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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마스] 타카가키 카에데 씨는 오사카풍 오코노미야키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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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5, 2015 00:28에 작성됨.

 

“후훗, 비가 내리는 날은 운치 있네요~♬”

 

차창 너머로 시원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긴 장마기간이라고 하기엔 요번년도의 장마는 그다지 비가 내리지 않았지. 평소와 같았다면 신기해야할 일이었을 테지만, 조수석 옆에 앉아서 육각형으로 빛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구경하는 타카가키 카에데의 옆모습에 비해서 장마의 가뭄은 그다지 신기하게만 느껴지진 않는 것이다. 언뜻 보면 짙은 녹색을 띄는, 타카가키 카에데의 올리브 드롭으로 빛나는 단발 아래엔 희디흰 목덜미가 가냘프게 자신의 존재를 보이고, 호기심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는 서로 각기 다른 빛을 발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 자신에게 호기심을 품게 만드는 매력적인 보석이다.

 

“프로듀서도 그리 생각하지요?”

 

그래, 이런 미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고 동의를 구한다는 상황자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일본주가 마시고 싶어지는 날이군요. 가능하면 오코노미야키를 곁들여서.”
“어머, 그건 동감이네요. 후후.”

 

상상하기만 해도 즐겁다는 듯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웃는 타카가키 씨의 모습에 덜컥했지만, 겨우 가까스로 표정을 관리할 수 있었다. 등 뒤의 시트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걸 느꼈지만 그 모습을 타카가키 씨가 눈치 채진 못했겠지? 자신의 아이돌에게 긴장까지 하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프로듀서라는 걸 들키는 건 농담조차 되지 못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 잔 어때요?”
“에, 그게 오늘은 일정도 늦게 마쳤고, 타카가기 씨도 어서 돌아가 봐야 하는 것이….”
“부─웃. 치사해요. 프로듀서. P씨가 먼저 술이야기 꺼냈으니 책임져 주세요.”

 

짐짓 볼을 부풀리면서 화를 내는 척하는 타카가키 씨는 중간에 내 이름을 말해오면서 졸라댔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칼 같이 프로듀서라 불러주면서, 이렇게 퇴근길 도중에는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려오는 것이 타카가키 씨 답다면 타카가키 씨 다웠다. 뭐 약삭빠르다고 느꼈지만, 애초에 그런 계산조차 없이 말을 한 것이겠지. 저 천연 아가씨는.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으면서 두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눈동자에 못이겨 한숨을 내쉬곤 핸들을 꺾어 부드럽게 U턴 했다.

 

“후, 그럼 제가 좋은 오코노미야키 집을 알고 있으니 그곳으로 갈까요?”
“와아─! 해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운전 중에는 가만히 있어주세요.”
“네에~♬ 근데 운전 중에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는 걸까? 후훗.”
“…그건 조금 아니지 않습니까, 타카가키 씨.”

 

썰렁한 아저씨 농담에 살짝 깼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흘러가는 것이 즐거운 모양인지 허밍을 하며 줄곳 어떤 오코노미야키를 먹을지 고민하는 카에데의 모습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그녀는 마치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는 것이 확실해보였다. 무대 위에서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일 듯 어른의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완전 철부지 아가씨가 되어버리고 만다고 할까. 이런 걸 타인에게 들키면 곤란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진 들키지 않았지. 어쩌면 346의 저력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달라붙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연예계 기자들을 억제할만한 이름값이 346에게는 있으니까 말이다.

 

이상한 쪽으로 딴 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내가 아는 오코노미야키 집에 도착했다. 시 외각 쪽에 붙어있는 이 집은 한 때 346의 신입때 우연찮게 들렸던 이후로 주욱 단골이 된 집이다. 고소한 반죽에다가 꽉 찬 속까지 어디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맛이 이 가게에는 있다.

 

“자자, 도착입니다.”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요.”
“뭐어, 제가 자신 있게 소개한 만큼 맛도 뛰어나다고요?”
“흐응, 뭐 좋아요. P씨가 소개한 집이니까 믿어도 되겠죠.”

 

활짝 우산을 펼치며 조수석을 나가는 타카가키 카에데를 뒤따라 단골집에 들어가니 벌써부터 자글자글 전을 굽는 냄새가 코를 찔러 들어왔다. 우렁차게 어서오십쇼── 하고 반겨주는 사장님의 구수한 말과 함께 먼저 술을 시키곤 창가의 구석자리를 잡았다. 벽 쪽에 가까이 자리를 잡으니 타카가키 씨가 들뜬 표정으로 벽의 어느 한 켠을 가리켰다.

 

“봐요, 프로듀서. 저기에 제 족자가 걸려있네요?”
“앗. 저건…….”
“제 신인 때의 사진이잖아요? 오랜만이네요. 저 때의 제 모습. 지금 보니 살짝 낯부끄러운데요. 그렇지만 부럽기도 하고.”

 

향수에 젖은 눈으로 자신의 신인 때의 족자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윽고 점원이 가져온 오코노미야키 메뉴판에 정신이 쏠려버렸다. 재주 좋게도 분위기를 휙휙 바꾸는 아가씨다.

 

“음, 모단야키도 좋고, 돈돈야키도 좋고. 흐응흥. 저기 P씨는 무엇으로 드시고 싶으세요?”
“에에, 역시 그래도 그냥 오코노미야키가 좋지 않을까요?”
“그럼 오사카로?”
“아뇨. 오코노미야키면 역시 히로시마죠. 오사카풍은 조금 느끼해서.”

 

오사카풍의 오코노미야키는 밀가루반죽이 두터워서 기름기가 많아, 느끼한 것을 못 먹는 내겐 조금 고역스럽다. 다만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는 양배추가 많이 들어가서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에 늘 오코노미야키는 히로시마풍으로 고집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 앞의 타카가키 상은 뭔가 불만이 잔뜩 어린 얼굴이었다. 설마 타카가키 씨는 오사카 파였나.

 

“오코노미야키는 누가 뭐래도 역시 원조답게 오사카니까. P씨는 뭘 모르시군요.”
“네에? 오코노미야키는 히로시마가 원좁니다. 간사이는 늦게 따라한 거구요.”
“누가 그래요? 오코노미야키는 오사카쪽이 먼저라구요!”

 

어느 순간 히로시마냐, 오사카냐 양분이 되어서 설전을 다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도 못하고 서로 열을 올리며 다투기만 할 때, 테이블 위로 쿵, 하고 술병이 떨어졌다. 깜짝 놀란 나와 타카가키 씨가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초로의 가게 사장님께서 서계셨다.

 

백발을 멋들어지게 정돈하신 이 가게의 사장님께서 약간은 한심하단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 참, 이보게 모바P. 저쪽 미인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게나. 기껏 자네가 이런 누추한 곳까지 아름다운 숙녀 분을 모셔왔는데 오사카면 어떻고 히로시마면 어떤가. 오코노미야키는 오코노미야키일 뿐이야. 신사답게 저쪽 아가씨의 말대로 하세나.”
“와아, 사장님 정말 멋져! 봐요 P씨. 사장님께서도 제 말이 맞다고 하시잖아요?”
“뭐가 맞다고…… 하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사장님. 오사카 풍으로 2인분 좀 가져다주세요.”
“이로서 일건낙찰이군! 자 기다리는 시간을 안주로 술 한 잔씩 들고 계시게나. 금방 반죽을 가져다주지.”

 

사장님이 떠나고 난 테이블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의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아이처럼 좋아하던 타카가키 씨가 방금 전에 우리가 저지른 치태를 눈치 채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우리가 저지른 민폐를 주변에 사과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타카가키 씨가 말을 걸어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열이 올라버렸어요.”
“아뇨. 오히려 제가….”

 

잠깐의 침묵. 타카가키 씨가 겨우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했다. 어쩐지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입을 열었지만,

 

“모바P 씨.”
“타카가키 씨.”
“먼저 말씀을….”
“먼저 말하셔도….”
“아….”
“어….”

 

그런데 도리어 더 어색해졌다. 마주한 타카가키 씨의 얼굴이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귀 끝까지 붉게 달아오른 걸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하염없이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서로 아무 말이 없었을 때 쯤

 

“자자, 오코노미야키 반죽이 왔다. 어서 굽자고. 젊은 친구들.”

 

사장님께서 코테(こて)를 탕탕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침묵이 깨짐과 동시에 서로가 사장님의 오코노미야키를 굽는 현란한 모습을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기름 한 국자를 퍼서 쫘악 펼친 다음에 미리 재료를 넣은 오코노미야키 반죽을 철판 위에 올린다. 치직치직 겉이 튀겨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철판 위를 쏘다녔다. 사장님께서 코테를 가지고 오코노미야키를 뒤집는 솜씨에는 타카가키 씨 말고도 나도 놀라고 있었다. 매번 들릴 때마다 놀라는 편이지만, 오늘 따라 사장님의 솜씨가 두 배 정도는 더 현란하다.

 

그렇게 굽는 와중에 사장님께서 나긋하게 말했다.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조용하면 쓰나. 아무리 늙은 내가 핀잔을 줬거니, 그렇다고 풀이 죽어선 안 되지 않나.”
“그 저희가 민폐를….”
“죄송합니다, 사장님.”
“뭘 그런 걸 다. 전부 젊음의 패기 때문이지. 이 늙은이는 솔직히 자네들이 다투는 걸 보면서 즐거웠다네.”

 

껄껄 웃으며 사장님께선 다 구워진 오코노미야키 위에 소스와 가다랭이포를 얹고는 코테로 깔끔하게 사등분을 내어준다.

 

다 되었다 싶어 코테를 들고 오코노미야키의 조각 하나를 집어든 순간, 짝, 하고 박수를 한 번 치고는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는 사장님. 그리곤 의아해 하는 나의 귀에 가까이 입을 대고는 소리죽여 말했다.

 

‘저기 앞의 아가씨. 저 족자에 나오는 아가씨 맞지?’
“아? 사, 사장님?”
‘자네가 한참 애송이일 시절에 저 족자 하나 들고서 이 가게에 내걸 때가 생각나는군. 자신과 함께 신입 시절을 버텨낼 파트너라고 했던가? 무작정 걸어두고선 가게홍보라며 떠들던 자네가 생각나는군.’
“……”
‘멋지군, 자네. TV에서 저 처자의 이름이 안 나오는 곳이 없을 지경이니. 신입 때의 목표를 이룬게 아닌가. 그러니 저 처자가 딴 놈에게 도끼 찍혀 넘어가기 전에 얼른 낚아 채라구. 사내가 돼서 미인을 얻는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프로듀서인 자네가 잘 아리라 믿네만.’
“그, 그게 무슨?!”
“농담일세. 가기 전에 저 처자 싸인 좀 부탁하이. 서비스는 팍팍 주도록 하지.”

 

씩 웃고는 등어깨를 팡팡 치는 사장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힘이 세서 등어깨가 얼얼하게 매웠다.

 

“자, 다들 식기 전에 드시게. 서로 이야기들 나누시고. 술이 모자라면 언제든지 불러. 따끈하게 데운 술을 가져다 줄 테니.”

 

사장님께서 주방으로 들어가자, 타카가키 씨가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빤히 바라보는 그 모습에 아까 전 사장님의 발언이 귓가에 맴돌았다. 미인을 얻는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일 뿐이죠. 괜히 타카가기 씨의 얼굴을 더 보면 자신의 감정이 추슬러지기 어려워질까 싶어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런 내 귓가로 타카가기 씨가 질문을 던져왔다.

 

“저기 P씨. 사장님에게 무슨 말씀을 들으셨기에 놀라신 거예요?”
“아, 아뇨. 별것 아닙니다.”
“흐응. 아무튼 됐어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아까 전 풀이 죽어있던 사람답지 않게 쾌활하게 오코노미야키를 한입 베어무는 타카가키 씨를 따라 나도 오코노미야키를 먹었다. 으, 역시 느끼한 맛이 바로 퍼져 올라왔다만 눈앞에서 저리 행복하게 맛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대놓고 맛없단 표정을 지을 순 없었다. 저 사람의 앞에서 긴장이 풀려버리면 아까 전과 같이 추태를 부릴 심산이 더욱 크니까 말이지. 솔직히 아까 전에처럼 타카가키 씨와 무언가를 두고 싸워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뭔가 색달랐다고 하나?

 

“저기 P씨.”
“네?”
“오늘은 P씨의 다른 면을 많이 본 날이네요. 평소엔 조금 무뚝뚝하시다가 아까 전에 오코노미야키 가지고 열을 올리시더니, 사장님께 당황하시는 모습까지.”

 

푸핫! 지, 지금 억지로 느끼한 음식 먹는 사람에게 갑작스런 비수 찌르기입니까?

 

“풉, 큭, 쿨럭쿨럭.”
“앗! P, P씨! 여기 물이요!”

 

내밀어진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난 뒤에야 겨우 사레가 들린 것이 멈추었다. 우우와 자칫 했으면 숨이 넘어갈 뻔했네.

 

“후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카가키 씨.”
“아뇨. P씨가 그렇게 당황해하실 줄은 몰라서. 놀라게 했다면 사과드릴게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으─므. 맨날 P씨는 괜찮다고 넘기기나 하고. 이럴 땐 제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 거예요.”

 

정말이지 프로듀서는. 뭐든지 자신의 탓으로 넘어가려고만 해. 치사하다고요.

 

“아하하. 우선 한잔 하실까요?”

 

술병을 들어 내가 쥔 술잔에 술을 채우는 그. 분명 여기서 대작을 하자고 하면 음주운전은 위험하다며 거절하겠지. 뭐야 정말. 나는 프로듀서와 같이 술을 마시러 온 건데.

 

이래선 마치, 술을 마시고 싶어 억지로 바쁜 사람을 끌고 온 모양새잖아.

 

비참해진 마음을 숨기고서 술을 한 잔 들이킨다. 따뜻하게 데운 술이 속을 덥힌다. 잔잔한 주향과 부드러운 맛에 넘김까지 좋아 말 그대로 술술 들어가는 술이네. 이런 좋은 술을 두고서 혼자만 마신다니. 말도 안 되잖아. 하지만 나는 용기도 없이 조용히 술만 들이킬 뿐, 그에게 주도적으로 술을 권하진 못했다. 어른이니까, 다. 사회의 생리를 아는 어른일수록 그의 입장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 어른이 억지를 부리는 것도 한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이상 억지를 부렸다간 추태로만 끝낼 수 없겠지. 그도 이런 내가 짜증나는건 아닐까? 평소의 그라면……. 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와 나는 초창기부터 파트너였으니까. 나를 아이돌로, 무대 뒤편에서의 열정을, 그리고 무대 위에서의 화려함을 알려준 사람이니까.

 

절대로 나를 귀찮다거나 짜증난다고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이런 못된 마음이 씻겨 내려가라고 술을 마신다. 그를 피곤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지만, 도저히 마시지 않고선 이 못된 마음이 사라지질 않을 것 같아요. 이정도 어리광쯤은 어른의 범위일까? 그렇지요, 프로듀서?

 

계속해서 못된 마음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술을 연거푸 마신다. 빈병이 한 병 두병 세 병, 늘어나기까진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못된 마음은 씻겨 지지 않았고, 나는 지워질 때까지 술을 마시는 속도를 높였다. 그런 내 모습을 살짝 질려하듯 표정을 굳힌 프로듀서가 나를 만류하듯 내 술병을 빼앗아가기 전까지.

 

“저기 타카가키 씨?”
“네에! 제가 바로 타카가키 카에데랍니다?”
“너무 술을 드신 것 같습니다.”
“아아뇨. 아지익 하아안참 남았답니다? 후후.”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이상한 소리나 하고 말이지. 뭐가 한참 남았다는 거야? 망신살이 뻗히는 것? 프로듀서에게 미움 받는 것? 어느 것도 다 싫은 미래네. 후후후. 정말 싫다아.

 

“타카가키 씨.”
“이름으로 불러줘요! 나만 언제나 프로듀서의 이름을 부르고, 프로듀서는 늘 성으로만 절 부르시죠. 쓸쓸해요. 날 비즈니스의 상대로만 바라보시는 것 같아서…. 치사하다구요.”
“당신을 비즈니스 상대로만 바라본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카에데 씨.”
“거짓…, 잠깐 지, 지금 뭐라고 절 부르신 거죠?”
“카에데 씨. 전 당신을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같이 노력해온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의 말에 화악, 하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기 저 족자 보이시죠? 처음에 카에데 씨가 신기하다며 바라본 그 족자요.”

 

그가 가리킨 곳은 과연, 신인 때의 내 모습을 담은 족자. 몽롱한 눈으로 그 때의 기억을 반추해보자면, 아름다웠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청춘의 때였다. 서로가 처음인 연예계에서 서로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때.

 

“사실 저 족자는 제가 이곳에 달아둔 거랍니다.”

 

대답할 힘조차 빠져버린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 뿐. 살짝 머리를 끄덕여주니 프로듀서는 빙긋 웃어주었다.

 

“신입 때 이 가게에서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이곳에선 사장님께서 해주시는 재미난 충고도 있었고, 맛있는 음식과 술,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활기가 있었습니다. 다만 위로만 있었을 뿐, 제 목표는 없었습니다. 이곳은 그저 위로를 받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휴식처였을 뿐이었죠.”
“처음, 처음 듣는 이야기에요.”
“저도 처음입니다.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이요. 그래도 어떻습니까. 이렇게 좋은 안주와 술과 이야깃거리가 생길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요. 네. P씨의 말대로 네요. 후후.”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 족자는 제 나름대로의 목표였습니다.”
“저 족자가 말이에요?”
“놀랄 일이죠? 족자가 목표가 된다니. 남들이면 전부 웃을 이야기입니다만, 저로서는 꽤나 다급했거든요. 한 사람의 꿈과 인생을 책임져야할 프로듀서가 뚜렷한 목표도 없이 위로만 받으며 앉아있다, 라는 사실은 참아내기 어려운 고비였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부탁해서 당신의 첫 족자를 가게의 벽에 걸어뒀지요. 그리고 당당히 목표를 정한 겁니다. ‘저 족자의 인물이 누구라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그의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그는 늘 이런 사람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성심성의껏 노력하여 자신을 빛내주는 사람. 보석을 빛내기 위하여 헝겊을 자처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국 목표를 이루셨죠?”
“네. 이뤄냈습니다. 타카가키 카에데 씨.”

 

그 신뢰의 미소와 함께 나는 잔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맞은편의 그에게 맞닿을 수 있도록 허리를 굽혔다. 잠깐의 순간이 지나고, 그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뭐, 뭣?!”
“감사해요. P씨. 아니 저만의 프로듀서.”

 

무언가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홀가분한 기분과 아쉬운 기분이 절반씩 섞인 채, 나는 가만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참, 축하의 의미로 마시러 가지 않을래요? 저와 프로듀서의 앞날에 건배를… 에, 항상 마셨다고요? 후훗♪”

 

= = =

“이런이런 벌써 가는 건가?”
“네. 타카가키 씨가 취해버려서.”
“쯧, 싸인은 다음 기회에 받아둬야겠군.”
“아마 조만간 다시 이곳에 올 겁니다. 타카가키 씨는 한번 맘에 든 맛집은 고정적으로 다니는 편이거든요.”
“자네에게 듣던 소식 중 가장 희소식이구만! 자자 조심해서 들어가시게.”

 

차에 만취한 타카가키 씨를 조심스럽게 앉히고는 비가 들어갈 새라 서둘러 문을 닫았다. 타카가키 씨는 무언가 기분 좋은 꿈을 꾸는지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름의 날씨라지만 지금은 장마이기도 하니 자신의 재킷을 벗어 잠든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문득 핸드폰 약정의 날짜를 살펴보니 6월 14일. 프로필을 떠올려보니 오늘이 타카가키 카에데의 생일이었다. 오코노미야키로 싸우다가 술을 혼자 마시게 하질 않나 결국 그녀를 울려버린 엉망진창인 저녁이 톱 아이돌 타카가키 카에데의 생일선물이라니 뼈아픈데.

 

하지만 지금 내 조수석에 앉아 평안한 미소를 지으며 잠든 그녀를 보면, 아무래도 좋았다. 제대로 된 선물은 내일쯤에 건네주도록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차의 시동을 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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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전이에요! 늦었지만, 아슬아슬 세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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