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이벤트] 12년 후의 그녀들은 (전편)

댓글: 3 / 조회: 1957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6-21, 2015 01:51에 작성됨.

예전에 연재했었던 5편짜리 장편,  <하루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와 같은 세계관입니다만, 굳이 이걸 읽지 않아도 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방 안이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암흑은 아니지만 어두침침하다.

 

참으로 편안한 어둠이다.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어두운 곳에서 눈을 붙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낮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벌써 1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똑똑똑

" 하루카! 하루카~! "

 

리츠코 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일에 관련된 용무 때문이겠지.

 

" 하루카! 문 열어! "

 

일어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일어나 문을 열고 리츠코 씨와 대면하였다.

 

" 하루카! 빨리 가자! 촬영 있잖아! "

 

" 또 촬영이에요? "

 

" 응, 빨리 나갈 준비 해. "

 

귀찮다, 매우 귀찮다.

재미있는 것은 성실함으로 평가 받던 내가 이렇게 귀찮아하는 것이다.

분명 그 때는 그 부지런함으로 모두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나태해질 줄이야.

관록이 쌓인 다는 것은 이런 부정적인 영향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 게으름 피우면 안되지, 우리 사무소 대표 아이돌이! "

 

" 그렇겠죠...."

 

나는 분명 765 프로덕션의 대표 아이돌이다.

다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의 안티팬 마저도.

 

그 때라면 무언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나 대신 호시이 미키라던가, 키사라기 치하야라던가.

그런 아이들이 대표 아이돌로 불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렇지 않은 이유는.....

 

" 12년 차나 되었으면 좀 거물 답게 행동해봐! "

 

벌써 내가 데뷔한지 12년이나 되던 때였으니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무더운 여름 날, 차량 안은 정말 지옥이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봐도 이 더위는 감당할 수 없다.

 

" 조금만 참아봐, 한두 번 더위 먹어보나. "

 

이상하게도 리츠코 씨는 매번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벌써 28살이다.

운전 면허도 땄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벌써 어엿한 외제차도 뽑았단 말이다.

 

그런데도 리츠코 씨는 프로듀서라는 명목으로 나를 따라다닌다.

분명 그녀는 프로듀서 부의 차장일 터이다.

차장이라는 직위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나를 따라다니나?

 

" 리츠코 씨? "

 

" 응? 왜 그래? "

 

" 어째서 저를 굳이 이렇게 직접 데려다 주시는거에요? "

 

" 아, 그거? "

 

리츠코 씨는 아주 잠시동안 생각하더니, 즉답하였다.

 

"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12년 전부터 그래왔잖아. "

 

" 설마 아직도 절 못 미더워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

 

" 아하하하.... 설마! "

 

리츠코 씨는 시원하게 웃어넘겼다.

사실, 리츠코 씨는 나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단순히 동료이기 때문은 아니다.

아키즈키 리츠코는.... 그래....

그 때 그 시절의 동료이기 때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수십, 아니 수백 번은 더 봤을 촬영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십 번도 더 봤을 감독의 얼굴을 본다.

 

" 아마미 씨! 어서 오세요! "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굽신거린다.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왠지 자랑스러워진다.

 

오늘은 분명 다른 아이돌들도 출연한다고 했었다.

인사라도 해야될 것만 같다.

물론 그럴 의무는 없지만, 내가 이렇게하는 이유는,

12년 전 신참 아이돌일 때부터 다른 아이돌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 힐끗힐끗 쳐다보던 버릇 때문인 것도 같다.

 

" 현재 다른 아이돌들은요? "

 

" 아, 각자의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나는 다른 아이돌들의 대기실 문 앞 복도에 섰다.

 

내가 이러는 것은 물론 그 버릇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렇게 하나하나 찾아가는 귀찮은 짓은 하지 않는다.

왜인지,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여질 풍경이.....
.

....그립기 때문이다.

 

덜컥

 

" 으음..... "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자 아이 3명이 소파에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 저기.....안녕, 얘들아? "

 

" 응? 누구.... 으에에에에?!!!! "

 

" 아, 아, 아, 아마미 하루카?!!!!!!!!!! "

 

3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하였다.

 

" 아, 안녕하세요! 마,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

 

" 아, 으응... "

 

반응이 격하다.

이런 반응을 보려고 이 곳에 온 것은 아니다.

.

....나는 실망하여 그냥 간단한 인사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더 이상 그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일을 마치고 사무소의 내 방으로 돌아왔다.

엄청나게 성장한 이 큰 사무소에서 유일하게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곳은 역시 내 전용실이다.

 

휴대폰을 켜서 전화번호부를 살펴본다.

그 때 그 시절 동료들의 연락처가 그대로 남아있다.

전화를 해보려했지만 곧 관두었다.

 

그 순간에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치하야 쨩이다.

 

 

" 아, 치하야 쨩! 잘 지내고 있어? "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간단한 안부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끝나기 전에 나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 응? 지금 일본에 와있다고?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6}

 

" 치하야 쨩!!!! "

 

" 아, 하루카. 왔구나. "

 

" 이게 얼마만이야! 키타자와 시호 건 이후 1년 만인가? "

 

" 그래, 벌써 그렇게 되었네."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온 치하야 쨩을 만나게 되니 우울함이 조금 풀린 듯 하다.

우리는 대략 1시간 반 정도를 수다를 떨었다.

대화의 소재는 주로 치하야 쨩의 미국 생활이나 나의 일본 생활이었다.

 

나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치하야 쨩이 아까부터 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이만 대화를 마치려 하였다.

 

" 치하야 쨩,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얼마나 여기 있는거야? "

 

" 음... 한 10일 정도. 이번에는 휴가를 길게 잡았으니까. "

 

좋아, 그럼 10일 정도는 계속 만날 수 있겠구나.

이만 헤어지려고 할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질문 한 마디를 치하야 쨩에게 던졌다.

나의 욕망이 담긴 질문을.

 

" 치하야 쨩, 혹시... 아이돌 복귀할 생각은 없어? "

 

치하야 쨩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하였다.

 

" 미안, 나는 이제 더 이상 아이돌 활동을 할 생각이 없어.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7}

 

사무소로 돌아와, 내 방에 들어간다.

성장할대로 성장한 이 큰 사무소에서 유일하게 안식처가 되는 곳은 이 나의 전용실 뿐이다.

나는 의자에 걸터 앉아, 창 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치 하늘에 10년 전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하였다.

 

때는 11년 전, 그러니 내가 데뷔 1주년 차를 맞이하던 때였을 것이다.

사무소 사람들은 나를 축하해주었다.

그 때 그 축하는 아직도 내 기억에 뚜렷히 남아있다.

 

치하야 쨩, 유키호, 마코토, 이오리, 야요이, 아즈사 씨, 리츠코 씨, 히비키 쨩, 아미, 마미, 타카네 씨.

심지어 사이가 미묘했던 미키마저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나는 매우 기뻤다.

물론 데뷔 1주년 차라는 것 자체로도 기뻤다.

하지만 더욱 기뻤던 것은 나의 동료, 나의 친구들이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주었던 것이다.

나의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축하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모레였던가, 글피였던가.

아무튼 데뷔 12년 차 행사가 곧 열린다.
.

.... 그 때는 과연 어떨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8}

 

돌아오는 길에 하기와라 가에 들렸다.

유키호의 얼굴 본지도 꽤 되었다.

요즘 옛 동료들의 얼굴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띵동

 

초인종을 울리고 나온 것은, 정말 우연찮게도 유키호 본인이었다.

 

" 어? 하, 하루카 쨩?! "

 

" 여어, 유키호. 오랜만이네."

 

유키호의 말로는, 막 어딘가로 외출하려던 참이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예전처럼 기나긴 수다를 떨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간단한 안부 인사만 하고 가려던 참에 또 다시 질문 하나를 던졌다.

 

" 유키호.... 그.... "

 

" 응? 뭔데 그래? 편히 말해봐, 하루카 쨩. "

 

" 혹시 아이돌... 복귀할 생각은 없는거야? "

 

유키호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더니,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회답하였다.

 

" ....미안해, 이제와서 복귀 같은건.... "

 

애초에 기대도 안했지만, 왜 이리 서러울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9]

 

요즘 내가 다소 이상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성격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돌 활동 12년을 하면서 여러 풍파를 겪었으니, 자연스레 성격이 거칠어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은 이러한 사항이 아니다.

내가, 왠지 우울해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아이돌이 우울해보인다니, 꽤나 치명적이다.

사실, 사무소 사람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에서도 이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나의 약물 복용 의혹까지 제기한 기사도 있었다.

물론 근거 없는 사실이므로 금방 의혹이 풀렸지만.

 

나는 내가 왜 우울한지 안다.

되도록이면 우울해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왜 우울한지 알면서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니 더더욱 우울해지는 것이다.

 

작년의 키타자와 시호 사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사건을 통해 야부키 카나와 키타자와 시호는 서로 화해하고 돈독한 우정을 맺게 되었다.

진정한 친구 사이가 된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는 생각하였다.

 

" 나에게는 친구가 남아있는가? "

 

내가 신참 아이돌일 때 동료였던 아이들을 열거해보자면,

키사라기 치하야, 호시이 미키, 하기와라 유키호.

키쿠치 마코토, 미나세 이오리, 타카츠키 야요이.

미우라 아즈사, 아키즈키 리츠코, 후타미 아미.

후타미 마미, 가나하 히비키, 시죠 타카네.

 

그리고 라이벌로,

토고지 레이카, 사노 미코코로, 카미이즈미 레온.

아마가세 토우마, 이쥬인 호쿠토, 미타라이 쇼타.

 

그리고 다른 사무소의 후배로,

시마무라 우즈키, 시부야 린, 혼다 미오.

히다카 아이, 아키즈키 료, 미즈타니 에리.

 

이 아이들이 모두 경쟁하며 아이돌 춘추 전국 시대를 형성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 그 때를 생각하면 그 때를 헤쳐나간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진다.

 

하지만, 그 극한의 경쟁 시대는 이제 끝났다.

또 다른 시대가 열렸다 닫히고, 또 다른 시대가 열리기를 반복하였다.

그 수많은 동료들과 라이벌들 중, 이제 이 시대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와 같은 길을 걷던 그 많은 사람들은 하나둘 은퇴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나, 아마미 하루카 혼자만이 남게되었다.

 

그 뒤에도 카스가 미라이, 야부키 카나 등의 후배들을 만났다.

그런데 과연 그 아이들을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이돌 계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굽신굽신 거린다.

이런 사람들에게 '친구'라는 호칭은 적절한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외롭다.

홀로 아이돌 계에 남아있고, 더 이상 친구는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돌 활동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벌써 은퇴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이런 상황,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하는 것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0}

 

" 에? 만나주지도 않겠다고? "

 

" 예, 지금 이오리 님은 매우 바쁘시기 때문에... "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 것은 아니잖는가.

이오리와는 만난지 한 3년은 되어서 환영해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이런 문전박대를 당하다니.

 

나는 이를 악 물고 경비원을 밀어 제꼈다.

 

" 드,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

 

" 이오리!!!!!!! 나 하루카야!!! 어서 나와!!!! "

 

무지 넓은 이 미나세 가에서 소리 지른들 그 곳까지 들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작정 이오리를 불러보았다.

그 직후, 경비원이 내 팔을 붙잡아 끌어당기려 하자, 나는 있는 힘껏 째려보며 말하였다.

 

" 지금 어딜 손 대는거죠? 지금 현역 아이돌의 팔을 함부로 잡는건가요? "

 

" 아, 아니 그게... "

 

경비원은 당황하더니 어느새 내 팔을 놓았다.

아무래도 잘못될 것을 생각하여 겁난 것이겠지.

 

내가 이오리를 찾으러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하루카 씨!!! "

 

이건 꽤 익숙한 목소리.

그렇다고 해봐야 1년 만에 듣는 목소리이다.

 

" 아... 야요이.... "

 

타카츠키 야요이. 25세.

그 조그마하던 어린 아이가 벌써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하였다.

뭐, 겨우 3살 차이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생각해보니까 야요이는 키타자와 시호와 동갑이다.

뭐야, 이거. 무서워.

 

아무튼 야요이는 작년, 키타자와 시호 사건 직전에 은퇴했다.

사실, 야요이와 아미, 마미의 은퇴가 그 사건의 계기가 된 것이다.

 

야요이, 아미, 마미는 작년에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즉, 그 3명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나의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반갑게 인사했다.

 

" 아, 안녕, 야요이. "

 

" 헤헤, 안녕하세요! "

 

야요이는 예전과 다름 없이 밝게 인사해주었다.

 

" 혹시 이오리 만나러 온거야? "

 

" 아, 예.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에헤헤.... "

 

좋은 기회다.

설마 이오리가 야요이까지 만나지 않을리가 없다.

이 기회에 편승해서 만나야지.

 

역시 경비원은 야요이는 막지 않고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1}

 

방 안으로 들어가보니 커튼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 결국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왔네. "

 

발코니에서 커튼을 젖히고 나온 것은 이오리였다.

역시 부잣집 영애.

하늘하늘 거리는 옷이 바람에 펄럭이니 25살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반짝인다.

 

" 이오리, 오랜만이네. "

 

" 그래, 오랜만이네. 3년만인가. "

 

이오리는 내가 반갑지 않은건가.

아니면 예전의 츤데레 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건가.

그렇다면 왜 굳이 만남을 거부했는가.

 

" 야요이? 무슨 일로 찾아온거야? "

 

" 아, 그, 그게 말이지... 에헤헤... "

 

야요이는 나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더니 이내 말하였다.

 

" 저, 저기... 도, 돈 좀 빌려주었으면 해서... "

 

그 말은 나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다.

야요이가, 그 야요이가 그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야요이는 아직도 돈에 쪼들려 사는 것 같았다.

하긴, 야요이 본인도 25살인 성인에다, 동생들은 현재 중, 고등학생일터이다.

하지만 동생인 카스미도 현재 아이돌 활동을 하는데도 돈이 부족하다니, 무슨 일일까.

그러고보니 은퇴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했는데 혹시 그것이 잘 안된 것일까.

 

아니, 애초에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야요이가 이오리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말 자체를 한 것이다.

역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해가는 것일까.

 

" 알았어.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

 

이오리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 그건 그렇고, 하루카는 대체 무슨 일이야? "

 

사실, 나는 이렇게까지 급하게 만나러 올 필요는 없었다.

 

" 아... 그.... 오랜만에 이오리 얼굴이 보고 싶었달까...."

 

" ....지금 농담하는거지? 얼른 본론을 말해줄래? "

 

나는 이오리에게, 유키호와 치하야 쨩에게 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 이오리... 호, 혹시 아이돌 다시 하고 싶은 생각 없어? "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일까?

분명 대답은 정해져있을 터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러는 것일까?

 

" .....바보 같은 질문이네. 정말로. "

 

이오리는 코웃음을 치더니 대답하였다.

 

" 나는 지금 업무 때문에 바쁜데 그 질문 하나하려고 온거야? "

 

대답하자면 '응'이다.

나도 내가 참 바보 같다.

겨우 이 질문 하려고 여기까지 오다니.

왠지 이런 질문은 전화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대면한 상태에서 해야할 것만 같았다.

 

" 대답할 가치도 없어. 이제와서 아이돌로 복귀해서 뭐하겠다는건데? "

 

나는 야요이 쪽을 바라보았다.

야요이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내가 바라보니 당황해서는, 손사래를 치며 말하였다.

 

" 저, 저도.. 아, 아이돌로 복귀하면 돈은 다시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복귀하는 것은 조금.... "

 

예상했던 답이다.

이오리도, 야요이도.

하지만 유키호 때도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무너지는 듯하다.

 

" 너는 언제까지 아이돌 일을 한건데? "

 

" 으응? "

 

이오리는 반대로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 벌써 12년이나 했잖아? 게다가 28살이라고?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2}

 

확실히, 오래하기는 하였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돌 활동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현재 아이돌 계에서 이 정도로 머물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일 것이다.

즉, 나는 아이돌 계 제일의 터줏대감이 되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하나 뿐이다.

나는 아이돌을 하고 싶으니까.

 

나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유명한 도쿄 돔 라이브 이후에도 나의 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아이돌 은퇴를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의 동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나의 꿈을 이어가면서도 다른 아이들이 내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걸까.

 

사무소 복도를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간다.

새어나오는 빛 하나 없이 하늘이 흐린 것이, 어째 비가 내릴 것만 같다.

 

" 아, 아마미 선배. "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키타자와 시호였다.

그 옆에는 야부키 카나가 있었다.

 

" 무슨 일이세요? 왠지 힘이 없어 보이는데요."

 

" 헤에, 네가 내 걱정을 해주다니, 별 일이구나."

 

일부러 키타자와를 비꼼으로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보지만, 그것에 속아넘어갈 아이들이 아니었다.

 

" 저기 어디 혹시 아프신건가요? "

 

" 굉장히 우울해 보이시는데요...."

 

나의 후배들.....

키타자와와 야부키는 나에게 좋은 후배이자, 동료이다.

하지만, 나의 친구는 아니다.

어차피 우리들은 아이돌 계의 선후배 관계일 뿐이다.

 

" 아니...... "

 

나는 나란히 서 있는 둘을 지나치며 한 마디를 흘렸다.

 

" 단지 너희들이 부러울 뿐이야.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3}

 

내 전용실 벽에는 사진들이 걸려져있다.

저 많은 사진들 중에, 12년 전 데뷔 때부터 매년 데뷔 기념식 때 찍은 사진들 또한 붙어있다.

 

11년 전, 데뷔 1년 차 때는 모두가 나의 곁에 있었다.

10년 전, 데뷔 2년 차 때도 모두가 나의 곁에 있었다.

9년 전, 데뷔 3년 차 때는 리츠코 씨가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프로듀서로서 우리에게 남아주었다.

하지만 8년 전, 데뷔 4년 차 때 아즈사 씨가 은퇴를 함으로써, 나의 동료는 서서히 떠나가기 시작했다.

 

7년 전, 데뷔 5년 차, 미키가 겨우 19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 때 당시에는 '전설'로서 이름이 남을 거라고 언론에서 떠들었었지.

또한, 동시에 치하야 쨩은 미국으로 날아갔다.

아이돌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가수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본인의 의지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치하야 쨩과 갈등이 생겨 한동안 말도 안하고 지냈던 적도 있었다.

그것이 벌써 7년 전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다.

 

6년 전, 데뷔 6년 차에는 타카네 씨가 은퇴하였다.

 

5년 전, 데뷔 7년 차 때에는 뜻밖에도 이오리가 은퇴를 선언하였다.

본인 말로는 자신은 미나세 가의 일원으로서 경영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돌 활동을 할 여유가 없다고 하였다.

그 때, 이오리는 일 때문에 자신의 아이돌 활동을 그만해야한다는 것 때문에 한참동안 우울해져있었다.

물론 지금은 능력있는 사업가로 성장했지만.

 

4년 전, 데뷔 8년 차에는 나와 유난히 친했던 유키호와 마코토마저 은퇴를 하고 말았다.

16세부터 이어져서 24세까지 유지되었던 'x세 트리오'는 이제 완전히 과거의 일이 되었던 것이다.

그 둘 마저 은퇴를 하고 나니, 나는 동료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것을 확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사무소는 전보다 비교도 안되게 넓어졌고, 내 마음의 빈틈도 점점 넓어지고 말았다.

 

3년 전, 데뷔 9년 차에는 히비키 쨩도 은퇴하였다.

당시, 나는 왜 이렇게 아이들이 은퇴를 서둘러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24~25살 정도면 아직 할 만 하잖는가.

어쨋든 히비키가 은퇴함으로써, 구 '프로젝트 페어리' 멤버는 이제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2년 전, 데뷔 10년 차 때는 아무도 은퇴하지 않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

야요이의 동생, 타카츠키 카스미가 우리들의 동료가 된 것도 아마 2년 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 전, 데뷔 11년 차 때는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아미, 마미, 야요이마저 은퇴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매우 슬펐고, 비참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울고 있을 틈도 없었다.

그 직후에 그 3명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키타자와 시호 사건이 터졌을 때도 바로 그 때였다.

 

작년 11주년 기념식에, 더 이상 동료들이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아, 주변인들의 축하에도 불구하고 슬펐다.

이제 아무도 없어.

그 때의 그 멤버는 이제 나뿐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나모토 P 시리즈 연재를 희생해서 결국 이 글을 썼습니다.

그래도 1000일 이벤트인데 그냥 넘기기는 그래서요.

그저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편은... 아직 쓰고 있는 중인데 제발 내일까지는 올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