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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축하하는, 축하받는, 축하받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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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9, 2015 20:42에 작성됨.

346프로덕션

여름이라 밤이 늦게 찾아오는데도 아이돌 사무실의 불은 켜져있다.

보통은 다들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간단한 파티 겸 축하 분위기에 다들 취해서는 사무소에서 음식과 담소를 나누고있었다.

교토로 영업을 나갔을때 섭외한 5명의 아이돌

길다면 꽤 긴 연습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시즈쿠에 이어서 얼마 안되 슈코까지 데뷔하게 된 것은

겹경사가 겹친거라고 프로듀서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좀 유난스럽기는 해도

다들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슈코 언니 축하해"

 

평소에는 얌전하다고 생각했던 히로미가 웬일로 꽃다발까지 들고와서는 슈코에게 축하한다고 전해주었다.

슈코는 고맙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멋쩍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근데 어디 갔다왔어?"

"그냥 뭐 스케쥴 돌고 온거지"

 

쇼파에 걸터앉으면서 히로미는 갓 배달된 피자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스케쥴이라고는 해도 무대에서 백멤버로 뛰거나 아니면 별 이목을 받지 못하는 자잘한 일일 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아이돌이니 만큼 다들 이런 일에도 열심이다.

다들 그렇게 해왔고 그 중에서도 점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인기있어지면 회사의 수뇌부에서도

앨범 발매와 정식 데뷔를 결정해주기도 한다.

슈코가 그런 예였다.

오히려 슈코는 사람들이 언제 데뷔하냐고 할 정도로 데뷔 전에도 인기가 많았기에 이제서야 데뷔

한다는게 좀 놀라울 정도였고 슈코의 데뷔 사실이 알려지자 온 연예 잡지며 연예 기사가 지금 그녀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시즈쿠 또한 일단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었기에 데뷔에 관해서 논의가 꽤 있던 데다가 그녀의 컬트적인 인기 또한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녀의 데뷔에도 팬들은 좋아했다.

사에는 엄밀히 말하면 회사 측에서 정식 데뷔를 결정해서 데뷔한 케이스였기에 슈코와 시즈쿠와는 조금 달랐다고 할 수 는 있지만 그래도 사에 역시 데뷔 전에도 인기는 꽤 있던 편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데뷔했기에 이제는 가장 성숙하고 어엿한 아이돌티가 났다.

 

"저도 빨리 데뷔하고 싶네요 흐..."

"히로미는 언제나 열심이니까 곧 데뷔 할 수 있을거야"

 

시즈쿠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였다.

목장일을 해서인지 늘 부지런한것이나 성실함을 강조하는 시즈쿠였기에

늘 열심이라고 생각하던 히로미의 데뷔가 이렇게 늦어지는것도 영 이해가 안간다는 생각이었고

오히려 자신이 먼저 데뷔할 때는 미안하다는 말 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러면서도 막상 히로미는 별 신경 안쓰는듯한 눈치였다.

더 오랫동안 이런 상황인 아이돌들도 있다고 하고 또 그녀 스스로도 더 열심히 하면 언젠간

데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까지 큰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다.

물론 그녀가 열심히 하는 아이돌인건 맞았지만 그래도 큰 인기를 얻는다던가 그런적은 없었다.

슬프긴 해도 시즈쿠처럼 특정한 매력 포인트가 있는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에나 슈코처럼

일반 대중들이 열광할만한 외모나 그렇다고 그녀의 실력이 입증될만한 기회가 있던것도 아니었다.

물론 프로듀서가 보기에는 다 예쁘고 좋은 아이돌들 이지만 그의 생각이 꼭 대중의 생각과

같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아직 앳된 히로미의 외모가 이젠 어른티를 제법 갖춰가는 슈코나 단아한 외모와

교토벤과 전통적인 느낌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사에에 비해서 조금 밀리는 감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드러낸 이마도 역시 호불호가 꽤 갈리는듯 했다.

그렇다고 아주 가리자니 그녀도 싫어하는 눈치였고 괜히 무명인 그녀가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아주 잊혀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었고

또 반만 슬쩍 가리자니 당장 탑 아이돌인 미나세 이오리의 카피 소리를 듣기 딱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만의 아이덴티티로 계속 노력하며 밀고 나갈 뿐이었다.

 

"뭐 한 일, 이년 있으면 데뷔하지 않겠어?"

 

어떤 특촬 액션물의 오디션을 보러갔다온 아야메가 시즈쿠의 말을 이어받았다.

아야메도 명색이 닌자돌이니 그래도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고

그녀 스스로도 닌자라는 컨셉을 굉장히 소중이 여겼기에 여러 배역에 도전하려고는 했지만

그래도 뜻대로 되지 않을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앨범에 관한 욕심도 꽤나 있었다.

일단은 컨셉에 맞게 앨범을 낸 사례도 꽤 있었으니 그녀가 못할건 또 뭔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회사 측에서 슬슬 밀어주려는 움직임이 보이고는 있으니 그녀는 그래도 히로미보다는

조금 여유있는 편에 속했다.

 

"다들 곧 데뷔 할거야 열심히 하고 있고 또 회사측에서도 슬슬 그런 눈치를 보내주고있으니까"

 

프로듀서가 격려하며 말을 끝마쳤다.

 

"뭐 슈코가 이번에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좀 달라지려나?"

"하 지금 나 못 믿어?"

 

프로듀서의 직감과 그리고 대중들의 반응을 보면 슈코의 데뷔는 거의 성공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프로듀서가 농담조로 해본 소리였다.

음식도 다 먹어가고 분위기도 무르익어갔을땐 벌써 시계가 11시를 넘게 가리켰다.

 

"자 다들 잘 들어가고"

"프로듀서 조심히 들어가셔요"

"내일 뵈요"

 

저마다 인사를 나누고는 프로듀서는 주차장으로 다른 멤버들은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히로미와 사에 그리고 슈코, 시즈쿠, 아야메 가 한 방을 썼다

 

"슈코 언니 까지 벌써 데뷔했네"

 

방 안에 들어온 히로미가 꼭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사에는 그런 히로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히로미가 조급함을 느끼는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고 사에가 그걸 눈치 못챈것도 아니었다.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어보이며 히로미는 먼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히로미 오늘은 같이 침대 쓸래?"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사에가 아마도 들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욕실에 대고 소리쳤다.

2인실이지만 침대는 싱글사이즈 하나이기에 보통 다른 한 사람은 거실의 쇼파에서 자는게 일상이었다.

대개는 사에가 스케쥴에 갔다오면 사에에게 양보를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히로미가 쓰기로 되어있었지만 쇼파에서 자다보니 나름 그 편에 적응도 되어 대개는 사에가 침대에서 자는 날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좁지 않을까? 둘이서 쓰기엔?"

"괜찮어"

 

사에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직 더운김을 일으키는 히로미의 손을 잡고 같이 방으로 들어갔다.

싱글사이즈이긴 해도 둘이 눕자 그래도 어느정도는 편안히 잘 수 있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히로미의 가슴팍에 사에의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가만히 토닥여주며 사에는 눈을 감은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히로미는 아직 어리니까 조급한 마음 먹을 필요도 없고 조금씩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분명 데뷔할 수 있을꺼여 그러니까..."

 

문득 말이 끊어지기에 히로미가 옆을 돌아봤을땐 사에의 손도 멈춰있었고 눈도 꼭 감은채

잠에 폭 빠져있었다.

사에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넘겨주고는 히로미는 침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좁아서 불편하기도 했고 역시 쇼파에 눕다보니 그 편이 편하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원초적이고 마음속에서 생긴 부담감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꼭 이 곳이 자기 자신에게 맞는 곳이라고 생각하자 히로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346프로덕션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스케쥴 레슨 그리고 다른 일로 아이돌도 프로듀서도 사무원도 기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지내는 아침엔 이젠 아이돌이므로 학교에 가지 않는 애들도 물론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아주 안가는건 아니지만

한 연습실에선 그런 아이들이 모여서 각자의 음악에 맞춰서 안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의젓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기특한 아이들이었다.

 

"얘들아"

 

프로듀서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 문을 열고는 왠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프로듀서 그게 뭐에요?"

"보면 알아"

 

관심 없다는듯 머뭇거리는 아리스와 반대로 뭔지 궁금해서 먼저 상자를 열어보는 유메와 치에는

안에 들어있는 옷가지와 장신구에 감탄을 그지 못했다.

둘이 그렇게 놀고 있는걸 보자니 아리스도 결국 참지 못하고 안에 든 내용물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뭐에요?"

"아 치에랑 아리스랑 이번에 아이돌 섬머 페스 나가는데 그때 입을 무대의상이야"

 

치에랑 아리스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옷도 대보고 머리 장식도 대보고 하며 서로 어울리나 얘기도 해주던 참이었다.

 

"축하해요 페스 같은데도 나가보고 이렇게 예쁜 옷도 입고"

 

일단 자기 옷은 아니니 내려놓은 유메가 어정쩡한 타이밍에 축하한다며 끼어들었다.

눈빛으로는 내심 부러워하는것도 같았지만 치에나 아리스가 아직 그걸 눈치 챌 만큼

어른은 아니었다.

 

"언니 입어볼래 그러면?"

"그래도...될까?"

 

치에가 자신이 들고 있던 무대의상을 유메에게 건네주었다.

푸른빛이 도는 솜털에는 반짝거리는 비즈 같은게 박혀있었고

하늘빛과 하얀빛이 예쁘게 섞인데다 레이스까지 하늘거리는 옷은 유메가 보기에도

참으로 예뻤다.

 

"아 근데 그거 너희 사이즈 맞춰서 주문제작 한거라..."

 

프로듀서가 아쉽다는듯 얘기하자 유메도 미소를 지으며 치에에게 돌려주었다

.그래도 언니라고 가장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치에나 아리스가 신경 쓰이지 않도록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아 얘들아 너희 그거 입어봐"

"응? 지금?"

 

연습실 한 구석에서 공책과 각종 그림도구를 가져온 유메가 옷을 다 갈아입은 그녀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다른 아이돌 같으면 시샘하는 경우도 있고 아직 철이 없다보니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아이들을 프로듀스하는 프로듀서는 꽤 까다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도 유메는 나이에 비해 의젓한 면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훨씬 편한 프로듀싱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섬머 페스라는거 언제에요?"

"말 안했던가? 일주일 뒤라고"

"저는 모르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유메가 알고있었을리도 없다.

일단은 자신과 상관도 없는 일인데다가 프로듀서가 알려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 물감이 없네요..."

 

치에와 아리스의 대강의 스케치를 마치고 나서야 유메는 물감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색칠은 나중에 해줘도 되니까"

"그래 이제 다 입어봤으면 다시 레슨하자"

 

프로듀서는 다시 옷 상자를 들고는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왠지 아이돌들보다 땀을 더 흘린 트레이너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음악을 틀고 안무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한편 다른 사무실에선 히로미가 프로듀서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돌 페스티벌이요?"

"그래 이번에 교토에서 열리거든...백멤버이긴 해도 참가해보면 너한테도 좋지 않을까 해서"

"저야 뭐..."

 

히로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돌 페스같은 큰 무대는 일단 그녀도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교토 아이돌 모두 처음이었는데

아직 정식으로 데뷔도 안한 그녀가 올라가기에는 원래대로라면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저는 그래서 누구 무대에 올라가는거에요?"

"사에 꽃비녀 무대일거야 사에랑은 그래도 같이 많이 해봤으니까 괜찮지?"

"네"

 

예상외로 쉽게 승낙하는 바람에 프로듀서는 별 다른 걱정 없이 그녀를 연습실로 돌려보냈다.

히로미로써도 꽃비녀는 거의 자기 노래하듯 사에와 많이 호흡을 맞춰봤기에 그런 면에서는

걱정이 전혀 없었다.

다만 어제 얘기하던걸 들어보면 괜히 또 이렇게 됐다고 사에가 걱정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 자신은 무덤덤했다.

사에가 남 신경을 잘 써주는 성격이란건 잘 알고 있었지만 가끔은 너무 오지랖 넓다 싶을때도

있었기에 그녀는 또 그런 일이겠거니 하고 별 상관 없이 넘겼다.

 

"히로미 페스 어떻게 됐어?"

 

통로에서 보인 사에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언니 백멤버로 들어가나봐요"

 

싱긋 웃는 히로미를 바라보며 사에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당장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그들이 페스에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는 아무도 데뷔하지 않은채였는데 불과 1년만에 사에 시즈쿠 슈코까지

세 명이나 데뷔를 한 걸 보면 아마도 곧 아야메와 히로미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히로미는 연습실로 걸어갔다.

연습실에서는 시즈쿠와 아야메가 먼저 음악에 맞춰서 어떤 안무를 연습하는듯 했다.

노래는 시즈쿠의 노래였다.

 

"아야메 언니도 나가는거에요?"

"뭐 그런셈이지"

 

시즈쿠가 카세트에서 나오던 노래를 꺼버렸다.

이 둘은 벌써 무대의상까지 받고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전문 백댄서를 쓰는게 옳은 수순이지만 일단은 그 둘도 아이돌이기도 하고

한 번 쯤은 대중에 이렇게 노출시켜주는게 좋은 일이었기에 얻은 기회였다.

아야메에게도 히로미에게도 기분 나쁘다거나 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너는 그러면 사에랑 같이 하는거야?"

"뭐 많이 해봤으니까요"

 

원래 입고있던 옷을 벗고는 히로미도 그녀의 트레이닝복으로 갈아 입었다.

열심히 연습했는지 꽤나 땀을 흘린 아야메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시즈쿠가 연습실 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소 씨가 다 좋은데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어"

"뭔데요?"

 

시즈쿠가 그녀의 트레이닝복 지퍼를 풀고는 흰 티를 마구 펄럭거리며 말했다.

 

"가슴이 커서 땀이 차"

"그건 언니얘기 아니야?"

"그런가?"

 

소가 땀을 흘리는지는 잘 몰랐지만 저 얘기는 적어도 시즈쿠에게만 해당 되는 얘기임에는 확실했다.

막상 히로미가 오니까 셋 다 연습은 뒷전으로 하고 담소에만 빠져있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던 중에 문 밖에서 지켜보던 프로듀서가 문을 열고는 들어왔다.

셋 다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꼭 스트레칭 중이었던것 처럼 몸을 어색하게 꼬았다.

 

"연습하래니까 떠들고만 있어...시즈쿠 스케쥴 갈 시간이야"

"어머 벌써 그렇게 됐어요?"

 

시즈쿠가 저 멀리 밀쳐놓은 핸드폰을 켜보고는 곧장 짐을 챙겨서 프로듀서를 따라 나갔다.

 

"또 떙땡이 치지 말고 열심히 연습하라고"

"네 네"

 

프로듀서가 나가자마자 아야메는 곧장 툴툴대기 시작한다.

 

"거 조금 쉰거가지고 되게 뭐라그러네"

"다 우리 생각해서 하는 얘기에요"

"너는 질리지도 않냐? 우리가 뭐 진짜 데뷔한 아이돌도 아니고"

"됐고 연습이나 해요"

 

어떤 면에서는 누가 동생이고 누가 언니인지 분간이 안갔다.

물론 히로미가 소심한 것만 빼면 꽤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것도 사실이었지만

어떨때는 너무 똑부러져서 프로듀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일 경우도 많았으니 아야메도 이제

이런 패턴은 익숙하다.

다시 카세트에 넣어두었던 cd를 틀었다.

시즈쿠의 노래에 맞춰 능숙하게 춤을 추기 시작하는 아야메

히로미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지적해주고있었다.

 

 

기숙사에 돌아왔지만 사에는 프로듀서의 말 대로 꽤 먼 지방까지 가서인지 돌아오지 않았다.

사에가 데뷔하고 나서는 꽤 흔한 일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방이 허전해보였다.

평소대로라면 침대에 올라가서 잤겠지만 어제 이후로 부터는 어째 침대에서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사에의 자리

혹은 그녀에게는 너무 과분한 자리라는게 인식이 박혀버려서일까

히로미는 결국 침대를 박차고 쇼파로 건너왔다.

온갖 잡생각이 들다보니 영 잠도 안오고 밤새 앵앵거리는 모기소리에 히로미는 잠깐 티비나

볼까 하고 티비의 전원을 올렸다.

평소대로 밤에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만 줄기차게 방영하고 있었다.

별 흥미를 못느끼는 히로미는 계속해서 채널을 돌리다 시즈쿠가 출현한 광고 한 편을 보게 되었다.

멜빵을 메고는 커다란 우유팩을 양 손에 쥐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옆에서는 다른 한 여자애가 그녀와 함께 우유를 마시지만 손에 든 우유팩은 500ml 짜리이다.

오이카와 시즈쿠, 오오누마 쿠루미

B.B이다.

 

"광고라..."

 

시즈쿠도 이제 데뷔한지 꽤 지났으니 슬슬 저런 광고가 들어온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듣기로는 오늘 간 스케쥴도 저 회사의 홍보 포스터 촬영을 위해서란다.

히로미는 그녀 자신에겐 무슨 광고가 어울릴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역시 딱 떠오를만한 특징이나 개성이 없으니 독특한 CF같은게 나올리가 없었다.

 

"잠이나 자자..."

 

히로미는 티비를 끄고 등받이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는 순간에 그녀의 핸드폰에서 갑자기 강한 불빛이 퍼져나왔다.

작은 나무탁자와 핸드폰의 진동이 만나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어...여보세요?"

"야! 히로미 오랜만이다!"

 

등록도 안된 핸드폰 번호의 주인은 346프로덕션에 입사하기 전 학교 친구였던 아이였다.

 

"어...레이카 무슨 일이야?"

"그 그 막 이번에 교토에서 아이돌 페스 한다는거 너도 오는거야?"

 

히로미의 본 고향은 토야마지만 일단 그녀가 교토에 살고 있었을때 캐스팅되었고

저 아이도 교토에서 사귄 친구니 궁금할 법도 했다.

 

"아니 나는 아직 데뷔한것도 아니고 해서 못갈거같아"

"에에? 아쉽게 됐네..."

"내년엔 가겠지 뭐"

"그래 수고해"

 

차마 갈 수 있다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 입장에서나 백멤버가 됐건 메인 가수가 됐건 상관이 없다는거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메인 프론트에 서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이돌이 되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페스...오려나"

 

어차피 잘 안보일테지만 막상 자기를 알아보거나 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점점 커져갔다.

 

"분명..."

 

백댄서로 뛰고 있다는둥 아직 데뷔도 제대로 못했다는둥

쓸데없는 망상의 헛소리가 당장 생생하게 귓가에 맴도는것 같았다.

히로미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분명 그럴거라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그녀가 종잡을수가 없게되자 히로미는 베개를 푹 뒤집어쓰고 강제로 잠을 청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떨치느라 괜히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사는 동안에 벌써 페스 전날 아침이었다.

 

"얘들아 가자"

 

아야메와 히로미가 차를 세워두고 그들을 마중나온 프로듀서를 따라 도로쪽으로 걸어나왔다.

다른 아이돌들 그러니까 정식으로 데뷔한 아이돌들의 경우에는 프로덕션에서 버스가 나와서

단체로 이동했지만 일단 아야메와 히로미는 프로듀서가 권유해서 들어간 경우이니

버스를 타기에는 좀 껄끄러운 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게다가 이미 페스 공연장 앞에는 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텐데

거기서 히로미와 아야메같은 무명의 아이돌이 내린다면 꼭 한 둘씩 노골적으로 반응하는

못된 놈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뭐 교토까지는 한 세시간 걸릴테니까 다들 눈이라도 붙혀둬 새벽이라 피곤할텐데"

 

차에 올라타자마자 히로미와 아야메는 서로를 기대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직 새벽이다보니 피곤할법도 했다.

 

 

 

"애들은요?"

"오늘 페스 있어서 아침에 다들 출발했어 그래서 오늘은 유메 혼자 레슨해야 할거같은데"

 

언제나처럼 온 연습실에 다른 아이들이 없는걸 보고 놀란 유메가 루키트레이너에게 다른 아이들의

행방을 물었다.

유메는 늘 그렇듯 선한 웃음을 보이고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에도 유메는 어째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몸도 좀 뻣뻣한듯 했고

평소에는 부리지 않던 잔꾀도 부리는것 같았다.

 

"유메 오늘 왜 그래?"

 

평소에는 쓴소리 하는걸 언니들한테 맡겨놓은 루키 트레이너가 보다보다 한 소리 했다.

차라리 안즈나 레이나처럼 처음부터 꾀부리던 아이돌이었으면 모르지만

유메는 평소에도 아주 성실한 아이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변한걸 보니

뭔가 문제가 있구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혼자 하니까 오늘은 좀 힘이 드네요..."

"그러면 다른 아이들 부를까? 마이나 카오루나"

"아뇨 괜찮아요 다들 바쁠텐데"

 

유메는 그제서야 제대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땀이 날 무렵 제대로 음악을 틀고 레슨하려던 찰나에 유메의 프로듀서가

문을 열고는 들어왔다.

 

"아 프로듀서씨"

"연습 잘 하고 있어? 너한테 이런게 왔는데"

"이게 뭔데요?"

"읽어봐"

 

프로듀서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문 밖으로 나섰다.

그가 건네준건 하얀 봉투 안에 든 그녀의 취향에 맞는 연분홍빛 유치한 편지지였다.

 

"어머 팬레터인가보다"

 

막상 당사자인 유메보다 루키 트레이너가 더 들떠서 유메에게 읽어보라고 재촉했다.

 

"우리들의 영원한 아이돌 유메짱에게..."

 

낯간지러운 멘트에 유메는 한 줄을 읽고 얼굴을 붉혀보았다.

그래도 내심 기분은 좋았는지 헤실거리면서도 계속 팬레터를 읽어나갔다.

저번에 음반 매장에서 미팅을 했을때 받은 선물 얘기로 시작한 팬레터는

언제나 예쁜 미소를 보여줘서 고맙다던가 유메가 아프지 말고 계속 열심히 활동하기를

바란다는 어떻게 보면 꽤 상투적인 내용이기도 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유메라고 해서 팬이 아주 없는건 아니었다. 오히려 유메가 어떤 스케쥴에 나갈때마다 알고 찾아와주는 열정적이고 고마운 팬 들도 꽤 다수 있었다.

유메는 편지를 꼭 끌어안고는 눈을 감았다.

코 끝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곧 유메는 감은 눈가에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띄운 미소는 그녀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자 이제 다시 레슨 시작하자"

"네"

 

유메는 트레이닝복의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맑게 웃어보였다.

 

 

 

"이거 입고 안무를 하는게 되나..."

"입다 보면 익숙해져"

 

히로미가 무대 의상으로 나온 개량 유카타를 들고는 영 못미덥다는듯 쳐다보고 있었다.

사에는 무대를 자주 뛰어서 익숙했지만 히로미에게는 아직 불편한 곳이 없지않아 있었다.

막상 입어보니 그녀의 분위기와는 안어울려서 좀 어색하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야 너네는 이쁜거지"

 

금세 젖소 코스튬으로 옷을 갈아입은 아야메와 시즈쿠가 소를 흉내내듯 검지 손가락으로

뿔을 만든 흉내를 하고는 그녀들 앞에 나섰다.

 

"이거 가슴 작으면 절대 안어울려"

"여러모로 엄청난 옷이네요"

 

시즈쿠의 가슴크기가 워낙 압도적이어서인지 분명 각자의 가슴 사이즈에 맞게 조절했음에도

아야메에게는 그다지 어울리는 코스튬은 아니었다.

 

"그래도 소 씨 의상 꽤 귀엽지 않아?"

"그거 언니니까 어울리는거라니까"

 

둘은 히죽거리며 서로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자 이제 우리도 연습합시다"

 

사에가 박수를 치며 히로미를 포함한 다른 백댄서들을 불러모았다.

사에도 이렇게 큰 무대는 경험 부족 때문인지 꽤 긴장한듯 연습임에도 잔 실수가 많이 나오는것이 히로미의 눈에도 선하게 들어왔다.

오히려 히로미는 우선 자기 무대가 아니니 오히려 긴장감은 덜했다.

물론 본 무대에 올라간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사에 본인도 자극을 받아서인지 꽤 오랜 시간 같은 부분만 반복해서 연습했다.

한참을 연습하고 나서야 온 체력을 쏟아부은 사에가 먼저 탈진해서는 연습실 바닥에 쓰러졌다.

아마 연습은 여기까지인듯 했다.

 

"언니 괜찮아요?"

"후...긴장해서 그런지 자꾸 안무가 꼬이네"

 

히로미는 프로듀서가 가져다 주었던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있던 에너지 드링크를 꺼내서 사에에게 건네주었다.

차갑게 식어있던 에너지드링크에는 물방울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연습 끝났니?"

 

백댄서들이 먼저 나가는것을 보고는 프로듀서가 그제서야 문을 열고는 연습실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일단은요"

"그러면 오늘은 그냥 숙소 가서 푹 쉬고 내일 제대로 하자"

"네"

 

사에는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숙소로 잡아 둔곳은 페스 무대 근처의 한 호텔이었다.

 

"무슨 14살 15살 여자애 둘이서 호텔 방을 잡아다 써요"

"뭐 어때 너희보다 더 어린애들도 같이 쓰는데"

 

히로미는 황당하다는듯 카드키를 건네받으며 웃었다.

프로듀서가 차를 타고 나간뒤에야 사에와 히로미는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갔다.

2인실이지만 역시 아직 어린 둘이 쓰기에는 꽤 사치스러운 방이었다.

사에는 방 구경도 하기전에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땀이 흐른게 영 찝찝했던듯 했다.

 

"침대도 두개네"

 

히로미는 바깥 창문쪽의 침대에 걸터 앉아서 매트리스를 눌러보기도 하고 배게에 머리도 뉘여보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에는 쇼파는 없었다.

더운김을 몰고는 사에가 타월로 몸을 감싼채 상기된 볼을 달고는 욕실에서 나왔다.

 

"히로미도 빨리 씻어봐 안에 엄청 좋아"

"우리 목욕탕 온게 아니거든요 언니"

"뭐 어때 가서 씻어봐"

 

사에의 성화에 못이겨 히로미는 방 구경을 그만두고 먼저 욕실로 향했다.

히로미가 보기에는 그냥 여느 호텔에 있을법한 욕실이었는데 뭘 그리 호들갑을 떨었는지

사에도 가끔은 엉뚱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에와는 다르게 히로미는 수건으로 몸에 있는 물기만 닦고는 어설프게 가린채 밖으로 나와서

그녀의 옷을 꺼내 입었다.

 

"불 끌게요"

"그래"

 

씻고 나오면 잠이 더 잘 올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씻고 불을 끄니 오히려

눈이 더 말똥말똥 해진것 같았다.

사에도 마찬가지였는지 평소엔 얌전하게 자던 그녀도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거리고 있었다.

 

"히로미 히로미"

"왜요"

"이리 와서 자라 여긴 침대도 넓으니까"

"굳이 두개 있는데 좁게 뭘 그래요"

"긴장돼서 그래 일로 와"

"언니가 애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히로미는 침대에서 내려서 사에의 침대로 옮겨갔다.

사에의 얼굴이 창 밖의 달빛과 별빛에 흐릿하게 비춰지는게 빤히 보였다.

사에는 히로미가 바로 옆에서 누워있는걸 보자마자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뭐해요 언니"

"에헤헤 긴장돼서 그래 긴장돼서"

"내가 무슨 곰인형도 아니고"

 

천장을 바라보던 히로미가 고개를 돌렸을때는 사에는 또 금세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긴장이 된다더니 그것도 어째 거짓말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히로미는 일단은 이해해주기로 하고

자신도 눈을 꼭 감았다.

 

페스는 꽤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다.

물론 아침이라고 해봐야 11시이니 아주 이른 시간이라고 할건 아니었지만

아이돌들은 분장도 해야하고 무대의상도 점검해야 하고

해야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새벽부터 부스에 모여있었기에 체감상 그렇게 느끼는면도 없지않아 있었다.

 

"막 밤에 불꽃 터뜨리면 할 줄 알았는데 꽤 아침부터 하네요?"

"그런데 우리 무대는 밤이니까"

 

사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긴장, 초조, 그리고 여타 걱정과 불안이 한데섞인

히로미는 여태껏 그런 사에의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사에가 긴장하자 꼭 전염되듯 히로미 그녀 또한 자연스레 얼굴표정이 굳어버렸다.

 

"으아아...이제 다음곡이 우리 차례야"

 

양 손을 꼬고는 불안한 마음을 주체 못하는 시즈쿠가 아야메와 같이 서있었다.

부스 밖에서는 니나의 모두의 기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가 점점 끝나감에 따라 아야메도 시즈쿠도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으...어떡해"

"뭘 어떡해 뭐 혼나러 가는것도 아니고"

 

아야메는 나름 여유를 부리는듯 했지만 그녀 역시도 혀를 수시로 낼름거리는걸 보아

굉장히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노래가 끝났다.

박수와 함성소리가 지나서는 닭 모양의 인형옷을 입은 니나가 깡총거리며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수고했어"

"으 겁나 열심히 부른겁니다!"

 

니나의 표정은 늘 그렇듯 티끌 하나없이 맑은 미소이다.

긴장을 하기는 한걸까?

밖에서 장황한 설명과 함께 시즈쿠를 부르는 소리가 나오고 곧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시즈쿠는 크게 가슴에 숨을 들이쉬고는 먼저 선두로 올라가고

남은 아야메를 포함한 백멤버들이 이어서 따라 올라갔다.

시즈쿠가 마이크를 잡고는 몇마디 하는게 들렸지만 명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히로미 연습하러 가자"

"에...에?"

 

멍하니 입구쪽을 바라보던 히로미가 사에의 손에 이끌려 간이 대기실로 끌려갔다.

사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듯한 스마트폰으로 버튼 몇개를 누르더니 자신의 노래를 틀었다.

아마도 긴장이 되서 그렇겠지 하고 히로미는 생각했다.

 

첫째날에는 대개 데뷔한지 얼마 안된 아이돌들의 무대가 주를 이루었고

그 다음날 부터는 좀 더 네임밸류있는 아이돌들의 무대가 이루어졌다.

다만 사에는 데뷔한지는 꽤 되었지만 첫 날에 참가한 이유는 그 날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기 위해서였다.

오후부터는 어째서인지 먹구름이 흐렸다.

비가 내렸지만 보슬비 수준이라 공연은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관객들도 개의치않고 계속

콜을 넣고 응원을 해주었다.

밤이 되자 히로미 그녀의 말대로 어디서 불꽃을 마구 쏴올렸다.

 

"자 긴장하지 말고"

 

점점 초조해하는 사에에게 에너지드링크 한 캔을 까준 프로듀서가 그녀에게 건네주고는 어깨를 탁 짚었다.

사에는 다 마시지도 못하고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부스 위로 걸어 올라갔다.

 

"사에 열심히해"

"실수하지말고"

 

이제 마지막 무대이기에 다른 아이돌 몇 명이 그녀를 격려해주었다.

사에가 먼저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팬들과 몇마디 이야기를 했다.

비가 그친 하늘은 구름도 없어서 달빛도 별빛도 선명하게 반짝였다.

스테이지에서의 강렬한 조명도 이 넓은 무대를 밝혀주었다.

잔잔한 현악기 소리에 맞춰서 뒤에 배경으로는 벚나무들이 아름답게 펼쳐져있었다.

곧 경쾌한 박자에 맞춰 벚꽃잎들도 화려하게 흩뿌려졌다.

노래가 시작되자 정말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다던가

길고도 짧은 순간이라는 말이 정말 무슨 뜻인지 체감 할 수 있었다.

사에도 히로미도 이젠 긴장되는 무대도 어쩔 수 없다는듯 즐기는 순간이었다.

멈춘줄 알았던 시간은 3분 56초부터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로 다시 마지막 후렴구를 부르는 순간

긴장했던 탓인지 뭔지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히로미가 힘차게 내딛은 발이 순간 빗방울을 맞은 바닥에 미끄러져 곧장 뒤로 넘어져버렸다.

그러면서 바로 옆에 있던 사에까지 엉켜서는 순식간에 무대의 흐름이 끊어져버렸다.

안무는 끊겼어도 노래는 끊어지지 않았다.

히로미도 사에도 우선은 먼저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듯 계속해서 안무를 맞추어갔다.

귓가에 울리는건 웃음소리 아니면 야유가 나오는듯 했다.

사에에게 야유가 퍼져나올리는 절대 없었다.

히로미에게는 남은 1분 남짓한 시간이 정말 죽도록 길게 느껴졌다.

귓가에는 끝없이 누군가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따로 움직이는듯 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전화를 걸었던 아이들이 혹시 와서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무슨 기삿거리가 되지나 않을까

언니가 실망하면 어쩌나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히로미는 들어갈때보다 나올때 완전 탈진한 표정이었다.

프로듀서도 다른 멤버들도 잠시 자리를 비운듯 했고 스탭들만이 어지러운 복도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언니 미안해요"

 

얼굴색이 완전히 새하얘져서는 꼭 걸어다니는 시체마냥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군채 히로미는 몸을 파들파들 떨고있었다.

사에는 말 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런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사에는 대기실로 들어갔지만 히로미는 홀연히 정리되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제 와서 닦으면 뭐하냐고"

 

바닥의 물기는 벌써 말끔하게 닦여있었다.

물론 바로 전 무대에서 비가 와서 닦을 시간이 없었다는것 정도는 그녀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런건 별로 신경쓰고싶지 않았다.

자신이 한 터무니없고도 너무 큰 실수를 전가할 대상이 필요했다.

무대 위에서 올려다 본 이제 사람들이 슬슬 빠져나간 공터는 참 허무스럽게도 넓어보였다.

무대 뒤 쪽은 아직도 잔디냄새와 흙냄새가 빗물에 섞여 은은한 향을 퍼뜨렸다.

잔디밭에 걸터 앉아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숨 한 번 내쉬고 하늘 보고 다시 한숨 한 번 내쉬고 하늘 보고

마음이 도저히 복잡해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히로미"

 

고개를 돌리자 프로듀서가 손에는 뭔가를 든채 서있었다.

혼내려는 것인지 뭔지 히로미는 이제 아무것도 상관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자"

"네"

 

시간은 9시를 향해갔다.

 

"사에 언니는요?"

"친구들이 찾아왔는데 원래는 만나면 안되는데 사에도 원하고 해서 너만 데려다주고 다시 그쪽으로 갈거야 혼자 둘 수는 없으니까...뭐 밥이나 한끼 먹고 좀 놀다 오는데만 있어주면 되니까"

 

차 안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배고프지 않아? 샌드위치 사왔는데"

 

시즈쿠와 아야메 그리고 슈코를 데려다주면서 오는 길에 샀다고 했다.

아쉽게도 히로미는 무언가를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실수 했다면서?"

 

히로미는 말이없다.

 

"뭐...괜찮아 실수 할 수도 있지"

 

물론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마냥 잘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질책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히로미는 신발도 벗고는 조수석에 양 발을 올린채 팔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던 히로미가 그제서야 한 마디 했다.

 

"프로듀서"

"응?"

"나 아이돌 그만둘까요?"

 

고개를 푹 숙이고는 히로미는 작게 웅얼거렸다.

프로듀서는 운전중인데도 순간 놀라 그녀쪽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다른 멤버들보다도 어른스러운 그녀가 이런 반응을 내비칠줄은 몰랐다.

 

"그 실수 한 번 가지고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다들 그렇게 크는..."

"나도...데뷔하고 싶은데...데뷔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내 무대도 서보고 싶은데...."

 

고개를 파묻고는 흐끅 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쉬었다 내쉬었다.

복합적인 심정이 섞여 실수 하나가 일으킨 기폭은 커다란 파장을 몰고왔다.

 

"이게 뭐야...남의 무대나 망치고..."

 

프로듀서는 섣불리 다독여줄수도 위로해 줄 수도 없었다.

다만 그가 느낄 수 있는건 지금 히로미가 우는건 실수 하나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침울한 차 분위기 그대로 밝은 호텔까지 끌고왔다.

호텔 방 앞에서 그는 히로미에게 카드키를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무릎을 그녀의 키에 맞추고는 꼭 끌어안아주었다.

 

"어...음 별다른 사과 못해줘서 미안해"

 

히로미는 그제서야 가볍게 웃어보인다."

 

"아니에요"

"데뷔도 잘 몰라도 곧 할 수 있게 노력할테니까"

"고마워요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는 곧 엘레베이터쪽으로 가려다 다시 그녀 앞에 멈춰섰다.

지갑에서 왠 카드 한 장을 꺼내주었다.

 

"배고프지? 이거로 먹고싶은거 먹고 와 옆 방에 아야메 있을테니까 같이 나가도 되고"

"시즈쿠 언니는요?"

"시즈쿠는 오랜만에 고향 왔다고 자기 목장 가보고싶다해서 데려다줬어 슈코는 내일 아침 무대니까 일찍 잠들었다고 하고"

"뭐...알았어요 고마워요"

 

프로듀서는 급하게 엘레베이터 쪽으로 뛰어갔다.

히로미는 그가 준 신용카드를 앞뒤로 살펴보고는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으라고는 했지만 역시 뭐가 들어갈 기분은 아니었다.

베란다 밖으로 나와서 멍하니 별만 바라다 보았다.

교토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도쿄로 올라오니 별이 참 안보였다.

이럴때라도 다시 별을 봐두자고 히로미는 생각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은 늘 느끼지만 짧아도 길게 느껴진다.

3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문 밖에서 누가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야 아야메"

"언니 왜요?"

"야 뭐 먹으러가자 언니가 사줄게"

 

아야메는 다짜고짜 그녀의 손을 잡고는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솔직한 심정에는 그냥 방에서 티비나 보다 자고 싶었지만 아야메가 부탁하니 또 나가지 않을수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뱃속에서 꼬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이제서야 배고픔이 확 느껴졌다.

 

"근더 뭐 먹으러 가게요?"

"뭐 먹을거 있나 이 근처에?"

 

산골이 아니니 번화한 사거리에는 음식점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아 그러고보니 프로듀서가 밥 사먹으라고 카드 줬는데"

"진짜? 그러면 맛있는거 먹으러가자 기왕 이렇게 된거"

"그렇게 돈 막 쓰면 안되요"

"보상이야 보상"

"뭘 했다고 보상을..."

"저거 어때"

 

꽤 세련된 간판의 초밥집

게다가 안을 보아하니 그녀가 몇 번 가본 회전 초밥도 아닌 진짜 초밥집인듯 했다.

 

"너무 비싸지 않아요?"

"그냥 먹고 보자고 오늘같은 날에"

 

너무 마이페이스로 나오는 아야메에 이끌려 히로미는 초밥집에 들어갔다.

밤인데도 가게에 사람들은 꽤 많았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이나 부부끼리 어울리는 은은한 조명과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클래식 곡이라는건 알 것 같은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진 이 곳은

누가봐도 중학생들로 보이는 그녀들 그것도 둘이 오기에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다.

들어가자마자 모든 점원이 인사하는통에 히로미는 순간 움찔해버렸다.

 

"언니 가격..."

"괜찮아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건지 히로미는 알 수 없었다.

아야메가 좀 천연한 면이 있긴 해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는 아니었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야메가 뭔가 시키자 히로미도 엉겁결에 그녀와 같은걸 주문해버렸다.

 

"너무 비싸지 않아요?"

"뭐...맛있는거 좀 먹겠다는데 그것도 안되?"

"아무리 그래도 우리 돈도 아닌데"

"뭐 일을 해야 돈을 벌지"

 

아야메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히로미는 어른스럽다 뿐이지 아야메의 처세술에는 당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녀도 될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음료수도 시키죠 그냥"

"그래 그래"

 

초밥에 콜라가 어울릴지는 잘 모르지만 그냥 시켰다.

어째서인지 아야메의 마지막 말 이후로 그냥 돈이 쓰고싶어졌다.

초밥이 나오길 기다리는동안 아야메는 문득 핸드폰을 열어다보았다.

 

"뭐 문자에요?"

"어 그때 오디션 봤던"

"붙었어요?"

"떨어졌지 뭐..."

 

웃으면서 능청스레 넘어가려는듯 했지만 끝에는 그녀도 모르게 한숨이 새나왔다.

아니 오히려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기에 이제는 한숨 한 번으로 퉁칠 수 있는것이었다.

 

"막 사에 언니는 밖에 나갈때 되면 선글라스 쓰고 다니던데"

"그러고보니 사에는?"

"친구들 만나고 오겠데요 그래서 프로듀서도 간거고"

"생각해보면 우리도 아이돌인데 말이지"

 

말은 된다.

히로미가 되었건 아야메가 되었건 일단은 346프로덕션 소속의 아이돌 아닌가

다만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뿐이지만

 

"하...나도 빨리 데뷔하고싶다"

"뭐 곧 하겠죠"

"너는 질리지도 않냐? 이렇게 연습만 하고"

"별 수 있나요"

 

시기라던가 그런거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역시 부러운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면 질투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것일까

아야메는 티는 안냈지만 막상 같은 방을 쓰는 슈코, 시즈쿠 모두에게 부러움 이상의 감정을 품은듯 했다.

의미없는 수다 도중에 정말 고급스러워보이는 생선초밥이 서빙되었다.

나무로 된 받침에 정말 손대기도 아까운 장식들이 올려져있는 초밥은

히로미에게 정말 엄청 비싸보인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잘먹겠습니다"

 

아야메가 먼저 한 개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순간 평범했던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환희로 바뀌는 과정을 히로미는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야메의 표정이 설명해주듯 초밥은 정말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맛을 그녀에게 선사해주었다.

 

"이건 우리를 위한 포상이야"

"뭐 일을 해야 포상을 받는데요"

"아니지 일을 못하니까 받는 포상이야"

"뭔 소리에요 그건 또"

"잘 봐 우리는 데뷔 하고 싶은데도 못하잖아 근데 데뷔 못했다고 눈치보면서 맛있는것도 못먹으면 너무 서럽지 않아?"

 

히로미는 그녀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고보니 그런것도 같았다.

 

"그...그런가?"

"그런거야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를 데뷔를 안 시켜준 프로듀서에게 그 값을 지우는거지"

"너무 무책임해요"

"됐어 그냥 먹어"

 

이젠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러면 어떻고 또 저러면 어떠하리 이미 초밥은 나온것을

 

"야 솔직히 다른 애들에 비해서 우리가 못한게 뭐냐?"

"그쵸? 언니가 생각해도"

 

둘은 어느새 초밥을 먹고는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서로의 돈으로 커피에 값싼 조잡한 선글라스까지 사서 쓰고 다녔다.

히로미도 평소에 하는 소리와는 다른 소리를 하는걸 보면 아야메의 페이스와 분위기에 완전히 취한듯 했다.

히로미는 선글라스를 쓰니까 꼭 사에가 쓰고 다니던 그런게 생각났다.

 

"시즈쿠도 가슴만 큰 거 말고 더 있어?"

"솔직히 사에 언니나 슈코 언니에 비하면 언니가 훨씬 낫지"

"그러냐?"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렇다고 진심이 아주 없던건 아니었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테니 장난으로 하는 소리였다.

 

"솔직히 너도 막 다른 아이돌한테 꿀릴게 뭐가 있다고"

"이를테면?"

"미나세 이오리?"

 

둘은 그 말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웃겨서인지 그냥 막 웃어댔다.

다 웃고 나니까 그 다음은 뭔가 공허한 감정이 그들의 가슴을 가득 메웠다.

헛소리 한 대가 이려나

 

"야"

"왜요"

"우리 데뷔 하겠지?"

"한다니까"

"그렇겠지"

 

아야메는 큰 심호흡을 하고는 히로미의 손을 꼭 잡았다.

 

"야 우리 나중에 꼭 같이 데뷔하자"

"누가 먼저 하기 없기"

 

어린애들 마냥 둘은 새끼손가락까지 걸고는 약속했다.

교토의 별은 참 총총히도 밝게 빛났다.

호텔방에 돌아오고 씻을때 쯤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에가 돌아온듯 했다.

히로미는 타월로 몸을 감고는 문 밖에 서 있는 사에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언니 덥죠? 씻어요"

"그래"

 

다행히도 사에의 기분이 많이 풀린듯 했다.

밤새 어색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었다.

히로미가 침대에 누워있자 사에는 또 그녀의 침대로 안가고 히로미의 침대로 넘어왔다.

 

"씻고나서 더운데 또 붙어야돼요?"

"뭐 어때 있지 내가 아까 친구들 만나고 왔잖아"

"그랬죠"

"근데 어떤 남자애가 너 소개시켜달라는거 있지?"

 

사에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 키득거리며 웃는다.

히로미도 그녀 따라 웃긴 했지만 역시 사에 옆에 있자니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막 막 그래서 내가 애들이랑 밥을 먹으러 갔는데..."

 

사에가 말하는걸 보니 꽤 재미있게 논 듯 했다.

오늘 친구들이랑 있었던 일이며 온갖 세세한 내용을 히로미에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또 늘 그렇듯 혼자 이야기하다 지쳐서 점점 목소리도 느려지고 눈도 감은채 얘기하다

결국엔 또 잠들어버렸다.

히로미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친구들을 만나서 꽤 재미있게 논 듯 했는데 굳이 그걸 자신에게 설명해야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누구 염장지르냐고'

 

막상 누구는 친구들에게 나온다고도 말도 못하는데 누구는 저렇게 끝나고 친구들도 찾아와서

축하해주고 만나는걸 보고 부럽기도 해서인지 히로미는 사에에게 질투심 같은걸 품었다.

거의 그녀를 만난 3년동안 처음으로 사에가 밉게 보였다.

미웠다.

 

"인기 많아서 좋겠네"

 

히로미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스스로도 궁상맞다고 생각했지만 눈물도 몇 방울 짜낸채 잠들었다.

 

눈을 떴을때는 새벽이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새벽인데도 밖은 꽤 환했다.

히로미는 요즘 너무 스마트폰을 자주 쓰는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뉴스기사 연예란에 어째서인지 사에의 무대가 나와있었다.

이런건 꼭 보기 싫은데도 보게 된다.

내용은 물론 그저 그랬다.

백댄서 한명이 실수해서 사에가 넘어졌다는 그런 얘기를 포장해서 써냈다.

히로미는 무심코 내린 댓글창에 써있는 무수한 비난을 보고 나서야 쓴 웃음을 지었다.

 

"데뷔한다해도 좋은 소리 들어먹긴 글렀구만"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둘째날에는 슈코의 무대가 아침에 준비되어 있었다.

어차피 올라가려면 같이 가야하니 남은 멤버들도 구경이라도 할 겸 다들 무대로 모였다.

평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무대의상을 입은 슈코는 엷은 화장을 하고 나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했다.

사에와 시즈쿠가 발을 동동 구르던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럼 갔다올게"

"그래 긴장하지 말고"

 

무대에서 슈코를 부르자 슈코는 평소의 페이스대로 사뿐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슈코가 고개를 내밀자마자 무대 밖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울려퍼졌다.

사에가 등장했을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갓 신인인 슈코가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라는건 슈코의 인기를 짐작하게 했다.

 

"엄청나구만"

"슈코는 데뷔 전부터 인기는 엄청 많았으니까"

 

슈코의 팬들이 얼마나 그녀의 정식 데뷔를 기다렸는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각종 잡지에서도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그녀의 데뷔를 바라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찌보면 그때부터 차이가 난다는걸 알았어야했다.

 

페스는 밤까지 계속해서 진행 될 예정이었지만 이미 모든 아이돌의 무대가 끝난 그들이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먼저 올라갈까?"

"그래도 되요?"

"뭐 너랑 아야메는 먼저 올라가도 되지"

"그러면 그냥 올라가요"

 

왠지 교토에 계속 있으면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드는것만 같았다.

아야메도 승낙하고는 곧장 짐을 싸서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고는 둘은 내내 잠에 빠져있었다.

 

"얘들아 일어나라"

 

눈을 부비면서 아야메와 히로미가 하품을 하며 일어났을때는 벌써 프로덕션 기숙사 앞이었다.

프로듀서가 다시 차를 타고 내려가면 저녁때 쯤에나 다시 교토에 도착 할 것이었다.

 

"다시 내려가요?"

"내려가야지"

 

어째 조금 피곤해 보이는듯 했지만 프로듀서는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따서 마시고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아야메는 그녀의 방으로 히로미도 그녀의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케쥴도 레슨도 없는 완전한 휴가 상태였다.

 

테이블 위에는 저번에 만들다 만 엑세서리와 갖가지 재료가 널브러져 있었다.

 

"저거나 다시 만들어볼까"

 

히로미는 짐을 챙기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물론 기숙사에서 하는게 맞지만 어째서인지 이런건 사무실에서 해야 더 잘되는듯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사무실로 가던 중에 히로미는 문 너머로 불이 켜져있는 연습실을 보았다.

노랫소리도 안들리고 사람도 없는것 같았다.

 

"누가 불을 켜놓고 갔어..."

 

불을 끄려고 고개를 내민 순간 구석에서 잠 자고 있는 한 여자 아이를 보았다.

 

"유메 아냐"

 

유메는 어째서인지 그림 공책을 펼쳐놓고는 구석에서 자고 있었다.

물론 남의 그림을 함부로 보면 안되지만 히로미는 궁금하기도 해서 살짝 들어보았다.

무대의상을 입고있는 치에와 아리스의 그림이 색칠까지 곱게 되어있었다.

생각없이 넘겨본 뒷장은 순간 아무것도 없는듯 했다.

다시 공책을 덮으려는 순간 자신이 손가락으로 가리고 있는 부분에 무언가가 그려져있는걸 보았다.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푸른색 톤의 날개옷같은 원피스를 걸친 꼭 숲에서 나온 정령같은 느낌을 주는 느낌의 무대의상을 그려져있는 유메 본인인듯 했다.

그림 주변에 왠지 자글자글 종이가 물에 젖어 일어난듯한 자국과 유독 작은 그녀 자신의 그림

히로미는 그걸 보고는 왠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리스랑 치에가 부럽기도 했을것이라고

꼭 자신의 처지가 이입되는것만 같았다.

 

"유메 일어나 감기걸려"

 

어깨를 살포시 흔들자 유메는 곧 눈을 부비더니 일어났다.

 

"깜빡 잠들었네요..."

"여기 공책"

"아 감사합니다 언니"

 

깍듯한 예절이 눈에 띄었다.

 

"유메 나랑 같이 우리 사무실 올라갈래?"

"가서 뭐 하는데요?"

"그림 그리던거 같길래 그거 계속 그리는동안 내가 뭐 만들어줄게"

"괜찮은데..."

"아냐 유메한테 어울릴거같아서 그래"

"정말요? 감사합니다"

 

유메는 그제서야 방그레 웃어보였다.

히로미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유메는 다 완성된 줄 알았던 그림을 계속해서 더 완성해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히로미는 만들다 만 물건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색색의 비즈를 꿰고 어느 장신구가 어울릴까 유메의 머리를 바라봤다가 다시 내려다보았다가

고심히 하나씩 하나씩 꿰고 있었다.

 

"유메"

"네?"

"다른 애들 부러운거야?"

 

유메는 싱긋 웃기만하고 말은 아꼈다.

히로미는 너무 자극적으로 나왔나 싶었지만 그래도 묻고싶은건 어쩔 수 없었다.

 

"실은 부럽기도 해요 근데 저도 팬 분들도 있고해서 지금도 좋아요"

"그러면 너도 데뷔 해달라고 하면 되는거 아냐? 너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

"기다려야죠 다른 애들 때문에 프로듀서도 많이 바쁘고 힘드실텐데"

 

히로미는 한방 먹은듯 멋쩍에 웃어보였다.

당장 어제 거의 반 애원하듯 징징대던 그녀의 모습에 비해 유메는 어째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프로듀서도 언니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유메는 기특하네"

 

언니라

유메는 그 언니란 말을 철썩같이 믿고있을게 분명했다.

아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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