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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X 아이돌 마스터] 두 송이의 꽃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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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6, 2015 02:05에 작성됨.

원작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혼고 아키요시
아이돌 마스터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다음 날 오후 1시. 모든 준비를 마친 쿠레미 탐정 사무소에 프로듀서와 유키호가 방문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표현했지만, 쿄코가 메일을 확인한 것 외엔 눈에 띄는 행동은 없었으므로 아미가 보기엔 무슨 준비가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쿄코는 아미가 입수한 범인의 데이터를 유키호와 프로듀서에게 보여줬다. 프로듀서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범인의 얼굴을 씹어 먹을 기세로 몇 번이고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쿄코와 아미는 자료를 확인한 의뢰인들을 소파에 앉히고 그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방문 첫날과 같은 구도. 이번엔 쿄코가 먼저 말문을 틀었다.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선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하기와라 유키호 씨가 기억하고 있는 단편적인 기억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거였습니다.”
BAKU 설계자가 유키호의 아바타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곳에 기억 데이터를 삽입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상당히 정밀한 기술이라고 그러더군요. 구조를 꿸 정도로 아바타를 오랫동안 관찰하지 않으면 힘든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범인은 그 기술을 이용해 하기와라 유키호 씨에게 일종의 최면을 걸고 있었습니다.”
“최, 최면이요? 그게 뭐죠?”
유키호가 불안에 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기와라 유키호 씨가 남자에게 익숙해지도록. 저는 그게 바로 최면의 내용이라고 추측합니다.”
대체 왜? 이해가 되질 않았는지 프로듀서와 유키호가 서로 멀뚱거리며 눈을 맞췄다.

“목적은 아직 모릅니다. 하기와라 유키호 씨가 남자에게 익숙해지면 저쪽에서 얻을 이익이 뭔지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죠. 애초에 파파라치가 스크린 샷으로 협박한 것부터가 연관이 없어 보이니까요. 이 점도 현시점에선 의문입니다. 하지만…….”
쿄코는 운을 떼며 유키호와 프로듀서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길 기다렸다가, 씨익 교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시길. 쿠레미 탐정 사무소는 수많은 실적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의뢰는 반드시 해결할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제 협력이요?”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아바타에 전문가가 보내준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할 겁니다. 일종의 패스워드를 걸어둘 것인데, 하기와라 유키호 씨 본인이 아니면 로그인할 수 없도록 보안 수준을 높이는 것이죠. 하기와라 유키호 씨는 제가 지정한 URL로 로그인하시면 됩니다.”
이후 프로듀서와 유키호가 이야기를 이해하고 협조하겠다고 하기까지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자아, 그럼 설명도 끝났으니……. 조수 군. 조수 군은 먼저 지정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접속은 사무소 바깥에서 하게나.”
아미는 고개를 끄덕이곤 사무소를 나서려 했다. 작전 내용은 말끔히 숙지했으므로 아미는 머뭇거림 없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사무소를 나서려 했으나,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유키호가 기운 없이 중얼거리는 걸 간신히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이런 식으로 괴롭히다니……. 절 싫어해서 그런 거겠죠?”
“유키호, 진정해. 나쁜 놈들이 저지른 짓이잖아. 유키호가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어.”
프로듀서가 달랬으나 유키호의 기운을 북돋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유키호의 텐션은 한없이 낮아지기만 했다.

“죄송해요……. 저 여전히 글러 먹었죠? 아이돌 업계에 들어오고 나서 파파라치도 몇 번 겪었고 신문에 악질적인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이래요. 변한 게 없네요……. 저…….”
유키호의 목소리가 촉촉해진다. 아미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곧바로 고민을 접었다. 손수건보다 더 효과적인 물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키호의 배에서 가늘고 애처로운 바람 소리가 울렸다.
아미, 프로듀서, 쿄코의 시선이 유키호의 배로 향했다.

“앗, 저 그게…….”
유키호의 얼굴이 붉게 물들며 열기가 솟아올랐다. 목소리에선 이미 물기가 말랐다.
아미는 바로 이것 때문에 손수건을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쿄코 씨, 작전을 30분이나 1시간 정도 뒤로 늦춰도 되나요?”
“흠, 상관없다. 무슨 일이든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서 실행하는 게 좋지.”
쿄코는 아미의 의도를 파악하고 태연하게 답했다.
소장의 허가를 받았다. 아미는 싱글벙글 웃으며 유키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유키호가 여전히 붉게 물든 얼굴로 영문을 몰라 하지만 아미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로듀서에게 던지듯 말했다.

“잠깐 데려갈게요!”
“어? 아, 으응. 변장은 하고 나가렴.”
잠시 멍해 있던 프로듀서가 가까스로 대답한다. 이제야 아미의 의도를 읽었나보다. 아미는 여전히 당황해하는 유키호에게 모자와 선글라스를 씌우고 그대로 끌고 나와 사무소를 나섰다.
아미는 유키호를 나카노 브로드웨이 3층으로 데려갔다. 목적지는 타코야키 가게.

“저기, 여기는…….”
“배고프지?”
“아, 그, 그러니까…….”
유키호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려 고개를 가로저으려 했으나 유키호의 배가 주인보다 먼저 솔직하게 대답했다.
유키호는 부끄러웠는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작게 끄덕였다.

“요즘 마음고생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가서…….”
그럴 만도 하다. 유키호는 지금 악질적인 사건에 휘말렸으니까. 누군가가 자기를 감시하는 것도 모자라, 사칭까지 하여 사건을 위조하려 한다. 자칫 잘못하면 사회적인 위상이 곤두박질 칠 수도 있는 위기상황. 식욕이 감퇴하는 게 당연하다.

아미가 타코야키를 주문하는 동안 유키호는 가게 근처 벤치에 앉아 아미를 기다렸다. 유키호는 타코야키 냄새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누가 자기를 알아볼까 싶어서. 이런 얼빠진 모습을 누가 사진으로 남길까 봐.

유키호의 걱정과 달리 유키호 앞을 지나가는 여고생, 회사원, 택배 기사 등은 유키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간다. 유키호는 안심하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곤 화면을 열심히 터치하며 인터넷 창을 켰다.

“블로그 해?”
“꺄앗!”
깜짝 놀란 유키호가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양손에 타코야키를 들고 온 아미가 옆에 앉아 미안하다는 듯이 멋쩍게 웃었다.

“미안. 놀래려고 한 건 아니었어. 어쩌다 보니 화면이 보여서…….”
“아, 아니. 놀란 내 잘못이니까……. 나는 항상 왜 이럴까. 정말 글러먹었어.”
유키호는 아미에게서 타코야키를 받았다. 한손은 여전히 핸드폰을 쥐고 있었으므로 나머지 한 손으로만.

“블로그가 취미야?”
“응? 으응. 그러니까…….”
“아, 내 이름은 아이바 아미. 아미라고 불러줘.”
“어, 아미 쨩……. 앗!”
“쨩?”
“미, 미안, 아는 사람 중에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아미 쨩이라……. 괜찮네! 그렇게 불러줘!”
아미가 시원스럽게 웃자 주뼛거리던 유키호도 어색하게나마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브, 블로그 물어봤지? 응. 취미야. 아……. 저기 우리 비슷한 또래지?”
“고등학생?”
“응.”
“비슷하네! 편하게 말해도 돼!”
“고마워. 나도 유키호라고 불러도 돼. 블로그 하는 게 취미야. 포스팅을 하면 팬분들께서 코멘트를 달아주셔. 그게 얼마나 마음에 위안이 되는지 몰라.”
유키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블로그 첫 페이지를 아미에게 보여줬다. 음반 녹음에 관한 포스팅이었는데 코멘트 수가 3자리에 달했다. 리스트를 내려도 스크롤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크롤이 끝나도 다음 페이지를 표시하는 숫자가 보일 테지.

“굉장하네. 인기 아이돌이구나. 진짜!”
“헤헤, 고마워.”
“이거 다 일일이 읽어? 힘들겠다.”
“응,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보고 있어. 아, 이것 봐봐. 여기 맨 처음에 단 사람.”
“낭만@핑크? 이 사람?”
유키호는 아미에게 포스팅 날짜와 시간, 그리고 ‘낭만@핑크’ 닉네임이 남긴 코멘트의 날짜와 시간을 번갈아 보여줬다. 포스팅 시간과 코멘트 시간이 별로 나지 않는다.

“이 분은 포스팅을 올릴 때마다 제일 첫 번째로 코멘트를 달아주셔. 1등을 뺏긴 적이 없어. 그런데도 포스팅 내용은 꼼꼼히 읽으셨는지 내용에 관한 이야기도 꼭 써주셔.”
“굉장하네……. 속독이랑 타자가 엄청 빠른 건가?”
유키호는 이 사람이 언제부터 코멘트를 달기 시작했는지를 시작으로 코멘트 내용에 대한 감상을 거쳐 다른 팬들의 이야기까지 즐겁게 털어놓았다. 아까처럼 침울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올 때마다 유키호의 인상에 생기와 활기가 차올랐다.

결국 유키호의 수다가 길게 이어진 탓에 타코야키가 식어버렸다.

“미안, 너무 떠들었지?”
“괜찮아. 식어도 맛있다. 여기에 차도 있으면 더 좋을 텐데…….”
“나, 차 끓이는 것도 취미야! 나중에 가져올게!”
둘은 타코야키를 깨끗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온 김에 소화도 할 겸 잠깐 나카노 안에서 산책하자.”
아미는 유키호의 손을 잡고 나카노 브로드웨이를 돌아다녔다.

“노래 좋다.”
“이거, 나랑 같은 사무소의 치하야 쨩이 부른 거야. ‘잠자는 공주’라는 노래야.”
“나중에 음원이라도 사볼까? 앗, 이 곡. 알아! 이거 유키호가 부른 거지? CM에서 봤어. 이 곡도 좋네!”
“고, 고마워!”
2층 음반 매장에선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정말 정교하게 만들었네……. 그러고 보니 우리 사무소에서도 피규어 기획이 나올 수도 있단 이야기를 들었어.”
“현실 인물을 피규어로?”
피규어 매장에선 이런 이야기를,
“저 책 마코토 쨩이 읽는 걸 봤어.”
“옛날 순정 만화 같은데…….”
서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1층에 갔다 다시 4층으로. 4층에서 3층, 2층, 1층. 둘은 짧은 시간 동안 나카노 브로드웨이를 마음껏 돌아다녔다.

사무소로 돌아가기 전 문 앞에서 유키호가 말했다.

“고마워. 긴장을 풀어줘서…….”
“긴장이 풀렸다니 다행이네.”
“아미 쨩은 대단하구나. 나랑 비슷한 또래인데 이렇게 똑 부러지고. 어른스럽고. 난 계속 이래…….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용기도 없고 겁쟁이야 난…….”
유키호의 얼굴에 다시금 그늘이 드리웠다. 아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유키호의 말을 부정했다.

“난 아직 애야. 그리고 오히려 유키호가 더 대단한걸? 나랑 같은 또래인데 아이돌이잖아. 그것도 자기를 바꾸고 싶어서 아이돌이 된 거라면서?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건 용기가 있단 증거래.”
‘우리 소장님 말씀’이라며 아미는 덧붙였다.

“나, 난…….”
“거기까지. 유키호 자신이 설령 자기를 겁쟁이라 생각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유키호 네가 용기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 그것만은 알아줘.”
유키호는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 도는 혈색을 보아하니 아미의 격려가 통한 모양이었다. 유키호는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친 둘이 사무소로 돌아가니

“지금 막 호출하려던 참이었다.”
쿄코가 미묘한 표정으로 아미와 유키호를 맞이했다. 너무 오래 돌아다녔나?
“하지만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혈색이 좋아진 걸 보니 조수 군의 특효약은 잘 들었나 보군. 그럼 불만은 없어. 자, 그럼 계획대로 해볼까.”
쿄코는 아미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며, 자신만만하게 프로듀서, 유키호, 아미를 차례로 쓱 훑어보았다.

약속 장소는 쿨롬의 어느 공터. 주변은 쿄코가 설치한 방화벽으로 고립되어 외부에서 다른 이가 볼 걱정은 없다. 아미는 먼저 로그인해 유키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미는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세며 로그인 포인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언제든 디지몬을 꺼낼 수 있도록 디지바이스를 조작할 준비를 하며.

3……. 아미의 손이 고글에 닿았다.
2……. 아미는 고글의 터치 구간을 손끝으로 굴리며,
1……. 숨을 죽였다.
0……!

로그인 포인트에 유키호의 아바타가 착지한다. 유키호가 깃털처럼 하늘하늘 내려앉자 아미는 디지바이스를 조작하며, 그와 동시에 유키호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양팔을 넓게 벌리고 넘어져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리에 무게를 실으며.

로그인한 유키호의 몸이 어떤 충격을 받고 뒤로 튕겨 나간다. 아미는 유키호의 몸을 받아 안아 들었다.

유키호의 몸, 아바타에서 데이터 덩어리가 튕겨 나갔다. 쿠키 데이터라기엔 너무나도 질량이 큰 데이터였다. 데이터 덩어리가 발광하며 순식간에 제 모습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를 미리 주목하고 있던 존재가 있었다.

아미가 유키호에게 뛰어갔을 때, 유키호한테서 분리된 데이터 덩어리처럼 아미의 디지바이스에서 분리된 데이터 덩어리.

둘 중 아미의 디지바이스에서 분리된 쪽이 한발 앞서 제 모습을 찾았다.
생물로 치면 세포에 해당하는 패킷 데이터가 꽃잎 모양을 이루며 모습을 구성한다. 이내 데이터 덩어리가 인간형으로 빚어졌다. 등에 커다란 꽃을 진 요정 같은 디지털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디지몬은 라일라몬이라는 종으로, 아미의 동료 디지몬이다.

라일라몬이 데이터 덩어리에게 달려들었다. 데이터 덩어리는 이제 막 인간형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라일라몬이 데이터 덩어리의 팔을 잡아 뒤로 꺾으며 무릎 꿇렸다.

그러는 중에 데이터 덩어리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이쪽도 꽃 요정처럼 생긴 디지몬이었다.
라일라몬의 몸이 희고 꽃잎 같은 피부인 반면 그 요정 디지몬은 좀 더 인간에 가까운 혈색을 띠고 있었다. 둘 다 꽃의 요정이지만 인상이 묘하게 다르다. 라일라몬은 이름 그대로 라일락 같은 인상, 다른 요정 디지몬은 백합 같은 인상.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 요정 디지몬은 릴리몬이라는 종의 다른 디지몬이기 때문이다.
릴리몬은 팔이 아픈지 예쁘장한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라일라몬을 노려보았다.

유키호가 몸을 추스르며 제대로 섰다. 유키호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저, 저건 디지몬? 해커들이 쓴다는 A.I.프로그램?”
“아바타에 붙어있던 거야. 지금 로그인하면서 보안 프로그램에 막혀 튕겨 나온 거고.”
“저, 저기 다른 디지몬은?”
“아, 내 동료야.”
아미는 그렇게 말하며 디지바이스를 톡톡 건드렸다.

“말 안 했던가? 나 해커야.”
유키호가 화들짝 놀라워한다. 릴리몬을 봤을 때보다 더 크게.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유키호가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디지몬끼리 대치하는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이거 놔!”
릴리몬이 갖은 힘을 쓰며 저항한다. 라일라몬은 릴리몬보다 체격이 더 컸지만 체격차가 무색할 정도로 라일라몬이 애를 먹는 것 같았다.
아미는 유키호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곤 릴리몬과 라일라몬에게 다가갔다.

“유키호 아바타로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미가 강압적으로 묻자 릴리몬은 여전히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그럼 좋은 일을 하려고 그랬다는 거야?”
“그래.”
“좋은 일이 뭔데?”
“내가 말할 것 같아?”
어차피 쉽게 털어놓진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작전을 짰으니까. 아미는 릴리몬을 잡아둘 수단을 꺼내려 디지바이스를 조작했다. 그때였다. 라일라몬이 갑자기 릴리몬을 놓아두곤 아미를 밀쳤다.

아미는 라일라몬에게 뒤로 밀쳐져 쭉 날아가면서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꽃잎 몇 장에 춤추며 떨어지는 걸 봤다. 릴리몬의 꽃잎 색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꽃잎이었다.

꽃잎이 선향불꽃 정도의 자그마한 불꽃을 터트리며 산화한다.
몸에 닿더라도 깜짝 놀라는 수준으로 끝나는 위력. 감쪽같이 속았다!

릴리몬이 유키호의 아바타에서 튕겨 나왔을 때 미리 설치한 건가?!
릴리몬은 이미 라일라몬과 거리를 두어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라일라몬이 분해 하며 입술을 질근 씹는다.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표정이 서로 뒤바뀌었다.

릴리몬은 제자리에서 바로 뒤로 뛰었다. 단 한 번으로 수십 m의 도약을 끝내며 쿄코가 설치한 방화벽에 몸을 기댔다.

릴리몬의 손이 방화벽에 달라붙는다. 손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전자 신호가 방화벽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해체한다.

아미는 디지바이스로 디지몬 사역 프로그램, 디지몬 캡처를 기동했다. 디지몬 캡처가 기동함과 동시에 릴리몬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스캔한다. 목표를 정한 아미는 디지몬 캡처를 조작해 라일라몬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미의 명령을 받은 라일라몬이 날아오르며 릴리몬에게 손을 뻗었다. 꽃봉오리처럼 벌어진 라일라몬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조그마한 반동과 함께 광탄이 발사되었다. 광탄은 그대로 꽃을 찾는 꿀벌……. 아니, 말벌처럼 릴리몬에게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다.

광탄 폭격은 가차 없었다. 릴리몬도 모자라 릴리몬이 기댄 방화벽까지 광탄 세례가 쏟아졌다. 릴리몬에게 해체되던 방화벽이 외부의 충격까지 받으며 산산조각이 난다. 릴리몬은 이미 광탄을 막으려 두 팔을 들고 있었다. 방화벽은 오직 충격만으로 무너져 내렸다.

릴리몬은 무너진 방화벽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얼마간 뛰다 보니 이번에도 방화벽이 릴리몬을 가로막았다.
릴리몬은 방화벽을 등졌다. 릴리몬을 바짝 쫓아온 라일라몬도 릴리몬 근처까지 왔다. 릴리몬은 각오를 다졌는지 비장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아 깍지 꼈다. 깍지 낀 손가락이 이내 나무 넝쿨처럼 엉키며 줄기를 짜냈고, 줄기에서 이파리와 꽃봉오리를 틔웠다.

릴리몬의 꽃봉오리가 살짝 벌어져 총구를 드러냈다.
릴리몬은 꽃봉오리를 들고 라일라몬과 대치했다.

꽃봉오리 vs 꽃봉오리.

라일라몬의 꽃봉오리가 연사형 발칸포라면 리리몬의 꽃봉오리는 단발형 캐논포.

릴리몬이 꽃봉오리를 라일라몬에게 겨누자 라일라몬은 망설임 없이 광탄을 난사했다. 디지몬 캡처를 통해 들어온 명령대로.

광탄이 순식간에 흩뿌려지며 릴리몬과 방화벽을 노린다. 그러나 릴리몬은 그걸 받아치거나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릴리몬은 재빨리 뒤를 돌아 방화벽에 꽃봉오리를 박았다.

라일라몬의 광탄이 릴리몬의 등과 방화벽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광탄이 폭발하며 릴리몬의 눈과 귀와 코를 괴롭힌다. 그러나 릴리몬은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광탄이 방화벽을 두드린다. 릴리몬은 방화벽에서 일어나는 진동을 더듬었다.
우레처럼 퍼지는 진동. 릴리몬은 진동에 맞춰 꽃봉오리의 에너지탄을 방화벽에 쑤셔 넣었다.

방화벽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릴리몬은 이걸 노렸다.

마침 근처에 로그아웃 포인트가 보인다. 릴리몬은 로그아웃 포인트를 향해 날았다. 라일라몬의 광탄이 릴리몬을 쫓았지만 릴리몬은 곡예비행으로 광탄을 모조리 피하곤 그대로 로그아웃 포인트에 도달했다.

릴리몬의 몸이 로그아웃 포인트에 닿자 릴리몬의 몸은 스프링에 닿은 것처럼 순식간에 튕겨 올라 이 지역에서 퇴장했다.
라일라몬은 그걸 멀뚱히 지켜봤다. 더는 들어온 명령이 없으니까.

아미와 유키호가 제법 느긋한 걸음걸이로 라일라몬의 뒤에 섰다.
“수고했어.”
아미가 라일라몬의 팔을 쓰다듬자 라일라몬이 수줍게 웃으며 몸을 안개처럼 분산시켰다. 분산된 데이터가 아미의 디지바이스로 빨려 들어간다.

아미와 유키호는 릴리몬이 빠져나간 로그아웃 포인트로 로그아웃했다.

아미가 사무소로 돌아오니 쿄코가 의기양양하게 컴퓨터 자판을 사정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아미가 들어오기 전까진 유키호와 프로듀서는 숨을 죽이고 있었으므로 사무소엔 오로지 자판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미가 돌아온 타이밍이 마침 작업이 끝난 시점이었는지 쿄코는 엔터 버튼을 유난히 강하게 누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쿄코는 TV에 컴퓨터 화면을 띄웠다.

화면 창에 유키호와 프로듀서는 물론이고 아미도 알아보기 힘든(아미는 디지몬의 힘을 빌리는 신세대 해커라서 구식 해킹 기술에 대해선 모른다.)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산잡한 여러 명령어를 받고 결과를 출력했다.
 
“아바타를 통해 릴리몬에게 심어놓은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지금 행선지와 그동안 자주 다녔던 서버를 추려냈습니다.”
유키호 아바타에 설치한 프로그램은 보안 프로그램만이 아니었다. 쿄코는 유키호의 아바타에 달라붙어 있을 누군가를 추적하기 위한 일종의 발신기를 달았다.

그것이 릴리몬이 아바타에서 튕겨 나왔을 때 릴리몬의 체내에 삽입되었고 프로그램이 제대로 설치될 때까지 아미와 라일라몬이 시간을 벌었다.

“지금 행선지와 릴리몬이 자주 다녔던 서버의 위치가 일치합니다. 오다이바……. 아오미역 근처군요.”
“아오미역이요?”
프로듀서가 반응했다. 이어서 유키호도 짐작 가는 게 있었는지 깜짝 놀라 신음을 흘렸다.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거기 근처에 제프 도쿄가 있거든요.”
“아, 공연장 말씀인가요?”
“네, 거기서 바로 내일 유키호가 미니 라이브를 하기로 했거든요.”
“그럼 파파라치의 다음 목표는 미니 라이브일 가능성이 크군요.”
파파라치 해커의 목적은 공연 방해인가?

“혹시 모르니 공연은 중지해야 하나…….”
프로듀서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하자 유키호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달라졌다.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듯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아미 눈에는 유키호의 눈동자에서 오렌지색 불꽃이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취소는 안 돼요!”
유키호가 드물게 고압적으로 발언하자 나머지 셋의 시선이 그대로 유키호에게 몰렸다. 시선과 함께 부담을 느낀 유키호의 어깨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미니 라이브지만 기대하시는 팬분들이 계시는데……. 그러니까……. 그…….”
유키호의 눈빛은 여전히 뜨겁게 타올랐지만 열기가 가슴과 목까진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유키호의 목소리가 완전히 잠기기 전에 쿄코가 말했다.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파파라치가 뭘 노리는지 모르는 이상 공연을 섣불리 진행하는 건 말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파파라치의 목적이 당신이 아니라 팬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뭐, 그 파파라치가 공연장 테러라도 벌일 목적이 아닌 이상 그럴 확률은 희박합니다만…….”
쿄코의 입에서 테러라는 말이 나오자 유키호는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쿄코는 떨고 있는 유키호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고 재차 고했다.

유키호가 가까스로 진정하자 쿄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다시 사건을 정리해볼까요. 가면을 쓴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아바타가 EDEN에서 남성들과 같이 찍은 스크린샷이 대금을 요구하는 메시지와 함께 하기와라 유키호 씨에게 왔습니다. 아바타를 조종한 사람은 유키호 씨가 아닌 릴리몬.”
릴리몬은 유키호의 아바타를 이용해 유키호에게 일종의 최면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유키호의 아바타가 멋대로 로그인하는 사건이 발생. 유키호의 아바타가 파파라치 해커와 접촉했다.
 
오늘 릴리몬의 로그와 행선지를 찾아본 결과 내일 열리는 유키호의 미니 라이브 장소 근처에서 릴리몬의 흔적이 나왔다.

“의문점은 이렇습니다. 왜 이런 짓을 했나? 파파라치가 단순히 돈을 타내려고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쓸데없는 짓을 할까요? 금품을 요구한 협박 단계까진 단순합니다. 돈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이미 그게 목적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 이후가 문제죠. 범인의 목적은 공연을 방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무언가가 더 있습니다.”
“목적은 모르지만……. 여태까지 범인이 유키호를 노린 건 확실합니다.”
프로듀서가 괴로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일 범인이 공연장에 나타날 가능성은 있는 거죠?”
“네, 릴리몬의 로그를 봐선 현장으로 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공연장의 경비를 강화해서 범인을 잡으면 해결되겠군요. 여태까지 모은 증거 자료가 있으면 경찰도 움직일 테고요!”
“근본적으론 그렇죠. 흠……. 그럼 공연은 예정대로 여실 겁니까?”
쿄코의 질문에 유키호가 끼어들었다.

“저, 전 괜찮아요. 범인만 잡을 수 있다면. 단지 팬분들께서 다치실까 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럴 확률은 낮습니다.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말리고 싶어서 꺼냈던 이야기입니다.”
“그럼 꼭 하고 싶어요!”
이 시점에서 쿄코는 결국 포기했는지 입맛을 한번 다시곤 심각한 표정을 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조수를 붙여드리겠습니다. 라이브엔 전자기기도 사용되죠? 그럼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땐 전자적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인 조수 군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미는 자기가 언급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장 체포면 경찰이나 경비로 충분할 텐데? 쿄코의 말은 일리가 있지만.

“조수 군. 한 번 맡은 의뢰는 끝까지 책임지는 게, 적어도 그런 시늉이라도 하는 게 탐정의 의무다.”
아미의 속마음을 간파한 쿄코가 일침을 놓았다. 아미는 뜨끔한 나머지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게 사건은 하루의 유예를 두고 잠시 정체됐다. 사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라이브 당일인 다음날부터. 아미는 라이브 스태프 자격으로 유키호 일행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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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완결일지 아니면 5화 완결일지 다음 화를 봐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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