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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0일과 100일과, 1000일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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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4, 2015 22:14에 작성됨.

워드로 41페이지라는 분량이 되어 버려서, 이건 너무 길구나 싶어서 잘라서 올립니다.

혹시 잘라서 올린 점에 문제가 있거나 하다면, 말씀해주시면 수정해서 한 편으로 올리겠습니다.

이벤트 글이라 한 편에 다 해야 할 거 같은데 제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제일 긴 작품이 나올 줄이야(...)

재밌게 봐주세요, 그럼!

 


 

 

#1.

온갖 사람이 다 모이는 신쥬쿠라고 하지만, 흡연 구역은 보통 남자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특히 회사들이 주로 밀집해 있는 공간일수록 점심시간 같은 특정한 시간에는 동업자들이 많이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요는, 흡연자중에 여자의 비율도 늘고 동시에 흡연자들은 점점 줄고 있는 시대라고는 해도, 흡연 구역이야말로 직장을 다니는 남자들이 담배를 태우며 많은 잡담을 나누고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이라는 소리다.

  그렇기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부탁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장발, 담백하다 못해 밋밋한 패션, 심각한 표정의 소녀. 그 소녀는, 신쥬쿠에 있는 흡연 구역 중에서도 방송 PD들이 많이 모이는 흡연 구역,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 구역에서 소녀는 필사적으로 PD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막무가내래도”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누가 봐도 어수룩해보이는, 이제 사회 초년생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소녀의 부탁에 쩔쩔매고 있었다.

 

“그 말이지, 가수라는 건 이렇게 갑자기 부탁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깐”

“노래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한 번만 들어주신다면…”

“그러니깐 실력은 둘째치더라도, 허 참…”

“뭔 일이야?”

“아, 선배!”

 

  쩔쩔 매는 남자가 불쌍했는지, 한 남자가 대화에 끼어든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리고 웃옷을 짧은 망토처럼 걸치고 있는 폴로셔츠 차림, 척 봐도 나는 프로듀서라는 패션을 하고 있는 남자다. 쩔쩔매고 있던 남자와는 달리 꽤나 경험이 있는 남자인 듯, 나이도 여유도 있어 보인다. 소녀 또한 이를 알아차리고, 타겟을 끼어든 남자로 바꾼다.

 

“저기, 제 이름은…”

“응응, 이름은 됐고”

 

  소녀의 말을 선글라스 남자는 바로 끊는다. 손사래치는 동작처럼 아주 가볍게.

 

“사실 옆에서 조금 듣긴 들었어, 그, 가수가 하고 싶은 모양이네 아가씨?”

“네, 한 번…”

“응, 미안한데 어쩌지 아가씨, 이 업계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돌아가는 업계는 아니라서 말이야, 옆에 아저씨가 말했듯 갑자기 부탁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한 번만 들어주신다면, 노래 실력에는 자신이”

“그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걸?”

 

  노래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소녀의 어필마저 남자는 가볍게 끊는다. 그 말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어필하던 소녀의 말문이 처음으로 막힌다.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겠지, 그렇게까지 어필을 하고 있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지. 하지만 이런 아이일수록 확실히 끊어야 더는 귀찮게 굴지 않는단 말이지. 남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고, 머리 위에 올린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리며, 소녀의 기를 확실히 끊기 위해 말을 잇는다.

 

“아가씨는 자신의 실력이 자신이 있다고는 했지만, 얼마나 실력이 있을려나? 방송에 나오는 가수들만큼? 아니면 지금도 저기 길에서 공연 뛰고 있는 저 얘들 정도? 어쩌면 학교에서 제일 잘 부른다거나 그래 혹시?”

“그건”

“평가 받아본 적도 없지, 아마? 나 말야, 여기서 제법 일해서 아가씨 같은 사람들 많이 봤어. 무작정 쳐들어와서 노래를 들어달라는 둥, 데뷔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둥. 그래 알아,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가수가 되고 싶은 절박한 심정 때문에 무작정 움직인 거겠지. 어쩌다가 여기 오면 PD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는, PD들에게 직접 부탁하면 가수로 데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순간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반짝인 거겠지”

“…….”

“그래도 말야, 솔직히 말하면 아가씨 정도로 노래하는 얘들은 널렸어, 안 들어봐도 알아”

 

  그 말에 소녀는 울컥했지만, 울컥한 나머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다. 남자는 소녀의 반응 따위는 무시하고 말을 잇는다.

 

“너무 많아, 아가씨 같은 사람들은. 그리고 아가씨가 정말 노래를 잘했으면, 아가씨가 가만히 있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가씨를 찾아갔을 거야”

“그런”

“그런데도 안 찾아갔다는 건, 아가씨 실력이 아직 모자라다는 뜻이기도 한 거야”

 

  조금은 폭력적인 단언. 소녀는 그 갑작스런 한 마디에 맞은 뺨을 어찌할 줄 몰라, 계속 응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그 말 한 마디면 되는데, 경험을 등에 엎고 순간적으로 단언한 남자의 기습에 순간 멍해진 것이다. 평소의 소녀라면 제법 빠르게 응대했을 터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탁하고 거절 받으면서 지친 마음, 흡연구역에 계속 있으면서 느껴지는 목의 불편함 등은 소녀의 반응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남자의 단언은, 소녀의 정신력을 마무리 지은 셈이었다. 바로 답변하지 못한 소녀는, 잠시 우물쭈물 거린다.

 

“그러니 뭐 저기 길에서 부르는 애들처럼 길에서 부르기라도 해 봐, 그렇게 경험도 좀 쌓고 평가도 받아봐야 괜찮겠지. 난 조언 다 해줬다?”

“…….”

 

  졌다. 자신의 이 필사적인 어필은 이 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소녀는, 최소한의 예의로 인사를 하고 그 장소를 떠나고자 했다.

 

“…알겠ㅅ”

“아!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하지만 그 소녀의 인사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하며 떠나간 남자에게는 닿지도 않았다. 소녀를 가볍게 무시한 남자는 선배님이라고 부른,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가고 중년의 남자는 바로 아는 체를 한다.

 

“아, 오랜만일세!”

“정말 오랜만입니다, 회사 나가시고 이거 얼마만이십니까?”

“그러게 말일세, 하하핫!”

“요즘 뭐 하십니까? 나가시고 걱정 많이 했는데 연락도 잘 안되시고 말입니다”

“하하, 사무실을 차리느라 좀 바빴다네”

“오, 사무실! 역시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하하핫! 칭찬이 많구만 그래! …그나저나, 말일세”

 

  두 남자는 바로 안부를 묻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가운 기색만이 가득한 선글라스의 남자와 달리, 중년의 남성은 신경 쓰이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중년의 남성은 소녀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묻는다. 저 아이는…?

 

“아아, 별 거 아닙니다”

“별 거 아니라니”

“그 있지 않습니까, 종종 무작정 찾아와서 노래 들어달라고, 가수 데뷔시켜달라고 징징거리는 얘들 말입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은 계속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소녀에게 다가간다. 선글라스의 남성에게 가볍게 모욕당한 소녀는, 분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냥 나가면 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나가면 그대로 패배한 셈이라는 생각이 소녀가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을 뿐이기에, 소녀는 그저 잠시 모욕을 참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자네, 잠시 괜찮을까?”

“?”

 

  그런 소녀에게 말을 건 중년의 남성은, 우선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소녀에게 건낸다. 순간 소녀는, 아직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잠시 당황하면서도 명함을 무심코 받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네만…”

“아, 네… 다카키, 쥰이치로…씨?”

“방금 들었다만, 노래하고 싶다고, 데뷔하고 싶다고 하는 것 같은데 맞는가?”

 

  소녀에게 말을 걸면서, 중년의 눈은 소녀를 계속 탐색한다. 아직 자신의 눈이 녹슬지 않았다면, 이 소녀는 꽤 괜찮은 소재인 것 같다는 직감이 중년이 소녀를 계속 살펴보게 한다.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가! 잘 됐군 잘 되었어! 우리 회사는 그대와 같은 인재를 찾고 있었다네!”

“네, 네?”

“혹시 괜찮다면 나와 잠시 얘기하지 않겠나? 일단 이런 흡연 구역은 자네에게 좋지 않을 것 같으니, 잠깐 나가서 어디 찻집에서라도 얘기하지, 어떤가?”

“아, 그게…”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지만, 이런 장소가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말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줄곧 거절당하다가 들어온 기회다. 곧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중년의 남자와 흡연 구역 밖으로 나갔다. 그런 소녀와 중년을 보면서, 선글라스의 남자는 중얼거렸다. 하, 선배는 여전히 직감파로구만.

 

 

 

#2.

“오오, 오토나시군 있었나!”

“아, 사장님”

 

중년, 아니 사장은 기쁜 기색을 마음껏 풍기면서 작은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사장을 한 사무원이 맞이한다.

 

“안색이 좋으시네요,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아아, 그렇다네, 새로운 인재를 찾았다네!”

“아, 그렇다면 혹시?”

“그래, 새로운 아이돌 후보생이라네! 내 소개하도록 하지, 들어오게!”

 

  사장이 말하자, 사장의 뒤에서 소녀가 사무실을 살펴보면서 들어온다. 장발, 밋밋한 패션, 조금 딱딱한 표정. 사무실에 들어온 소녀는 사무실 안을 둘러보다가 사장에게 묻는다.

 

“저기, 여기 있는 분들이 전부이신 건가요?”

“음, 아쉽지만 그렇다네, 가 아니라 자네 말고도 물론 다른 아이돌 후보생이 있다만 아직 안 온 모양이군”

“…….”

 

  소녀의 표정은 상당히 못미덥다는 표정이다. 이렇게 작은 사무소, 보이지 않는 후보생. 아이돌 사무소로는 보이지 않겠지, 사무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녀의 태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다시 사무소의 문이 열렸다.

 

“다녀왔습니다~ 어머, 사장님?”

 

  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온 또 다른 장발의, 하지만 소녀보다는 확실히 나이가 들어보이는, 여자가 사장과 소녀를 보고 놀란다.

 

“오오,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로군! 소개하겠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이돌 후보생이라네!”

“어머, 드디어 두 번째가 들어온 거로군요”

 

  나이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양손을 맞붙이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여성. 그런 여성을 보면서, 소녀는 일단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765프로에서 아이돌 후보로 일하게 된 키사라기 치하야입니다”

“아, 나는 한 달 전부터 여기서 아이돌 후보로 일하고 있던 미우라 아즈사라고 한단다. 그, 치하야쨩이라고 했지? 잘 부탁해”

 

  제법 딱딱한 소녀의 소개와, 이에 상반되게 살가운 여자의 소개. 그 광경을 본 사장은 기쁜 듯이 말한다.

 

“미우라군, 키사라기군은 아직 모르는 게 있을테니, 잘 가르쳐주길 바라네!”

“네, 물론이죠, 첫 동료인걸요 후훗”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람좋게 웃으며 처음부터 소녀에게 친하게 대하는 여자를 보면서, 소녀는 약간의 불안을 느낀다. 치하야쨩? 처음부터 너무 살가운 것 아닐까? 아니,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노래, 그 외에는 신경쓰지 말자. 그래서, 그 목적 하나 만을 위해서 아이돌 같은 것도 지망하게 되었으니깐. 그렇게, 나름 다시 의지를 세우는 소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좋은 여자는 그저 방긋 웃을 뿐이었다.

 

 

 

#3.

  키사라기 치하야와 미우라 아즈사가 처음 만난 지 십여 일이 지났지만, 그 둘의 접점은 별로 없었다. 첫 날 같이 보컬 레슨을 받으러 간 날을 제외하고, 키사라기 치하야가 혼자 연습하는 것을 고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수를 지망했지만 당장 데뷔할 수 없어서 차선책으로 아이돌 후보생을 선택한 키사라기 치하야에게, 아이돌 특유의 노래를 연습하는 레슨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이런 노래는 대체 뭐야, 첫 레슨 날 바로 그런 생각에 강하게 레슨을 거부한 치하야는 다음 날부터 근처 강변에 나가 혼자 발성 연습 등을 하기 시작했다. 같이 연습을 해보기도 전에 레슨에서 빠져나간 치하야에 대해 아즈사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녀의 의지가 강해 보였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에 대해 사장은, 스스로 하고 싶은 방법을 존중한다며 그녀의 선택에 아무런 제지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장의 선택은 오히려 그녀를 조금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이돌 사무소라는 건 정말 이런 것일까? 혼자하는 보컬 트레이닝은 원래 매일 하던 거다. 이대로 평상시에도 했던 걸 계속 반복하고 있어도 괜찮은가? 나는 좀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서 이런 사무소라도 들어온 것 아닌가? 여러 가지 고민은 키사라기 치하야를 계속 불안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우라 아즈사는 그녀를 볼 때마다 계속해서 친한 척 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변에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출근이나 퇴근 시간 즈음에는(물론 시간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무소에 돌아와 인사를 하는 치하야에게, 아즈사는 오늘은 어땠는지 연습은 어땠는지 계속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치하야에게 그런 안부는 오히려 귀찮을 뿐이었다. 치하야는 아즈사의 인사에 항상 건성으로 대답하고, 빠르게 사무소를 나섰다. 아니, 치하야는 아즈사의 인사가 귀찮을 뿐 아니라 아즈사에 대한 의심도 생기고 있었다. 항상 사무소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대로 연습하는 사람 같지는 않단 말이지. 이런 생각은 정말 이런 사무소로 괜찮을까, 라는 치하야의 회의감을 강하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십 일이 지났다. 언제나처럼 치하야가 퇴근하기 전에 사무소에 돌아왔을 때였다. 사무적으로 오토나시 코토리와 미우라 아즈사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가려는 치하야를 아즈사가 불렀다.

 

“저기 치하야쨩? 혹시 오늘 무슨 약속 같은 것, 있니?”

“아니오, 아무 약속도 없습니다만”

 

  여전히 사람 좋게 웃는 아즈사에게, 치하야는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딱딱한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즈사는 말을 잇는다.

 

“그래? 그럼 같이 저녁이라도, 어때?”

“저녁, 말씀이신가요…”

 

  말 끝을 흐리며, 하지만 여전히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치하야. 하지만 그런 치하야의 표정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웃으며 치하야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즈사. 보통 저런 표정에 저런 반응이면 제시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뻘쭘할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 이 셋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흐른다.

 

“저기, 저는 그냥”

“그러지 말고, 내가 사줄 테니, 응?”

 

  치하야에게 이 제안은 내키지 않는 제안이다. 그녀에게는 식사 초대에 응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식사 초대를 거절할 이유 또한 없다. 사실 거절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약속이 있다는 식으로 변명거리를 내세워야 했다. 하지만 그런 형편 좋은 처세술을 치하야는 익히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이 제안을 수락하든 거절하든 치하야에게는 필요하다, 응할 이유 아니면 거절할 이유가. 잠시 생각하는 치하야를, 아즈사는 기다린다. 나라면 이렇게까지 거절하면 더 못 밀어붙일 텐데, 하고 코토리가 생각하는 사이에 치하야가 대답한다.

 

“네, 그럼 잠시 정도라면…”

“응, 그럼 결정이네! 가볼까, 후훗… 아, 오토나시씨도 같이 어떠세요?”

“아, 저는 오늘 약속이…”

“아 맞다 저녁에 친구랑 약속이 있으셨죠! 아쉽네요, 그럼 다음에 같이 해요?”

“네, 물론”

“그럼 일단 둘이서 갈까, 치하야쨩?”

“아, 네”

 

  말을 마친 아즈사는 그대로 치하야와 함께 사무소를 나섰다. 직접 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 아즈사가 치하야를 밀어서 밖으로 나가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런 뒷모습을 보면서, 아즈사의 붙임성과 묘한 박력에 코토리는 감탄할 뿐이었다.

 

 

 

  치하야가 아즈사의 권유에 응한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거절할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승낙할 사소한 이유가 떠올랐다. 이 사무소에 대해, 물어보자. 그리고 그 이유를 위해, 음식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치하야는 아즈사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음, 저기 저 파스타 집도 맛있어 보이네, 저긴 어떠니 치하야쨩?”

“아무거나 좋습니다… 그보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응? 나한테?”

 

  가볍게 놀라는 아즈사에게 치하야는 빠르게 질문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네, 다른게 아니라 이 사무소, 765프로 말입니다만, 정말로 아이돌 사무소인가요?”

“응, 분명히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맞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저희는 아이돌의 일은 하지 않는 거죠? 그리고, 저번에 받은 레슨 같은 레슨만 받는 건가요?”

“그거야, 음, 그건 왜 그럴까…”

“또, 일 같은 건 들어오기나 하는 건가요? 일주일 넘게 지났는데 그런 걸 하거나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분명히 저는…”

“잠깐만 치하야쨩”

 

  빠르게 질문더미를 내던지는 치하야를, 아즈사는 말리면서 식당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방금 맛있어 보인다고 아즈사가 말한 파스타 집이다.

 

“우선 같이 들어가서 얘기하면 어떨까?”

“아, 예…”

 

  그제서야 치하야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얘기를 쏟았던 점을 깨달았다. 최소한의 예의 이상은 아는 그녀다. 자신이 실례했음을 알고 치하야는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그”

“으응, 아니야 충분히 이해하는 걸 지금 심정”

 

  내 지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아즈사는 생긋 웃으며 대답하고는, 다시 밀어붙이듯이 파스타 집으로 치하야를 재촉한다. 그런 재촉에 치하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아즈사와 파스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 번 끊긴 말문을 다시 잇는 건 상당히 힘든 행위다. 파스타 집에서 주문을 마치고, 치하야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메뉴판에 메뉴를 못 고르고 있던 치하야는 변명하듯이 이런 곳에서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라고 아즈사에게 말하고, 아즈사는 그런 그녀를 위해 친절하게 메뉴를 추천했다. 추천 받은 그걸 시키고, 딱 그 정도의 말만 한 치하야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가도 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즈사가 질문한다.

 

“치하야쨩도, 분명히 아이돌 일을 하려고 우리 사무실에 온 거지?”

 

  우리 사무실, 어색하고 이상한 울림.

 

“네, 물론입니다”

“사장님은 치하야쨩이 원래 가수 지망이라고 하셨는데”

“가수든 아이돌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노래만 할 수 있으면… 하기로 한 이상은 확실히 할 생각이긴 합니다”

“후훗, 면접같아 치하야쨩”

“네, 네? 면접요?”

“나는 그냥 치하야쨩이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너무 긴장해서 대답하는 거 같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하게 묻고 있었던 걸까? 아즈사의 말에 잠시 당황하던 치하야에게 아즈사는 말을 잇는다.

 

“치하야쨩은, 노래부르는 게 좋아?”

“아, 네, 아니, 뭐랄까, 저는 그… 노래밖에 없어서…”

“음~ 노래가 좋다는 거네”

 

  약간 어두운 치하야의 대답을, 아즈사는 밝게 걷어낸다.

 

“그런데 어째서 레슨은 그만둔 거니?”

“저는 진지하게 노래를 하고 싶어서”

“진지하게?”

“제멋대로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노래는 좀…”

“치하야쨩은 정말로 노래가 소중한 모양이구나”

 

  변명하듯 말하는 치하야에게, 아즈사는 순수하게 감탄한다. 조금 화를 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즈사는 치하야를 그냥 그대로 이해해주고 있는 듯한 눈치다. 그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책망에 대처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치하야는, 약간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보통 다들 내가 뭘 하려고 하면 그 일에 반대했는데, 이 사람은 달라. 지금까지 대해온 사람들, 특히 어른들과는 너무 다른 타입이야. 뭔가 말을 이으려는 치하야를, 웨이터가 끊는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아, 나왔다, 맛있겠네 후훗”

“아”

“그럼, 잘 먹겠습니다~”

“아, 네, 그, 잘 먹겠습니다…”

 

  묘한 사람이다. 이 사람과 대화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는 자신이 시킨 파스타를 입에 댄다. 음, 역시 이런 음식들은 잘 모르겠어. 물론 평소에 먹는 편의점보다는 낫지만, 이런 게 맛있는 거겠지? 파스타를 맛 본 치하야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아즈사가 음 맛있다라고, 감탄한다. 그래, 맛있는 거구나.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리면서 치하야는 다시 파스타의 맛을 본다. 덕택에 그녀는 질문하려던 것을 잠시 잊었고, 덕택에 대화의 페이스는 완전히 아즈사의 주도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치하야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아즈사와 이어가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치하야가 얻은 소득은 없었다. 자신의 질문들에 대해서 아즈사가 대답한 것은 역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즈사가 자신처럼 막연하게 아이돌과 사무소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시 걱정을 시작하려던 그녀는, 아즈사의 말에 잠시 생각을 멈춘다.

 

“음, 오늘 저녁은 바람이 기분 좋네~”

“…….”

“아 맞다 치하야쨩, 사실 오늘 부른 이유는 말이야”

“네?”

 

  부른 이유? 그냥 수다나 떨려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오늘 치하야쨩이 사무소 들어온 지 10일째라서, 축하할 겸이랄까 후훗”

“10일째 축하라뇨…”

“그런 것도 있고, 모처럼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치하야쨩이랑 얘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던 게 아쉬워서 말이야”

“아, 그건…”

 

  자신의 태도가 차가웠다. 그건 알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은,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목표에 도착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래서 아즈사는 10일 축하라는 이상한 이유를 대서 자신을 식사에 권유한 것이겠지. 어쨌든 그런 사소한 이유라도 필요했던 것이겠지. 그만큼 스스로는 벽을 만들고 있었던 것일까. 약간 느껴지는 가책, 그 때문에 조금 머뭇거리는 치하야에게 아즈사는 말을 잇는다.

 

“같은 사무소의 동료니깐, 이렇게 같이 밥도 먹고, 즐겁게 잘 해보자?”

“예…”

 

  그렇기에 치하야는 얌전히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대답에 밝게 웃으며 좋아하는 아즈사를 보고 있자니, 치하야는 조금 더 머쓱해질 뿐이었다.아즈사는 그런 치하야의 심정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사소한 질문이나 일상 얘기를 이었고, 곧 있어 둘은 전철역 앞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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