"...그거 전부 사면 얼마정도 드나요?"

내 물음에 켄지 씨는 조용히 내 귓가에 금액을 말해주었다. 순간 턱이 빠지는 줄로만 알았다. 나도 한 번 미키의 브로마이드를 하나만 사 달라고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존심도 있고 너무 염치없는 짓이라 그만 두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

공연장은 무척이나 더웠다. 날씨 자체가 더운 것도 있었지만 밀폐된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기에 찜통 수준이었다. 워낙 많은 인원이 몰렸기 때문에 한 시간 반 전부터 입장해서 기다려야 했고 이제 겨우 공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조용했던 공연장 안에는 자연스럽게 노래가 흐르고 몇몇 사람들은 그걸 따라 부르고 있었다.

우리들의 자리는 맨 앞줄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기적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엄청난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엇다. 10주년 라이브의 첫날 공연 맨 앞 줄 자리 티켓을 얻는 데에는 돈도 돈이었지만 시간과 온갖 노력이 필요했다.

모임의 다른 멤버들도 10주년 라이브는 반드시 볼 테지만 몇몇은 시간이 되지 않아 첫날을 포기했고 몇몇은 아무리 첫날, 쇼니치 공연이라도 맨 앞줄이 아닌 이상 돈을 아끼고 다음 번의 공연을 기약하기로 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우리들 중에서도 몇 번이나 같은 10주년 라이브를 또 보러 올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몇 번을 볼까 고민하는 처지였지만 이번에 쓴 돈이 너무 많아서 한 번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쇼니치 맨 앞줄이라는 건 그 정도의 의미와 만족감이 있었다. 뭐, 언제 또 마음이 바꾸어서 무리를 해서라도 또 보러 올지도 모르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공연장의 불이 꺼졌다. 오오 하는 함성 소리가 돔 안을 뒤흔들었다. 위험 상황이나 대피 경로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미 모두 알고 있었지만 사무원인 코토리 씨의 목소리였다. 안내방송일 뿐인데 '코토리 씨!' 하는 함성이 군데군데에서 나왔다.

그제서야 어떤 실감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기대와 기세로 달려왔다면 공연이 시작되려는 지금 이 순간에는 10년 동안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했다. 처음에는 아이돌 같은 걸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곤 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방송을 찾아보고 라이브에 직접 가보게 되고, 그렇게 시작해서 어느새 이 자리까지 와 있었다.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것들을 빼놓고선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면 765 프로덕션, 10th Anniversary Live! 사작합니다!"

모든 망설임과 미련을 끊어버리는 것처럼 공연 시작을 알리는 코토리 씨의 목소리가 울리자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약속된 콜처럼 함성이 터져 나왔다.

"축하해요!"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크게 마음을 담아 외쳤다. 내려진 막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들에게도 들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그 노래, THE IDOLM@STER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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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문에 중복 응모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고민해서 '축하'의 의미를 어떻게 다르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세 편을 썼습니다만 글 부문에서 두 편 이상을 쓴게 혼자 뿐이더라구요. ...뭔가 미묘한 기분?

세 번째는 그래서 팬의 입장에서 써 봤습니다. 실제로 본심을 담은 것도 몇 가지 있고..

중간의 내용은 역시 전부 농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농담이에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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