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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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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8, 2015 23:46에 작성됨.

네가 모처럼의 휴일에 할 일도 없이 집을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직도 쓸데없는 짓 하는 중이냐?"

 

왜냐하면 너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어떠한 방식으로 끝맺을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이 다를지는 몰라도 결국 결론은 앞서 꺼냈던 '쓸데없는 짓 그만둬라' 라는 말로 끝날 것이 뻔했다.

그 일련의 흐름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애용하는 스니커를 구겨신으며 뛰쳐나올 수 있게 된 것 역시 오랜 경험으로 인한 부산물이겠지.물론 집을 나서며 문을 닫을 때 최대한 신경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도 너무하신다니까."

 

막상 집을 나와 숨을 고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할 일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날씨도 좋고, 집에서 그리 멀어진 것도 아니기에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사이클링이나 나갈까 생각하던 너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자전거 취미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아버지와 다툰 이유가 이유다보니 아무래도 선뜻 손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일은 없지만 가볼까나."

 

그렇게 생각한 너는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햇볕이 따가운 게, 아무래도 사이클링보다는 괜찮은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너는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로 문을 열며 외쳤다. 그러나 너를 맞아주는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무원 한 명 뿐이었다.
그 사무원은 네가 이 곳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늘 사무소에 앉아있었다. 적어도 네가 있을 때는.

 

"어머, 어쩐 일이니? 오늘은 스케쥴이 없는데..."

 

수첩을 뒤적거리거나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급한 느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잘못 알고 있을 리가 없다는 자신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이 사무원의 이런 어른스러운 점을 굉장히 좋아했다. 어쩌면 네가 동경하는 어른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집에 있자니 조금 심심해서...안 될까요?"

"어머, 그런 거구나. 괜찮아. 신경쓰지 말고 있어."

 

사무원의 웃는 얼굴에 약간 쓴맛이 가미된 것은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너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에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하며 너는 소파에 앉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사무소의 소파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1년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봐, 거기 너!"

 

활기차고 털털한 성격이 호감이라고 듣는 너는 드물게도 그 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친구와 하교길에 쇼핑을 갔다가 귀가하는 바람에 평소와 다르게 전철을 이용하게 된 너는 치한 장면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런 일을 그냥 넘기지 않는 너는 늘 그렇하듯 가볍게 치한을 제압했다.
그러나 역무원도, 치한도, 심지어 피해자마저도 너를 사내아이라고 오인해버린 것이다.
운이 나빴던 것은 옷도 쇼핑하고 오는 길에 그만 교복이 아니었던 것이려나.
주변에서 여자아이라며 웅성대는 소리에 넌덜머리가 나고 말아버린 너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렸다.
그래서,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늦었다.

 

"저기, 잠깐..."

 

귀에 목소리가 닿지도 않았는데 어깨에 손이 닿은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일까.
버릇대로 손의 주인을 엎어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어, 어라? 뭐죠?"

 

당황한 차였으니 너의 입에서 사과의 말보다도 그런 말이 나온 것은 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아스팔트 위에 낙법도 없이 떨어진 지라, 한동안 몸을 그저 부르르 떨 뿐이었다.
간신히 상대가 진정되었지만 역시 바로 일어서는 것은 무리였는지 땅바닥에 다 큰 어른이 주저앉아 있었다.
어른 남성의 복장을 봐도 비싼지 어떤지 알아보는 것은 너에게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무리였다.
그러나 양복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세탁비를 요구하거나 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 때 남자는 입을 열었다.

 

"아야야...그, 겨우 멈췄구나. 굉장히 걸음이 빨라서 쫓아오는데 고생했어."

 

너는 의문을 품었다. 쫓아왔다니. 무엇때문에? 그러나 너의 의문은 남자의 다음 말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미안, 헌팅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네."

 

헌팅. 너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단어라고 생각했다. 설마 이 사람은 여자아이로 보고 쫓아온 것일까. 아니, 어쩌면 역에서의 소동을 봤을지도 모른다.
그런 너의 의문을 말하기도 전에 입이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

 

"제, 제가 여자아이로 보이나요?"
"...응?"

 

완전히 실패였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 미안.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는데...일단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남자는 먼지 묻은 양복 주머니 안 쪽을 뒤지더니 명함을 건넸다.

 

-765프로덕션

 

 

그런 일이 있었던 게 1년도 되지는 않았지만, 해는 넘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소파에 파묻혀 만화를 읽고 있자니, 테이블에 차가 놓였다.

 

"어라, 머리가 조금 자랐니?"

"아, 감사합니다."

"후후, 가끔은 이런 날도 좋지? 자아, 이번 주의 펜레터."

 

확실히 그 날 이후로 이렇게 느긋히 있어본 기억은 없다.
꼭 일이 있는 게 아니라곤 해도, 레슨이라던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은 많다. 소위 말하는 제법 '잘 나가는' 편이기 때문이다.

 

"역시 신경쓰이니?"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던 너는 말을 삼켰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따라 아버지의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일을 하거나 레슨을 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머리 속에서 잊혀졌는데.
이유라면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저는 언제쯤이면 여자아이다운 일을 받을 수 있는 걸까요?"

 

분명 춤추고 노래하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너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네가 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유명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명해질 수록 너의 일감은 여자아이다운 일에서 멀어져갔다.
스포츠 리포터, 패션계의 일은 많이 들어오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텐데도 네가 신뢰하는 사무원의 얼굴은 흐려졌다.

 

"글쎄,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거 같네."

 

너에게 이런 대화도 몇 번째일까. 이 대화도 너와 아버지의 대화와 마찬가지로 늘 같은 패턴으로 끝을 흐리고 만다.
홀로 남겨진 소파에 앉아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페이지를 몇 페이지를 넘기고 결국 책을 덮어버렸다.
소파에 파묻혀 힘없는 눈빛으로 천장의 형광등과 눈싸움을 하다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시선 끝에는 시계가 걸려있었다. 어느덧 선선해질 시간이었다.

 

 

선선해졌으리라고 생각해서 사무소를 나섰는데, 여름이 다가오는 하늘은 아직 뜨거움을 머금고 있었다.
거리를 걷던 너는 조금 마실 것이라도 마실까 싶어 카페로 들어갔다.
문을 열며 흔들린 풍경소리가 조금 더위를 식혀주는 것 같았다.

 

"하아..."

 

자리를 잡고 한숨을 쉬며 너는 받아온 펜레터를 적당히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어느 것도 귀여운 글씨체와 귀여운 스티커가 붙은 팬레터.
언제나 팬들의 마음에 감사하는 것은 사실이고, 매번 팬레터를 받을 때마다 집에 가져가 꼼꼼히 읽는 것은 그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마음이 지치면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설픈 마음으로 읽어도 어쩐지 실례가 된다고 너는 생각했다.
좀처럼 주문한 음료도 나오지 않고, 집에 가기 전에 조금 읽어둬야겠다는 너의 결심도 흔들릴 무렵.

 

"그러니까 댁들에겐 못 맡기겠다고 하는 거잖소!"

 

돌연 카페 안에 울리는 큰 소리에 너는 화들짝 놀랐다.
그 목소리가, 비단 큰 목소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너무나도 잘 아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너는 황급히 시선을 돌려 소리가 난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낯선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문 조합이었다.

 

"앉아주세요, 아버님."

 

결코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조용해진 카페 안에는 충분히 들릴 목소리였다.
너의 아버지는 너의 프로듀서 앞에서 씩씩대던 어깨를 진정시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황급히 자리를 이야기가 들릴만큼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물론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가 숨을 죽이고 카페가 다시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찰 무렵, 조용히 너의 아버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생각이냐는 거요."

 

그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기가 죽음과 동시에, 너는 궁금함이 들었다.
언제나라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괜한 참견이라며 아버지에게 한 마디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금했다. 과연 너의 프로듀서는 뭐라고 대답할 지.

 

"저희도 그녀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일감만 주냐는 거요."

 

이게 무슨 소리지?

 

"내 딸은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내 실수 때문에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게 자랐소."

 

당황한 너를 배려하지 않고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그 아이가 가져온 명함을 보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소. 드디어 여자아이다운 방향으로 갈 수 있겠구나.
그런데 어째서 데뷔부터, 아니 데뷔 때는 그렇다쳐도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도 그런 방향을 고수하고 있냐는 거요."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던 속내에 너는 마음을 정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너의 속내는 여전히 두 사람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향후로도 자녀 분의 방침을 크게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너도 모르게 숨을 들이쉴 만큼 너에게는 이 말이 가장 큰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여자아이로 보일 수 있었고 그랬기에 스카우트 되었다고 그 날부터 생각하고, 결심해서 달려왔기 때문에.

 

"팔리는 게 우선이라고 하는건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우선 한 가지 정정해두겠습니다."

 

한 귀에 알 정도로 분노한 너의 아버지의 말을 그는 단호한 말투로 끊었다.

 

"아버님의 교육방침은, 결코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강인함은, 당신께서 길러준 것입니다. 저와 저희 사무소는 그러한 점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고 있는 바입니다."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세간의 평가는 단순히 남자같은 아이, 였습니다. 네, 데뷔에는 오히려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주 활동은 몸을 사용하는 방송이나, 노래도 댄스계열이 대다수입니다. 스포츠 이벤트에도 자주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여성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팬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보이는 여성스러움에 반하는 팬도 있습니다.

그녀의 여성스러움은, 아버님이 만드신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말인가?"

"분명 그녀는 망설이며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계속해서 여성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언컨데, 아버님의 교육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강인하고도, 누구보다 귀여운 아이를 스카우트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의 말은 멈출 줄을 몰랐다.
너는 생각했다.

'왜 평소에는 말해주지 않는거야...'

카페의 풍경이 차오르는 먼지같은 것으로 흐려지자 점원이 다가왔다.

 

"저어, 음료수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거, 떨어트리신 것 같은데..."

 

그것은 미처 챙기지 못한 너의 팬레터였다.
귀여운 하트 마크의 스티커를 조심스레 떼어 내용을 살펴보았다.
한 편지를 읽고, 다음 편지를 뜯어내고.
조금 볼에 흐르는 것을 닦아내고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같은 여자인데도 그렇게나 힘내는

-언제나 한결같은 강함에

-어느 쪽이든 사랑하는

 

너의 들썩이던 어깨가 진정되자, 어느새 카페 안에 너의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프로듀서와 마주치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한 너는 다급히 편지를 챙겨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나 참, 여자아이로 보이지 않았을리가 없잖아. 그렇게 고운 울상을 짓고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아이가."

 

그것은 네가 나가며 들려온 풍경 소리에 미처 듣지 못했던 말이다. 카페에는 너의 노래소리가 머무르고 있었다.

 

괴로워도 앞을 봐

 

마지막에는 웃음으로

 

서로 바라보고 싶어

 

"어라, 헤어 스타일 바꿨나?"

"헤헤, 조금 길었나아~싶어서 이 참에 조금 다르게 정돈해봤어요! 어때요?"

"음-멋있어!"

"아자! 귀엽죠?"

 

너의 대답에 스태프는 조금 벙찐 얼굴을 하더니, 이내 웃어버렸다.
여자아이다워지기 위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다른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아, 귀여워 귀여워."

 

의상을 갈아입고 머리도 정돈 했다. 어두운 무대의 뒤에 너는 서있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여자아이답지 않아도 좋을지 모른다. 너는 이미 여자아이니까.
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길일까.

 

"네, 무대 준비되었습니다. 앞으로 3초!"

 

3

 

너는 자전거를 타고, 단발머리를 한 공주님이다.

 

2

 

너는 키쿠치 마코토다.

 

1

 

이 환호성이 대답한다.

 

너는 아이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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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의 귀여움은 그 남자라고 오인받고, 여자아이이고 싶은 발돋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다음은 아마도 리츠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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