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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X 아이돌 마스터] 두 송이의 꽃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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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31, 2015 04:15에 작성됨.

원작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혼고 아키요시
아이돌 마스터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EDEN 탐문수사 결과.
“적극적인 아이였어. 팔짱을 끼곤 안 놔줬다니까?”
“이야~ 정말 곤란했었어요. 갑자기 끌어안곤…….”
“애교가 많은 성격 같았어.”
“귀엽긴 귀엽더라.”
“딱히 요구받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같이 있어달라고만 했어요.”
“정말 활발했었지…….”
목격자들의 증언은 이랬다. 수확을 정리하면 유키호의 아바타는 남성들에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었으며, 아바타를 조종하는 사람은 애교 많은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보인다는 점.

그 외에 신경 쓰이는 점을 하나 뽑아보면,
“연습을 도와달라고 그러더라.”
목격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덧붙었다.

연습이라……. 어떤 연습?

쿄코가 주문한 정보는 대강 다 모았지만, 왠지 모르게 부족해 보이는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사소한 정보를 주문받은 거였으니 구색이라도 맞춘 셈이다.

조사를 마친 아미는 기지개를 피며 피로를 날렸다. 다시 사무소로 돌아가기 위해 로그아웃 포인트까지 걸으려던 차에 아미의 디지바이스로 메시지가 왔다.
메신저 프로그램인 디지라인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의뢰할 건이 있어. 디지랩으로 와줘. -미카구라 미레이』
아미는 알겠다는 답 메시지를 보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로그아웃 포인트까지 가는 길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미는 그렇게 걷다 골목으로 접어드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홀로 솟은 단말기를 찾았다.

아미는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고, 아미의 아바타 데이터가 단말기 근처에서 분해되듯 사라졌다. 그 직후 아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조금 전까지 있던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TV를 통해 EDEN으로 ‘커넥트 점프’한 것처럼 단말기를 통해 이곳 디지랩으로 흘러온 것이다.

디지털 몬스터 래보래터리, 약칭 디지랩. 이곳을 관리하는 관리자는 이곳을 ‘디지몬의 낙원’이라 표현한다. 이 시설은 디지몬의 육성을 위한 시설이다.
시설은 제법 넓었지만(쿠레미 탐정 사무소의 약 2배 정도) 수많은 디지몬을 수용할 만한 낙원이라 표현할 정도의 넓이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의 넓이는 상관없다. 이곳은 ‘중개처’나 마찬가지니까. 시설 곳곳에 솟아있는 단말을 통해 다른 곳에 연결되는 식이다.

시설 중앙, 수많은 모니터로 이루어진 기둥 바로 앞에 아미를 기다리던 여성이 안경을 고쳐 쓰곤 아미를 맞이했다. 여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상함과 신비로운 기색을 골고루 풍기고 있었는데, 세속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눈빛이 그런 기색과 어우러져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로까지 번져 있었다.
여성의 인상엔 마치 인세를 초월한 듯한 허망함마저 보여 어찌 보면 망령처럼도 보인다.

여성의 이름은 미카구라 미레이. 디지랩의 관리자다.

“빨리 왔네.”
“마침 EDEN에 일이 있어서.”
“뭐, 이웃 사촌이니 나카노에 있었어도 빨리 왔겠지?”
미레이는 쿠레미 탐정 사무소 바로 앞에서 점집을 운영한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상점가로 구성된 건물이니까. 미레이의 점집은 아파트로 따지면 쿠레미 탐정 사무소의 바로 옆집이나 마찬가지다.

미레이는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주민이지만 평소엔 디지랩에 틀어박혀 있다가 영업을 할 때만 점집의 골동품 전화기(디지랩과 연결되어있다.)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아미도 나카노에 있을 땐 점집을 거쳐 디지랩을 방문한다.

이곳의 존재는 쿄코도 알고 있다. 오히려 쿄코와 미레이는 아미와 미레이가 서로 알기 훨씬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미레이는 쿠레미 탐정 사무소의 이웃 사촌이자 단골손님이니까.
그녀도 가끔 사무소에 의뢰한다.

“아까 사무소에 들르려고 했지만 바쁜 것 같아서 말이야.”
아마 유키호와 프로듀서가 방문했던 시간이랑 겹친 것 같다.
아미의 디지바이스에 미레이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저번부터 계속 의뢰하는 일의 연장선이야. 내가 정리한 블랙리스트 해커의 처벌. 이번에는 그 사람이야.”
아미는 메시지를 열어 내용을 읽었다. EDEN에서 디지몬을 이용해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해커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레이가 하는 의뢰 대부분은 이런 내용이다. 디지몬을 악용하는 해커들의 처벌.

디지몬의 힘은 전뇌공간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디지털로 이루어진 존재다 보니 인간이 세운 방범 방벽 같은 건 모래성 무너트리는 것보다 더 쉽게 허물어버린다.

그야말로 전뇌세계 최강의 생체병기. 그렇다 보니 디지몬을 사역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해커들도 만연하게 됐다.

미레이는 디지몬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이다. 아미가 보기엔 어쩌면 인간보다 더…….
그런 미레이가 볼 때 EDEN과 각종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해커들의 악행은 부아가 치미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미레이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블랙리스트로 지정된 해커의 처벌을 때때로 쿠레미 탐정사무소에 의뢰한다.

아미는 내용을 좀 더 살펴봤다. 메시지엔 해커의 신상정보까지 빼곡하게 쓰여 있었는데, 범인의 사진 이미지까지 첨부되어있었다. 얼굴 나이는 딱 20대 후반쯤 됐을까, 체격도 평균적인 20대 후반. 신상정보의 나이와 일치한다.

“그는 EDEN에서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디지몬의 능력을 이용해서 몰래 찍곤, 그걸 가지고 협박을 하거나 언론에 팔아넘기고 있어. 알아본 바로는 현실에서도 유명한 파파라치라는 것 같아. 물질세계와 전뇌세계 양쪽에서 같은 짓을 하고 있지.”
어째 지금 아미가 수행하고 있는 의뢰가 떠오른다.

혹시?
아미는 머리를 조금 굴렸다.
설마?
“왜 그래?”
“아니, 아까 의뢰받은 게 있는데 어째 내용이 비슷해서.”
“어머, 그래? 그러면 잘됐네. 관련이 있다면 하는 김에 같이 해결하면 될 테니까.”
“글쎄, 아직은 관련된 사건인지 어떤지 잘 모르니까. 쿄코 씨께 의견을 구해야겠어.”
아직은 심증일 뿐. 이 해커와 연관된 사건이란 보장은 없다. 파파라치는 전뇌공간이 발전하기 전에도, 발전한 후에도 넘쳐나는 부류니까.
하물며 요즘처럼 해커가 길가의 돌멩이처럼 흔하게 굴러다니는 시대에는 해킹 기술을 구사하는 파파라치가 여럿 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래? 아무튼 어찌 되었든 해결만 해주면 되니까. 나야 상관없어.”
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그렇고, 요즘 어때?”
“그냥…….”
“그렇구나. 난 말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네 운명이 정말 신경 쓰이거든?”
미레이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네 몸은 나와 비슷하면서 조금 달라. 네 능력은 정말 흥미로워. 그 능력이 널 어떤 운명으로 인도할지 난 그걸 지켜보고 싶어.”
미레이도 아미처럼 전뇌공간과 현실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특별한 존재다. 현실에 있는 점집과 전뇌공간의 디지랩. 두 군데를 홈그라운드 삼아 넘나든다.

미레이의 입꼬리가 묘하게 가늘어졌다. 아미는 그저 멋쩍게 얼굴을 긁적이며 입을 다물었다.
미레이는 간혹 영문 모를 말을 할 때가 있다.

아미는 예전에 미레이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아미가 ‘이런 몸’이 되어 경황이 없을 때, 미레이가 도와줬다. 그리고 이렇게 디지랩의 시설까지 아미에게 개방해주어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아미에게 있어 미레이는 쿄코와 더불어 ‘은인’이다.

그리고 그 은인은 가끔 운명이니 뭐니 하며 점술가의 신묘한 말재주로 아미의 혼을 쏙 빼놓는다.
아미는 미레이의 시선을 겸연쩍게 받으며 그걸 조금 어색한 웃음으로 돌려줬다.

“온 김에 팜에 들르는 건 어때? 팜에 있는 디지몬들도 기뻐할 거야.”
“응, 그럴게.”
대화 방향이 아미가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돌았다. 미레이의 배려인가? 아미는 병과 약을 같이 받은 기분으로 미레이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아미가 ‘디지팜’용 단말기에 접근했을 때였다.

『조수 군, 지금 어디지? 긴급 상황이다.』
쿄코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미는 디지바이스를 조작해 통신회선을 연결했다.

“디지랩에 있어요. 무슨 일이죠?”
『하기와라 유키호의 아바타가 멋대로 로그인한 모양이다. EDEN 방송 일로 로그인을 하려고 했는데 안 된다는 것 같아. 지금까진 아바타가 멋대로 움직이긴 했어도 어디까지나 업무 시간과 겹치지 않는 선이었다고 그러더군. 즉, 돌발 상황이다.』
범인이 유키호의 아바타로 EDEN에 로그인했다?
범인의 꼬리를 잡을 좋은 기회다!

『로그를 추적해 어디로 향했는지 알아냈다. 아바타는 쿨롬으로 향했다. 지금 자세한 좌표를 전송했으니 신속히 그곳으로 향하도록.』
통신은 그걸로 끝났다.

“바쁜 것 같네.”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팜은 다음에 들를게.”
“알았어. 팜에 있는 아이들에겐 내가 말해둘게. 그럼 건투를 빌게. 전뇌탐정.”
아미는 미레이의 전송을 뒤로하고 디지랩에서 퇴장했다. 퇴장한 아미가 향한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쿄코가 직접 입에 담은 곳이며 좌표로도 찍어준 EDEN의 하층 에리어, 쿨롬이다.

쿨롬은 EDEN의 위험 지역이다. 기존 네트워크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들어갈 수 없는 숨겨진 네트워크인 ‘딥 웹’이 존재하는데, EDEN의 딥 웹이 바로 쿨롬이다. 기존 네트워크의 딥 웹과 마찬가지로 은밀하고 위험한 지역이다.

아미는 눈이 아플 정도로 새파란 바닥을 밟으며 착지했다. 그리곤 디지바이스에 찍힌 좌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걷는 중간중간 길거리에 널브러진 해커들이 삐뚤어진 시선으로 아미를 감시하듯 응시한다.

어떤 이는 사회에서 당한 부당한 처우에 대한 울분을 담아, 또 어떤 이는 자기 구역에 침범한 아미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듯이, 또 어떤 이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그렇게 쳐다보는 게 폼 나니까.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품은 분위기는 웬만한 사람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살벌하다.
현실의 뒷골목처럼.

쿨롬은 일반 EDEN 에리어와 구조상으론 비슷하다. 원래 쿨롬은 EDEN의 초기 혹은 베타테스트용 에리어였단 소문이 있을 정도로. 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쿨롬의 지형은 일반적인 EDEN 에리어와는 딴판으로 변해간다.

좌표로 가던 도중 지형과는 이질적으로 솟은 벽 몇 개가 아미를 막아섰지만 아미는 그걸 손 하나 뻗은 걸로 간단하게 해체했다. 이질적으로 솟은 벽의 정체는 보안용 방화벽이었으며 구조는 해커들이 일반적으로 구축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누가 인위적으로 설치한 거다.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해커들의 세계에선 이런 벽은 흔해 빠졌으며 오히려 아미가 해체한 벽은 보안이 낮고 허술한 편이었으니까.
아미는 이것보다 보안 등급이 3단계 높은 벽도 해체할 수 있다.
방화벽 해체는 해커의 기본 소양이니까.

쿄코가 보내준 좌표와 거의 가까워졌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눈에 띄는 인물들이 보인다. 아미는 숨을 죽이며 근처에 있던 구조물(낡은 것까지 정교하게 재현된 교통 표지판)에 몸을 숨겼다. 여차하면 아미가 쓸 수 있는 해킹스킬을 써서 본격적으로 은신할 준비를 하며.

구석진 공간이라 그런지 이곳에는 저들과 아미 외엔 아무도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벽으로 막혔던 걸 생각하면 저들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밀회 공간이리라.

머릿수는 둘.
둘 중 한 명은 아미가 아는 사람이다. 아니, 아는 아바타다.
가면을 쓴 하기와라 유키호의 아바타.

다른 쪽은 유키호가 쓴 가면과 비슷한 종류의 가면을 쓴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 하지만 이쪽도 묘하게 낯이 익다. 아미는 디지바이스를 조작해 미레이가 보내줬던 자료를 훑어봤다. 얼굴을 제외한 아바타의 체격과 옷차림이 사진 속의 청년과 일치했다.
설마 정말 동일인물일까?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미가 해킹 스킬로 은신하여 좀 더 가까이 갈까 고민하던 차에 아미의 고글을 통해 귓가로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 소리는 원격 통신도, 메시지에 첨부된 미디어 파일 소리도 아니었다.
고글에서 직접 소리가 새어 나와 아미에게 속삭인다.

『아미, 어디서 꽃 냄새가 나.』
“꽃?”
아미는 소리에 당황하지 않고, 그저 익숙하게 대답했다.

『난 알 수 있어. 이건 꽃 디지몬의 냄새야. 저쪽에 있는 꽃 디지몬이 지금 무언가를 하려고 해! 지금 나서는 게 좋겠어.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알았어! 파트너!”
아미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대로 뛰었다.

“멈춰!”
아미의 목소리를 듣자 청년과 유키호의 아바타가 아미에게 시선을 모았다.
“너, 넌 뭐야!”
청년이 새된 목소리로 물었다.

“유키호 쨩의 아바타로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야?”
“칫……. 불청객이 왔군!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청년은 혀를 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유키호의 아바타는 침착하게 아무런 소란도 떨지 않은 채로 그저 조용히 아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습에 아미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유키호의 아바타. 청년과 너무 대조적이다.
아미가 유키호 아바타에게 시선을 빼앗겼을 때,

“저리 꺼져라!”
청년이 아미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청년의 손목시계에서 정돈되지 않은 디지털 데이터가 날카로운 파장을 빛내며 청년 바로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쏟아진 데이터는 이윽고 선이 되고, 선끼리 연결되어 면을 만들고 그게 곧 입체로 빗어져 순식간에 모습을 갖추었다. 모습을 드러낸 살벌한 눈빛의 늑대 한 마리가 가래 끓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아미를 위협했다.

그냥 늑대가 아니다. 트럭 하나 정도 되는 덩치와 철판을 종이 씹는 것보다 더 쉽게 씹어 먹을 것처럼 크고 날카로운 이빨…….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다.

이런 전뇌공간에서야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존재, 디지털 몬스터다!
저 디지몬의 이름은 가루루몬, 주인에게 적대적인 자를 가차 없이 물어뜯는 충성스러운 디지몬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아미에게 달려들 것처럼 가루루몬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린다.
아미는 언제든지 뛸 수 있도록 자세를 갖추며 시선을 슬쩍 유키호 아바타 쪽으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늑대의 위협 때문에 시선을 옮길 수 없던 게 아니다. 시선을 옮길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이런!”
아미가 잠시 가루루몬에게 시선을 뺏긴 사이 도망친 모양이다.

“어딜 보시나!”
그때였다. 아미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굴렀다. 그러자 아미가 있던 자리로 푸른 불길이 마구잡이로 치솟았다. 아미는 피부를 뜨겁게 달구는 열기가 사라질 때까지 마구 굴렀다. 5바퀴쯤 되자 차가운 공기가 아미를 맞이하여, 아미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아미가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저 뒤쪽까지 수십m 범위가 새까맣게 그을렸다. 바로 피하지 않았다면 아미의 몸은 증발하거나 녹아버려 저 검은 칠을 보태기 위한 도료가 되었으리라.

살벌한 현장이건만 아미는 그저 옷을 툭툭 털곤 긴장감 없이 가볍게 주변을 둘러봤다.
이번에도 아미가 구르는 틈을 타 청년과 가루루몬마저 도망갔다.

실수다.
아미는 한숨을 내쉬며 이걸 쿄코에게 어떻게 보고 하나 고민했다.
쿄코가 책망하진 않겠지만 격려의 의미로 커피를 내올까 봐 그 점이 아미의 몸을 떨리게 했다.

아미가 사무소로 돌아가 보고한 결과, 다행히도 쿄코는 커피를 내오지 않았다.
“커피는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마셔야지.”
그저 사형집행이 뒤로 미뤄졌을 뿐이다.

“수고했다. 지금 시점에선 유익한 정보였어.”
쿄코는 그렇게 말하며 아미를 칭찬했다. 아미는 소파에 축 늘어졌다. 쿄코는 맞은편 소파에서 다리를 꼬곤 말을 이었다.

“아까 하기와라 유키호 쪽에서 연락이 왔었다. EDEN 아바타가 로그인 상태라서 로그인을 못 한다고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여태까진 업무 시간과 겹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 점에서 유추하면 범인은 여태까지 하기와라 유키호의 스케줄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게 되는군. 그리고 어떤 이유로 범인 쪽에서 급하게 로그인할 일이 생긴 것이겠고. 아바타 계정의 주도권은 하기와라 유키호에게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실수였구나.”
쿄코는 ‘예상했어야 했는데 불찰’이라고 말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서 ‘연습’ 발언이 신경 쓰이는군. 데이트 연습? 단순히 남성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구실일 수도 있겠다만……. 그건 그렇고 미카구라 미레이의 의뢰도 흥미롭군. 조수 군의 보고대로라면 이번 사건과 얽힌 건 이미 확정사항인가.”
범인이 디지몬을 악용하는 해커인 점에서부터 인상착의의 일치까지. 이건 범인이 쌍둥이거나 위조 아바타를 쓰는 게 아닌 이상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범인이 해커라면 유키호의 스케줄을 손에 넣은 것도 말이 되니까.

“그 해커, 꽃 디지몬을 쓸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가루루몬을 꺼내서 놀랐어요.”
“어쩌면 그 꽃 디지몬이 하기와라 유키호의 아바타를 움직였을 수도 있어.”
아미는 유키호의 아바타가 청년과 대조적으로 태연했던 걸 떠올렸다. 아바타 내용물이 해커가 사역하는 디지몬이었다면, 특히 감정이나 사고능력이 제한된 디지몬이었다면 그런 반응도 이해된다.

“아니면 제삼자가 아바타를 조종하고 있었고, 꽃 디지몬은 제삼자가 사역하는 디지몬일 수도 있지. 파파라치의 공범.”
하긴 제삼자여도 말이 된다. 단순히 둔한 사람이거나 그 정도 사고로 동요하지 않는 강심장이거나.

“765 프로덕션 측에서 하기와라 유키호와 프로듀서가 내일 다시 사무소에 방문한다고 한다. 마침 자문 결과가 내일 아침에 도착할 예정이니 딱 좋은 시기지. 자문과 함께 시험해볼 것이 있거든.”
“그게 뭔데요?”
“그건 내일까지 기대하도록. 후훗…….”
쿄코는 그렇게 말하며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그러자 꺼져있던 소장석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갔다. 묘한 타이밍이었기에 아미는 그게 쿄코가 의도한 것으로 생각할 뻔했다. 쿄코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전까진.

『하기와라 유키호에 관해 조사했어.』
“피트냐.”
모니터 스피커에서 피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꽤 볼 만한 구석이 있는 아이돌이더라고. 정말 기특해.』
이번엔 TV에 전원이 들어왔다. TV 화면에 컴퓨터 화면이 비췄다. 이번엔 쿄코가 리모컨을 조작한 거였다. 소파에 앉은 채로 소장석 모니터를 볼 수 없으니까 TV를 소장석 컴퓨터에 연결했다.

팝업창에서 피트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동시에 피트의 얼굴을 가리면서 팝업창 하나가 더 솟았다. 피트가 띄운 창이다.

『하기와라 유키호 17세입니다! 남자를 정말 좋아해요! 아, 아앗! 이건 차랑 착각을……! 구멍 파고 들어갈게요!』
『데뷔 초에 나온 홍보 영상이야. 남자(오토코)와 차(오챠)를 어떻게 헷갈린 건지는 둘째 치고.』
팝업창은 동영상 창이었는데 지금보다 더 풋풋해 보이는 유키호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카메라를 향해 필사적으로 자기소개하고 있었다.

말실수 때문에 횡설수설하지만 유키호의 열의가 화면 너머로 전해졌다. 유키호의 취미나 특기 등의 이야기가 정신없이 쏟아진다. 그러다 숨이 찼는지 허억거리면서 유키호는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에, 표정을 가다듬고 가슴을 곧게 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저, 쓸모없는 자신을 바꾸고 싶어요! 그래서 아이돌이 됐습니다!』
그 말과 함께 유키호의 프로필이 떠오르며 영상은 끝을 맺었다.
창이 닫히고 다시 피트의 창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아이돌이 된 건 정말인 것 같아. 데뷔 초에는 남자랑 같이 일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일을 받기 힘들었다고 그러더라고.』
유키호의 남자공포증.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 지금은 많이 고쳤다고 하지. 지금은 남자가 얽힌 일도 무리 없이 해낸다고 한다.”
이미 유키호의 입으로 직접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쿄코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네 말대로 기특한 구석이 있는 인간인 건 알겠어.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건 용기가 있단 증거다.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않는 이가 많은 현대 사회에선 말이지.”
쿄코는 거기까지 말하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떠오른 모양이다.
『흥미가 생겼으니 좀 더 찾아봐야겠어.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당분간은 찾지 마!』
피트는 그렇게 창을 닫았다.
쿄코는 턱을 괴곤 생각에 잠겼다.

“억측인가……? 하지만 상대가 하기와라 유키호에 관해 파악하고 있으니 간과해도 될 정돈 아니야……. 그럼 왜 그런 거지?”
쿄코가 심각하게 중얼거린다.

“무슨 일이에요?”
“아까 하기와라 유키호의 아바타가 목격자에게 ‘연습’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마치 남자에게 익숙해지려는 연습 같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일에 관련해선 괜찮지만 사적으로는 힘들다. 유키호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남자들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EDEN 아바타상이지만 신체적으로 접촉한다. 여기까진 말이 된다. 만약 저 아바타를 유키호가 쓰고 있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바타는 다른 이가 쓰고 있었다.
내용물은 유키호 본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자에게 익숙해지려 굳이 연습할 이유가 없다.
쿄코는 그 점을 지적했다.

“그럴 이유가 없어. 하기와라 유키호 본인이 아닌 이상. 하지만 자문 결과가 내 예상대로면 목적은 둘째 치고 왜 그런 일을 했는지는 얼추 들어맞는다.”
아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일 말할 예정이었다만 미리 말하는 게 나으려나? 하기와라 유키호는 아바타가 남자들에게 접촉한 걸 단편적으로나마 ‘기억’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혹시 범인이 그걸 의도했단 건가요?”
“아직은 추측이다. 그래서 자문을 기다려야 해. BAKU 설계자라면 아바타 데이터 같은 건 금방 알아차릴 테니까. 만약 이게 의도적으로 하기와라 유키호의 기억에 각인시킨 거면 범인은 하기와라 유키호가 남자에게 익숙해지도록 일을 꾸민 거라 볼 수 있다.”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수단은 아는데 목적을 모르는 상태죠?”
“그렇지. 범인을 파파라치로 볼 땐 그럴 이유가 없어. 하기와라 유키호가 남자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범인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지금 시점에선 범인이 뭘 노리는지 예상하기 힘들어.”
정보가 없는 이상 이 이상의 추측은 억측의 영역이다.
추리야 마음만 먹으면 더 짜낼 수 있지만 쿄코는 여기서 멈췄다. 유키호 개인의 신변이 걸린 일이다. 억측으로 넘어가 일을 그르치면 골치 아프다.

“하지만 정보가 없으면 그걸 찾아내는 게 탐정의 진리다.”
쿄코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유난히 크게 내며 소장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일이 되면 실마리가 나오겠지.”
쿄코는 컴퓨터 메일함을 뒤졌다. 그리고 확인 차 가장 최근에 받은 메일을 다시 열었다. 이미 몇 시간 전에 받자마자 읽은 메일이었다.
제목은 ‘RE:RE:RE: 쿠레미 쿄코다. 자문할 건이 있다.’였고, 내용은 ‘알았어, 알아보고 내일 아침까지 준비할게.’ 딱 한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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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X아이마스지만 이번 화엔 아이마스 사이드 인물이 직접 나오진 않았습니다. 이 점은 조금 반성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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