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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마 마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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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7, 2015 18:32에 작성됨.

6월의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맑습니다.
당신께서 보고 계실 하늘도 이처럼 투명할지는 모르나, 당신은 어떤 하늘이라도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신 채로 보고 계시겠지요.

 

여름이 다가오자 주변은 소란스럽습니다.
산과 바다가 청록빛으로 빛나고, 주변의 사람들도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겐 붉은색이 어울린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찾아내줄 사람이 없다면, 초라한 붉음은 주변의 푸름에 묻히기 마련입니다.
당신과의 붉은 실은 이미 끊어진지 오래이나, 저는 아직도 그것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돌아오지 못하실 것은 알지만, 저는 아직 실을 놓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셨던 그녀와도 지금은 꽤나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일어서지 못한 저와는 달리, 그녀는 의연한 얼굴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그 가면의 뒤에, 억지로나마 울음을 참고 있는 얼굴이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저와는 달리, 그녀는 앞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마치 당신을 배신하는 듯한 그 모습의 그림자에, 미련을 떨쳐내려 발버둥치는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녀는 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무대로 향하고, 혼자서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스포트라이트에 빛나고 있을 때만,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두 사람의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그녀 자신이 쓰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저에게 의지할만한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아신다면, 당신께서는 놀란 표정을 지으시다가, 종래에는 웃으며 축하해 주시겠지요.
그녀들은 작은 데다가, 별나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의외로 심지가 굳습니다.
저보다도 어린데도, 때때로 어른들조차 놀랄 대담함을 보여주곤 합니다.

 

당신께서 떠나신 뒤에, 이곳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맡으셨던 이는 저와 그녀, 둘 뿐이었습니다만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았습니다.
당신 자신께서는 그다지 발이 넓지 않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정말로 많은 인연들이 당신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계셨는지, 알고 계셨나요.

 

당신께서는 항상 미소를 입에 머금고 사시는 분이셨지요.
아이돌에게 미소는 생명이라며, 웃지 않는 그녀의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억지로 들어올리다 그녀와 다투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당신에게 보여준, 자연스러운 미소에 당신 또한 환한 미소로 답해주신 것도 기억이 납니다.
당신께선 제 미소 역시 아름답다고 말해 주셨지요.
누군가에겐 조금 무섭다며 기피받는 제 웃음을, 귀엽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당신께서 지으셨던 미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합니다.

 

당신께서는 운명을 믿지 않으셨지요.
그러나 당신께서는 운명의 붉은 실을 무시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지금 와서야 생각해보지만, 당신께서는 단지 저를 믿어주셨던 걸까요.
당신께 사랑한다, 고 말했을 때, 당신께서 지으셨던 그 곤란한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그 무엇도 거절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저에게 다정하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당신 자신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당신께서는 다정하셨습니다.
일하는 도중에는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몰래 숨어 저희를 지켜보셨던 일이 기억납니다.
공과 사는 구분하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당신께서는 몇번이고 배웅과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빨간 머플러와 파란 머플러 하나씩을 들고, 정작 당신께서는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채로 마중나오셨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항상 미소를 지어 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항상 뒤에서 나를 받쳐 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항상 앞에서 저를 당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어째서 떠나버리신 건가요.

 

당신께서 떠나신 그 날은, 3월의 어느 맑고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그 때도 오늘과 같이 푸른 하늘이 있고, 맑은 바람이 불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태양을 좋아하셨기에, 맑은 날을 좋아하셨지요.
저도 햇빛이 땅을 내리쬐고,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그런 날씨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그 때, 비가 오기를 바랐습니다.
천둥이 치고,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랐습니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당신을 붙잡을 수 있을텐데

 

그러나 야속하게도 당신께서는 떠나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한 채로, 당신을 떠나보냈습니다.
잠깐이라도 붙잡아보려 했으나, 당신의 그 희미한 미소가 저를 멈춰세웠습니다.

 

당신께서 떠나고 나신 뒤에, 저는 울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눈물샘이 고장나버린 걸까 생각했습니다.
달디 단 노래를 부르던 목은 쉬어버려, 쇳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매일매일이 꿈만 같았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당신께서 마중나와 계시지 않을까,
눈을 뜨면 아직 겨울이고, 당신의 허전한 목언저리를 보며 목도리를 짜줄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몇주가 지나고, 몇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빈 자리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고, 아무리 전화를 걸어봐도 당신께서는 받지 않는다는 것을.
시계(視界)가 검은색으로 칠해져 갔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를 일으켜세운 것은 그녀였습니다. 그녀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주제에, 저의 뺨을 힘껏 치며 그만 깨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녀를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녀도 저를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떠나신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께서 떠나신 것은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눈에 밟히는 당신과의 추억은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와 당신과 제가 함께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겨울날 가져다주신 붉은 머플러는 옷장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당신과의 추억을 밀어넣으려고 애써봐도, 저에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정리된 것 같지 않은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당신께서 보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저 이 편지를 쓴 것만으로도 만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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