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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축하의 꽃다발을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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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0, 2015 19:47에 작성됨.

 새벽 두 시의 역은 기묘한 분위기였다. 낮이였다면 열차들이 바쁘게 지나다닐 선로에는 그저 적막한 공기와 싸늘한 바람이 흐를 뿐이었다. 하늘에서는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붉은 빛을 내는 달이 홀로 떠있었고 별들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황량한 회색 플랫폼은 마치 지금이라도 다른 세계로 향하는 열차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역의 입구가 잠겨 있어서 보통 승강장까지는 들어올 수 없었지만 소녀는 중간의 선로를 따라 역까지 이르러 승강장에 올라와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한밤중의 역에 들어올 이유를 가진 사람 따위는 없었기에 비현실적인 기분마저 들게 하는 이 모습을 보는 건 소녀밖에 없었다.

 

 "이 역이 좋겠어요."

 

 소녀는 승강장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본 후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향해 말을 걸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에 달려있는 카메라를 통해 영상을 찍고 있었던 것이었다. 핸드폰에 달려있는 붉은 리본이 말없이 흔들렸다.

 

 "몇 개의 역을 지나쳐 왔는데 여기가 가장 마음에 드네요. 사실 별로 다를 것도 없지만 기분의 문제라고 하는 거겠죠."

 

 오늘 밤의 달처럼 어두운 붉은 색의 리본 형태로 되어있는 머리띠를 한 소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해요. 당신이 이겼어요."

 

 소녀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 잊어버리고서 박수를 치려다가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 했다. 소녀는 박수를 쳐주지 못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어떻게 더 변명할 여지도 없는 마유의 패배랍니다. 반론의 여지는 없어요."

 

 소녀, 사쿠마 마유의 표정은 패배를 시인하는 사람의 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밝은 편이었다. 아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린과 처음 만났던 때가 문득 생각나네요. 벌써 몇 년이나 지났군요. 처음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자마자 직감하기는 했답니다.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정말로 별이 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우즈키나 미오처럼 활동적이거나 붙임성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언젠가 중심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서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마유는 잠시 말을 끊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화면에서는 마유의 얼굴이 사라지고 어두운 플랫폼의 모습과 따각따각거리는 구두소리만 한참동안 들렸다.

 

 "마유는 그런 린이 부러웠어요. 질투하지는 않았지만. 마유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여 있는 자리는 조금 불편하거든요. 언제나 쿨한 린이기에 오히려 그런 스탠스가 어울리는 거겠죠."

 

 다시 마유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웠다.

 

 린과 마유는 346 프로덕션에서 신인 때부터 함께 해온 동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친밀함은 있었다.

 

 모두가 그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유를 포함해서 린에게 시기심을 느낀 사람은 여럿 있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누구보다도 높은 자리에 올라섰다. 객관적으로 봐도 최고의 아이돌이었고 주관적으로 봐도 빛나는 별이었다.

 

 "하지만 마유에게도 린에게 지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아이돌로써 린에게 이길 수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참을 수 있었지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마유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경쟁심 같은 건 예전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린도 잘 알고 있겠죠. 바로 프로듀서 씨랍니다. 프로듀서 씨에게 인정받는 것. 프로듀서 씨와 더 가까이 있는 것. 프로듀서 씨의 사랑을 받는 것. 신데렐라 걸도 톱 아이돌도 그 무엇도 모두 포기할 수 있었지만 프로듀서 씨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요."

 

 마유의 목소리는 약간 높아졌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양보할 수 없었어요. 그랬죠."

 

 마유는 한숨을 쉬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었다.

 

 "사실, 그 날에, 린과 프로듀서  씨가 같이 있는 모습을 봤어요. 마유의 모든 것이 끝나버린 바로 그 날에. 린도 저를 보고 있었나요? 아니면 그건 혼자만의 표정이었나요? 린은 저 멀리서 승리감에 가득 찬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며 사라져갔죠. 그 눈빛이 저를 향학 있었던 것 같다는 건 제 착각일 뿐이었을까요."

 

 순간 캬르릉 하는 소리가 났다. 옆쪽에서 검은 고양이가 마유를 노려보고 있었다. 있어서는 안될 사람의 모습을 경계하는 듯 고양이는 사납게 그르렁댔다.

 

 마유는 하던 말을 멈추고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고양이는 계속 마유를 노려볼 뿐 도망가지 않았다. 마유가 남은 한 손으로 안아 들자 고양이는 더더욱 사납게 소리를 내며 바둥거렸고 결국 마유의 손을 할퀴어버렸다.

 

 "평소에는 동물들에게 사랑받는 편인데, 이제는 고양이한테까지 거절당해버렸네요."

 

 고양이가 할퀸 손등에는 길다란 상처가 남아버렸다. 찢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씩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고양이는 마유가 떨어트렸지만 사뿐하게 땅에 착지해 유유히 사라졌다.

 

 "나쁜 아이에요. 심한 짓을 하고."

 

 이미 도망간 고양이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기에 마유는 그저 상처에서 스며 나오는 피를 다른 쪽의 소매로 닦아냈다.

 

 "별로... 아프지도 않으니까요."

 

 이런저런 일로 계속 움직이던 카메라의 화면은 다시 보이지 않던 마유의 얼굴로 초점을 맞췄다.

 

 "이런 상처 같은 건 프로듀서와 함께하지 모사는 아픔에 비해서는 전혀 괴롭지 않아요. 프로듀서 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숨이 막혀와서... 정말로 죽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프로듀서 씨가 굉장히 슬퍼하겠죠. 괴로워하겠죠."

 

 마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고양이에게 할퀴어져 난 상처는 커녕 칼로 찌르는 아픔도 이보다는 덜할 것 같았다.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릴 것 같은 감각 속에서 마유는 간신히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요. 알고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에요. 프로듀서 씨의 옆에 가장 어울리는 건 린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프로듀서 씨는 린의 옆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 모습을 가장 인정할 수 없으면서도 깨트릴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어요.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따위 없다는 것도요."

 

 마유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아니면 어떤 누군가에게.

 

 "서로 사이좋게.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자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물론 정말로 상냥한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마유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똑같은 사람이 두 명 존재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솔로몬의 판결처럼 한 사람을 반씩 나눠 가질 수도 없어요. 결국 한 사람만이 승리하는 거에요. 그런데도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터무니없이 바보같이 착해빠진 사람이거나 자기만족적인 위선을 강요하는 사람이겠죠. 마유는 착하지 않답니다. 그렇다고 위선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마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선로로 내려와 걷기 시작했다. 다시 다음 역으로, 그 다음 역으로.

 

 "사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영원히 애매한 채로 기다리는 것. 두 사람 모두 행복해지는 길은 없지만 두 사람 모두 불행해지지 않는 방법인 셈이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채로 계속 지금 상황만을 유지시킨다면 좋았겠지만... 마유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답니다."

 

 발걸음이 거칠어졌다. 눈에 띄게 화면이 덜컹거렸다.

 

 "어쩌면 계속 어린아이처럼 있고 싶었는 지도 몰라요. 사랑받고 싶다고 응석을 부리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영원히 어린 피터팬처럼 네버랜드에서 기대감에 부푼 채로 행복을 누리고 싶었죠. 가짜 행복이라고 하더라도. 하지만 마유는 선택을 했고 지고 말았어요.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어요.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이제 와서 도망치고 싶어서 아무리 울어봐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런 말을 하는 마유의 눈은 울고 있지 않았다. 흔들리지도 않았다. 확고한 의지를 가진 눈동자는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어 초점이 맞지 않았다.

 

 "몇 번을 계속해도 똑같아요. 몇 번을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아요. 사쿠마 마유는 린을 이길 수 없어요. 이대로 이 쓸모없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주저앉고도 싶었어요. 그러면 프로듀서 씨가 마유를 돌아봐주지 않을까, 감싸주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안되는 거겠죠."

 

 화면이 검게 변했다. 영상은 끝났지만 목소리는 흘러나왔다.

 

 "모든 걸 받아들렸지만, 패배를 인정하지만, 마유는 포기하지 않는답니다.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다시 한 번 축하해요, 린. 곧 붉은 꽃다발을 들고서 찾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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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U - 고독한 파수꾼 : https://www.youtube.com/watch?v=4ULpouoDe2A>

<하치 - 린네 : https://www.youtube.com/watch?v=dfJLtx-nI8U >

축하라는 주제로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게다가 한 편 이상을 써도 된다고 하지만.. 축하라고 하면 비슷한 주제만 나오지 않을까.. 해서 나온 글이 이것.

 

비틀어버리고 싶었어요! 이건 아니라고 해도!

물론 그런 이유로 정상적인[?] 축하에 관련된 글도 곧 쓸 예정입니다.

 

MAYU와 사쿠마 마유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만 같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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